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박사 데니스 홍의 꿈 설계도
데니스 홍 지음, 유준재 그림 / 샘터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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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금과 같은 문명과 문화를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발명가들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어떤 것이든 호기심을 가지고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눈과 재능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인류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사람들은 세상을 바꾼 선각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며 살아야 할 것같다.

데니스 홍은 감사의 삶을 넘어서 스스로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 발명가가 된 인물이다.

지렛대의 원리를 알아보기 위해 거실 탁자위에 있던 유리를 반쯤 끌어내다가 깨먹었다거나 땅끝을 만나보기 위해

밤늦게까지 땅을 팠다거나 하는 일화를 보면 그의 호기심과 적극성은 유달리 남달랐던 것이다.

 

 

 

조그만 몸체에서 소리가 나는 라디오가 궁금하여 해체하거나 TV를 분해하여 못쓰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도 데니스 홍의

부모님들은 야단을 치기는 커녕 그의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공작대를 만들어주거나 직접 실험에 같이 참여하는 등 끊임없는

격려와 응원을 보내준다. 아마도 이런 부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로봇박사는 탄생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전국 어린이 과학대회에서 금상을 받기위해 오랜 준비를 하고 평소에도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이렇게 메모하고 그림까지 그려두는

치밀함은 그가 준비된 과학자였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저 영화에서만 나오는 환상의 존재라고 여겼던 로봇을 기어이 만들어내겠다고 결심하는 어린 데니스 홍의 모습을 상상하니

꿈을 그저 꿈으로만 남기고 길을 찾아가지 못한 게으름에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과연 나는 내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가도록 격려하고 기다려주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자녀를 마음껏 뛰어놀게 하세요','자녀를 혼낼 때는 중요한 세 가지 원칙을 꼭 지켜주세요'같이 아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장면에서는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이 떠오르기도 한다.

과연 나는 어떤 부모였을까.

 

 

 

시각장애인이 운전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불가능했던 일을 추진하면서 데니스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를 말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미국에서조차 이 프로젝트는 다소 황당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희열에 빠진 그들의 모습에 그는 앞으로 자신의 꿈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어렵게 발명한 로봇의 원리를 공유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로봇을 갖게 해주었던 것은 바로 그의 이런 소망때문이었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처럼 혹시 먼 미래에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면? 하는 상상을 했었다.

인간이 발명한 로봇이 인간을 살상하는 무기가 되거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도움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로봇을 사용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하는 데니스 홍의 말처럼 칼을 무기로 쓸지 음식을 만드는 편리한 기구로 쓸지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몫이다.

'터미네이트'에서는 미래의 로봇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의 시초가 되었던 과학자가 스스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파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을 대신하여 구조를 하는 로봇을 만들고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따뜻한 로봇을 만들기 위한 데니스 홍의 지금 노력이 미래의

희망이기를, 그리고 그의 지나온 시간들이 많은 아이들의 꿈이되기를 기도한다. 더 많은 데니스 홍들이 그의 뒤를 따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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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
정채봉 지음, 김덕기 그림 / 샘터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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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하면 먼저 정채봉작가가 떠오른다. 환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평생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맑게 살았던 그가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찡그리거나 심각한 얼굴을 한 것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어린아이를 만나듯 저절로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던 그를 잠언집으로 다시 만나니
고향에 오빠를 만난 듯 반갑고 읽지 않아도 배부른 듯 하다.



돌담을 따라 핀 호박꽃처럼 소박하지만 환한 그의 잠언집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한 틈이 없다'를 보노라니 올해 내내 바람잘날
없었던 마음이 스스르 진정되는 것만 같다.



섬에 내려와 닻을 내린지 어언 5년! 그래서 일까 '환상의 섬'이란 제목에 먼저 눈이 간다.
사철 내내 꽃이 피는 환상의 섬으로 날아간 일벌들이 왜 꼭 죽어서 나오는 괴이한 일이 생겼을까.
" 그 섬에는 겨울이 없습니다. 꽃이 내내 피고 지는 여름만 있으니 꿀을 따로 저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 날의 먹이는 그날로 족한 셈이지요. "
나태해진 벌들은 천재지변에 의한 겨울이 닥치면 저축해 둔 양식이 없어 굶어죽게 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든다.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노후를 위한 재물의 저축도 중요하지만 아직 감정의 여유가 있을 때 위기를 대비하는
감정의 저축도 중요하다는 뜻일게다.



결혼을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정의되지 않는 숙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기어이 결혼을 하고 또 후회하고 원수가 되어 헤어지기도 한다.
"결혼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함꼐 사는 데는 '사랑해'라는 말보다는 '미안해'라는 말이 더 중요하다."
사랑은 3년이 유효기간이라는 '미안해'라는 말은 유효기간이 없는 모양이다.
문득 결혼서약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혹은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같은 말보다
'뚱뚱하고 대머리가 될 때까지'나 '방구소리나 잔소리도 세레나데로 들릴 때까지'라는 말이 더 현실적이지 않냐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한다.
그 때부터 서로에게는 조금씩 늙어가고 건강을 잃어가고 조금씩 무뎌져가는 시간들이 남아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한다.
미운모습도 받아줄 각오가 없다면, 너무 무덤덤해져서 '사랑해'라는 말은 못해도 '미안해'라는 말은 할 줄 아는 각오가
없다면 결혼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 후줄근한 내 지금 모습이 부끄럽다.

해마다 그의 고향에서는 그를 기리는 문학제가 열린다. 이렇게 라도 그를 기억하고 붙들어두고 싶은 이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루에 몇 십명씩 자살을 하고 하필이면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는 요즘 마음이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픈 소중한 잠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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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딸들
랜디 수전 마이어스 지음, 홍성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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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의 인생에 새겨진 상처는 평생 트라우마가 되어 삶의 걸림돌이 된다.
특히나 사랑했던 아빠가 엄마를 살해하고 자식마저 살해하려 했다면?
곧 열 살이 되는 소녀 룰루는 너무나 아름다운 엄마와 엄마를 빼어 닮은 다 섯살짜리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 아빠는 자주 다퉜었고 어느 날 아빠는 집을 나가고 말았다.
생계에는 관심도 없던 엄마는 다른 남자들과 만나는 눈치였고 룰루에게는 절대 아빠를 집안으로 들여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했다. 하지만 운명의 어느 날 술냄새를 풍기며 나타난 아빠의 동정어린 부탁에 문을 열어주게 된 룰루는 자신의
그 결정이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을 줄은 몰랐었다.



자신의 딸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외할머니는 남은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어했지만 병이 들어 불가능했고 
엄마의 언니인 실라이모역시 살인자인 제부의 딸들을 집안으로 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여 결국 룰루와 메리는 보육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어느 정도 철이 들었던 룰루는 불행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고 어린 메리는 살인자의
딸이란 낙인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채 주눅든 삶을 살게된다.

더럽고 누추한 보육원을 벗어나기 위해 봉사자인 코헨부인에게 자신들을 거두어달라고 애원한 룰루는 결국 코헨부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룰루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봉사와 도서실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홀로 남은 메리는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처럼 불편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메리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대신하여 교도소에 있는 아빠에게 편지를 쓰거나 면회를 가곤한다.
자신들의 불행의 원인이 아빠라고 믿는 룰루는 편지나 면회는 커녕 그를 마음속에서 영원히 밀어내고 만다.

세월이 흘러 룰루는 의사가 되고 메리는 보호감찰관이 되어 살아가지만 그녀들에게는 늘 어둠의 그림자가 달라 붙어 있는 것 같다.
룰루는 자신들의 부모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얘기했지만 룰루는 마치 아빠를 보살펴야 하는 것은 자신뿐인양 아빠에게 향한다.
룰루는 어느 날 자신의 과거를 거짓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남자 앤드류를 만나 결혼하지만 늘 불안한 정서를 가졌던 메리는 수많은
남자들을 전전한다. 특히 자신과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유부남 퀸과의 관계는 왜 그리 오랫동안 지속되어야만 했을까.
아마도 아빠와 비슷한 나이의 퀸에게서 아빠의 사랑을 갈구한 것은 아니었을까.

살인자의 딸이란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야했던 두 자매의 인생은 너무도 가슴아프다.
룰루는 자신의 중무장하는 것으로 불행을 이기려 했고 메리는 섹스와 술, 그리고 남의 삶을 사는 것같은 소심함으로 불행에 휩쓸린다.
이런 두 자매의 슬픈 삶에도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는 늘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이 자신을 받아들여주기를 원한다.
노인이 된 아빠가 가석방이 결정되고 이제 더 이상 거짓으로 자신들의 삶을 마주하기 어렵게 된 두 자매는 두려웠던 운명과 맞서게 된다.

아빠의 살인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둔 두 자매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의 자식이 되었다.
어린 두 자매가 서로를 이끌면서 불행과 싸우고 때로는 용감하게 때로는 도망치듯 삶과 마주하는 시간들은 너무도 가슴 아퍘다.
실제로 지금 어디선가도 룰루와 메리같은 살인자의 딸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위선된 삶을 살아야했던 두 자매가 삶을 마감했던 엄마보다 더 불행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피하기보다 마주해야한다고 심리학자들을 말한다.
아빠를 대하는 두 딸들의 각자 다른 시선은 이 세상의 모든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누군가는 저주를 누군가는 동정을 또 누군가는 무관심을.
실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를 위해 일했다는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는 너무도 섬세하고 리얼하다.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의 폭력이라도 행사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반드시 이 소설을 읽히고 싶다.
가해자의 자식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지옥인지..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이 자식들에게 어떤 치욕의 운명을 안겨주는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유연하고 탁월한 필체가 놀랍다.
'랜디 수전 마이어스'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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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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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바다를 느끼지 못할거면 바다에 오지말라'고 일갈하던 바다의 작가, 섬의 작가 한창훈의 바다이야기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59년에는 지독한 태풍 '사라호'가 전국을 할퀴고 지나갔다. 얼마나 지독하였는지 몸소
'사라호'를 겪었던 엄마는 지금도 선풍기 바람을 멀리할 정도이다.
그 '사라호'를 정면에서 맞았을 거문도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팔경호'이야기가 있단다.
당시에는 정기 여객선도 없던 시절, 거문도 주민들은 육지를 오가기 위해 십시일반 출자하여 '팔경호'를 진수했다.
'사라호'가 우리나라를 강타할 무렵은 하필이면 추석명절인지라 그동안 모아둔 어물을 육지로 가져가고 대신 쌀과
과일, 육고기 등속을 사가지고 오기 위해 출항을 한다.
선원 열 명은 섬의 반년간의 수확을 싣고 태풍이 올라온다는 사실에 어두운 얼굴로 바다로 나섰던 것이다.
섬의 끄트머리인 녹산등대를 벗어나자 엄청난 파도가 몰려왔고 천신만고 끝에 고흥 녹동항까지 갔다.
급하게 시장을 보고 다시 배를 돌려 거문도로 향하던 팔경호는 배를 버리고 청산도로 들어갈 것인지 배를 지키기 위해
거문도로 향해야할지 선택을 하게 된다. 누군들 목숨이 안 아까울까.
하지만 섬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팔경호를 지키기 위해 선원들은 깡술을 들이키고 태풍과 맞장을 뜨기로 한다.
태풍이 무지막지하게 섬을 할퀴고 간 후 주민들은 당연히 팔경호가 바다속으로 가라앉았을거라고 낙담을 한다.
과연 그 팔경호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섬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일단 바다에서 건져올리는 안주가 좋고 맘먹고 돌자고 보면 고작 하루면 끝나는 우물같은
섬에 갇혀있다보니 유일한 낙이 술뿐이다. 밥상을 받는 횟수 못지 않게 술상을 받았을 술 좋아하는 작가의 섬살이는 얼핏 달력에
그려진 풍경화처럼 고즈넉해 보인다. 하지만 손바닥만한 섬안에도 무수한 인생의 이야기가 지천이다.
섬살이가 지긋지긋해서 떠나버린 여자들이 많다보니 홀아비가 지천인 것도 술과 친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다 중년 남자들의 싸우는 소리를 듣던 중 욕이란 욕은 죄다 섭렵을 하다 마지막 나온 한마디에 상대는
KO패! "좆까지 마 씨발놈아, 각시도 없는 새끼가." 아 얼마나 가슴쓰린 욕이란 말인가.
내 일찌기 싸움에서 먼저 피를 본 놈이 지는 거란 소리는 들었지만 각시 없는 놈이 진다는 소리는 처음이다.



작가 또한 이 '지는 그룹'에 속해있으니 어떤 싸움이든 휘말려 들어봐야 승부는 뻔한 일이 아닌가. 오호 통재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못지 않은 섬과 바다의 풍요한 자산을 소개했던 전작인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에 비해 술상은 조금 빈약해 보인다.
2005년 컨테이선 하이웨이호를 탄 여행기와 2013년 쇄빙연구선 아라곤호의 탑승기가 이채롭다.
섬에서 자란 사람이라 그런가 유독 바다에 대한 갈망이 남다르다. 가도 가도 물뿐인 바다라 지구가 아닌 '수구'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어마어마한 바다에 서면, 그것도 장장 한 달 이상이라면 바다는 더 이상 동경이 아닌 고독의 대명사가 되지 않을까.



고래를 보고 싶어 북극의 바다를 향했지만 결국 제대로 된 만남은 무산되었던 듯..심지어 월급없는 간호사와 연구원 보조로
활약(?)했다는 탑승기가 재미있다.

당원과 소금과 미원 범벅의 쥐치맛에 익숙한 여자에게 날 쥐치의 참맛을 이야기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어떤 목걸이-쥐치'는
작가만의 색이 그대로 느껴지는 글이다. 사내들에게 술을 따르며 살아가는 여자의 아픈 추억과 싱거운 쥐치맛에 어우러지는 풍경이
쓸쓸하다. 섬이란 워낙 절대고독을 마주해야 하는 곳이라 그런가 그의 글들은 늘 조금은 외롭고 쓸쓸하다.
언뜻언뜻 드러나는 과거의 행적역시 남다르기도 하고. 그가 가졌던 다양한 직업들은 그가 작가로 살아가는데 밑천이 되지 않았을까싶다.

올 한해 유독 바다로 달려가 소주 마시며 울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바다가 무슨 죄라고...인간들은 바다에게 탄식을 토하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은근히 바다로, 섬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그의 글로
바다의 갈증을 달래도 좋겠다. 허리도 부실한 작가가 온몸으로 닻을 올리는 장면이 보고 싶다면 섬으로 가자.
흰머리를 휘날리며 섬을 서성이는 그를 알아보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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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돼지가면 놀이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6
장은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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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마지막 늦더위를 이 책과 함께 했다. 공포문학을 가장 읽기 좋은 계절은 바로 여름이 아닐까 싶다.
오싹한 이야기들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더위를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전쟁당시 휴전선 가까운 펀치볼이란 지명을 가진 강원도 해안면에서 일어난 기괴한 이야기 '돼지가면 놀이'는 인간고기를
먹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휴전이 시작되고 제대증을 받아든 사내는 다니는 대학이 있는 서울로 향하다가 미군통신기지을 발견하고 배고픔이나 해결하려고
일용직을 하게 된다. 일을 마친 후, 그 곳에서 만난 이병연을 따라 그가 사는 마을로 들어서게 된 사내는 마을에서 일어난 기괴한
사건을 듣게 된다. 그 마을에 있는 주인을 알 수없는 별장으로 한 가족이 들어오게 된다. 경성에서 미술대학 교수였다는 남자와
스무 살 정도 되는 딸, 그리고 이제 막 열 살을 넘긴 것으로 보이는 아들이었다.
혹시 품을 팔아 삯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별장을 찾았던 이병연이는 벌거벗은 딸을 그리고 있는 교수를 발견하게 된다.
교수의 딸은 비밀을 지켜달라며 쌀 반가마니를 이병연에게 내어준다. 졸지에 비밀을 갖게 된 이병연이는 안갯속에서 웬 돼지가
울고 있기에 쫓아갔더니 사람이더라는 소문과 조그만 꼬마가 돼지 가면을 쓰고 안갯속에서 꿀꿀 소리를 내더니 교수댁 딸이 홀연히
나타나 데려가더라는 말을 듣게 된다. 도대체 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배고픔에 지친 동네사람들은 먹을 것이 많다고 소문난 별장을 찾아가지만 실종되고 만다.
교수가 베푼 잔치에 초대된 마을사람들은 차려준 고기와 밥을 배불리 먹지만 모두 실종된다. 도대체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48세의 중소기업 과장인 강은 꿈을 잘 꾸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는 인물의 얼굴에
여섯 개의 숫자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꿈을 꾸게 된다. 숫자 여섯 개가 나오는 꿈이라면 복권 당첨의 꿈이 아니겠는가.
강은 일부러 동네 명당 복권판매소를 찾아가 복권을 사지만 그가 고른 여섯 개의 숫자는 하나도 맞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그의 눈에는 꿈에 본 숫자가 새겨진 사람들을 보게되고 그 사람들은 어김없이 죽음을 맞는다.
여섯 개의 숫자는 죽음의 방법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단체로 수련회를 떠나는 아이들의 이마에도 떠오르는 죽음의 숫자들..
하지만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미친놈 취급을 하며 모두 죽음의 길로 떠나고 마는데..
이제 회사도 잘린 채 칩거하던 강은 아내의 이마에 숫자가 새겨진 걸 보게 된다. 과연 그의 아내에게는 어떤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까.

무당 엄마를 둔 영민은 경북의 깊은 산골에 자리잡은 교도소에 취직이 되어 교도관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맡은 18개의 방중 빈방이었던 18방은 절대 불을켜지말고 출입하지 말라는 기묘한 지시를 받게 되는데...묘한 이끌림에 18방에
이른 영민은 목을 메고 죽은 사내의 환영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무시되고 도리어 지시사항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위서를 쓰게 된다. 
18방에는 연쇄살인범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영민은 그의 방에서 비밀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무당 엄마를 두었기 때문일까.
영민은 계속해서 귀신을 보게 되는데...섭주 교도소에서 일어난 비밀스런 사건들이 하나 둘씩 밝혀진다.

사랑하는 남자의 집으로 초대된 예비신부 은해는 애인인 형주의 외국출장으로 혼자 가기가 어색해 동생인 기자 은미와 함께 시댁을
방문하게 된다. 그녀들을 맞은 노인과 주치의인 의사는 대저택의 지하실로 은해를 안내하고 지하실의 방에는 끔찍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독특한 소재의 10편의 단편은 으스스하기만 하다.
작가들은 모두 한국 공포문학단편선에서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들로 공포문학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무당 아들'은 교도소라면 있을 법한 전설이나 소문을 신기가 있는 무당아들의 눈을 통해 투영해내고 있다. 과연 죄를 지은 죄인들에게도
억울한 죽음이 있을까. 사형제도가 유명무실해진 요즘 그들은 단죄하는 또다른 집단의 복수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며느리의 관문'은 소재도 특이하지만 현직 피부과 성형외과 원장인 의사의 작품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생명을 연장하기위해 냉동된 인간들이 현존한다고 들었지만 미래의 어느 날, 이 작품에서 나오는 신기한 액체가 발명되지 않을까.

짧은 단편이지만 공포의 여운은 길다. 어떤 작품은 영화의 한 장면에서 본듯도 하고 언젠가는 실제한 미래를 보는 듯도 하다.
'월하의 공동묘지'나 '구미호'의 전설을 닮은 애교스런 공포담도 있지만 '구토'처럼 뚱뚱한 자신의 외모에 혐오를 느껴 음식을 거부하고
구토에 시달리는 여성의 모습에서 현대 여성의 외모지상주의, 다이어트증후군에 어둠을 목격하게 된다.
늦여름 더위의 잔재를 날려주는 시원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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