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물 줄줄 티라뇽 씨 - 2023 볼로냐 라가치상 어메이징 북쉘프 선정 도서
퉁옌 지음, 류페이페이.창보원 그림, 류희정 옮김 / 현암주니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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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콧물 줄줄 티라뇽 씨』를 읽고 있다고 인별그램 스토리에 올리자마자 표지만 봐도 너무 재미있다며 “믿고 보는 마곰이네 그림책, 당장 리뷰를 내놓아라”라는 친구들의 성화가 빗발쳤다. 훗, 다들 재미있는 건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니까. 일러스트부터 스토리까지, 우리 꼬마가 별 다섯 개가 부족하다고 특별점수도 줘야 한다고 말한 『콧물 줄줄 티라뇽 씨』를 소개한다. 

 

『콧물 줄줄 티라뇽 씨』는 대만 신의 아동문학상 그림책 창작부문 대상, 어메이징 북쉘프 선정도서, 20203년 볼로냐 라가치상 등 이미 세계적으로 굵직한 '메달'을 수여한 그림책! 하지만 『콧물 줄줄 티라뇽 씨』이 수여한 메달은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의 티라뇽 씨는 황금 헬멧 상, 황금 수도꼭지상, 황금 소방관상 등 수많은 상을 받은 '능력자'란 말씀! 처음엔 우리 티라뇽 씨는 불 쪽으로 유명했지만, '불의의 감기'로 인해 볼 대신 콧물이 줄줄 나오게 되고, 더이상 불 뿜는 역할을 할 수 없어 좌절하고 만다. 침울한 시간을 보내던 티라뇽 씨는 우연한 기회에 콧물을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새로운 직업까지 얻게 된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너무 귀여운 『콧물 줄줄 티라뇽 씨』가 아이들에게는 더욱 친숙하고 귀여울 터. 더구나 공룡, 콧물이라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더러운 소재'다 보니 그 자체로 웃음 포인트! (실제 우리 아이는 '방귀 뿡뿡 티라뇽 씨' 등의 속편(?)을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티라뇽 씨 직업을 풍력발전가로 바꾼다나 뭐라나) 일러스트는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일단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티라뇽은 콧물을 줄줄 흘린다. 아니, 공룡 중에 제일 강력한 라인이 티라노 아니었나? 어설퍼서 더 웃긴 우리의 티라뇽이다. 그뿐인가 비둘기가 밀크티도 마시고 생쥐는 모던룩으로 멋을 냈다. 티라뇽을 관찰하는 재미도, 깨알같이 등장하는 여러 동물들도 가득하다. 심지어 속지까지 재미있으니 어느 한 페이지도 놓치지 말고 천천히 일러스트를 감상할 것! 휘리릭 읽어버리기엔 『콧물 줄줄 티라뇽 씨』는 깨알 같은 재미가 너무 많다. 

 

근데 만약 재미있고 끝나기만 했다면 이 정도 사랑받는 그림책이 되지는 못했을 거다. 재미있는 그림책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콧물 줄줄 티라뇽 씨』는 재미에 감동도 더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넘어지는 날도 당연히 있고, 장단점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날도 있다. 우리 아이들도 하루하루 성장하며 그런 순간을 여러 번 겪게 될 터. 그럴 때 좌절하고 주저앉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다른 용기를 꺼내쓸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그게 더 멋진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티라뇽이 소곤소곤 가르쳐준다. 그저 재미있게 『콧물 줄줄 티라뇽 씨』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우리 집 꼬마도 『콧물 줄줄 티라뇽 씨』를 읽는 내내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하며 심취하더니 “엄마, 나도 잘하는 게 한두 개는 있겠지?”라며 씩 웃더라. 우리 집 꼬마도, 다른 모든 아이도 저마다 반짝이는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이의 다양한 장점을 말해주는 대신 “그럼! 한 세 개쯤은 있을걸!”하고 같이 웃어주었다. 

 




『콧물 줄줄 티라뇽 씨』를 알차게 즐기는 세 가지 포인트!

1. 여기저기 등장하는 동물들을 찾아보기. (티라뇽 씨 콧물도 몇 방울인지 세려 보기)

2. 티라뇽 씨처럼 마음 같지 않아서 슬펐던 일, 생각보다 잘 풀려서 기뻤던 일 이야기해보기

3. 방귀 뿡뿡이나 똥 뿌지직 등 기발한 상상력으로 티라뇽 씨의 직업을 또! 바꿔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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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 두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초등 온라인 글쓰기의 기적
오수민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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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원하는 만큼 시간을 주세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도 아이는 끙끙거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 멋진 글을 쓰는 날도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때 아이는 한 단계 성장합니다. 딴짓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아이디어가 잘 안 떠올라 그러는 것일 수 있으므로 아이와 대화를 나눠보세요.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 쓸거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p.124) 

 

 

입학하고 맞은 첫 방학, 숙제는 일기 쓰기 뿐이었다. 우리 때처럼 '탐구생활'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가 김이 빠졌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정말 신나게 놀아보자! 며 방학 내내 열심히 놀았다. 흡족하게 논 날에는 일기를 쓰자며 자유롭게 두었더니, 개학 후 되찾아온 일기장에는 '물결'이 가득했다. 촌스럽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찾다가 물결만 가득한 일기장에 “설마, 맞춤법을 검사하신 건가?”하고 놀랐다가 이내 감동하고 말았다. '감정'을 적은 부분들에 물결표시를 해주셨던 것. 자신이 일기를 잘 쓰지 못해 일기장에 파도가 치는 줄 알았던지 “멋진 일기”에 표시해주신 거라고 말해주었더니 아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의 일기를 다시 읽으며(훔쳐보며) 우리 아이가 이렇게 멋진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감격스러웠다. 

 

혹자는 나에게 똑똑한 아이를 왜 그렇게 놀게만 하냐고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뭔가 강요하여 가르칠 생각이 없다. 그냥 역사와 문학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그래서 어린이집 시절부터 역사를 이야기처럼 들려줬고, 한글도 제대로 못쓰던 때부터 그림일기를 그리게 했다. 낙서에 가까운 그림이지만, 그것을 설명하며 아이는 이야기꾼이 되어갔다. 그리고 초등학생이 된 지금, 이제는 좀 제대로 글을 써보자,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는 것은 살아가며 힘들 때마다 꽤 힘이 되곤 하더라. 그래서 아이도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는 나같은 마음을 가진 부모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된다. 아이들이 직접 말하는 글쓰기의 두려움과 즐거움, 글쓰기의 동기부여, 글을 쓰는 즐거움, 글쓰기로 마음 다잡기, 글쓰기로 소통하기 등 '요즘 아이들'에 맞추어진 글쓰기 교육을 망라하기 때문. 

 

나 역시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를 읽으며 우리 아이에게 어떤 방향으로 글쓰기를 알게 해주어야 할지 생각해보기도 하고, 기준을 잡기도 했다. 마음 한편으로는 '내 아이 글쓰기 교육은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도 다소 막연하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를 읽으면서 놓치고 있던 부분을 확인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다양한 팁을 얻기도 했다. 

 

아이의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님들께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를 추천하는 이유는, 먼저 아이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볼 수 있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데 강요하면 독이 된다. 글쓰기를 독으로 만들기 전에 아이의 글쓰기 성향,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확인해볼 수 있어 방향을 잡기 좋았다. 

 

두 번째로 군데군데 삽입된 '알쏭달쏭 상담소'를 통해 여러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아이의 글을 교정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글은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던 의문이었기에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마음에 내용을 새겼다. 세번째로 무척 섬세한 글쓰기 강좌를 제공하는 점이 좋았다. 사실 나는 평생 뭔가를 써온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쓰는 것'과 '쓰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 책을 통해 더욱 체계적인 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또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에는 온라인글쓰기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요즘 아이들의 성향, 챗GPT기반글쓰기 등 변하는 세상에 맞춘 실질적 교육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정작 날마다 글을 쓰고, 글을 배울 수 있던 학창시절에는 몰랐지만, 내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무척 감사한 일이다. 마음이 아플 때 하다못해 일기장에라도 감정을 퍼낼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를 기반으로 우리 아이에게도 글쓰기라는 친구를 쥐여주어야지. 두려움이 아닌 즐거움으로 글을 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책, 『아이들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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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야, 반가워! 북극곰 궁금해 22
필립 번팅 지음, 황유진 옮김 / 북극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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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데 고학년 학생들이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아직 캠페인에 대한 경험이 많지도 않고, 학교폭력에 대한 개념도 분명하지 않은 저학년인 우리 아이는 언니·오빠들의 적극적인 모습에 깜짝 놀라 쭈뼛쭈뼛 교문에 들어섰는데, 집에 오자마자 종알종알 말이 많다. “엄마, 아침에 언니들 기억나? 그거 언니들이 직접 만든 팀이래. 그 들고 있던 종이고 직접 만들었고, 율동도 직접 만들었데!” 사실 깜짝 놀랐다. 당연히 선생님이 주축이 된 캠페인이라 생각했기 때문. 문득, 이런 아이들이 있어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옳지! 이때다. “언니들 모습이 네가 얼마 전에 물어본 민주주의야!”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은 있지만,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것 같아 답답했는데 마침 북극곰에서 『민주주의야, 반가워!』들 줄간한 것. 이렇게 궁금해할 때 들이밀어야 아이 머리에 쏙쏙 들어가지! 

 

그런데 사실 『민주주의야, 반가워!』는 아이가 궁금할 때가 아니라도,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큼 풍부한 내용과 다채로운 일러스트를 가진 책이었다. 민주주의를 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이런 표현으로 민주주의를 설명할 수 있구나, 하고 깜짝 놀랐다. 사실 어른들도 민주주의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막연한 지식 아니었나. 『민주주의야, 반가워!』는 민주주의 개념, 역사, 성장 방향, 혜택 등에 대해서 자세히 다룰 뿐 아니라 정부의 역할, 선거, 시민운동까지 다루고 있다. 아이들에게 꽤 묵직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어려운 느낌이 아니라, 쉽고 간결한 언어 덕분에 아이들은 여러 방향으로 생각의 물꼬를 틀 수 있다. 

 

특히 시민운동에 대해 다룬 부분은 어른이 읽기에도 무척 유익했다. 최근 '그레타 툰베리'에 관한 책을 읽었던 터라 아이는 더욱 관심을 보였다. 시위 팻말을 만드는 내용을 읽으며 “분리수거를 잘하자”를 만들어 아빠에게 1인시위를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보며 어릴 때부터 올바른 개념을 세워주면, 세상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 '효과적으로 말하기'의 내용은 아이들이 일상생활서도 활용 가능한 정보라서 더욱 유익했다.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는 법과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점에서, 작가님이 얼마나 고심하며 이 책을 만들었을지 상상이 되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내가 살아가는 사회의 주인공은 '나'임과 동시에 '너'”라는 것을 느끼며, 우리 아이가 자신의 권리와 타인의 권리를 잘 지킬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민주주의야, 반가워!』는 단순한 지식나열이 아닌 아이 생각의 물꼬를 트는 책이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아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생활 속 민주주의까지 생각해볼 수 있게 도왔다. 아이가 능동적으로 행동하고 세상의 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생각 자체를 키우는 책이었다. 부디 더 많은 초등학생에게 읽혀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진가를 발휘하는 세상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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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경성 -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
김인혜 지음 / 해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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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이야기는 『천일야화』처럼 끝이 없다. 1930~1940년대 경성을 누볐던, '곡마단' 같다는 비아냥거림을 듣던 천재 예술가들의 이야기, 이들의 얽히고설킨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생산물들. 그것은 지금의 우리 유전자에 어떻게든 기억되고 있는,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할 문화유산이다. 슬프고도 찬란한 유산. (p.24, 까치집 머리, 털북숭이 수염의 '이상'과 작은 키에 질질 끌리는 외투를 입는 '구본웅'의 기묘한 조화가 곡마단 행차에 비유됐다.) 

 

 

이 책은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다렸던 책이다. 비록 나는 그림이나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무지렁이지만, 그럼에도 '글'만큼 '예술'을(어쩌면 '예술사'를) '탐미'하는 나에게 한국의 천재들, 더욱이 '근대사'의 천재들 이야기, 「조선일보」 화제의 칼럼이었던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을 묶어놓은 이 책을 어떻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살롱 드 경성』은 빼앗긴 나라의 설움, 전쟁의 비극 속에서 더 아프고 불안했기에 더욱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을 예술가들의 무성영화 같은 삶을 담은 책이다. '화가와 시인의 우정' 편에서는 이상과 구본웅, 백석과 정현웅, 김기림과 이여성, 박수근과 박완서 등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고, '화가와 그의 아내' 편에서는 이중섭과 이남덕, 김환기와 김향안, 김기창과 박래현 등의 열렬한 응원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외에도 나혜석, 이쾌대, 이인성 등이 화가의 삶, 김병기, 변시지, 문신 등 예술가들의 고뇌를 엿보기도 한다. 이미 접해본 내용도 있었고 처음 만나는 내용도 있었으나, 그것과 관계없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새로이 배우고, 새로이 느끼고, 새로이 깨달았다.

 

저자는 타고난 이야기꾼임이 분명하다. 원래도 극적이었을 예술가들의 삶에 어찌나 멋진 제목을 붙여두었는지.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그 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내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한 제목은 “그럼에도 삶은 총체적으로 환희다”였다. 국가등록문화제인 '남향집'을 그린 오지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전혀 몰랐던 그의 삶에서 느끼는 바가 무척 많았다. “어둠 속에 직면해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 굳건한 정신세계를 지녔기에 빛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것(p.263)”이라는 말이 마음에 짙게 남는다. 어쩌면 우리는 훨씬 나은 환경에 살면서도 '못하는 이유'를 만들어대지 않나. 고난이 와도 삶은 총체적으로 환희라는 말을 읽는 내내 그동안의 나는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 할 이유만을 찾아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 삶이 어쨌든 총체적으로 환희가 될 수 있도록 더 부지런히 행복하리라 결심했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이 다른 시대나 환경에 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백 년을 앞선 생각을 살았던 이상이 지금 시대의 작가였더라면, 이중섭이 넉넉한 환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그저 상상일 뿐이니 이미 멈춰진 그들의 시계 앞에 안타까움이 들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넘어선 고통은 결국 후손들에게 눈부신 아름다움을 남겼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작품의 수, 성공의 여부를 떠나 그들이 시대에 남긴 것,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찬란하고 슬프고, 빛나고 아프다.

 

『살롱 드 경성』은 저자의 말처럼, “많은 작품을 남기지도 못했고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후세가 그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p.46)”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살롱 드 경성』을 읽는 내내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가 내내 머리에서 맴돌았다. 이 책을 통해 흑백으로 묻힐 뻔한 이야기의 먼지를 털어,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새로운 이야기를 피워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시절에는 여전히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인 먼지 안에 숨어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김인혜의 살롱 드 경성』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독자가 없이는 이야기가 완성되지 못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부디- 시대에 가려진 많은 예술가의 더 많은 이야기가 완성되기를. 그 어떤 전시보다- 그 어떤 작품보다 감동 가득한 '삶'이 담겨있는 『살롱 드 경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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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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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기 안에 갈매기 한 마리를 갖고 있어. 쉽고 편하게 살려는 성향 말이야. 자기 안의 그런 유혹과 늘 맞서 싸워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사람들은 대부분 군집을 이루어 살려고 하지만 자네는 달라야 해. (p.388)

 

자네도 이제 해답 없는 질문으로 힘들어하지 말고 해리를 놓아줘. 삶의 한 페이지를 넘겨야 할 때야. (p.58) 

 

 

요즘은 웬만한 뉴스가 소설보다 '거짓말 같은' 세상이라 조금 덜 읽기는 하지만, 나는 원래 범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마니아다. 살기가 바빠지며(!) 자연스럽게 소설 읽는 양을 줄이기는 했지만, 뼈대 굵은 범죄소설은 거의 다 읽는 편. 범죄기반의 소설에는 단순히 추리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 본능, 그럼에도 '인간애' 등을 모두 만나볼 수 있어 좋아하는 것이기에 '조엘 디케르'의 소설은 그야말로 취향 저격. 

 

만약 조엘 디케르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필독하셔라! 한층 깊어지고, 한층 치밀해진 그의 소설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될 테니. 아! 혹시나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포함하여 그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았더라도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 걱정 말고 일단 책을 펼치시길 추천해 드린다. 두 권으로 나누어진 장편소설이지만, 거짓말처럼 술술 읽히는 가독성 좋은 소설이니 말이다. 

 

아! 미리 처음부터 2권까지 대기시켜놓고 1권을 읽길. 어차피 모든 독자는 두 권을 연결해 읽어야만 할 것이다. 책을 펼칠 때는 자유의지로 펼칠 수 있지만, 흡입력이 너무 강해 덮는 것은 더는 남은 페이지가 없어야 가능할 테니 말이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을 읽는 재미 포인트를 짚어보자. 먼저 치밀한 탐문 수사와 날카로운 추리를 바탕으로 직접 마커스나 페리가 되어 사건에 풍덩 빠져보는 것. 범죄소설은 역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맛! 물론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실마리는 쉽게 찾기 어렵겠지만, 어려운 만큼 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각각의 인물의 심리를 쫓아보는 것. 개인적으로 범죄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인물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인데,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역시 각각의 인물이 나타내는 심리변화, 심리를 드러내는 행동 등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 두 가지 매력만으로도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가장 큰 매력은 긴박한 속도 조절에 있다고 본다. 현재와 10년 전 오가며 사건을 풀어가는데 심리적인 부분은 느리게, 사건은 빠르게 조절해가는 이야기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긴장감을 강화한다. 원래 롤러코스터도 빠르게 뚝 떨어질 때보다 서서히 올라갈 때 더 무섭지 않나. 소설에서 그런 긴박함과 화끈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의 마지막에서야 만나게 되는 진실은 정말이지 놀랍고, 예상 밖이며, 슬프고 처절하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까지 나를 저 위로 끌어올렸다가 뚝 떨어뜨리고, 다시 끌어올리기를 반복하며 스토리에 풍덩 빠지게 했다. 작가가 쓴 책을 몇 권 읽었지만, 감히 말하자면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은 조엘 디케르를 '더' 유명하게 만들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이 너무 재미있었기에 벌써 조엘 디케르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작가님, 빨리 집 사서 글을 써요! (아, 집을 사야 하는 작가는 마커스인가! 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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