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을 때까지 쓰지 않으려던…. 그런 돈이었습니다. 

죽은 아내의 보험금이었습니다. 

상윤은 가슴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30년이 지나도록 그 돈을 쓰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p.392) 



수많은 빌런이 등장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선한 얼굴의 탈을 쓴 진짜 빌런이고, 다른 누군가는 빌런이지만, 과연 빌런이라고 말해도 될지 고민이 든다. 『유괴의 날』은 그렇게 사건도 사건이지만, 인간 본성에 대해,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싶어진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과연 이런 소재가 스릴러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를 납치한 어설픈 유괴범. 기억을 잃어버린 천재 소녀. 사실 이것은 코미디의 소재에 더 가깝지 않나. 더욱이 ENA에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이 방영되는데 유괴범 역할이 윤계상임을 듣고, 묵직한 내용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유괴의 날』 초반부를 읽으면서는 코미디적 요소도 느껴지지 않아, 이 스토리가 '이 스토리로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여러 사건이 단단한 고리를 만들고, 그런 긴장감 속에서 느껴지는 여러 감정이 흥미를 더해갔다. 이야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사건도 사건이지만, 각 인물이 느낄 감정이나 사건의 경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직 드라마를 보지 못해 드라마의 전개는 어떻게 진행되나 알 수 없지만, 혹시 드라마도 책과 비슷한 속도로 전개되어 전반전(!)의 답답함을 느끼시는 분이 있다면, 조금만 참을 셔라. 후반전은 결코 당신을 지겨움 속에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니.) 

  

사실 대부분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귀신이 나오는 소설보다 사람의 잔혹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 무섭지 않나. 그런 측면에서 『유괴의 날』은 인간의 이기심이나 잔혹함이 더 소름 돋는 책이다. 잔인한 장면을 묘사한 페이지가 거의 없음에도 서늘함을 느껴질 만큼 각각의 인물들이 겪는 일들이 처절하고 슬프다. 이미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로 유명세를 탄 작품이기에, 모두의 즐거움을 위해 자세한 줄거리는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책으로 먼저 이 이야기를 만난 독자로써 『유괴의 날』은 “인간 심리에 집중할수록 더 잔혹하고 슬픈 미스터리”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다 읽은 후, ENA 수목드라마 『유괴의 날』 배역을 검색해보았다. 어리바리하지만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유괴범에 윤계상, 침착하게 사건을 끓어갈 상윤역에는 박상훈 배우가 캐스팅되었다고. 두 분 다 책을 통해 상상한 모습과 너무 비슷해 피식 웃음이 났다. 가장 궁금했던 배역인 서혜은은 박신록 배우! 이 라인업을 보는 순간 '캐스팅을 하신 분이 이 책을 완벽히 이해했구나, 드라마에도 각 캐릭터의 심리가 치밀히 표현되겠구나' 싶은 마음에 드라마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한국 스릴러에서 큰 두각을 드러내는 정혜연 작가님의 작품이기에 이미 많은 분이 읽고, 드라마로도 만나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아직 만나지 않으셨다면 꼭 한번 만나보시기를 추천해 드리고 싶다. 단순히 사건 자체보다 인간의 심리를 무척 잘 그려냈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가 무척 많다. 어쩌면 우리는 뉴스 등의 현실에서도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자신의 이기심을, 본연의 욕망을 실현하는 모습을 종종 보지 않나. 그래서 더 무섭고 섬뜩한, 『유괴의 날』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 수업
김영숙 지음 / 빅피시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싸움박질하는 아기천사」들에서 푸토들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패싸움을 하고 있다. 통통하고 작은 몸매의 아기들 싸움치곤 꽤 격렬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통 모를 판인데 자세히 보면 갈색 피부의 아가들이 일방적으로 이기고 있다. 

갈색 피부 아가들은 날개가 없지만, 흰 피부의 그들은 작고 앙증맞은 날개를 달고 있어 여러 가지 추측을 낳는다. 흰 피부의 날개 달린 아가들을 신성함의 세계, 종교적인 세계를 대변한다고 보고, 갈색 피부의 아가들을 세속의 세계로 읽는다면 영과 속의 투쟁으로 볼 수 있다. (p.129) 

 

 

언제인가 다른 리뷰에서, 나는 예술에 대해 여전히 무지렁이이지만 늘 예술(혹은 예술사)을 탐한다고 적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나도 그 그림이 유명하다니까, 역사에는 언제나 예술품 약탈이 등장하니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초반 홀리듯 책을 하나 샀는데 그 책은 내게 예술을 빼고 역사나 인간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 책이 뭐였냐고? 마로니에북스의 「루브르와 오르세 명화산책」이었다. 맞다. 바로 오늘 소개할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수업』의 저자, 김영숙 작가님의 책이었다. 「루브르와 오르세 명화산책」은 내게 명화의 숨겨진 세상을 열어준 책이었기에, 그 후에도 작가님의 책을 꽤 많이 찾아 읽었다. 이번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수업』 역시 「1페이지 미술 365」, 「미술관에서 읽는 서양 미술사」 등 처럼 쉽고 매력적인 명화도슨트를 경험하게 하는 책이다.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수업』은 일주일 동안 이탈리아 미술을 투어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책 자체를 하루 3~4개의 작품으로 분류해두었기에 그저 천천히 책을 따라가다 보면 작품을 세밀히 감상함은 물론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까지 만날 수 있다. 또 그 7일을 무척이나 매력적인 테마로 나누어두었기에 어떤 페이지는 도록처럼, 어떤 페이지는 역사서처럼 느껴져서 한층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만약 이탈리아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이 책은 이탈리아의 매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줄 것이고, 미술이란 세계에 이제 눈을 뜬 이에게는 매혹적인 세상을 열어줄 것이다. 

 

세기의 걸작, 새로운 시대를 여는 거장, 명작으로 만나는 신화와 종교, 르네상스, 메디치가의 컬렉션 등의 주제를 바탕으로, 하루 수업은 3~4개가량의 작품과 그 작품의 배경이나 작가의 성향 등을 만날 수 있어 마치 그곳들을 직접 방문하기라도 한 듯 생생한 감상이 가능하게 도왔다. 또 '더 깊은 교양' 코너를 통해 모르고 지나칠 뻔한 예술의 이야기, 그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사실 그림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림만 감상하라고 하면 그 매력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그림을 바탕으로 역사, 문화, 철학, 신화, 종교 등을 아우르는 이야기책을 통해 그림의 심미적 측면에서부터 다른 방면을 만나는 게 이해가 빠르다는 느낌이 든다. 어느 한 분야는 나와 통하는 뭔가가 있겠지, 하며. 

 

나에게 '교양 미술'이라는 영역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느끼게 해준 김영숙 작가님 덕분에 오늘도 나는 집에 앉아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당신이 미술에 대한 이론이 없어도 좋다.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수업』은 그런 당신에게도 충분히 매혹적인 미술을 선물할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물의 지도 -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강재영 외 지음 / 샘터사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감히 던질 건 던져야 새로운 것이 유입될 수 있으니,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방법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도전하라. (P.242 신상호 작가) 

 

 

올해도 청주에는 공예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2023청주공예비엔날레는 2023년 9월 1일부터 10월 1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생각해보면 몇번이나 공예비엔날레에 방문했던 것 같은데 어쩐일인지 이번엔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아직 가보지 못하여 아쉬운 마음으로 언론만 뒤적이던 찰나, 샘터사에서 『사물의 지도』라는 책을 출간하셨다. 이는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제기도 한데, 공예의 사회적 책무나 가야할 방향, 문명 속에서 공예가 이어온 것들을 복합적으로 생각해보는 의미라고 한다. 제목부터 감성 넘치는 『사물의 지도』는 식탁에 앉은 나를 청주에 데려다놓기에 충분했다. 어디 청주뿐인가, 미래로- 과거로- 또 다른 문명 어딘가로- 분주하고도 안락한 여행을 선물해주었다. '아름다움'을 향한 티켓, 『사물의 지도』를 소개한다. 

 

『사물의 지도』는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사명과 목적, 공예가 인류에게 주었던 영향과 앞으로의 방향, 2023청주공예비엔날레의 전시 주제에 대한 강재영 예술감독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그의 예술적 지향도 무척이나 인상깊었는데, 뒤에 이어지는 '대지와 호흡하는 사물', '인간ㆍ자연ㆍ사물을 연결하는 문화', '손, 도구, 기계, 디지털의 제작방식과 기술', '기록문화와 공예', '생태를 지키는 공예', '생명사랑을 존중하는 공예'등의 테마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한층 의미있었다. 그들의 작품과 더불어 작가들이 가진 생각까지 공유할 수 있었기에 큐레이팅을 넘어 엄청난 깊이의 도슨트를 만난 기분이랄까. 

 

『사물의 지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작가님은 우리나라 자수로 작품활동을 하시는 장영란 작가님이었다. 우리나라의 여러 물건들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한국자수는 시대의 생활상을 담았다고 표현하셨는데, 익숙해서 귀하다고 여기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만난 기분이었다. “한국 자수의 매력 중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은 무심한 듯 표현된 즉흥적이고 정형화되지 않은 간결한 선에 있다. 신속하고 간단하게 수놓아진 풀의 형태나 생략되듯 단순히 표현된 달무리 같은 것이 그것이다(P.109)”는 문장을 읽은 후 떠올려보는 우리 자수모양이 새삼 더 아름다운 무엇인가로 느껴졌다. 예쁜 눈으로 바라보아야 더 예뻐진다는 말처럼, 우리는 우리 전통의 공예들을 더 예쁜 눈으로 바라봐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장석현 작가님의 옹기에 대한 이야기도 같은 선상에서 마음에 깊이 닿았다. 우리가 너무 흔히 보고자라 귀한줄도 모르는 장독대들. 그 장독대들이 가지는 푸근함과 깊은 정은 사실 그 어떤 사물에서도 쉬이 찾아보지 못할 감정일지도 모른다. 세계 여러나라의 작가님 작품 속에서 이렇게 유독 우리작가님들의 작품이 눈에 어리는 것은, 그 작품들이 가지는 익숙함과 안정감도 있겠지만, 그 안의 정서를 이해하기 때문이리라. 그 맥락에서 『사물의 지도』라는 제목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내가 만나온 수많은 사물들은 저마다의 지도와 맥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에게는 그것을 어떻게 잘 표현하고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며 작업을 할수록 변화가 생기고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아직도 작업에 긴 여정이 남아있습니다(P.241)”는 신상호 작가의 말이 어쩌면 그 모든 예술, 사람의 이야기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의 소재는 흙이지만 우리의 소재가 각기 다르다고 말이다. 『사물의 지도』는 단순한 전시도록이 아니다. 여러 예술가들의, 여러 공예품들의 지나온 시간과 역사- 그리고 미래를 담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 김진명 장편소설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틴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걸었던 거였군.

처음부터 러시아의 신은 저기에 있었으니까. (P.407) 

 

 

 

 

김진명 소설은 스토리가 워낙 탄탄하기도 하지만, 예감이 적중하기 때문에 더욱 소름이 돋는다. “박경리, 조정래, 김진명 작가님이 한국문학은 살렸는지 몰라도 나의 성적은 죽였다”라는 농담을 할 만큼 책'만' 읽던 학생이었던 나는 사실 김진명 작가님이 '별에서 온 그대'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살아계셨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집필 30주년 기념작,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을 읽으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는 과거에서부터 살아오기만 한 게 아니라, 분명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않고서야 이런 예리한 통찰이 가능할까.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소재로 하는 전쟁소설. 초반부터 전쟁의 분위기를 묘사한 부분이나 전쟁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하는 국민의 모습에서 화가 치밀었다. 2023년에도 이런 참상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 책이 그저 상상 속의 이야기이기를, 현실고증이 아니기를 바랐다. 이 마음은 책의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점점 커지고 말았는데, 사람의 이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자신의 계획과 달리 큰 성과가 없자 점점 광기로 자신을 내몰아가는 푸틴의 모습에서 김진명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전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푸틴의 목적이 달성된다면 세계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전 세계인들은 깨달아야만 한다 생각했다. 그 누구도 자국의 이익이 아닌, 범세계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나 역시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함을 깨달았다. 푸틴의 핵 협박은 '러시아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제3의 핵전쟁을 가져오게 될 것이며 세계가 어둠 속에 가라앉게 될 것이라는 그의 우려에 나 역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가 전 세계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만큼은 '사르맛'처럼 강력히 전파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의 소설은 절대 짧지 않지만, 엄청난 몰입감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한순간도 독자를 느슨히 두지 않는다. 전쟁의 참혹함에 분노하게 하고, 날카로운 분석과 전략에 긴장하게 만들며, 악인의 광기에 진저리치게 만든다. 책을 덮은 후에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고민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그의 소설들이 그랬던 것처럼,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 역시 출간과 동시에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소재가 소재니만큼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 출판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으로 받은 관심이 김진명 작가의 다른 소설에도 이어져,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고, 제대로 인식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직지심체요절도 찾아오고! 일본의 사과도 받고!) 그가 기록한 소설 속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기를 오래도록 바라왔기에, 세계의 주목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또 한 번, 그의 소설이 '허구'로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푸틴을 죽이는 완벽한 방법』처럼 비참한 긴장감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민고 이야기 - 공교육의 비밀 병기
임혜림 외 지음 / 포르체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면 아직도 여러분은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순간순간 속에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만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후배 여러분도 주저하지 말고 다양한 기회에 도전하면서 본인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임음, 앞으로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음을 꼭 체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쌓은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학업에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p.59) 

 

남들이 정해놓은 '당연한' 길을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보다 내가 정말로 걷고 싶은 길에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p.161)

 

 

처음 『한민고 이야기』를 만났을 때, 사실은 '나와는 큰 관계없는 어떤 고등학교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이동이 잦고 전방에서 근무하는 직업 특성상 아이들이 안정된 학업을 할 수 없는 '군인 자녀'들을 위한 학교라니,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졌던 것.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한민고등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은 어쩌면 우리 공교육이 함께 바라보아야 할 방향은 아닌지 말이다. 물론 모든 아이에게 한민고의 교육 방향이 적합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도 본인이 더 대단한 사람임을 깨닫기를 바란다는 졸업생의 수기는, 한민고를 전혀 몰랐던 나의 마음에 파도를 일렁이게 했다. 

 

지금의 나는 거의 매일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자기주도적으로 행복하고 창의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그런데 아마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 “훗날의 너를 위해서”라는 걱정과 협박이 섞인 말로 성적향상을 요구한다. 딱 3년만 참으라고, 딱 3년만 창의력 말고 실력을 갖추라고.

 

『한민고 이야기』를 읽는 내내 '딱 3년간' 덮어놓은 잠재력들은 대학교에 가도, 어른이 되어도 자라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을 지나며 매일 꿈꾸고, 기획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품었던 많은 것들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래서일까 한민고의 교육철학이 쉬이 넘겨지지 않았다. 학생들이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준다는 부분은 감동적이었고, 스스로 과제들을 찾아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또 『한민고 이야기』에 실린 수기들이 다양한 직업군, 학군으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에서 '모두 다른 아이들'을 '대한민국 입시'라는 틀에 욱여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보기도 했다. 

 

솔직히,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려 나도 아이를 입시지옥에 구겨 넣는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약속은 못 하겠다. 지금은 절대 그렇지 않겠다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보편적 공교육이, 입시가 달라지지 않는 한, 나라고 별수 있으려나. 

 

그래서 한민고의 10년을 바탕으로, 우리 공교육이 세계가 원하는 인재상에 발맞춰 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한 줄로 서서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면 딱 1명이 1등이지만, 모두 각자 뛰고 싶은 방향을 향해 달리면 모두가 1등이라는 말이 있다. 단 한 명의 1등만을 만들지, 수백 수천 명의 1등을 만들지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