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주 이야기 - 생명의 잉태와 탄생에 이르는 81가지 신비로움
안나 블릭스 지음, 황덕령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명의 잉태, 탄생, 진화에 이르는 여정을 보면서 지금 이 순간 여기까지 당도해 살고 있는 내 존재가 새삼 소중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0주 이야기 - 생명의 잉태와 탄생에 이르는 81가지 신비로움
안나 블릭스 지음, 황덕령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명의 신비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수십억년전 바다에서 시작되었다는 생명의 탄생-당시에는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말종류라는 설이 있다-으로 지구상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아마 지금 현존하는 생명의 시조는 하나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진화를 거듭하면서 개성을 가진 종으로 변이, 진화되어왔고 인간도 그렇게 여기까지 당도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35억년 전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되었다고 하니 지금 여기에서 이 글을 쓰는 나의 역사도 그 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흠 훌륭하다. 어찌되었든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생명체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후손을 이어왔다.

암수 한 몸인 경우도 있고 인간처럼 암컷과 수컷의 세포가 만나 착상을 거쳐 대개 암컷의 몸에서 성장하여 태어나거나 드물지만 수컷의 몸에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선택으로 후손이 이어졌는지가 바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일 것이다.


그동안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명들이 다 살아남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룡도 전멸했고 인류의 조상이 될 뻔했던 네안데르탈인도 멸종했다. 그러니 살아남은 생명체의 존재는 위대하다.


문어는 알을 품고 새끼가 부화할 때까지 먹이활동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부화가 끝나면 죽는다. 사마귀는 자신의 몸을 새끼의 영양분으로 쓰게하고 죽는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닐텐데 어찌 생명들은 그렇게 후손을 남기는 법들을 이어왔을까.

그러니 신비하고 놀랍지 아니한가. 그리고 알을 낳아 부화를 하든 인간처럼 암컷의 몸을 빌어 태어나든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 한다는 것도 그렇다. 딱 그 정도가 되야 탄생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악어가 알을 낳고 모래언덕에 묻을 때까지도 성별이 정해지지 않는단다.

사실 인간도 세포분열의 어느 단계까지 성별이 정해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은가.

악어들의 성별은 주변 온도에 의해 결정된다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 성별이 결정될까.


대체로 생명체들은 자신의 후손에게 헌신적인 편이다. 종을 잇기 위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돕게 설계가 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태아는 엄마에게서 많은 영양소를 가져오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엄마는 태아가 가져갈 수 있는 자원의 양을 제한한다고 한다.

나도 자식을 낳았지만 몸에 좋다는 것을 먹으면서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노력했지 적당히 가져가도록 제한한 기억은 없다. 그냥 몸이 기억하고 스스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그게 더 많은 후손을 낳고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니 정말 교묘하고 지혜롭지 않은가.


인간보다 오래 산다는 거북이같은 종도 있지만 인간도 다른 종에 비하면 수명이 긴 편이다.

더 이상 후손을 이어갈 수 없는 몸이 된 할머니가 오래사는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정확한 이유까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데 손주를 돌보면서 딸이나 아들이 더 많은 후손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기 위한 과정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연구가 흥미롭다.

과연 지금의 생명들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고 살아남을까.

어쩌면 많은 종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종들이 탄생될지도 모른다.

기후위기로 인해 멸종하는 종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인위적인 간섭이나 우주질서의 파괴가 없다는 전제하에 미래의 생명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너무 궁금하지만 지금의 우린 확인할 방법이 없다.

생명의 역사를 돌아보는 과정들은 너무 재미있고 새삼 지금 내 존재가 위대하다고 느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자는 알고 있다 - 5500명의 죽음과 마주한 뉴욕 법의조사관의 회고록
바버라 부처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국 범죄 드라마를 보면 경찰과 함께 꼭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법의조사관'들이다. 살인사건이든 자살사건이든 시신이 있는 현장이라면 반드시 참관하게 정해진 미국의 법제도로 인해 생긴 직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프로파일러'나 '법의학자'가 비슷한 일을 하긴 하지만 미국처럼 '법의조사관'이란 직업은 따로 없고 반드시 참관해야 하는 규정도 없는 것으로 안다.



한 때는 알콜중독자였다가 뒤늦게 컬럼비아 대학 공중보건학을 전공하고 법의조사관이 된 바버라 부처의 경험담을 담은 회고록이다.

대개의 인간들은 죽음의 현장을 두려워한다. 언젠가 자신도 그 길을 가게 될테지만 특히 참혹하게 죽음을 맞은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이서진이 등장하는 '뉴욕 뉴욕'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뉴욕의 다양한 얼굴을 보았었다.

구역별로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도시!

바로 그 뉴욕의 90대 초반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회고록은-거의 30년 전 이었다-

어마무시한 맨션에서 발견된 시신앞에서 화려하게 걸린 그림을 감상하는 저자의 모습과 땅굴같은 곳에서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난 노숙자의 시신을 조사하는 장면이 교차되면서 뉴욕의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덕에 현장을 함께 조사하는 형사들이나 경찰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알았다고 했다. 때로는 무례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죽은 가족으로 인해 슬픔에 빠진 유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실수와 경험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죽은 시신이 전하고자 하는 마지막 모습, 메시지에 주목하는 저자의 열정에 감동하게 된다. 나라면 절대 못 할일이다. 총에 구멍이 뚫리고 칼에 난자당하고 화재로 그을린 시신을 제정신으로 마주하다니...이건 소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선해서, 도저히 범인같지 않아서 놀랍기도 하다. 심지어 어린 소녀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90대에는 지금처럼 DNA기법이 발달하지 않아서 범죄 현장에 남은 흔적만으로 범인을 추적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 방면은 대한민국이 최고지. 아주 적은 체액만으로도 유전자를 가려낼 수 있는 지금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머리카락을 한웅큼이나 채취해야 했다니, 그런 범죄자를 어르고 달래서 얻어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책을 읽거나 내가 애정하는 '용감한 형사들'을 보거나 할 때면 나는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다시 깨닫는다. 맹자의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겨우 오늘 오전에서야 이란과 미국이 잠정적으로 휴전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인간은 그런 존재이다. 길지 않은 평화를 못견뎌하고 못살게 굴고 심지어 죽여 없애야 희열을 느끼는 존재. '전남친'들의 스토킹 범죄가 하루 걸러 벌어지는 현실에서 내가 '성선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누군가는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고 범인을 잡아들어야 한다.

그나마 혼탁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정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퇴직하고 이렇게 회고록을 쓰거나 강연을 한다는 저자가 만난 수많은 영혼들이 안식을 찾았으면 했고 저자에게도 평안의 시간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동안의 노고에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의 버릇
신모래 지음 / 든해 / 2026년 3월
평점 :
미출간


현대판 '어린왕자'를 읽는 느낌이랄까. 이어지는 스토리도 없지만 그 때 그 때 상황을 그려가면서 알려주는 방식이 조금 낯설기도 한 산문집이라고나 할까.

'우' 저자 자신인가, 아님 자아의 표현일까. 아님 자신 이외의 다른 누구일까. 정확히 모르겠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나'

작지만 가엽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나'와 그의 곁을 지키는 '우'와의

대화는 조금 쓸쓸하기도 하고 동화같기도 해서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 집이 어두워졌을 때, 나도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것 같아서 무서웠다.

'우'도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것.

아마 '나'에게 우는 수호신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지만 그리지 않는 걸 보면 두려워진다고 했다. 그런 '우'를 보면서 억지로라도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겠지.


몰가베이커리의 영수증은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외에 지혜의 말이 담긴 영수증이라니..

요건 굉장한 팁이다.

'안전한 곳에 닿으려는 자신을 나약하다 생각하지 말라'

'눈물은 전부 흐르도록 두어라'

'만족할 때까지 충분히 스스로를 돌보라'

어떤 철학자가 빵을 굽고 조언까지 곁들어 파는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야 거기가 어디니?


'우'가 떠난다해도 잊지 않겠노라고 네가 왜 가야 했는지도 이해한다고 토닥이는 마지막 장면은 마음이 슬퍼지는데.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받침이 없어 영원히 뻗어나갈 것 같은 이름 '우'

어김없이 돌아올 '우'를 떠올리며 안심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삶으로 다시 날아오르기
빌헬름 슈미트 지음, 강민경 옮김 / FIKA(피카)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전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건물과 건물사이에는 불빛이 넘실거렸고 가끔 버스킹을 하는 연주자들이 보이기도 했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한 장면들.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동안의 삶이 너무 속박되었던가. 그래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상상을 했던걸까. 꿈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 자유로움속에서도 계속 집을 찾고 있었다.


시계를 보면서 일어나고 씻고 밥을 먹고 집안을 치우고 은행이나 시장을 가기위해 외출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식사준비를 하는 일상이 반복된다. 아주 가끔 오래된 골목을 산책하거나 그림 감상을 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기도 한다.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저자는 삶은 그네를 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네 재미있는 놀이이다.

잘만 구르면 높이 날아올라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이고 상쾌한 바람까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오름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것이 또한 그네타기이다.

내리막이 예정된 오름은 마냥 행복만 느낄 수는 없다. 내리막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수많은 길을 만나게 되고 내 선택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도 한다.

곧게 뻗은 길을 만나기도 하고 빙 둘러서 가야하는 길도 만날 수 있다.

에움길을 만나면 몇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후퇴는 싫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잠시 뒤로 물러나면 어느새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경험이 위로가 된다.



'인생은 기쁨과 슬픔, 열정과 고요가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그네와 같다.' 그래서 한 때 빛났던 사랑도, 최고점의 성공도 반드시 하강이라는 굴곡을 만난다. 정점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은 실패나 추락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런 삶의 리듬이라고 여기면 견디기가 훨씬 쉬운일이 될 것이다.

누구나 겪는 정점과 내리막의 길. 그래서 나에게만 특별한 추락이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이 큰 위로가 된다.


그네가 흔들리면 그저 그네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구르려고 애쓰지 말고 바람이 흔드는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세차게 불던 바람이 잦아지고 그네의 움직임도 멈춰질 것이다. 그렇게 긴장이 풀린 몸은 다시 힘을 내서

발구르기를 시작하면 된다. 그래서 결국 다시 날아오르면 된다.

정점의 순간에 얼마나 머무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아래도 떨어지는 힘이 크면 다시 날아오를 힘도 커진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정점을 오르는 법을 배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오르내리는 삶 속에서 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나는 이미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을 날았다.

큰 상자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육실에 갇힌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그 공간은 컸고 화려했지만 그와 나는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날아오르지 못했다. 그게 엄청난 희열을 주었다. 꿈인듯 현실인듯 세상을 날아다니는 내가 너무 특별한 존재여서 행복했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지만 꿈에서라도 상상에서라도 꼭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를...존재감 뿜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