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신 - 로컬 브랜딩 전략 '서울을 따라하지 않는다'
이창길 지음 / 몽스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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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을 다수결로 결정한다는 것은 사실 가장 편안하고 게으른 방법이다. 잘못됐을 때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 탓을 할 수 있다. (...) 다수결은 공평하고 민주적이기에 다수결이라는 말에는 “옳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결이 옳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무난한 것은 팔리지 않는다. 무난한 것은 이미 충분히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난한 것을 즐기기 위해 다른 지역을 방문하는 일은 없다. 김밥천국에서 파는 김밥을 먹기 위해 다른 도시를 방문하지 않듯이 말이다. (p.209) 

 

 

얼마 전 한 기사에서 서울을 벗어나 사업을 펼치는 청년들의 인터뷰를 본 일이 있다. 나 역시 작은 소도시에 살고 있지만, 소도시의 경제가 어떤지를 직접 체감하고 있기에 그저 몇몇 청년들의 눈에 띄는 무엇이냐고 생각하고 이내 기사를 닫았던 것 같다. 그렇게 까마득히 잊고 있던 '개항로 프로젝트'를 다시 만난 것은 몽스북의 신간 『로컬의 신』에서였다. 

 

일단 표지가 너무 강렬하여 시선이 갔던 『로컬의 신』. 이 책은 서울을 벗어나 제주, 부산, 인천 등에서 여러 프로젝트로 로컬 비즈니스도 아이템만 훌륭하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이창길 '개항로 프로젝트' 대표의 책이다. 책을 휘리릭 둘러보고서야 요즘 해시태그에서 자주 만나는 여러 '핫한 장소'들이 그의 창조물이었음을 깨닫고, 부지런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로컬의 신』은 단순히 로컬에서 사업이나 창업을 꿈꾸는 사람뿐 아니라, 자신만의 브랜딩을 목표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만나보면 좋은 책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방향성,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것 등 무척이나 다양한 시각을 얻을 수 있기 때문. 책을 읽으며 무척이나 인상적인 문구가 많았는데, 그 문구들의 공통점은 “확신”이었다. 『로컬의 신』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느끼겠지만, 작가는 “~하면 좋겠다.”, “~는 좋을 것 같다”라는 투의 문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단단하고 확고한 문장을 사용하는데, 이게 꼭 '굳은살'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하다못해 연필 쥐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기려고 해도, 수없이 글씨를 써야 생기지 않나. 작가는 여러 번 반복하여 부딪히고 경험하며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고 차근차근 쌓아갔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온고지신'의 마음이었다. 대부분은 과거의 것을 털어낸 후에야 새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나. 특히 우리나라처럼 수시로 인테리어를 하고, 건물을 짓고 부시고, 보도블록도 파헤치고 다시 까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나 역시 예전에는 그런 생각과 행동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작가는 로컬에 있는 것으로 로컬에 없는 것을 연결하고, 범접할 수 없는 전문가의 솜씨에 나의 실력을 얻는다. 그래서 더 새로운 것,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문득 최근 유행했던 많은 것들을 떠올려보다가 익숙하고도 새로운 것이 아니고는 타인의 사랑을 끌어내지 못했지 않나 싶어지며, 지켜야 할 본질과 바꾸어야 할 것을 적절히 배치하는 기획이야말로 창조보다 아름다운 것임을 새삼 느꼈다. 

 

또 『로컬의 신』에서 무척이나 대단하다 느낀 것은, 자신이 오래도록 쌓아온 노하우를 정말 대방출한다는 것. 어떤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돈 받고 파는(!) 기술을 작가는 그냥 막, 완전히 풀어놓는다. 나 역시 그의 글을 읽으며, 나 자신을 브랜딩하기를 위해 바꾸어야 할 것들과 계획해야 할 것들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의 말이 정답은 아니다. 아니, 정답이었다고 해도 금방 바뀌는 것이 세상이니 이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색을 찾는 사람이 다음 '개항로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을 『로컬의 신』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왜냐면 이 책은, 자신의 멋에 겨워 일단 출간하고 본 가벼운 느낌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르기 몰라도, 스스로라는 브랜드에 먹칠할 책이라면 아예 출간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싶은 단단한 문장과 철학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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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듣는다
루시드 폴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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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이미 전화기 속 세입자가 된 지 오래다. 이제 사람들은 셔터를 연사해 마음에 드는 순간만 골라낼 수도 있다. 그런 마당에 필름 카페라는 참 불편하고 무능하다. 너무 가까워도, 조금만 어두워도 피사체를 제대로 담지 못한다. 게다가 너무 무겁다. (...) 그럼에도 예측할 수 없는 그러나 너무나 강렬한 결과물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건 모든 게 완벽하고 안전한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결핍의 산물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필름을 고르고, 뷰 파인더로 피사체를 바라보고, 묵직한 셔터를 누르고 리와인드 레버를 돌려 필름을 꺼내 시간을 묵혀두다가 나만의 빛이 태어나는 순간을 기다린다. (p.182)




며칠이나 늦게 정리하는, 지난 12월 27일, 2023년 마지막 독서 모임 이야기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 독서 모임은 각자 책을 고르고, 자신이 읽었던 책을 추천하는 형식의 독모였습니다. 무슨 책을 소개할까 꽤 길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애정하는 김진영 선생님의 책을 소개해야 할지, 한참 필사하며 읽던 김종원 작가님 책을 소개해야 할지- 그러다 우연히 마음에 닿은 것은 루시드폴의 『모두가 듣는다』였습니다. 사실 너무 좋아하는 출판사인 돌베개에서 너무 돌베개답지 않은 여리여리한 표지의 책이 올라와 있기에, 가만히 들여다보니 감성 끝판왕 루시드폴이더라고요. (이수지 작가님과 「물이 되는 꿈」을 작업하신 그 감성 끝판왕 맞습니다) 그래서 “그래, 연말에는 감성이지”하며 이 책을 냉큼 집어 들었습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연말 답답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는 기분이었습니다. (고민하던 김종원 작가님의 책도 여러 건 등장했고요.) 감정적인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가슴이 몽글해졌고, 나도 이렇게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리라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의 도서소개를 들으며 울컥하는 마음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마음을 담담히 이야기하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소개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좀 억지로 자꾸 웃었고, 독서 모임을 끝으로 이사를 한다는 한 분의 관계에 대한 문장은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과 1년간 독서 모임을 할 수 있었음이 복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바빠져서, 2024년에는 도서모임을 참가할 수 있을지 아닐지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마음은 더 하는 것으로 욕심을 부려보고 있습니다. 


어느새 새로운 한 해가 왔습니다. 달력이나 다이어리는 어느새 새것을 꺼내 들었고 새로운 기록을 위한 볼펜도 새로 들였지만, 이제는 무조건 새로운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님을 압니다. 우리의 삶도 휴대폰으로 들어간 카메라처럼 점점 편리해지고, 빨라지고, 급해지겠지만- 적어도 필름카메라가 남기는 '흔적'처럼- 마음에 무엇인가를 남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모두가 듣는다』를 읽는 내내 생각했습니다. 


2023년의 마지막에 『모두가 듣는다』를 읽고-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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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 당신이 몰랐던 반쪽짜리 한국사
최중경 지음 / 믹스커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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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의 수명이 길었다고 해서 조선의 시스템이 훌륭했다고 자랑하는 이들도 있는데, 개인이 오래 살았으니 무척 행복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 수준의 논리 미약이다. 기업의 혁신도 마찬가지다. 기업 활동의 결과치인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고 개선될 전망이 없으면 즉시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살 수 있다. 회계가 투명하지 못해 이익을 자의적으로 부풀리기 시작하면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칠 수밖에 없다. (P.148)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자라나는 세대의 논리적 사고력과 판단력을 흐리게 해 그들이 지도자가 되어 동일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 때 실패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다. (P.226) 

 

 

학생 때도 한국사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진짜 한국사에 빠지게 된 것은 성적과 무관한 신분이 되고 나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한국사를 조금 더 깊이 읽고, 배우기 시작하며 내가 느꼈던 것은 '깨달음의 기쁨' 등이 아닌 '혼란'이었다. 과연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은 얼마나 진실일까, 몇 %나 올바르게 배운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물론 이것은 여전히 드는 생각이기는 하나, 자의인지 타의인지 역사는 '누군가의 기록'이라는 유연한 사고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최근 읽은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역시 우리 역사에 대해 또 몇 조각의 혼란과 깨달음과 생각을 나누어주었던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은 한국사의 여러 장면에서 한국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상황을 더욱 너른 시각으로 보는 사고력을 키우도록 돕는 책이다. 고구려부터 조선, 독립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여러 변곡점을 이야기하고, 그에 따른 생각들을 펼친다. 물론 어떤 면은 다소 비약이 심하다고 느끼기도 했고,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긍정을 가지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읽으며 느낀 마음은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한 번 만나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우리 시대의 역사교육은 “이건 그냥 넘어가고”, “이건 그냥 외우고”의 연속이었지 않나.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해서 넘겨버린 순간들이 우리 아이들의 역사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하고 싶어졌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그저 역사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고, 아직도 비판적 사고 대신 익숙함과 기억에 치중한 역사 공부를 하지는 않았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실 꾸준히 역사서를 읽으면서도 내가 읽는 책들이 얼마나 진실을 반영했는지, 얼마나 왜곡을 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읽으며 지금의 역사 공부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현대를 바라보고, 이것을 새로운 사고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방향에서 볼 때, 이 책을 읽으며 불편한 마음이 일었던 것도 내가 가지고 있던 틀을 깨기 위함이라 생각하니 발전적인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머지않아 나는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재독해야 할 것 같다. 그때는 조금 더 비판적 시각과 사고로 더욱 치열히 읽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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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될 시간 - 고립과 단절, 분노와 애정 사이 '엄마 됨'을 기록하며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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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시간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영영 이해받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한 채 반복된다. 여성이 겪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개인의 영역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고통을 위한 이 기록이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p.35) 

 

나 또한 그 혼돈의 시간을 통화할 수 있었던 건 운동을 시작하고, 아기 반찬은 사 먹이고, 피곤하거나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에는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 맡기고 혼자 카페에 가서 두세 시간 커피 마시면서 책 보고 글 쓰면서였다. '포기'가 괜찮아지게 만들었다. 무질서 뒤엔 질서가 혼돈 뒤엔 안정이 왔다. 노력과 견딤과 시간이 만들어낸 거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건 슈퍼우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고. 당신과 나, 세상 모든 엄마라고. (p.65) 

 

 

어느새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지난 한 해도 참 부지런히 일하고, 책을 읽고, 삶을 살았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어 정말 큰 위로와 감동이 되었기에 더 늦기 전에 많은 “엄마”들이 이 책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정리해본다. 수오서재에서 출간된 임희정 작가님의 『질문이 될 시간』이 바로 그것. 

 

『질문이 될 시간』은 수많은 여성이 겪는 출산과 경력단절, 엄마로 사는 삶과 여자로서의 삶 그사이를 채우는 감정들을 촘촘히 기록한다. 아나운서라는 나름 '전문직'을 가진 작가도 경력단절을 겪는 작금의 시대, 저출산을 걱정하면서도 육아와 여성의 경력보전이 병행되기 어려운 나라의 현실을 시리도록 아프게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성장에 대해 깨닫고, 감동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 나 역시 겪었던 시간과 '사건'이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이 공감과 허탈함과 위로와 감동 등등 차마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섞어 느꼈다.

 

사실 엄마들의 마음에 관해 기록된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 까닭은, 그저 감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은 이성적이다. 이성적으로 현실을 보고 정책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덤덤히 기록된 감정이 독자에게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했던 것 같다. 

 

'난임'에 대해 기록된 부분에서는 꽤 많이 울었다. 감사히도 나는 인공수정까지는 겪지 않았지만 쉽지는 않게 엄마가 된 케이스였기에 작가님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많이 아팠다. 내가 느꼈던 아픔과 시림을 느끼며, 또 나보다 더 힘들게 엄마가 되는 이들의 상처를 몰라주었음에 반성을 느끼며 한 줄 한 줄 읽었다. 항우울제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엄마가 된 후 변해버린 세상에 너무 힘겨워했던 친구가 생각나 눈물이 계속 났다. 내 주변에는 한 명이라 특별히 생각했던 산후 우울증이, 사실은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일임을 자각하며, “엄마”가 된 이들에 대한 대책은 너무 미흡하지 않나 여러 번 생각했다. 

 

여전히 우리는 갓 엄마가 된 시간들을 그저 축복된 시간이라고만 배운다. 물론 축복된 시간임은 맞지만, 과연 '축복'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기에 방금 엄마가 된 이들이 겪는 시간은 너무 크고 시리고, 힘겹고, 아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콧물을 훌쩍거렸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 복된 시간이 마냥 복되지만은 않았으니까. 평생에 가장 잘한 일이 엄마가 된 일이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때때로 무겁고 버겁고 아프니까. 임희정 작가가 분명 눈물로 남겼을 이 기록을 나눠 받으며 울고, 위로받았다. 그래서 이 책을 엄마들이 꼭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그래서 많이 울고, 속이 좀 시원해졌으면 좋겠다. 

 

한 해, 엄마로 살아낸 이들에게 짠한 위로를 전하며. (이 문장이 “아빠들은 수고하지 않았다” 따위의 왜곡으로 읽히지 않기를. 그런 의도는 전혀 담지 않았다. 그들의 노고에도 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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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될 시간 - 고립과 단절, 분노와 애정 사이 '엄마 됨'을 기록하며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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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시간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영영 이해받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한 채 반복된다. 여성이 겪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가 개인의 영역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고통을 위한 이 기록이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p.35) ⁣

나 또한 그 혼돈의 시간을 통화할 수 있었던 건 운동을 시작하고, 아기 반찬은 사 먹이고, 피곤하거나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에는 배달 음식 시켜 먹고,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 맡기고 혼자 카페에 가서 두세 시간 커피 마시면서 책 보고 글 쓰면서였다. ‘포기‘가 괜찮아지게 만들었다. 무질서 뒤엔 질서가 혼돈 뒤엔 안정이 왔다. 노력과 견딤과 시간이 만들어낸 거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건 슈퍼우먼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라고. 당신과 나, 세상 모든 엄마라고. (p.65) ⁣


어느새 또 한 해가 지나갔다. 지난 한 해도 참 부지런히 일하고, 책을 읽고, 삶을 살았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어 정말 큰 위로와 감동이 되었기에 더 늦기 전에 많은 “엄마”들이 이 책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정리해본다. 수오서재에서 출간된 임희정 작가님의 『질문이 될 시간』이 바로 그것. ⁣

『질문이 될 시간』은 수많은 여성이 겪는 출산과 경력단절, 엄마로 사는 삶과 여자로서의 삶 그사이를 채우는 감정들을 촘촘히 기록한다. 아나운서라는 나름 ‘전문직‘을 가진 작가도 경력단절을 겪는 작금의 시대, 저출산을 걱정하면서도 육아와 여성의 경력보전이 병행되기 어려운 나라의 현실을 시리도록 아프게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성장에 대해 깨닫고, 감동하게 되기도 한다. 사실 나 역시 겪었던 시간과 ‘사건‘이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이 공감과 허탈함과 위로와 감동 등등 차마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섞어 느꼈다.⁣

사실 엄마들의 마음에 관해 기록된 책은 많다. 그러나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 까닭은, 그저 감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은 이성적이다. 이성적으로 현실을 보고 정책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덤덤히 기록된 감정이 독자에게 더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했던 것 같다. ⁣

‘난임‘에 대해 기록된 부분에서는 꽤 많이 울었다. 감사히도 나는 인공수정까지는 겪지 않았지만 쉽지는 않게 엄마가 된 케이스였기에 작가님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많이 아팠다. 내가 느꼈던 아픔과 시림을 느끼며, 또 나보다 더 힘들게 엄마가 되는 이들의 상처를 몰라주었음에 반성을 느끼며 한 줄 한 줄 읽었다. 항우울제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엄마가 된 후 변해버린 세상에 너무 힘겨워했던 친구가 생각나 눈물이 계속 났다. 내 주변에는 한 명이라 특별히 생각했던 산후 우울증이, 사실은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일임을 자각하며, “엄마”가 된 이들에 대한 대책은 너무 미흡하지 않나 여러 번 생각했다. ⁣

여전히 우리는 갓 엄마가 된 시간들을 그저 축복된 시간이라고만 배운다. 물론 축복된 시간임은 맞지만, 과연 ‘축복‘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기에 방금 엄마가 된 이들이 겪는 시간은 너무 크고 시리고, 힘겹고, 아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콧물을 훌쩍거렸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 복된 시간이 마냥 복되지만은 않았으니까. 평생에 가장 잘한 일이 엄마가 된 일이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때때로 무겁고 버겁고 아프니까. 임희정 작가가 분명 눈물로 남겼을 이 기록을 나눠 받으며 울고, 위로받았다. 그래서 이 책을 엄마들이 꼭 만나보았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그래서 많이 울고, 속이 좀 시원해졌으면 좋겠다. ⁣

한 해, 엄마로 살아낸 이들에게 짠한 위로를 전하며. (이 문장이 “아빠들은 수고하지 않았다” 따위의 왜곡으로 읽히지 않기를. 그런 의도는 전혀 담지 않았다. 그들의 노고에도 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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