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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의 작은 냄비 ㅣ 신나는 새싹 2
이자벨 카리에 글.그림, 권지현 옮김 / 씨드북(주) / 2014년 7월
평점 :

아이와, 책을 읽을 때, 글씨를 가려두고 그림 먼저 읽는 편입니다. 까막눈일 때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는데, 글씨를 배운 후부터는 아무래도 그림을 충분히 감상하지 못하는 듯하여 포스트잇으로 가린 후 읽고 있죠. 어떤 책은 글씨를 읽으나 읽지 않으나 감상이 같고, 어떤 책은 그림만 읽을 때와 내용을 함께 읽을 때 감상이 다르게 느껴지곤 하는데, 『아나톨의 작은 냄비』는 온전히 후자인 책입니다. 일러스트를 감상할 때엔 그저 귀여운 장난꾸러기라는 느낌이었다면, 내용을 함께 읽을 때는 마음이 먹먹하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여 조금 눈물이 났습니다.
물론 어른의 마음으로 바라보기에 『아나톨의 작은 냄비』 속 냄비가 더 가슴이 아픈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도 냄비를 대신 들어주고 싶은 것을 보면 아이에게도 비슷한 감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나톨의 작은 냄비』의 일러스트를 먼저 살펴보자면, 작고 귀여운 녀석이 등장합니다. 단조롭게 선으로 그려진 그림에 세 가지 색만 사용된 단조로운 색상이지만, 다채로운 표정과 익살스러운 동작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뛰어납니다. 일상 속에서 늘 냄비를 끌고 다니는 꼬마를 살피다 보면 웃음이 납니다. 우리 아이는 일러스트를 감상한 후 “냄비를 처음 보고 어디에 사용하는 물건인지 몰라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라며 여러 상상을 펼쳤습니다. 아이가 일러스트에 위로 얹어준 새로운 이야기도 무척이나 재미있었답니다.
그러나 『아나톨의 작은 냄비』의 진짜 매력은 텍스트를 읽을 때 드러납니다. 아나톨이 가지고 다니고 싶지 않지만 떨어지지 않는 냄비, 아나톨이 가진 많은 장점을 '이상'하거나 '무서운' 아이로 보게 만드는 선입견을 주는 냄비. 아이는 무겁고 힘겨워 보인다며 냄비를 들어주고 싶다고 했고, 저는 “장애”를 의미한다는 느낌이 들어 코가 시큰해졌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서로의 감상을 주고받은 뒤 아이가 한 말은 “장애가 있는 친구를 만나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냄비를 들어줄래요”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와 그림책을 읽어온 시간들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던 소중한 것들을 아이가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다양한 냄비를 만나고 삽니다. 어떤 냄비에는 진짜 음식이 담기기도 하고, 작가님의 말씀처럼 훨씬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들어있기도 하죠. 그러나 우리는 겉모습만을 볼 뿐,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가진 냄비가 더 버겁고, 힘겨울지도 모릅니다. 나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아이가 그런 눈을 가지지 않도록 잘 키워야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글씨를 가렸던 포스트잇을 떼어내 『아나톨의 작은 냄비』 속 냄비를 가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저 걷고, 넘어지고, 장난을 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사랑이 많고 상냥하며,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잘하는 게 많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아나톨에게서도 냄비를 지우면 그저 사랑스럽고 잘하는 것이 많은 아이가 되겠지요?
아나톨에게 작은 가방을 만들어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평범한 사람'이 되고, 아나톨의 냄비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되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