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의 힘 - 현경 마음 살림 에세이
현경 지음, 박방영 그림 / 샘터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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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는 동안 행복하고 편안했던 날들보다는 아프고 외롭고 고단했던 날들이 더 많았었다.
유독 올 봄부터 우리를 아프게 했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아서일까...쉰 넘어 어렵게 넘어온 인생길이
또다시 묵직하게 짓누르는 것만 같았던 나날이었다.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의 종신교수로 기독교 신학자이며 불교와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작가는 매월 샘터에서
만나온터라 친구같았다. 그녀의 이름이 필명이 아니라면 나와 종씨라는 것도 친밀감을 느꼈던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마치 차가운 마음에 봄빛을 뿌리듯 들꽃과 나비가 가득한 봄같은 책을 받아드니 일단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드는 것만 같다.



소박한 내 집 돌담울타리에 수줍게 피어있는 사랑초조차 우주의 소중한 기운이라는 것이 느껴질만큼.
'연약함의 힘'이라는 제목보다는 '아름다움의 힘'이나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 더 맞게 느껴질만큼 그녀의 글에는 온통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들뿐이다. 
가끔 늙어가고 있는 시간이 느껴져 속상하다는 투정이 있지만 그 것조차 늙어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복선일 뿐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우주와 지구,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은 온통 사랑과 기적의 모습들이다.
인간에게 종교는 절대적이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종교는 구원을 넘어서 소통과 치유의 디딤돌 같기도 하다.
흔히 종교학자라고 하면 어딘가 꽉 막힌듯한 맹신과 얽매인 부자유가 느껴지지만 그녀에게는 온우주의 모든 사물과 소통하는 
자유와 발랄함이 느껴진다. 그녀가 믿는 하나님의 세상도 자비를 알리는 부처의 세상도 공평하게 보여 너무도 아름답다.
내가 원했던 참 종교인의 모습이 바로 이러했다.
종교가 교회안에서만, 절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 그녀처럼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 바로 종교여야 한다는
내 철학과 너무나 맞아 떨어진다.



그녀가 만난 인권운동가들이나 심리치유사들, 그리고 여성운동가들의 모습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아니 그녀의 눈으로 본 그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마치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는 것처럼.
얼마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많이 슬펐노라고 하는 글에서는 얼마전 세상을 떠난 여동생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어쨋든 남아있는 이들에게는 슬픔이다.
좀더 신과 가까운 세상에서 더 멋진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장례식에서 죽음은 빈곳을 내어주는 일이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위로가 되었다는 말에 나 역시 위로가 된다.
채우려고만 하는 삶에서 더러는 이렇게 빈곳을 내어주어 다시 충만케 하려는 우주의 섭리에 슬픔을 잊는다.

아직도 공부를 멈추지 않고 또 다른 도전을 하는 모습도 대단하다.
분단의 조국과 단절된 사랑에 대한 그녀의 염원도 아프게 공감된다. 
일 년에 한 두번 떨어진 기운을 보충하듯 고국에 돌아온다는 모습에서는 이국에서의 외로움과 고독이 느껴져 안스러웠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샤먼이든 쿠바의 샤먼이든 모든 걸 껴안는 그녀의 종교관은 지금 지구 곳곳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앞세워
총을 쏘는 맹신의 폭도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늙어감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가끔은 죽음을 연습해보면서 그녀와 비슷하게 이 세상을 살다갔으면 좋겠다.
얼핏 그녀의 얼굴을 보니 어차피 신과 인간의 건넘돌 역할이 팔자임을 알게된다.
절대 연약할 수 없는 그녀의 사랑과 아름다운 힘이 내게 힘이 되주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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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씨앗일까? 2 샘터 솔방울 인물 15
황병기 외 지음, 유준재 그림 / 샘터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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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알의 씨앗이 있어요. 과연 이 씨앗은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을까요?
여기 일곱 선배의 꿈과 도전의 이야기가 있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은 우주의 기가 모여져 소중하게 이 땅에 오게 되었답니다.
각 분야에서 인정받은 멋진 선배들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씨앗이었을거에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박완서작가님도 마흔이 넘어 등단하시고 작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뒤늦은 나이에 '늦깍이'로 시작한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님의 이야기는 나이와 꿈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원색의 한복이 유행하던 오래전에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옷감으로 옷을 지어내어 찬사를 받았던 이영희씨는 어려서부터 바느질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바느질과 염색의 세계를 알았다고 하는데요.
그렇지만 그저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던 주부였는데 혹시나 빠듯한 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시작한 이불장사가
오늘의 한복디자이너의 첫걸음이라니 놀랍기만 합니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좀 더 멋진 작품을 만들기위해 공부하고 자료를 찾아다니는 열정은 우리 어린 친구들이 꼭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때문에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소년이 집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곤충에 대해 관심을 갖고 꾸준하게 공부하고 채집하여 진짜 박사들에게 '곤충 박사'의 호칭까지 들을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다니 그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요.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어떤 분야든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존경스럽습니다.



우리나라에 여성 민항기 기장이 있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이제 어떤 분야든 남녀의 구분이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직에도 여성이 자리를 잡아간다니 같은 여성으로서 뿌듯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남자들도 힘든 훈련을 이겨내고 오랜 비행시간을 견뎌야 하는 신체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말 무엇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 길을 찾았던 신수진씨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비행기조종사를 길러내는 민간학교가 없다는데요. 미국까지 날아가 홀로 편견과 싸우며 꿈을 이룬 그녀의 비행기를 
타보고 싶어집니다. 머지 않아 많은 여성기장들이 나오리라고 기대합니다.

서울대 법대까지 진학할 정도로 뛰어난 수재였던 황병기씨도 우연히 접한 가야금에 빠져 홀대받던 국악을 우뚝 일으켜세우셨죠.
쉬운 길이 있음에도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 과감하게 그 길을 포기한 그의 선택 덕분에 우리 국악을 세계에 알리는 업적을
남기게 된 것이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도 컴퓨터에서 한글을 치고 있는데요. 이 글꼴이 아주 어렵게 우리에게 당도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1980년대 초까지도 이런 글꼴을 일본에서 수입을 했다니...정말 믿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한글 디자이너 석금호씨 역시 이런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고난의 길로 들어섰답니다.
한글 글꼴을 개발하고 공급하는 그의 열정에 힘입어 이제 우리는 이렇게 편하게 그의 노력을 누리고 있네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작은 텃밭에 씨를 뿌려도 씩씩하게 땅을 뚫고 올라오는 싱싱한 녀석이 있는가하면 영 크지 못하고 죽는 녀석들도 있답니다.
이렇게 자란 싹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지금 무엇이 될지 모르는 우리들의 아이들은 어떤 씨앗을 품고 있을까요.
그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많은 씨앗들이 건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큰 열매를 맺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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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9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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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장마철에는 비가 오지 않더니 뒤늦게 장마가 와서 이른 추석이 걱정입니다.
여물지 않은 과일은 썩어가고 풍년이 든대도 철을 맞추지 못한 과일값은 엉망이 될테죠.
딱 한 걸음 빠른 샘터 9월호로 그나마 늦장마로 푹 절은 마음을 위로해봅니다.



유대의 별이라는 이스라엘이 왜 가좌지구의 팔레스타인들에게 폭탄을 때려붓는지 한숨을 넘어 절망을 느끼는 요즘 '축구수집가의 보물창고'에는 '축구는 총보다 강하다'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1996년 설립되었다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연합 축구팀이 존재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설립목적은 친선경기를 통해 평화의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라는데 이들의 기원도 소용이 없었던 걸까요.
물과 기름만큼이나 섞이기 힘든 이 두나라가 이제는 제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지 않기를...소망합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북한이 방위들이 들고다니는 도시락에 뭐가 들었는지 무서워서 쳐내려오지 못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었는데 요즘은 '중2'가 무서워서 못내려온다는 우스개로 바뀌었답니다. 흠..저도 아들녀석이 중2때 온 세상이 너무 무섭고 외로워져서 도망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 말에 절대 공감했습니다. 하지만 이달의 특집 '우리들의 작은 영웅'에 올라온 어느 댁 중2 아들녀석의 사연은 기특하기만 합니다.
키가 작아 놀림을 당하는 급우에게 '너희는 키가 크지만 나는 너희들보다 꿈이크다'고 말하라고 했다니..대견하지 않습니까.





올 여름 휴가는 어떠셨는지요? 저는 하필이면 때맞춰 강타한 태풍 두 녀석들 때문에 식겁해서 아예 떠날 엄두도 못냈습니다.
저도 남도의 끝자락에 살고 있지만 남도구경을 제대로 못했거든요. 광주역에서부터 시티투어로 도는 코스가 있다니 눈과 귀가 확
떠지는 소식입니다. 거기다 가격도 엄청 착한 9,900원. 11월 30일까지라니...꼭 보고 싶던 조선의 정원 소쇄원과 떡갈비를 위해
꼭 가볼 예정입니다. 



혹시 '비정상회의'라고 보셨나요? 모습만 외국인이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같은 외국인들의 입답프로인데요.
사실 우리말을 사랑하지만 우리말이 은근 어렵다는 거 인정하실겁니다. 저도 '우리말 돋우기'를 볼 때마다 우리말이 이렇게 많고
다양한 뜻이 있는지 놀라는데요. 구뜰하다는 말은 또 처음이에요. 혹시 아시는 분? 암튼 전세계 말들중에 형용사가 이렇게 다양한
말은 우리말뿐일겁니다. 저는 이 다양한 우리말중에 100분이 1쯤이나 사용하다 갈겁니다. 여러분들의 우리말 실력을 확인해보시길..



저는 천주교신자는 아니지만 얼마전 우리나라는 방문하신 프란치스코교황님때문에 무척 행복했었는데요. 늘 천진한 미소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시는 이해인수녀님의 모습을 보니 쌓였던 시름이 다 잊혀집니다. <밭의 노래>라는 시 그림책을 내셨다는데요. 텃밭을 가꾸면서
느꼈던 기쁨을 담았다고 하시네요. 저역시 섬에 내려와 텃밭을 가꾸면서 생명의 경이와 소박한 삶의 기쁨을 느끼고 있는터라 수녀님의 마음이 그래도 전해집니다. 수녀님의 동심을 닮았을 시 그림책 <밭의 노래>역시 챙겨봐야 할 책 목록에 올려봅니다.



달마다 만나는 <샘터>는 말할 것도 없고 샘터에서 만드는 단행본들도 너무 감동스럽고 소중한 작품이 많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모리사와 아키오의 <푸른 하늘 맥주>의 유머가 절로 떠올라 웃음짓게 됩니다. <무지개곶의 찻집>이나 <쓰가루 백년식당>같은 주옥같은 소설도 좋지만 자신의 자선적 에세이인 이 책...포복절도를 각오하고 보셔야 합니다.
혹시 갑갑한 현실때문에 우울하신 분들이시라면 절대 강추합니다. 맥주를 먹지 않고도 책으로도 취할 수 있다는 거.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슬며시 창문을 닫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올 봄부터 여름까지..끊임없는 사건, 사고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남은 가을과 겨울은 제발 좋은 일들만 있어서 지치고 놀란 우리 가슴을 좀 달래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조그만 샘터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에 사나워지고 거칠어진 마음을 달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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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고 싶어
클레어 메수드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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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마흔에 이르면 젊음과 이별하는 아쉬움외에도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서글퍼진다.
예를 들면 한 눈에 불꽃이 튀기는 사랑이라든가,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서서히 고립되어가는 무력함,
싱글이라한다면 더 이상 결혼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할지, 출산이 가능해지지 않을 것 같은 초조함등등..
케임브리지의 초등학교 교사 노라 엘드리지는 어느 날 자신의 클래스로 전학온 레자라는 소년을 보고 한 눈에
반하고 만다. 크고 깊은 회색 눈동자와 올리브색 피부, 사려깊은 행동등...자신이 가르쳐온 망나니 아이들과는
다른 품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레자는 얼마전 슈퍼마켓에서 마주쳤던 소년이기도 했었다.
레자에 대한 노라의 관심은 그의 부모인 시레나와 스칸다르에게로까지 넓혀진다.
이탈리아인이면서 설치미술가인 레자의 어머니 시레나는 낯선 이국땅에서의 불안함을 드러낸 채 묘하게 노라의 모성을
자극해온다. 자유분망한 예술가였지만 이국에 대한 이질감때문에 잠시 혼란을 느끼던 시레나에게 노라는 레자의 담임선생이라는
관계를 넘어서 친자매이상의 애정을 느끼고 그녀의 예술활동을 돕게된다.
노라역시 어린 시절 예술가가 꿈이었었다.
하지만 가난한 예술가의 길보다는 현실적인 세계에 우뚝 서라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몇 년전 전신이 굳어져가는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는 그녀에게 예술가적 재능을 물려주었고 언젠가는 꼭 그 꿈을 이루라는
숙제를 남겼었다. 그래서였을까. 노라는 시레나와 함께 작업실로 쓸 스튜디어로 함께 얻게되고 둘만의 공간에서 예술의 교감과 
더불어 묘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게 된다.
시레나의 남편인 스칸다르는 레바논출신의 지성인으로 노라에게 강렬한 성적욕구를 느끼게 해준다.

마흔 둘, 자신의 열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든 '위층여자'노라는 레자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갖지 못했던 모든 것을 바라보게 만드는
위험한 사랑을 투영한다. 레자는 자신이 갖고 싶었던 아이의 모습으로 시레나에게는 성취하지 못한 예술가의 모습으로 스칸다르에게는
아직은 뜨거운 성적인 욕망을...
이제 노라의 생활은 시레나의 가족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가끔 레자의 베리비시터로 시레나의 예술파트너로 스칸다르와는 산책을 통한 감정의 교류로 그동안 결핍되었던 것들을 채우게 된다.
그러던 중 시레나 가족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고 심한 상실감에 1년의 휴직을 신청한 노라는 시레나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과연 노라가 열망하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까.



몇 번의 사랑을 거치긴 했지만 진짜 상대를 발견하지 못한 마흔 둘의 여자에게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시레나가족의 등장은 강렬한
유혹이었다. 서서히 꺼져가는 삶의 등불이 다시 환하게 켜지는 듯한 뜨거운 열정이 그녀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들었지만 결국 세월이
흘러 노라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배신감이다.
파리의 시레나의 전시실에 걸려있던 자신의 낯부끄러운 사진이 몇 년동안 열망했던 사랑이 얼마나 허무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이제는 되돌이킬수 없는 시간들. 
거짓을 삶을 살고 있을 때 다가왔던 사랑 역시 거짓이었던가.



노라는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었노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오랜 망상같은 사랑에서 깨어난 노라는 자신의 인생의 아직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나마 다행스럽다. 늘 모범생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다가온 싸구려보석같은 사랑이 그녀의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외로움이란 이렇게 삶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도둑같은 감정들에게 곁을 내어주게 된다.
시레나의 가족이 계획적으로 노라에게 상처를 주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노라의 사랑과 저울질을 하자면 절대 따라오지 못할 천박한 감정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처럼 보인다.
좀더 견고한 삶을 위한 과정이었노라고 다시 힘을 내는 노라의 마지막 모습이 멋지다.
'그리고 그 분노 덕택에 난 드디어 -하느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우리 엄마의 분노까지 끌어안고서-얼마든지 씨팔, 멋들어지게 살다
죽을 수 있어!' 그러니 두고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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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마리아
다니엘라 크리엔 지음, 이유림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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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이 아직 통일되기 직전인 그 여름 곧 열 일곱살이 될 소녀 마리아의 여름은 뜨겁기만 하다.
DDR(통일전 동독)의 시골에서 자란 마리아는 40여분 떨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나와
브렌델 농장에서 묵고 있다. 소련으로 떠난 아빠는 열 아홉살 먹었다는 소련여자와 곧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버려진 엄마는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자 아무 하는 일 없이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다.
10학년인 마리아는 학교가는 일도 시들하고 12학년인 요하네스와 사랑을 나누는 일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브렌델 농장의 주인이면서 요하네스의 아버지 지크프리트와 그의 아내 마리안네는 농장일을 하고 가게일을 하느라
바쁘고 할머니 프리다는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거든다. 그리고 조금은 알 수 없는 인물인 머슴 알프레드가 있다.
할머니보다 세 살 아래인 알프레드는 바로 이 농장의 일꾼사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 농장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어려서는 프리다가 남동생처럼 업어 키웠고 오래전 프리다가 결혼을 할 무렵 잠깐 행방불명이 되었던 적이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사랑하던 프리다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아
가출을 했었던 것이라고 수근거렸다고 한다. 결혼 5개월여 후 태어난 큰 아들 폴커가 사실은 알프레드의 아들일 것이란 
소문과 함께. 둘째 아들인 하루트무트는 통일전에 사상범으로 지명되어 옥살이를 하다가 서독으로 팔려간 상태였다.



겉보기에 브란델농장은 일거리가 넘치지만 부지런한 가족들이 서로 힘을 합쳐 살아가는 평화로운 곳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브란델농장에 손님처럼 느껴지는 마리아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손에 끼고 한가롭고 다소 게으른 일상을
보내는 소녀였다. 이웃 헤너농장의 헤너를 알기전까지는.
헤너는 마흔 살의 남자로 술주정뱅이로 소문이 나있다. 마리안네의 가게에 와서 수다를 떠는 모습을 간혹 보긴 했지만 그가
마리아의 삶에 들어오리라고는 전혀 짐작되지 못했다.
마리와의 엄마와 마리아가 낡은 자동차를 타고 브란델 농장으로 돌아오던 중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나고 우연히 사고를 목격한
헤너가 모녀를 도와주게 된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고 헤너는 마리아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마리아를 가지고 만다.
이미 요하네스와 사랑을 나누었던 마리아가 왜 헤너를 거절하지 않았는지 명확치 않다.
소녀다운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돌적이고 무서운 힘으로 달려드는 우직한 남자의 힘에 굴복되었던 것일까.
그 날 이후 마리아는 몸 뿐만 아니라 마음을 헤너에게 빼앗기고 만다.

졸업을 앞두고 사진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사진에 빠져버린 요하네스는 마리아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다만 몰래 헤너의 농장을 드나드는 것을 수상쩍게 바라보는 알프레드의 음험한 시선이 느껴질 뿐이다.
브란넬 농장에서는 소녀로 헤너의 농장에서는 여인으로 이중적인 생활을 즐기는 마리아.
잠시 헤네가 자신에게 소홀한 것처럼 보이면 슬픔에 빠지고 안달을 하는 마리아. 과연 이런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이중생활에 지친 마리아는 헤너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살자고 한다.
하지만 헤너는 말한다. "정말 외로워본 적 있니...너한테는 아무도 없을 거야. 아무도! 오직 나밖에 없을거야!"




딸또래밖에 안되는 마리아와 잠자리를 하고 사랑을 느꼈던 헤너가 왜 마리아를 밀어내려 했을까.
뒤늦게 어린 소녀의 삶에 뛰어든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까.

마리아가 늘 곁에 두고 아껴읽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헤너와 마리아의 축복받지 못할 사랑이 묘하게 교차된다.
누구에겐가는 사랑이고 누구에겐가는 놀음처럼 보이는 이들의 사랑에 대한 판단은 순전히 우리 몫이다.
통일을 목전에 둔 동독의 사람들이 새로운 문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꿈틀거리듯 일어나는 희망이 섞여있는 불안정한
시절이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완전한 가정에 외톨이처럼 살아가던 마리아를 휘어잡은 것은 뜨거운 몸의 소통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사는 사내에게 모성을 나누어주고 ,자신의 부모는 가지지 못한 따뜻한 가정을 꾸며 함께 온기를 나누고 싶었던
절실한 외로움이 마리아를 헤너에게 이끌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다행한 것은 헤너가 마리아에게 마지막으로 나이다운 삶을 살도록 되돌려보내준 것이다.
마리아는 또래의 남자 요하네스와 통일된 조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여름 마리아의 뜨거웠던 사랑은 그녀의 삶에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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