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고 싶어
클레어 메수드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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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마흔에 이르면 젊음과 이별하는 아쉬움외에도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서글퍼진다.
예를 들면 한 눈에 불꽃이 튀기는 사랑이라든가,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서서히 고립되어가는 무력함,
싱글이라한다면 더 이상 결혼에 대한 꿈을 접어야 할지, 출산이 가능해지지 않을 것 같은 초조함등등..
케임브리지의 초등학교 교사 노라 엘드리지는 어느 날 자신의 클래스로 전학온 레자라는 소년을 보고 한 눈에
반하고 만다. 크고 깊은 회색 눈동자와 올리브색 피부, 사려깊은 행동등...자신이 가르쳐온 망나니 아이들과는
다른 품위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레자는 얼마전 슈퍼마켓에서 마주쳤던 소년이기도 했었다.
레자에 대한 노라의 관심은 그의 부모인 시레나와 스칸다르에게로까지 넓혀진다.
이탈리아인이면서 설치미술가인 레자의 어머니 시레나는 낯선 이국땅에서의 불안함을 드러낸 채 묘하게 노라의 모성을
자극해온다. 자유분망한 예술가였지만 이국에 대한 이질감때문에 잠시 혼란을 느끼던 시레나에게 노라는 레자의 담임선생이라는
관계를 넘어서 친자매이상의 애정을 느끼고 그녀의 예술활동을 돕게된다.
노라역시 어린 시절 예술가가 꿈이었었다.
하지만 가난한 예술가의 길보다는 현실적인 세계에 우뚝 서라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몇 년전 전신이 굳어져가는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는 그녀에게 예술가적 재능을 물려주었고 언젠가는 꼭 그 꿈을 이루라는
숙제를 남겼었다. 그래서였을까. 노라는 시레나와 함께 작업실로 쓸 스튜디어로 함께 얻게되고 둘만의 공간에서 예술의 교감과 
더불어 묘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게 된다.
시레나의 남편인 스칸다르는 레바논출신의 지성인으로 노라에게 강렬한 성적욕구를 느끼게 해준다.

마흔 둘, 자신의 열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든 '위층여자'노라는 레자의 가족들에게 자신이 갖지 못했던 모든 것을 바라보게 만드는
위험한 사랑을 투영한다. 레자는 자신이 갖고 싶었던 아이의 모습으로 시레나에게는 성취하지 못한 예술가의 모습으로 스칸다르에게는
아직은 뜨거운 성적인 욕망을...
이제 노라의 생활은 시레나의 가족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가끔 레자의 베리비시터로 시레나의 예술파트너로 스칸다르와는 산책을 통한 감정의 교류로 그동안 결핍되었던 것들을 채우게 된다.
그러던 중 시레나 가족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게 되고 심한 상실감에 1년의 휴직을 신청한 노라는 시레나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과연 노라가 열망하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까.



몇 번의 사랑을 거치긴 했지만 진짜 상대를 발견하지 못한 마흔 둘의 여자에게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시레나가족의 등장은 강렬한
유혹이었다. 서서히 꺼져가는 삶의 등불이 다시 환하게 켜지는 듯한 뜨거운 열정이 그녀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들었지만 결국 세월이
흘러 노라에게 남은 것은 지독한 배신감이다.
파리의 시레나의 전시실에 걸려있던 자신의 낯부끄러운 사진이 몇 년동안 열망했던 사랑이 얼마나 허무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이제는 되돌이킬수 없는 시간들. 
거짓을 삶을 살고 있을 때 다가왔던 사랑 역시 거짓이었던가.



노라는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었노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오랜 망상같은 사랑에서 깨어난 노라는 자신의 인생의 아직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나마 다행스럽다. 늘 모범생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다가온 싸구려보석같은 사랑이 그녀의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외로움이란 이렇게 삶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도둑같은 감정들에게 곁을 내어주게 된다.
시레나의 가족이 계획적으로 노라에게 상처를 주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노라의 사랑과 저울질을 하자면 절대 따라오지 못할 천박한 감정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처럼 보인다.
좀더 견고한 삶을 위한 과정이었노라고 다시 힘을 내는 노라의 마지막 모습이 멋지다.
'그리고 그 분노 덕택에 난 드디어 -하느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우리 엄마의 분노까지 끌어안고서-얼마든지 씨팔, 멋들어지게 살다
죽을 수 있어!' 그러니 두고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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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마리아
다니엘라 크리엔 지음, 이유림 옮김 / 박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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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이 아직 통일되기 직전인 그 여름 곧 열 일곱살이 될 소녀 마리아의 여름은 뜨겁기만 하다.
DDR(통일전 동독)의 시골에서 자란 마리아는 40여분 떨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나와
브렌델 농장에서 묵고 있다. 소련으로 떠난 아빠는 열 아홉살 먹었다는 소련여자와 곧 결혼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버려진 엄마는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자 아무 하는 일 없이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다.
10학년인 마리아는 학교가는 일도 시들하고 12학년인 요하네스와 사랑을 나누는 일이 유일한 즐거움이다.
브렌델 농장의 주인이면서 요하네스의 아버지 지크프리트와 그의 아내 마리안네는 농장일을 하고 가게일을 하느라
바쁘고 할머니 프리다는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거든다. 그리고 조금은 알 수 없는 인물인 머슴 알프레드가 있다.
할머니보다 세 살 아래인 알프레드는 바로 이 농장의 일꾼사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 농장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
어려서는 프리다가 남동생처럼 업어 키웠고 오래전 프리다가 결혼을 할 무렵 잠깐 행방불명이 되었던 적이 있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농장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사랑하던 프리다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아
가출을 했었던 것이라고 수근거렸다고 한다. 결혼 5개월여 후 태어난 큰 아들 폴커가 사실은 알프레드의 아들일 것이란 
소문과 함께. 둘째 아들인 하루트무트는 통일전에 사상범으로 지명되어 옥살이를 하다가 서독으로 팔려간 상태였다.



겉보기에 브란델농장은 일거리가 넘치지만 부지런한 가족들이 서로 힘을 합쳐 살아가는 평화로운 곳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브란델농장에 손님처럼 느껴지는 마리아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손에 끼고 한가롭고 다소 게으른 일상을
보내는 소녀였다. 이웃 헤너농장의 헤너를 알기전까지는.
헤너는 마흔 살의 남자로 술주정뱅이로 소문이 나있다. 마리안네의 가게에 와서 수다를 떠는 모습을 간혹 보긴 했지만 그가
마리아의 삶에 들어오리라고는 전혀 짐작되지 못했다.
마리와의 엄마와 마리아가 낡은 자동차를 타고 브란델 농장으로 돌아오던 중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나고 우연히 사고를 목격한
헤너가 모녀를 도와주게 된다. 엄마가 집으로 돌아가고 헤너는 마리아를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마리아를 가지고 만다.
이미 요하네스와 사랑을 나누었던 마리아가 왜 헤너를 거절하지 않았는지 명확치 않다.
소녀다운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돌적이고 무서운 힘으로 달려드는 우직한 남자의 힘에 굴복되었던 것일까.
그 날 이후 마리아는 몸 뿐만 아니라 마음을 헤너에게 빼앗기고 만다.

졸업을 앞두고 사진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사진에 빠져버린 요하네스는 마리아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다만 몰래 헤너의 농장을 드나드는 것을 수상쩍게 바라보는 알프레드의 음험한 시선이 느껴질 뿐이다.
브란넬 농장에서는 소녀로 헤너의 농장에서는 여인으로 이중적인 생활을 즐기는 마리아.
잠시 헤네가 자신에게 소홀한 것처럼 보이면 슬픔에 빠지고 안달을 하는 마리아. 과연 이런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이중생활에 지친 마리아는 헤너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살자고 한다.
하지만 헤너는 말한다. "정말 외로워본 적 있니...너한테는 아무도 없을 거야. 아무도! 오직 나밖에 없을거야!"




딸또래밖에 안되는 마리아와 잠자리를 하고 사랑을 느꼈던 헤너가 왜 마리아를 밀어내려 했을까.
뒤늦게 어린 소녀의 삶에 뛰어든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까.

마리아가 늘 곁에 두고 아껴읽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헤너와 마리아의 축복받지 못할 사랑이 묘하게 교차된다.
누구에겐가는 사랑이고 누구에겐가는 놀음처럼 보이는 이들의 사랑에 대한 판단은 순전히 우리 몫이다.
통일을 목전에 둔 동독의 사람들이 새로운 문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꿈틀거리듯 일어나는 희망이 섞여있는 불안정한
시절이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완전한 가정에 외톨이처럼 살아가던 마리아를 휘어잡은 것은 뜨거운 몸의 소통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사는 사내에게 모성을 나누어주고 ,자신의 부모는 가지지 못한 따뜻한 가정을 꾸며 함께 온기를 나누고 싶었던
절실한 외로움이 마리아를 헤너에게 이끌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다행한 것은 헤너가 마리아에게 마지막으로 나이다운 삶을 살도록 되돌려보내준 것이다.
마리아는 또래의 남자 요하네스와 통일된 조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여름 마리아의 뜨거웠던 사랑은 그녀의 삶에 어떤 흔적으로 남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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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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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헤르만 헤세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대개의 독자들은 정작 작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다만 작품을 통해 작가와 만나는 것 뿐이다.
작품으로 상상했던 작가의 모습을 실제 만나고 실망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이 작품은 말하자면 헤르멘 헤세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면서 특히 그의 여자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든 예술가들이 그러하지만 헤세역시 평탄치 않은 사랑의 역사를 남겼다.
수많은 예술가들이나 작가들은 불꽃같은 사랑을 경험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감성과 열정을 간직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스쳐간 연인들과의 사랑은 흘깃 지나가는 사랑이 아닌 목숨을 내놓을만큼의 열애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등 주옥같은 작품을 써내려갔던 헤세의 사랑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베르벨 레츠는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을 저술했는지도 모른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작품에서 만났던 헤세의 모습과 이 책에서 만난 헤세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는 것이다.
헤세의 부모는 모두 종교의 영향을 받은 집안의 자녀였고 아버지는 목사였다. 헤세역시 신학교에서 종교를 공부했었다. 물론 1년만에
그만두긴 했지만. 아마도 그의 잠재적인 기질이 고리타분한 성직자와는 맞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핏줄에는 열정과 더불어 묘한
보수기질과 도덕심이 자리잡고 있다. 그가 공식적으로 세 번 결혼했던 것은 여자를 좋아한 바람둥이라서보다는 도덕적인 색채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사실 헤세가 수많은 작품을 써내려가던 시절에는 세계적으로 두 번의 세계대전이 있었지만 연애나 사랑은 이미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것 같다. 마리아와의 첫결혼은 아직 순수한 처녀, 총각의 감정이 있었던 시절에 설레임이 있었겠지만 헤세보다는 마리아의 구애가 더 적극적이었다. 후에 만난 두 번의 결혼역시 헤세보다는 연인들이 더 열망한 결과였다.
사실 헤세는 연애체질이긴 했지만 결혼체질은 전혀 아닌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섬세한 감성과 조금은 변덕스런 성질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헤세의 경우는 조금 유별난 감성과 변덕스럼움이 있었던 것 같다. 연인들과의 편지에서는 열렬하다가도 막상 마주치면 냉랭해지는 그만의 사랑도 아주 이상한 모습이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뮤즈의 상은 세 번의 결혼을 했던 여인들과 어쩌면 전혀 닮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금쯤은 떠밀리듯이 운명처럼 체념하듯 치룬 결혼같다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다가왔다.
아홉살 연상의 첫 부인 마리아역시 헤세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루트나 니논역시 헤세의 열렬한 팬이었고 조금쯤은 푸대접을 받았던 연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도덕적으로 무장되기를 바랬던 연인들에게 결혼이라는 형식을 제공했던 헤세는 전형적인 보헤미안이라고 평하고 싶다. 



연이은 세계대전의 영향때문이었을까. 당시에는 점성술이나 심령술같은 것들이 꽤 유행했던 모양이다. 예언가 수잔 파우밍어가 헤세의 손금을 보고 '혼자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고 예언한 것은 결론적으로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단지 결혼이라는 족쇄를 선택했지만 자신은 묶이지 않으려고 도망다니는 형국의 결혼생활을 했으니까.
하지만 아홉살 연상의 여인이든 열 여덟 연하의 여인이든 헤세에게는 아내의 역할보다는 유모나 비서의 역할이 더 맞았던 것 같다.
더구나 첫부인에게서 얻었던 세 아들들에게 냉담했던 모습을 보면 어찌 그런 감성을 가진 아버지가 역작을 쓸 수 있었는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그에게 사랑은 평생 달고 살았던 진통제처럼 꼭 필요했지만 더불어 그를 억압했던 족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의 여인들은 그의 곁에서 늘 외롭고 초조했다. 잡히지 않는 헤세 때문에...분명 사랑한다고 믿어지지만 한 걸음 떨어져 냉담했던 헤세때문에. 헤세역시 족쇄같은 결혼생활을 세 번이나 계속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혼자서는 도저히 생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평생 아기처럼 이기적이고 나약한 모습으로 연인들에게 모성을 요구했던 헤세의 사랑이 아름다웠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그나마 말년에 첫 부인인 마리아나 세 아들들과 화해하고 평화롭게 노후를 보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제법 많은 사진들은 헤세의 일생과 사랑을 짐작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꼬장꼬장한 선비같은 얼굴과 체형을 지닌 헤세는 세 번 결혼한 남자답지 않은 차가움이 느껴진다. 그의 여인들이 평생 얼마나 애가 닳았을까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헤세의 아내로 역사에 이름을 새겼으니 그녀들의 삶이 그다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사랑이란 외로운 길임을...연인들에게 잡히기보다 글쓰기에 몰입한 덕은 후세에 남은 우리가 누렸으니 가끔은 그녀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대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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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 - 속삭이는 자 두 번째 이야기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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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책의 무게가 좋았다. 우선 막바지 더위를 잊기에 이만한 무게감이면 이틀은 거뜬하리라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다는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은 처음이다. 전작인 '속삭이는 자'를 봤더라면 훨씬 몰입이 
쉬울 뻔 했지만 이 작품만으로도 작가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니 기대를 갖고 첫장을 펼쳤다.



밀라는 연방경찰서내 실종전담반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 '림보'소속으로 7년 전, 대형사건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포상으로
승진 기회가 오자 주저없이 림보행을 택했었다.
4년 전까지는 동료인 에릭 빈체티형사가 있었지만 갑자기 종적을 감춘 후 림보에는 팀장인 스티프와 밀라 두 사람 뿐이다.
실종전담반인 밀라에게 온가족이 총기난사로 사망한 사건의 지원요청이 들어온다.
범인으로 지목된 로저 벨린은 17년 전 오랜 병마에 시달리던 모친이 죽자 실종되어 전담반 리스트에 올랐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로저 벨린이 남긴 흔적을 쫓던 중 두번 째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은 오래전 남편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법에 호소했지만 비열한
변호사의 계략으로 위기에 몰렸던 여성 나디아인 것으로 밝혀진다. 그녀 역시 실종자명단에 오른 인물이었다.
이렇게 연쇄살인이 일어나면서 오래전 실종되었던 인물들이 다시 부활한다.

밀라는스티프팀장의 조언으로 비리경찰로 낙인찍혀 경찰내에 왕따로 통하는 베리쉬를 찾아가게 된다.
베리쉬는 오래전 증인보호프로그램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본 유일한 증인 실비아를 도망치게 해주고 뇌물을
받았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채 상담전문인 특수수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채.

밀라와 베리쉬는 각자의 상처를 감춘 채 연쇄살인의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실종자들의 뒤를 쫓는다.
이 연쇄살인의 배후에는 실종자들을 살인으로 모는 '카이루스'라는 광신교의 교주같은 인물이 있음을 알아내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다. 그를 본 유일한 증인이었던 실비아의 행방도 묘연한데다 오래전 그녀를 보호해주던 베리쉬는 작전수행중 그녀와
사랑에 빠져 그녀가 실종되었다는 자괴감으로 긴 시간 상처에 빠진채 살아왔었다.
밀라역시 전작 '속삭이는 자'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후 딸을 낳게 되었고 지금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맡겨
키우고 있었지만 과거의 어두운 기억으로 사랑하는 딸과의 교감이 거의 불가능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각자 상처를 지닌 남자와 여자는 두려운 현실을 마주하지만 비극적인 전쟁에서 돌아와 다시 전쟁터를 그리는 패잔병처럼
사건의 중심에 부나방처럼 다가가게 된다.
연이어 밝혀지는 실종자들의 존재와 살인사건뒤에 숨겨진 엄청난 진실이 드러나면서 진짜 범인의 존재에 경악하게 된다.
대부분의 추리물들이 그렇듯 범인은 늘 가까이 있었음이 밝혀지고 사실 그 뒤에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가 존재하는데..

책을 읽는내내 오랫동안 스스로의 몸을 자해할 정도로 큰 아픔에 빠진 밀라의 고독이 안타까웠다.
사랑하지만 곁에 두지 못하는 딸 앨리스와의 관계도 아팠고 두려워하면서도 악의 중심에 다가서야만 하는 천형같은 그녀의 운명이
마음을 어둡게 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딸을 위험에서부터 구하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름 없는 자'의 실체도 밝혀낸다.
하지만 자신의 집 옆에 살고 있는 노숙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던 그녀의 따뜻함은 뜻밖의 반전으로 숨을 잠시 멈추게 한다.
전작의 '속삭이는 자'가 여전히 그녀곁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다음 편을 예고하는데..

작가는 오랫동안 살인사건을 취재하고 논문을 써오다가 실제로 존재하는 '이름 없는 자'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에서 베리쉬를 도와 정보를 끌어다준 미지의 사나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이름 없는 자'들이 있다니.
'속삭이는 자'에 이은 '이름 없는 자', 그리고 다음 편은 '영혼을 흔드는 자'쯤 되지 않을까.
묵직한 두께만큼 기대이상의 몰입을 주었던 스릴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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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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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오랜만에 옛친구를 만난것 같다. 아주 오래전 아직 세상이 만만하게 보이던 그 시절 그녀의 소설을 만났었다.
'절반의 실패'라는 다소 불길한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그녀의 소설은 아직 패미니즘이라는 말이 나오기전에 세상을
향한 여자의 통곡소리같았었다.
그렇게 세상에 일갈을 하고 당당히 대중앞에 섰던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다.
글쎄 항상 있었지만 우리가 잊은 것이었을까.
표지의 사진에서 만난 그녀는 여전히 날카롭고 각진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다만 나처럼 그녀에게도 세월이 보였다.
예전에는 높은 곳에 있던 그녀가 지금은 내곁에서 내손을 붙잡고 걷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세월탓인지..나도 그녀의 소설속 어딘가쯤에서 나올법하게 질곡을 겪었음인지...그전 세상이 아직 만만할 때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필 섬에 내려와 살게 된 나에게 그녀가 '건너편 섬'으로 다가왔다.
좀더 깊숙하고 좀더 애틋하고 좀더 완숙한 삶의 모습이 녹아있다.

'콩쥐 마리아'는 가난한 집안에 장녀로 제 몸 하나를 희생하여 가족을 돌봤으나 양색시의 과거때문에 가족에게조차 버림받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미국 이민 백년동안 이 땅을 떠난이는 수만에 이른다. 마리아처럼 미군과 결혼하여 제 식구들을 아메리칸드림으로 이끈 여인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전염병환자를 보듯 냉대받는 현실이 가슴아프다.
일본이 패전 후 여인네들이 미군들을 상대로 몸을 팔아 나라를 일으켰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내 집 일이라면, 내 이모가 고모가 그런 여인네였다면 나도 부끄러웠을까. 

'언니를 놓치다'역시 한국전쟁당시 사상을 달리한 언니가 북으로 간 후 50여년이 세월이 흘러 이산가족상봉으로 만나는 이야기이다.
나이차가 많이 났던 언니, 공장에서 돈을 벌어 어린 동생을 부양하던 언니, 모두가 똑같이 잘살게 해준다는 지극히 단순한 선전에 속아
북으로 간 언니. 동생 세희의 기억에 언니는 커다란 산같았는데...눈앞에 언니는 나이보다 폭삭 늙고 지쳐버린 여인네였다.
세희가 꼭 듣고 싶었던 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언니의 사과였는데...'경애하는 지도자동지'만 외치는 언니.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없이 거친 삶을 살아온 세희가 어렵게 장만한 1000달러를 기다렸다는 듯 낚아 채가는 언니의 모습이 가슴 시리다.
이산의 아픔을 지닌 우리 가족 역시 언젠가 마주칠 가족들과의 상봉이 이런 모습일까...눈이 시큰해진다.

'박제된 슬픔'속에는 북으로 간 삼촌이 간첩이 되어 내려온 장면이 나온다. 빨갱이라면 때려죽여야 한다고 배웠던 그 시절, 그 서슬퍼런
시대에 간첩이라니...자신에게 미칠 해악을 알면서도 삼촌에게 향하는 그 피의 부름때문에 전도유망하던 석이는 간첩을 신고하지 않은 죄로...빨갱이를 핏줄로 두었다는 죄로 평생 어두운 삶을 살아간다. 지금도 어디에선가는 이런 억울한 시간을 살았던 이들이 있으리리..
아무 잘못없이 픽밥당한 인생이 한 둘이랴 만은 동족상잔이 비극이 부른 참담함이 서글프다.



소설가인 아내가 버거워 이혼을 하고 그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장례식장에 온 남편은 떠난 아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분명 있지만 보이지 않는 상대를 질투할 수도 무시할 수 도 없었던 유명 소설가 아내를 둔 남편의 심정이 잘 그려졌다.
유명 소설가의 모습에서 작가의 모습을 본다.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헌신한 적 없는 독립된 개체로서 고독하게 살아갔을 그 모습말이다.
아스라히 보이는 건너편 섬에 그 무엇과 닿기 위해 쓰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작가의 고뇌가 시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또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 이 작품들이 몹시도 소중하다.
얼마나 많은 밤들을, 주변의 무언가를 죽여가며 써내려갔을테니 말이다.
내가 죽고도 아주 오랫동안 그녀의 신작들이 사람들이 드글거리는 뭍에 와 닿기를 소망한다.

한꺼번에 먹기가 아까워 조금씩 베어 물었던 달콤한 보름달빵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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