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서 배우는 초등 필수 관용 표현 놀면서 배우는 시리즈
초등국어연구소 지음, 유희수 그림, 하유정 감수 / 카시오페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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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하루하루 다르게 언어 실력이 향상될 무렵부터 지금까지, 가장 반복해서 물었던 것들을 생각해보면 대부분 관용표현에 관한 것들인 것 같다. 물론 우리 아이는 단어, 속담이나 사자성어의 뜻을 많이 묻기도 하지만, '풀이'로 충족할 수 있는 것들보다는 왜 하필이면 심장이 철렁하는지, 왜 굳이 까맣게 잊어버리는지를 너무 궁금해했던 것. 그런 우리 아이의 취향을 저격하는 책을 찾았으니, 전국의 “왜때문에”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들이여, 주목하시라! 

 

아직도 '놀면서 배우는 초등 필수' 시리즈를 모르는 초딩맘은 많지 않겠지만, 좋은 것은 여러 번 강조할수록 더 좋은 법이니 한 번 더 소개하자면, '놀면서 배우는 초등 필수' 시리즈는 재미있는 만화형식으로 구성한 쉬운 설명을 통해 다양한 어휘를 익히게 돕는 책으로, 매일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캐릭터와 놀면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문항 체크로 이어지기 때문에 재미있게 내용을 이해하게 만드는 어휘필독서. 맞춤법에서부터 명심보감, 속담, 사자성어, 사자소학 등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지금 당장부터 팔순 노인이 되어서까지 써먹을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을 가르쳐준다. 

 

우리 집에서는 속담, 사자성어, 명심보감 등 다양한 영역을 재미있게 공부해왔는데, 아이가 가장 흥미를 보인 영역은 놀면서 배우는 초등 필수 관용표현』이었다. (사실 엄마가 봐도 만화를 어찌나 재미있게 표현했던지, 이게 공부라는 것도 까먹을 정도!) 재미있게 표현된 만화를 읽고 간단한 문제를 풀어보고 난 후에도 아이는 책을 덮는 대신 그 표현을 써먹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가령 오늘 “까맣게 잊어버리다”를 배웠으면, 굳이 “아이고, 밥 먹기 전에 손 씻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릴 뻔했네”라고 말하며 손을 씻으러 가는 것.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웃긴지 엄마는 깔깔 웃었지만, 아이는 직접 입 밖으로 내뱉어봄으로써 그 문장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셈이다. 

 

하루 10분가량으로 잘 분배된 놀배시리즈를, 엄마 욕심에 다양한 영역을 공부하다 보니 아이가 책상에 앉아있어야 하는 시간은 거의 한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한 번도 지겨워하는 일 없이 재미있게 정해진 분량을 공부했고, 알차게 써먹는 아이를 보며 진짜 잘 만들어진 책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분량도 페이지구성도 지겨움과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게 잘 구성되어 있었고, 내용 면에서도 일상생활과 교과서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어휘들이 담겨있어 좋았다. 그 외에도 아이가 스스로 학습하고, 자신의 학습을 평가할 수 있어 아이의 자존감도 계획성도 키울 수 있었던 점도 이 책의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개학을 했지만, 놀배시리즈를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한 덕분이 아닐까. 또 일상생활에서 숱하게 인용되고 활용하는 어휘다 보니 아이는 배우는 재미도, 써먹는 재미도 더욱 좋았기도 하고! 

 

놀면서 배우는 초등 필수』는 아마 한동안 계속 우리 집에서 꾸준히 활용될 것 같다. 재미있게 배워둔 것들은 잊어도 잊히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아이의 어휘력 통장에 놀배시리즈를 차곡차곡 저금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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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인공 지능 - 척척박사 오토봇이 들려주는 북극곰 궁금해 21
폴 비르 지음, 해리엇 러셀 그림, 조은영 옮김, 배준범 감수 / 북극곰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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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가 좋아하는 식당의 기준이 하나 있다. 바로 “로봇이 서빙을 하는 곳”. 

어린아이니까 로봇이 서빙을 하고 접시를 치워주니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거라 생각했더니, 두세 번 로봇의 서빙을 관찰한 아이가 대뜸 말한다. “센서가 있는 걸까? 아니면 거리를 입력하는 걸까?” 어머나. 내가 너를 너무 얕잡아보았구나! 그래, 너의 호기심이 사그라들기 전, 얼른 멋진 책을 대령해주어야겠다. 그러던 찰나 북극곰에서 너무나 멋진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발 빠르게 만나본 『척척박사 오토봇이 들려주는 로봇과 인공지능』! 정말 로봇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만나볼 수 있으니 어른도 아이도 모두 함께 이 책을 만나보자. 

 

정말 『척척박사 오토봇이 들려주는 로봇과 인공지능』은 로봇의 거의 모든 정보를 섬세히 담고 있다. 로봇의 정의와 특징, 최초의 로봇 등을 다룬 내용부터 로봇을 만드는 법, 로봇의 사고회로, 로봇이 할 수 있는 일, 로봇과 인간의 차이점, 로봇의 예체능, 미래의 로봇까지 무척이나 다양하게 다루고 있기에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 그렇다고 어려울 거라 겁먹지는 말 것. 논픽션그림책의 이점을 살려 상세하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 자세한 사진 자료 등으로 재미는 재미대로 잡았으니까!

 

다소 복잡할 수 있는 내용을 다채로운 일러스트와 사진 등으로 설명해주니 아이들도 재미있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또 분량을 세분화하여 단락을 나누어 읽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우리 집에서는 하루 두 세 가지 챕터로 나누어 책을 읽다보니 2주가량이 걸렸는데, 같은 책을 길게 보는데도 전혀 지겹지 않았던 것은 다채로운 내용과 다양한 실험이 있었기 때문. 우리 아이가 가장 즐거워한 부분 역시 책의 중간에 등장하는 '실험마당'이었는데, 준비물도 많지 않고 실험과정도 어렵지 않아 아이들과 신나는 책놀이가 가능하다. 

 

『척척박사 오토봇이 들려주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읽으며 특히 좋다고 느낀 것은 아이들의 생각을 꽤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 사실 출간된 많은 로봇 책에서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느라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부분이 다소 미약하다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 이 책에서는 사람과 로봇이 어떻게 다른지, 어떤 동물을 닮았는지, 사람도 로봇처럼 프로그래밍이 되는지 등에 대해 직접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 북극곰에서 도서와 함께 제공하는 독후활동지를 통해 로봇의 3원칙을 배우고 나만의 3원칙을 생각해보기도 하며 사람과 로봇이 더불어 살아갈 시대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고 대비할 수 있게 돕는 점도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보다 많은 로봇이 이미 우리의 삶에 녹아 들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다못해 음악도 로봇이 틀어주지 않는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욱 그럴 것이기에 이 책은 '추천도서'라기보다 '필독서'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들의 꼬마과학자, 미래의 로봇전문가들에게 재미있고 풍성한 지식이 가득한 『척척박사 오토봇이 들려주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아. 우리 아이가 정한 로봇의 3원칙.

1.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2. 누군가를 돕는 일만 한다.

3. 위의 약속을 어기면 스스로 전원이 차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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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기억의 도시 -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공간과 장소 그리고 삶
이용민 지음 / 샘터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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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라인 공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곳에 올라가서 한 번이라도 걸어본 사람은 이 공원의 가치를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된다. 버려진 산업 시대의 유산이 민주적인 시민운동 덕분에 공중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한 역사적인 사건. 공중에서 파노라마로 바라보는 맨해튼의 뷰. 첼시 지역의 도시 재생 등. 모두 폐철로를 공원으로 바꾼 결정이 만든 도시의 새로운 풍경이다. 현대도시에 사는 우리는 과거의 유산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p.148) 

 

 

뉴욕. 당신에게는 어떤 이미지의 도시인가. 아마 대부분은 번쩍이는 불빛과 트랜디한 뉴요커들을 떠올릴 것이다. “잠들지 않는 도시”라는 별명답게 세계적인 대도시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트랜디한 도시, 패션과 연구, 기술,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도시. 그래서 사실은 『뉴욕, 기억의 도시』를 만났을 때 아차 싶었다. 그래, 반짝이는 도시 뉴욕도 분명 도시를 형성하던 시점이 있을 것이고, 그것들이 지나온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인데 왜 그 반짝이는 건물들이 당연히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을까. 

 

 『뉴욕, 기억의 도시』는 이용민 건축가가 뉴욕의 건축물과 그에 담긴 이야기들을 꽤 깊이 있는 서사로 이끌어가는 책이다. 과거 뉴욕을 대표하던 건축물부터 초고층 빌딩까지를 망라하다 보니 그 어떤 도서보다 뉴욕을 샅샅이 살피는 기분이기도 했고, 건물들이 지나온 시간과 함께 한 역사 등을 함께 만나며 마치 뉴욕을 시간 여행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건축가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건물이 지니는 의미와 건축학적 발전 등을 만날 수 있기도 하고, 뉴욕의 건축물들을 배경으로 변화해온 뉴요커의 삶도 함께 만나볼 수 있어 꽤 의미 있는 독서였다. 

 

이용민 건축가는 『뉴욕, 기억의 도시』를 낭만과 자유, 사랑과 예술, 공간으로서의 의미 등으로 나누어두었는데, 이 구분이 너무나도 뉴욕을 잘 나타내는 것 같아서 책을 읽기도 전부터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 책을 읽으며 뉴욕의 발생, 뉴욕의 보편적인 건물, 초고층 빌딩에서는 단순히 건축물의 의의나 아름다움뿐 아니라 뉴욕의 역사를 통으로 이어가는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장, 사랑과 예술은 뉴욕에서' 편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특히 하이라인공원에 대한 글이 꽤 인상 깊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건물의 수명이 꽤 짧은 편이기에, 이 글을 읽으며 우리나라도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을보다 소중히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사람이 건축물을 짓지만, 그 건축물에 따라 사람의 생활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간과할 뿐. 그래서 이 책은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물론 땅이 좁아서라지만,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온통 아파트만 보이는 우리나라의 모습에서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과 문화, 의미와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도시의 건축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어떻게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지에 대해 다양한 방향의 생각을 해보며 부디 우리의 삶도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더 살만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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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다 - 인생의 무게를 반으로 줄이는 마음 수업
김정호 지음 / 달콤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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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매 순간 휘청이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흔들림이 결국 우리를 더 성숙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흔들릴 줄 아는 사람은 결코 부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의 바람에 유연하게 흔들릴 수 있기를, 흔들리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지혜와 함께 걷기를, 온 마음을 다해 기원한다. (p.262) 

 

 

요즘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좌절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 계속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담은 말일 것이다. 나 역시 아이에게 자주 말해준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잘못해도 괜찮다고. 힘을 내서 다시 하면 된다고, 힘이 나지 않으면 좀 쉬어가도 된다고. 사실 나는 한차례 넘어지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인생은 장거리달리기이기에 조금 쉬어가도 괜찮고, 멈추어도 괜찮음을 이제야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종종 조바심을 내고 불안해하기도 하는데 이런 나의 마음에 약처럼 닿은 책이 하나 있어 소개하고 싶다. 지난 일주일 내내 붙잡고 몇 번이나 반복하여 읽은 책, 『흔들릴 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다』. 

 

『흔들릴 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다』라는 「긍정심리학」의 저자인 김정호 교수의 신간으로, 심리학을 깊이 있게 다루기도 하지만 나보다 앞서 산 인생 선배의 경험과 위로가 담기기도 했기에 책을 읽는 내내 가득히 위로받는 기분이었달까. 

 

'오늘의 당신은 어제보다 지혜롭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은 '나를 미워하면 온 세상이 적이 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 애쓰지 않는다', '흔들릴 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다', '흐르는 대로 가볍게 산다.' 등의 주제로 나의 마음을 돌보고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물론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나의 현실을 내가 정확하게 들여다본다면, 내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자 노력한다면 분명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인생에 부는 바람을 막는 법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바람을 맞고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도록, 바람에 흔들려도 부러지지는 않도록 손을 내밀어준다. 그런데 그 손이 타인이 아니다. 즉 내가 나에게 손 내밀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다독이고 돌보는 이야기가 가득한 것. 이 점에서 이 책이 더욱 크게 닿았다. 내 마음이 천국일 때는 그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리 성가시지 않지만, 내 마음이 지옥일 때는 칭찬도 달갑지 않지 않나. 결국, 그 모든 것은 내게 있음을, 나만 나를 믿는다면 일어설 수 있음을 마음에 단단히 새기는 기분이었다. 또 흔들리고 아파하는 내가 당연함을, 그래서 흔들릴 땐 실컷 흔들려도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잘 돌보자는 마음을 먹기도 했고.

 

어떤 책은 읽으며 마음에 담을 문장을 한 줄도 만나지 못할 때도 있고, 어떤 책은 너무 많은 문장을 필사하며 “이러다 책 한 권 다 베껴쓰겄네”하며 껄껄 웃는 날도 있다. 이 책은 후자다. 한 줄 한 줄 잊고 싶지 않은 문장이 너무 많아 손이 아플 정도로 옮겨적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안녕한지, 부러지지 않으려 다시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기도 했다. 

 

만약 이 책이 “너도 나처럼 힘내! 너도 당연히 힘내야지”하는 책이었다면 이렇게 깊이 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충분히 흔들리라고, 하지만 흔들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나갈 수 있다면 그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인정과 위로를 동시에 주는 책이었다. 

 

부디 당신들도 버티며 멈추지 않기를, 충분히 흔들리고 또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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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위로 - 카페, 계절과 삶의 리듬
정인한 지음 / 포르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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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사실 별일 없었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도 비슷하지 싶다. 아마도 별일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한다. 나는 특별한 경험을 기다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다만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하루에 한 장 정도 따뜻한 이미지가 있으면 한다. 어떤 섬에 가지 않아도, 화려한 호텔에 가지 않아도, 빛이 드리워진 근사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딱 하루에 한 장의 이미지만 마음속에 남았으면 한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 작고 짧은 승리가 아닐까. 각자의 소박한 필승을 바라며 욕심을 지운다. (p.128) 

 

 

가족들보다 조금 일찍 아침을 시작하는 나의 '필수동반자'가 있다. 눈치챘겠지만 그것은 당연히 커피다. 짙게 내린 에스프레소를 곁들여 책을 읽다 보면 밥솥이 칙칙 김을 뿜는다. 보통은 3잔, 커피는 나의 순간순간을 함께 한다. 돌아보면 내가 부지런히 살아온 시간, 또 즐겁거나 슬펐던 순간에도 커피는 늘 존재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포르체의 신간 『커피의 위로』는 제목부터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 나의 순간순간 위로가 되었던 커피가 그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했다. 

 

카페를 운영하여 커피를 내리고 글을 쓴다는 정인한 작가의 『커피의 위로』는 커피라는 주제 덕분인지 그의 문장력 때문인지 술술 읽히는 책이다. 사실 책의 머리에 커피의 종류가 언급되어 있고, 로스팅, 분쇄, 추출, 드립 등으로 단락을 나눠두셔서 커피에 대한 전문지식을 이야기하는 책인가 생각하기도 했으나, 보다 대중적이고 편안한 문체로 이어지는 에세이여서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다. 어떤 이야기에는 삶의 자세가 담겨있고, 어떤 이야기에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담겨있다. 또 때때로는 커피나 글 등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계절이 변하는 것을 커피에 녹여낸 점. 대부분 사람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하루를 살아가지만, '태어난 김에 사는' 느낌이 아니라 '담담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라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성실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 꿈꾸지만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커피 내리고 글 올려요'라는 제목의 글을 읽을 때는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앞으로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면 그것이 마치 커피와 같았으면 한다. 중력의 힘으로 내려오는 것이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는 것이었으면 한다(p.185).”는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 역시 긴 세월 글 쓰는 사람을 꿈꾸었고, 무엇이든 매일 쓰는 삶을 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가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너무 많은 콘텐츠, 너무 많은 '스스로 작가'들이 쓴 문장들을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처럼, 누군가에게 나의 문장도 이렇게 느껴질까 봐 두려워지기도 하고, 스스로의 만족에서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던 것. 그런데 오늘 그의 글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달까. 과연 나는 맛있는 문장을 쓰기 위해 뜨거운 것을 인내하는 시간을 보냈나, 생각해보며 그의 문장을 천천히 음미했다. 

 

문득 한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신입사원이던 시절, 선배 한 분이 종종 커피믹스를 내밀었다. 내가 한숨을 쉬어도, 내가 울어도 그저 후후- 뜨거운 커피를 식혔다. 커피 두 잔을 들고 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어 주던 선배님. 사실 나는 설탕조차 넣지 않은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사람인데 그때 선배가 주던 커피믹스는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었다. 이제 세상에 없는 선배의 커피믹스가 문득 그립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였던 순간이 있을까. 작가님의 말처럼, 특별한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누군가에게 커피 한잔만큼의 위로- 커피만큼의 온기만 되어도 우리의 삶은 퍽 괜찮지 않을까. 오늘 작가님의 글은, 잊고 살던 선배의 감사함을- 지나온 시간들을- 그래도 단단히 사는 나의 오늘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충분한 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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