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4.8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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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장마는 비대신 폭염이 들어앉은 가문장마였다. 홍수끝은 없어도 가문 끝은 있다고 하지만 타들어가는 농부의 마음이 안타까운
그런 여름이다. 그래서일까 8월호 표지의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싱그럽게 다가온다.



봄부터 깊었던 시름이 천진한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잠시 잊혀지는 것같다.

'이달에 만난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개그맨 이홍렬이다.



'없으면 말구'하면서 산장 할머니를 연기하던 그를 요즘 tv에서 많이 못만나 서운했는데 기부모금활동을 하느라 바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열 가지 버킷리스트 목록중 하나였던 국토종단이 모금운동의 시작이었다고 하는데 예순까지는 절대 주례를 서지 않겠다는 결심을
깨고 결혼 한건 주례 설 때 마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한 명 후원하는 이홍렬다운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단다.
또 다른 탄생인 결혼의 기쁨과 후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한 100쌍쯤 합동결혼식하는 곳은 없나 행복한 상상에 빠진 그가 부럽다.
자신의 재능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기부의 아름다움을 실천하는 그는 분명 키작은 '키다리 아저씨'가 분명하다.
나도 이참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다보니 시원한 동해안 여행이 간절해진다. 이왕이면 바다와 계곡 동굴이 어우러진 동해안을 자동차가 아닌
기차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일단 비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막히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일석 삼조의 기회가 될 것같다.



동해역 근처에 있다는 8천원 무한리필 회냉면 '능라도'는 기어이 가보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십자말풀이 흠...풀어보니 문제가 두어개쯤 어렵다. '가까운 길'이면 '단도'인가? 그런데 나온 답은 엉뚱하다.
검색을 해봐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호 정답을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이번달 미션 '수'자가 몇 번 나오는지는 알아냈다.



이혼한 후 홀로 아들을 키우던중 암에 걸려 투병중인 어머니가 아들과의 갈등때문에 고민이라는 편지가 소개된 '참살이 마음공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타협해보라'는 뻔한 답변대신,



'오늘부터 내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정을 끊으라'는 법륜스님의 단호한 대답에 속이 다 시원하다.
엄마는 항상 주는 사람이라는 공식을 넘어서 우선은 암 투병에 전념하고 미워했던 남편을 위해 기도하라고 조언해주신다.
남편을 미워했던 마음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어 엄마에 대한 미움과 저항감이 씨앗이었으니 인연의 고리를 끊으라는 말을 과연
엄마가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불행을 아이에게 되물림해주지 않으려면 과감한 결단이 필요해보인다.
부처처럼 웃고 계시는 법륜스님의 따끔한 일침이 마냥 자애롭기만을 강요하는 종교의 무거움에서 벗어난 현답인 듯해서 멋지게 보인다.

이 달의 특집은 '구석구석 동네 명소'이다.
그저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동네의 우물터나 당산나무, 그리고 좁은 골목길 같은 그런 곳들이 누구에겐가는 '명소'로 기억된다. 나에게 그런 곳은 어디인지 한 번쯤 기억을 끄집어 내보는 시간도 즐거울 것 같다.
작지만 큰 개그맨 이홍렬처럼 '키다리 아저씨'같은 샘터가 있어 삶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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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TV 닥치고 진실
정규재 지음 / 베가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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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신문구독을 끊고 웬만한 뉴스는 TV나 인터넷을 보는 것으로 대충대충 세상을 보게 되었다.
아침부터 신문의 모든 면을 꼼꼼히 훑어보던 열정이 사라진 것은 '진짜'를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신문들조차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로 나뉘었다는 것을 간파하고 나서는 누구의 주장이 진짜인지 활자화된
기사들조차 진위를 가려내는 일이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가 들면서 슬그머니 촉수가 무뎌지고 게을러진 것도 이유가 아니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쨋든 
슬쩍 발을 빼고 멀리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한 척 했던 내가 이 책을 읽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진실이라고 믿었던 일들이 사실은 이런 팩트가 존재했구나 싶어 그동안 무심했던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부끄럽게도 느껴졌다.




넘치는 언론과 SNS의 범람으로 비밀이 존재하기 힘든 세상이겠구나 싶었는데 여전히 어떤 것들은 왜곡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그 왜곡을 진실처럼 떠들고 있거나 자신의 무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대중을 선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정욱교수와의 대담에서 정의되었던 386세대의 전형인 나로서는 진보쪽보다는 보수쪽에 선 사람이다. 독재의 몰락을 지켜보며
환호했지만 독재자의 업적에 대해서는 폄훼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박정희정권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100%동감한다. 어쨋든 박정희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밥만 먹고 어찌 사냐'를 외치며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밥'이라도 배불리 먹게 해준 사람이라는 진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민족의 비극이라고 일컫는 6.25가 재앙으로 위장된 축복이라는 조갑제 칼럼니스트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꽤 위험한
발언이겠다는 우려와 함께 실제로 독립운동을 경험한 수많은 국가가 공산화되었지만 6.25의 참상으로 공산주의의 실체를 경험한
국민들에게 선택되지 못하는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는 주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사실 우리가 공산주의국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명제였다.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많은 멘토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들이 환영을 받았었다.

어쨋든 쓴소리보다는 달콤한 소리가 마음에 드는 것은 사실이다. 가뜩이나 의존적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아이들에게 망치로
두들겨 단단해지는 칼을 만들어주는 일이 옳은지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일이 옳은지는 정의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질풍의 시간을 견디고 여기까지 온 내 세대에서 보면 반드시 당근이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만큼이나 일구어 놓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덩치만 커진 아이들이 잘 이끌고 나갈만큼 잘 벼려졌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 끝난 월드컵축구를 보면서 든 생각은 가끔은 오심때문에 뭇매를 버는 심판들을 모아서 경기를 하게 한다면 정말 원칙대로
정확한 경기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반드시 축구뿐만이 아니라 모든 경기를 관장하는 심판이나 비리를 잡아내는 감사들이
막상 자신들이 필드로 나간다면 스스로에게 그린카드를 내밀 수 있겠냐는 다소 우스꽝스런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존재했었는지도 모를 AGC(그레인 컴퍼니)라는 회사의 몰락을 보면서 저자가 짚어낸 '공무원은 법과 윤리적 행동을 따라
규칙을 만드는 자이지, 시장경제 원리에 따른 활동을 하는 자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무릎을 친다.
그동안 우리는 공기업의 나태함과 방만한 운영을 수없이 목격해왔었다. 굳이 앞치마를 두르고 시장판에 나가 장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아니 심지어 그 장사꾼들이 뭔가 제대로 하는지 세금은 꼬박꼬박 잘 내는지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자가 무슨 장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심판이 경기를 잘 해내는 것은 거의 본적이 없고, 다만 심판의 위치나 제대로 잘 지켰으면 좋겠다.

철도파업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답답함을 속시원하게 풀어놓은 것이나 독일통일의 문제점을 과도하게 부풀림으로써 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양상하는 문제며, 엉터리 통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말 속시원한 얘기가 끝이 없다.
정규재TV가 있는 줄도 몰랐던 나로서는 아주 괜찮은 멘토하나를 제대로 얻은 셈이다.
봐도 보이지 않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맹과니같은 사람들에게 '닥치고 진실'을 좀 알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모난 돌이 정을 맞을지언정 할 말은 해야겠다고 돌직구를 날리는 그의 목소리에 앞으로 귀를 바짝 들이대야 할 것같다.
적어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진실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금 어려운 듯한 경제용어가 힘들긴 했지만 참으로 속시원하고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화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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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가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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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아닌 것이 아이도 아닌 것이 마치 털뽑힌 중닭처럼 어중간한 시간에 서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도범은 오토바이절도사건에 휘말려 퇴학이냐 전학이냐 갈림길에서 전학을 택했고 인천의 형설중으로 또 전학을 한다. 
전학을 밥먹듯하는 도범에게 이런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전학생을 보는 차가운 시선이 싫다.
어떤 녀석인지 간보는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기마련인지라 툭툭 건드리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형설중 사서교사로 부임한 수인은 100년이 넘은 도서관건물앞에서 기가 질리고 만다.
숲속에 둘러쌓인 괴괴한 목조건물에 우중충한 기운이 서린 도서관은 한낮에도 들어가기 싫을만큼 어둡고 싸늘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학교답게 장서가 많긴 했지만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선생들도 오기 싫을만큼 어두운 그림자가 싫다.

수인의 독서회에 모인 아이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배당된 아이들이 거의 다 였다.
오로지 책을 좋아한다는 이담이와 혹시나 음침한 도서실에서 개기면 좋을 것같아 지원한 도범이와 새를 닮은 세호, 덩치가 산만하고
늘 책가방에 해머를 들고 다니는 해명이가 그나마 자발적으로 지원한 아이들이다.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은 수인에게 대놓고 괜히 왔다고 투덜거리고 말대답으로 질리게 만든다.
하긴 요즘 아이들은 거의 이런 지경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전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애정을 가지고 독서지도를 할 수 있을까.

수인은 오래사귄 남자친구 율이 결혼얘기를 꺼내기는 커녕 잘다니는 대기업에 사표를 내고 유학을 떠나겠다고 하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충격에 빠진다. 도대체 야망을 위해 멈출줄을 모르는 남자를 이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수인이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율은 벌써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수인곁을 떠나고 만다.
어린시절 아빠를 잃고 홀어머니밑에서 혹시나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지 않을까 불안한 유년을 보냈던 수인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안이 유년에서 비롯되었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같은 상처를 지닌 도범이와의 대화를 통해 인식하게 된다.

도발적인 아이들에게 햇살이 드는 따뜻한 도서관을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수인은 교장에게 교무실을 도서관으로 꾸미고 싶다고
건의를 하게되고 동료교사들은 수인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낸다. 다만 엉뚱발랄하고 도무지 어떤 것에도 주눅들지 않는 괴상한
미술선생 양희순만 예외이다.




공항에서 미처 전화할틈도 없이 갑자기 출국하게 되었다는 문자만 보내고 떠나간 율과 곁을 내어주지 않는 사춘기의 아이들.
수인은 외로움과 괴로움때문에 절망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 있는 엄마가 그리워 고향집으로 향한다.
"학교를 그만 둘까봐" 말하는 수인에게 엄마는 말한다.
"그애들이 을매나 가렵겄냐. 너한테 투정 부리는 겨, 가렵다고 크느라고 라려워 죽겄다고 투정부리는데 아무도 안 받아주고,
안 알아주고 가려워서 제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몸부림치는 놈들한티, 대체 왜 그러냐고 면막이나 주고, 꼼짝없이 가둬놓기만
하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겄냐." -216p
눈물이 왈칵 솟는 것만 같다. 그래 뼈도 자라고 날개도 자라고 깃털도 자라야 하니까 만날 가려운 거 였구나.
미치도록 가려운데 긁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면서도 나는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마당에서 이리저리 ?i겨다니는 털빠진 중닭마냥 그렇게 외로웠을 아이들이 떠올랐다.




수인은 다시 아이들을 껴안는다. 어디에서도 긁어주는 사람없는 아이들의 가려움을 자신만이라도 알아줘야겠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무심코 흘린 말이라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지 아이들은 비로소 상대를
존재로서 인정한다.'라는 소신으로 아이들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낡은 책을 거래하는 책방주인에게 온 만남의 메시지를 달력에 표시하면서 수인은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본 새로운 사랑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아주 오래전 책으로 인해 이 자리까지 왔다고 고백한 교장선생이 수인의 꿈을 이루어 줄 것이란
믿음도 함께. 

전작인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처럼 작가는 어정쩡한 시간에 갇힌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결코 놓지 않음을 보여준다.
밝고 따듯한 도서관을 선물하고픈 수인은 작가 자신의 모습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싶다는 메시지가 그대로 담겨있는 이 책이 감사한 마음으로 다가온다.
한 때 '미치도록 가려운'시간을 지나던 아들녀석의 말을 귀담아 듣지 못한 에미가 너무 부끄러웠다.
결국 그 시간이 지나면 멋진 장닭이 되어 마당 한 가운데를 휘젓고 다닐 것임을 왜 미처 알아보지 못했는지 회한이 밀려온다.
부끄러움을 가르쳐준 그리고 이제는 가렵다 못해 딱지가 않은 내 아이의 상처를 알게 해준 이 책이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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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석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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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막돼먹은 세상에 한 방 날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경우인데 법이란게 세상의 모든 불합리를
교정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아니까. 다만 성질대로 시원하게 한 방 먹이고 사방이 막힌 감방에 들어가는 건 좀 뭐하긴 하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인 이정우가 과연 이런 전설의 주먹을 가지고 있다면 아니 전설의 공중 휘둘러차기 기술이 있다면
나도 정현이처럼 정우곁에 꼭 붙어있고 싶다. 그렇다고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는 양아치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다.
녀석은 어디서 이런 기술을 배웠는지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겠다. 부산에서 '통'으로 통하던 정우가 서울에서 '짱'이 아닌
'통'으로 군림하는 과정을 보면 다소 만화스런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영화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 심지어 '대부'같은 거대한 영화까지 연상되는 피튀기는 싸움장면을 좋아한다면 강추할만한
책이다. 분명 흰 종이에 검은 활자로 찍혀있는데 자주 선혈이 낭자한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물론 이 막돼먹은 정우의 모습을 누가 연기하면 좋을지 내내 생각하면서 말이다.
굳이 남자만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도 버리길 바란다. 여자학교에서도 일진이나 칠공주파들은 있으니까.
아니 예전 만주에서 활동하던 여도적떼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절단내버렸다고 하지 않은가. 막판에 명동파와 전면전을
벌이는 장면에서도 앞선 남자애들 뒤에서 자근자근 뼈와 살을 추리는 여자애들이 나오는 걸 보면 여자는 약하고 겁이 많을 것이라는
편견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다만 임신중이거나 심신이 약한 사람들은 책을 열기전에 심호흡을 하기를 권한다.

녀석이 왜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는지 부모는 누구길래 이렇게 서울을 들었다놨다해도 나타나지를 않는지는 묻지 말자.
뭐 있어봐야 막무가내인 녀석을 통제하긴 글렀을니까. 어디가나 사내녀석들은 오래전 짐승이었던 유전자를 어쩌지 못하는지
꼭 영역표시를 해야만 직성을 풀리는 모양이다. 특히 힘좀 쓸 것같은 전학생이 오면 우선 주먹으로 선제빵을 날려야 한다니까.
하지만 호리호리한 체격에 키도 크지않은 정우를 한참 잘못봐도 잘못봤다. 그냥 휙휙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국무협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녀석은 지상보다 공중에서 머무는 시간이 좀 길다. 그래봤자 10초 안짝이지만.

녀석의 앞길을 가로막은 양아치들이 하나 둘 쓰러지고 드디어 업소관리를 좀 해주시는 어르신들에게 불려가게 된 정우.
차기 리더의 싹수를 알아본 사장이 뒤를 밀어주기로 하는데 주먹의 말로를 알았다면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했다. 정우.
1학년인 주제에 3학년 선배를 무릅꿇리고 선생같지 않는 선생들에게 한 방 먹이는 건 나도 멋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진정한 스승이 되어보겠다고 애쓰는 교생 윤정임의 선의를 그렇게 무시하는 건 아니지.
아주 가끔은 진짜 선생같은 선생님이 있긴 있거든. 드물긴 하지만.
막나가는 너를 사람으로 만들어보겠다고 네곁을 맴돌다 그만 그렇게 되어버린건 정말 화가나서 미칠 지경이야.
이제 우리나라도 마피아천국인 미국이나 콜롬비아처럼 총의 시대가 온거란 말인가.
나는 녀석처럼 오로지 몸으로 승부하는 게 좋은데. 그게 진짜 주먹 아니니? 김두한이나 시라소니처럼 말이야.
어차피 주먹은 어느시대에든 있어야 하는 존재이긴 하니까. 하려면 제대로 멋지게 진짜 주먹이 되란 말이지.
치사하게 총이 뭐냐. 그치 정우.




'하찮은 권력을 가지고 그 것에 안주하는 녀석들은 자신에게 꼼짝도 못하는 나약한 자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당당히 저항하는 자들은 쉽게 다스리지 못한다.' -본문중에서

그래 나도 저항 한번 해보지 않고 당하는 녀석들을 혐오한다. 맛빡이 터질 때까지 덤벼보는거야. 그렇게라도 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사를 봐도 알수 있잖아. 정우...난 너의 이런 점이 맘에 들어.

인간미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냉혈한 진우를 평정한 건 잘 한 일이야. 남겨둬봤자 죽음만 계속되는 그런 녀석은 네손에서
해결하는게 맞아. 그러고보니 주먹들에게도 분명 서열내지는 등급이 확실하게 있는 것 같다.
정우가 A+++라면 진우같은 녀석은 C급도 못되는 양아치가 분명하다. 지옥에서 온 사자(死者)같이 오직 죽음에만 몰두하는 그런
짐승같은 놈들이지. 우리 주변에는 이런 놈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야.

조금 늦긴 했지만 마지막을 멋지게 평정하고 고요하게 학문의 세계로 돌아간 건 정말 잘한일이긴 하다.
그래도 세상은 법치로 그럭저럭 돌아가는 세상이긴 하니까. 세상을 지배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 법치의 세상에서 교묘하게 
요리조리 법망을 피한 채 제 몫을 챙기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세상을 보려면 무지에서 눈을 제대로 떠야할테니까.
조금 졸리긴 하겠지만 어두운 눈을 뜨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거야. 
지덕체를 다 갖춘다면 세상에 군림하는 일이 조금 더 쉬워질테니까. 그 때를 기대할게. 열심히 해 정우야!
그리고 우직하고 충직했던 가슴 넉넉한 정현이를 위해 나도 기도할게. 멀리서 정현이처럼 너를 응원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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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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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는 지나가버린 내 옛시간들과 오랜만에 마주하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은평구 D동의 어느 다가구주택의 이야기가 특히 내마음을 끄는 것은 그 시절 나역시 은평구
불광동 다가구주택에서 신혼살림을 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같은 울타리안에 6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그 시절 어느 날 문간방에 살던 대학생 영달이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필이면 사고 전날 그 방에서 살던 신혼부부가 갑자기 이사를 가고 잔뜩 술에 취해 들어왔던
영달이가 그 방으로 옮겨 잠을 잤던 첫날이었다. 아궁에서 옮겨진 연탄이 방문앞에 놓여있고 방문과 창문이 열려있었고
평소에 말이없고 소심하게 보였던 영달이가 자살한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사건이었다.




세입자끼리만 살던 안채에 세들어살았던 수빈은 29년 후, 잘나가는 대중문화평론가로 유명해지면서 신문사로 부터 80년대
유년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2년 여전 자신의 책 사인회에서 만난 우돌이는 라이락이 붉게 피던 집에서 함께
뛰어놀았던 친구였다. 연인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서로의 기억을 더듬어 그 시절의 이야기를 풀아가는데..

둘 다 너무 잘생기고 예뻤던 신혼부부와 과일행상을 하던 우돌이네, 버스운전사로 일하던 수빈이네, 그리고 그 안채에서
함께 마루를 쓰던 처녀 세명 그리고 문간방에서 세를 살다 연탄가스사고로 죽은 영달이까지..
연재를 시작한 수빈은 자신의 블로그에 그 시절 라이락 붉게 피던집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소식을 알려달라는 공지를 올린다.
그 공지를 보고 연락을 한 신혼부부의 아들 의철로 인해 이제는 상계동에서 '소문난 밥도둑'이라는 간장게장집으로 성공한 새댁과
마주하게 된다. 어느 날 낙찰계를 미리타먹고 야반도주를 한 신혼부부의 새댁에 대한 기억은 모두 달랐었다.
처녀셋이 함께 살았던 방에서 장애를 가지고 있던 목발언니 황경자는 미용실원장이 되어있었고 그녀는 새댁이 뇌종양을 앓던 우돌이
동생 우영이의 치료비를 꿔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도망을 쳤다고 기억했고,
새댁과 동향이라는 또 한 처녀 임계숙이는 새신랑이 바람이 나서 쫓아냈지만 새댁이 임신을 하는 바람에 신랑을 불러들이기 위해
찾아나섰다는 것이다.

그렇게 옛추억의 사람들과 과거여행을 하던 수빈에게 전직경찰 고영두가 나타난다.
오래전 영달이 죽은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로 그 사건에 의혹을 품고 수사를 하려 했지만 검사의 사건중단지시로 자살로 마감지으면서
풀리지 않은 의혹을 찾아 오랫동안 추적을 해왔고 그동안 모아놓은 수사일기를 수빈에게 내어놓는다.
영달의 사건을 뒤좇으며 드러나는 과거의 이야기들.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우달에게 숨겨져있던 깊은 상처들.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누군가는 그 시간들을 절대 농지 못했고 누군가는 숨긴채 숨을 죽이고 살았다.
하지만 우연히 신문연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의 진실들.

마침 사건의 열쇠를 지닌 여인인 새댁 김순자의 시간을 공유했던 나로서는 그 시절 마당을 사이에 두고 어울리던 세입자들의 이야기가
정겨웠다. 고무다라이에 물을 채워놓고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는 장면이며 하나뿐인 변소를 치우고 물청소를 하는 장면들.
19공탄의 구멍을 맞춰 연탄을 갈던 기억까지...동네에서 모은 낙찰계의 불입금이 15만원이었으니 그 시절 남편의 월급 30여만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와 함께 세를 살던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추억에 잠겨보기도 하면서 숨겨진 사건의 비밀을 쫓는 재미가 대단하다.
글을 쓰면서 작가의 약력을 다시 들쳐본다. 안타깝게도 그의 나이를 짐작할 만한 정보가 없다. 1980년대의 이야기를 풀어낼 정도라면
나와 비슷한 연배여야 하는데...생각보다 젊은 것 같아 더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도입부에 김옥자와 김순자의 이름이 왜 헷갈렸는지 비밀의 열쇠이기도 한 이 의문이 풀리기도 했지만 다소 싱거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풀어내는 그의 작법은 예사롭지 않다.
미스터리문학의 강국 일본에서도 주목받는 작가라니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사건 현장이었던 은평구 D동 근처에서 고왔던 새댁시절의 내가 혹시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의 사람들과 마주쳤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옛 시간들과 만나 시간여행을 해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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