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평점 :
어쩌면 이 일 때문에 내가 결말에 관해 집착하게 된 걸지도 몰랐다. 예컨대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끝나기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해서 말이다. 이야기에서와는 달랐다. 이야기의 결말은 꼭 해피앤딩이 아니라도 소화할 수 있다. 나는 결말에 잠시 머물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고, 약간의 경이로움과 희망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짜 최후의 작별인사를ㅡ'사람' 말이다. 사물이나 관념과는 다르다. ᅳ해야 할 때는 다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최후의, 최후의, 최우의 작별인사 말이다. 그건 정말 놀랍도록 슬픈 일이다. 절대적인 슬픔이다. 그래, 꽃송이를, 어쩌면 꽃 피우기를 영원히 방해하는 건 일방적인 작별인사일 것이다. (p.522)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요즘 많이 바쁜지 책 리뷰가 덜 올라오는 것 같다고. 사실 바쁘기도 했지만, 정말이지 온전히 이창래 작가의 『타국에서의 일 년』에 메여있었다. 보통의 경우는 여러 종류
의 책을 병렬식으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럴 여력이 없더라. 왜 김연수 작가님이 『타국에서의 일 년』을 두고 “파도처럼 거침없이 나아가는 문장이 독자를 더 먼 곳까지 가게 한다.”고 말했는지 읽는 내내 느꼈다.
『타국에서의 일 년』은 마음의 결핍을 가진 한 인간이 낯선 세계로 가계 되며 겪는 운명적인 만남과 삶에 대해 갈구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실 어머니에 대한 목마름이, 노력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을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한 청년이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배워가는 시간은 내게도 큰 의미를 주고, 깊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개인적으로는 『타국에서의 일 년』은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흡입력 높은 소설이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임에도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는데(오히려 매력적이었다는 말이 적합하다), 이상하게도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커서 한 줄도 허투루 넘기기 어려웠다. 후에 역자의 글을 읽으며 작가가 문장 하나도 쉽게 놓지 않는 사람임을 알았을 때, 왜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이 발목을 잡는 기분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러면서 또 한 번, 숙고하며 태어난 문장은 독자에게도 깊은 생각과 감정을 전달해준다는 것에 감동하고 배움을 얻기도 했다.
사실 『타국에서의 일 년』을 재미있거나 쉬운 소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쉽지 않은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작가가 표현하는 감정의 허함과 소속감의 부재, 인간의 공허함 등은 우리가 모두 느끼고 살아가는 감정이기에 결코 가볍게 넘길 수도, 그냥 덮어버릴 수도 없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목말라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좌절했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틸러가 여정을 마친 후 큰 성장을 했다면 오히려 이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인데, 힘겨움을 겪고 나서도 큰 성장을 갖지 못하는 여느 인간의 모습과 같아 위로받기도 하고, 큰 성장하지 못하는 지금이라도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고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세 살에 미국인이 된 작가에게서 한국 색을 찾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한국의 무엇인가를 쥐고 살아가는 것 같다. 어쩌면 틸러의 마음 어느 한구석에는 작가의 마음도 담기지 않았으려나 생각해보니 괜히 마음이 더 찡하다. 지난 2주간, 나를 꽉 붙잡고 있던 『타국에서의 일 년』을 놓아주며- 흔들리고 꺾여도 부지런히 살아온 나에게도- 결국 이 모든 걸음걸음은 나에게로 향하는 것임을 기억하자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