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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랭면
김지안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7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지금까지의 여름 중에 제일 덮은 것 같아”라고 말을 했더니 옆에 있던 딸도 말한다.
“나도 내 평생에서 제일 덮은 것 같아.” 코딱지만 한 게 평생이라고 말하는 게 너무 웃겨 그게 뭔지나 아느냐고 물었더니 “응, 나는 7년. 『호랭면』에서 나오잖아” 하더라.
그 순간 딸과 나는 평생 논쟁도 잊고 동시에 “아~ 『호랭면』 먹고 싶다!”를 외쳤다.
그래, 이렇게 더운 여름에 『호랭면』 만한 게 어디 있으려나! 이번 여름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자자, 이 무더위를 이길 『호랭면』 같이 먹으러 갈 사람~ 그림책 열차에 탑승하시오오~
이 『호랭면』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 멀리 구범폭포(다 읽고 보니 이름부터 구범이다)에 절대로 녹지 않는 괴이하고 신비로운 얼음을 듬뿍 넣은 호랑이 표 국수로, 자칫하면 호랑이한테 물려갈지도 모르는 등골도 오싹할 만큼 시원한 국수라고! 뭐 물론 이 도령, 박 도령, 김 낭자는 원래는 그 녹지 않는 얼음을 찾으러 간 거지만, 이 『호랭면』에 풍덩 빠져 마을 잔치까지 열었을 정도!
세 꼬마 녀석들이 『호랭면』이 맛있어서 잔치를 열었다면, 우리는 『호랭면』이 재미있어서 잔치를 열고 싶다. 먼저 일러스트! 우리 전래동화 느낌이 폴폴 풍기는 배경과 익살 가득한 만화에의 조합이랄까! 어떤 페이지는 만화책처럼 칸이 나뉘기도 하고, 어떤 페이지에는 배경까지 꽉꽉 채워 한국화 작품 하나를 감상하는 맛도 있다. 그 와중 짧고 굵은 아이들의 세 아이의 좌충우돌 모험기는 보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그뿐인가. 새끼호랑이와 어른 호랑이는 또 어찌나 귀여운지! 으르렁거리는데도 1도 무서운 느낌이 없어 우리 꼬마는 “호랑이가 고기 안 먹고 『호랭면』 먹어서 순해졌나 봐”라고 하기까지 하더라. 하지만 『호랭면』 일러스트의 진수는 따로 있다. 『호랭면』을 어찌나 군침 돌게 표현했는지, 그림책을 읽는데 배가 고파질 지경! 실제 우리 집은 『호랭면』을 처음 읽던 날, 점심으로 냉면을 먹어야 했다. (냉면은 『호랭면』보다 맛없게 생겼다고 구박을 받았다.)
일러스트만 재미있느냐, 당연히 아니다. 『호랭면』의 스토리는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 부디 『호랭면』은 큰 글씨와 더불어 깨알 같은 글씨까지 모두 읽어보시길! 메인 텍스트도 무척 재미있지만, 일러스트 사이사이 적힌 멘트들이 너무 재미있어 깔깔 웃었다. 온 동네 친구들을 모두 꿰어 얼음을 찾으러 갈 만큼 말솜씨가 좋은 김 낭자와 두 도령의 모험기가 어찌나 생생한지 같이 쫄깃한 마음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짧은 문장 호흡과 기호 덕분에 아이들의 몰입도는 한층 높고, 장난기 넘치는 '전래동화 말투'는 자꾸만 흉내 내고 싶은 매력 포인트!
일러스트도 내용도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호랭면』에 빠져 책을 읽고 나면 무더운 여름이 야속하기보다는, 더워서 느낄 수 있는 물이나 바람의 시원함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나란히 앉아 냉면을 먹으며 오늘이 추운 겨울이었다면 과연 이 냉면이 이렇게 맛있었을까- 생각했다. 또, 세 꼬마 녀석이 온 마을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나눈 것처럼, 우리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호랭면』은 세 아이의 모험담으로 신나고 즐거운 마음이 되기도 했고, 아이에게 사계절의 감사함을 알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 이 무더위를 불평하기보다는 제대로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호랭면』과 함께면 가능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은 『호랭면』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