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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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연안에 우뚝 솟아있는 베수비우스 화산이 돌연 폭발하였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검은 구름이 분출되면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암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 내렸다.

나폴리 남동부에 자리잡고 있는 폼페이는 이 화산폭발로 커다란 피해를 입고 소멸되었다.

이 폭발로 당시 폼페이 인구의 10%인 약 2천명이 도시와 운명을 함께 했다.

이 소설은 화산이 폭발되기 이틀 전인 8월 22일 부터 25일까지 나흘의 기록이다.

로마의 수도교의 수도기사인 아틸리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아우구스타 수도관의 책임자로 오래된

가뭄으로 물이 말라버리자 원인을 찾고 물길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수도기사자리는 그에게 자부심이었지만 아이를 낳다 죽은 어린아내를 잃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몇 달째 계속 비가 오지 않은데다가 알수없는 이상현상으로 물길이 끊긴 미세늄 북쪽 외곽의 해변에는

노예출신의 거부 암플리아투스의 대저택이 자리하고 있다.

폼페이의 대지진 당시 권력자 포비디우스집안의 노예였던 암플리아투스는 무너진 집을 수리하고 되파는

사업을 벌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의 노예직은 이미 자신의 주인집 여자들을 즐겁게 해준 댓가로 해방된 후였다.

그의 집 양어장에서 귀하게 기르던 장어가 집단으로 죽는 사건이 발생하자 양어장을 관리하던 노예를 장어먹이로

던져주려는 아버지를 말리기 위해 암플리아투스의 딸 코렐리아는 물길을 관리하는 수도사를 찾아간다.

이미 아버지의 전 주인이자 이혼남인 포피디우스와 결혼이 약속된 코렐리아는 폭군 아버지의 또다른 노예였다.

장어의 떼죽음을 조사하던 아틸리우스는 물에서 유황성분이 있음을 발견한다.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 폼페이로 향한 아틸리우스는 실종된 전임 수도기사 엑솜니우스가 모종의 음모에 관여했음을

알게되고 그 뒤에는 코렐리아의 아버지와 폼페이의 권력자들과의 커넥션이 있음을 눈치챈다.

당시 로마는 토할 때까지 먹고 목욕을 즐기는 퇴폐문화가 성행했었다. 그 향락을 즐기기 위해 공급되는 물이 바로

돈줄이었던 것이다. 더러운 권력자들과 타락한 수도기사는 공급되는 물의 수량을 조작하여 돈을 축척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창녀를 구해 멀리 떠난 것처럼 보였던 엑솜니우스의 실종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이미 폼페이가 화산폭발로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멸망의 날 이틀 전부터 시작된 한 수도기사의 분투기로 시작된 그 날의 기록들을 보면서 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같은

초조감이 밀려온다. 과연 그 날 그 도시에서 살아남은 혹은 사라져간 사람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흘간의 기록에는 어느 시대나 그러했던 것처럼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져 있다.

주인공이자 수도기사로서 자연의 재해를 헤쳐나가는 남자와 노예와 다름없이 아버지에게 속박당해 원치 않은 결혼을

앞둔 순수한 코렐리아..그리고 그 두 사람간의 미묘한 사랑의 예감.

독한 시집살이를 한 며느리가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던가. 노예출신으로 잔인한 지배자가 된 남자의 부를 향한 집념과

결국 그런 무모한 욕망의 비참한 말로.

해방시킨 자신의 노예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돈과 명예를 쫓는 비굴한 관리.

그리고 언젠가 이 사건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록하고자 했던 남자의 모습까지 세심하게 그려져있다.

 

얼마전 인도네시아에서도 화산이 폭발하였다. 자연은 때때로 부패하고 썩어가는 인류에게 경고를 보낸다.

1500년 동안 묻혀있다 발견된 폼페이는 화산재 밑에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었다고 한다.

갑작스런 재해로 순식간에 죽어간 사람들과 죽음을 앞둔 고통스런 모습, 뭔가를 향해 애절하게 외치던 단말바의 비명소리가

그대로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작가는 인간의 더러운 탐욕과 찬란한 문명도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한 부활에 읽는내내 갈증이 느껴진다.

지구 곳곳에서 자연은 경고를 보내고 있다. 폼페이와 같은 도시 뿐 아니라 지구전체를 날려버릴 재난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만 년을 살것처럼 오늘도 탐욕에 찌들어 살아간다.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리를 들어서일까. 읽는내내 폼페이 도시의 환영이 어른거렸다.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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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의 기적 - 시각 장애 아이들의 마음으로 찍은 사진 여행 이야기
인사이트 캠페인을 만드는 사람들 지음 / 샘터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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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숨쉬고 있는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처럼 파란 하늘과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행복을 잊고 살고 있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중에 들리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중도 장애인들이 더 힘들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혹은 희미한 빛만을 감지하는 아이들이 사진을 찍었다니..

하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카메라 작동법만 알려주면 허공 어디에든 대고 셔터만 누르면 뭔가가 찍히긴 할테니까..

 

 

터키 이스탄불 빈민가에서 태어난 에스레프 아르마간은 시각 장애인 화가로 유명하다. 단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화가로서의 유명세만이 아니라 그의 작품은 정말 사랑스럽고 따스해서 정말 시각장애인이 그린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제 3의 눈'이라는 말도 있다. 마음의 눈, 혹은 영혼의 눈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 3의 눈이 나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간혹 TV쇼에 눈을 가린 사람들이 나와 사물을 보고 똑같이 그린다거나 뒷면에 감춰진 그림을 맞추는 그런 놀라운

진기 명기의 차원이 아닌 좀 더 깊고 좀 더 높은 차원의 뭔가가 분명 존재하리라 믿는다.

 

 

자신의 눈을 대신하여 사물을 투사시키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아이들이 있다.

앞을 볼 수 없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상상력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인사이트 캠페인'을 시작한 사진작가가 만난

아이들의 모습은 전혀 구김살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선천적인 시각장애부터 중도에 시각을 잃은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다.

그런 아이들이 사진을 찍는다니...그저 카메라의 셔터만 누르는 일은 누구인들 못하랴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따라 나선 사진찍기여행에서 나는 멀쩡한 시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볼 수 없었던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을 그 아이들의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피부에 닿는 햇살과 바람 향기로 세상을 보는 아이들.

볼 수 없지만 분명 볼 수 있는 우리가 볼 수 없지만 아이들은 볼 수 있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

갇힌 세상에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여지없이 부순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든 불행한 삶을 살 것이란 막연한 생각들을 날려버렸다.

마치 내가 갈대숲에 서서 눈을 감고 세상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갈대와 바람의 속삭임들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내 눈이 아닌 아이들의 맑은 눈을 통해 세상을 만난 느낌이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손은 얹고 걸어가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진다.

 

그 아이들에게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의 마음씀과

단락별로 점자로 씌워진 글까지...책 한권에 담겨진 사랑이 너무나 커서 뒷면에 씌여진 책 값이

너무 싸다는 느낌마저 든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세상을 담은 따뜻하고 소중한 작품집에서 충분히

누리고 있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감사를 느끼게 된다.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하지만 또 얼마나 가난한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준 아름다운 명상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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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력적인 그를 쇼핑했다 1
민재경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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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팍팍해지고 현실이 결코 달콤하지 않음을 절감할 때 우리는 신데렐라가 되는 꿈을 꾼다.

비록 계모와 의붓언니들에게 시달리는 잿빛투성이의 어둠뿐이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멋진 왕자님의

파트너가 되어 현실에서 벗어나는 그런 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신데렐라의 꿈에 빠져들게하는 멋진 소설이다.

 

 

한 때는 사랑이라고 믿었던 남자의 배신으로 이혼을 하고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쫓겨나다시피 혼자가 된

스물 여덟살의 여자.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씌웠다고 하는 사랑의 시간들이 너무나도 짧았었다.

돈 좀 있는 집안의 장남인 고승찬의 사탕발림에 속아 얼떨결에 결혼이란 걸 하게된 차미선은 유별난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구박을 견디다가 결국은 남편의 바람이라는 치명타를 맞고서야 지긋지긋했던

결혼을 끝낸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에는 아직 어려보이는 그 나이에 이혼녀가 되어버린 차미선은

빅사이즈 패션샵을 운영하는 친구 연화의 도움으로 디자이너겸 인터넷쇼핑 관리자로 거듭난다.

이혼 후 5년이란 시간동안 미선은 지독한 쇼핑중독에 빠져 된장녀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우아하신 친정엄마 유여사에게 양육을 맡긴 채 백화점 명품샾을 순례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맘에 찜해두었던 멋진 트랜치코트를 쟁취하기 위해 나선 쇼핑에서 그녀는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미선은 그 날의 쇼핑이 자신의 평생반려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된다.

 

쇼핑중독에 빠져 육아에 통 관심이 없는 딸을 염려한 엄마의 소원을 풀어드릴 겸 심리상담센터를 찾은

미선은 잘 생긴 상담의사 심지훈을 만나게 되고 그의 세련된 감각과 매너에 빠져든다.

'어머머 내가 정말 오랫동안 굶었나봐. 이런 기습적인 키스를 날리다니..'

첫만남부터 찐한 키스로 시작된 두 사람의 애정은 사실 오랫동안 기획된 심지훈의 덫이었음이 서서히 밝혀진다.

 

잘나가는 재벌집안의 둘째 아들인 지훈은 남모르는 비밀을 간직한 아픔이 많은 남자이다.

아버지의 사랑과 배신, 그리고 생모의 죽음과 형과의 불화와 같은 비밀과 아픔들을 묻어 둔채 이혼녀 차미선에게

돌진하는 지훈의 사랑은 무엇일까.

 

이 작품에서 나는 여러가지 사랑의 유형을 경험한다.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남자가 자신의 첫사랑을 되찾기 위해 비열한 짓도 서슴치 않고 결국 한 여자를 제물로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

동생을 사랑했던 여자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아낌없이 헌신했던 남자가 막상 자신의 여자가 되자

동생의 여자였다는 기억을 지우지 못한 채 스스로뿐만 아니라 여자마저 파멸시키는 비뚤어진 사랑.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버림을 받은 채 상처투성이의 삶을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버린 여자의 슬픈 이야기.

그런 여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았던 남자가 결국 그 여자의 이미지를

간직한 여자를 만나 스스로 닫았던 문을 열고 나와 진정한 사랑을 찾는 남자.

자신이 왜 쇼핑중독에 빠졌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과거의 트라우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여자가 자신의

상처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남자에게 낚여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

누가 봐도 뚱뚱하고 여성적인 매력은 눈에 씻고 봐도 없을 것 같은 여자를 사랑하는 미남자의 헌신적인 사랑등등..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 수상작이라는 이 작품이 왜 화제작이 되었는지 이 많고 많은 사랑의 사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누구든 이와 같은 사랑을 경험했거나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있으랴'라는 말도 있듯 우리네 삶은 결코 매끈한 명품만은 될 수 없다.

어딘가 부족한 삶을 채우려면 쇼핑이든 허세든 뭔가로 채워져야만 공허를 매울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차미선은 쇼핑으로 자신의 공허를 매우다가 기적같은 사랑을 만나 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나게 된다.

 

'내가 소중한 사람임을 일깨워줘서 고마워요.'

서른이 넘은 두 딸아이를 둔 이혼녀와 뚱뚱한 비만녀의 화려한 비상은 마치 내가 날개를 달고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는

승리감을 느끼게 한다. 결코 이러한 사랑이 불가능한 일이 아님에 남몰래 꿈을 가져보는 상상이 즐겁기만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힐링이 되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 아닐까.

내가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백조임을 알려주었던 '쇼윈도의 키다리 아저씨'를 만날 행운이 내게도 올수만 있다면.

하는 상상으로 가슴이 설레었다.

 

제법 구성도 탄탄한데다 미선이 속으로 내뱉는 말들 또한 유머와 위트가 가득하다.

더구나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라니...가난한 마음에 뭔가가 꽉 차오르는 것같은 포만감이 엄습한다.

나도 오늘부터 명품관을 기웃거려야 하나. 아님 놀이동산에서 한번 쓰러져봐?

근데 쓰러지다가 육중한 체중에 지진이 나면 어쩌나....일단 살부터 미선이처럼 빼야하는건 아니고?

읽는내내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처럼 행복했다.

어디 심지훈같은 남자 어디 없으려나...에이 효효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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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이우 - 조선왕조의 마지막 자존심
김종광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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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 스러져간 수많은 인물중에는 자신의 이름조차 희미해져 기억되지 못한 인물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은 사람으로 태어나 적어도 자신이 살다간 흔적쯤은

남기고 가야 의미가 있는 삶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한 나라의 왕손이었던 남자의 생애가 자칫 묻힐 뻔 했으나 이렇게 세상에 빛을 보았으니 참담한 생을 살다간

남자는 지하에서 잠시 감회에 젖었을지도 모르겠다.

 

조선 5백년의 허무한 몰락을 겪어야 했던 왕자 이우의 삶은 소현세자만큼이나 참담했을 것이다.

나라가 힘을 잃었을 때 왕손이라는 핏줄은 모욕이요 사슬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일제는 과거의 추악한 죄를 반성하기는 커녕 여전히 야욕을 드러내며 우리 민족뿐 아니라 자신이 상처를 준

수많은 민족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고 있다.

한 나라의 존엄을 짓밟고 통치자의 핏줄들을 볼모로 데려가 혼혈로 더럽혔던 일본의 만행은 치욕스럽기만 하다.

그 모욕적인 시대의 가운데에 서있던 왕손 이우는 사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고종의 셋째 아들은 이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이우는 조선왕조가 존속했다해도 왕위를 이을 순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제하에 조선왕조는 해체되다시피 했고 일찍 서거한 순종의 뒤를 이을 이은은 볼모로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니 비교적 열외였던 이우는 이은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위치였던 것같다.

 

 

표지의 사진으로 보면 정말 장안에 미남자로 소문이 날만큼 잘 생긴 외모의 소유자에다 의지가 강건해 보이는

눈빛이 인상적이다. 그런 그가 왜 유독 자취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대부분의 왕손들이 일본의 사관학교를 다녀야했고 이우 역시 그 수순을 밟아 사진처럼 군복을 입고 군인의

신분으로 살았다고 한다. 자신의 모국을 짓밟은 일본의 군사학교를 다니고 장교계급장을 달아야 했던 심정은

결코 영예롭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의 발굴처럼 그의 희미한 족적에 남긴 기질로 보면 분명 호락호락하게 일제에

휘둘리는 성격은 아니었을듯 싶다.

어려서는 장난도 심했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기개도 있었던 듯하다.

그런 그에게 일제의 볼모가 되어 살아가야 했던 삶은 감옥살이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고 울분은 치기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의 이런 투지는 조선여인과의 결혼에서 드러난다.

혼혈로서 왕의 피를 더럽히려 했던 일제의 의도를 멋지게 비켜갔던 것을 보면 그의 의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만주로 망명을 시도했던 부친 이강은 일본에 억류되어 일본화되어갔던 이은보다는 확실히 민족의식이 있었던듯하다.

그의 핏줄인 이우역시 부친의 의지를 넘어선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허수아비같은 왕손에 대한

실망속에 그나마 한줄기 희망을 찾고자 했던 후손들의 바램이기도 하려니와 그의 기질로 충분히 예측이 가능해보인다.

아무리 높은 의지와 기개를 가지고 있다해도 그 시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망국의 왕손인 그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겨우 독립자금을 전달하거나 의혈단을 돕는 정도였을 것이다.

목숨을 담보한 그의 의지를 이렇게라도 읽을 수 있어 허무한 왕손의 몰락에 한가닥 위안이 된다.

하지만 히로시마 그 역사의 현장에서 스러져갔다니 너무 어이가 없을 뿐이다.

'자승자박' 자신들의 죄를 되갚음 받아야 했던 그 현장이라니..

작가의 짐작대로 그가 만약 그 현장에서 스러지지 않았다면 해방이후 우리 민족의 길이 달라졌을까.

혼란의 시대를 잠재우고 민족상잔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을까...아쉬운 상상은 애틋하기만 하다.

자칫 묻혀져 한스럽게 사라질뻔한 한 남자의 생애를 이렇게라도 되살린 작가의 노력이 대단하다.

휘청거렸던 마지막 조선의 운명을 그나마 붙잡으려 했던 왕손의 처절한 삶이 눈물겹게 다가온다.

지하에서라도 후손들의 관심이...그리고 이제는 영예로운 역사를 써가는 우리들이 무척 자랑스러워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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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백년 식당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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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만 틀면 여기저기 맛집소개가 일색이다. 일단 매체에 소개가 되면 한참동안 그 맛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살기가 어렵다고들 해도 역시 맛있는 집은 인기가 좋은 모양이다.

대부분 맛집들은 그리 오래된 집들이 아니었다. 가끔 2대니 3대니 전통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100년이 된 맛집은 보지 못했었다.

 

'쓰가루 백년식당'은 도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쓰가루'지방에서 3대를 이어온 메밀국수집 이야기이다.

 

 

일본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도 먼 나라'인데다 특히 요즘 망말행진중인 아베정권의 만행때문에 일본여행도

가기 싫을만큼 감정이 좋지 않지만 전통을 중요시하는 그들의 문화는 제법 본받을만한 것이 있다고 본다.

마이스터학교가 잘 되어있는 독일도 그렇지만 일본 역시 대를 이어 전통을 이어가는 직업이 많다고 들었다.

전통주라든가 라멘, 도자기부터 전통적인 축제에 이르기까지...사실 이런 점은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그저 지방의 작은 소도시인 히로사키의 '오모리식당'

가난한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려서부터 국수를 만들어 팔아야 했던 오모리 겐지에 이어 3대인 오모리 데쓰오는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전통을 고집하며 메밀국수를 뽑고 구워 말린 정어리로 국물을 내는 고집스런 장인이다.

그의 아들 요이치는 고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나갔지만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한 채 풍선아트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우연히 만난 쓰가루 지방출신 사진사 나나미와 연인사이가 되지만 소심하면서도 나약한 구석이 있는데다

유명 사진사로 발돋음하고 있는 나나미에게 왠지 주눅되는 것 같다.

 

쓰가루지방의 전통축제인 벚꽃축제를 앞두고 요이치의 누나는 아버지가 크게 다쳤다며 축제를 책임져달라고 연락을 한다.

하지만 오월 연휴는 풍선아트의 일년중 가장 대목이라 망설이게 된다. 마침 연인 나나미와 사소한 오해로 마음이 복잡했던

요이치는 예고도 없이 쓰가루의 오모리 식당으로 향한다.

 

고향이 주는 안락함에 취한 요이치는 즐거운 마음으로 옛친구들과 회포도 풀고 벚꽃축제를 준비하게 된다.

나나미는 스승의 발병으로 홀로 정신없이 촬영을 하다가 역시 고향인 아오모리로 향한다.

금융업계에 자리를 잡은 멋진 청년과 선을 보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마음이 불편했던 나나미는 의도치 않게 선을 보게되고

마침 그 장면을 요이치에게 들키게 된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풍선아트일이 즐겁긴 하지만 안정적이지 못한 직업인 탓에 나나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요이치와 가업을 물려받아 식당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요이치를 불안하게 지켜봐야 하는 나나미의 사랑.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사진사로서의 성공을 눈앞에 둔 나나미로서는 사랑하는 요이치의 고향행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순수한 두 사람의 사랑은 다시 꽃을 피우고....

 

벚꽃축제를 배경으로 해서 그럴까...아름다운 풍경이 절로 그려지는 꿈같은 소설이었다.

가업이긴 하지만 가난한 식당을 아들에게 억지로 물려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와 옆에서 묵묵히 아내의 역할을 하는 어머니.

답답한 시골을 벗어나 도쿄에 정착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모른 채 겉돌고 있는 요이치.

하지만 고교졸업앨범에서 찾아낸 자신의 10년후 모습에 대한 다짐을 보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제 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도쿄에서 할 일을 다 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사부님.'

 

무뚝뚝하던 아버지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이제 오모리 식당은 100주년을 맞아 4대가 결정된 셈이다.

아주 오래전 발가락이 없던 증조할아버지 겐지에게서 물려받은 쓰가루 칠기 자개 서랍장에 고이 간직되는

요이치의 편지는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아주 오래전 겐지의 친구는 귀한 칠기 자개 서랍장을 만들어

겐지에게 주면서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자신이 죽어도 이 자개장은 친구의 손자에게 주겠노라고 했었다.

그 바람대로 그 자개장은 오랜 방황을 끝내고 돌아올 요이치에게 전해질 것이다.

겐지의 고집스런 메밀국수와 전통을 함께 물려받아 멋진 오모리 식당은 앞으로 수십년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줄 것이라 믿는다.

 

참 이 작가는 따뜻한 사람이다. 전작인 '무지개 곶의 찻집'이나 '당신에게'에서 느꼈던 따뜻함이 역시

전해진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라면 분명 따뜻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일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아무리 추운 이런 겨울에도, 삭막한 시절에도 세상이 제법 살만하다는 희망을 주는 작가에게 감사의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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