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에서의 하룻밤 - 주말이 즐거워지는 우리 가족 테마 여행
여태동(바람길) 글.사진 / 김영사on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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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숨가쁜 나날에 몸과 영혼이 지쳐갈  때 즈음 나는 북촌의 한옥집들이 생각난다.

기와의 고운선이 파란 하늘과 맞닿아 있고 돌담이 늘어선 길을 걷다보면 그동안 엉켜있던 마음의 결들이

비로소 평온을 되찾고 잔잔해지는 것만 같다.

멀리 한옥체험을 하고 온 친구들은 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자곤 했는데 오래된 한옥집에서는 그렇게

편하게 잠들더라고 했다. 오랜 세월동안 잘 씻기워지고 길들여진 벽과 구들장은 낯선 여행객들마저 포근하게

감싸 주었던 것이 아닐까.

 

이미 서울의 스카이 라인은 국제적인 도시처럼 화려해졌다. 밤이면 꽃처럼 피어난 건물들은 너무 거대해서

다가서기가 두려울 때가 많다. 저녁무렵이면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바람과

비가 머물던 그런 어릴적 동네가 그립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것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는 이런 시절에 여전히 옛집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한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집을 짓기 위해 땅을 고르고 목재며 기와를 올렸을 장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손길의 흔적은 고스란히

옛것을 지키고 있으니 그 시간을 지나오지 못한 요즘 사람들은 한옥에서 조상들을 만나고 옛 이야기를 만난다.

 

 

지역마다 기후며 풍습의 차이를 고려하여 지어진 한옥에는 공동체로서의 이웃들과의 배려와 유학의 선비들이

누렸던 낭만같은 것이 느껴진다.

남자들이 지나다니는 사랑채를 피해 고즈넉하게 숨어있는 안채도 남존여비의 그 시절에 안식구들을 배려한

남정네들의 마음이 엿보이기도 한다.

 

 

 

한옥마을에 얽힌 옛이야기도 만나고 멋진 풍경도 만난다.

많은 사람들과 이런 고즈넉함을 나누고자 대문을 열고 한옥을 체험하게 해주는 주인장들의 마음이

넓은 마당을 닮아있는 것도 같다.

 

 

자연과 가장 가깝게 지어진 한옥은 인간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도록 품어준다.

적당히 덥혀진 구들장에 누워 그 방에서 살았을 누군가를 상상해보고 잘 구워진 군고구마를

손에 감싸쥐고 밤하늘 별을 올려다 봐도 좋겠다.

 

넉넉하지 못한 이웃들을 위해 쌀뒤주를 열어주었던 한옥의 주인장들의 품이 얼마나 그리운 시절인가.

소개된 한옥집 중에 가까이 단풍을 끼고 있는 곳을 찾아 예약을 하고 싶다.

이 청명한 가을날 잘 다져진 마당을 지나 가지런한 장독대도 둘러보고 아궁이에 불도 때보고 싶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대대로 물려오는 장맛도 맛보고 싶다.

옆구리가 시리는 계절이 오면 나는 또 북촌의 한옥길을 걷고 싶다. 아니 단아한 한옥의 울안에

잠시 기거하고 싶어진다. 전국의 한옥들을 돌며 모아놓은 이 자료는 바로 귀한 역사서로 남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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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요, 서울에 물들다 - Sun Yao's Seoul Diary
손요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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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미녀들의 수다'는 이런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었다.

'미수다'로 탄생한 외국인 스타들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단지 운이 좋아서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의 '손요'가 쓴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별은 내 가슴에'을 보고 안재욱에게 빠지고 뜻은 알 수 없지만

김수희의 '애모'를 듣고 지금까지 노래방에 가면 꼭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다니 손요와 한국의

인연은 이미 예정되어있던 것이 아닐까.

'ㄹ'발음을 못하는 중국인들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어렵다는 한국어 발음을 완벽하게 했다는 것만

봐도 이미 그녀는 한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스런 딸을 타국에 보내야했던 부모님의 걱정은 보살님에게 점까지 봐야 할 만큼 심각했을 것이다.

비싼 유학비용까지 모아주셨던 친척들과 가족들의 사랑이 '손요'를 강하게 이끌어준 힘이 된 듯하다.

 

잠깐 다녀오는 외국여행을 떠나도 걱정이 많은데 하물며 오랫동안 머물러야 하는 유학길이 어찌 겁이 나지

않았을까마는 대륙의 여인답게 잘 견디고 소망을 이룬 것 같아 지켜보는 나도 뿌듯해진다.

 

내성적이라고 했지만 낯선 한국에서 맞닥뜨린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장면은 결코 그녀가 소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국어를 빨리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 도서관에서 친구를 찾아내거나 한국 여학생들과

룸메이트를 제안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한국어학당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대학입학에 도전하고 어학당친구들의 '배신자'라고

눈총을 줘도 유유히 예전 대학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모습은 그녀의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한다.

 

부족한 영어실력을 위해 필리핀으로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도 그녀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물론 중국인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국의 길거리 음식 '김떡순'에게 홀딱 빠졌다거나 날로 먹지 않는 중국인들의 식습관에도 불구하고 노량진

수산시장의 '회'에 입맛을 길들인 손요의 적응력도 놀랍다.

 

냉면그릇으로 술을 퍼 마신다는 대학 신입생 ot 문화는 낯 부끄러운 문화이지만 조심조심 친구가 되어가고

밥 사주고 술 사줘야 하는 선배가 되어 후배를 피해 다녔다는 장면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가난한 유학생 주머니가 애틋하기도 하고 낯선 한국대학생들의 문화에 당황했을 손요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팅이나 소개팅 말고도 '방팅'이 있었다니..나도 처음 듣는 이런 만남들이 지나놓고 보니 아쉽더라구 했다.

얼핏 가벼워 보이던 이런 풍속도 다 나이가 있더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고개가 끄덕여진다.

분명 어떤 문화는 외국인의 눈에 좋지 않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와 용서로 받아들이고 점점 한국에

물들어가는 손요의 모습이 기특하고 아름답다.

 

 

흙으로 지은 한옥집이 편안하다하고 남대문시장에서 그릇을 사고 갈치조림을 먹는 그녀에게 한국이 제2의 고향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조국 중국에 손요는 긍정의 한국을 알리는 홍보대사가 될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표현을 했던 손요의 조국 중국이 더 이상 '메이드 인 차이나'의 값싸고 허름한 이미지의 중국이

아니라 비상하는 용이므로 분명 머지않아 우리는 선진국 중국을 만날 것이다.

중국인 손요의 눈으로 본 한국이 더 멋진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우리도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글 사이사이에 재미있는 그림들이 손요의 작품이라니 화가가 꿈이었다는 그녀의 소망이 언젠가 이루어질 것 같다.

우선 화가보다 만화가로 나서면 어떨까. 재치덩어리 손요씨!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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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동화 빨간 자전거 - 당신을 위한 행복 배달부 TV동화 빨간 자전거 1
김동화 원작, KBS.쏘울크리에이티브.KBS미디어 기획 / 비룡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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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비가 내리면 가을이 더욱 깊어져 찬바람이 몰려올 것이다.

그리고 옆구리로 밀려드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더 짙어질 것이고.

 

 

김동화의 만화는 왠지 이런 계절에 더 와닿는 것만 같다.

야화리라는 마을은 실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분명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고 가슴이 따뜻한

집배원이 빨간 자전거를 타고 부지런히 편지를 배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는 편지보다 청구서를 더 많이 배달하는 일이 많아진 집배원이지만 야화리에 멋진 미남청년

집배원은 사랑을 더 많이 배달한다.

 

외항선을 탄 아빠를 그리워하며 종이배를 띄우는 아이. 이미 그 마음은 시냇물을 넘어 강을 건너

바다에 있는 아빠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처녀, 총각시절부터 좋아했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야했던 황노인과 경산댁의 사랑을 연결해주는 것도

역시 사랑의 집배원이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리엔에게 그리운 친정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토라진 할머니를 위해 화해의 치킨을

배달하기도 하는 이 집배원에게 나도 사랑을 배달받고 싶어진다.

부르릉 거리며 후딱 왔다 가는 바쁜 집배원의 방문보다 빨간 자전거를 타고 꽃내음, 사랑내음 묻히고

달려온 그런 소식을 꽃다발처럼 받고 싶다.

 

 

단순한 에니메이션이 이렇게 생동감있는 감동을 줄 수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작가는 이 모든 사랑의 이야기를 어디서 가져오는 것일까.

야화리 새 동네 어디쯤에 분명 작가의 작업실이 있을 것만 같다.

 

고향을 떠났지만 언젠가는 다시 되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늙은 아버지가 꽃씨를 뿌리고 감나무를 가꾸듯이

작가는 고된 삶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꽃밭을 가꾸고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우리에게 의자하나를

내미는 듯하다. 누구든 빨간 자전거를 탄 집배원이 부지런히 사랑을 배달하는 야화리로 놀러와 지친 몸과

마음이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그 의자에 머문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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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3.1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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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지만 샘터는 삶에 지치고 갈증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원한 샘물과도 같은 책이다.

 

 

 

10월의 파란 하늘과 어울리는 푸른색 표지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황금색 깃텃을 지닌 새가 날아왔다.

 

 

'가을이 물고 온 편지'에는 내가 좋아하는 양인자작가님의 '남미 무전 여행기'가 실려있다.

'바람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아~~ 어디선가 조용필의 이 아름다운

노래가 마구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천만 원이 넘는 여행비를 이삼만 원만 쓴 무전여행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남미의 2주일 동안 밤마다 탱고 클럽을 다니셨다니..나도 좀 데려가시지.

역시 남미는 피곤할 겨를도 없이 여행자를 몰아부치는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선생님 나도 그 훌륭한 가이드 소개좀 해주세요.

 

 

마침 샘터 11월호를 받아 든 날은 '책의 날이라던가.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 곧 책벌레라고 자칭한 이덕무의 '책을 읽을 뿐이다'라는

좌우명이 유독 가슴에 와 닿는다. 서얼임에도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정조에게 발탁된 것은 바로 책의 힘일 것이다.

'가난한 자는 책으로 부유해진다'라는데..나는 지금 부유한지 되묻게 된다. 하지만 박수밀교수의 말대로 부귀하지 않을들 어떠랴.

책을 읽는 다는 것. 그 자체가 살아가는 힘인 것을.

 

 

아 내영원한 사랑 '겨울 나그네'의 민우를 탄생시킨 최인호작가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는 기사를 보니 울컥 슬픔이 밀려온다.

수녀인 친구는 작가가 마지막까지 입원해있던 병실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했다.

'최인호작가님의 장례식장에 왔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모두 모인것 같아'

옆방에 있던 추기경님 문병을 왔다가 인사하게된 작가는 환자같지 않게 잘 웃고 잘 웃겨서 눈치보지 않고 많이 웃었다는데.

내 치열했던 질풍노도의 시간들은 그가 다독다독 '가족'이란 이름으로 잠재워줬었다.

나는 그에게 영원한 '다혜'이고 싶었는데. 환자로서 죽어가고 싶지 않다고..작가로 죽고 싶다던 그의 마지막 말처럼

끝까지 만년필을 놓지 않았던 작가에게 나는 '영원한 작가상'을 수여하고 싶다. 더불어 그 곳에서도 부지런히 책을 집필하여

언젠가 마주할 나에게 번듯한 신간들을 자랑스럽게 내주셨으면 좋겠다. 안녕..작가님.

 

 

 

최인호작가님을 추모하는 tv 프로그램에서 김홍신작가를 봤다. 최인호작가가 김홍신작가의 아드님 주례를 서주기로 했었는데

그 약속을 못지킨 것을 평생 미안해하더라면서 아주 오래전 신춘문예심사원으로 만나 금방 '형','동생'했던 사연을 이야기했다.

누구에게든 잘 나가던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소대장 시절(아..rotc출신의 장교였구나)의 사진을 보니 키야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 치고 참으로 꽃스럽다. 연애편지를 대필하던 순간부터 이미 작가에 입문한 것이 아닌지.

다행히 군대에서 축구했던 얘기는 없다. ㅎㅎ

 

 

10월은 그렇다고 치고..11월이라는 숫자만 봐도 옆구리가 시리다. 12월보다 더.

이달의 특집 '외로움도 힘이 된다'라는 주제가 왠지 시린 옆구리를 따뜻하게 덮혀줄 것같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대학에 들어간,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유양수씨는

에어컨도 없는 7평 남짓한 방에서 치열한 싸움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힘든 싸움에서 외로움은 힘이 된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이런 담금의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외로움'을 나를 벼리게 하는 '용광로'로 승화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가끔은 찾아와도 좋을 친구가 될 것이다.

 

 

 

낙동강에도 섬진강에도 이제 재첩은 귀한 녀석이 되었다는데 40여년을 시어머니에 이어 '재첩국'을 끓여 판다는 할머니의

구수한 손맛이 그립다. 손톱만한 조개에서 뽀얀 국물을 우려내어 부추를 동동 띄운 재첩국을 앞으로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까.

6개월을 끓이고 부어 삭힌 참게장과 할아버지가 가꾼 유기농 농장에서 딴 매실을 담근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재첩회도 그립다.

내년 3월 딱 한달만 나온다는 벚굴을 먹으로 하동으로 가련다.

친절하게도 40년 비법의 손맛레시피가 100p에 올려져 있다.

아이구 쉽네..했다가는 이순자 할머니의 '쉽기는 뭐가 쉬워 재첩 씻는게 얼마나 어려운데'라는 호통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귀한 재첩은 어디서 구하나.

 

역시 어느 한 쪽도 버릴 수 없는 알토란같은 기사로 시린 옆구리가 따땃해졌다.

늘 그렇지만 어느새 다음호의 기사가 궁금해진다.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2013년 12월호 특집은 '돌아가고 싶은 순간들'이라고 한다.

200자 원고지 5~10매 정도의 분량으로 10월 31일까지 마감이라고 하니 수없이 꿈꾸었던 그 순간으로 추억여행을 떠나볼까?

여러분들도 함께 떠나보심은 어떠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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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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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발을 믿어야 할까. 표지에 있는 마흔 여덟의 작가는 꽃미남의 얼굴이다.

도무지 시바(막연히 시바는 내가 알고 있는 열 여덟의 숫자를 가진 탄식의 언어라고 유추하기로 했다)나

조내(조내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 책을 읽는동안 내내 우리말 사전을 뒤지고 심지어 욕말 사전을 뒤져도 답이 없다)

가 결코 긍정이나 순화된 우리말은 아닐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단어를 마구 흩뿌리는 거친 남자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내내 도통 술에서 깨어나질 못하겠다. 전생에 술하고 웬수를 졌는지 비 온다고 한 잔, 꽃잎이 진다고 한 잔,

반갑다고 한 잔, 헤어져 슬프다고 한 잔...도대체 술 안먹을 궁리는 없는 것인가.

 

 

가슴이 철렁하는 은행 우편물을 들고 쫄아서 찾아가보니 하느님이 류씨를 엄청 사랑하사 거금까지 보내시니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볼까 남태평양의 섬을 사서 죽도록 낚시나 해볼까 옛날 애인들에게 경비행기를 하나씩

선물할까...너스레를 떨기에 순간적으로 휴면계좌에 거금 47만 3천 5백 1원...이 잠깐 47억 3천 5백만..으로 보였다.

이런 뒤질랜드같으니라구. 화들짝...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갑자기 내 입과 의식이 원초적으로 변해버렸다.

 

도대체 시인이란 사람들은 노다지 술이나 푸고 연탄이나 걱정하고 연말이 다가오면 도지는 신춘문예에 대한 짝사랑으로

견디는 존재란 말인가. 이종격투기 선수였던 시인은 차라리 그냥 이종격투기를 하고 알콩 달콩 농사짓는 시인은

그저 농사만 알토란같이 지어 등따시고 배부르게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하는 것은 범사에 속물인 내 생각일 뿐.

춥고 배고프고 술고프고 사랑고파야 시도 나오고 시인이란 업을 뒤집어 쓰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옥수동 성당앞..인지-내 기억으로 옆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옆인지 항아리 갈비와 홍대 앞 라 꼼마와

흑석동의 지금은 없어졌다는 개미집은 내 발길도 무수히 닿았던 곳이리라.

추적 추적 비오는 날 사진으로는 멀쩡하게 뵈는 작가와 옷깃이 스쳤을지도 모를 일.

다행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등단 후 18년 만에야 시집을 냈다는 이 시인과 마주쳐 술이라도 기울였다면

술 값을 대신 내주거나 날 밤 새고 간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씨름을 했던가 담날 콩나물 천원어치쯤 담긴 검은 봉투를

건네야 했을지도 모른다. 시인하고 술을 먹으면 안된다는 지론은 바로 이 작가의 말이니 탓하지 말지어다.

 

그래도 가는 곳마다 애인이 있어 좋겠다.

지금은 떠나버린 광석이형이 불러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은 유일했던 그의 첫사랑과 닮았거니.

늙은 애인이건 떠난 애인이건 술 값 내주러 달려오는 애인이건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나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이외수선생을 비롯하여 밍규, 안상학, 박후기, 조동범, 하창수, 이제하, 황인숙...작가들이 불려 나왔다.

전지현이 자신의 꿈에 나와 결혼하고 떠났다고 징징 거리면서..시바..누구 맘대로 자기 꿈에 출현했다고 툴툴거리더니.

졸지에 불려나온 작가들은 툴툴거리지 않으려나.

 

 

'시인이 살지 않는 육신은 버림받은 곳이다......나는 나와 타협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전생을 망설였다.-249P

광고회사로 고추농사를 짓는 농부로(이건 정말 뜬금없다), 훌훌 영혼의 고향이라는 인도를 다녀왔어도

결국 그가 서있는 곳인 시(詩). 자신의 육신에 시(詩)가 실리지 않음은 버림받은 것과 같다니 천상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시를 써야 부지를 할 것이겠지. 시래기국과 연탄 몇 장과 술과 씨름하면서.

 

'그래서 나는 몸에 딴 생각을 품게 하면 안된다. 무조건 술로 조셔서 모든 병을 술병으로 단일화시켜야 한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따위에 몸을 내어줘서는 안된다.' -111p

 

이건 뭐 대통령 후보 단일화 선언도 아니고 하긴 목숨이 걸린 일이니 비장할 수 밖에.

스스로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니, 막장 술꾼이니 툴툴거리는 이 시인..귀엽다(오십이 낼모레인 사람에게

귀엽다니 시바..)

떠난 여인 그만 붙들고 진정 '사랑이 그대에게 다시 말을 걸어' 조촐한 울타리 꾸미고 살림이나 꾸렸으면 좋겠다.

술과의 사랑은 적당히 하고 이제는 사기도 어려운 연탄대신 사철 누르기만 하면 덮혀주는 가스보일러 틀고

시래기국 맛있게 끓여주는 그런 사랑말이다. 안되려나. 혹시 술값 내주는 애인중에 있으려는지.

내가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건 어찌 알았는지 삼류 트로트 통속 시인 류씨는 제법 산문도 불콰하다.

취한다. 딸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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