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감댁 여인들 - 세 자매가 선사하는 따스한 봄바람
이지원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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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릴 때면 모든 잡생각이 사라지고 제게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현실을 도피하는 방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림을 그릴 때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행복으로 나를 채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얕은 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p.47) 

 

이전에는 어린 마음에 예흔 언니가 수용사에서 느끼는 행복이 커질수록 저와는 더욱 멀어지는 것 같아 온전히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서운함이 하나도 없습니다. 언니가 발게 웃으니 제 마음도 밝게 빛나는 듯 합니다. (p.267) 

 

 

얼마전 구덕이에서 옥씨부인으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 여인을 그린 드라마, 『옥씨부인전』은 많은 이들에게 큰 귀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선시대에 그런 여인은 없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훨씬 많아 슬픔을 안겨주기도 했고. 그러나 그런 여인이 정말 없었을까? 이혼과 유학, 유교사회에서의 자유로운 사랑까지를 해낸 나혜석 화가나, 천주교 도입을 위해 재산과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은 강완숙 골롬바 순교자,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모를 뿐, 분명 민가에도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고 변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던 여인들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바른북스의 신간 소설, 『홍대감댁여인들』역시 그런 면모의 여인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물론 전반적인 모티브는 조선시대 시대극로맨스이지만, 한편르로는 평범한 이들의 삶과 애정 등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홍대감댁여인들』이라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몇몇 여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는 장녀와, 사랑에 상처받아 비구니의 삶을 택하는 차녀. 구방여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불만이 많은 셋째까지. 이들은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의 삶이지만 그 억압속에서도 사랑을 하고, 성장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특히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용사는 이들의 안식처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 안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그 안에서 “그 사람이 내가 갖고 있는 힘듦을 모두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지요. 허나 모든 것을 떠나 서서히 식어가는 게 사람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사그라드는 자체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p.267)”라는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서 이것은 단순히 사랑이 아닌 개인에 대한 성장, 내면의 발전 등을 잘 다루는 이야기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쩌면 유교사회라는 강한 억압과 전통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하는 시대극, 조선시대소설들이 이토록 다양하게 사랑받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제한이 없었더라면 그들의 자유의지는 결코 스토리가 되지 못했을테니까. 사실 대부분의 소설들이 사랑받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나.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신간 시대극로맨스 『홍대감댁여인들』에서 만난 시절이 포용하지 못한 여인들의 모습을 읽으며, 이토록 제한된 사회에서도 이토록 성장하는 것이 사람임에 감동을 느꼈다. 더불어 현실의 우리들은 너무 편안해서 오히려 안주하며 살지않나 하는 것도.

 

분명 『홍대감댁여인들』는 그 이상의 로맨스 소설 그 이상의 서사가 있었고, 우리의 모습이 있었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이해하는 성장 로맨스소설, 『홍대감댁여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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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세계 역사 백과 -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세상 DK 백과
수피야 아메드 외 지음, 서남희 옮김, 필립 파커 자문 / 비룡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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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아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DK백과사전에서 출시된 『세계역사백과』가 출시되어 발빠르게 만나보았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DK백과사전은 무척이나 선명한 도판과 사료로 어른과 아이 할 것없이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기로 유명한데, 특히 역사와 관련된 사료들은 전세계박물관을 통째로 보는 듯한 기분까지 들어 정말 유익했다. 


DK백과사전 『세계역사백과』에서는 전 세계의 유물과 유적을 다양한 사진, 도판 등 방대한 사료를 시대별, 지역별, 문화별, 특징별로 나열하여 각각에 대해 한눈에 파악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사시대에서 현대까지 세계사를 각각의 주제별로 만날 수 있어 개념정리에 유익하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어려울 수 있는 낯선 역사용어나 개념을 쉽게 풀어주고, 용어설명이나 키워드를 곁들어주었기에 보다 깊은 이해를 돕는다. 


우리 아이는 DK백과사전 『세계역사백과』를 뜯자마자 탄성을 내지르며 “새 주제 나왔구나!”라고 신나했다. 아니나다를까, 엄마가 미처 확인할 틈도 없이 DK백과사전 『세계역사백과』를 들고 책상에 앉아 신나게 발을 흔들며 읽더라. 지금까지 만나본 대부분의 DK백과사전이 다 그랬지만, 이번 DK백과사전 『세계역사백과』는 특히 세계사의 이모저모를 생생히 보여주는 도판 자료를 1,000장이상 싣고 있어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세상”이라는 말에 걸맞게 다양한 이미지와 사진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농사, 예술, 전쟁 등 다양한 주제나 시대, 지역 등, 아이들이 궁금해할 주제별로 잘 나누어져 있어서 교과연계로 보기에도 너무나 좋다. 또 평소 역사공부를 하며 수없이 거론해온 거북선이나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 등을 만나볼 수 있어 아이의 감동이 더욱 짙었다. 



다양한 유물과 유적, 지역이나 환경 등에 따라 선조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전쟁에서는 어떤 무기가 사용되었고, 어떤 유적이 어떤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긴밀하게 연결지으며 읽을 수 있었던 DK백과사전 『세계역사백과』. DK백과사전 『세계역사백과』를 읽는 내내 우리 아이는 종알종알 수다쟁이가 되어 “엄마, 거북선이 나와요!”, “엄마, 문명의 시작이야!”등을 외쳐댔다. 이것이야말로 엄마가 읽으라고 해서 읽는 책이 아니라, 아이가 찾아 읽는 책이 아닐까. 


아이들에게 필요한 영역은 분명 무척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사와 독서가 가장 간절하다. 그래서 아주 어릴때부터 아이와 부지런히 책을 읽고, 역사에 대해 노출시켜왔는데 DK백과사전 『세계역사백과』를 읽으며 아이의 머릿속에 흑백이었던 부분들이 마치 불을 켠 듯 선명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언제인가 세계사 책에서 잘 보이지 않는 사진들을 돋보기로 보던 내가 떠오르기도 했고. 


아이를 위해 다양하게 소장하는 DK백과사전이지만, 이번 『세계역사백과』가 단연 으뜸이라고 할만큼 다양한 사료와 사진에 엄마도 감탄이 들었다. 정말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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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라서 정말 좋아 필사 에디션 (노출 제본)
김지훤 지음, 하꼬방 그림 / 길벗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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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에 출연하신 후, 많은 학부모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김지훤선생님. 아이들에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어린이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사랑받았던 책, 『내가 나라서 정말 좋아』가 필사에디션으로 등장했다. 어린이베스트셀러 『내가나라서정말좋아필사에디션』은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 하나씩 소개해본다. 

 

먼저 어린이베스트셀러 『내가나라서정말좋아필사에디션』은 기존의 『내가나라서정말좋아』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다양한 표현과 마음이 단단해지는 법을 꼼꼼하게 담고 있다. 또 특별수록으로 휜쌤의 아침조회 장면을 QR코드로 다루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영상을 바로바로 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또 마음연습을 위한 40가지 질문을 다루고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어린이베스트셀러 『내가나라서정말좋아필사에디션』을 더욱 깊게 즐기고자 하면, 한번은 눈으로 읽고, 또 한번은 크게 따라 읽는다. 이후 필사를 하면 마음에 눌러쓰듯 오래 기억이 남아 더욱 좋다. 여기에 휜쌤의 아침조회 영상을 함께 본다면 아이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고, 보다 자신감있게, 자존감 높게 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릴스 누적 조회수 1억뷰라는 엄청난 기록을 가진 만큼,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어린이베스트셀러 『내가나라서정말좋아필사에디션』은 직접 만나보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절로 알게 된다. 사실 기존의 어린이베스트셀러 『내가나라서정말좋아』를 읽으며, 이걸 조금 더 깊게 배우게 할 수 없을까 생각하곤 했는데, 어린이베스트셀러 『내가나라서정말좋아필사에디션』으로 출시되어 아이가 눈으로 한번, 소리내어 한번, 직접 쓰면서 한번 마음에 세길 수 있어 더욱 좋았다. 

 

또 180도 완전히 펼쳐지는 제본이기에 아이가 필사를 하면서도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았고, 글씨를 따라쓰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글씨가 예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글씨쓰는 연습을 하기에도 무척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스스로를 사랑하기 힘든 시절, 요즈음.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베스트셀러 『내가나라서정말좋아필사에디션』을 통해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고, 아낄 수 있길 바라본다. 더불어 엄마들도 이 문장들을 함께 읽으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아이를 더 사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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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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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는 어쩌나 대프니를 그렇게 잘못 판단했을까? 아주 쌀쌀맞고 고고한 데다 짜증 날 정도로 완벽하고 거만한 여자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녀는 결점 많고 상처 입기 쉬운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신보다 더 그럴지도 몰랐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기도 했다. 대프니가 아니엇다면 그들 중 누구도 지금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변화했다. 대프니의 기운이 어떤 식으로든 그들 전원에게 스며든 것 같았다. (P.442) 

 

20대의 나는 40대의 삶이 막연히 '노잼'일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40대가 되어보니 살이 좀 찌고, 피곤을 조금 더 느끼는 것뿐 여전히 삶은 나의 마음에 따라 '대유잼'이기도 하고, '노잼'이기도 하다. 오히려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즐거움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좌우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 아닐까? (뭐, 외모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늙고 살쪘다.) 그 덕분일까, 매일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엄마아빠의 모습때문일까.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클럽』을 받아들고, 나는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맞아, 70살에도 마음만 즐겁게 먹으면 행복할거야, 하고.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클럽』은 정도 많고 탈도 많은 노인들의 마을구하기 대작전을 옮기고 있다. 패션감각이 좋고 끼많은 할머니 대프니, 결혼으로는 이름을 출산으로는 직업을 포기하고 그저 '아내', '엄마'로서 살아온 리디아, 뜨개질계의 우주대스타(일명 뜨개질 뱅크시) 루비, 결혼을 다섯번이나 하고 사별도 다섯번이나 한 애나, 연기경력 50년차 무명배우 아트, 그리고 고등학생 미혼부 지기. 어떤 면에서는 주변에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의 조합이지만, 조금만 마음을 크게 뜨고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한 조합이다. 

 

이들은 우연히 당야한 사회 커뮤니티 한쪽 구석, 노인 사교클럽이라는 접점을 갖게 된다. 처음 그들의 모습은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못하고, 긴 시간 각자의 삶을 살아왔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연륜에서 묻어나는 깊은 이해로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인다. 또 자신에게 다면한 문제들을 젊은이들보다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해결하고자 한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삶은 분명 노인의 삶이었지만, 사실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었던 거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진짜 삻이 무엇인지를, 자리를 지키고 책임지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 마음을 다해 배우게 된다.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클럽』을 읽을 때에는 기발하고 유쾌한 스토리 진행에, 다른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스토리에만 퐁당 빠져있었다. 그만큼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클럽』은 이야기자체에 몰입하게 하고, 우리도 그 사교클럽 어딘가에 발을 얹은 누군가가 되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나이가 가진 한계, 환경이 가진 한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우리 마음대로 타인의 한계를, 내 한계를 미리 정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노화와 사랑과 우정, 노인과 미혼부와 어런이. 어쩌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조차, 우리의 편견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규정지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클럽』은 기존의 틀을 깨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소설이다. 

 

혹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가? 아침부터 피곤과 짜증이 먼저 떠올랐는가? 만약 그랬다면 꼭 한 번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클럽』을 만나보기를. 분명 당신의 하루가 고마워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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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떠나는 수밖에 - 여행가 김남희가 길 위에서 알게 된 것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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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내 부모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보잘것없는 나의 성이 있다. 혼자서 세상을 떠돌고, 그 만남에 관한 글을 쓰고, 방과 후 산책단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온통 여행으로 가득한 삶. 그 성을 지키기 위해 이제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나는 눈물로 흐려진 시야를 닦으며 잔을 들었다. 싸울 거야, 이 무기력한 날들과 살아낼 거야. 엄마의 몫까지. 벌어진 상처 위로 눈물을 쏟으면서도 나는 앞으로 나가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p.134) 

 

아침에 공원에 앉은 나를 누군가가 봤다면, 불안정한 상태라 생각하며 바라봤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집을 두고 출근 한 시간 전 볕도 좋고 꽃도 좋은 공원에 앉아 『일단 떠나는 수밖에』를 펼쳐 들었다. 에세이 맛집 수오서재에, 김남희라니. 내가 감히 이 책을 방구석에서 읽을 수 없지. 마치 소풍을 하러 가듯 커피 한 잔, 책 한 권을 달랑달랑 들고 나섰던 나는 결국 화장기 하나 없는 말간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가야 했다. 울고 우느라 기미도 몇 개쯤 얻었을지 모르겠다. 언제나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내가, 어쩌면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다정함에 다가서는 삶을 배우고, 느끼고, 깨닫는다. 그리고 그것을 꼭꼭 씹어 내 방식으로 소화해본다. 

 

『일단 떠나는 수밖에』를 내 식대로 정리하자면 “돌아갈 곳을 향하기에 여행”이라고 남겨두고 싶다. 유독 이번 책을 읽는 내내 그 마음이 들더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를 이들 사이에서 남겨진 문장들이지만 그녀는 그 시간들을 돌아, '지금'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너 장의 페이지만 남았을 때 문득, 어쩌면 여행이라는 자체가 돌아갈 곳을 향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단어임을 깨닫고, 매일매일의 내게 돌아올 곳이 되어주는 가족이, 집이, 나의 공간, 또 하루를 어떻게든 보낸 나 자신이 사무치게 감사해졌다. 꼭 타인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에게 “이번에는 이런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어.”라며 오늘의 나를 정의하는 것. 때론 유치하고 때론 오글거리며, 때론 다소 모질지라도 매일매일의 “나”를 정리하는 것. 그것이 여행이 아닐까. 

 

어떤 페이지를 읽으면서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성소들 안에서 “너는 이대로도 괜찮다고,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오지 않았냐고 위로해주는 것 같은(p.162)” 느낌을 받았다는 그녀에게는 그 여행이, 그 걸음들이 퀘렌시아였을까. 이 작은 식탁에 앉아 가만히 책을 읽고 글씨를 쓰는 순간을 “가장 나답다”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삶은 너무 리듬이 없는 것일까.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누군가 “네 삶이 재미없어 보여”라고 한대도 “오, 그래?”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남은 몰라도, 나는 가장 나다운 것이 무언인지 알아주어야지. 그녀 말대로 나도 뜨거운 삶이었음을, 뜨거운 삶임을 잊지 말아야지. 

 

책을 덮고 난 지금도 가만히 여러 문장을 곱씹어본다. 어쩌면 원래 알았을지 모르지만, 깜깜한 밤이 되서야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가 붙여온 수많은 핑계, 변명들 아래의 숱한 것들을 가만히 생각해봤다. 시간이 없어서, 워킹맘은 바빠서, 아직 아이가 어려서. 사실 그 핑계들의 대부분은 다른 선택지가 늘 존재했지만, 내가 답을 모르거나 애써 모른척했던 것이 더 많다. 늘 조급하고, 서툴고 여유 없는 내게 그녀의 문장은 꽤 밀도 높은 응원이 되었다. 날개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어 지금 당장 날아오지는 못해도, 적어도 녹슬지 않도록- 제자리에서라도 날갯짓해야지. 

'안 한 일'을 '못한 일'로 덮어버리지는 말아야지. “세상은 성공, 완성 같은 단어로 이뤄진 게 아니라 실패, 미숙함, 불완전함 이런 단어로 구성되어 돌아가는(p.294)” 것이라고 조금 더 믿어봐야지. 

 

“지구는 언제까지 내 여행을 허락해줄까? 산은, 바다는, 강은, 사막은 언제까지 내 걸음을 받아들여 줄까(p.262)”라는 그녀의 질문에 내가 산이나 받아 대신 “오래오래”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그래야만 우리는 이 섬세하고도 편안한 문장들을 오래오래 읽을 수 있지 않겠나. 어떤 사람은 빙하를 보고 에어컨 온도를 높이고, 어떤 사람은 온난화의 심각성을 뉴스로 읽으며 에어컨 온도를 높인다. 그녀는 전자, 나는 후자에 가깝겠지만 서로의 실천은 모두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감히 나는 그녀에게 그 여행을 계속해달라고 남겨둔다. 그러면 그 문장들로 함께 실천하고 고민할 나같은 사람들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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