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키토키 유럽 - 네 남자, 유럽인들과의 대화여행
최규동 외 지음 / 이담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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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있는 네 남자들의 특별한 유럽여행에 따라 나선다.

각각 자신이 속했던 분야에서 일 잘하던 남자들이 아주 느지막하게 보따리를

꾸려 떠난 여행은 흔히 만났던 여행서와는 사뭇 다르다.

 

자신이 연구하는 독일통일 20년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벤처기업의 CEO였다가

돈과 명예가 유일한 목표가 되어있는 삶에 염증을 느꼈던 남자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유럽으로 함께 떠났다. 그 것도 자전거 여행이라니!

 

여행에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끼기엔 자전거가 딱이긴 해보이는데 교통편을 이용할 때마다

분해하고 조립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전거여행은 교통비가 엄청난

유럽에서는 경제적인 매력이 있긴 했다.

 

'한국이란 땅덩어리에서 바쁨이라는 비즈닛의 족쇄를 벗어버리고, 과연 주마간산식의

여행이 아닌 유럽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평가하기위해.....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118p

 

캠핑장을 찾지 못해 들어섰던 농가에서 만난 독일여인과의 우정도 캠핑장에서 만난

에바도 통일독일후 느껴야하는 경제적 위기감은 대단하게 와 닿는다.

어느 날, 갑자기 준비없이 축제처럼 다가온 통일이 그 후 20년동안 독일국민 대다수가

지금이라면 반대했을 것이라고 했다니 분단국가인 우리들은 심각하게 새겨들을 일이다.

근면하고 철저한 독일국민들마저 질기게 하는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은 고단한 여행객을

집에 더 머무르게 할 수없을 만큼 경제적, 정신적 빈곤을 초래했다.

 

타산지석이라고 민족적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게르만 민족도 감당못할 통일비용을

우리는 과연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갑자기 통일이란 국민적 소망이 두렵게 느껴진다.

 

유럽은 이제 유럽공동체가 되어가고 있고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우리 남한의 면적보다도 적은 국가에서 4개의 국어가 존재하고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이질감은 이제

기성세대들의 잔재일 뿐일까.

 

 

얼핏 일본과 비슷한 문화가 엿보이기도 하는 영국은 다인종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지만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사는 것에 비해 품은 넉넉지 못한 나라인듯하다.

굳이 영국만의 일은 아니지만 내 집에 온 손님마저도 돈을 물리는 철저한 이기주의 내지는 계산적인

사고는 역시 동양인인 저자나 내게도 낯설고 불편했다.

 

'하지만 그들의 무관심은 '우리'에 대한 무시뿐 아니라, 자신의 목표와 삶에 집중하는데서 발생하는

'여분의 정신적 에너지의 결여'때문이기도 하다.' -267p

 

무난하게 대기업을 다니다가 농업을 하기위해 방향을 틀었다는 또 다른 저자는 교회에서 만난 영국인들의

가장된 친절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이 문제역시 영국인들만에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선진국이라고 표현되는 많은 나라들, 특히 개인주의에 익숙해진 그들에게 우리들의 감성에 흐르는

정(情)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남자는 때로는 입국장에서 밀입국자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캠핑장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와중에도 교회와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은 잊지 않는다.

크리스천이 보는 유럽의 종교관은 아주 특별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종교혁명의 발상지인 유럽은

이들에게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었을테지만 어쩌면 그 종교가 유럽을 늙게하고 병들게 한 것은 아닐지..

문외한은 생각해본다.

 

얼핏 가볍게 떠난 여행같아 보이는 이 특별한 여행서는 독일통일과 유럽의 종교, 다민족간의 소통이나

세대간 감성의 결핍같은 것들까지를 망라한 연구서라는 말이 더 적합해보인다.

각기 다른 목적으로 떠난 이 여행에서 네 남자들이 가지고 온 꿈과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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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목소리, 다른 방 트루먼 커포티 선집 1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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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포티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사랑을 갈구하는 고독한 소년의 눈이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헤밍웨이와 함께 전후 미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커포티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의 대표작이었던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아름다운 배우 '오드리 헵번'을 통해 영화로 본적이

있지만 그의 첫 장편소설이자 9주연속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던 '다른 목소리 다른 방'을

선택한 것은 천재적인 작가로 추앙받았던 그의 순수한 창작성을 살펴볼 수 있을것이란 기대때문이었다.

 

 

조엘은 병을 앓던 엄마를 잃고 이모네 가족들과 지내다가 열 세번째 생일날 아버지로 부터 온 편지를

받고 아버지가 살고 있는 남부의 시골마을로 떠나게 된다.

'스컬리스 랜딩'으로 가는 길에 조엘은 아버지가 자신을 12년 동안이나 팽개쳐두었다가 이제 와서

다소 멋지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늘 자신이 그려왔던 만남이라 낯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조엘은 아주 많이 아버지를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이혼으로 고독했던 유년을 보냈던 작가의 어린 시절 모습이 조엘과 겹쳐온다.

 

하지만 도착한 아버지의 집에는 재혼한 아내 에이미와 사촌 랜돌프와 흑인 하녀들만 있을 뿐이다.

정작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고 사람들은 아버지가 아프다고만 말한다.

조엘은 헬렌이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라디오도 영화도 보지 못하는 시골생활의 답답함과

어머니의 유산이 남아있다면 기숙학교에 가고싶다고 호소한다.

 

'J.H.K. 샌섬. 조엘은 편지를 몇번이고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남다르고 어른처럼 들리고, 그 뒤에

어떤 자랑스러운 직함이 붙어도 잘 어울릴 것만 같은 이름이었다.' -112p

 

조엘이 자신의 이름뒤에 장군, 판사, 주지사, 박사와 같은 명칭을 붙여보면서 자신의 이 편지가 후에

수천 달러를 받고 팔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을 하는 장면에서는 어린 소년이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순수함과 설레임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조엘은 낯선 아버지의 집에서 복잡하게 섞인 소리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침묵의 가장자리에 있는 소리, 돌과 나무가 내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한숨.' -142p

 

멋지게 자신앞에 나타난 아버지와의 재회를 꿈꿨던 조엘은 정작 아버지는 만나지 못한 채

낯선 사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왜 사람들은 대놓고 아버지가 없다고 말하지 않을까...그냥 이모에게로 되돌려 보내면 될텐데...

조엘은 미스터리의 한가운데서 결국 아버지늘 만난다. 아주 기이한 모습을 한 아버지를.

사실 조엘을 불러들인 편지를 쓴 사람은 바로 랜돌프였으며 식물인간인 아버지보다 조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미스터리 투성이의 집을 떠났던 조엘은 다시 돌아오게 되고

'다른 목소리'가 된 성장한 자신과 만나게 된다.

'다른 방'은 처음 아버지를 만나게 될 기대를 품고 왔던 낯선 집의 모습이 이제는 성장한

눈으로 보게되는 '다른 방'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조엘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어디론가 떠났다면 그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수있을까.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이제는 더 이상 소년의 모습이 아닌 조엘의 미래가 작가인 커포티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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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 - 당신을 위해 차리는 29가지 밥상
임지호 지음 / 샘터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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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식객'이라 부르는 요리사가 있다. 山堂(산당)이라고도 불리는 남자는 요리가가 되지

않았다면 김삿갓처럼 천하를 떠돌았거나 어디 절에라도 들어가 머리깎고 스님이 되었을 것같다.

가난한 한의사였던 아버지와 절절한 사랑을 했던 생모는 남자가 세 살때 본가로 아이를 들여놓고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주어온 아이라는 놀림이 싫어서였을까. 아이는 집밖을 맴돌다가 기어이 고향을 떠나 '방랑'을

시작하게 된다. 가난했었고 자신을 키워준 엄마에게 돈 많이 벌어다 주겠다고 나오긴 했지만

결국 남자는 키워준 엄마에게 따뜻한 밥 한끼조차 대접하지 못한채 불효의 죄를 뒤집어 쓴다.

 

자신에게 씌어진 불효의 죄를 닦고 싶었는지 그는 늘 밥을 짓고 남을 대접하는 일을 한다.

눈에 띄는 대로 풀과 열매, 심지어 이끼까지도 그의 손에서는 찬란한 '요리'가 된다.

 

 

그가 지나온 시간들속에 그는 거지왕이었다가 중국집 배달부였다가 어느 순간에는

중동의 사막 한 가운데서 요리사 수십명을 거느린 총주방장이었다가..

참 들쑥날쑥한 인생이기도 했다.

호텔 주방장도, 누군가 돈을 댈테니 주방만 맡아달라는 것도 다 맞지 않는 옷 같았다고 했다.

그저 훨훨 발 가는데로 가다가 만나는 사람, 만나는 자연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좋아

그렇게 오랫동안 '방랑식객'으로 살다가 운명같은 여자를 만나 양평 산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그 터 또한 그의 요리를 사랑하는 많은 예술가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던가.

도대체 영혼을 흔드는 그의 요리를 제 때에 맛보려면 그를 이렇게라도 주저 앉혀야만 했기

때문이었단다.

 

"너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다...그걸 줘도 너는 지키지 못한다..그러나 넌 한 번은 잘 살 수 있다.

남의 것은 티끌 하나 탐내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무뚝뚝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당부는 그의 평생의 지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티끌하나 욕심없이 지금도 부지런히 밥을 지어 공양하는 공양주처럼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어느새 손녀를 본 할아버지가 되어 몸을 푼 며느리에게 줄 굴비를 고르는 천상 아비의 모습이 되어서.

 

이제 산당은 예전보다 덜 자유로와 보인다.

하지만 토종 대한민국의 남자는 우리나라가 좁던지 세계로 향하는 봇짐을 꾸리는 '방랑식객'이 되었다.

세계인들에게 '원더풀'이 절로 나오는 우리 음식을 만드는 그가 참 멋지게 보인다.

이만하면 집밖으로 떠도는 아들자식때문에 속을 끓다가 돌아가신 부모님들도 흡족하실 것이다.

그의 요리에는 위안과 건강과 사랑이 담긴 '생명'의 양식이었다.

언제 한번 나도 양평의 산자락으로 찾아가 그가 그의 아내를 위해 자유로운 날개같은 요리를 해주었듯이

억눌리고 때묻은 영혼을 치료할 그런 요리를 맛보고 싶다.

그의 심미안이라면 첫눈에 내게 맞는 요리를 골라낼 것이다. 이 세상에 '밥정'이 무섭다는데..그러다

정(情)이라도 들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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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속사정 - 알고 보면 지금과 비슷한
권우현 지음 / 원고지와만년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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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인데 알고 보면 지금과 비슷한 일들이라

세상사 세월이 흘러도 그 밥에 그 나물격인 일들이 지천인 모양이다.

 

 

표지의 그림에는 뭔가 은밀하고 수상쩍은 느낌이 묻어나지만 그동안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해괴한 사건들이 그 시절에도 엄청 많았단다.

조선의 역사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세종은 육식을 좋아하고 지병인 당뇨병이 있어

소갈병에 시달리면서도 한글을 만들고 조선의 기틀을 만든 위대한 왕이었다.

막연한 그의 인상은 꽤나 스마트할 것같은데 사실은 조금 뚱뚱하였다고 한다.

일중독에 걸렸을만큼 워커홀릭이면서도 연애에도 능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세종이

복지에도 관심이 많았던지 그 시대에 벌써 산모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출산휴가를 줬단다.

 

고려시대에는 여자의 사회적 위치가 남자와 동등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위에 있기도 했다는데

유교에 목을 맸던 조선중기로 접어들면서 희한한 잣대로 여자들을 억압하였다.

칠거지악이 어떻고...과부는 재가가 안되니 수절을 강요하고..

그렇게 살다간 여인데들의 한이 얼마나 깊었던지 오죽하면 평생 열녀소리를 듣던 수절과부가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유언으로 수절은 절대 하지 말라고까지 했을까.

 

폭염이 기승인 요즘 가장 사랑받는 음식인 냉면의 역사를 보면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냉면집에 걸려있던 종이발이 다시 내걸리면 운치도 있고 좋을텐데 나역시 아쉽다.

 

양반들이 득세한 시대인지라 양민이나 노비들은 평생 세금과 부역에 시달려야 했지만

간혹 이런 어려움을 알아주는 왕을 만나면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데..영조의 균역법은

그의 강직한 성품이 느껴지는 제도이다.

 

 

나는 읽지 못했지만 임진왜란의 명장 이순신을 끌어내리려 했던 원균에 대한 글들이 나왔던 모양이다.

원균이 명장이었다는 주장에 저자는 울컥해서 반론을 펼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원균의 외모에 대한 묘사대로 툭 불거진 배에 주독이 올랐는지 빨간코에 맹한 눈빛의 초상화를

두고 '당연히 후대 작품입니다만 전 이대로라고 봅니다. 아니 미화된 거죠.' 205p

만나보지 못했지만 저자는 분명 의리를 중시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울컥쟁이일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우리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볼 수있는 것은 저자의

역사에 대한 안목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된다. 드라마에 나오는 병사들이 차고 있는 환도의

모양을 보고 잘못된 것을 짚어내니 말이다.

 

성종이 중국어 공부를 했다는 사실이며 이런 일을 두고 신하와 설전을 벌이는 장면도 무척

재미있다. 아무리 진언을 해야하는 신하지만 왕에게 대들다니.

글을 몰라도 영의정까지 지낸 박원종이라는 사람이 있다니 빡빡한 계급제도에도 틈이 있었고.

조선시대의 무기며 세금제도에 얽힌 이야기까지 저자의 박식함은 놀랍기만 하다.

단지 사실을 알려주는 지식장이가 아니고 해학이 곁들여지고 잘못된 제도를 놀리는 재주까지

그의 글쏨씨가 비범하다. 역사도 이렇게 웃으며 공부해보니 여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게 아니다.

이 양반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한자리는 따놓은 당상일텐데..

아마 다 말하지 못한 조선의 속사정이 또 있을 것이다. 그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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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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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이라는 주제가 서점가를 강타했다.

심지어 노숙자를 대상으로 '인문학'강의를 하여 성공을 거두었다는 보도도 들려왔다.

정확하게 인문학을 정의하여 보면,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 문학,역사학,고고학,종교학,여성학,미학,예술,

음악,신학등이 있다.' -위키백과-

한마디로 자연을 제외한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라는 소리다.

흔히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그 모든 것들.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이 학문이 꽤 어려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은 갑자기 시시한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왜 '모든 순간의 인문학'인지는 금방 알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인문학이 있으므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상처받고, 외로운 모든 순간에...인문학은 숨어있다.

국어교육과 교수인 저자는 살아가는 모든 일들...에 자신이 찾아낸, 혹은 느꼈던 인문학을

대비시켜 은근히 학문을 비껴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옷자락을 끌어들여 앉혀 놓고 있다.

 

가슴이 미어질 것같은 이별후의 아픔까지도 책읽기로 음미하라고 등을 떠미는 그녀의 인문학

찾아내기는 아주 사소하기까지 하다.

잠시 설거지를 미뤄놓고 막장 드라마라고 욕을 하며 보는 아침드라마에서 부터 너무 아름답고

멋진 몸매를 가졌다고 말하기 힘든 메릴 스트립이 나오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그녀의 머리속에 저장된 인문학은 꿈틀거리고 있다.

 

 

 

두 딸을 씻기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보다 장애인 언니를 둔 둘째 아이가

느끼는 사랑결핍에서 그 야윈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환히 보인다고 했다.

 

'스스로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잘 처리하고 -엄마는 둘째아이를 잘 보살펴주지 않기 때문에-

인정받고, 누군가의 연인이 된다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여인이 될 것이다...그러나,

제 안에 다 자리지 못한 여섯 살 여자아이 때문에 자주 아플 것이다. -203p

 

그저 장애인인 큰언니도 안타깝지만 동생에게 무관심한 엄마도 많이 힘들겠구나...정도는

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녀처럼 결핍의 아이의 미래때문에 울컥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상대의 사랑에 대한 결핍뿐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미지인 나르시시즘의 과도한

잉여도 한편으로 결핍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라고 묻던 백설공주의 계모도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고 속되게 보일 것이다.

물론 자존감이나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말이다.

계모가 인문학을 안다면 조금 더 빨리, 극렬하게 발견하게 되겠지만.

 

 

체중때문에 외모때문에 지친 여자들에게는 삶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라고 권한다.

공부를 하다보면 자신이 보이고, 자신의 욕망이 보이고...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심미안이

보일 것이니...하긴..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에 욕망이 자각으로 변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더 큰 충만이 결핍을 채울 것이니..그녀의 예측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흠..인문학이 결국은 과도한 욕망을 잠재우고 순정의 충만으로 결핍을 메운다는 뜻일까.

 

 

자신의 아픔을 엄마와 나누는 것에 낯설었던 여자는 그래서 너무 착했던 여자는 좀 늦었지만

이제라도 '늙은 애'가 되어 '애 늙은이'였던 자신을 토닥여주라고 말한다.

그 충고는 사랑에 집착하고 이별조차 자신의 탓이라고 돌렸던 너무나 착한 여자들 뿐만아니라

저자 자신의 반성이 아닐까.

 

그녀가 일상과 만난 인문학은 시와 소설, 영화에 드라마까지 참으로 방대하다.

스치는 모든 일상과 연결시킬 자료가 내게는 너무 부족해서 부끄러울 지경이다.

차라리 모든 일상속에 떠올릴 것이 없는 인문학 빈곤의 내가 차라리 담백하지 않을까..자위해본다.

그래도 이 책에서 인용된 '모든 순간의 인문학'은 적어도 빈 내 머리속에 저장이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인문학이 어렵다고 도망다녔던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그 벽이 두껍고 높지 않음을 말랑말랑하게

주물러 건네줘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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