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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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만은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기도 하다.

하지만 예기치 않는 사고를 겪어 죽음을 마주한다면 그 공포는 어마어마 할 것이다

흔히 '자다가 죽는 복'이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주에 먼지 한 톨 보다도 못한 존재이지만

죽음만큼은 평화롭게 맞이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배를 탔다가 혹은 비행기를 탔다가 갑작스런 사고로 죽음을 마주하기도 하고 산에 올랐다가 혹은

폭우에 휩쓸려 죽음직전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고작 일 분의 시간이 죽음과 삶을 가르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거친 파도에 휩쓸려 망망한 인도양에 떨어진 남자가 살 가망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자신이 바다에 떨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어려서부터 바닷물이 안방같은 곳에 자란 사람이라고 해도

일곱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간절한 그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난데없이 거북이라니...이런 이야기는 동화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몇 백미터의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려는 순간 그의 몸을 지탱해준 거북이가 나타났으니 분명 전생에

큰 복을 지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배가 돌아왔다 되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절망감은 오죽했을까.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할까. 거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죽음의 경계를 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이 살아왔던 시간들이 그 짧은 순간에

파노라마처럼 스친다고 한다. 먼 곳의 이야기일 것만 같은 죽음이 코 앞에 닥쳤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갑작스런 폭우로 진흙속에 휩쓸린 남자는 자신의 발 밑에 단단한 나무조각을 딛고 진흙뻘을 헤쳐나온다.

아마 그 나무조각이 없었다면 틀림없이 저승사자를 만났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기적같은 삶이 있다는 것을 본다. 그렇게 기적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결코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하늘을 움직이고 운명을 다듬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시 삶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삶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하긴 자신에게 온 행운이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남은 시간들이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오늘 하루도 그들에게는 간절한 시간일 것이다.

'우리는 이들 속에 잠시 살다 가는 작은 미물. 그 동안 섬세한 이 자연의 거미줄을 흐트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선한 마음을 다하면 하늘과 바다는 온작 힘을 다해 우리를 도와준다.' -57p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간절히 기도하면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준다...고.

지금도 기억하는 서해페리호사건의 생존자는 몸속에서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강력한

삶의 의지가 도저히 깨기 어려울 것 같은 선실 유리창을 깨고 살아남았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동안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건강한 태권도 사범이었지만 감전사고로 팔을 잃은 남자는 왜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닥쳤나 끊임없이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중에서 자신에게 전신주에 걸린 연을 떼어내달라고 부탁했던 소년의 마음이 되어 자신을

바라보고 나서야 평화를 얻었다. 뭐든 다 해낼 사람처럼 보였기때문에 나에게 기댄 것임을...그 아이는 나를 헤치러

온게 아니었음을...

 

우리는 불행의 원인이 남에게 있다고 미루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불행조차도 껴안는 순간 더 이상 불행은 힘을

쓰지 못한다. 사선을 넘을 뻔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지금 이 살아있음을 감사한다.

'일 분 후의 삶'에도 내가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 인생이다. 언제든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할 소중한 시간,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한 이유이다.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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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강지영 지음 / 네오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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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갑작스럽게 날씨가 추워진 오늘 하필이면 이 책으로 온 몸이 으슬거린다.

띠지에 나온 저자의 얼굴은 이 소설의 주인공 단아름다운만큼이나 고와 보이거늘 어찌 이리 섬뜩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긴 지금 세상이 소설속에 끔찍한 일들은 비일비재 하니까 충격적이라고 할 것도 없겠다.

살해현장을 청소하는 직업이라니..분명 누군가 하긴 해야 하는 일이지만 한 번도 실제하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하루에도 몇 건아니 몇 십건씩 살인사건이며 자살사건이 벌어지니 아마도 이런 업체는 한 두군데가 아닐 것이다.

150이 조금 넘는 키에 못생긴 얼굴을 한 이경은 복권당첨에 목숨을 건 아버지의 허무맹랑한 꿈때문에 거덜이 난

집안에 외동딸이다. 그나마 몸마저 허물어져 엄마가 간병인으로 일하는 요양병원에 입원중이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도 사치스럽다고 여길만큼 한 푼이 아쉬운 이경은 결국

아버지가 하던 특수청소업체에서 피비린내를 지우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끔찍한 피자욱과 역한 냄새에 구토가 올라오는 현장이 이경이 넘어야 하는 더러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이제는 그럭저럭 이력이 붙기도 했다.

 

 

늘씬하고 화려한 외모에 돈 많은 부모를 만나 아쉬울 것 없어 보이는 단아름다운이 초라한 원룸에서 육신은

이미 썩어 문드러진 채 발견된다. 값나가는 물건으로만 채워진 원룸을 청소하던 중 이경은 침대밑에 가지런히

모아져있던 스노볼하나를 집어들고 집에 온다.

그 날부터 이경은 희한한 꿈을 꾸게 된다. 곽씨 아저씨 말대로 죽은자의 영혼이 스노볼에 따라 붙은 것일까.

 

아름다운 엄마와 커다란 집에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가던 다운이.

'엄마 나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꿨어. 내가 키작고 못생기고 여자가 되어서 억세게 청소하는 꿈.'

이렇게 이경의 꿈에는 다운이가 다운이의 꿈에는 이경이가 실리면서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해괴한 사건이 시작된다. 

 

다운은 염낭거미같은 다운의 엄마에게 자신의 화려한 삶을 위한 먹잇감에 불과했다.

이미 뱃속에 잉태됨으로써 전과자가 될 엄마를 구한 아이였던 다운은 엄마가 죽지 않는 한 염낭거미가 쳐 놓은

거미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경이 일하는 청소업체의 남 사장은 오래전부터 다운의 엄마를 알고 있었다.

거짓말로 위장된 삶을 살면서 자신의 뼈와 살을 나눈 자식마저도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여인!

 

 

이경은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의 병원비를 위해 힘든 삶을 살면서도 악과 타협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묘하게 자신의 사주를 공유한 다운은 어여쁜 모습과는 다르게 자신의 엄마가 지닌 악이 숨어있었다.

서로의 꿈을 오가며 살인사건과 자살사건을 쫓던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다.

못생기고 가난한 이경과 화려하고 부유한 다운은 지금 자신의 현실이 싫다. 수면제를 이용하든 우유주사를 이용하든

잠에 빠져들고 싶다. 이경은 자신이 살아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다운의 삶이, 다운은 이미 저질러진 자신의 악을 감추기 위해

맛있는 잠에 빠져든다. 이렇게 서로가 조금씩 잠식해가며 밝혀지는 비밀은 놀랍기만 하다.

 

무연고 시신이나 살해된 시신을 이용하여 만병통치약을 만들어내는 왕태봉과 고향친구인 남사장간의 공존과 배신.

특히 법을 전공한 사람중에 사기꾼이 많다더니 경찰출신의 남사장은 이 모든 사건에서 전직을 이용하여 악(惡)의 축인

다운의 엄마와 협잡하는 인간이다. 요즘 보도되는 경찰들의 범죄를 보면 권력이 악으로 작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남 사장은 자신의 악행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고는 니들이 다 쳤잖아. 돈 몇푼 쥐여주고 살려달랄 땐 언제고, 지금 와서 나만 쓰레기 취급을 하는 거냐고?"

과연 살인을 한 이들이 남 사장보다 더한 쓰레기일까?

 

나도 가끔은 다운이처럼 아름다운 육체를 꿈꾼다. 어쨋든 인간들은 보이는 것만 보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경은 다운의 육체를 빌어 재생된다.

'어디로 가든 나는 쉬지 않고 짝짓기를 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알을 낳으리라 결심했다. 그 것만이 원죄를 잊지않은 채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316P

 

글쎄 못생긴 육신을 하고 별볼일 없는 인생을 오랫동안 사는게 나을까

아니면 아름다운 육신을 하고 화려하게 짧고 굵게 살다 가는게 나을까.

이미 다운은 수많은 알을 낳아 번식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육신속에 숨어 우리들을 속이면서.

 

서로의 꿈으로 유형하기 위해 하품을 하던 이경과 다운의 하품은 맛있었다. 그 것만이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때로 꿈은 인생을 버티게 하는 마법이다. 하품은 그 길로 들어가는 레드카펫같은 것. 나도 다운의 몸을 빌리고 싶다.

아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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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의 시대 - 역사를 움직인 12명의 여왕들
바이하이진 엮음, 김문주 옮김 / 미래의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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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후 정치권을 가진 것은 거의 남성이었다.

원시국가에 모계사회가 존재했었고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는 모계사회가 있다고는 하지만

인류의 역사이후 남성위주의 사회였던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인류사에 확실히 족적을 남긴 여왕들이 있었다.

물론 왕의 핏줄을 이어받아 이미 왕이 될 예정이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측천무후처럼 타고난 신분은

미천하지만 영악스럽게 치고 올라간 제후도 있다.

 

우리가 흔히 여왕이라고 말하면 가장 먼저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릴만큼 그녀가 세계사에 남긴 족적은 유명하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인의 후예로서 이집트에 건너와 섭정을 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여왕으로 즉위한다.

그 시대에는 왕족의 보존을 위해 근친결혼이 당연한 시대였고 일단 정권을 잡은 사람은 주변의 정적들을 무참하게

살상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살아남아 여와이 되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카이사르나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아 정치적인 후견인으로 삼은 것은 참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혜롭고 영민한 두뇌도 있었겠지만 어쨋든 남성을 사로잡을 만큼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혹간은 클레오파트라가 전혀 미인이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영화에 나오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미모를 능가했다고

믿고 싶다. 아쉽게 일찍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짧고 굵게 살다간 그녀의 일생이 찬란하게 느껴진다.

 

미천한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태종의 첩으로 궁에 들어가 큰 존재감없이 살다가 다시 고종의 빈으로 부활한

측천무후의 일생을 보면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역대 중국에 여자가 제후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그 시대에 기쎈 공신들과 왕족들을 누르고 제왕의 왕관을 거머쥔

그녀의 이야기에 절로 박수가 나온다. 하지만 폭정을 통해 황권을 공고히 하려했던 점과 문란했던 사생활은 오점일 수

있겠다. 그렇게하지 않았다면 중국을 호령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해해 본다.

북유럽의 치열한 정치적 투쟁속에서 강인한 지혜를 발휘하여 자신만의 특별한 발자취를 남긴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의 족적은 특히 존경스럽다.

아버지 쿠스다프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크리스티나는 정신병에 걸린 어머니 마리아 왕후를 돌보며

학식이 풍부한 여인으로 인문학과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오랜 전쟁으로 지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전쟁을 종결시키고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낸 일도 참으로 현명한 판단이었다.

프랑스같은 이웃나라에 비해 문화예술의 빈약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사재까지 털어가며 노력한 안목또한 아름답다.

크리스티나가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서른이 되기도 전 첫사랑이었던 카를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멋지게 퇴위를

한 것이다. 물론 신교를 믿는 조국의 종교관과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설도 있지만 인간이라면

권력의 욕망에서 빠져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기에 그녀의 선택은 그 후 나타난 수많은 독재자들과 비교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수많은 전쟁과 정적들이 득실거렸던 시대에 왕으로 군림했던 멋진 여인들을 보니 한편으로 부럽고

한편으로 애틋함이 느껴진다. 정치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기도 하고 측천무후처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친자식을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죄를 짓기도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여인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여자대통령이 나올만큼 고루한 인식의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수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인물로 역사에 심판을 받을 지 스스로 되묻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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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화양연화 - 책, 영화, 음악, 그림 속 그녀들의 메신저
송정림 지음, 권아라 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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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를 쓴 쌩텍쥐베리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우리 인생이 사막이라면 사랑은 바로 우물이 아닐까.

인생에 있어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은 바로 사랑에 빠졌던 그 순간이 아닐까 싶다.

 

곡예사의 딸로 태어나 험난한 인생을 살았던 에디뜨 피아프는 평생 많은 남자들과 사랑을 나눴고 

가장 사랑했던 남자 마르셀을 잃고 절망했다. 남은 생애 동안 그 남자를 그리워하며 죽는 순간까지

후회하지 않노라고 노래했던 그녀를 그나마 붙들어 준 것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I'm a fool to want you'라는 노래가사를 듣노라면 거대한 밤바다에 홀로 앉아 희미한 달 그림자를

바라보는 여인의 잔상이 떠오른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표정으로 혼을 실어 '나는 당신을 원하는 바보랍니다...'

라고 절규하는 여인, 바로 세 번의 불행한 결혼과 다섯 번의 감옥행으로 비참한 삶을 살다가 마흔넷의 젊은

나이로 숨진 빌리 홀리데이의 모습이다.

 

에디뜨 피아프나 빌리 홀리데이처럼 듣는이의 영혼을 울리는 노래는 바로 그녀들의 불행한 삶과 그렇기에

더욱 갈구했던 사랑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들에게 가장 빛나는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가장 사랑하는 이를 만났을 때가 아닐까.

 

 

나에게 '화양연화'는 스물 셋의 어느 봄날 문득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충무로의 길을 걸을 때였다.

쇼윈도에 비쳐진 내 모습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긴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오늘을 기억할 거야.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임을...'

물론 그 순간 내 영혼도 충만했었다고 자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부족한 것들을 압도하는 젊은 날의 빛나는

자신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베빈다'의 노래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에서 오직 다시 당신을 사랑하겠노라고 외친다.

그녀의 외침에 나는 다시 그 스무 살의 나이로 돌아가 철없어서 무모해서 놓쳐버렸던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늙는다는 것은 머리가 하얘지거나 주름살이 느는 것 이상이다.

'이미 때는 너무 늦다. 승부는 끝나 버렸다. 무대는 완전히 다음 세대로 옮겨 갔다고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노화에 따르는 가장 나쁜 것은 육체가 쇠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본문 중 앙드레 모루아의 인용문-

 

나이를 먹어가는 일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오늘이 내 남은 생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날임을 인식 하는 것.

바람에 흔들리고 고통스러워도 그 속에서 설렘을 발견하고 다시 한번 사랑에 빠지는 것.

그 것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진정한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닐까.

 

 

찬바람이 옆구리를 파고 드는 요즘 시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한 가슴을 부여안고 읽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책이다.

책에서 영화에서 그림에 이르기까지 쓰고 그리고 노래불렀던 이들의 혼을 불러내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를 묻는 그녀에게 불려나온 이들이 하나같이 외친다.

'사랑했던 순간!' 심지어 고통과 아픔이 같이한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이었노라고.

 

'자꾸 슬퍼지는 것. 자꾸 눈물이 나는 것. 그것은 곧 우리가 생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아주 작은 일에도

울컥 치미는 눈물, 그것이야말로 우리 생의 기쁨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울고 계신가요? 지금 흘리는 그 눈물은

당신 삶의 상처에 붙이는 아름다운 반창고입니다.'- 본문중에서

 

이 글을 읽고 울컥 눈물이 솟구친다. 그동안 숨겨왔던 슬픔들이 고통들이 와르르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자신을 안아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어느 한 순간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다며 다독 다독 나를 토닥이는 것만 같아 차올랐던 슬픔이 가라앉는 것만 같다.

분명 나보다 몇 살 쯤 위에 있는 것 같은 언니가 나를 '다 괜찮다'하면서 지긋이 바라다 보는 것같다.

문득 고였던 슬픔이 모두 빠져나간것 같은 오늘 하루가 남은 내 생의 가장 젊고 소중한 '화양연화'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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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지 말아요 -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
정여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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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쯤 건너온 내게 37편의 사랑의 메뉴가 펼쳐져 있다. 

누구나 한 번 이상은 사랑을 한다. 무수히 많은 색깔의 사랑들이 우리들의 인생을 스쳐간다.

내게 왔던 사랑은 어떤 색이었을까.

어딘가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흘러가는 삶을 살 것만 같은 '여울'이란 이름을 가진 저자의 사랑이야기가

찬바람이 스산해진 이 가을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30세에 세상을 떠난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 한 작품만을 남겼다고 했던가.

유일한 작품의 존재성을 드높이기 위해 더 이상 펜을 들지 않았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광활한 언덕에 비밀을 간직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이 폭풍처럼 몰아쳤던 기억과 다시 만났다.

 

 

'안타깝게도 캐서린은 한 번도 자신의 뜻을 온전히 펼쳐보지 못한 채 죽어간다. 아직도 우리 시대의 수많은 캐서린들이,

'렛 미 인!을 외치며 자신의 생을 안타깝게 탕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22p

 

 

죄인에서 시장으로 거듭난 장 발장의 사랑은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아닌 자신보다 더 아프고 더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불멸의 사랑이었다.

 

유부녀이면서도 한 남자를 불꽃처럼 사랑했고 숨져갔던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은 여전히 여자에게 불공평하고 편협함을

들이대는 세상을 향한 전투같은 사랑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전당포를 운영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 알료를 도끼로 살해하고 끝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사랑이 결국 구원으로 승화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가난한 집안의 딸인 소냐는 창녀가 될 수 밖에 없었고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를 도와줌으로써 자신의 죄에 대한 면죄부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연민으로 시작된 감정은 애정으로 변하고 결국 그녀에게 고해하고 만다.

소냐를 통해 속죄의 욕구를 느낀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하고 시베리아로 유배의 길을 떠나 소냐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바로 이 것이 사랑의 힘이 아닐까. 사랑의 궁극의 목표는 바로 구원같은 것들.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나름대로 빛나는 모습의 사랑이 펼쳐진 책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명작들과 영화들을 만나니 사그라들었던 감동이 다시 고개를 든다.

물론 읽은 책보다는 읽지 못했던 작품들이 더 많아 부끄러움이 더하긴 했지만 푸른 그 빛만으로도 가슴이 시린 가을날,

사랑의 다채로운 빚깔들은 내 젊은 날의 사랑을 기억하게 한다.

나는 어떤 사랑이었던 걸까. 마흔이 훌쩍 넘어 갑자기 찾아온 사랑때문에 평생 그리움으로 살아야 했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로버트와 프란체스카의 짧고도 강렬한 사랑이 한 번쯤은 남아있지 않을까.

그런 사랑이 찾아온다면 나는 안나 카레니나처럼 그렇게 전투같은 사랑을 치뤄낼 수 있을까..곰곰 생각해본다.

그저 그렇게 이제는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물처럼 고여있는 내 삶이 '잘 있지 말고' 가끔은 소용돌이같은 사랑이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이 설레임은 아직 사랑을 할 능력이 남아있다는 뜻은 아닐까. 고여있던 삶이 출렁거리는 느낌이다.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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