내가 있는 신촌의 모 대학이 결국 등록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기사가 뜨고 나서 이제 분노의 화살이 학교측보다, 학교측의 협의대상으로 알려진 총학생회로 쏠리는 듯하다. 아무리 '총학'에 학생들이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현수막이라도 한 번 쳐다보는 학생들은, 등록금 문제 만큼은 '뒷담화' 주제로 올려놓을 것이다. 나는 2008년 봄부터 약 6개월 간 대학 총학생회 관련 연구를 하면서, 대학생 시절 가볍게 느꼈던 문제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총학생회를 둘러싼 지저분한 음모도 몸소 듣게 되었고, 그 음모의 희생자들이 총학생회에 참여하면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를 여러 번 인터뷰했다.  (그리고 부족한 논문을 채워준 그들의 소리 덕분에 우연히 상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감사의 표시를 하려고 할 때, 그들중 일부는 내가 앞으로 설명할 '유지의 정치'로 인한 비리의 당사자가 되어, 학교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 논문의 결론을 넘어서, 더 차분하게 고민해 본 나의 견해는, 총학생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억지로 살아남기'가 아니라, '차라리 아예 망하기'라는 전술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본다. 물론 한국의 모든 대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대학교 총학생회는 조직의 공백 상태를 가까스로 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야, 이번에 선거 아무도 안나간대."라고 시작되는 걱정의 기운은 결국 레임덕 시기에 있는 총학생회장이 자신이 눈여겨 본 후보군들을 설득하는 계기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의 둑은 터진다.   

전 학생회와 선거에 당선된 학생회 간에 인수 문제도 제대로 안 되긴 마찬가지다. 전, 현직 학생회가 갖고 있는 문제는 "야, 그래도 학교에 총학생회가 없으면 어떡해"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정작 총학생회에 진정 필요한 정치 방식이 무엇인지는 뒷전이 다. 정책설명회에서 제대로 지키질 못한 공약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며, 선거 과정 가운데, 전 학생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요, 학교 전체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엄밀히 말하면 인상 비평에 가까운 것이 다수다.  

결국 총학생회는 그 오랜 역사 속에서 폐쇄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참여의 문제니, 동원의 문제니라고 하는 앓는 소리는 "요즘 대학생들이 워낙 바쁘잖아요"라고 하는 변명과 함께, "야, 우리 총학생회 그냥 일 년 버텨보자"의 수준으로 가는 것이다.  (여기서 참여를 위조하는 비리 -대표적인 사례로 투표 조작 같은- 가 자연스레 나타난다)

나는 차라리 대학 내 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총학생회라는 조직의 제도 틀 자체가 아예 한 번 폭삭 망해서, 이 공백 상태가 주는 혼란을 대학생들 스스로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결국 그동안 거의 대부분의 총학생회가, "에이, 그래도 어떻게 총학생회가 학교에 없을 수가 있냐"라는 그 존재의 안전 유무에 기민하게 반응한 채 '유지'의 수준으로 나아왔기 때문에, 그 '유지의 정치'가 주는 효과값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 효과값이 거의 0인 상황에서, 이제 남은 건 총학생회라는 집단의 공백 상태를 만들어 버리고, 이 공백 상태의 위기가 주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를 모아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나는 유지의 정치로선 짱돌을 들 수 있는 조건이 거의 희박하다고 본다. 고작 나오는 정치적 행위란, 학생들이 히죽히죽 거리며,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야, 아침에 너 총장 까는 현수막 봤냐?" 그 정도뿐일 것이다. 총학생회는 이 유지의 정치에 드는 에너지, 그동안 총학생회가 지겹게 설파했던, 그들 말로 '학생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현실 전략, 연성화 전략이라고 하는 것에 목매달지말고 - 거기에 위안 삼지도 말고- 차라리, 아예 저항의 거점을 공백으로 삼아라. 이 공백은 내가 보기에 지금 당장 학생들에게 "그래도 학교는 돌아가겠지"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이 '공백의 정치'가 주는 불안의 기회는 대학 사회의 왕인 교직원들에게 또 다른 불안감을 안겨다줄 수 있는 전술이 될 것이라 본다. 

덧붙임) 글을 쓰면서 뉴스 자막을 보니 서강대와 한국외대도 등록금을 결국 올리기로 했단다.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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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2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대학 총학생회 오늘 인터뷰도 하던걸요 --;;

얼그레이효과 2010-01-30 12:43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ㅡ.ㅜ

LAYLA 2010-01-30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록금을 올리묜 학교는 학생들의 신임을 일케 되겠지. 지금까지 구래왔고 아프로도 계쏙
-이거 맞나요. 이거 엄청 웃겨서 진짜 팍 웃었는데.... 이번 총학이 너무 기대치를 높인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1-30 12:43   좋아요 0 | URL
그런 내용으로 인터뷰 했나보죠..에고..

LAYLA 2010-01-30 16:01   좋아요 0 | URL
하하하 인터뷰 아니고 플랑 붙여놨더라구요 중도 근처 나무에요^.^
 


 

우리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잘 알려진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향년 9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고 

합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로 그를 추모해야겠습니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초반 장면도 떠오르는군요.. 

굿바이 홀든 콜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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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다시 아침 운동을 나갔다. 어제 지도교수님과 함께 밥을 먹다가, '공부하는 사람들'의 비극적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름 건강 문제에 대해 잔잔한 충격을 받았던 연유일까. 눈 아래 애교살은 두터워지고, 어깨는 천근만근 무겁지만, 억지로 줄넘기를 챙기고, '완전군장'형태를 갖췄다. 어제나 오늘이나 새벽 시간이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자유로이 인생을 논하는 할머니들이 새벽기도를 마친 후일담을 논한다.   

예배당에서 처음 만난 이들의 즉석 번개인 듯한 풍경이 주는 노인들의 미덕, 어찌 보면 지하철의 한 귀퉁이에서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 신비한 풍경은, 마냥 '그들만의 뒷담화'로 비난할만한 모습은 아닌 듯하다. 혼자 운동장을 돌며 그 할머니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힐끗 쳐다보는 것으로 이제 한 바퀴 돌았구나라는 것을 센다. 

운동장을 나와 어둑한 하늘을 한 번 쳐다보면, 의외로 아침 잠이 많을 것 같은 젊은이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띈다. 잠이 덜 깬 소녀들이 중무장을 한 채, 공부의 신이 되기 위해 지하철 역을 향하고, 샴푸 향기를 저 멀리 뿌리고 가는 젊은 여성분의 또각또각 구두 소리는 명랑하다. 정돈되지 않은 거리를 비웃듯 왁스로 머리를 단정하게 만든 한 남자의 진중한 걸음도 새벽 거리를 채운다.  

집에 들어와보니, 창 밖으로 붉으락푸르락, '안마', '모텔'이란 글자가 섹시한 자태를 뽐내는 것이 보인다. 누구는 어젯밤 술김에든, 하고 싶어서든 섹스의 진입로에서 사랑해? 사랑해! 아, 좋아 하는 교성으로 서로를 만끽했을 것이라는 음란한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그들은  아침이 오롯이 자신의 옷을 입고 나타날 즈음, 섹스에 취한 자신을 달래기 위해 또 한 번의 모닝 섹스로 해장하겠지. 

몇 년 전, 여관 앞 새벽녘, 어떤 사연 속에 실랑이를 벌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같이 새벽 택시를 타던 연인의 모습이 생각난다. 텔레비전을 틀어 아침 뉴스를 챙길까 하다가, 에이..하는 마음에 장한나의 하이든 협주곡 연주를 듣기로 마음 먹었다. 

세상이 모두 던킨 도너츠의 홍차 라떼 맛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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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이런 말에 관심이 없을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일단 적어둘 만한 가치는 있을 것 같다." 

- 레이먼드 윌리엄스,『기나긴 혁명』서론의 마지막 구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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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howardzinn.org/default/  

 우리 시대 진보 지식인 '하워드 진'이 2010년 1월 27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오만한 제국'을 읽으면서 손을 부들부들 떨며, 미국이란 나라가 이런 곳이었구나를 알게 되었던 

 그 시간이 생각납니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그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그의 말에서 솟아오르는 어떤 열정을 기억하고, 또 배우고 싶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요.. 

 지금은 마음이 착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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