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1
정병철 지음 / 일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프레임'은 '틀'이라는 뜻으로 여러의미가 있으나 언론보도와 관련해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라고 한다.

미국의 미디어 연구자인 토드 기틀린은 프레임 개념을 원용하여 매스미디어의 보도가 '프레임'에 갇혀있으며 바로 이러한

'프레임'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문기자 출신의 작가는 책의 모두에서 소설은 소설로서만 읽어줄 것을 당부했지만 몇 년전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여대생 공기총

살해사건'과 살인을 교사한 것으로 알려진 사모님이 지병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한 후 호화병실에서 생활한다는 보도가 이

책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판사 김민기의 장모 윤영자는 그의 이종사촌 동생인 명문대 여대생 오미해와의 사이를 의심하여 조카인

윤기덕을 시켜 불륜의 현장을 잡기 위한 미행을 사주한다.

마침 생활이 곤궁했던 윤기덕은 고모인 윤영자에게 거액의 돈을 받을 목적으로 이를 수락하고 친구인 김용득과 모의하여 오미해의

뒤를 미행하던 중 오미해를 살해하고 만다.

심한 정신적망상증으로 보일만큼 사위의 불륜을 확신했던 윤영자는 불륜의 증거가 나오지 않자 조카인 윤기덕에게 돈을 되돌려

달라며 닥달했고 이미 써버린 돈을 되돌려 줄 가망이 없었던 윤기덕과 김용득은 쫓기는 심정이 되어 오미해를 납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실제로 이종남매인 김민기와 오미해는 불륜의 사실이 없었으므로 증거를 잡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거액의 돈을 받아 써버린 범인들은 오미해를 납치하여 자백을 받아낼 목적으로 납치를 했으나 오미해의 심한 반항에 몸싸움을

벌이던 중 공기총의 오발로 인해 오미해가 사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범인들은 야산에 시신을 묻은 후 해외로 도피하기에 이르렀고

얼마 후 발견된 시신을 두고 수사를 벌이던 경찰은 윤영자가 배후에 있다는 심증을 갖게 된다.

중국과 베트남을 전전했던 범인들은 결국 잡혀 국내로 압송되고 수사를 받게 된다. 윤영자는 이미 검거되었고 과연 이 살인이 우발적인

것인지와 윤영자가 미행은 지시했지만 살인까지 교사했는지가 쟁점이 된다.

윤기덕과 김용득은 혹시라도 종범이되면 감형이 될까 싶어 윤영자가 살해를 지시했다고 자백하지만 오히려 죄질이 더 나쁘다는 이유로

윤영자와 더불어 무기징역형을 언도받는다.

자식을 잃은 오미해의 아버지 오달수는 사형을 기대했지만 무기형을 받자 실망하고 아내는 손목을 그어 자실을 시도하는등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범인들이 같은 세상에서 버젓이 살아가는 것이 억울하지만 감형을 목적으로 위증을 한

범인들로 하여 천하의 몹쓸 여인이 되어버린 윤영자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할 것인가..하는 것이 독자에게 던지는 문제이다.

미행은 지시했지만 살인은 지시한 적이 없다...하지만 이미 언론과 대중에게 죽일년이 되어버린 윤영자의 외침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장모의 편집증으로 동생을 잃은 김민기판사역시 언론과 대중에게 몰매를 맞게 된다. 왜 수수방관만 했냐는 지탄과 함께.

하지만 이미 정해진 틀에 갇힌 자신이 외침이 들리기나 했을거냐는 그의 자조적인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저 역시 여대생을 공기총으로 청부 살해한 윤영자의 사위로만 인지될 뿐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위가 대응한들, 외쳐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어떤 프레임이 옳거나 어떤 프레임이 틀렸다고 말하기 전에 서로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어느 누구도 프레임의 근본적 한계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나역시 그 사건을 바라보면서 김민기의 어정쩡한 태도에 분노했었고 미친 할망구의 편집증이 부른 살인에 격분했었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은 모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윤영자가 살인까지는 지시하지 않았다면 얘기는 달라져야한다.

우리는 쉽게 분노하고 쉽게 몰매를 때리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사건에서 보듯, 세상 사람들은 장모님이 오미해양을 공기총으로 청부 살해했다고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프레임을 굳어지게 하는데, 프레임은 매우 효과적으로 인식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왜곡하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김민기판사의 이 말은 대중이 갖는 프레임이 얼마나 큰 왜곡을 불러올 수 있는지 한 마디로 정의하고 있다.

실제했던 '여대생 공기총 살해사건'이 언론과 대중들의 무책임한 프레임때문에 진실이 왜곡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갇힌 '프레임'이 언제든지 진실을 가릴 수 있으며 부화뇌동식의 몰아가기가 엄청난 왜곡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꼬집는

점에서 대중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날카롭다는데 있다.

소설속에서 이 사건을 지켜보고 비밀파일을 남기는 기자 정팀장이 바로 작가 자신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의 파일이 소설이 아닌 보도로 세상에 나올지를 기대해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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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홍수연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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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다가 가끔 마음이 메마른 것 같이 버석거리는 날들이 느껴진다면 진한 사랑이야기 한 편쯤 읽어보고 싶어진다.

실제 내게는 다가오지 않을 사랑을 꿈꾸며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어 열렬한 사랑에 빠져보고 싶은 것이다.

조금은 유치한 주제일지도 모를 '신데렐라 러브스토리'라면 더욱 좋다. 바로 이 '눈꽃'이란 작품이 메마른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면서 읽는내내 재벌 3세의 연인이 된 서영이가 되어 행복한 사랑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장애물 없는 탄탄대로는 심심하기만 할 터, 역시 아름다운 사랑에는 복병이 있어야 더 감질나게 마련이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간 부모를 따라 뉴욕에 정착한 민영과 서영은 자매지간이지만 너무도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누가봐도 혹할만한 미모에 활발한 성격을 지닌 민영은 주변 남자들에게 추앙받는 여신이었고 결국 그에 어울리는 모델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다. 그에 비해 성실하고 차분한 동생 서영은 공부에만 몰두하는 범생이로 화려한 언니에게 눌려 다소 소심한 성격이다.

우연히 스키장에서 멋진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던 민영은 그가 대기업인 에이드리언 가문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적극적으로

그에게 다가서려 하지만 제이어드 에이드리언은 진심으로 민영을 받아주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다가가도 내치지만 않을 뿐이다.

 

오래전 민영은 가족들에게 제이어드를 소개했었고 엄마의 등뒤에 숨어 제이어드를 바라보았던 서영은 제이어드에게 막연한 그리움같은

이끌림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언니의 남자! 

사실 더 오래전 제이어드는 어린 소녀를 만났었고 이상한 이끌림에 그 소녀를 지켜봐왔었다.

그 소녀가 서영이었고 사실 민영과의 만남도 서영이를 만나기 위한 징검다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한국계 여인과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끝낸 과거때문에 한국계 여자인 서영을 멀리서만 지켜본 채 다가서지 못한다.

자신의 선택이 서영의 불행으로 끝나게 될까봐. 

 

 

 

'그 뒤로 뒤척이며 잠들지 않았던 밤은 단 하루도 없었다....단 20분을 보겠다고 20시간을 비행을 참아가며 미친놈처럼 출장지에서

뉴욕에 왔다가 다시 출장지로 돌아가기도 했다.'-본문중에서-

 

이렇듯 멀리서만 서영을 지켜보던 제이어드는 서영이 자신의 회사에 들어오고 그녀의 오랜 친구인 데이빗과 결혼하려 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차갑고 냉철한 이성을 지닌 제이어드 였지만 뜨겁고 거칠게 그녀를 갖게 된다.

서영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던 남자를 인식했었고 언젠가 그의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니인 민영의 남자만 아니었다면...하지만 결국 운명은 데이빗과의 결혼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제이어드와 서영을 묶어버리고 만다.

 

금융재벌의 길을 열었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행장이 될 제이어드에게는 넘어야 산들이 너무 많다.

정략적인 결혼을 시키려는 엄마인 사라와 평범한 여자와의 결혼이 에이드리언가문에 미칠 엄청난 충격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사랑이 비극적인 사고로 막을 내린 아버지의 사랑을 쫓게 될까봐.

서영을 놓치고 싶지 않으면서도 100% 다가오지도 못하는 그런 어정쩡한 나날들.

언젠가 그가 원하면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까지 그를 기다리는 서영.

 

어쩔 수없이 나는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한다.

글쎄 제이어드는 누가 어울릴까. 서영은? 상사와 부하직원으로 부딪히며 서로의 감정을 숨긴 채 마주치는 시간들의 그 짜릿함까지.

다 가졌지만 단 한가지 서영만을 갖지 못한 제이어드의 안타까운 사랑과 동양의 여인처럼 순종적이고 기다릴 줄 아는 여인 서영의

사랑은 결국 이별을 맞는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죽음조차도 갈라 놓을 수 없는 운명처럼 다시 재회를 하는데..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에 입이 타들어갈 것 같은 갈증이 느껴졌다.

사랑하면 뭐가 문제야?..좀 더 용감해지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답답하기도 했다.

그 만큼 왕자와 거지공주의 사랑이야기에 몰입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푸르던 나무는 서서히 메말라가고 을씨년스런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다.

딱 이런 계절에 어울릴 그런 달콤쌈싸름한 연애이야기에 빠져보고 싶다면 이 책 아주 괜찮다.

열 몇 살적에 읽었던 연애소설만큼 가슴이 설렜으니까. 꽃피는 봄에 살짝 흩날리는 눈꽃처럼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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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독 소사이어티 - 82명의 살인 사건 전문가
마이클 카프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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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랑스의 전설적인 인물 '비독'을 전혀 알지 못했었다. 어린시절부터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을 들락거렸다는 비독이

후에 프랑스 경시청을 만들고 탐정이 되는 드라마틱한 삶의 주인공이었다니...하긴 '비독'이란 이름은 처음 들었을지

몰라도 그를 모델로 한 여러편의 탐정소설을 접하긴 했다. 프랑수아 비독은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나

그를 쫓는 형사 자베르의 모델이기도 했고 아르세르 루팽역시 그를 모델로 했다는 설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범죄학을 연구하는 학과도 많이 생겼고 실제로 범죄자의 심리를 읽는 프로파일러들이 많아지고 있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CSI'와 같은 미드에서도 섬세한 범죄인과 이들을 쫓는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는 이런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고 오랫동안 수사의 최전방에서 일했던 전문가들이 모여 '비독 소사이어티'란

모임을 만들었다. 이 비독 소사이어티는 비독이 82세까지 살았던 점을 기념해 추천으로 영입한 전 세계 최고 범죄 수사 전문가

8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82명 외에도 100여명의 준회원이 있다니 가히 전세계 최고의 범죄 수사팀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처음 이 단체를 만든 전직 FBI 수사관 윌리엄 플라이셔는 순찰 경찰부터 시작해 경찰 요직을 두루 거친 정의감과 친화력이 넘치는

인물이다. 그리고 세계 5대 프로파일러중 하나로 셜록 홈즈와 싱크로율 90%라는 명성을 지닌 리처드 윌터-평생 독신을 고집하고

심한 골초에다 괴팍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림 솜씨와 신비한 영적 관점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얼굴을

그리고 조각으로 복원시키는 범죄 예술가 프랭크 밴더-섹스 중독자라고 부를 만큼 여자를 밝히는 바람둥이로도 유명하다.

 


 

이 세 명의 천재가 만나 창설한 비독 소사이어티는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살인 사건을 해결하거나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는 유가족,

수사에 난항을 겪는 경찰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비독 소사이어티 홈페이지에서 만난 세 명의 남자들은 책에서 내가 상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쉽게 프랭크는 희귀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신의 아내와 세 자식 그리고 친어머니를 극악무도하게 살해하고 18여 년간을 도망 다닌 존 리스트 사건아니 마피아가 고용한

전문 킬러 포르하우어 같은 사건을 보면 섬세하고 조금은 괴팍한 리처드의 프로파일러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오랜 세월에 흐른 후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를 유추하여 범인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프랭크의 활약이 큰 비중을 차지하긴 

하지만 어떤 도시에서 어떤 직업으로 살아가는지 심지어 어떤 차를 몰고 다니는지를 추정해내는 리처드의 능력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이 책이 우리가 즐겨 읽는 스릴러물이나 미스터리물과 다른 것은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책에서 존재하는 악인들보다 더 악랄한 범죄인들이 수두룩 하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이름 없는 소년'이라고 명명된 한 소년의 시체에 얽힌 40년이 넘는 수사관들의 애정은 눈물겨울 정도이다.

숲 속 상자속에 버려진 그 소년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고 사실 그리 주목될 사건이 아닐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소년을 위해 새로운 묘지를 꾸며주고 기념일마다 꽃을 놓아주던 열혈 형사들의 끈질긴 애정은 결국 여성 사이코패스의

아동성애 범죄라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물론 너무 오랜 세월에 지나 이미 범죄자는 유유히 자신의 삶을 평탄하게 끝낸 후였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처럼 점점 대담해지고 지능적인 범죄자를 찾아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인기있는 TV 범죄 스릴러물 덕에 수사관이 되거나 프로파일러가 되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비독 소사이어티의 선배들은 말한다.

"젊은이, 자네의 그 열의는 이해하지만 자네는 너무 정상적으로 보여....(중략) 결혼 생활과 결국은 물론 자네의 영혼까지

망가뜨릴 일에 헌신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군. 이 일은 오직 강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리처드 윌터와 프랭크의 삶을 보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평신 독신으로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개성발랄하게 살아온 리처드와 수 많은 여성으로부터 위안을 얻은 프랭크의 삶은

결코 평범해보이지 않는다.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고 오로지 신만이 아는 범인을 찾아내려면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http://www.vidocq.org에 들어가면 히스토리와 사건접수에 관한 안내까지 자세하게 나와있다.

물론 비독 소사이어티에 사건을 의뢰하려면 사건 발생 최소 2년 이상이 되어야한다.

그러고보니 우리나라에도 미해결 사건이 좀 많은가. 미국과는 다르게 우리는 공소시효가 있어 안타깝게 사라진 사건이 많다.

우리도 이 비독 소사이어티에 사건을 의뢰할 순 없을까.

멋진 전문가들이 더 오래 우리 곁에 남아서 억울한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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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였다. 단순 추리소설이라 하기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숙제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평소 내가 가졌던 부당한 사회규범에 관해 그는 약간의 해답을 제시해준 셈이다.

 

광고회사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든 평범한 회사원 나카하라는 하나뿐인 외동딸을 강도에게 잃고 만다.

잠시 반찬거리를 사러 아내가 나간 사이에 침입한 범인은 아주 죄도 없는 소녀를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다.

범인은 오래전 노부부를 살해하고 복역중 가석방으로 풀려났던 사내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다고 했다.

겨우 몇 만엔을 구하기 위해 살인을 하다니.

그 뒤 나카하라 부부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깊은 상처뿐이었다.

당연히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건은 범인의 변호사의 적극적인 변호로 무기징역으로 선고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고 결국 사형장에 이슬로 사라진 범인.

남겨진 피해자의 가족들이 짊어진 아픔의 무게는 너무나 엄청났다. 결국 나카하라와 아내인 사요코는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혼을 하게 된다.

 

 

 

그렇게 11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카하라에게 형사가 찾아오게 된다. 전부인이었던 사요코가 길거리에서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이혼 후 초반에 메일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사요코는 아픔을 피하지 않고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

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된다. 반려동물의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던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장례에 참여하면서

사요코의 살해사건뒤에 숨은 비밀에 한 걸음씩 다가가게 된다.

 

세 살 무렵 병으로 엄마를 잃은 사오리는 일로 바쁜 아빠를 대신하여 살림을 돌보게 된다. 늘 외롭던 여중생인 사오리는 어느 날

자신과 비슷한 취미를 가진 한 학년 선배인 남학생 후미야를 알게되고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린 두 중학생의 철없는 사랑은 훗날 커다란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만다.

 

 

 

우리 사회에는 범죄자를 심판하는 법이 존재한다. 법원 앞에서 눈을 가리고 칼과 저울을 든 동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유스티티아(라틴어: Justitia) '정의의 여신'은 법이 만인 앞에 정의롭고 평등하다는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죄를 평가하고 심판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살인한 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가장 합당한 처벌처럼 보인다. 나역시 잔인무도하게 연쇄살인을 하고도 사형당하지 않는

범인들을 보고 분노했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막상 범인이 사형에 처해지고도

자신들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알고 허탈해진다. 죽은 아이도 돌아오지 않았고 범인에게 사죄의 말도 듣지 못했다.

다만 더 이상 재판에 휘둘리기 귀찮으니 죽게 해달라는 이기적인 답변외에는.

'사형'이 살인자에게 최선이었을까. 사요코역시 사형제도 폐지론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폭력인지를 알리기 위해 자료를

모으면서 커다란 회의에 빠지게 된다.

 



만약 갱생을 확신하고 풀어주었던 범인을 사형시켰더라면 자신의 딸은 죽지 않았을까.



 

 

사형제도에서 유일하게 증명될 수 있는 것은 '범인은 이제 누구도 다시 죽이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라는 답만 얻을 뿐이었다.

단지 그 하나의 증명이라도 피해자의 가족들은 사형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과연 살인자에게 가장 합당한 처벌은 무엇일까.

 

아이를 잃은 부부의 아픔과 11년 후에 아내가 살해되는 기이한 사건뒤에 숨은 비밀을 풀어가는 미스터리의 플릇도 훌륭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지금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는 사회에 던지는 숙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살인자의 인권도 보호되야 하는가..하는 의문으로 오랫동안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불만이 많았던 나로서는

사요코가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느꼈던 사형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 뿐이라는 결론에 '각각의 사건에는 각각의 결말이

있어야 한다'에 또 다른 숙제를 떠 안은 느낌이다.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른 추리작가와 차별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범인을 쫓는 것을 넘어서 독자에게 또 다른 공을 넘기는 방식.

책을 덮고도 한참동안 수 많은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때린 놈은 발뻗고 못잔다지만 실제로 교도소안에는

공허한 십자가를 진 무심한 범죄자들이 수두룩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인간은 인간의 죄를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정하게 처벌할 수 없다...이다.

최근 몇 년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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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4.10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예로부터 10월은 상달이라 하여 한 해의 가장 큰 달로 여겼다고 한다. 하늘이나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시기도 10월일만큼

계절중에서는 가장 풍요로운 달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샘터 10월호에는 '온누리달'이라는 제복이 붙여있다.

마치 보름달이 둥실 떠오른듯한 풍요가 느껴지는 그런 가을이 다가왔다.

 

 

 

태풍이 물러간 돌담 사이로 호박이 누렇게 익어가고 들판마다 이제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들이 그득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인 '나희덕의 산책'란에 실린 사진 한 점이 마음을 붙든다.

시인의 말대로 폭우와 태풍이 유난했던 여름을 견디고 오롯이 접시위에 올라앉은 결실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이렇듯 자연은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제 할일들을 해내는데 우리네들은 과연 이 가을 무엇을 거두어 들일 것인가. 

마음의 창고를 채워둘 열매하나 거두지 못한 시간들이 문득 부끄럽기만 하다.

 

 

 

샘터를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발행인 김성구님의 칼럼은 늘 촌철살인의 지혜가 들어있어 반갑기만 한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거울을 보면 낯선 여자의 얼굴이 시큰둥하게 나를 바라보는 듯 하고 특히 사진속에 내 모습은 거의 외계인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나만 그런 심란함을 느끼는 줄 알았더니 여기 동지가 있어 위로가 된다고 해야하나 술을 한잔 하자고 해야하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진을 절대 찍지 않는 것으로 내 늙음과 마주하지 않고 있다.

 

 

 

'행복일기'에는 나란히 장인과 엄마와 사는 두 분의 이야기가 실려있어 눈길을 끈다.

우리 문화는 시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당연한 듯 여기면서도 친정부모를 모시는 일은 왠지 눈치가 보이는 것 같다.

더구나 장모도 없는 장인을 모시고 사는 일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을 터. 

늙은 과부 엄마를 모시고 사는 솔찬히 나이 먹은 딸년의 이야기도 곰살맞다. 나를 낳아준 엄마와 사는 일도 시어머니 모시는 것

만큼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에..하면서도 나를 키워주고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를 키워준 부모를 모시는 일들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자식의 이기심이지 싶어 멀리 계신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보낸다.

 

 

 

서울내기인 내가 늘 그리운 것은 사람냄새나는 장터이거나 옛모습을 간직한 성터같은 곳이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속에는 신촌을 가로지르는 열차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경의선이 폐선이 되고 그 자리에 올망졸망

컨테이너와 노점 천막이 들어서 '늘장'이 생겼다고한다.

땅 값이 천정부지인 서울에서 이만한 공간에 이런 장터를 마련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지역민들의 노고가 고맙기만 하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야하는 행정적인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런 공간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은 도시민들의 바람이 아닐까.

빌딩 숲 사이로 오아시스 같은 이런 장터 하나쯤 있어야 찌든 삶에도 잠시의 갈피가 되어주지 않겠는가.

 

 

 

시골집을 닻을 내린 후 텃밭에 고추며 마늘을 심고 이웃과 나누는 법을 배우면서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다.

대단한 것들이 아니어도 그 마음은 저울에 달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샘터의 독자들은 이렇게 주고 받는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이번에는 '미니 전기 오븐'이 나왔는데 사실 나도 한번 신청해볼까 싶을만큼 탐이 난다.

너무 큰 오븐은 부담이 되고 이렇게 아담한 사이즈라면 이것 저것 없는 솜씨라도 도전을 해보겠는데..싶어진다.

어느 분이 되었든 꼭 필요한 곳에 가서 사랑을 듬뿍 받았으면 좋겠다. 단...얼른 서둘러야 한다는 점.

 

이렇게 10월을 먼저 맞고 보니 올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자기 나이만큼 세월의 속도를 느낀다고 하니 나도 얼마 후면 경제속도를 넘어서는 시간을 맞을 것이다.

오늘 하루가 내 남은 삶의 가장 젊은 시간이니 아낌없이 누리고 나누고 후회없이 살 것이다.

10월 상 달! 하늘께 이렇게 잘 살고 있음을 감사하는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그런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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