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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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의 셰헤라자데처럼 혹은 시골집 할머니처럼 조근조근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같은 책이다.
한 여름이지만 아랫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들어야 할 것같은 무시무시한 공포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올 것만 같다.
88세대라느니 백조, 백수가 난무하는 청년실업의 시대에 신문방송학과를 막 졸업한 청년 김정우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월간 풍문'이라는 잡지사로부터 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혹시 피라미드 다단계회사가 아닐까 싶을만큼 의심스러운 회사이지만 속는셈치고 찾아간 정우는 괴이한 피라미드 모자를
쓰고 콧수염의 편집장에게 "이름이 뭔가?"하는 질문에 이름을 대답하자마자 "합격!"이라는 대답을 듣는다.
정기구독으로만 판매되는 '월간 풍문'의 기자가 된 정우는 과묵한 선배 대호와 함께 귀신이 산다는 목련흉가를 찾아가게된다.
해마다 한 번 모이는 '밤의 이야기꾼'으르 취재하기 위해서이다.



이야기꾼들은 모두 여섯, 하지만 깜깜한 방안에서 서로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짐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여만 한다는 규칙이 있을 뿐이다.
이 기괴한 모임에 이상한 기류를 느낀 정우는 방을 뛰쳐나가려 하지만 묘한 이끌림에 다시 방안으로 찾아든다.

K는 고고학과 출신으로 공무원시험에 낙방을 계속하다가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중학생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에 강사자리를 얻는다.
학원의 접수창구 경리직원인 S와 불륜의 관계가 된 어느 날 S가 사라져버린다.
S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그녀의 흔적은 없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간 K는 조금은 맹하다가고 생각했던 아내에게서 환대를 받는다.
고집과 오만을 갑옷처럼 두르고 폭력이라는 무기로 아내를 괴롭히던 K.
아내의 고향에서 전해지는 기괴한 난쟁이의 전설. 이미 남편의 외도를 눈치챘던 아내의 믿을 수 없는 복수가 시작된다.

과연 '도플갱어'가 존재할까? 세상 어디엔가 나와 똑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마주치게 된다면 상대를 먼저 죽여야만
살 수 있다는 도플갱어를 만났다는 여자가 정신과병원에 찾아온다.
온 얼굴을 마스크와 모자로 가리고 나타난 여자는 자신과 똑같은 '도플갱어'를 만났다고 주장하는데...
동네의 따분한 정신과의사는 이상하게 이 여자가 마음에 걸린다. 얼마 후 다시 나타난 그녀는 의사의 뒤를 쫓는다.
자신과 똑같은 상대와 닮은 것이 싫어 성형중독에 걸린 여자. 여자의 묘한 이끌림에 찾아간 그녀의 집에서는 방에 갇혀있는 또 다른
여자가 발견되고...정신병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결국은 정신병에 걸려 살인을 저지르는데..

가난했던 사내는 어렵게 장만한 집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사업실패로 날아간 집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한다.
새로 이사온 전업작가의 가족들은 자신의 집을 맴도는 전주인 사내의 존재에 미쳐버릴 지경이 된다.
이제는 남의 집이 되어버린 스위트 홈을 되찾기 위해서는 오로지 한 방법밖에 없다. 과연 그 방법은 무엇일까.

술주정뱅이아버지를 못견뎌 자살을 선택한 엄마. 폭력을 피해 숨어든 다락방에서만 유일한 안식을 얻는 소녀.
미친놈의 자식이라는 소문에 아무도 소녀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싸늘한 시선과 무수한 말의 폭력들만
소녀곁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의 유이한 친구인 삐에로 인형. 소녀는 삐에로의 가르침대로 처음에는 쥐를 고양이를, 개를
잡아다가 다리를 자르고 몸통을 나누는 놀이에 기쁨을 느낀다. 
학교에서도 왕따였던 소녀는 새로 전학온 잘생긴 소년 Y의 등장에 생애 처음 가슴이 설레고 삶이 즐거워진다.
하지만 Y역시 누군가를 조종한다는 믿음을 가진 가학자일 뿐이다. 그런 Y의 관심이 사실은 자신을 놀리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소녀는 끔찍한 복수를 시작한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오지의 설상리에서 전해내려오는 저주의 전설.
10년 마다 바쳐야 하는 제물이 된 얼음공주 설과 그녀를 사랑하게 된 수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법한 이야기도 있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어느 폐가에서 '밤의 이야기꾼'들이 모여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엄청난 모임에 충격을 받은 정우는 환멸을 느끼지만 사회를 보던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는 말을 듣는다.
과연 정우의 과거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일까.
이미 잊었다고, 아니 잊고 싶었던 아픈 과거가 밝혀진다.

정신과에서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꺼내놓은 것 부터 치료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덜어내지 못하고 고였던 아픔들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어둠의 세상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믿을 수 없지만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쓰게 된 정우는 갑자기 사라진 편집장으로부터 또 다른 사건을 해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대호와 정우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늦더위를 가볍게 날리는 무섭고, 으스스하지만 아름답기도 한 '밤의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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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양국일.양국명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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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악의 령이 깃든 존재가 실제하는가. 지방 소도시에 자리잡은 명문고등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전나무숲으로 둘러싸인 학교와 기숙사안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움직임들.
이제는 더 이상 옮겨다닐 학교마저 남아있지 않은 골치덩어리 태인은 어쩐 일인지 전학이 어렵다는 이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된다. 도대체 이 시골구석에 있는 150명 정원의 학교가 명문으로 인정받은 이유가 궁금하다.
적어도 고등학교만은 졸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찾아오긴 했지만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산중턱으로 오르던
태인은 전나무숲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 그림자의 존재를 발견한다.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사라진 검은 그림자. 태인은 혹시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닐까 마음을 진정시키며 학교로 들어선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정돈된 이미지의 교장선생과 머리를 틀어올리고 틈 하나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까칠한 학생주임.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지란 여학생과의 첫만남등 태인은 꺼림칙하면서도 이상한 학교의 분위기에 압도된다.
얼마전 사라져버린 은호라는 남학생의 빈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된 태인은 '그 아이 대신'이라는 말과 '너 나 몰라?'
하는 수지의 알쏭달쏭한 말이 마음에 걸린다.

룸메이트인 지원의 인도로 미스터리를 연구하는 모임인 '이니그마'의 새로운 멤버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게된다.
사실 이니그마는 학교내에서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는 의문의 사건을 쫓는 모임이었다.
얼마전 실종된 은호역시 이니그마의 회원이었고 사주팔자를 운운하는 묘한 녀석 석규역시 이니그마의 전멤버였다.
우연히 천정위에서 은호의 비밀노트를 발견한 태인은 이니그마의 회원들이 쫓던 사건의 진상을 알게되는데..

한 달에 한번 학교에 모인다는 선배들과의 만남시간을 수상히 여긴 은호는 그 현장을 몰래 훔쳐보다가 실종된 것으로 밝혀진다.
과연 그 모임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오래전 구전되어온 여우숲의 전설이 현재에도 실존하며 여우종족이 여전히 살아남았다니..
원하지 않는 전학으로 악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된 태인은 그 사건을 쫓는 이니그마의 회원 유미와 함께 비밀의 만남 현장을
직접 확인하려한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악령들이었다.

공포소설의 강자 양국일, 양국명 형제의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이다.
구미호나 뱀파이어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버무러진 느낌이다.
하긴 이 세상에 이런 족속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악을 행하는 무리들이 지금도 버젓이 우리들 사이를 활보하고
있으니 말이다. 상상의 세계를 꺼내놓는 솜씨가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다.
늦 여름 악의 세상을 쫓는 '이니그마'의 회원이 되보시면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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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비탈의 식인나무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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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주 옛날에는 모든 사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무와 바위같은 곳에도 영이 깃들어 있어
소원을 빌거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도 있다고 했는데 문명이 발달한 현대에 과연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나무가 있다니..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책을 덮고나서는 식인나무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은 1945년 4월 스코트랜드 포이어즈 마을에서 부터 시작된다.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창이던 때 영국은 독일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던 중 한 아버지와 아들은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네스호가 보이는 산꼭대기 울창한 숲에 방공호를 만들게 된다. 그 무렵 인근마을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클라라라는
소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비밀의 집을 짓던 서른 살의 남자는 소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홀려 영원히 쟁취하기 위해
소녀를 살해하고 시체를 비밀의 집 벽안에 넣어 시멘트로 발라버린다.

세월이 흘러 무대는 일본의 요코하마 바샤미치의 이시오카에게 걸려온 전화로 이어진다.
친구인 미라타이의 활약을 글로 써서 책을 출판했던 이시오카에게 팬이라는 자청하는 모리 마라코라는 여자의 전화였다.
반가운 마음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이시오카는 이 전화 한통이 앞으로 벌어질 무시무시한 사건에 끌려들어갔음을 몰랐다.
첫만남부터 이상한 질문만 하던 모리는 사랑하는 남자가 유부남이고 니시 구 도베 초의 외국인 학교 부지에 새로 지은 빌라에
살고 있는 후지나미 스구로라고 고백한다. 조금은 맹한 이시오카는 그녀와의 이상한 만남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며칠 후 모리가 사랑했던 후지나미란 사내가 지붕위에서 변사체가 되어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가 실린다.
먹잇감을 찾던 배고픈 늑대처럼 미타라이는 이시오카와 함께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다. 모리의 집에 들러 그녀도 함께.

이야기는 도베의 어둠비탈길에 있는 천년이 넘는 거대한 녹나무의 역사로 이어지는데 오래전 에도시대부터 처형장이었던
어둠비탈길은 효수된 죄인의 머리를 녹나무의 가지에 걸어놓는 등 기괴한 전설이 깃든 나무였다.
오래전 이 나무에서는 온 몸이 너덜너덜해진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기도 했고 거대한 나무에는 수많은 원혼들의 외침이 들린다고도
했다. 이 녹나무가 있는 부지옆에는 오래전 유리공장이 있었고 그 뒤에는 외국인 학교가 있었다.
지금은 서양관자리에 있던 건물과 새로 지은 빌라등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그 서양관 건물의 지붕에 앉은 채로 숨진 후지나미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었다. 공식적인 사인은 심장마비. 하지만 이 죽음은 오랫동안 숨겨졌던 비극의 역사를 밝혀내는 열쇠가 된다.



영국에서 잘 나가던 사업가 제임스 페인은 동경하던 동양의 나라 일본으로 건너와 게이샤였던 야치요와 결혼하고 장남인 스구루와
차남인 유즈루, 막내딸인 레오나를 낳는다. 하지만 제임스는 돌연 단신으로 영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혼자 남은 야치요는 같은 마을에
살던 빵집 남자 데루오와 재혼한다. 데루오에게는 사별한 아내사이에 미유키라는 딸이 있었다.
야치요와 데오루, 미유키는 서양관에서 살고 있고 새로 지은 빌라에는 그녀의 세 자녀가 입주하여 살고 있다.
그 중 큰 아들인 스구로가 지붕에서 사망을 했고 이어 둘째 아들인 유즈루마저 거대한 녹나무의 쳐박혀 다리가 허공에 뜬 자세로
죽은 채 발견된다. 과연 이 녹나무에 얽힌 저주처럼 사람을 먹어치우는 나무가 존재하는 것인가.
예측대로라면 엄청난 미모로 연예인이 된 막내딸 레오나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치 셜록 홈즈와 그의 조수인 왓슨처럼 미타라이와 아시오카는 이 사건의 비밀을 쫓는다.
어느 날 영국으로 사라진 제임스 페인을 쫓아 막내딸인 레오나와 함께 영국으로 날아가 네스호의 비밀의 집을 둘러보기도 하고 
제임스가 사용하던 서재에서 발견된 의문의 메모들의 흔적을 확인한다. 하지만 비밀의 집은 너무나 희한한 구조로 되어있는데다
예전에 사라진 소녀의 시체가 묻혀있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가고 만다.



하지만 사건기록을 공표하지 않기로 한 서약의 기간이 끝나고 미타라이의 예상은 정확히 맞았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서양관 지붕위에 있던 시간을 알려주던 닭의 존재가 제임스가 보낸 죽음의 메시지라는 것도 밝혀진다.
하지만 아들들의 사건현장에서 상처를 입고 결국 죽음을 맞았던 야치요의 비밀은 경악을 하게 만든다.
과연 악은 유전되는 것일까?

전작인 '점성술 살인사건'도 미타라이의 활약으로 전모가 밝혀졌다는데 미리 읽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
작가인 시마다 소지는 거대하고 음침한 녹나무를 배경으로 아예 이 작품을 '나무에 깃든 저주'로 독자가 몰입하기를 원했던 것같다.
결국 그의 의도대로 어둠 비탈에 있던 녹나무는 읽는 내내 다가가고 싶지 않는 무서운 식인나무로 각인되었다.
실제로 그 녹나무는 식인나무임을 밝혀진다.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의 곁에서 죽어간 수많은 죽음에 대한 복수를 그 나무가
대신한 것으로 여겨진다. 40년이 넘는 세월과 영국과 일본을 오가는 공간만큼이나 방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다.
살인의 충동을 가진 사내와 그 악을 끊고자 했던 여인의 아픈 이야기가 드러나고 긴 여정은 막을 내린다.
미타라이와 약간은 어리버리한 이시오카의 활약은 계속되지 않을까?
시마다 소지의 다음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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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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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처럼 이 사건은 미궁으로 남겨진 하오키사건의 진실을 쫓는 신견이란 사내의 일지이다.
이 십여년 전, 도쿄 네리마 구의 민가에서 히오키 다케시(45)라는 남성과 그의 아내 유리(39), 그리고 그의 장남 다이치(15)가 시체로 발견되고 장녀인 사나에(12)만이 살아남은 사건이 발생한다.
문은 안으로 잠겨있고 유일한 출구인 창문은 너무나 작고 비스듬해서 갓난아이나 겨우 드나들 정도였다.
유리는 알몸인 채였고 시체주변에는 색종이로 접힌 학이 뒤덮여 있는 기인한 모습이었다.
살아남은 사나에의 파자마에는 오빠인 다이치의 정액이 묻어있었지만 성폭행의 흔적은 없었다.
범인은 피해자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낼만큼 큰 덩치로 왼손잡이로 짐작되는 인물이었다. 
그 무렵 동네에서는 빈집털이범이 극성이었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에서는 수면제가 든 음료수를 나눠주는 이상환 사나이가 나타나곤 해서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바로 그 사나이가 지목되어 체포되었지만 범인이라 할 만한 증거는 전혀 없었고 더구나 안으로 잠긴 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못한 채 풀어주고 만다. 결국 이 사건은 미궁속에 잠긴 채 22년이 흘러 우연히 신견을 찾아온 탐정에 의해 부활하게 된다.



우연히 술집에서 사나에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게 된 신견은 그녀의 집에 걸려있던 의문의 남자양복을 입고 출근을 하게 되고 퇴근길에
그를 찾아온 탐정에 의해 실종된 남자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 역시 사나에의 집에 드나들었던 사내로 어느 날 사라지고 말았는데 다니던 회사의 관계자들이 그의 행방을 탐정에게 의뢰한 것이다.
"사나에의 집 베란다에 있는 큰 화분속에 혹시 그 남자의 시체가 있는지 확인해 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신견은 처음에 거절하지만 결국 사나에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되고 사나에는 화분속을 뒤집어가면서 시체가 없음을 확인해준다.
탐정에게 실종된 남자의 사체가 사나에의 집 화분에 없음을 통보하자 그는 사나에게 사실은 오래전 미궁에 빠진 채 잊혀졌던 하오키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임을 알려준다.

신견에게는 어린 시절 R이라는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이 있었다. 
이제 겨우 발걸음을 뗄 무렵즈음 그의 어머니는 그를 공원에 버려둔채 사라지고 그는 여러곳을 전전하다 겨우 아버지에 의해 길러지게 된다. 그래서일까 그의 내면에는 어두운 상처가 고여있었고 유일하게 그와 소통하는 것은 바로 R이란 가상의 인물이었다. 
늘 잔인한 범죄의 가해자가 되어보는 상상을 즐기던 신견은 평범하게 살아보려는 노력으로 변호사란 직업을 갖기로 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사법고시를 준비중이지만 열정은 없는 삶이다. 유일하게 살아움직이는 욕망은 성욕 뿐이다.
그런 그에게 하오키사건은 묘한 이끌림을 주게 된다. 미궁에 빠진 밀실살인을 파헤쳐보고 싶다는 호기심보다는 서로 몸을 나누는 사이가 된 사나에에 대한 관심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신견은 예전 사건을 담당했던 인물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장남인 다이치가 아버지와 함께 정신과치료를 위해 병원에 드나들었던 사실과 다이치가 그린 그림에서 사건현장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 발견된다. 과연 범인은 다이치일까?



호기심이었든 사나에에 대한 관심이었든 미궁사건을 쫓는 신견을 통해 큰 사건후에 일본인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느껴졌다.
특히 어둔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데미지에 약할 수 밖에 없다. 쓰나미나 원전사건에 흔들렸을 그들의 상처가 삶에 어떤 그림자가
되는지 짐작해 본다. 그래서일까 일본인들은 '겸허'라는 태도에 수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채무사들의 빚을 청산해주는 단순한 일에 아무 의미없이 사무실을 오가던 신견이 직원들을 해고해버리려는 변호사에게 한방 먹이는
장면은 아주 의외의 장면이다. 소외된 자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는 의지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나에게 쏟아 놓은 사건의 전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독자의 판단에 맏긴 채 마무리가 된다.
수 많은 가정과 의혹을 가슴속에 지닌 신견은 그래도 사나에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품어준다.
이미 그는 어떤 결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디는 법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미스터리물이나 스릴러물이라기 보다는 심리극이라는 것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다.
부부의 삶이, 부모의 삶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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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남자 - 색다르게 인생을 정주행하는 남자들을 찾아서
백영옥 지음 / 위즈덤경향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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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른 남자'라는 타이틀을 보고 ''other'을 연상했다면 읽고 나서의 느낌은 'different'였다.
참 이럴 때 우리말이 쉽고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말이니 당연히 우리말이 쉬워야 하는데 '다른 남자'라면
개성이 다르다는 뜻인가? 어차피 한 사람이 아닌 다 다른 사람이니 제각각의 개체라는 뜻일까?
제목부터 여러생각이 들게 했던 책이다.
정의하자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주 개성있는 열 다섯 남자들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한 때 누군가를 인터뷰하는 사람이었던 작가가 소설가가 되어 만난 이 열 다섯 남자들은 어떻게 꾸려진 조합일까
그녀의 프롤로그에도 그런 언급은 없다. 다만 아주 열렬하고 팍팍 튀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사는 남자들임은 분명하다.



서평을 쓰기 위해 책표지를 찍으면서 이런 황당한 그림을 생각케한 것도 처음이다. 열 다섯병의 소주병이라니...
여기 나온 남자들은 소주보다는 와인이 더 어울릴법한 남자들이긴 했지만 나는 그들과 소주 한 잔을 나누고 싶다는 간절한 기분이었으니
내 식대로 소주위에 책을 얹어본다.

 


 

 

 

이제는 잘 나가는 소설가가 된 백영옥에게 선택당한 남자는 하나같이 보통의 인물은 아니었다.

비범하기도 하고 괴짜같기도 하고, 그래서 조금 다가가기 어려운 인물들도 있었다. 

'악인의 내면을 읽는 남자' 귄일용은 국내 최초의 프로파일러로 수많은 살인사건의 현장을 누빈 사내이다. 범인들에게 읽히는 것이 싫어

사진찍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노출 되는 것도 경계한다는 남자, 의외로 그의 얼굴은 친근한 동네아저씨처럼 푸근한데 말이다. 그가 만난 연쇄살인범들의 이야기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심지어 살인중독에 자신마저 살인해야했다는 정남규같은 인물을 어떻게 규정 지어야 할까. 그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끔찍한 사건의 기억들이 안스럽다.

 

 

 


광고계의 마이더스인 박웅현이 딸에게 해준 말도 파격적이다. '넌 업그레이드 잘되는 재밌는 장난감'이라니..

그의 이런 파격적인 시각이 고객들을 휘어잡는 카피가 탄생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실패는 누군가의 의견일 뿐'이라고 시크하게 얘기해주는 아빠의 모습도 멋있다. 전국 엄친아 반대 연합을 만든다면

나도 일 순위로 가입할 예정이다. 옳소~

잔뜩 게을러지고 싶다는 작가를 위해 떼굴떼굴 하우스를 지어주겠다는 건축가 '문훈'의 삶도 그가 짓는 집만큼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딸에게 '너 자체가 아름다우니까 뭐가 안 되도 상관없어' 해주는 그의 태평함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무심코 고등어를 손질하다가도 나는 김창완을 떠올린다.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있네'를 노래했던 그의 남다른

노랫말때문이다. 온화한 얼굴에 숨은 비열한 악인까지 연기하는 그의 변화무쌍한 삶이 늘 궁금했었다.

그를 인터뷰하려면 숙취음료를 마시고 가라던 선배의 말을 새벽 세시 술자리가 끝나고 생각났다는 말처럼 그와 술은 불가분의 관계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의사인 아내를 두고도 건강검진은 사절이라니...달마를 닮은 웃음속에 그의 고집스런 삶이 느껴진다.


 

 

철학책을 집어들 때마다 못쫓아가는 두뇌와의 싸움때문에 망설여지던 그 철학을 열렬히 퍼뜨리는 강신주가 전공하던 화공학과를

바꿔 철학을 공부할만큼 그를 사로잡은 것은 무엇이었을까...늘 궁금했었다.

철학자와 철학을 구별 못하는 지방 노인들을 위해 주역도 공부했다니...언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주역풀이를 부탁해볼까나.

뭐랄까...학자보다는 운동가같은 느낌의 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법칙을 좋아한다는 말에 환호한다.

앞서 '분노할 줄 아는 남자' 홍성남 신부에게서 느꼈던 그 시원함이 그에게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분노할 때 분노해야 사랑도 할 줄 알고 은혜도 꼭 갚아야 하듯 복수도 꼭 갚아야 하지.

속이 후련하다. 독자들에게 굽신거리기 보다는 소신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남자가 나는 더 멋있다.

 

요즘을 여성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긴 모계사회일때가 세상이 평화로웠노라고 생각한 나로서는 아주 이상적인 상황이라고 판단하지만 문제는 그만큼

'괜찮은 남자'가 드물다는 말로도 해석이 된다. '색다른 인생을 정주행하는 멋진 남자'를 만나서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아직 세상은 기댈만 하다고...너른 남자의 품에 안겨서. 그리고 그 품으로 하여 같이 사는 이 시간들이 넉넉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런 남자들이 곱배기에 곱배기쯤 더 많아졌으면 좋겠는데...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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