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 집으로 간다 - 부부는 끝났지만, 부모 역할은 계속된다
글짱 지음 / 담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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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부부가 헤어진 거이지, 부모가 헤어진 게 아니다. 자식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게 부모라면 남남이 된 부부라도 그 진심에는 변함이 없다. 자식을 위해 쇼인도 부부를 못 할까, 재혼이 두려울까. 자식이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게 부모이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P.153)

 

나와 동갑, 그녀의 첫 번째 책이 출간될 즈음 연을 맺은 뒤 이미 몇 년째 서로의 SNS로 소통하는 작가님이었고, 나 역시 기다리던 그녀의 다음 책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간다.』를 읽는 나의 속도는 꽤 더뎠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 혼사가 두려웠냐고? 아니다. 그녀의 글에서 발견하게 될 내 모습이 두려웠다. 『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간다.』의 첫 장에서부터 우리 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미칠 것 같은 속을 다독이며 아이를 위해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서운함은 무거운 돌덩이가 되었고, 이후 사소한 일이 생길 때마다 작은 돌덩이가 차곡차곡 쌓였다. (P.57)”, “혼자가 아님에도 혼자일 때보다 더 아프고 버거운데, 정말 별일이 아닐까. 누구는 이런 살에 지쳐서 죽기도 한다는데 이건 죽고 사는 문제에 속하지 않는 걸까(P.58)”

 

나도 모르게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때의 그녀에게 “이혼은 그냥,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 사람들이 하는 거야. 특별한 누가 아니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때의 나에게도 해주고 싶었다. 불행을 피한 것인지 행복을 내쫓은 것인지 답답하다는 그녀의 마음이, 그때의 나 같아서 자꾸 훌쩍거려졌다. 이 훌쩍임의 소리가 변한 건 몇 장 채 넘기지도 않아서였다. 내가 이혼을 결심하지 못했던 이유가 고스란히 담긴 그녀의 문장들 앞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울어버렸다. 그녀가 오래도록 속앓이한 끝에 얻어낸 결론, “부모의 이혼에 남겨진 책임은 부재한 부모의 자리를 그리움으로 두지 않는 것이다. 이혼과 상관없이 부모 그대로 아이 곁에 있는 것이다. (P.122)”는 말에 마음에 파도가 일었다. 나에겐 이혼사유가 부족했던 것인지 용기가 부족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부모의 자리를 그리움으로 두지 않을 자신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간다.』를 읽으며 초반에는 “내가 이혼하지 못한 이유”를 찾았고, 중반에 다다랐을 때는 마치 그것이 엄청난 모험이라도 되는 것처럼 용기가 '부족'한 나를 탓하려 했다. 그러나 “대지가 비옥하지 않은 엄마는 '너희도 참아'라며 무책임한 악다구니로 아이들을 아프게 한다(P.178)는 문장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를 위해 미워하기를 멈추기로 해놓고, 어느새 야금야금 서로를 향한 미움을 꺼내고 있었다. 미움을 멈추기로 했던 그 시점으로 돌아가, 내 결심에 책임지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녀의 문장 위에 내 마음을 얹어보고서야 그걸 깨닫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녀가 애써 얻은 깨달음을, 슬쩍 얻어가는 염치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경험이 누군가에게 약이 된다면 얼마든지” 하며 자신이 지나온 시간들을 바싹 말려, 달콤쌉쌀해진 경험으로 나누어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이미 스스로를 다독이는 힘을 얻었으니, 누군가를 안아줄 여유도 생겼으리라. 나도 어느새 아팠던 시간을 딛고, 이혼하고 싶다고 우는 후배의 등을 도닥이는 사람이 되어 있다. 

 

『우리는 육아가 끝나면 각자의 집으로 간다.』를 다 읽고 난 지금- 진짜 용기는 이혼이나 인내, 그 무엇도 아닌 스스로 선택한 것에 책임지는 것에 무게를 두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 했던가. 그 무거운 시간을 견뎌낸 그녀에게 이제 행복과 빛으로 가득한 왕관만이 가득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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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골을 찾아서 샘터어린이문고 83
김송순 지음, 클로이 그림 / 샘터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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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순 작가의 신간, 『바람골을 찾아서』는 사실 아이보다 내가 읽고싶은 마음이 커서 만낙 되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판타지 동화이기도 하지만, 전쟁 피해자의 상흔과 전쟁이 남기는 것들에 대해 잘 조명하고 있고, 회복 방향성을 고민하기 때문에 전쟁을 직접 겪은 우리나라에는 꼭 필요한 동화라고 생각했기 때문. 


『바람골을 찾아서』에서 현준이는 할아버지의 보물을 찾아 바람골로 향한다. 그저 할아버지의 보물을 찾기만 하면 할아버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으리라는 기대로 시작한 모험이었으나 우연히 현준은 과거를 경험하게 된다. 어딘가 낯익은 새 형과 자꾸만 싸우게 되는 더벅머리 아이를 비롯한 이상한 사람들이 가득하고 총성이 오가는 바람골. 설상가상으로 졸지에 함께 도망자가 된 현준은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전쟁의 슬픔과 할아버지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저 상상 속의 일이고, 우리 세대에게도 ‘과거’로만 느껴지는 오랜 일이지만, 『바람골을 찾아서』을 통해서 만나는 전쟁의 상흔은 전쟁이 남기는 아픔과 현실적인 해결방안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사실 아이는 『바람골을 찾아서』를 읽기 전까지, 전쟁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지는 못했던 것 같긴 하다. 하긴 아이가 만나는 전쟁은 독립기념관, 호국기념관 등에서 만날 뿐이니 특정 감정을 느끼기는 어려웠을 듯. 그러나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 오래도록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등에서 전쟁이 우리에게 남기는 상흔이 얼마나 큰지를 느끼고 많이 슬퍼했다. “누구에게” 좋은 거라서 전쟁을 한 건지 묻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내 마음도 복잡해졌고. 


『바람골을 찾아서』는 어쩌면 우리의 그 모든 땅 이야기고, 그 시절을 겪은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바로 “오늘”의 이야기다. 그래서 『바람골을 찾아서』는 모두에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전쟁이 남기는 것들에 대해 적어도 우리는 기억하고, 해결할 마음을 먹어야하니까. 


멀게만 느껴지던 전쟁은 『바람골을 찾아서』 덕분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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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 - 강세형의 산책 일기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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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는 좋은 걸까, 나쁜걸까. (p.314)


사실 이 구절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아씨, 책에 얼룩졌어.’ 하는 생각 뒤 잠시 멍했다가, 문득 깜짝 놀랐다. 나, 왜 울지 하고. 돌아보니 요즈음의 나는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생기지 않길 바라는 조금 지친 상태였나보다. 그러나 이내 “다른 이에게 찾아올 행복이 나에게 찾아온다 한들 이상할 게 없고 다른 이에게 닥친 불행이 나에게 닥친다해도 또 너무 억울해만 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 가끔은 내게 묘한 위로가 되어준다. (p.172)”는 작가의 말처럼, 나는 그저 오늘을 덤덤하게 살아갈 뿐임을 재빨리 떠올려본다. 그래야 오늘 그냥 이 책에 취해 눈물을 한방울 흘린 것으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강세형 작가의 『희한한 위로』를 읽고 조금 덤덤해진 내 모습에 위로를 얻었다고 적은 기억이 있다. (그게 벌써 5년전이었다니, 깜짝 놀랄 일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내가 다짐한 것처럼, 나는 나이를 먹은 탓인지 조금 더 유하게 누군가에게 위로를 얻고 또 조금 더 유하게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런데도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를 읽으며 또 위로를 느낀다. 또 작가님의 문장에서 일상을 추슬러본다. 살짝 불평이 들었던 마음에 “어제와 같은 오늘”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따끔한 충고를 해본다.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가면역질환을 앓던 작가가 매일 산책을 하고, 그 산책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 엄청난 스토리가 담긴 책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지나는 풍경, 주변을 지나는 사람, 동네의 풍경, 비슷비슷한 일상들을 찬찬히 기록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동네, 다른 일상을 사는 나의 이야기같아서, 내 마음 같아서 자꾸 문장에 발목을 잡힌다. 작가의 걷는 속도처럼 느리게 문장을 읽다가도 마치 달리기라도 한 듯 심장이 쿵쿵 뛰기도 하고, 느린 속도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평소라면 단숨에 읽어냈을 분량의 책을, 오래오래 천천히 읽었다. 


길게 이어진 연휴의 끝자락, 늦잠을 실컷 잔 후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를 다시 꺼내어 들었다. “깜빡 눈을 감았다 뜨면 또 사라져버릴 오늘 하루”를 기록한다는 그녀가 마치 내 옆에 있기라도 하듯,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읽었다. 신기한 것은 이토록 느리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전혀 지겹지 않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천천히 걷는 그 걸음걸음, 그녀의 머릿속에 맴돌던 수많은 단어들이 이야기가 되고, 실체가 되어 내 주변에도 맴도는 것 같다. 그리 천천히, 또 꼼꼼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했기 때문일까. 살며 가장 경계해야할 것이 어쩌면 나일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자각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조금 익숙해진다 싶으면 나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는 내 자신이 떠올랐다. 요즘 불평도 자주 꺼내고, 마음에 화도 자주 담아두었는데, 그녀의 문장들을 보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보다 약한 존재, 그 중 내가 가장 지켜야할 존재에게 내가 무서운 사람은 아니었는지 돌아본다. 어쩌면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는, 단순히 현관문 자체를 열고 나가는 행위가 아니라 내 마음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내 마음의 문을 꼭꼭 걸어잠그지 않는다는, 다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잔잔한 이야기다. 봄바람에 가만히 살랑살랑 흔들리는 강아지풀정도의 잔잔함이다. 그러나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를 읽고 난 내 마음은 마냥 잔잔하지만은 않았다. 오늘의 귀함을 잊고 살았던 내 스스로에게 따끔한 일침을 주고, 나보가 약한 존재를 온 마음을 다해 보듬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어제보다 나아지지않아도 괜찮다고, 잔잔한 오늘이어도 충분하다고 나를 안아주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강세형 작가님께, 위로를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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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명문장 필사 100 - 생각을 깊게 삶을 단단하게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나만의 필사책
김지수 엮음 / 마음시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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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나에게 대체 에너지가 어디서 나서, 그렇게 매일 책을 읽고 운동을 할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것들을 하기 위해 다른 에너지를 덜 쓴다. 내가 정한 루틴들을 지키기위해, 하지않아도 될 감정소모나 에너지소모를 피하는 편이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나를 돌보며 살아야하니까 나의 루틴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직장인으로, 엄마로, 딸로- 내가 해야할 것들은 꽤 많지만 내가 나를 위해 꼭 지키는 것은 세가지 정도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잠시라도 했다는 위안을 주는 매일 책읽기,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운동, 잠들기 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필사. 사실 이런 것을 빼먹어도 큰일 나지는 않지만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내 자신은 안다. “아, 내가 오늘 나를 위해 살지 못했구나.”하고. 

 

조금 더 젊었던 시절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했다는 위안을 주는 독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탓인지, 하루를 잘 닫는 것이 더 큰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배워간다. 그래서 온 가족이 잠들고 혼자 앉은 식탁, 한글자 한글자 필사를 하며 “오늘도 잘 보냈다”라는 마음을 꼭 담아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간에 가장 적합한 필사책은 마음시선의 것들이다. 최근에는 『고전명문장 필사100』을 쓰고 있는데, 분량도 적당하고 주제도 명확해서 하루를 정리하기에 참 좋다. 너무 많은 분량은 하루의 마무리에 피곤함을 더해주고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게 되는데, 마음시선의 『고전명문장 필사100』은 집중해서 몇 분 쓰고, 또 생각할거리를 주는 문장들이 모여있어서 필사자체에도 큰 의미를 준다. 마음시선에서 출간되는 여러 필사책들은 주제가 꽤나 명확하기 때문에,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이나 바라는 것 등에 따라 골라 쓸 수 있어 좋다. 또 책 자체가 실제본이라 쫙 펼쳐지기 때문에 글씨를 잘 못쓰는 사람도, 오랫동안 손글씨를 쓰지 않은 사람도 정갈하게 필사할 수 있음도 큰 장점. 

 

학창시절에는 왜 선생님들이 빡빡이를 시키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보니, 손으로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손으로 한번, 눈으로 한번 읽고 쓰는 것이엇으며, 마음에도 꾹꾹 눌러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그렇게 집중하는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며, 다른 상념들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더라. 그래서 나는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 남에게만 좋은 사람이라서 스스로를 다독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꼭 필사를 하시면 좋겠다. 하루 5분에서 10분이라도 스스로를 돌볼 수 있길 바라며 말이다. 

 

오늘, 『고전명문장 필사100』를 통해 데미안을 썼다. 나의 존재에 대해 한참 고민하던 즈음, 문득 데미안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속삭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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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자라는 방 : 제10회 CJ도너스캠프 꿈키움 문예공모 작품집
강다윤 외 139명 지음, CJ나눔재단 엮음 / 샘터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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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어린이날에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물론 우리 아이들에게도 너무 좋을 책이지만, 어른들도 아이들의 글과 그림을 보며-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의 작품이 없더라도 샘터와 CJ도너스캠프의 문예공모 작품집인 『꿈이 자라는 방』을 읽다보면 또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예상할 수 있어, 우리 아이의 마음이 더 잘 보고 싶어진다.

 

무려 139명의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책, 『꿈이 자라는 방』을 소개한다. 

 

『꿈이 자라는 방』은 설립 20주년의 CJ나눔재단의 나눔 플랫폼이자 대표 브랜드인 CJ도너스캠프의 문예공모 수상작을 담은 책들이다. 이 문예공모는 지역아동센터 등을 기반으로 한 응모작들로, 많은 아이들이 다양한 창작활동을 통해 꿈과 재능을 이어나가도록 지원하기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작품들. 더욱이 이 문예공모전이 올해로 10회를 맞았기에, 이러한 공모전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담아 더 응원하게 된다.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이 담긴 『꿈이 자라는 방』을 읽다보면, 세상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진다. 뉴스를 보며 느끼는 답답함이 씻겨나가는 기분이랄까. 이토록 맑은 아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깨끗한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이 더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꿈이 자라는 방』에 담긴 수많은 글 중, 나의 마음을 가장 깊이 사로잡은 것은 신일고등학교에 다니는 장우진 학생의 글이었다.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로 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 우진이의 이야기에 온통 시선이 갔다. 어떻게 겨우 고등학생아이가 이렇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고, 아이에게도 보이는 세상의 안타까운 단면이 어른들에게는 왜 보이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 “잘 죽기 위해선 잘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라는 우진이의 말이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아직 『꿈이 자라는 방』을 읽고 있는 중인데, 여러 아이들의 작품이나 글이 무척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본인도 글쓰기를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인데, 이 책을 보며 다양한 표현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게 된다고.

 

어느새 몇 년 째 『꿈이 자라는 방』을 읽고 있다. 아이들의 작품수상집을 왜 읽나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꿈이 자라는 방』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기도 하고, 우리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날, 『꿈이 자라는 방』을 많은 어른들께 추천드리고 싶다. 아이들의 마음이 이렇다고,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이다. 

 

다시 어린이날. 1923년 어린이의 인격을 지키고 잘못된 착취를 막고자하는 마음으로 방정환 선생님께서 지정하신 날. 하지만 어느새 세상은 그 이념을 잃어가고 그저 선물사주는 날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오늘이라도 부디, 그 마음을 다시 살리고 아이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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