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변호사
오야마 준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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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곱슬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노총각 변호사 모모세는 고양이가 득실거리는 사무실을

운영하는 '고양이 변호사'이다.

12년전 세타가야 고양이 저택사건을 해결한 이후로 고양이와 관련된 사건들을 맡으면서

괴상한 이름을 가진 변호사가 되었다.

도쿄대 법학부를 수석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모모세는

따뜻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결혼정보사를 통해 맞선을 서른 번이나 보았지만

번번히 딱지를 맞았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불굴의 사나이이기도 하다.

 

어느 날, 유명한 제화회사인 신데렐라 슈즈의 회장인 미치요여사의 장례식이 열린다.

하지만 영구차 기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시신이 실린 영구차는 사라지고 만다.

개그맨을 꿈꿨던 기무라와 다무라는 생활고에 못이겨 영구차를 탈취하기로 하고 마침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미치요의 영구차를 납치한다.

마음이 여리고 어설픈 납치범인 기무라와 다무라는 살아있는 사람을 납치하는 것이 두려워

죽은 사람을 납치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으리으리한 리무진 영구차에 실린 관에는 시신이 없었다.

 

다시 서른 한번째 맞선에 실패한 모모세는 육교밑에서 낡은 구두를 새구두처럼 닦는 이상한 할머니를 

만난다. 지나간 과거와 미래를 보는 이상한 할머니는 이 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사라진 미치요 회장의 아들인 오코우치는 이 사건을 모모세에게 의뢰하고 사라진 시신을 추적하게 된다.

 

 

얼핏 아무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지만 사실은 시신납치사건과 모두 얽힌다는

설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손에 땀을 쥐는 미스터리나 스릴러가 있지는 않지만 묘하게 장치해둔 트릭과

반전이 유쾌하다.

2013년 4월에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는 이 작품을 쓴 작가는 쉰 두살에서야 프로작가로 데뷔한

늦깎이 작가라고 한다. 그것도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몇 편의 각본상을 수상했지만 무영이라는 설움을

톡톡히 경험했던 작가였단다.

적어도 이 '고양이 변호사'라는 작품을 쓸 정도의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면 훨씬 더 빨리 빛을 발할 수도

있었을텐데 대기만성의 인내심에 우선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고양이 변호사'사무실에 근무하는 나나에나 노로, 결혼정보회사의 매니저인 다이후쿠와 어수룩한

개그맨 지망생인 기무라와 다무라등...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는

것이다. 평생 발이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미치요 할머니와 구두의 장인 사쿠라이의 철학도

쉽게 돈을 벌겠다는 요즘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

 

돈을 버는 변호사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모모세의 인간미도 멋지다.

소설의 후반부에 퍼즐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하면서 감춰졌던 비밀들이 드러나게 된다.

멀리서 모모세를 향해 가슴앓이만 했던 한 여인의 지극한 사랑도 밝혀지게 된다.

이제 모모세는 자신처럼 고양이를 사랑하는 한 여인과 그토록 원했던 결혼을 하게 될 것같다.

영구차를 잃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던 영구차기사와 엉뚱한 개그맨 지망생들과 유부녀이면서도

맞선을 보러 나왔던 여인에 이르기까지 조연들의 해피엔딩도 퍽 마음에 든다.

 

"좀 예민한 것 아닌가요? 좀 신경질적인 것 같은데요."

"정리중이거든요!"

(일본어로 생리와 정리는 발음이 같다-주)

 

맞선본 상대를 다시 만나고 싶어 찾아온 모모세와 결혼정보회사의 매니저 아코의 대화에서 웃음이 터졌다.

언어의 유희를 유쾌하게 도입한 작가의 유머가 돋보였다.

어수룩한 변호사와 비슷비슷하게 순진한 등장인물들간의 짜임새가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우리 독자들은 모모세의 다음 활약상을 또다시 만날 것같다.

'니야옹, 니야옹, 고양이 변호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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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 - 운명에 대한 과학적 논리석 해석
이영돈 지음 / 동아일보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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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신의 운명이나 미래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특히 요즘처럼 오랜 불황과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계속되는 경우라면 더욱 궁금할 것이다.

인류는 어마어마한 문명을 이루고 발전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미약한 존재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요즘 점집이나 철학관은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오래전 그리스에서는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으로 미래의 일을 예고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단지 믿었던 신과 형식만 달랐을 뿐 인간들의 불안한 미래를

점치는 일들은 비일비재 하였다.

과연 미래를 안다면 운명은 바뀔 수 있을까?

아니 정해진 운명이란게 과연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해답을 찾기위해 뛰어든 남자가 있다.

 

 

우리는 흔히 운명을, 혹은 미래를 알기위해 사주를 보거나 관상을 본다.

생명은 우주의 기가 모아져 탄생된다는 것을 기초로 태어난 해와 달, 그리고 시간들을

기초로 운명을 점치는 것이 사주풀이이다.

이영돈 PD는 과연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사람들의 운명은 같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직접 실험에 나섰다.

어찌보면 사주풀이는 통계학이라는 것에 근거하므로 같은 사주라면 운명도 같다는 것이

맞는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실험에 참가했던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들의 운명은 각기

다르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관상은 어떠한가.

얼굴을 삼등분하여 초년,중년,말년의 운을 보고 각각 눈과 코, 귀와 입같은 세부적인

관상을 봄으로써 그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는 관상학역시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더붙여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짐작할 수 있는 인상이 더한다면 비교적 정확한 데이터를

뽑을 수 있다.

유명한 관상가가 참가한 실험에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짚어낸 것같다.

하지만 사주나 관상은 100%가 없다고 단언한다.

같은 사주를 가진 쌍둥이도 환경에 따라 자신의 노력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데이터에 의해 비교적 많은 정보가 알려져있는 사주풀이나 관상을 보는 사람들의

예측이 왜 다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돈을 벌기위해 상대를 미혹하거나 겁을 주고 굿이나 부적을 권하는 일부 점술가들의 행태가

이런 불신을 낳게 한다고 한다.

 

 

일단 안좋은 점쾌가 나왔다고 치고,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참으로 명쾌하다.

'일기예보에서 내일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한다. 당신은 우산을 들고 나가겠는가.

아니면 출근을 포기하겠는가?'

닥쳐올 불행에 미리부터 질려 삶을 포기할 것인지 힘을 내어 맞닥뜨릴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영돈PD의 적극적인 실험으로 사주나 관상이 어느정도 인간의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단지 그 정보를 파악하고 전하는 사람의 능력이나 양심에 따라 예측은 얼마든지

달라진다는 것이다.

신병을 앓고 무당이 된 사람들을 통해 신과 접신을 하는 장면이나 과연 일반 사람들에게도

이런 접신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은 참으로 흥미롭다.

그가 참여했던 프로그램들이 늘 그랬듯이 이영돈의 이름을 건 이 프로젝트도 상당한 신뢰감을 준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우산을 들고 나설 것인가. 주저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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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 섹스 -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인생학교 1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미나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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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살아있는 개체중 단지 종족번식만을 위한 합방이 아닌 쾌락을 위해

수시로 몸을 섞는 것은 인간뿐이라고 한다.

인간이외의 개체들의 종족번식을 위한 합방은 섹스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번성은 이 섹스에 의해 이루어졌고 인간의 단순한 본능이라고 하기에

그 메커니즘은 훨씬 더 복잡하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늘 삶의 철학에 대해 친절하게 얘기해주던 알랭 드 보통이 예민하게 보이기도

하는 '섹스'라는 주제를 꺼낸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도 하거니와 조금 늦은감이 없지도 않다.

가장 감각적인 본능이면서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섹스'라는 단어에 우리들은

낯부터 붉히게 된다.

비교적 성(性)에 자유로울 것같아 보이는 서구에서도 대중들이 넘쳐나는 광장에서 크게

떠버릴만큼 만만한 주제는 아닌 모양이다.

 

 

-성욕이란 게 없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섹스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인류의 지난 과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욕이란 우리는 흥미와 상식을 넓혀가기도 한다-

-성욕이란 것이 없었다면 우리는 너무 안전해서 탈이었을 것이다-

 

보통이 얘기하는 섹스는 몰래 혼자서만 들여다보는 포르노와 같은 어두운 주제만을 연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일단 '섹스'라는 단어에서 낯을 붉히고 표정관리를 해야한다는 강박에 휩싸인다.

물론 유교중심의 사회에서 성장한 환경의 탓도 있겠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섹스'는 판도라의 비밀스런

상자처럼 함부로 들쳐보기 어려운 두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지금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섹스'없이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라는 보통의 결론에 동의한다.

누군가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모든 미적인 행동들과 도구들은 결국 '섹스'라는 바탕위에만

존재한다는 결론은 인류가 걸어온 역사를 돌아보면 충분히 증명될 수 있는 결론이다.

과거의 어느 시대에서 '섹스'는 단지 종족의 번식이나 동물적인 본능을 해소하는 수단인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경제나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따라 단순한 인간의 본능으로서의 '섹스'는

계층을 형성하는 수단으로 법과 도덕을 구성하는 요소로 다양한 공존의 구심점이 되었다.

 

 

종교에서의 '섹스'는 훨씬 더 미묘한 주제로 등장한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섹스'는 금기의 주제였고 이스람국가의 여인네들이 쓰는 부르카처럼 억압스럽다.

하지만 보통은 과거 어느 종교에서 경건하고 성스러운 주제로 다루어지기도 했던 '섹스'가 더이상

지하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종교가 해야할 일은 무분별하게 탈선되고 사회규범을 깨뜨리는 과도한 '성(性)'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스스로 절제하는 올바른 '섹스'의 기능에 전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점에 대해서는 포르노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고 '섹스'의 본질을 분탕질하는 포르노가 느슨해진 결혼생활이나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들에게 좋은 촉매제로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갈구하는 상대에게 나는 단지 '섹스'만 원한다고 해서 부끄러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말에 왜 이리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다.

잠시 스치는 사람에게서 몸이 달아오르는 욕망이 느껴진다는 것은 어쩌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만큼 몸의 본능은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니 안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욕망을 드러내고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 것은 잠시후 열정이 식었을 때 나타날

수치심이나 허무감은 바람직한 '섹스'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대에서 섹스를 뜻하는 단어 cnawan이 know라는 뜻을 포함한다는 것은 '섹스'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에 다가서고 싶다는 욕망의 시작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결혼이란 제도역시 '섹스'에 의해 탄생되었을 것이다.

결혼생활은 침대시트와 비슷해서 아무리 애를써도 네 귀퉁이가 반듯하게 펴지지 않으니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곤란하다거나 부부는 자신들의 삶이 결혼이란 감옥에 갇혀있음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어느새 상대를 보아도 달아오르지 않는 몸과 마음을 다독거리면서 과거 어느 시간 열정에 뜨거웠던

기억을 떠올려 보라는 말에도 감사한다.

분명 과거 어느 시간 나도 상대도 한껏 뜨거웠던 존재였으니.

 

예민한 주제이면서도 무지막지하게 들여다보고 싶은 '섹스'라는 주제를 명쾌하게 풀어낸 보통의

감각은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그의 해답은 고루하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도덕적이다.

'섹스'라는 주제를 다룬 그의 바람은 넘쳐나는 정보와 시각적인 충동에 휘둘려 망가지는 인간의 본성을

경계하고 더러운 욕망으로 허물어진 바벨탑의 신세는 되지 말자는 것일게다.

몸이 느끼는 자연스런 충동은 즐기고, 심지어 식어버린 욕망에 불을 붙일 촉매제로 포르노를 이용해도 좋지만

절제의 아름다움을 승화시키는 '섹스'가 되기를 바라는 진심어린 충고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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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 나의 친구, 나의 투정꾼,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해 면류관을 쓰지 않은 나의 엄마에게
이충걸 지음 / 예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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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큰 남자가, 아니 중년의 남자가 자신의 모친을 '엄마'라고 부르는 장면을

연상하면 왠지 몸이 오글거리는 것도 같고 살짝 징그러운 생각마저 든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이충걸'이란 남자를 알지 못했다.

단지 이력으로만 보면 건축학과를 나왔으나 GQ의 편집장으로 그 방면에서는 상당히 유능한

사람인 모양이다. 표지에 나온 그의 모습은 도무지 나이를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이미 소설부터 에세이집까지 책도 여러권 냈다는데 어쩌다 나에게는 뒤늦게 아는척을 해왔다.

가지고 있는 청바지가 수두룩하고 검색에서 나타난 그의 모습도 역시 패션니스타의 자질이 엿보였다.

그런 그가 오래전부터 함께 살고 있는 엄마에 관하 이야기를 써왔던 모양이다.

엄마를 소재로한 에세이집은 상당히 많이 나왔던 것같다.

하지만 이 책은 상당히 특별하게 다가온다.

 

 

단순히 사랑하는 엄마를 추억하는 글도 아니고 토닥거리는 연인들의 연애이야기같기도 하고

인생의 동반자들끼리의 이인삼각의 운동경기를 보는 것같기도 하다.

위로 형이 둘에다가 누나가 있는 막내아들인 이남자를 키우는게 다른 형제 다 합친 것보다도

더 어렵더라고 했다. 하긴 이렇게 글을 쓸 정도의 감성이라면 꽤나 까탈스럽지 않았을까.

그저 그런 엄마와의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문체가 예사롭지 않다.

어찌보면 너무 묵직해서 어느 문장에서는 두 서너번쯤 읽어야 겨우 줄거리를 따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어쩌면 요렇게 맛깔스럽게 표현했을까 싶은 빛나는 문장들의 연속이다.

 

 

별난 아들을 휘어잡는 모친이라면 역시 예사로운 감성의 소유자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을 위해 아파트 베란다에 메주를 띄우고 된장을 담그는 천상 우리들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애틋한 자식사랑이 느껴진다.

희한한 물건이나 시계에 집착하는 묘한 취향을 가진 남자를 지켜보는 엄마는

늘 혀차는 소리가 떠날 날이 없을 것같다.

더구나 여전히 싱글로 개기는 아들이라면 늙은 어미의 마음이 어떠할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여전히 때로는 투정꾼으로 때로는 늙은 모친의 보호자로

꿋꿋하게 엄마곁을 지키고 있다.

독특한 그의 취향을 이해해주는 지인군단의 화려함을 보면 분명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인듯 한데 그래도 그 역시 어쩔수 없는 한국남자다.

손수 담근 된장으로 끓인 엄마표 된장찌개에 환장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언젠가 엄마표 된장찌개를 먹지 못하게 될 어느 날을 예상하면서도 엄마에게 일일이 물어

낱낱이 알고 싶지 않다는 말에 그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 짐작케된다.

엄마표 된장찌개의 오묘한 맛을 터득하게 된 것을 안 엄마가 양육한다는 책임으로부터

편안해질까봐. 그럼 의욕 하나를 덜어내 엄마가 무력해질까봐.

그가 아무리 대한민국에 잘나가는 남자라 해도 늙어가는 엄마가 어느 순간 자신의 곁을

떠나 더 이상 양육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고아가 될까봐 걱정하는 아들인 것이다.

분명 이제 엄마에게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이 늙어가는 아들(?)의 사모곡임을 살아서 보실 수 있으니 어찌 행복한 엄마가

아니라 하겠나. 그의 엄마는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그를 곁에 붙잡아 두고 싶을지 모른다.

여전히 엄마에게 그는 어린 아들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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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 - 소설
혜경 지음, 최종훈 원작 / 걸리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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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장막이라는 소련도 죽의 장막이라던 중국도 이제는 문을 열고 세상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건만

북한만은 여전히 동토의 구역이다.

한 핏줄을 나눈 동족이라는 것도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이 되어가고 그들은 지구촌에 외계인처럼

외톨이처럼 그렇게 버티고 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수없이 많았다.

손을 잡아주기에도 손을 놓기에도 어려운 그들을 이렇게라도 만나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웹툰으로 이미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이 작품은 영화로 제작되어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물론 이 소설의 주인공인 류환과 해랑은 꽃미남 배우인 김수현과 박기웅이 맡았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고창석과 연기의 달인 손현주가 원작의 느낌을 아낌없이 살려주었을 것이다.

 

 

 

일단 설정은 무척이나 황당하다.

남한으로 침투시킬 특수공작원을 양성하는 5446부대의 조장인 류환과 해랑은 남한으로

침투하여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동네바보로 설정된 류환과 로커로 변신한 해랑은 2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이

맡은 이 이상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만신창이가 되어 흘러 들어온 류환을 걷어준 수퍼할머니와 그의 아들 두석, 그리고

전직 경찰인 고씨 아저씨와 외롭게 살아가는 유란과 유준, 동네의 악동 꼬마인 치웅과 성민.

재즈가수인 란은 이제는 동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류환이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수퍼에서 배달과 잔심부름을 하며 충실하게 바보역할을 하던 류환은 뒤이어 남파한

해랑과 해진과 조우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5446부대의 빼어난 전사로서 남한사회에 침투하여 남한사람이 되는데

성공하지만 갑작스런 남북기류의 이상으로 모두 자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자신이 죽는 것은 영광이지만 북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류환은 자신들을

전사로 키워준 김태원을 찾아가고 숨겨져있던 비밀들을 알게된다.

과연 죽음의 전사로 키워진 이들이 선택한 길은 무엇일까.

 

 

이미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읽는 내내 한 권의 대본을 보는 것 같았다.

영화속의 인물들과 겹쳐져 좀 더 생생한 전사들을 만난 것 같다.

남파된 간첩들이 남한의 풍요로운 현실과 마주쳐도 변절하지 않고 충성을 다할 것인가.

충실하게 간첩의 임무를 수행하던 전사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전원 자결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훈련받은대로 충실하게 따를 것인가.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비장하게 이어지는 스토리에는 절절한 가족애가 녹아있다.

아무리 목숨하나쯤 눈하나 꿈쩍하지 않고 해치우는 전사라 할지라도 두고온 가족들과

자신을 영웅처럼 따르는 대원들의 사랑을 모른척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은 비장하고 슬프다.

류환과 해랑, 해진을 처치하기 위해 파견된 북쪽의 저격수들과 남한의 요원들이 벌이는

끔직한 사투에서 서서히 목숨들을 잃어가는 전사들.

과연 류환과 해랑, 해진은 살아남았을까.

세월이 흘러 류환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슈퍼할머니의 염원이 담긴 낙서밑에 글귀하나가

그의 생존을 희미하게 짐작할 뿐이다.

'동구야,살아 있거든 소식이라도 전해 주거라.'

'엄마, 아프지 마요.'

 

다소 엉뚱한 코믹한 설정으로 웃기는 소설이 될지도 모르지만 남북의 비참한 현실과

전사로 길러져야하는 어린 소년들의 비애가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얼마 전 자유세계로 탈출을 시도하다 송환되었다는 북한소년들의 안위가 궁금해졌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잠시 전쟁이 중단된 휴전국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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