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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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단순 추리소설이라 하기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숙제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평소 내가 가졌던 부당한 사회규범에 관해 그는 약간의 해답을 제시해준 셈이다.

 

광고회사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든 평범한 회사원 나카하라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강도에게 잃고 만다.

잠시 반찬거리를 사러 아내가 나간 사이에 침입한 범인은 아주 죄도 없는 소녀를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다.

범인은 오래전 노부부를 살해하고 복역중 가석방으로 풀려났던 사내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고 했다.

겨우 몇 만엔을 구하기 위해 살인을 하다니.

그 뒤 나카하라 부부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깊은 상처뿐이었다.

당연히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건은 범인의 변호사의 적극적인 변호로 무기징역으로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고 결국 사형장에 이슬로 사라진 범인.

남겨진 피해자의 가족들이 짊어진 아픔의 무게는 너무나 엄청났다. 결국 나카하라와 아내인 사요코는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혼을 하게 된다.

 

 

 

그렇게 11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카하라에게 형사가 찾아오게 된다. 전부인이었던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이혼 후 초반에 메일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사요코는 아픔을 피하지 않고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

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된다. 반려동물의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던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장례에 참여하면서

사요코의 살해사건뒤에 숨은 비밀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된다.

 

세 살 무렵 병으로 엄마를 잃은 사오리는 일로 바쁜 아빠를 대신하여 살림을 돌보게 된다. 늘 외롭던 여중생인 사오리는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진 한 학년 선배인 남학생 후미야를 알게되고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린 두 중학생의 철없는 사랑은 훗날 커다란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만다.

 

 

 

우리 사회에는 범죄자를 심판하는 법이 존재한다. 법원 앞에서 눈을 가리고 칼과 저울을 든 동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유스티티아(라틴어: Justitia) '정의의 여신'은 법이 만인 앞에 정의롭고 평등하다는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죄를 평가하고 심판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살인한 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가장 합당한 처벌처럼 보인다. 나역시 잔인무도하게 연쇄살인을 하고도 사형당하지 않는

범인들을 보고 분노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막상 범인이 사형에 처해지고도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알고 허탈해진다. 죽은 아이도 돌아오지 않았고 범인에게 사죄의 말도 듣지 못했다.

다만 더 이상 재판에 휘둘리기 귀찮으니 죽게 해달라는 이기적인 답변외에는.

'사형'이 살인자에게 최선이었을까. 사요코역시 사형제도 폐지론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폭력인지를 알리기 위해 자료를

모으면서 커다란 회의에 빠지게 된다.

 



만약 갱생을 확신하고 풀어주었던 범인을 사형시켰더라면 자신의 딸은 죽지 않았을까.



 

 

사형제도에서 유일하게 증명될 수 있는 것은 '범인은 이제 누구도 다시 죽이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라는 답만 얻을 뿐이었다.

단지 그 하나의 증명이라도 피해자의 가족들은 사형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과연 살인자에게 가장 합당한 처벌은 무엇일까.

 

아이를 잃은 부부의 아픔과 11년 후에 아내가 살해되는 기이한 사건뒤에 숨은 비밀을 풀어가는 미스터리의 플릇도 훌륭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금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는 사회에 던지는 숙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살인자의 인권도 보호되야 하는가..하는 의문으로 오랫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나로서는

사요코가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느꼈던 사형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 뿐이라는 결론에 '각각의 사건에는 각각의 결말이

있어야 한다'에 또 다른 숙제를 떠 안은 느낌이다.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른 추리작가와 차별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범인을 쫓는 것을 넘어서 독자에게 또 다른 공을 넘기는 방식.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수 많은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때린 놈은 발뻗고 못잔다지만 실제로 교도소안에는

공허한 십자가를 진 무심한 범죄자들이 수두룩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인간은 인간의 죄를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정하게 처벌할 수 없다...이다.

최근 몇 년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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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10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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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10월은 상달이라 하여 한 해의 가장 큰 달로 여겼다고 한다. 하늘이나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시기도 10월일만큼

계절중에서는 가장 풍요로운 달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샘터 10월호에는 '온누리달'이라는 제복이 붙여있다.

마치 보름달이 둥실 떠오른듯한 풍요가 느껴지는 그런 가을이 다가왔다.

 

 

 

태풍이 물러간 돌담 사이로 호박이 누렇게 익어가고 들판마다 이제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들이 그득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인 '나희덕의 산책'란에 실린 사진 한 점이 마음을 붙든다.

시인의 말대로 폭우와 태풍이 유난했던 여름을 견디고 오롯이 접시위에 올라앉은 결실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이렇듯 자연은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제 할일들을 해내는데 우리네들은 과연 이 가을 무엇을 거두어 들일 것인가. 

마음의 창고를 채워둘 열매하나 거두지 못한 시간들이 문득 부끄럽기만 하다.

 

 

 

샘터를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발행인 김성구님의 칼럼은 늘 촌철살인의 지혜가 들어있어 반갑기만 한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거울을 보면 낯선 여자의 얼굴이 시큰둥하게 나를 바라보는 듯 하고 특히 사진속에 내 모습은 거의 외계인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나만 그런 심란함을 느끼는 줄 알았더니 여기 동지가 있어 위로가 된다고 해야하나 술을 한잔 하자고 해야하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진을 절대 찍지 않는 것으로 내 늙음과 마주하지 않고 있다.

 

 

 

'행복일기'에는 나란히 장인과 엄마와 사는 두 분의 이야기가 실려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 문화는 시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당연한 듯 여기면서도 친정부모를 모시는 일은 왠지 눈치가 보이는 것 같다.

더구나 장모도 없는 장인을 모시고 사는 일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을 터. 

늙은 과부 엄마를 모시고 사는 솔찬히 나이 먹은 딸년의 이야기도 곰살맞다. 나를 낳아준 엄마와 사는 일도 시어머니 모시는 것

만큼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에..하면서도 나를 키워주고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를 키워준 부모를 모시는 일들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자식의 이기심이지 싶어 멀리 계신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보낸다.

 

 

 

서울내기인 내가 늘 그리운 것은 사람냄새나는 장터이거나 옛모습을 간직한 성터같은 곳이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속에는 신촌을 가로지르는 열차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경의선이 폐선이 되고 그 자리에 올망졸망

컨테이너와 노점 천막이 들어서 '늘장'이 생겼다고한다.

땅 값이 천정부지인 서울에서 이만한 공간에 이런 장터를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지역민들의 노고가 고맙기만 하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야하는 행정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런 공간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은 도시민들의 바람이 아닐까.

빌딩 숲 사이로 오아시스 같은 이런 장터 하나쯤 있어야 찌든 삶에도 잠시의 갈피가 되어주지 않겠는가.

 

 

 

시골집을 닻을 내린 후 텃밭에 고추며 마늘을 심고 이웃과 나누는 법을 배우면서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다.

대단한 것들이 아니어도 그 마음은 저울에 달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샘터의 독자들은 이렇게 주고 받는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이번에는 '미니 전기 오븐'이 나왔는데 사실 나도 한번 신청해볼까 싶을만큼 탐이 난다.

너무 큰 오븐은 부담이 되고 이렇게 아담한 사이즈라면 이것 저것 없는 솜씨라도 도전을 해보겠는데..싶어진다.

어느 분이 되었든 꼭 필요한 곳에 가서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단...얼른 서둘러야 한다는 점.

 

이렇게 10월을 먼저 맞고 보니 올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자기 나이만큼 세월의 속도를 느낀다고 하니 나도 얼마 후면 경제속도를 넘어서는 시간을 맞을 것이다.

오늘 하루가 내 남은 삶의 가장 젊은 시간이니 아낌없이 누리고 나누고 후회없이 살 것이다.

10월 상 달! 하늘께 이렇게 잘 살고 있음을 감사하는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그런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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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박사 데니스 홍의 꿈 설계도
데니스 홍 지음, 유준재 그림 / 샘터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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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금과 같은 문명과 문화를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발명가들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어떤 것이든 호기심을 가지고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눈과 재능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사람들은 세상을 바꾼 선각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며 살아야 할 것같다.

데니스 홍은 감사의 삶을 넘어서 스스로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 발명가가 된 인물이다.

지렛대의 원리를 알아보기 위해 거실 탁자위에 있던 유리를 반쯤 끌어내다가 깨먹었다거나 땅끝을 만나보기 위해

밤늦게까지 땅을 팠다거나 하는 일화를 보면 그의 호기심과 적극성은 유달리 남달랐던 것이다.

 

 

 

조그만 몸체에서 소리가 나는 라디오가 궁금하여 해체하거나 TV를 분해하여 못쓰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도 데니스 홍의

부모님들은 야단을 치기는 커녕 그의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공작대를 만들어주거나 직접 실험에 같이 참여하는 등 끊임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다. 아마도 이런 부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로봇박사는 탄생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전국 어린이 과학대회에서 금상을 받기위해 오랜 준비를 하고 평소에도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이렇게 메모하고 그림까지 그려두는

치밀함은 그가 준비된 과학자였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저 영화에서만 나오는 환상의 존재라고 여겼던 로봇을 기어이 만들어내겠다고 결심하는 어린 데니스 홍의 모습을 상상하니

꿈을 그저 꿈으로만 남기고 길을 찾아가지 못한 게으름에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과연 나는 내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가도록 격려하고 기다려주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자녀를 마음껏 뛰어놀게 하세요','자녀를 혼낼 때는 중요한 세 가지 원칙을 꼭 지켜주세요'같이 아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장면에서는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이 떠오르기도 한다.

과연 나는 어떤 부모였을까.

 

 

 

시각장애인이 운전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불가능했던 일을 추진하면서 데니스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를 말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미국에서조차 이 프로젝트는 다소 황당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희열에 빠진 그들의 모습에 그는 앞으로 자신의 꿈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어렵게 발명한 로봇의 원리를 공유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로봇을 갖게 해주었던 것은 바로 그의 이런 소망때문이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처럼 혹시 먼 미래에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면? 하는 상상을 했었다.

인간이 발명한 로봇이 인간을 살상하는 무기가 되거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도움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로봇을 사용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하는 데니스 홍의 말처럼 칼을 무기로 쓸지 음식을 만드는 편리한 기구로 쓸지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몫이다.

'터미네이트'에서는 미래의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의 시초가 되었던 과학자가 스스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파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을 대신하여 구조를 하는 로봇을 만들고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로봇을 만들기 위한 데니스 홍의 지금 노력이 미래의

희망이기를, 그리고 그의 지나온 시간들이 많은 아이들의 꿈이되기를 기도한다. 더 많은 데니스 홍들이 그의 뒤를 따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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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
정채봉 지음, 김덕기 그림 / 샘터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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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하면 먼저 정채봉작가가 떠오른다. 환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평생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맑게 살았던 그가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찡그리거나 심각한 얼굴을 한 것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어린아이를 만나듯 저절로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던 그를 잠언집으로 다시 만나니
고향에 오빠를 만난 듯 반갑고 읽지 않아도 배부른 듯 하다.



돌담을 따라 핀 호박꽃처럼 소박하지만 환한 그의 잠언집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한 틈이 없다'를 보노라니 올해 내내 바람잘날
없었던 마음이 스스르 진정되는 것만 같다.



섬에 내려와 닻을 내린지 어언 5년! 그래서 일까 '환상의 섬'이란 제목에 먼저 눈이 간다.
사철 내내 꽃이 피는 환상의 섬으로 날아간 일벌들이 왜 꼭 죽어서 나오는 괴이한 일이 생겼을까.
" 그 섬에는 겨울이 없습니다. 꽃이 내내 피고 지는 여름만 있으니 꿀을 따로 저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 날의 먹이는 그날로 족한 셈이지요. "
나태해진 벌들은 천재지변에 의한 겨울이 닥치면 저축해 둔 양식이 없어 굶어죽게 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든다.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노후를 위한 재물의 저축도 중요하지만 아직 감정의 여유가 있을 때 위기를 대비하는
감정의 저축도 중요하다는 뜻일게다.



결혼을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정의되지 않는 숙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기어이 결혼을 하고 또 후회하고 원수가 되어 헤어지기도 한다.
"결혼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함꼐 사는 데는 '사랑해'라는 말보다는 '미안해'라는 말이 더 중요하다."
사랑은 3년이 유효기간이라는 '미안해'라는 말은 유효기간이 없는 모양이다.
문득 결혼서약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혹은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같은 말보다
'뚱뚱하고 대머리가 될 때까지'나 '방구소리나 잔소리도 세레나데로 들릴 때까지'라는 말이 더 현실적이지 않냐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한다.
그 때부터 서로에게는 조금씩 늙어가고 건강을 잃어가고 조금씩 무뎌져가는 시간들이 남아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한다.
미운모습도 받아줄 각오가 없다면, 너무 무덤덤해져서 '사랑해'라는 말은 못해도 '미안해'라는 말은 할 줄 아는 각오가
없다면 결혼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 후줄근한 내 지금 모습이 부끄럽다.

해마다 그의 고향에서는 그를 기리는 문학제가 열린다. 이렇게 라도 그를 기억하고 붙들어두고 싶은 이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루에 몇 십명씩 자살을 하고 하필이면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는 요즘 마음이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픈 소중한 잠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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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딸들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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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의 인생에 새겨진 상처는 평생 트라우마가 되어 삶의 걸림돌이 된다.
특히나 사랑했던 아빠가 엄마를 살해하고 자식마저 살해하려 했다면?
곧 열 살이 되는 소녀 룰루는 너무나 아름다운 엄마와 엄마를 빼어 닮은 다 섯살짜리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 아빠는 자주 다퉜었고 어느 날 아빠는 집을 나가고 말았다.
생계에는 관심도 없던 엄마는 다른 남자들과 만나는 눈치였고 룰루에게는 절대 아빠를 집안으로 들여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했다. 하지만 운명의 어느 날 술냄새를 풍기며 나타난 아빠의 동정어린 부탁에 문을 열어주게 된 룰루는 자신의
그 결정이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을 줄은 몰랐었다.



자신의 딸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외할머니는 남은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어했지만 병이 들어 불가능했고 
엄마의 언니인 실라이모역시 살인자인 제부의 딸들을 집안으로 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여 결국 룰루와 메리는 보육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어느 정도 철이 들었던 룰루는 불행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고 어린 메리는 살인자의
딸이란 낙인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채 주눅든 삶을 살게된다.

더럽고 누추한 보육원을 벗어나기 위해 봉사자인 코헨부인에게 자신들을 거두어달라고 애원한 룰루는 결국 코헨부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룰루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봉사와 도서실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홀로 남은 메리는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처럼 불편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메리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대신하여 교도소에 있는 아빠에게 편지를 쓰거나 면회를 가곤한다.
자신들의 불행의 원인이 아빠라고 믿는 룰루는 편지나 면회는 커녕 그를 마음속에서 영원히 밀어내고 만다.

세월이 흘러 룰루는 의사가 되고 메리는 보호감찰관이 되어 살아가지만 그녀들에게는 늘 어둠의 그림자가 달라 붙어 있는 것 같다.
룰루는 자신들의 부모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얘기했지만 룰루는 마치 아빠를 보살펴야 하는 것은 자신뿐인양 아빠에게 향한다.
룰루는 어느 날 자신의 과거를 거짓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남자 앤드류를 만나 결혼하지만 늘 불안한 정서를 가졌던 메리는 수많은
남자들을 전전한다. 특히 자신과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유부남 퀸과의 관계는 왜 그리 오랫동안 지속되어야만 했을까.
아마도 아빠와 비슷한 나이의 퀸에게서 아빠의 사랑을 갈구한 것은 아니었을까.

살인자의 딸이란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야했던 두 자매의 인생은 너무도 가슴아프다.
룰루는 자신의 중무장하는 것으로 불행을 이기려 했고 메리는 섹스와 술, 그리고 남의 삶을 사는 것같은 소심함으로 불행에 휩쓸린다.
이런 두 자매의 슬픈 삶에도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는 늘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이 자신을 받아들여주기를 원한다.
노인이 된 아빠가 가석방이 결정되고 이제 더 이상 거짓으로 자신들의 삶을 마주하기 어렵게 된 두 자매는 두려웠던 운명과 맞서게 된다.

아빠의 살인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둔 두 자매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의 자식이 되었다.
어린 두 자매가 서로를 이끌면서 불행과 싸우고 때로는 용감하게 때로는 도망치듯 삶과 마주하는 시간들은 너무도 가슴 아퍘다.
실제로 지금 어디선가도 룰루와 메리같은 살인자의 딸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위선된 삶을 살아야했던 두 자매가 삶을 마감했던 엄마보다 더 불행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피하기보다 마주해야한다고 심리학자들을 말한다.
아빠를 대하는 두 딸들의 각자 다른 시선은 이 세상의 모든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누군가는 저주를 누군가는 동정을 또 누군가는 무관심을.
실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를 위해 일했다는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는 너무도 섬세하고 리얼하다.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의 폭력이라도 행사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반드시 이 소설을 읽히고 싶다.
가해자의 자식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지옥인지..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이 자식들에게 어떤 치욕의 운명을 안겨주는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유연하고 탁월한 필체가 놀랍다.
'랜디 수전 마이어스'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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