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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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많이 부끄럽게 만든 책이다.  

만화로 독서의 재미를 알았던 그 때 이후로 만화가 이렇게 감동적이고 진실된 마음을 여는 매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들이었다.

 

'페코로스'는 탁구공만한 크기의 작은 양파 품종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한다.

아흔이 넘은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너무도 힘들 것이다. 노인인구가 많은 일본의 요양원 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예순이 넘은 아들은 요양원에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불효로 늘 가슴아파한다.

 

 

가난한 농가에 10형제의 장녀로 태어난 미쓰에는 줄줄이 태어난 동생들을 돌보느라 학교도 가지 못한다.

지긋지긋한 어린시절로 부터 도망치기 위해 나가사키의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근무하던 요이치의 아버지

사토루를 만나 결혼하지만 피폭의 영향으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며 술주정이 심한 남편때문에 고통스런

결혼생활을 하게된다. 세 아들을 낳았지만 막내는 낳은지 얼마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그 슬픔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다.

큰 아들 요이치는 아버지의 폭력이 싫어 도쿄로 떠났다가 이혼한 후 갓난 아들 마사키를 품에 안고 고향

나가사키로 돌아온다.

 

예전에 폭력성이 사라지고 유순해진 아버지는 팔십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나고 그 때부터 치매증상을 보이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유이치가 자신이 근무하던 월간홍보잡지에 매호 한 페이지씩 그려나갔던 만화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요양원을 찾아온 아들 요이치를 남동생으로 착각하기 일쑤인데다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를 찰싹찰싹

때리면서 "요이치 언제 왔다냐" 머리는 싹 벗어져서는...네가 와줘서 참말로 좋다야."하는 늙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내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6남매를 낳고 자식 셋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늙어가시는 엄마도 저렇게 가슴속에 슬픔이 고여있겠구나.

 

 

"너 예순 살 됐다면서? 예순 살 이면 너, 환갑이야. 이제 그리 젊지도 않으니까 술좀 작작 마셔라이~!!"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 눈에는 여전히 어린 자식인 것을.

하지만 자신을 그리도 힘들게 하던 남편도 어머니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던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치매증상을 보이더니 자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늘 자신을 찿아왔노라고

'내가 치매라서 네 아버지가 나타난 거라면 치매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지도 모르겄다.'라는 말에

마음씨 고왔던 아내의 그리움이 절절히 다가온다.

 

 

치매로 정신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과거의 시간들과 만나고 추억하는 가족사가 너무도 애틋하다.

한 때는 가난했고 불행했고 고통스러웠던 기억들도 지나놓고 보니 다 그리움이었다.

엄마도 한 때는 소녀였고 아름다운 처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엄마의 손에 이끌려 고향 부두를 내려다 보던 어린 소년은 이제 머리가 벗겨진 늙은이가 되어

머지 않아 하늘나라로 아버지를 만나러 갈 노모를 지탱해준다.

이게 인생인가 싶다.

가벼운 치매였을 때 제부와의 에피소드에 배꼽이 빠지게 웃음이 나왔지만 질곡의 시간을 지나온

어머니의 시간과 아픔을 들여다보니 절로 눈물이 나온다.

 

자비로 출판했지만 전 일본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까지 만들어진 이유를 알 것만같다.

전세계의 자식들이 꼭 읽어야 할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내 곁에 계시는 어머니를 더 많이 보고 만지고 안아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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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찌결사대 - 제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샘터어린이문고 40
김해등 지음, 안재선 그림 / 샘터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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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우체부를 대신하여 메시지를 전해주기도 하고 축제에는 평화의 상징으로 하늘로

날려 올리던 비둘기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자신들이 살던 자연에서 멀어져 인간 세계로 가까이 다가와 넘치는 먹이에 뚱보 비둘기가 되더니

이제 개체수가 너무 많아 골치거리가 되어버린 비둘기들의 이야기이다.

 

 

인간세계에 다가온 비둘기들은 인간들의 비열한 짓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비둘기들을 구박하는 공원관리인들에게 아부하기 위해 똥도 정해진 곳에 싸고 크게 울어 인간을

놀라게 하는 일도 자제하는 말 잘듣는 비둘기들이 되어 버렸다.

나름 비둘기세계에도 권력과 질서가 존재한다.

검은 혹부리는 무리중에 왕초로 야생을 잃어가는 비둘기들을 통제하고 인간들이 주는 먹이를 먹고

뚱뚱해진 구구뒤뚱들위에서 군림한다.

하지만 초록목을 비롯한 흰줄박이와 잿빛가슴은 검은 혹부리의 권력에 대항하여 자신들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임을 증명하려 한다.

 

 

"닭둘기가 아니라 비둘기로 살고 싶다면, 날아서 여길 탈출하는 거야. 머릿속으로 항상

날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우린 날개 달린 새야!" 

 

이미 편한 먹이에 길들여져 뚱뚱해진 비둘기들은 날아오르는 법을 익히기 위해 비행연습을 시작한다.

'발찌 결사대'라는 이름으로 뭉친 비둘기들이 반란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 검은 혹부리에게 발견되어 사냥개에게 던져지지만 그동안 꾸준히

날아오르는 연습을 했던 비둘기들은 힘차게 하늘을 날아오른다.

멀리 짙푸른 숲이 보이고 크고 작은 빌딩들이 내려다 보이는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앞으로 구구뒤뚱법을

박차고 날아오를 비둘기들이 그 길로 올 것이라 믿으면서.

 

공원을 지날 때마다 너무 많은 비둘기들을 보면서 이렇게 야생을 잃어가면서 닭둘기가 되어도 좋을까 걱정했었다.

여기저기 싸놓은 배설물은 새로운 공해가 되었고 길에 버려진 고양이만큼이나 귀찮은 존재들이 되어버린

비둘기들을 다시 하늘로 돌려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답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깨닫게 된다.

 

모두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사람은 사람처럼, 비둘기는 비둘기처럼...그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어느 새 우리들은

경계를 허물고 '~~답게 사는 것'을 잊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늘 우리를 따뜻함으로 채워주던 정채봉님의 이름을 건 '정채봉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멀리 하늘에서도 흐믓한 미소로 수상을 축하해주실 것만 같다.

 

-마술을 걸다-

 

늦둥이 만수는 마술사가 꿈이다.

유리겔라처럼 멋진 마술을 보여주기 위해 '유건라'라는 예명도 지어 두었다.

새 학교로 전학한 첫날 한 눈에 반한 유리의 마음을 얻기위해 마술쇼를 하고 우여곡절끝에 결국 유리의 마음을 얻는다.

드디어 유리가 만수의 마술에 걸려 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이지. 잘했어 만수. 축하해!

 

-탁이-

사업을 하다 감방을 간 아버지와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와 떨어져 할아버지 집으로 오게된 준호는 할아버지집에서

키우는 암탉과 친구가 된다. '탁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주고 탁이가 낳은 열 일곱개의 알이 부화하여 병아리가 되면

아버지처럼 감옥에 가둘까봐 할아버지 몰래 보호해준다.

 

 

알도 못낳는 달구새끼 잡아먹든지 장에 내다 팔든지 해야겠다는 할아버지의 푸념소리에 밤잠을 못 이루고

문 앞에 나와 앉아 하늘을 보며 별을 바라다 본다.

구름에 가렸던 별이 하나 둘 엄마 아빠 얼굴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또르를 흘리는 모습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 밤에도 혹시나 누가 볼까 싶어서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내는 소년의 그리움에 목이 메인다.

'할아버지 코고는 소리가 발꿈치를 좇아왔다.'는 표현이 너무 좋다.

 

-운동장이 사라졌다-

운동장에 뛰어놀 시간도 없이 공부를 강요당하는 아이들...마치 한편의 SF영화를 보듯 운동장이 바다로 변하고

지하동굴이 되는가 하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이 재미있다.

아이들이 뛰어놀지 않는 학교 운동장은 너무 슬프다. 공부만 시키는 '유능한' 교장선생님을 혼비백산시켜

'무능한'교장선생님으로 만드는 작가의 재치가 썩 맘에 든다.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을까.

마르지 않던 할머니의 이야기 샘물에서 이 아름다운 동화도 퍼올린 것인지 맑고 시원하다.

이런 동화를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도 너무 아름다울 것 같다.

섬에 사는 아이들에게 이 맑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책을 건네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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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책 읽기 - 뚜루와 함께 고고씽~ 베스트컬렉션 39 카페에서 책 읽기 1
뚜루 지음 / 나무발전소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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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서평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절로 탄성이 나오는 책이다.

일단 이 책에 실린 책은 누구에게나 권해도 좋을만큼 명작인 것은 분명하고-이걸 알아본다는 것은

나도 꽤 괜찮은 리뷰어라는...-엄청난 책 속에서 골라낸 뚜루의 날카로운 눈썰미에 일단 별 다섯 개 주고 가실게여~~

 

책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를 넘어서 서평의 최고봉을 입증한 그녀는 이제 자신의 책에 서평이 달리는 작가가 된 셈이다.

완전 부러워요~~~

 

 

책 읽기 좋은 곳-도서관, 화장실, 지하철, 카페...등에서 나는 내 포근한 소파를 꼽겠다.

물론 삼청동이나 홍대앞의 멋진 카페가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어쩌랴 그 곳에서는 너무 멀리 와버렸는걸.

뚜루가 권한 책 중에 나는 몇권을 읽었을까..겨우 5권쯤이다.

나름 꽤 괜찮은 독서인이라고 자부했건만..그 책들이 나를 못 알아본 것이라고 위안하고 말아야 하나.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도서목록에는 꼭 읽고 싶은 책을 건졌다.

흠...이정도란 말이지.

 

 

조경란의 책은 여러권 읽은 것 같은데 이 책은 왜 안 보였을까. 뭐 안목이 낮아서 그랬겠지만.

팔랑귀 뚜루와 함께하는 책 여행은 유쾌하고 행복하다.

물론 뚜루의 일침때문에 가슴이 뜨끔한 적도 있지만.

집과 직장만을 오가던 순결한 독자가 어느새 자신의 책을 내다니..나도 그런 날이 올랑가 몰라.

 

 

서평을 잘 쓰려면 좋은 구절을 잘 기억해야 하는 점은 나도 동감! 연필로 줄을 긋거나 책을 구기다니..

그건 절대 안되지!. 책 사이에 포스트 잇이나 얇은 갈피를 끼워놓은 방법이 그중 낫더구만.

 

유명 평론가의 글이 아닌 같은 독자의 입장에서 본 서평은 눈높이가 딱이고 부담이 없다.

읽기의 고수뿐만이 아니라 그리고 쓰고 골라내는 달인이 된 뚜루가 너무 부럽다니까.

저자의 이름만 듣고 고른 책이 실망스러웠다거나 띠지조차 없이 수수해 보이던 책이 보물같았다는

말에 나는 절대 공감!

 

자, 한번 골라들 보시라! 과연 내 취향의 책이 몇 권이나 있는지.

아마 웬만한 고수가 와서는 그녀의 눈썰미나 예민한 촉을 이기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 나도 이런 서평집 하나 내야 할텐데 말이지..책을 덮고 나니 초조감이 밀려든다.

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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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이야기 - 내 영혼을 위로하는
김현 지음, 조민지 그림 / 오션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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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봄과 가을이라는 계절은 살짝 맛만 보여주고 훌쩍 떠나가버리는 시절이 되었다.

밤새 서리가 내리고 새벽부터 창밖의 바람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어깨가 시릴만큼 추위가 몰려왔다.

더운 여름보다는 왜 이렇게 찬바람이 불면 엄마표 음식들이 더 그리운 것일까.

 

 

표지그림속에 빨간 곤로(풍로의 일본식 발음)위에 올려져 있는 양은 냄비의 모습에 괜시리 코끝이 시큰거린다.

작가가 추억해낸 음식이야기를 읽다보니 내가 가진 추억과 겹쳐있어 문득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내가 지나왔던 시간과 어느정도는 겹쳐진 시간들을 살아왔을 작가의 어린시절은 그리 궁핍하지 않았던 것같다.

그녀가 살던 영도다리 건너 동삼동에는 배를 타거나 멀리 타국으로 돈을 벌러가신 아버지를 둔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가난을 이기기 위해 모두가 허리끈을 졸라매고 뛰어다닐 때였으니 교사였던 아버지를 둔

작가는 다행히 부모님과 형제들사이에서 가난을 겪지 않았던 것같다.

 

이북이 고향이신 어머니도 피난후 부산에서 자라서 그랬을까. 그녀의 고향음식속에서 어머니의 어린시절을 대입해본다.

어린시절 이모댁에 가면 '재첩국 사이소, 멸치 사이소'하는 낯선 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추억이 되어 버렸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음식이 어머니보다 더 그립더라는 말에 나역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시절의 맛들이 그립고 길을 가다가도 문득 문득 엄마표 음식들이 그리워지는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인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슬픔에도 불구하고 먹을 수밖에 없었던 육개장은 이제 아버지를 추억하는 음식이 되었단다.

그렇다. '산 사람 살아야한다'는 말처럼 깊은 슬픔도 배고픔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 또한 인생이니 어쩌랴.

서울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도다리 미역국이며 서대회맛이 궁금해지고 낯선 향때문에 먹지 않았던 방앗잎도 그 곳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주는 맛이라니 어려서 엄마의 음식에 길들여진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싶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짜장면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는 모양이다.

몰래 시켜먹으려다 결국 먹지 못한 짜장면을 추억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하긴 그 시절 비록 초라했지만 친구들을 불러 햄버거를 해먹었다는 소녀의 배짱이 결국 이런 책을 낼 수있는

작가로서의 미천이 아니었던가 싶다.

 

'가족'보다는 밥을 나누는 '식구'가 더 가슴을 파고든다는 말처럼 이제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에 둘러앉을

식구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간 것같아 서글퍼진다.

내 밥상을 기억하고 추억해줄 아이들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음식'은 무엇일까. 왠지 자신이 없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내 어머니의 밥상을 결코 흉내내지 못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읽는동안 내 영혼이 많이 위로가 되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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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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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제목이 역설적이다.

현재 우리시대를 함께하는 철학자들이 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경제는 어떤 모습인가.

그전부터 나는 철학자들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왜 철학을 합니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이 책에서 찾은 것만 같다.

사실 나는 문학을 좋아하고 책읽기를 즐기지만 '철학'이란 주제는 늘 부담스러웠다.

멀리서 '철학'이 보이면 살짝 돌아갈망정 마주치는게 영 마뜩치 않았었다.

그만큼 '철학'이란 정의가 무엇이고 왜 배우고 깨우쳐야만 하는지가 늘 의문문이었다.

 

 

'철학은 실패에 대한 사유다. 따라서 철학은 또다시 실패할지언정 단시 시도하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실패하는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철학은 새로운 체제를 사유한다. 위기의 순간을 사는 것이야말로

철학자의 본질이자 사명이라는 것이 이 책에 실린 철학자들 사이에 합의되어 있는 명제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 말이 '철학'을 100% 정의하는 말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우리에게 '철학'이 왜 필요한지를 알려준다.

즉 '철학'이란 평화의 시대보다는 불통과 위기의 시대에 더 필요한 학문이며 미래를 읽어내는 수단인 셈이다.

 

공산주의가 붕괴되었지만 이데올로기는 분명 살아있다.

특이한 점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묘하게 결합되어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모습이다.

한국또한 이데올로기의 극한 투쟁속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달된 모델국가라는 점에 공감한다.

그런점에서 이 책에 등장한 9명이 진단한 세계 경제의 흐름과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었고

'한국 이대로 괜찮은가'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솔직히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들이 인용했던 철학자들이나 저서들을 잘 이해하지 않고는 그들의 주장이

쏙 들어오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불황이나 뉴욕 월스트리트의 시위,

영국의 폭동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되고 해석되어져야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흥미롭다.

 

'영국 폭동은 좌절한 소비자의 반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반란은 같은 처지의 전락에서 발생한 분노와 실망의

표출이었다. 자신들은 가진 것이 없는데 눈앞에서 화려한 소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중략) 런던 폭동 같은 사건은 소비주의로부터 추방당하는 순간 소비자는 부랑자에 지나지 않으며

거기에 저항하는 것도 결국 소비주의의 한계 내에서 일어나는 카니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50p

 

우둔한 독자의 해석으로 보면 과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대립이라는 기존의 이데올로기와는 또 다른 같은 이념을

지닌 종족끼리의 계층간의 대립이랄까...새로운 투쟁의 시대가 성립된다는 이론이 아닐까.

 

9명의 철학자들을 초대한 저자의 이런 시각도 눈길을 붙든다.

'한국은 2008년 촛불을 경험했다. 내가 한국의 촛불에서 본 것은 새로운 운동의 도래라기 보다 과거 운동의 종언이었다.

새로운 것이 오고 낡은 것이 간 것이 아니라 운동 자체가 끝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프롤로그중에서-

 

나는 촛불을 보면서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새로운 투쟁의 방법이라고만 생각했다.

확실히 철학자의 시선은 깊고 날카롭다.

 

 

"많은 이들이 당신 책에서 영감을 얻는다. 끝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히 전할 말이 있다면?"

이란 저자의 물음에,

"아마 그런 영향력은 대부분 오해에서 기인하는 것일 테다. 영향력 자체가 오해다."라고 지젝은 답한다.

오해가 이해보다도 더욱 지적인 것이라니...참으로 심오한 대답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말과 상통하는 느낌이다.

흔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우리는 다시 더 낫게 실패하기 위해 사유하고 책을 읽고 혁명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이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들과 만난 시간은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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