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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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70년대 삼악산자락의 삼벌레고개, 산의 남쪽을 복개하면서 산복도로를 만들고 그 시멘트도로 주변으로 지어진

마을과 그 골목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오래전 자매가 빠져죽었다던 우물은 이제 마르고 돌로 채워져 버려졌고 그 우물집 안주인은 순분은 살짝 하자가

있는 난쟁이식모를 싼값에 알차게 부리는 재주외에도 집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세놓아먹는데다 동네여자들과 계를

모아 계주노릇을 한다.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는 우물집엔 무려 네 가구가 살았는데 화창한 오월의 어느 날,

우물집 바깓채의 방이 하나 비고 네 식구가 이사를 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계약서에 썼던 필체가 화려한 새댁과 남편인 덕규, 그들 부부의 딸인 영과 원이 우물집으로 이사를 오고 순분의 둘째아들인 은철과

새댁의 둘째딸인 원은 작은 스파이놀이에 빠진다. 일단 동네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으로 시작하여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의 약을 만들어 복수를 하고 모든 사실은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알아낸 동네사람들의 이름과 각각의 사연들이 알려진다. 이북이 고향인 새댁은 과거 교사직에 있었다는 것만 알려져있고

덕규가 경락을 배우고 가르친다고 알려졌을 뿐 그들의 진짜 모습은 오리무중이다.

 

동네 똘마니역할에 신이난 순분네의 큰아들 금철은 아이들앞에서 호기를 부리다가 급기야 은철이 사고를 당하게 되고 영원히 장애인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더구나 원이의 아버지 덕규마저 의문의 사내들에게 끌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평화로웠다기보다는 부산스럽던 우물집은 이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빨갱이로 잡혀간 덕규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다.

은철의 사고와 새댁네의 불행은 그 시대의 비극을 그대로 반영한다.

삼벌레고개는 그 시대의 인간의 계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산 중턱의 서민들과 산아래의 저택들, 그리고 땅보다는 똥이 더

많이 보인다는 우물집근처의 사람들의 군상에서 우리 모두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덕규가 잡혀가던 날, 의문의 사내들이 타고온 검은 세단에 긁혀진 똥자욱을 보고 덕규는 삼벌레중턱의 소년들의 담대와 용의주도함에

작은 기쁨을 느낀다. 고작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이런 사소한 반항일 뿐이었다는 게 가슴아프다.

덕규의 죄명이 자세하게 나와있지 않고 단지 이데올로기적 이단자인 '빨갱이'나 '간첩'으로 묘사되어었지만 분명 그 시대의 이단자 혹은

배신자의 낙인으로 지목된다. 아마도 그 시절에 일어난 어떤 사건이 모티브가 된 것같다. 너무도 급히 사형시킬 수 밖에 없었던 그 사건.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과 지켜보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시선들이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인 것같다.

 

깔끔하고 엽렵했던 새댁의 몰락, 빨갱이 가족이라고 몰아부치는 이웃들, 그리고 그 이웃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덕규의 큰딸 영이,

입을 닫아버린 호기심소녀 은...나는 어떤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것인가.

 

후일 그 단죄가 잘못임을 나라가 인정하였지만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했네. 미안해'하기엔 돌이키지 못하는

댓가가 너무크건만 곁에서 손가락질 하던 이웃들은 그 후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기억할까.

얼핏 '마당 깊은 집'같은 아기자기한 소시민들의 이야기처럼 따뜻했던 일상들이 비극으로 끝나는 장면이 가슴아프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이 그 후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단죄의 오류가 치욕스럽다.

여린 작가의 얼굴에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을 시간들이 겹쳐진다.

마치 무병을 앓듯 그녀 역시 이렇게 살풀이굿을 하지 않으면 못견딜 시간들을 견뎠을 것이다. 그녀의 굿판으로 새댁 가족의 한이

풀어졌기를 바랄 뿐, 그저 나도 구경꾼이었다는 것이 부끄럽다. 무심코 읽었던 책에서 비수처럼 번뜩이는 진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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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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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샤오홍이란 작가는 이 작품으로 처음 알게되었다. 중국의 대작가인 루쉰의 영향을 받은 작가라는데 이 작품은

샤오홍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1911년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서 태어난 샤오홍은 고향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라는 집안의 강압을 벗어나

베이핑여자사범대학에서 공부를 하게된다. 당시 중국은 가부장제도로 여자의 권위는 남자에 의해서만 주어졌던 것같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손에서 자란 샤오홍은 유독 자신을 예뻐했던 할아버지의 보호로 공주처럼 자란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극심한 외로움에 빠진 샤오홍은 부모가 맺어주려 했던 혼처를 마다하고 자유분망한

삶을 선택하게 된다.

 

 

표지에 실린 샤오홍의 얼굴은 시대를 거스를만한 페미니즘의 선구자라기 보다는 여린 소녀의 모습이다.

과연 이 여린 얼굴에 혁명가같은 열정이 어디에 숨어있었던 것일까.

결국 그녀의 이런 열정은 문학작품으로 꽃피었지만 자신의 삶을 어둠으로 이끈 원인이 된다.

 

 

샤오홍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랬다. 아무 느낌없이 정해준 혼처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세상밖으로 뛰쳐나와 스스로 사랑을 찾는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첫 남자는 유부남이었고 다음에 만난 남자는 자신이 거절했던

약혼자 왕언지아였다. 사실 그 남자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다. 억지결혼이 싫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미 추문을 일으킨 샤오홍을 반대하는 왕언지아의 집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끊자 왕언지아는 임신한 샤오홍을 버려두고

고향으로 떠나고 만다. 여관비도 내지 못하고 볼모처럼 잡혀있던 샤오홍은 운명처럼 샤오쥔을 만난다.

샤오홍의 사랑은 문득 어린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엄마의 품을 파고드는 어린애처럼 자신을 보호해주려는 상대에게 무조건으로

안겨드는 그런 미숙한 사랑들.

샤오쥔을 통하여 문학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 역시 샤오홍이 그렸던 사랑에 갈망을 채우지는 못한다.

오히려 자신보다 더 문학적인 능력이 있었던 샤오홍을 억압하고 여자문제를 일으키는 등 샤오홍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된다.

 

그녀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등을 돌린 가족들을 대신하여 그녀를 이끌어주었던 것이 바로 거장인 루쉰이었다.

마치 그녀를 사랑해주던 할아버지처럼 그녀에게 경제적인 지원은 물론 작품활동까지 도와주었던 루쉰이 없었다면 샤오홍의 빛나는

작품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샤오홍이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작품에만 매진하였다면 너무나 좋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까. 왜 그녀는 독립적인 삶을 살지 못했을까. 자유로운 삶을 원했지만 결국 사랑에 얽매어 자신의 삶조차 억압했던

그녀의 삶이 안타깝기만 하다.

결국 서른하나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녀가 그렇게 붙들고 싶었던 사랑은 그녀에게 족쇄가 되었다.

서른 한 살 이라는 나이였지만 마치 백년은 살았던 듯 늙어버린 그녀의 젊은 삶이 가슴아프다.

만약 그녀의 생모가 오랫동안 살았더라면 할아버지가 더 오래 그녀곁에 있었다면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까.

마치 조선시대 허난설헌의 삶을 보는 것만 같다. 세상에 너무 일찍 등장하여 사라져갔던 여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샤오홍의 삶 자체가 소설인듯 했다. 그녀의 역작이라는 '후란강에서'와 '생사의 장'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녀의 작품에서는 그녀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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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도사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2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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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660년 1월 추운 겨울날 숀가우 근처의 알텐슈타트의  성 로렌츠성당의 안드레아스 코프마이어 신부가 사체로 발견된다.

먹을 것을 너무 탐하다가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는 독살당했다. 의사인 지몬은 신부가 아프다는 전갈을 받고 추위를

무릅쓰고 달려가지만 이미 죽은 후였던 것이다. 소문이 날까봐 두려운 성당지기가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전편에서 사형집행인인 퀴슬과 그의 딸 막달레나와 더불어 사건을 해결했던 지몬은 왕성한 호기심으로 이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신부의 편지를 받고 성당으로 찾아든 여인 베네딕타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교양있는 여인이었다. 포도주 중개상을 한다는 그녀는

프랑스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말도 잘모는 능동적인 여인이었고 지몬은 그녀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만다.

지몬의 사랑을 받고 있던 막달레나는 심한 질투감에 사로잡히고 결국 약초를 구입하기 위해 아우구스부르크로 자원여행을 떠난다.

 

지몬과 베데딕타는 살인사건을 쫓게되고 이 사건의 중심에 오래전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템플기사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템플기사단은 한 때 유럽을 지배할 만큼 힘과 재산을 소유하였지만 어느 순간 지배력을 잃고 사라졌다. 하지만 어딘가 그들이

숨긴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 보물을 찾기위한 단서를 코프마이어신부가 발견하였지만 결국 살해당하고 만 것이었다.

중세의 어둡고 추운 겨울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밀스런 보물을 찾는 이들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볼만하다.

더구나 약초를 구하기 위해 아우구스부르크로 향했던 막달레나는 이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기사단과 맞닥뜨리고 죽음의

위협에 빠지게 된다.

역시 거대한 체구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사형집행인 퀴슬이 이 모든 사건의 퍼즐을 맞추는 주인공이다. 물론 지몬은 퍼즐을 하나씩

주워오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의사보다는 탐정으로서 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베네딕타의 매력에 푹 빠져 사랑하던 막달레나가 등을 돌릴 위험에 빠지기도 하지만 베네딕타의 진짜 모습을 알게되고 다시 막달레나에게

달려가는 지몬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귀엽다.

 

아직 의학이 발달하기전 주먹구구식의 치료와 온갖 약초의 등장이 이채롭고 작가의 정보수집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퀴슬집안의 후손이기도 한 작가는 이 사건의 무대였던 숀가우를 직접 여행하고 독자들에게 소개까지 해준다.

템플기사단에 대한 영화나 소설은 많았다. 과연 그들이 숨겨놓았다는 보물은 무엇인지 알게된다면 조금 허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종교를 신봉하는 자들에게 분명 보물일 것이다.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치않는 행동에 치가 떨리긴 하지만.

전편에 이어 박진감있게 펼쳐지는 스토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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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짓하다 프로파일러 김성호 시리즈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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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섬이었다가 이제는 다리로 육지와 이어진 삼보섬. 세 가지 보물이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이 섬에 여성 3명의 연쇄실종사건이

일어난다. 32세의 무녀 고희정과 25세의 운림산방 계약직 직원인 박민숙, 그리고 40세의 펜션 여주인 김희진.

살인사건같은 큰 사건이라고는 일어난 적 없는 조용한 섬이 발칵 뒤집힌다. 더구나 사건 4개월이 넘도록 범인은 물론 시신마저 발견되지

않는 난감한 사건이다.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에 프로파일러인 성호는 인터넷 커뮤니티 '주간파'의 공격대상이었던 성형괴물 하나리가 칼로 난자당한채 살해당한

사건을 수사하게 되고 주간파사이트에서 맨처름 하나리를 공격했던 열 여섯의 이준희를 취조하게 된다.

친구도 없고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했던 이준희는 컴퓨터에 몰입하는 은둔형소년이었고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이트의

회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한 여자를 도마위에 올려둔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성호는 이준희를 수사하면서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된다. 하지만 이준희는 스트레스에 못이겨 자실을 시도하고

억압수사를 벌인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성호는 팀장에 의해 삼보섬 실종사건에 투입된다.

 

 

범인이라고 짐작되는 인물이 보낸 편지의 필적을 감정하기 위해 여도윤학예사와 함께 동행하게 되고 성수기가 지난 쓸쓸한

섬에서 사건의 흔적들을 쫓게 된다.

한편 이준희자살사건이 매스컴에 보도되고 억압수사를 벌였다는 이유로 성호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되고 사이버수사대의 이주영은

이준희사건이 시발점이 된 '주간파'사이트의 운영자를 만나 용의자를 탐색하지만 쉽게 정보를 얻어낼 방법이 없다.

이주영은 이준희사건외에도 김성호를 위기로 몰고있는 네티즌들을 찾아내는 수사를 병행한다.

 

성호는 뛰어난 추리와 과학적 사고로 점차 범인의 윤곽을 잡아나가고 결국 범인과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범인은 놀랍게도 오래전 자신의 기억속에 있던 인물이었다.

 

 

작가는 경찰청 소속의 프로파일러의 강의를 들으며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소설을 쓰면서 범죄자는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는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많은 경제학자나 의사, 성공한 사업가중에 소시어패스나 사이코패스자가 많다고 한다.

집중력이 강하고 범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느끼지 않는 성격을 소유한 이들이 의외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런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이들은 타고날 때부터 범죄유전자가 각인된 것일까?

 

이제는 성공한 경찰청 프로파일러가 된 성호의 기억에서 그 해답을 조금쯤 찾을 수 있다.

가학적 성격이었던 그가 어떤 과정으로 변신하게 되었는지 단지 기억의 조정으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가학적 성격의 인간이 저지른 어린 시절의 일들이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지 확인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단순한 미스터리물이나 스릴러가 아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독자에게 많은 숙제를 안기는 작품이다.

인간은 한 단면만 지닌 인격체가 아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때로는 자신을 숨긴채 선인처럼 살아가는 인간들이 더 많다고 본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위선자의 탈을 인간들이 누리고 있을 부와 명예 그리고 명성이 끔찍스럽다.

섬에서 살고 있는 나 역시 섬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면서 흘깃 이웃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과연 누가 악인이고 선인인 것인가. 내 속에는 과연 선한 의도만 존재하는가...이런 의미를 생각케 해준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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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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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왜 작가가 제목을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으로 지었는지 궁금해졌다.

사전적 의미로는 '대통령이 때때로(from time to time) 연방의 상태(state of the union)에 관한 정보를 의회에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에서 유래된 말이라는데 소설의 내용과 연결시킬 의미를 찾을 수는 없었다.

아마도 소설의 전반부인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는 미국에서 베트남 반전운동이 한창 거세던 때였고 주인공들이

이 반전운동과 상당히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들이어서 정치적인 의미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작용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제목보다는 표지의 이미지가 훨씬 소설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뭔가에 충격을 받은 듯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여인과 등을 돌린 남자.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표지의 이미지가 딱이다 싶었다.

미국의 격변기라고 볼 수 있는 1960년대 중반 동부 메인주의 버먼트대에 다니는 한나의 아버지 존 윈드럽 래덤교수는 경찰에 체포될

만큼 열렬한 반전운동가이다. 더구나 잘생긴 외모때문에 바람둥이로 소문이 나있다.

한나의 어머니는 차갑고 자기중심적인 예술가로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자식에게 쏟아붓는 전형적인 어머니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 영향으로 한나는 행동하는 삶보다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고를 갖게 된다.

더 화려한 삶을 위해 파리로 교환학생을 신청하라는 엄마의 요청도 거절하고 한나가 선택한 것은 첫사랑인 댄과 결혼을 하는 일이었다.

고작 스물 두살에 댄과 결혼하고 바로 이이를 임신하게 된 한나는 펠헴이라는 조그만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된다.

어린나이에 엄마가 된 한나는 아들인 제프리를 키워야하는 일과 자신의 정체성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배타적이고 소문이 무성한 시골마을 펠헴에 어느 날 아버지의 제자라는 남자가 찾아오게 된다. 무전여행중이고 메인주를 지나가게 되면

들러보라는 아버지의 조언으로 찾게 되었다는 남자는 사실 극단적인 반전운동가로서 수배중인 인물이었다.

마침 시아버지의 발병으로 남편 댄은 부재중이었다. 오랜 우울이 한나를 힘들게 했던 것일까. 뜻하지 않게 낯선 남자 저슨과 섹스를 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를 미국으로부터 탈출시켜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 범인임을 알게 된 한나는 경악하지만 만약

자신의 탈출을 도와주지 않으면 남편에게 불륜사실을 알리고 자신을 쫓는 FBI에게도 한나가 공범이라고 증언할 것이라는 협박에 못이겨

저슨을 캐나다로 탈출시키기에 이른다.

 

그리고 30년이 훌쩍 지난 후 이제는 중년이 된 한나, 원하던 교사가 되어 고등학생을 가르치고 있고 남편인 댄은 외과의사로 성공하여

부와 명성을 거머쥐고 아들인 제프리는 변호사로 딸은 리지는 억대의 연봉을 받는 펀드매니저가 되었다.

겉보기에 한나는 무척 행복해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딸인 리지가 행방불명이 되면서 이 모든 행복은 끝이나고 만다.

잘나가는 피부과의사와 불륜사이였던 리지는 남자가 헤어질 것을 요구하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것과 기부를 많이 해왔었고 얼마 전 낙태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시달리던 한나는 30년 전 잠깐 바람을 피웠던 남자 저슨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출간한다는

사실까지 알게된다. 그것도 진실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를 끼워넣은 황당한 이야기를.

저슨을 너무도 사랑하게된 한나가 도망을 치려했다는 것과 적극적으로 나서서 저슨을 캐나다로 탈출시켰다는 왜곡된 사실이

알려지자 한나는 국가를 배신한 범죄자로 낙인찍히고 남편역시 분노하며 그녀 곁을 떠나고 만다.

'사람들은 마치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간다.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삶이 유한하다는 것, 즉 우리가 어느 날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본문중에서-

한나는 당당하고 이지적이었던 엄마가 알츠하이머병으로 죽어가는 현실을 보면서,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 마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이런 허무한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마치 어린 양을 공격하는 늑대들처럼 온갖매스컴과 이웃들은 한나를 공격한다.

불륜을 저지른 창녀, 범인을 도피시켜준 범죄자. 한나가 갈 곳은 없어보였다. 하지만 친구인 마지와 리지의 실종사건을

담당한 리어리 형사의 도움으로 그녀의 진실이 밝혀진다.

 

한나의 말처럼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붙잡게 된다. 그녀가 붙잡은 것은 친구와 사랑이었다.

남편은 떠나고 리지는 실종중이지만 다행스럽게 한나는 자신의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래전 파리로 떠나는 것을

포기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던 한나는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를 향한다.

 

한나의 억울함을 밝히는 과정이 미스터리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거짓말쟁이였던 저슨의 만행이 천하에

밝혀지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과정도 손에 땀을 쥐게 했지만 한나의 주변 사람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여러가지 모습들은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자식이지만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배척하는 아들,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가 많았던 딸,

한나가 매스컴에 오도되자 등을 돌리는 사람들. 이제는 존재감이 없어진 도도한 화가였던 엄마의 모습.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친구인 한나를 위해 마지막 힘을 쏟아주는 진정한 친구 마지.

작가는 참으로 많은 형태의 인간상을 잘도 묘사했다. 그리고 정의가 어떻게 이기는지 보여줌으로써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메세지를 던져준다. 그리고 소심하게 안주하는 삶보다는 진정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한나의 등을 떠민다.

혹시 나도 이런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궁지에 몰린 한나의 입장이 된다면 누가 도움을 줄것인지 혹은 등을 돌릴 것인지 고민해본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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