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힘 - 얼어붙은 조직, 신뢰로 녹인 600일의 여정
김주성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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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코로나 팩데믹 시대에 재택 근무가 늘어나면서 이후 재택근무 시스템이 많이 정착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재택 근무가 불가능한 직종도 있고 효율면에서 대면 근무가 더 능률적인 직종이 있다.

세대가 젊어질 수록 회시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정도로 '어울려 살아가기'가 예전만큼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구세대인 나로서는 해보지 못했던 재택 근무의 매력을 한 번쯤 느껴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동료들과 어울려 근무했던 예전의 방식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민원인을 직접 만나야 하는 경우에는 더 특별한 관리방식과 경영방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현 노원구 시설 관리공단 이사장으로서 고인 물을 깨끗하게 바꾸고 순환시키는 시스템으로 혁신을 일으켜 성공한 사례들을 담고 있다.


'시설관리공단'이 공무원 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치열한 기업들과는 다른 구조를 되어 있을 거라는 짐작이다. 대체적으로 수동적인 경우가 많을 것 같고 혁신이 필요한 직장이라기 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깊숙이 들여다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는 직장과 상관없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관계'와 '소통'이 아닐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생각에 몸을 낮추고 적당히 어울리는 척 하려는생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너무 튀면 눈총을 받을 수가 있고 용기를 내어 의견을 말해도 수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보니 좋은 생각을 갖고 있어도 입을 다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일단 조직은 굴러가니까. 매일 그렇고 그런 회의도 지겹고, 조직에서 '나'란 존재가 뭐 그리 중요할까. 기억도 안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사자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간파했던 것 같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나'란 존재를 누군가 알아준다고 하면 더 열심히 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가 저자가 그냥 '누군가'로 남을 수도 있는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빛나는 '꽃'이 되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내 생일도 내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언제부터인가 일부러 며칠 전부터 광고를 해서 찾아먹고는 있지만 그냥 서비스업체에서 무심하게 보낸 '생일 축하'메시지에도 괜히 마음이 찡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름을 불러주고 생일축하 전화를 걸어주는 일이 쉽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이름을 잃어버리고, 생일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기에 누군가의 관심에 가슴이 뜨거워 지는 것이다. 그런 점을 알아채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심정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혁명','혁신'이 거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작은 걸음부터 시작해서 전 직원과 면담시간을 갖고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고 하나씩 개선해나가는 여정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그런 상대에게 투쟁의 머리끈을 묶고 파업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는가.

상대의 니즈를 파악하고 들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리더십을 발휘해서 성공하고 있는 저자의 시도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AI시대에 인간이 서야 할 자리가 점차로 더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 도전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리더가 있는 조직에서는 내가 그런 존재로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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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깨어라 - 헤르만 헤세 청춘소설 3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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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니-사실은 세 편의 작품-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은 것처럼 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 들었다. 헤르멘 헤세라는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살았다고, 경험했다고 쓸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하필 시절은 잔인하다는 4월의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고 그리 화려했던 벚꽃은 처참하게 흩어져 떨어져 버렸다. 삶의 빛나는 시절과 허무함을 고작 열흘 간격으로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아마 나는 오래전 이 작품들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데미안만 겨우 생각이 났고 '수레바퀴 아래서'는 거의 처음 인듯 낯선 작품이었다. 주인공 한스 기반라트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수재였다.

이미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장사수완이 좋아 가난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둔 한스는 학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소년이다.


한스는 공부하는 법을 알았고 조금만 노력을 해도 성과를 내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쓰여질 당시의 독일이라는 사회가 성직자의 길을 가장 탁월한 성공이라고 여겼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시대마다 추앙받는 직업은 있겠지만 아마도 당시의 독일은 종교가 인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러기에 지금 생각하면 가장 외롭고 인내심이 필요한 성직자의 길을 가야했던 소년의 고독함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한스가 선택한 길이 아니었다.

모두의 기대치가 한스를 그 길을 가야만 한다고 떠민 것이다. 그렇게 가게 된 신학교 생활에서도 한스는 모범생이었지만 도중에 그만두거나 죽음을 선택하는 친구들을 보게 된다.

한스 자신은 몰랐겠지만 그 선택은 한스의 길이 아니었고 두통과 신경증을 앓게 되며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누군가는 실망했고 누군가는 위로했지만 한스는 어느 길을 가야할지 방황한다.


'태어나려고 하는 생명은 알을 깨야 한다'는 글귀로 유명한 데미안도 그렇다.

평안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싱클레어가 지금으로 치면 학폭의 희생자가 되면서 불안과 우울을 겪게 된다. 그 때 만나게 된 신비한 느낌을 가진 전학생 데미안!

그는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신과 종교에 대한 믿음을 반박하는 데미안에게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에게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사회적으로 용인받을 수 없는 감정에 방탕한 생활을 하게되기도 하고 결국 싱클레어는 전쟁의 현장에서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꿈인듯 현실인듯 다시 만나게 된 데미안!

싱클레어는 늘 데미안을 그리워했었다. 그의 불안과 우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를.


인도 최고의 계급인 브라만 가문의 아들인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게 되고 사문이 되어 고행을 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쾌락에 빠지지만 다시 구도자의 길로 돌아온다는 '싯다르타'는 인간의 삶에 대한 고뇌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세 편의 소설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태어나고 느끼며 살아가는 일들에 대한 과정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오히려 무거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결국을 모든 것을 겪고 이겨내고-때로는 굴복하고-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무겁지만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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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진화 - 진화가 알려 주는 암 극복의 새로운 아이디어
아테나 액티피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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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무서운 병이다. 요즘에는 암이 많이 정복되고 생존률로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암은 여전히 인류 사망률 1위의 무서운 병이 아니던가.

이런 암이란 존재가 암의 생명이 탄생되는 역사와 함께해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다면 암은 우리가 기억하는 혹은 기록된 역사 저 편에 이미 존재해왔지만 '암'으로 정의하지 못한 채 그저 병으로 죽었다고 생각해왔던 셈이다.

말하자면 암은 인류뿐만이 아니라 생명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고 생명력은 어마무시한 존재이다.

그런 암과 싸워온 인류의 투쟁이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당시에 암의 존재를 알았다 하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래된 인류의 화석에서도, 조류의 뼈에서도 발견되었다니 인류가 이만큼이나마 암을 정복해왔다는게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암은 유전력이 강한 병이라고 알려져 있다. 암컷의 난자와 수컷의 정자가 만나는 순간 태줄이 힘껏 자궁벽에 혈관을 박아내는 바로 그 순간 암세포도 자신의 생명력을 키우기 위해 한켠에 자신의 집을 짓는 셈이다.


인류의 수명이 길어지긴 했지만 암을 유발하는 인자들은 더 늘어난 상황이다.

해충을 박멸하겠다고 엄청난 유독성을 지닌 농약을 살포하고 그렇게 키워낸 농작물은 다시 사람의 입을 통해 인체를 침투한다. 면역력이 파괴되고 이미 자리한 암, 혹은 새로운 암은 신나게 몸집을 키운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임신이 늦은 여성일 수록 유방암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호르몬과 반응하면서 이런 현상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되니 요즘처럼 만혼이 늘어나고 노산이 늘어나는 현실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암정복을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실제 그런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 희망적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속에서도 번영해왔던 사실이 암을 향한 투쟁이 언젠가 승리로 끝나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물학자가 전하는 암의 존재는 어쩌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암이란 존재는 인류만큼이나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단어나 의학용어가 많아 쉽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인류의 진화만큼이나 흥미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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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몰입 - 평범한 소년은 어떻게 수학사의 난제를 해결한 위대한 수학자가 되었을까?
오카 기요시 지음, 정회성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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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컬처블룸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학(數學)이란 단어만 나오면 움츠려든다. 더하기, 빼기나 잘하고 살면 되지 않냐는 변명으로 버티면서 지금까지도 루트가 어떻게 로그가 어떻고 하는 얘기만 나오면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수학점수가 어떠했을지 뻔하지 않겠는가.

수학을 잘 하는 머리는 타고 났다고 믿는다. 물론 문학도 그 방면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에 재능이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피타고라스'나 '케플러'같은 수학자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의 저자인 '오카 기요시'라는 수학자의 이름은 처음 들었다. 부럽기는 하지만 이미 일본은 몇 명의 노벨수상자를 배출한 나라인데 수학에서도 이렇게 대단한 학자가 있었다니 역시 부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꼭 수학에 대한 글만 적은 것은 아니니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

수학자가 되고 싶었던 과정이며 그가 '유레카'를 외쳤던 깨우침의 순간은 나도 경험하고픈 시간이었다. '몰입'이 되면 주변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거리를 걷고 그러다 문득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순간이 있다.

저자가 여러 번 그런 순간을 겪었다는데 나는 그런 깨달음의 순간들이 얼마나 있어나 아득하다.


저자는 수학뿐만이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고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물리학이니 수학이니 같은 한 분야에 대가인 사람들은 어느 한쪽으로만 발달된 면이 있어 소심하거나 고루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있다.

저자의 글들을 읽다보면 그런 점이 없지는 않았는데, 도대체 이 수학자 양반 나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자꾸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예순 초반 이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1901년 생이었다. 와우, 그래서 나쓰메 소세끼를 만났다고 했구나.


이미 고인이 된 학자이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스승이기도 한 저자이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지켜야 할 도덕이나 가르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을 넓게 보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등 역시 오랫동안 제자를 길러낸 선생다운 기품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경지에 이르도록 자신을 이끌었던 '몰입'에 대한 조언은 정말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누군가는 자신을 가르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였다고 했다.

중학교 입시에도 실패하고 재수를 한 저자의 경험이 후일 수학자가 된 초석이 되었던 과정은 '몰입'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가 세상을 떠난 지 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의 저서들이 읽히고 있다는 것은 그가 해낸 수많은 업적 못지 않은 통찰의 철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는 접고 잠시라도 몰입을 해볼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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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 한 뼘 반 다산어린이문학
황선애 지음, 이주희 그림 / 다산어린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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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는 친한 짝꿍과 밥도 같이 먹고 화장실도 같이 가고 학교를 오갈 때에도 서로의 집에 가서 기다리다 함께 손잡고 오갔던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되니 그런 우정을 나누기가 힘들었다. 서로 살아내느라 바빠서 그랬을까.

해라에게 찐친은 유주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찍어서 올린 사진에는 나보다 지안이와 더 가깝게 붙어 있었다. 유주는 나보다 지안이가 더 가까운 사이였던 것일까.

해라는 화가 났다. 나만 유주를 좋아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자기가 안 볼때에는 서로 단짝처럼 지내고 있었다니 분해서 눈이 부릅떠졌다.

해라와 유주와는 두 뼘 정도 떨어져 있었고 지안이와는 한 뼘 정도 떨어져 있으니 분명 둘이 더 친한거 아닌가.


해라는 이제 화장실도 혼자 가고 점심밥도 혼자 먹고 싶어졌다. 해라가 많이 먹으라고 다정하게 얘기했지만 해라는 오늘 나온 콩밥에 있는 콩도 싫고 지안이도 싫었다. 지안이가 나랑만 친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해라가 시훈이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유주밖에 모르는데 어느새 소문이 났다.

분명 유주가 소문을 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해라와 유주는 열 뺨쯤 멀어졌다.

하지만 길을 잃은 강아지가 나타나는 사건으로 인해 해라는 마음이 풀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같은 반 친구인 영웅이 말처럼 멀리서 보면 다 한 뼘 사이인거 아닌가.

나만 더 친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 한 뻠 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친구! 아니 빵 뼘 사이 친구!

마음을 재는 자가 있다면 재보고 싶은 그런 친구가 있다면 그건 행복하다는거다.

둘이만 친하려고 하지 말고 친구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걸 나중에 깨닫게 될거야.

유주랑도 지안이랑도 다같이 친하게 지내면 행복해진단다. 해라야!

너랑 나랑만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어린 친구들이 많이 읽고 더 많은 친구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나갔으면 좋을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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