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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인데 은퇴해도 되겠습니까? ㅣ 청귤 시리즈 1
트리누 란 지음, 마르야-리사 플라츠 그림, 서진석 옮김 / 북극곰 / 2024년 11월
평점 :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하늘로 떠난 사람을 눈으로 볼 수 없데요.
만약에 저세상 사람들이 이곳에 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리면 그건 정말 운이 좋은거래요. 할머니는 운이 좋았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요한을 안고 서로 마법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다음 날 손주들이 찾아왔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왔었다는 말은 안 했어요. 손주들이 할머니를 아주 사랑한다면 말 안해도 금방 알아볼 테니까요.
핑크색 표지, 어딘지 현실과 닮은 배나온 할아버지, 요한을 데리고 올 때 깜짝놀란 동네 아줌마 등의 익살스러움에서 『해골인데 은퇴해도 되겠습니까?』는 어쩌면 “웃라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북극곰의 그림책은 무척 다양하지만, 감동을 주는 찡라인과 웃음을 주는 웃라인이 분명한 친구들이 몇몇있다. 사실 대부분은 그 두개 다를 주는 편이지만) 하지만 맙소사! 『해골인데 은퇴해도 되겠습니까?』는 완전한 찡라인이었다. 심지어 찡을 넘어, 오래오래 생각을 멈출 수 없게 하더라.
사실 해골은 꽤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 않나. 아무래도 사람이 죽고, 시간이 한참 지나야 만날 수 있다보니 '죽음'의 결과물처럼 느껴진달까? 하지만 『해골인데 은퇴해도 되겠습니까?』를 만나고나면,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다정한 이웃같은 생각이 든다. 또 언젠가 우리도 죽어, 해골이 된다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 코코를 만났을 때처럼 『해골인데 은퇴해도 되겠습니까?』역시 “결국 이들도 우리곁에 있던 가족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그림책이다. 죽음에 대해, 이별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지금 이순간이 더 소중해지는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실에 살던 오래된 해골은 이미 낡고 여기저기 성하지 않은 곳이 많다. 선생님은 해골이 안쓰러웠고, 그런 해골을 보내줄 곳을 고민하다 할아버지께 연락을 드리고, 할아버지는 낡은 자동차를 타고, 낡은 해골을 데리고 와 “요한”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할머니는 처음 요한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이내 요한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고양이와 개도 요한을 가족으로 생각한다. 요한은 언제나 가족과 함께 한다. 그들이 슬플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위험에 처했을 때에도- 온전히 함께 하고 온 마음을 나누며 살아간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혼자가 되었을 때- 온 마음을 다해 할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할머니를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요한이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나, 할머니가 죽고 할아버지와 요한이 나란히 앉아 참피나무 꽃잎차를 마시는 장면은 슬픔을 넘어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어느새 마흔, 삶과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잘 살아야 하는 하루에 대해 생각할 것이 많은데 『해골인데 은퇴해도 되겠습니까?』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조금 더 견고히 했다고 느껴진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착각이다. 우리가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는 행복은 눈 깜빡할 사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반대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 생각하는 슬픔이나 좌절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이겨낼 수 있다.
『해골인데 은퇴해도 되겠습니까?』는 그렇게 오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과거를 돌아보지도 말고 미래만을 탐하지도 말고,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한다. 그러면서도 어제의 내가 오늘을 만들었고, 오늘의 내가 더 값진 내일을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