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업무 방식 - 구글 애플 페이스북 어떻게 자유로운 업무 스타일로 운영하는가
아마노 마사하루 지음, 홍성민 옮김 / 이지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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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로벌시대에서는 태어난 모국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조금 답답할 수도 있겠다.

불황이 길어지지만 지난 설연휴에도 해외로 나간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고 하는 걸 보면 이제 지구촌이

하나의 나라이고 각각의 나라는 지방의 도시처럼 느껴질만큼 현대인들의 움직임은 커졌다.

백수니 백조니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이제 눈을 돌려 좀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나 직업을 찾아보면 어떨까. 세계 IT의 산실이라고 할 수있는 실리콘밸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넘볼 수없는 성역처럼 느껴지기도한다. 하지만 아주 의외의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자유롭게 신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나이지만 일찌감치 실리콘밸리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취득한 뒤, 실리콘밸리를 거점으로 한 회사를 설립한 사람이다.

그가 말하는 실리콘밸리의 매력은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이가 든 기존세대들 조차 도전해보고싶을 정도이다.

나 역시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넘볼수 없는 곳이라는 고정관념때문에 도전조차 해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작은 지구촌이라는 점이다.

인구의 35%가 미국 국적을 갖지 않은 외국인이라는 것은 그 만큼 다양한 인종들에게 문을 열려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컴퓨터회사는 물론 야후나 구글같은 글로벌회사들이 자리잡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위치 자체가 인재들이 모여들 수 밖에 없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연중 평균 온도가 일정하고 에어콘이나 난방이 거의 필요없다니 땅 그 자체만으로도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실리콘밸리는 고유의 지명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와 서니베일, 산호세같은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을 이렇게 부르게 되었는데 미국내에 있는 세계 제일의 '벤처 성지'의 고유명사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높은 벽처럼 느껴지는 실리콘밸리에 입성을 한 인물들을 보면 분명 남다른 개성과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다.

재활치료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여성이 우연히 듣게된 다른 분야의 강의에서 진정한 매력을 느끼고 학부를 바꿔 자신이 가야할 길을 발견했다든가 동료의 휴가로 빈 자리를 잠시 대신했다가 의외의 성과로 인정받아 매니저가 되었다는 사례는 언제든지 준비된 사람들에게 행운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실리콘밸리의 업무방식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우리사회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학연이나 스펙중심의 선택에서 벗어나 재능과 창조적인 사고를 지닌 인재를 제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을 쓴 저자도 동양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동양사회의 종적인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 인간관계를 이루는 실리콘밸리의 업무방식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소개된 실리콘밸리의 모습은 참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싶었다.

출퇴근시간도 자유롭게 정하고 일터가 아닌 놀이터같은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자유로운 분위기는 고정되고 경직된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방식이 아닐까.

머리좋고 성실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이런 실리콘밸리의 사고를 지향한다면 대한민국의 위력은 더 빛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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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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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에게 가장 상처를 줄 수 있는 대상은 누구일까? 책을 읽는내내 가슴이 아팠다.

자신과 피를 나눈 가족이 주는 상처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우리는 가족을 선택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뜻하고 안락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을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행복한 요소를 갖춘 그런 가정말이다.

근엄하지만 따뜻하고 능력있는 아버지와 아이를 사랑하고 보살펴주는 인자한 어머니가 있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해결해줄 경제적인 것들과 조금 더 바란다면 그 모든 것들을 같이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다정한 이웃들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이 될 것이다.

하지만 태어나고 보니 원하던 가정의 모습이 아니었다면...다시 되돌릴 수도 없는 삶을 어째야 할까.

 

 

 

자동차 보험사에서 능력있는 손해사정사로 인정받았던 앙투안은 단 한번 임산부가 벌인 교통사기를 조사하면서 그녀의 불쌍한 삶에 보상이라도 해주듯이 거짓 조사서를 올려 보상을 받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해고통지를 받는다. 그 시기 이미 아내인 나탈리와의 부부사이는 벌어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앙투안의 삶은 아래로 곤두박질하기 시작한다. 아니 벌써 추락은 시작되고 있었다.

화학을 전공하고 약국에 약사로 근무하던 앙투안의 아버지는 약사로서는 유능했지만 남편이나 아버지로서는 무능한 가장이었다. 어린나이에 어머니를 만나 잠깐 불같은 사랑을 했다고 믿었던 아버지는 그 뒤 타고난 재처럼 온기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긴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나에게 이런 결말은 예상이 되었지만 어린 앙투안은 부모의 건조한 결혼생활이 이해되지 못했다.

앙투안의 뒤를 이어 태어난 쌍동이 여동생 안과 안나는 너무도 아름다운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쌍둥이중에 안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자 간신히 가정의 형태를 유지하던 앙투안의 울타리는 무너져 내린다. 쌍둥이를 낳은 후 각방을 쓰던 부모에게는 사랑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었다.

어머니는 간단한 짐만을 챙겨 집을 떠났고 남겨진 가족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무도 고통스런 댓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잠시 아버지는 떠나버린 엄마의 자리도 채우려고 했지만 가장으로서의 능력마저도 부족했던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들이는 것으로 그자리를 채우고 만다.

여동생과 어머니의 갑작스런 부재로 충격에 빠진 앙투안과 안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만큼 고통에 빠지고 둘이 서로 의지하면서 고통을 견디게 된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되어버려 자식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것일까.

인기있는 약사로 여자들에게 인기있었던 아버지에게 소외감을 느껴서였을까.

굳이 앙투안의 엄마가 자식들마저 버린 채 집을 떠난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사실 집을 떠나서도 그녀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므로...몇 몇 남자들과 동거를 하기도 했지만 청소부로 근근히 살아가야 할만큼 어려움에 빠지면서도 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식어버린 남편과의 사랑은 그렇다쳐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의무는?

 

 

충격으로 언어장애를 가지게 된 안나와 앙투안은 슬픔에 젖은채 성장한다.

안나는 자신과 비슷한 운명을 가진 남자와 만나 이상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앙투안은 마치 부모의 운명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처럼 거의 같은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한때는 뜨거웠지만 사랑은 식어가고 아내인 나탈리는 바람을 피운다가 결국 그의 곁을 떠나버린다.

바로 그무렵 해고까지 당한 앙투안은 남겨진 아이들과 예전에 자신이 안나와 그랬던 것처럼 슬픔에 젖은 채 황량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왜 앙투안은 권총으로 자신의 딸을 쏴야만 했을까.

자신에게 닥친 절망을 극복하지 못해 아이들을 쏴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하려 했던 것일까.

하지만 딸 조세핀의 턱을 향해 총알을 발사한 후 정신을 차린 앙투안은 권총을 내려놓고 경찰에 투항한다.

심각한 정신장애로 판단되어 철창이 아닌 정신병원에 입원한 앙투안.

아이들은 엄마인 나탈리와 그의 연인이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보내진다.

 

이제 앙투안의 곁에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재로 대신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한 새어머니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 조차도 자신의 아이들을 총으로 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앙투안은 멀리 멕시코로 떠난다.

나탈리의 집으로 갔던 딸 조세핀은 엄마도 그의 연인도 사랑하지 않는다.

다만 아들인 레옹은 엄마의 남자의 보살핌을 받으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잘 누르며 살아간다.

 

 

 

왜 우리들은 곁에 있을 때 소중한 것을 알지 못할까.

자신에게 어른이 되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집밖에서만 맴돌던 아버지처럼 앙투안 역시 그의 아버지의 삶을 닮아간다.

그런 이기심때문에 외로웠던 앙투안이 좀 더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자신의 딸을 총으로 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슬픔이 배어있는 프랑스 특유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우울한 느낌이다. 어둔 하늘 아래 비가 내리는 장면같다고나 할까.

앙투안의 아버지역시 좀더 다정하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줬더라면...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는 물려받기 싫은 운명을 대물림하는 뿌리가 되어버렸다.

다만 총으로 찢겨진 상처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조세핀이 인간이 아니라고 여겼던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래도 가족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혹시라도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가족들이 있다면 이런 불행한 가족사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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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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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우선 이 책을 읽기전 따뜻한 담요와 간단하게 요기를 할 샌드위치와 커피를

준비해두도록 조언하고 싶다.

유럽의 겨울날씨는 우리나라보다 더욱 춥고 음산하다고 알고 있다. 하필 꽃샘추위가 기승인 요즘 이 소설의 무대는 12월의 추운 겨울인데다 난방도 되지 않는 지하실이다보니 읽는내내 추위가 느껴져 혼이났다.

서른 다섯 살의 매력적인 경찰 브누아 경감은 자신의 매력을 백분 이용하여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바람둥이 사내이다. 문제는 그가 아들 하나를 둔 유부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인 가엘을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동서양을 넘어 사내들의 속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인지. 결국 그 바람끼 때문에 브누아는 불행에 빠지고 만다.

 

 

출장에서 돌아오던 브누아는 고장난 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도와주기 위해 차에서 내린다. 여기까지는 경찰로서의 친절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차주인인 미모의 여자 리디아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의 집으로 간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녀가 건네준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은 브누아는 어두운 지하실 쇠창살안에서 눈을 뜬다.

리디아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끌어들여 지하실에 가둔 것을 알게된다. 하지만 왜 리디아는 브누아를 가둔 것일까.

일란성 쌍둥이 동생인 오델리아는 15년전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살해되었지만 시신을 발견되지 않았다.

오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을만큼 고통속에서 살아온 리디아는 범인에 대한 단서를 적은 편지를 받게 되고 범인으로 지목된 브누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그를 납치하여 가둔 것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바람끼 때문에 수많은 여자를 전전하기는 했지만 브누아는 누군가를 납치하여 살해한 기억은 없었다.

브누아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있는 리디아는 그가 범행을 자백하고 오델리아 묻혀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 고문을 하고 서서히 그를 죽이려 한다. 독자들은 분명 브누아가 범인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 그에게 범인의 누명을 씌웠고 리디아는 그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리디아의 확신으로 브누아는 점차 죽음으로 향하게 된다.

과연 브누아를 범인으로 몰아가게 한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정신병을 앓고 있는 그녀를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이 떠오르긴 한다. 하지만 그가 왜 브누아에게 칼을 겨눈 것일까.

 

작가는 곳곳에 부비트랩을 장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남편의 바람끼를 알고 있으면서도 부부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아내 가렐에게는 남편을 죽일 의도가 없었을까? 혹은 동료사이면서도 한때는 연인사이였던 자밀라 형사 역시 진짜 범인일 가능성은?

남편의 실종에 충격을 받았을 가렐의 의심스러운 행동은 아주 의도치 않았던 사건의 실마리가 된다.

동료이면서 상사인 경찰의 부정한 행동은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더러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 우리는 이런 포장된 인간들 사이에서 교묘함을 알지 못한 채 상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철창안에 갇힌 죄수만이 죄인이라는 증표가 될까? 우리곁에 같이 숨어 살고 있는 고도의 죄인들의 존재를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대부분의 추리물들은 범인이 밝혀지고 잡히든 죽음을 맞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결말은 생각지 않은 반전이 기다린다.

독자만이 범인을 알 뿐이다. 진짜 범인이 브누아가 갇혀있던 지하실에 남겨두었던 마지막 사인!

'넌 절대로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납치된 브누아도 그를 납치하여 고통에 빠지게 한 리디아도 진짜 범인은 끝내 모르게 된다.

브누아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이 왜 이런 불행에 빠지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소설은 막을 내린다.

'너는 모른다'라는 제목이 이 소설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독자들은 마지막에 가서야 공감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줄 수 있는지 브누아의 불행을 보면서 절감하게 된다.

과연 브누아가 겪은 고통은 적절했던 것일까? 그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과거의 어떤 행동이 분명 그를 불행으로 몰게 되었으니까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모르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은 결백하다고 믿었던 브누아에게는 부당한 일이다.

불행의 당사자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한 것과 끝내 자신이 왜 불행해졌는지 모른 채 결말을 맞은 것이 이 소설의 포인트가 아닌가싶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죽어가는 브누아의 삶을 보면서 바람둥이 남자들이 정신이 번쩍 나지 않을까.

혹시 남편이나 애인이 바람끼가 있다면 반드시 읽어보라고 챙겨줘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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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사는 거리 히라쓰카 여탐정 사건부 1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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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의 고전인 홈즈나 아르세르 뤼팡, 혹은 아가사크리스티를 연상하는 독자라면 이렇게 가벼운

추리물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마치 개나리나 진달래가 핀 봄의 정원을 거니는 느낌이 될 작품이다.

 

 

이미 표지에서도 그런 느낌이 팍팍 풍긴다.

남자를 연상케 하는 쇼트 헤어는 갈색, 혹은 금색에 가까워 보이고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느껴지는 엘자와 그녀의 여고동창인 미카의 활약이 치밀하다기 보다는 경쾌하게 전개된 작품들이다.

도쿄에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고향인 히라쓰카도 돌아와 울며 겨자먹기로 엘자의 조수가 되어버린 미카는 늘씬한 다리와 화끈한 성격의 엘자와는 다르게 예의가 바르고 이성적인 여성이다.

하지만 나이를 불문히고 반말은 예사인데다 목검을 휘두르는 엘자에게는 조신한 미카가 딱이다.

어느 날, 자신이 사귀고 있는 남자에게 다른 애인이 있는 것같다고 의뢰한 여자의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남자의 뒤를 쫓던 중 낯선 여자의 방문을 목격하게 되고 남자는 욕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이 작품의 트릭은 여장을 즐기는 남자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의 범인 바꿔치기 수법이 돋보인다.

 

일본에서는 탐정이 정식직종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주로 우리나라의 흥신소나 심부름센터에서 하는 일들을 담당하는데 엘자와 미카는 연인의 실종과 살인사건들을 수사하게된다.

실제로 살인사건이 난 것을 수사했다기 보다는 실종사건을 쫓다보니 살인사건과 맞닥뜨리게 되었고 경찰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식이다.

 

안에서 문이 잠긴 밀실살인 사건의 결말은 반전 그 자체이다. 점을 보러 온 고객에게 거울로 사기를 치는 무당의 이야기도 아주 신선하다.  물론 모든 사건해결의 키는 엘자가 쥐고 있다.

하지만 무대뽀 엘자의 좌충우돌 수사방식은 뭔가 조마조마하다. 그걸 조종해주는 역할이 바로 미카이다.

말하자면 셜록 흠즈와 왓슨의 모습같다고 할까.

젊은 여성들이 해결해 나가는 사건들은 살인같은 끔찍한 결말이 있어도 그리 어둡지 않다.

 

정신없는 축제현장에서 의뢰받은 사건 관계자인 여자를 뒤쫓는 장면은 은근 스릴도 있다.

분명 그녀들이 쫓는 여자를 놓치지 않았건만 그 시간 인근에서는 그 여자가 범인인 듯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유능한 엘자와 미카 콤비가 놓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도의 범죄물이라기 보다는 가벼운 두뇌회전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작품이라 그런지 쉽게 읽힌다.

아마 연재편이 또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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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 있게 나이 들고 싶다
한혜경 지음 / 샘터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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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시간이 아닌가싶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다 가진

권력자에게도 공평한 시간! 결국 우리들의 삶은 죽음을 향하게 되어있다. 역시 공평하게.

100세 시대라는 말이 먼 이웃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내 얘기라는 것이 실감나는 나이가 되고 보니 과연 나는 품위있게 늙어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한국의 베이비붐세대에 태어나 참으로 열심히 살아온 세대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베이비붐세대는 한 때 경제를 이끄는 축이었지만 이제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노년세대의 중심축이 되어가고 있다. 어찌보면 서글픈 현실이다.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부지런하게 일해 자식들에게 잘사는 환경을 마련해주기위해 소처럼 일했던 세대였는데 이제 서서히 지는 해처럼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니 그 것만으로도 서글픈데 문제는 노후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느냐하는 것이다.


 


좀 더 못살았던 부모님처럼 우리들도 자식들에게 헌신했다. 하지만 아직은 부모에 대해 '효'라는 개념이 다소나마 남아 있어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은 남아있는 세대였다. 부모님들도 당연히 자식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나마도 하지 못하고 짐승처럼 부모를 대하는 인간들도 없진 않지만 형편만 괜찮다면 당연히 부모님을 돌봐드리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들은 과연 자식들에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까?

모임에서 만난 친구들은 한결같이 자식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가슴 시리다.

한마디로 우리 베이비붐세대는 과거와 미래에 끼인 세대로서 부모를 돌봐드리여하고 자식에게는 헌신해야 하는 세대인 것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노후를 위해 따로 떼어놓은 재산은 물론 감정까지도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저출산국가로 돌아선 지금 우리는 후손들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우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에서 자신을 '돈 버는 기계'처럼 이용만 하다가 버린다는 분노감을 품은 사람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나이들어 할만한 일자리도 잃게 되고 여유있게 쓸 생활비도 없다면 아직도 많이 남은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자식들은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살만해졌다고 해도 부모를 제대로 돌보겠다는 의식은 별로 없다.

물론 기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몸마저 제대로 가눌 수없는 시간이 온다면 과연 누가 우리들을 돌볼 것인가.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얼마전 드라마에서 자식들에게 그동안 키우기 위해 들어갔던 돈을 반환하라는 '효도소송'이 이제 드라마속 이야기만이 아닌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힘들게 사는 법을 모르는 자식들에게 늘 퍼주기만 했던 부모들은 이제 '효도계약서'를 받아야만 하는 현실이 도래했다. 절대 웃을 수없는 이야기이다.


아직 의식이 있고 다소나마 돈도 가지고 있다면 서둘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당당하게 노년을 즐기기 위한 대책이 바로 이 책에 나와있다.

법률적인 조언을 들을 곳이나 건강한 삶을 위한 상담처에 대한 정보도 꼼꼼하게 안내되어 있어 든든하다.

우울증에 걸려 남은 시간들을 헛되이 쓰지말고 '품위있게' 나이들어가는 법에 대한 조언들이 너무 감사하게 다가온다.

'당신도 결국에는 늙는다'라며 노인체험을 해보는 장면은 가슴아프지만 이렇게라도 미래를 대비하고 젊은이들을 이해 시켜야한다.

100세시대를 맞아 버려야 할 것들과 무장되어야 할 전략들을 실감나게 조언하는 이 책을 친구들에게도 권해야겠다.

같이 행복한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  나도 8십이 되는 내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어차피 그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첫걸음을 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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