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의 마음 트래킹 - 모순덩어리 한국인을 이해하는 심리 열쇠
김경일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포기할지'를 결정하는 것에 더 큰 에너지가 든다. 이때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이 '결정 피로' 다. 몸이 덜 고생해도 더 잘 지치는 것은, 삶이 '노동의 양'보다 판단의 양'으로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고생은 `고생길이 열렸다'는 말처럼 적어도 갈 방향이 정해져 있다. 반면 고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매일매일 갈팡 질팡하게 만든다. 그래서 고생은 공격수의 고난에, 고민은 수비 수의 고난에 비견된다. 

축구 경기장에서 똑같이 200미터를 뛰어도 공격수보다 수비수가 휠씬 더 빨리 지친다. 공격수는 스스로 판단한 방향으로 달리지만, 수비수는 상대의 움직임만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방향을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p.137)



요즈음, 마음이 고되다는 말을 완전히 공감하고 있다. 너무 바쁘게 사느라,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자꾸 생각하게 되기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읽게 된 김경일 교수의 『마음트래킹』. 원래도 심리학을 무척 쉽게 풀어주시는 분이라 나오는 책마다 읽곤 했는데, 이번 『마음트래킹』은 특히나 유의미한 문장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경일의 마음트래킹』을 읽으며 "저마다 괴로운 사회"라는 쓴 맛나는 사회임을 곱씹기도 했다.  『김경일의 마음트래킹』에서는 한국 사회의 불안이나 울분, 강박 등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들이 세상을 어떻게 휘젓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건강한 마음이 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되어야하는지를 이야기한다. 10가지의 키워드로 한국 사회의 심리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감정을 이해하는 삶을 제시해주어, 보다 실질적이고 능동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김경일의 마음트래킹』에서는 만성울분, 도파민국, 충동성, 쉬었음청년, 수면경시, 외모강박, 대인기피, 정체성의 빈곤, 불싯 제너레이터, 이분법의 함정 등의 키워드로 한국사회를 이야기한다. 도파민국이나 만성울분 등이라는 단어는 사실 단어만으로도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를 생각해보게 되더라. 실제 경쟁과 불안, 과잉 성취 등이 만연한 세상임을 문득문득 느끼고 있던터라 더욱 공감이 갔다. 그놈의 '테토녀 에겐남', '도파민터진다' 등 학술단어에 끌리는 세상을 꼬집고, 이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짚어주는 문장을 읽으며, 숏츠나 자극적인 음식의 유행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현실이 힘들어 '기대의 힘'에 기대는 사람들. 그런데 이런 양상이 결과적으로는 깊은 생각을 할 수 없어지고 올바른 가치로 선택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면 세상이 무너지지 않을까. 『마음트래킹』을 읽는 내내 속도를 조절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무척 의미있었다.


그 외에도 "지금 마음이 왜 이렇지", "이런 상황에서는 타인은 어떤 감정일까"등을 짚어보며, 내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감정을 느꼈을 때 판단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사실"과 "해석"을 구분해보며 내 마음을 보다 객관적으로 접할 수 있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책이라는 생각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을 택해야 하는가가 아니다. 실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판력, 다시 말해 나만의 통찰이 핵심이다. (p. 251)라는 말이 쉬이 들리지 않았던 것은, 내 삶을 조금 더 성실히, 잘, 휘둘리지 않고 살아보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김경일의 마음트래킹』은 우리 사회를 면밀히 살펴주고, 그 엄청난 변화의 파도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지도같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쉽게 감정적이기 쉬운 세상, 불안함과 긴장이 가득한 세상.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나를 성장하게 하고 내면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만나보시길 추천드린다. 더불어 한국인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심리학자로 유명한 김경일 교수의 "사피엔스 스튜디오"와 함께 한다면 더욱 다양한 성찰을 얻을 수 있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발적 몰입을 이끄는 공부 대화의 기술 -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게 만드는 동기부여 대화법
유정임 지음 / 길벗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절함은 결코 사람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도 없이 체험하며 맨땅에 헤딩하길 여러 번. 이런 나의 주도적 자신감은 습관으로 이어지며 뭘 해도 해낸다는 자궁심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내가 받았던 대로 아이들에게도 늘 무한 지지를 보낸다. 해! 해봐! 넌 뭘 해도 잘할 거야." (p.127)



우연히 초록창에서 보게 된 짧은 영상하나. 악뮤가 가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현님의 "오빠의 어떤 잠재력을 터트린 것은 인정이라고 생각해요."라는 문장하나가 그렇게 마음에 메이더라. 결론적으로는 작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마흔이 넘도록 책을 곁에 두고 사는데에는 아빠의 지지와 응원이 컸던터라, 나 역시 아이를 응원하는 엄마로 살 수 있었음을 또 잠시 잊었던 것. 그 찡한 마음은 유정임의 『자발적 몰입을 이끄는 공부 대화의 기술』을 읽으며 한층 더 "그래, 내 아이를 가장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다"라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다. 


『자발적 몰입을 이끄는 공부 대화의 기술』은 부모의 잔소리나 통제가 아닌, 대화가 아이를 스스로 공부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것을 바탕에 둔 책이다. 사실 공부는 아이가 스스로 해야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지만, 우리는 종종 강압적으로, 부모의 불안을 주입하지 않나. 그러나 이 책에서는 초등, 중등, 고등 등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맞는 대화법을 제시해주며 순차적으로 자기효능감, 공부동기, 흔들리지 않기 등의 다양한 잠재력을 끌어내도록 돕는다. 물론 나처럼 초등학생 엄마때부터 이 책을 읽고 아이와 대화하는 연습을 할 수있다면 가장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실제경험을 기반으로 카이스트와 서울대에 진학시킨 경험을 풀어낸다.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제 부모와 아이의 대화, 질문을 담고 있어서 배울 것이 꽤 많았다. 개인의 경험과 사례에 의존한다는 한계는 있을 수 있으나 아이와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각 가정의 스타일에 맞게 적용한다면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 부모가 대화의 기술이 없다면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한계가 있긴 하나. 그런 노력을 통해 아이의 자발성을 키워줄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있는 노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발적 몰입을 이끄는 공부 대화의 기술』은 자녀를 교육함에 있어 ‘잔소리 대신 대화’를 제시하는 것으로, 자녀와의 관계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교육학적 근거가 다소 부족하여 이것이 진짜 모든 가정에서 학습으로 이어질 수 없을지는 몰라도, 아이와의 대화, 아이와의 관계개선에는 분명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에 가까워진 아이를 키우다보니, 질문으로 아아의 공감과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성장하는 대화법"으로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명화 수록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72
투퀴디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시간 낭비는 부당한 짓을 한 가해자에게만 유리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피해자의 분노가 잦아드는 까닭에, 피해를 당했을 때 바로 응징해야 가장 적절한 처벌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또한 누가 감히 미틸레네인이 우리에게 끼친 피해가 실은 우리에게 유익했으며. 우리가 화를 당하면 도리어 동맹국들에게 손해라고 주장할지 궁금합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둘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말솜씨를 믿고 이미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자이거나, 뇌물을 받고 그럴 듯한 말로 여러분을 현혹하려는 자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서로 경쟁하면 결국 보상은 결국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모든 위험은 여러분이 떠안게 됩니다. (p.279)



현대지성에서 나오는 "현대지성 클래식"을 무척 좋아한다. 문장이 담백하고 이어짐이 간결해, 어렵다고 느끼기 쉬운 고전을 한결 편안히 읽게 하기 때문에, 이미 우리집 책장에는 수십권의 초록고전들이 꽂혀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를 읽으며 그 깔끔함에 또 한번 감탄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신화를 걷어낸 최초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고전과 전쟁사, 역사, 서양사 전반을 아우르는 통찰을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역사서를 좋아하는 편이라 욕심은 내고 있었으나 무척 깊다는 평을 읽고 미루기만 했었는데, 현대지성클래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도전해보았던 것. 그리고 그 평가대로 단순히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전쟁사, 고전역사 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정치 등을 깊이 다루고 있어서, 현대의 정치, 국제관계 등까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쉬운 책은 아니었으나, 600개가 넘는 치밀한 주석과 다양한 명화가 포함되어 있어서 27년이라는 긴 역사를 읽는데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투키디데스는 전쟁을 단순한 충돌이 아닌 정치나 권력의 산물로 표현한다. 물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아네테와 스파르티의 충돌을 남긴 전쟁사 기록이기는 하지만, 아네테의 팽창주의와 스파르타의 보수성 유지 욕구가 충돌하는 전쟁사를 기록한 단순한 전투 묘사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인 과정과 사회적인 긴장감, 또 이로 인해 볼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과 인간의 본성, 권력의 본질 등까지 널리다루고 있다. 실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사의 치밀한 기록으로서도 깊은 의미를 가지지만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고전역사서로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는데,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드러내고, 권력이나 이익을 둘러싼 싸움이 어떻게 사회를 붕괴시키는지 치밀히 보여줌을 느꼈다. 개인의 두려움이나 이익에 대한 욕구 등이 개인을 넘어 국가까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읽으며,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 여러 양상들을 볼 수 있음이 놀랍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역사나 고전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그때의 기록이 현대에서도 정치적 맥락이나 흐름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는 내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여러번 떠올리기도 했다. 지금도 지구 한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 역시 총과 칼이 오가지 않을 뿐 언제나 아슬아슬함을 이어가며 살지 않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전쟁사에서 오늘날의 전쟁을, 고전 역사에서 오늘날의 모습들을 느꼈다.  아테네를 휩쓸었던 전염병이 사회의 질서와 도덕을 붕괴시키는 모습에서도 우리 모두를 마스크 지옥에 살게 했던 시절이 떠올랐고,  유명한 문장인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감내할 수 밖에 없다"는 문장에서 힘과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전쟁이 인간 사회의 붕괴, 정서적 학대, 정치적 왜곡 등을 만들어감은 여전한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이렇듯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사를 통해 인간 본성을 성찰해보기도 하고, 고대에서 현대에까지 이어지는 통찰을 얻을 수도 있는 책이다. 물론 전쟁사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도 치밀하고 깊은 책임은 당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전역사를 바탕으로 오늘날의 정치, 인간의 모습,  불신의 사회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렵더라도, 꼭 한번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만나보시길 추천드린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단순한 전쟁사 기록을 넘어, 인간 본성과 권력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완전한 이해도 완전한 사랑도 없다. 모두들 살아 있기 위해서 견디는 것만 같다. 하지만 저마다 느끼는 감정은 너무 다양하고 그중엔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들이 더 많다. 분노로 질투로 좌절감으로 절망감으로 삶에서 멀어지고픈 생각이 꼬리를 문다. (P. 112)

 

깊은 사랑과 냉철한 이성과 오래된 우울감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P.149)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를 다 읽어놓고도 한참이나 그대로 두고보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책을 받은 날 단숨에 다 읽고, 인덱스 붙인 곳을 또 다시 읽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또 다시 읽고, 그렇게 이 책과 씨름을 하고 있다. 이 책 안에는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서로를 상처입히는 관계와, 억압과 상처, 그러면서도 깊은 사랑이 공존하며 그들만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은 이야기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자리한다. 그런데 이것을 이랑, 그녀의 이야기만이라고 덮어버리지 못하겠다. 개인사처럼 보이는 그 모든 이야기들은 사실 몇 세대를 거치면서도 사라지거나 바뀌지 않고 반복되어온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고, 내가 자라온, 또 내가 겪어온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상처와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면서도, 그는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간다. 일찌감치 집이라는 거미줄을 탈출했지만, 소진사해버린 언니의 모습을 직면한 그에게서 찐득한 미련을 때때로 발견하며 그 감정은 느낄 필요없는 죄책감, 사랑, 유대감, 상처 등 수많은 것들을 담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의 문장에서처럼 그녀가 “감정들에 이미 정해진 간단한 이름들이 있다는 것을 진작 배웠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까(P.22)”를 같이 생각해보게 되더라. 

 

분명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는 불편함을 직설적으로 담고 있다. 세대간에 반복되어 내려지는 고통, 엄마의 감정세습, 특정 성별에 대한 규범이나 억압 등을 발가벗은 듯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낙인이나 관습조차 자신의 정체적으로 전환해가는 모습 때문인지 불편하다는 느낌보다는 진짜 삶이 무엇인지, 힘겹게 넘어서는 담장너머의 세상이 얼마나 빛나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엄마와의 거리감이었다. 분명 그들의 관계는 편치 않았었고, 서로의 고통을 품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했는데, 서로가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는 관계이면서도, 어느 순간 각자를 독립된 개체로 둔 느낌이었다. 그것이 한 존재의 상실에서 온 비워짐때문인지, 상실 후의 성장에서 오는 깨달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 또한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감정의 거리를 분리해보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가 아무것도 정리하려 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사실 많은 책들이 후반부에는 “그래서 이렇게 했습니다”를 즐기지 않나. 그런데 이랑은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이해하면서도 거부하고, 공감하면서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다. 이것에 대해 바꾸려하지도 않는달까. 물론 혹자는 그래서 좋지 않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타인을 어떻게 바꾸어보려하지도 않고, 주제넘게 이해하려하지도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이 책이 오히려 “재도 남기지 않으려는 타오름”같아서 좋았다. 사실 누가 뭐라고 하든, 누가 상처나 사랑이나 뭘 남기든 결국 결론은 나에게 있지 않나. 내 감정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세상에 우리는 뭘 그렇게 타인의 감정까지 정리하려고 하나 싶어서.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아서 더 좋았던 책, 이라고 남겨두기로 했다.

 

또 이 책에 가득한 상실감과 고통과 직설을 곱씹으며, 그녀가 하루는 미친 사람으로, 하루는 마음 아픈 사람으로, 또 하루는 눈부시게 행복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러하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도의 탄생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들은 시련 속에서도 예수를 잊을 수가 없었다. 기대와는 달리 그리스도가 재림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를 계속 믿었다. 예수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예수는 그들을 붙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이미 부활하였다. (P.271)

 

 

“주님 수난 성지 주일”미사를 드리고 왔다. 올해도 나는 “십자가에 못받으시오!”라는 소리에 울음을 참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는 거의 40년간을 들어온 성경구절이고, 매년 보내는 사순시기인데 나이를 한살 한살 먹을수록 그 감정은 짙어지는 것 같다. 사순절 동안 내 딴의 묵상으로 가톨릭서적을 3권 정도 읽겠다 다짐했는데, 겨우 한 권을 읽었다. 그러나 이 한 권이 꽤 묵직하고 짙어, 사실은 더 많은 책을 읽으려 했던 자체가 욕심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나와 사순절을 함께 보낸 책, 『그리스도의 탄생』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엔도 슈사쿠, 『예수의 생애』의 후속작으로 1978년에 발행된 책이다. 나보다도 한참 나이가 많은 책으로 예수님의 죽음 이후 제자들이 겪는 혼란, 신앙의 발전 등을 그리고 있어 부활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내적 체험과 하느님의 현존을 배우게 하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그리스도의 탄생』앞부분을 읽으면서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를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로 표현하는 것같아 살짝 불편한 마음이 일기는 했으나, 이 책의 시작점 자체가 개인의 믿음이 형성되고,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니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검쟁이였던 과거를 벗어던지고 복음을 전하는 과정, 예수님의 부재 속에서도 어떻게 신앙이 지속되고 확장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들의 마음 속에서 성장하고, 자리잡아 가는 과정을 면밀히 탐구함으로서, 나 역시도 하느님을 “왜”믿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고, 부활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작가는 부활을 어떤 사건이 아닌 내적 체험이나 공동체적인 기억으로 해석하는데, 이는 믿은 자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준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신앙이라는 자체가 외부의 어떠한 증거보다는 내적인 확신, 내적인 믿음이 아닌가. 어쩌면 나조차도 힘이 들때면 하느님의 현존을 의심하곤 했는데, 앞으로는 하느님께서 내게 전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전작 『예수의 생애』가 예수의 인간적 모습과 삶을 탐구하는 책이었다면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 이후, 제자들이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룬다. 개인적으로는 『예수의 생애』가 예수님이 겪은 고통 자체에 집중하였다면, 『그리스도의 탄생』은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신앙을 형성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 아닌가 싶어진다. 음, 오히려 감정적으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서 우리가 가지는 두려움과 의심 등을 이겨내게 하는 힘을 주는 책이랄까.

 

물론 나의 얕은 지식으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 앞에 어떠한 변명도, 피함도 없었던 그 분처럼, 우리도 무엇인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누는 마음을 한번쯤은 먹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신앙생활에서 가장 바삐 부활절을 준비하는 지금 불평대신 당신 뜻이라는 마음을 자꾸만 먹게 하는 책이었다. 

 

“주여,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