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에바 로만 지음, 김진아 옮김 / 박하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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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여기서 정상적인 사람이라 함은 적어도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을만큼의-이라고

생각하지만 현대의 사람들은 어느정도의 정신적인 문제는 모두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멀쩡했던 사람이 어느순간 돌변하여 범죄를 저지르거나 뭔가에 중독되는 현상들을 보면 자신의 본모습을

감쪽같이 위장하고 있다가 불현듯 본연의 모습이 발현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스물 여덟살의 직장여성인 밀라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가 더 이상 일을 할 힘도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

컴퓨터를 끄고 조용히 회사를 나온다. 자신의 머릿속에 '노 배터리' 표시등이 들어온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온 밀라는 모든 끈을 놓아버리고 생명이 없는 인형처럼 모든 것을 멈추어 버렸다.

사람들이 그녀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정신질환을 확진받았다.

 

 

 

밀라가 정신병원에 간 그 목요일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

거식증에 걸려 앙상해진 몸을 가진 여자들과 건장한 체구를 가진 남자가 여자가 되고 싶어 방황하는 모습.

황폐해진 영혼과 누추해진 마음을 지닌 채 두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툥해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흔히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과 크게 구별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병원에

모인 사람들의 말처럼 그들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아닌 행복과 불행사이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란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맛있는 음식들이 단지 칼로리를 계산하는 대상으로 보이는 거식증 환자들의 내면에는 어떤 절박함이 숨어 있는 것일까.

정상적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여성으로 살고 싶어하는 남자의 본성은 유전적인 요인일까.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조금씩 결핍을 경험한다. 경제적인 것이든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이든.

그런 결핍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못견디는 사람과의 차이일 뿐, 사실 그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도 우리와 다름없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밀라역시 자신이 왜 이 병원에 와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가는 일이 싫어졌을 뿐인데

말이다. 낡은 옷과 신발을 신은 상담의사 헤닝스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닥터헤닝스와 상담을 할 수록 밀라는 자신의 내면에서 고통받고 있는 또다른 자신을 만나게 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결핍을 느꼈고 그 일이 마치 자신이 잘못인 것처럼 상처받았던 밀라는 '착한아이증후군'에 걸려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싫은 일조차 받아들여왔다는 것을 알게된다.

 

 

병원에 들어와 그런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 밀라는 자신의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직의사를 밝힌다.

그러자 비로서 그녀에게 자유가 찾아온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다녔던 아주 괜찮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정해진 날에 월급을 받는 그런 반복된 일상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기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밀라는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버거운 일상을 내려놓고서야 자유를

얻은 것이다.

 

이 책은 작가 에바 로만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누가봐도 결핍이 느껴지지 않는 일상속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 것은 바로 이런 그녀의 경험때문일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에 섰던 사람들은 정말로 미친 사람들을 수용하는 정신병원으로, 혹은 일상으로 각각 흩어진다.

밀라역시 자신을 버려두었던 부모와의 상담으로 숨어있던 상처와 대면하게 된다.

'미친 8주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병원을 나서다가 8주전 자신이 앉았던 그 자리에 자신과 비슷한, 혹은 그날 앉았던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다시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밀라는 웃으며 병원문을 나선다.

결국 어디서든 누군가 상처받고 다시 치유받고 그렇게 일상은 계속된다는 사실이..그 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멀쩡하게 보이는 나 역시 상처받고 고통받았던 나의 내면과 맞닥뜨리는 일이 두렵다.

아니 사실 나도 결코 멀쩡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렇게 보이고 싶어 안깐힘을 쓰고 있을지도.

밀라의 8주간의 기록에서 자유롭지 않은 또다른 나와 마주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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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미나의 기적 - 잃어버린 아이
마틴 식스미스 지음, 원은주.이지영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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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60여년 전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한 비극적인 이별에 관한 여정은 여전히 '아이수출국1위'라는

불명예를 가진 대한민국의 어둔 현실을 보는 것 같아 가슴아프다.

 

 

1950년대 아일랜드는 전통카톨릭국가로서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사회를 지탱하고 있었던 듯하다.

사실 아일랜드인들은 우리나라사람들처럼 가무를 즐기고 유쾌한 민족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의 기질과 아주 다른 엄격한 종교적 잣대는 당시 전쟁중이었지만 강력한 유대국이었던 우리나라보다 더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정책이 많았던 것같다.

 

1952년 여름의 어느 날,

아일랜드 티퍼레리 카운티에 숀 로스 수녀원에서는 열 아홉살 처녀 필로미나가 아이를 낳고 있었다.

당시 아이랜드는 미혼모를 큰죄인이라고 낙인찍고 수녀원에 가둔 후 아이를 낳으면 다른 나라로 입양시키는

'아이장사'가 한창이었다. 지금은 마르셀라라고 불리는-수녀원에 감금된 미혼도들은 본명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필로미나는 리버릭축제에서 만난 우체국직원과의 하룻밤 사랑으로 임신하였고 아버지와 오빠에게 맡겨져

힘들게 아들을 낳게 된다.

죄인들이 거주하는 수녀원의 별채는 안락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었고 미혼모들은 부엌일을 하거나 세탁, 그리고

자신들이 낳은 아기들을 돌보는 일들을 나누어 하고 있었다.

필로미나는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마거릿과 친해졌고 필로미나가 낳은 앤터니와 마거릿의 아이 메리는

오누이처럼 3년을 수녀원에서 보내게 된다.

 

어느 날 아일랜드 언론은 아일랜드의 아기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보도를 하게 되고 외무부소속 직원이었던

조 코램은 더 이상 아이들이 수출되지 못하도록 비자를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는 아일랜드의 대주교였던 매퀘이드는

찾아가 수녀원에서 아이를 파는 일은 중지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당시 빈약한 재정의 주수입원이었던 아이수출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확인한다.

 

결국 몇 몇 양심있는 관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앤터니와 메리는 미국의 비뇨기과 의사 부부인 닥과 마지에게 입양되고 만다.

필로미나와 마거릿은 아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수녀원장의 협박과 당시 사회적인 비난, 그리고 자신들의 부족한

능력에 굴복하고 아이를 포기한다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말았다.

 

이미 세 아들을 둔 마지부부는 앤터니와 메리를 정성을 다해 키우게 된다. 배려있고 따뜻한 마지와는 다르게 조급하고 계산적인

닥 때문에 때로 상처를 받긴 했지만 앤터니는 메리를 친 여동생처럼 보살피면서 혹시 자신이 밉게 보여 다시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으로 '착한아들표'로 성장하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영화로 먼저 알게 되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어린 엄마 필로미나가 어쩔 수 없이 놓쳐야 했던 아이를 찾는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은 그의 아들 앤터니의 삶에 맞춰져 있다.

잘 생기고 머리좋았던 앤터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거의 잊은 채 왜 자신이 버려져야 했는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보고 고향인 아이랜드의 수녀원을 찾기도 하지만 수녀들은 절대 그의 친모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우등생이며 모범생이었던 앤터니는 사실 버려졌다는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심각한 중독에 빠져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집권한 정당이 어디냐에 따라 동성애자들의 위치가 달라지곤 했지만 사회적으로 고립된 존재들이었다.

뛰어난 감각으로 정부의 요직으로 등용되기도 했지만 마이크의 동성애는 결국 에이즈라는 복병과 맞닥뜨리게 된다.

 

마이크가 몇 몇의 동성애 상대와 사랑에 빠지고 때로는 마약이나 알콜에 휩싸여 방탕한 성생활을 즐기는 장면에서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보수주의자인 나 역시 동성애자를 두둔할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만약 마이크가 생모밑에서 자랐더라면 그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더 비극적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에이즈로 죽음에 이른 앤터니는 자신이 태어났던 수녀원의 묘지에 묻히고 생모인 필로미나는 죽은 아들과

해후한다. 앤터니의 빛나는 삶-동성애와 에이즈를 제외하고-을 살았다는 앤터니의 파트너 피트에게 전해듣고 필로미나는

동성애조차 아무 꺼림낌 없이 받아들인다.

"정말 행복하게 살았군요, 그렇죠? 나는 절대로 그런 삶을 물려줄 수 없었을 거에요. 피터."

미혼모를 죄악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속에서 앤터니는 절대 바르게 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부유하고 안락한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길러진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앤터니가 처음 아일랜드를 방문하여 생모를 찾았을 무렵 누구라도 그의 입양에 관한 진실을 말해주었더라면 앤터니는

좀 더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가끔 친부모를 찾아 고국으로 돌아오는 해외입양아들을 보면서 평생 자신의 뿌리를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이 끔찍한 일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연어들처럼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자신의 기원을 알고 싶은 것이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실화라는 점에서 더 끔찍하고 가슴아프다.

과연 종교와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당시 아이들의 해외입양으로 돈벌이를 했던 종교인들은 저세상에서도 자신들의 소신이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여전히 해외로 버려지고 있는 우리들의 아이들 역시 앤터니처럼 평생 상처를 가진 채 살아갈 것이다.

50여년 전 미숙한 사회구조와 맹목의 종교때문에 생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삶을 통해 우리는 종교나 정치의 권력이

얼마나 참혹한 역사가 되는지를 똑똑하게 보게된다.

그렇더라도 앤터니가 그렇게 삶을 놓아버리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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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 핀 꽃들 - 우리가 사랑한 문학 문학이 사랑한 꽃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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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쳤던 길가의 꽃들이 갑자기 모두 자신을 쳐다봐달라고 달려드는 것 같았다.

흔히 문학속에나 등장한 '이름 없는 꽃'들이 갑자기 그동안 무심했던 나에게 명함을 내밀고 아는 척을 해왔다.

김동리작가는 후배 문인들의 글을 보다가 '이름 모를 꽃'이 나오면 "네가 모른다고 이름 모를 꽃이냐'라고 야단을 쳤다지.

 

 

서울내기인 나는 녹색풀은 모두 잡초로 보이고 그저 개나리나 진달래 목련화등이나 알뿐이었다.

텃밭에 잡초를 뽑는다는 것이 냉이였고 갓이었다는 것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된 그야말로 풀이나 꽃에는 무지렁이였다.

이 책의 저자는 아주 특이하게도 사회부, 정치부를 거쳐 사회정책부 차장으로 일하고 있는 기자이다.

학창 시절부터 수많은 소설을 읽으며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금도 사람들 기억에 영원히 남을만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버리지 않고 있단다.

 

 

대체로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중에 한번쯤 소설가나 시인을 꿈꾸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열망이 있다고 해도 재능이 없는 나같은 사람이 더 부지기수인지라 평생의 소망인 꿈으로만 붙들다가 끝나버린다.

하지만 전라도 출신의 이 기자는 분명 언젠가는 참으로 괜찮은 역사소설이나 황순원의 '소나기'에 버금가는 작품 하나쯤

남길 것만 같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수많은 꽃들의 이름을 불러준 사람이라면 의당 평범한 우리같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보는 재능이 있다는 것이고 자신이 읽었던 수많은 작품들을 잊지 않고 불러낸 재주라면 비평가 못지 않는 눈썰미와 문학적

재능이 풍부할 것이란 믿음이 들기 때문이다.

집 밖 돌담 사이에 수줍게 피어있던 꽃들의 이름을 몰라 불러준 적이 없던 나는 그만 부끄러워진다.

 

 

몇 년전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이 발간되고 아주 잠깐 그의 독자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김훈작가와 동행하면서 나는 그가 상당히 깐깐하고 자기존재감이 대단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었다. 얼핏 보수적인 색이

강하다가도 가난한 조국에게 '밥을 먹이는 기술자'가 되고 싶었노라고 회고할 때는 그의 따뜻함에 목이 메이기도 했었다.

나 역시 그의 '칼의 노래'에서 두 번째로 품었던 '여진이란 여인의 다리 사이에서 지독한 젓국 냄새가 나왔다'라는 귀절이

가장 생각난다. 상상만으로는 알지 못살 그 내밀한 것들을 어찌 작가는 알아내었을까..하면서.

그런 그의 섬세하고 완벽할 것만 같은 작품에 아직 조선에 들어오기 전인 옥수수 잎이 등장하고 초가을에나 등장하는

쑥부쟁이가 초봄에 등장하는 오류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기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었다.

흔히 '아는 것이 병'이란 말과 '모르는 것이 약'이란 말처럼 굳이 알았대도 작품의 존엄에 큰 흠이 되지는 못했겠지만

'야사모'의 골수 회원인 작가에게 딱 들켜서 추궁(?)당하는 장면은 웃음이 절로 나온다.

조금쯤은 당황스러웠을 김훈작가는 '그 장면에는 쑥부쟁이가 나와야 하고, 옥수수 잎이 서걱거려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단다. 아마 속으로는 뜨끔하지 않았을까.

 

 

섬에 살면서 유일하게 새로 알게된 꽃이 '수선화'였다.

작가는 첫 단행본 이후 1,000만부를 돌파하여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작으로 우뚝 선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나오는 여인들을

꽃에 비유하면서 소설에서 유일한 지식인 여성이었던 교사출신의 이지숙에게서 '수선화'를 떠올렸다고 했다.

흰색과 노란색이 조화를 이루어 깔끔하고, 곷 한가운데 컵 모양의 덧꽃부리가 달린 것이 이지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지고 없는 수선화가 제법 고고하게 다시 다가온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오래전 내 스승이 어린 내게 건네주었던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부터 전편에 흘렀던 어두운 그림자들을

걷어내고 따뜻한 어머니를 그렸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등 내가 만났던 문학과 다시 만나는 일은 너무도 행복했다.

다만 내가 읽어 치웠던(?) 그 수많은 작품속에 등장한 꽃들이 왜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는지..

 

 

 

33개의 소설속에 제 이름을 찾은 100여개의 꽃들은 이렇게 무심한 관객에게 버림받았지만 가슴 따뜻하고 눈썰미 좋은 작가에게

불려나와 그나마 다행스럽다. 이제 책을 열면 어떤 꽃들이 등장할지 새로운 숙제찾기가 시작될 모양이다.

문 밖으로 지천인 야생화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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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꼬레아
정준 지음 / 청동거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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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은 바로 이 그림으로부터였다.

 

 

독일출신의 화가 루벤스가 그렸다는 이 그림속에 남자가 망건을 쓰고 한복을 입은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외교관이기도 했던 루벤스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나 그림으로 남은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으로부터 400여년 전, 일본인에 의해 마카오, 인도, 고아항, 유럽 대륙 등지로 팔려간 수많은

조선인 노예들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골치아픈 이웃인 일본은 조선을 무던히도 괴롭혔다.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열라는 명분으로

난을 일으키기 전부터 남쪽의 해안지역을 노략질을 해왔으며 몇 차례의 침입으로 우리땅에 남긴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작가는 어느 잡지에서 정유재란후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나가사키항을 통해 유럽의 각나라로 팔려가는 비참한

노예신세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이 책을 쓸 결심을 했다고 한다.

하긴 나도 이탈리아에서 그림으로 남겨진 사내에 대해 내내 궁금했었다.

아주 오랜 기간 작가는 그 사내의 행적을 쫓는 여정을 함께했고 결국 수백년전 타향에서 눈을 감은 사내를 세상에

다시 일으켜 세웠다.

 

몰락한 신라의 귀족가문의 아들인 현민은 자신의 결혼식날 이땅을 침범한 왜구들에 의해 아내와 부모를 잃고

일본으로 끌려가게 된다. 당시 일본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전쟁욕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고

새로운 세력인 도쿠카와 이에야쓰가 부상하고 있었다. 우물안 개구리였던 조선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외국 문물을

받아들였던 일본은 중요항구에 무역선들이 오가고 선교사들이 활동하는 등 도약의 서문을 열고 있는 중이었다.

과도한 전쟁비용으로 파탄지경에 이른 일본은 조선의 보물을 약탈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수많은 조선인들을

끌고가 보잘것 없는 자신들의 문화를 이끄는 첨병으로 활용하거나 노예로 팔아넘겨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사실 조선인들이 일본의 전쟁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당시

끌려간 사람들이 각국에 노예로 팔려갔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했었다..

작가는 당시 조선의 정치와 역사는 물론 일본의 역사와 정세까지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일본을 드나들던 스페인, 포르투칼, 이탈리아등의 정세와 오래된 역사까지 찾아낸 것을 보면 '안토니아 꼬레아'를

세상에 다시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노예선을 타고 가다 난파를 당해 이탈리아의 해안도시에 도착한 현민은 타고난 지혜와 무술솜씨로 귀족들을  감복시켜

결국 노예의 신분을 벗고 알비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조선인들과 함께.

 

 

지금도 '안토니오 꼬레아'의 후손들이 알비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이국에서

눈을 감은 한 남자의 생애를 통해 우리는 일본의 악랄한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사무라이와 게이샤 문화를 통해 피와 음란한 성에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해져버린 저급한 인간속성을

지닌 일본인들에게 왜 우리는 그 후로도 시달림을 당해야 했을까.

현민은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스페인과 경제중심의 도시 피렌체의 실상을 통해 당쟁에 급급했던 무능한

조선관리들을 비교하고 절망한다. 책을 덮고 잠시 '안토니오 꼬레아'가 노예신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한번도 조선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전쟁으로 초토화되어버린 조국이 다시 우뚝서기를 바라는 것으로 작품은 마감이 되었지만 아마도 그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가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 전쟁을 치르고도 정신 못차리고 36년동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조국의 미래를 알았다면 차라리

돌아오지 않은 것이 나았을지도...

 

단순히 일본놈들에게 끌려가 노예가 되었던 사내의 여정이 아닌 당시 세계의 정세를 탐방할 수 있었던

뜻깊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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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의사 송태호의 진료일기 - 조선일보 Why 병원 이용 설명서
송태호 지음 / 신원문화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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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 불가원'이란 말이 있다. 가까이 하기도 어렵고 멀리 하기도 어렵다는 이 고사는 바로 병원과

의사를 대입해도 맞는 말이 아닌가 싶다.

살면서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평생 병원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때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은 바로 의사이다. 한 때는 이발사가 그 역할을 했다는 기록도 있고 지금보다

사회적 지위가 약한 적도 있지만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이다.

 

 

어쨌거나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고급인력인 그들은 가깝기도 하지만 먼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생활을 거치는 모습은 드라마를 통해서 봐도 참 고달프기만 하다.

하지만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도 손주뻘의 의사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만큼 그들의 지위는 확고하기만 한 줄 알았다.

'국경없는 의사회'라는 봉사단체처럼 낮은 곳에서 인간의 목숨을 구하는 의사들도 있지만 확실히 그들의 역할은 인류의

계급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보니 결코 만만한 직업이 아닌게 또한 의사이다.

늘 아픈 사람을 대하는 의사들은 방패 몇개는 준비하고 환자를 만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의사는 존경받는 대상이 아니라 사업가라는 의식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대에 참의사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제목처럼 '동네의사', 그것도 맘을 나누고 내 몸을 챙겨주는 진정한 의미의 주치의를 만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동네의사 송태호의 글을 보면서 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을 돌보는 진정한 의사의 모습에 감동 받게 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외치는 순수한 의사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환자의 몸을 걱정하고 돌보는 진정한 의사를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늘 내가 환자에게 진심이었는지, 고통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되묻는 모습에서 그의 진심이 그대로 느껴진다.

열쇠 3개쯤 받고 결혼한다는 직업을 선택했지만 스스로 '보수주의 의사'임을 천명하고 소신껏, 성심껏 환자를 돌보는

동네의사의 모습에서 참의사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간혹 우리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처방전만 내주는 의사의 모습에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몸의 병만이 아니라 마음을 쓰다듬고 보듬는 의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책은 환자뿐만이 아니라 의사들이 꼭 봐야하는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지금 레지던트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의 아들녀석에게도.

더불어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증상들이 큰병의 징후임을 알려주는 정보도 상당히 중요하게 다가온다.

자칫 생명을 놓치거나 위험에 빠질뻔했던 사람들을 구하는 그의 날카로운 눈길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진다.

이런 주치의가 내 이웃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안아픈 곳이 없고 어느 순간 유언도 못하고 떠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위기감을 느낄적도 있다.

왕진 가방을 들고 생명을 구하기 위해 뛰어오는 그런 의사가 있는 동네에 살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목에 손이가고-혹시 갑상선에 이상이 있는게 아닌지 하는 의심으로- 평소 어지럼증이 혹시 단순한 빈혈이

아니라 뇌졸중이나 뇌경색의 징조가 아닌지 불안스럽기도 하다.

병은 숨기지 말고 알려야 한다고 하지 않은가. 오랜만에 참의사의 얘기를 듣다보니 고장난 내 몸도 소중해지고 맘도 따뜻해진다.

이런 따뜻한 의사가 많아지는 아름다운 세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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