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게 어쩌면 스스로에게 - 이 시대 7인의 49가지 이야기
김용택 외 지음 / 황금시간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만의 색을 뽐내는 7인의 7가지 이야기가 무지개처럼 펼쳐져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자신이 낳고 자라고 아이들을 가르친 섬진강변의 고향집이

자신을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갑자기 비가오면 땅속의 벌레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다독거리셨던 어머니. 무심코 베어 버렸던 나무 한 그루에게도 저승길까지 목숨을 이어주던

의식을 보며 자란 그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의 에세이 출간행사에서 그를 만났었다. 그의 담백한 고향집과 앞뜰처럼 펼쳐진 강가.

그의 천진한 미소처럼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었다. 강이 시가 되었던 삶이 참으로 부럽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시작한 박찬일의 돼지고기 예찬은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내가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은 쇠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비싼데

그 이유는 물론 맛이 더 좋기 때문이다.

가죽부터 머리까지 한 점 남김없이 활용하는 대한민국의 돼지고기 사랑은 못살던 시대의 유물이겠지만

참으로 다양한 맛을 내는 요리감각에 세계적인 쉐프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얼마전 읽었던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의 작가 이충걸은 참으로 독특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잡지 편집장으로 패셔니스타로 개성있는 삶을 살면서도 문학에 대한 사랑을 놓지않고 이렇게

늘 글을 쓰고 산다는 것이 그의 프로필에 적힌 이력보다 멋지게 다가온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가 세상에 나올 무렵 홍세화는 파리의 망명객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고 했다.

비슷하게 성장했던 뒤짱구는 미국에 유학한 후 서울대 교수에 이어 총장이 되어 있었는데 옆짱구인 자신은

선배를 잘못 만나 전태일을 알았고 정치적 난민이 되고 말았다.

그런 그를 파리의 한식당에서 만난 적이 있다. 90년대 초였을 것이다.

마침 그의 첫 책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던 터라 파리에서 그가 제법 알려져 있던 때였다.

표지에 나온 그의 모습보다 머리숱도 많았고 확실히 젊었던 그의 어깨가 상당히 외로워 보였던 것은

아마도 난민의 고독과 기약없는 회향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고국에 돌아와 이렇게 담담하게 과거를 회상하는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이제 더 이상 외로운 난민이 아닌 대한민국의 주류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못생긴 얼굴때문에 공부라도 해야할 것 같았다는 서민 교수의 이야기는 늘 그렇지만 참 재미있다.

얼마전 읽은 '기생충 열전'역시 징그러울 것 같은 기생충이 살짝 귀여워졌으니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귀여운 그의 얼굴만큼이나 재미있는 책을 만드는 감각이 돋보인다.

기생충 학자로 빛을 보기전에 작가로 대성할 수 있는 싹이 보이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닌가.

 

이렇듯 일곱 남자의 각기 다른 삶과 생각을 엿볼수 있는 타박타박 산책길을 걸으며 나눈 담소같은 책이다.

이렇게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무심했던 내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되짚어 보게된다.

글쎄 치열했든 외로웠든 어쨋든 그들은 지금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동무이기 때문이다.

다 가보지 못한 길들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움들이 조금은 사그라든 것 같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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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는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리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린 사랑을 깨닫고 서른일곱의 미연은 말한다.

전문대학을 나와 사이버대학을 다시 졸업하고 몇 번의 직장을 거치다가 해드헌터가 된 미연은

이십대라는 단어를 음미해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것같은 그런 20대가 있었다.

누구에게나 20대는 있다. 하지만 지금 서있는 나이가 늘 낯설게 느껴지는건 나 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늘 자신보다 앞서가던 여동생 세연은 기자로 자리잡았지만 단지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이 유일한

빽이었던 남자와 결혼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물론 불행하다는 건 세연이의 시각이 아니다.

이제 다섯살인 아이를 옆집에 맡기고 갓 6개월인 둘째 아이는 아침 저녁으로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사시 시험을 포기한 백수남편의 밥을 해먹이면서 동동 거릴지라도 말이다.

 

제법 값나가는 아파트를 대출금을 끼고 무리하게 구입했지만 이미 많이 오른 것은 미연같은 올드미스에게

큰 위안일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바로 윗층에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남자가 잘생긴 아들녀석과 예쁜 마누라를

끼고 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신문광고이거나 잡 코리아같은 매체만 있는 줄 았았다.

하지만 이렇게 치열하게 인력시장을 휘두르는 헤드헌터라는 직업이 있는 줄 몰랐다.

미연에게 학벌, 흔히 SKY라는 훈장은 자신의 석세스를 위한 인력들에게는 필수였지만 다리를 놔주고 성공보수를

받는 헤드헌터의 업무에는 하등 상관이 없는 스펙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나고자 했던 남자들에게 학벌은 중요했던 것일까.

 

S대 출신의 태환은 그런 그녀의 허영을 충족시켜줄만한 남자처럼 보였다.

채식주의자이며 완벽주의자처럼 보이는 태환의 비위를 맞추는 일쯤은 자신이 있어보였다.

거의 그의 직장근처로 찾아가야 하는 데이트도 그랬고 고기를 좋아하지만 채소식단은 선택하는 일쯤이야.

 

 

정경훈이라는 버젓한 이름을 두고도 '흐물'이라 불리는 남자는 멀리 대전에서도 그녀가 부르면 달려오곤

했던 남자였다. 시시한 지방대를 나와 조금은 안락해보이는 공사에 다니는 연하의 그 남자는 미연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너무 편했기에 연하였기에 남자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조금 못생긴 얼굴때문에? 하긴 태환이는 조각처럼 아름다운

남자였지. 하지만 태환에게 미연은 어떤 의미도 아니었음을 나중에야 확인하게 된다.

 

무작정 대학로로 나와달라는 태환의 부탁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흐물을 불러 맥주를 마시던 밤.

미연은 태환에게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었다. 뒤에 남겨진 흐물은 서둘러 태환을 향해 달려가는 그녀의 등 뒤에 이렇게 외쳤지.

'기다릴게.'

 

'이미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다음,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받아들이고 다시 걸어가는 것.' -282p

 

헤드헌터라는 직업과 미연의 로맨스는 우리가 분명 보이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아니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에 대한 냉정하지만 어리석은 '시선'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저 한 사람의 이력서에 기술되는 몇 줄의 스펙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듯이 미연이 만난 남자들의

스펙만 확인했던 시선은 직업이 주는 재앙이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든지 부르기만 하면 달려와주던 남자의 사랑을 진작 알아보았더라면 미연의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가막힌 사연이 있었어도 아침이면 시치미를 떼고 화장발처럼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숨어있는 풍속도를 생생하게 살려낸 작가의 시선이 신선하다.

작가는 혹시 헤드헌터였던가. 아님 주변에 그런 지인이 있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생생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미연의 부실했던 사랑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그러니 어쩌랴. 그것도 인생이니

감내할밖에. 언제든지 다시 일어나 받아들이고 다시 걸어가는 것...그게 인생인걸.

그동안의 한겨례문학상 수상작에 비해 다소 가벼운 작품이어서 놀랐지만 그러니 어쩌랴.

이게 현실이고 세태이고 우리네 참 모습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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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 -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 에세이
최준영 지음 / 이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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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매일 글을 올리세요. 별로 잘 쓰는 것 같지도 않던데."

언젠가 대학후배가  저자에게 물었답니다. 딱히 반발할 수가 없었지만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그 부끄러운 글을 밑으로 내리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게 바로 매일같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된 셈이다."

 

후안무치라는 말이 있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이다.

적어도 우리의 '거지 교수'는 낯이 두껍지는 않은 모양이다. 부끄러움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야학을 나와 대학까지 입학했던 의지의 한국인이었던 그가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거리의 인문학자로 거듭나기까지 그를 지탱했던 것은 책이었다.

전작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는 한국판 '빅이슈'를 창간해보겠다며 3년간 빚으로 버티다가

딸아이의 피아노에 압류딱지가 붙는 바람에 '피아노 구하기'용 출간이긴 했지만 제목이 참으로

기특하지 않은가.

 

 

그동안 모아놓은 3천권의 책들도 빚잔치로 팔고 말았다니 그의 분신같았던 책들이 아우성을 어찌

견뎠을까 싶다.

고등학교 1학년때 발작처럼 집을 나선 그가 문학 전집을 팔아 겨우 목포행 편도 기차표로 바꾸고 나서

'내게 문학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어디론가 떠날 수 있게는 해주었지만 돌아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그렇게 많은 작가의 그토록 절절한 이야기들이 고작 목포행 편도 기차라니요. 그 때 알아버렸습니다.

문학은 떠나는 데는 유용하지만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주진 못한다는 것을.' -177p

문학을 꿈꾸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문학에게서 달아나려 발버둥치며 살았다던 그는 결국 문학으로 돌아왔다.

 

 

작가란 거짓말하는 재능이 바닥나 이제는 진실밖에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베르나르 키리니의 소설

'거짓말 주식회사'의 문장처럼 그의 글에는 진실만이 넘실거린다.

 

겨우 교통비정도의 강의료를 받거나 혹은 무료로 달려가 그가 전하고자 하는 궁극의 말들은 '사랑'인듯하다.

자신의 삶 80%는 무모함이었다고 말할만큼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온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거의어둠속에 잠긴

사람들이다.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 거리의 노숙인들...미혼모에 외로운 사람들...

그들에게 인문학은 어떤 의미였을까.

누군가 자신들에게 정신적인 삶을 살았더라면 적어도 어둠에 갇힌 삶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흑인 여죄수의

대답은 거지교수 최준영이 저렴한 강의를 위해 뛰어다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예사롭지 않았던 어린시절의 아픈 기억도 그에게는 문학의 발판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며, 다른 누군가의 삶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던 거지요....' -135p

 

작가 박범신은 한동안 절필을 선언하고 다시 글을 쓰면서 말했다.

'내 안에 고인 뭔가가 옆구리를 뚫고 나오는 것 같은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노라고.

마치 무당이 무병을 앓듯이 쓰지 않으면 아팠노라고...

 

작가 최준영도 고인 어떤 것들을 끄집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웠으리라.

그리고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잘 쓰려면 많이 읽어라, 책을 읽다보면 고이는 게 있을 것이다.'

블로그를 포기하고 페이스북의 논객으로 소통에 성공한 그가 건네는 이 말이 왜 이리 위안이 되는 것일까.

사실 나 역시도 문학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 오늘도 쓴다'는 작가의 말에 나는

'그가 쓴 글이 부러워 오늘도 읽고 내일은 글 좀 쓰련다'고 답하고 싶다.

젊은 시절의 뾰족함이 잘 다듬어져 할 말 잘 하고 살아가는 그의 풍요로움이 부럽다.

글쎄 왠지 그의 소설은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에게 고인 글들은 우리를 치유하는 것으로

이미 너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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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병조림 - 밑반찬부터 술안주, 디저트까지 365일 두고 먹는 맛있는 저장식
고테라 미야 지음, 박문희 옮김 / 스타일조선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냉장고를 열어보면 그 가정의 주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정리정돈은 물론이고 저장음식이나 밑반찬들을 야무지게 해놓았는지를 보면 주부지수가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최하위의 주부일 것이다.

저자처럼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부 백단이 담은 짱아찌나

밑반찬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서 부끄럽기까지 하다.

 

                              -레시피대로 만든 레몬 생강 콩피-

 

시골로 내려와 가장 좋았던 것은 텃밭가꾸기였다. 유기농야채를 기르고 먹으면서 느끼는

포만감은 상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수확이 많으면 처치가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팔려고 기른 것도 아니니 갈무리 해둘 것은 해두고 나머지는 짱아찌같이 오래두고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요리를 하는 것인데 살림젬병인 나는 자신감이 없었다.

 

 

지금도 텃밭에는 고추가 한창이다. 다음 달 즈음이면 끝물이 될테고 고추와 고춧잎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중이었는데 마법처럼 짠~ 좋은 방법이 소개되어 있어 너무나 반가웠다.

매운 것을 싫어하는 일본에서도 고춧잎을 이용한 반찬이 있다니 놀라웠다.

그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조리듯이 바짝 볶기만 하면 된다니 만드는 법도

이렇게 간편할 수가 없다.

 

 

'마늘 된장'만 있으면 미소라멘을 뚝딱 만들 수 있다니 눈이 확 떠지는 느낌이다.

냄비에 식용유와 다진 마늘을 넣고 약한 불에서 볶다가 잘게 다진 생강을 넣어주고

설탕과 청주를 넣은 미소된장을 넣어 볶아주면 완성이다.

이 마늘된장에 다시국물을 넣고 삶아놓은 중화면을 넣으면 바로 미소라멘이 된다.

식용유를 두르고 볶은 삼겹살과 숙주, 부추를 추가하면 원조 미소라멘이 된다니

면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꼭 필요한 병조림이다.

 

 

토마토가 마치 나무처럼 자라 수백개가 달려있는 방울토마토를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병조림도 있다. 하긴 토마토는 생토마토보다 불에 데치거나 볶은 것이 영양이 더 좋다고 한다.

 

저자가 일본인이라 그런지 일본식 병조림요리가 많다.

하지만 각종 과일로 만든 잼이나 드레싱, 소스도 나와있다. 사실 이런 잼이나 드레싱 두 서너개만

해놓아도 색다른 요리를 많이 만들 수 있다. 거기다 천연 조미료까지 있어 가족의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마법의 웰빙북이다.

오늘 저녁은 텃밭에 토마토와 두부 한 모를 가지고 토마토 마파두부나 만들까보다.

당분간 레시피걱정은 덜어주는 앙징맞은 책으로 병조림을 시작해야겠다.

마법의 레시피대로 만든 '레몬 생강 콩피'로 마지막더위를 날려버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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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지 않는 부부가 위험하다 - 10년차 부부의 생생하고 유쾌한 싸움의 기록
박혜윤.김선우 지음 / 예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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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표지부터가 상당히 도전적이다. 권투 글로브라니.

이쯤되면 격투기가 연상된다.  10년차 부부의 생생하고 유쾌한 싸움의 기록이라는데..

유쾌하기도 하지만 살벌하기도 한 기록이다.

 

 

같은 직장에서 알게된 선후배 남녀는 여자의 적극적인 애정공세로 결혼에 성공했다.

뭐 꼭 남자가 대쉬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만년 전쯤의 화성에서 온 남자는 예의범절이 깍듯한 집안의 장손으로 도덕을 기둥삼아

곁눈질 없이 모범생으로 살아온, 솔직하게 표현하면 조금 쫌스러워 보이는 사람이다.

미래의 금성에서 왔을법한 여자는 좋게 말하면 자유분망하고 자기 표현이 적극적인

다혈질의 사람으로 홀로 살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싶을만큼 위협적인 구석이 많아 보인다.

 

 

우선 단락마다 나오는 그림이 장난이 아니다. 딱 격투기의 모습인데 거의 금성여자가 화성남자를

압도하는 그림이다. 짐작컨대 이 남자 여자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 결혼하기전까지의 사랑은 환상이며 무지개이고 달콤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코리코리 냄새나는 양말과 속옷같은 빨래가 기다리고 산더미같이 쌓인 설겆이와

자기가 벌어온 돈을 눈치보며 써야하는 부자유스럽고 분잡스러운 현실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다면, 그 때부터 주도권 싸움을 비롯한 투쟁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처럼 바람앞에 등불같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부부의 투쟁기를 들어보자.

돈 잘쓰는 남자와 돈 못쓰는 여자의 만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째 연애할 때도 조짐이 보였을텐데 말이다.

손때묻은 애장품을 줄줄이 끼고 사는 남자와 무조건 버리고 보는 여자는 또 어떻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여자가 숟가락으로 떠먹여줘야 알아먹는 남자를 이해하는데 10여년이 걸렸다.

부부 싸움중에 싸움터를 떠나도 아웃!, 11시에 전화하지 않고 늦으면 아웃!, 사과는 무조건 남자가

해야한다는 여자를 받아들이는데 남자는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심지가 없다고 해야하나 착하다고 해야하나...물론 남자들이 보면 한심하다고 할 이 남자는

지고 사니까 너무 편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여자는 호기롭게 남편을 양육(?)하는데 전략이 필요하다며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지각을 하든 말든 한 번 깨워 안일어나면 놔두고, 지저분한 집안 꼴도 놔두란다.

지각을 해봐야 다시 늦잠을 안 잘테고 더러운 집도 그 꼴 못보는 깔끔한 사람이 알아서 청소를 한다나 뭐라나..

 

 

 

'그렇게 10년을 싸웠더니 나는 조금 다른 그 무엇을 느낀다. 포기하지 않고 싸움 상대가

되어준다는 건 정말로 특별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099p

 

그러니까 정말로 사랑하면 싸우라는 소리다. 하긴 싸움보다 무관심이 더 위험하다고 하니.

자기식으로 생각하고 조종하고 결국 승리를 쟁취하던 여자는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무릎을 꿇은

남자를 본 후에야 존경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남자들이여 존경 받으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무릎을 꿇을지어다.

아이도 남편도 키우기 나름이라는 여자의 말을 듣다보면 속이 시원한 차원을 넘어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니 이래도 남자가 용서한다 말이지.

좋은 남편 만났길래 망정이지 이 여자 싸움만 하면 먼저 이혼하자고 외치다가 정말 이혼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남자같은 여자의 대담함은 소심하고 착한 남편을 이긴 듯했지만 결국 몸에 돋았던 가시는 무뎌지고

둘만의 공통점을 찾아나갔던 부부의 승리인셈이다.

첫 딸을 목욕시키는 장면에서 아내가 묻는다.

"목욕을 다하면 뭐가 필요할까?"

어벙벙한 남편은 "그러게...뭐가 필요할까?"

"수건! 수건이 필요할 거 아냐!"

나는 배를 잡고 넘어가는 줄 알았다. 이 한장면에서 부부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냥 콕 짚어서 얘기해주자. 떠보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그게 남자의 한계라는 것을 인정하면

사는게 편하다. 남편씨, 그대의 인내심과 배려와 포기에 박수를 보낼 뿐이요.

그나저나 남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열좀 받을텐데...그래도 싸웁시다. 싸워야 잘 산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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