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 자유로운 예술 정신으로 삶 바라보기 아우름 19
한상연 지음 / 샘터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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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인간의 수명은 한계가 있지만 예술의 흔적들은

얼마든지 무한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과거의 시간들을 예술로 만나기도 한다.

그렇기에 에술은 힘은 위대하다. 하지만 '예술'이라 함은 왠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먼 이웃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우리 모두 예술가라고 말한다.


 


예술이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거창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아주 소박한 예술품들도 많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거창한 것들보다 주변에서 만나는 소박한 작품에 더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모두 예술가라니.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린다거나 진흙이나 수수깡으로 작품을 만들때도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보면 예술가의 능력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닐까.


 


범인의 눈으로 어찌 보석같은 작품들을 이해하겠냐만 때로 아주 우스깡 스런 작품이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에 의아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남긴 작가들은 모든 힘을 기울여 최선을 다해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치가 없고 의미없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예술을 어떤 잣대로 저울질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특히 이런 폐단은 문학분야가

더 심하다고 하는데 그 말에 200% 공감한다. 뭔가 이름붙여진 제도가 많아질수록 자유로움은 구속된다.

진정한 예술, 혹은 문학이 탄생되려면 기존의 권위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에 동감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그동안 만나온 모든 것들 중에 영원할 것들은 많지 않다. 어쩌면 이런 유한함과 한계점 때문에

인간들은 예술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죽어도 인류가 없어져도 뭔가 남아있어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거.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 그러니까 신과 가까운 존재나 영원불변의 존재에 대한 동경이 예술로

승화되지 않았을까.


 


'예술은 자신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려는 소망과 의지의 표현'이라는 저자의 말이 감동스럽다.

'존재하기 놀이'라는 표현이 참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런 '존재하기 놀이'를 하는 사람은 인간과 세상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사람들일까.

결국 이런 예술과 예술가들이 넘치면 세상은 진정한 평화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예술가'라는 제목이 큰 숙제처럼 다가온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한

만남이 되고 예술로 승화되는 세상이 오면 신이 인간에게 원하는 그런 낙원같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예술은 어렵고 남의 일이라는 생각은 접고 나도 예술가다운 눈을 기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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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하니 - 옛글 57편이 일깨우는 반성의 힘 아우름 18
김영봉 지음 / 샘터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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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선인들의 이야기에는 지혜가 담겨있다. 우리가 지금도 고전을 찾는 이유이다.

흔히 고전은 지루하고 고루하고 뻔한 가르침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동서고금의 인간에게는 불변하는 가르침이 분명 있기 마련이다.

5년에 걸쳐 샘터에 연재했던 이야기를 추려 내면서 현재 시점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대폭 수정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유효함을 알고 놀랐다는 것이 바로 이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분명 현대는 모든 것이 넘친다. 먹을 것도 들을 것도 과거 가난했던 시대와는 다르게 풍요로움이 넘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좀더 공허하고 몸이 편해진 만큼 정신적으로 고단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나마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들은 공허의 이유를 찾고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기도 한다.

왜 우리는 풍요속의 빈곤을 느끼며 살아가야 하는가.

한때는 가난을 이기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오로지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일했고 그만큼 풍요로움을

얻었지만 매주 토요일 광화문으로 달려가야 하는 사람들은 극심한 허기와 박탈감에 시달린다.

오랜 불황으로 살기에 힘들어진 현실도 한몫 했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지금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한끼 밥을 먹으면서 행복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의 말처럼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조금 배가 고프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난세를 타파할 영웅은 보이지 않는다.

정말 똑똑한 사람들은 넘치는데 그만큼 독선과 아집 또한 넘친다. 그 알량한 자부심을 버리고 배려하는 영웅은 정녕 없는 것인가.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넘치는데 머리에 가득한 지식만큼 지혜는 오히려 빈곤하니 지금 우리의 교육시스템은 분명 잘못되었다. 오로지 대학만은 위한 교육이라니...그렇게 대학을 위한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은 어디를 걷고 있을까. 이는 분명 윗사람들의 잘못이다. 획일된 교육시스템에 아이들을 억지로 밀어넣은 어른들 말이다.

'시험선수'가 아닌 진정한 교육은 이제 기대할 수 없다.

이렇게 지혜를 전하는 책이라도 읽어주면 좋으련만 어디를 가나 스마트폰에만 열중할 뿐이다.

혁신을 위한 가장 첫걸음은 반성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비우지 않고 어찌 채우기를 바라겠는가. 누구나 후회의 시간은 있다. 그 후회의 시간들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공허의 삶을 살것이고 후세에 지혜의 주머니를 전하기는 커녕 빈 껍데기의 '나태'와 '허무'를 물려줄 뿐이다.

아우름의 책들은 결코 무겁지 않다.  가벼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부피의 책속에는

세상을 바꾸고 나를 바꾸고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지침이 들어있다.

서당의 훈장이 하는 말쯤으로 여기지 말고 귀를 기울여야 하고 가슴을 열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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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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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이해하는데 책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결국 누군가의 기록으로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아예 역사책이란 이름으로 기록된 책들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 시대를 대변하는 책들에게 더 리얼한 시대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인간들은 아주 묘한 동물인지라 '하라'는 말보다 '하지말라'는 말에 더 호기심을 느끼고 달려들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역시 그런점에서 '읽어보라'는 책보다는 '절대 읽지 마라'는 책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유독 그 당시에 '금서'라고 지정되었던 책들에는 오히려 시대상이 더 많이 반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서'라는 주홍글씨를 붙힌 책들은 당시에 권력을 휘두르던 계급들의 두려움과 시기심들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중세에는 종교가들이 그러했고 뒤를 이어 계급의 꼭대기층에 있는 권력자들이 그러했다.

자신들의 치부를 마구 써내려갔던 작가들을 죽이거나 탄압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물론 그들의 책들은 '금서'라는 멍에를 안고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역설적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겅우가 더 많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열쇠가 바로 '금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떼문이다.


 

 

'악마의 시'를 써서 이슬람의 원흉이라 낙인찍혔던 루슈디 역시 도망자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이란은 그에게 현상금을 붙여 수배를 내렸고 루슈디는 숨어살면서 두번이나 이혼을 당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악마의 시'를 쓴 것에 대해 후회는 없었을까.

대부분의 '금서'를 지은 작가들은 자신들이 이런 운명에 처해질 것을 알았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운명같은 열정을 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런 용기와 열정 덕분에 우리는 '금서'의 비밀을 열고 그 시대의 실랄한 모습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흥행을 위해 세상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러운 권력자들에 의해 단죄를 당했던 '금서'들은 지하에서 혹은 세월이 흘러 더 빛나는 평가를 받았다.

'금서'들 중 유독 셩(性)에 관한 책들이 많았던 이유는 인간의 본성에 근접한 표현들이 외설스럽다는 이유말고도 당시 은밀하지만 은밀할 수 없었던 타락한 사회상을 기록한다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웠던 이유가 더했을 것이다.

'금서'로 낙인 찍은 인물들이 그 책의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바리 부인','체털리 부인의 연인', '위런 부인의 직업', '악의 꽃' 같은 작품들은 당시의 사회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신사복으로 위장된 타락한 모습속에 리얼한 도덕성을 후대에 남긴다는 것은 치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주홍글씨'를 새겨 매장시키는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독특한 비문으로 더 유명한 버나드 쇼 역시 '워런 부인의 직업'을 통해 추악한 현실을 고발했다.

단순히 자극적인 섹스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이미 타락하고 길들여진 관능에 굴복한 인간의 모습에서 개혁의 의지를 일으켜보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이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의 진심이 아닐까.


그나마 현대에는 이런 억압없이 수많은 작품들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억압당하는 수많은 작가들과 빛을 보지 못하는 작품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시대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무지와 몽매는 색만 달리할 뿐 내림처럼 유전되는 현실이 가슴아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서'의 봉인을 해제하고 읽어내야 한다.  감추고 싶었던 인간의 역사를 똑바로 쳐다봐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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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 소중한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당신
히라이 쇼슈 지음, 예유진 옮김 / 샘터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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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많은 세상이다. 밖으로 보면 너무나 오랫동안 불황이 계속되고 있고 요상한 대통령들때문에

나라마다 시름이 깊다. 밖이 이모양이니 안의 모양도 편하지 못하다.

경제는 기우뚱거리고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알바로 버티고 있다.

참 희망이 보이지 않는 요즘같은 시국에 누군가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라며 어깨를 토닥여

준다면 코끝이 찡할 것만 같다.

일본의 불교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듯 하지만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같아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사찰의 주지 스님이시다. 늘 마음속으로만 흠모하는 불교의 단점이라면

너무 산속에서만 묻혀 근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나 이렇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법으로 다가온다면 가까이 하고픈 종교가 되지 않을까.


 


새해가 되다보니 지리멸멸했던 일상도 쇄신해보고 싶고 더덕더덕 붙은 살이며 잡다한 번뇌까지 털어내고 싶었다.

그런 기대로 펼쳐든 책속에는 그동안 어렵다고 여겼던 문제들을 너무도 가뿐하게 털어내는 비법이 숨어있다.

지금 바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그 소중한 것들을 담으려면 결국 비우는 것이 먼저라는 말들이 다감하다. 그리고 도를 닦는 고승의 고언이니 더 와닿았는 말은 '감정을 숨기지 말고 표현하라'는 것이었다.

대체로 종교적인 조언들은 '참으라'였던것 같은데 이렇게 감정을 마구 쏟아내도 좋다는 뜻인지.

'원망과 하나되면 용서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미움과 하나가 되면 사랑의 아름다움에 더 깊숙이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 그렇게 편안하게 다가온다. 내 마음에 들끓는 원망고 증오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니 분출하면서 정화시키라는 말 같았다.


 


그동안 나를 스쳐갔던 무수한 인연들은 모두 내게 소중한 존재였을까.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면 결코 가벼운 인연은 없었을텐데. 나는 그 모두를 기억하지 못한다.

태어날 인연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어 혹독한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내 선택이 아니었으니 혹독한 삶도 내 탓이 아니라고 주저앉을 것인가. 그런 인연을 바꾸려면 만남을 소중히 하라는 것은 나역시 상대에게 혹은 내 운명에게 소중하게 다가가라는 뜻이 아닐까.


 


아무리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절반의 시간을 넘고 보니 늙어가는 일이 참 두렵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필연이라면 단념하고 쇠락해가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잃어가는 것 만큼 쌓아가는 경험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면 늙어가는 시간들이 조금쯤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아침에 꾸물거리지 말고 일어나라거나 현관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먼저 인사를 나눠보라는 등의 이야기는 참소소한 듯 보이지만 하루를 여는 마음연습같은 공부가 될 것 같다.

너무 힘들때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보라는 조언도 힘이 된다.

주지 스님의 따뜻한 말이 늙어가는 여인에게 다가오니 이토록 편안해질 수가 없다.

누구든 생각이 많고 힘이 든다면 가볍게 펼쳐보시길...책을 덮을 때 쯤이면 마음도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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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7.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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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으면 온통 정신이 없다. 1월이 그런 달이었다면 2월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신발끈을 조이는 달이라고 생각한다.

이 달의 표지는 참 흥미롭다. 요즘은 보기 드문 저울로 복주머니를 달아맨 사진은 과연

올해 우리가 받을 복은 얼마나 될지를 가늠해보는 것 같다.

복이랄 것도 없지만 제발 이 뒤숭숭한 세상이 좀 진정되고 먹고 사는 일이라도 편해졌으면 싶다.


 


아랫방에 불을 뜨끈하게 때고 엎드려 샘터를 읽는 재미는 정말 좋았다. 곁에 군고구마라도 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특집 '이 노래 들으면 추억이 생각나요'를 보니 얼추 40여년 전 졸업식을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들리던 진추하의 '졸업의 눈물'이 떠올랐다. 그 날 나는 베프들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지금은 하늘을 찌를듯한 빌딩으로 이국적인 풍경이 되어버린 해운대는 당시 참 조신한 색시같은 모습이었다.

인어상의 가슴을 보면서 쿡쿡거리던 친구들중 한 명은 수녀님이 되고 한 명은 교수가 되었다.

뭐 나는 섬각시가 되었고.


 


TV에서도 체조가 나온다거나 스트레칭운동이 나와도 시큰둥했던 내가 5분 스트레칭을 보는 순간 눈이 확 떠졌다.

몇 년전 왼쪽 손가락에 마비가 와서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팔꿈치 신경이 눌렸었다고 했는데 그 이후 마비된 손가락은 살아났는데 가끔 통증이 와서 걱정스러웠던 참이었다. 정말 이 정도의 스트레칭만 해도 좋아질 수 있을까.

너무 간단해서 눈에 쏙 들어왔다. 열심히 해서 이 불편함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봐야 겠다.


 

 


서울 중림동의 약현성당은 수녀가 된 친구의 남동생이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내가 알기로 조선시대 이 근처에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살았다는 설도 있고 '약현'이라는 지명이 근처에 약초를 재배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은 몰랐었다.

이국적이면서도 단아한 저 건물이 바라봤던 시간들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오래묵었다는 것은 오래 지켜봐왔다는 뜻이기도 하니 나보다 더 오래 이 세상에 남을 성당의 모습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우리집에도 진돗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동물이라면 질색이었던 내가 이 녀석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동이 참 많다.

입이 까다로와서 가끔 구박을 하지만 외따로 놓인 집을 지키고 외로움을 덜어주는 녀석의 힘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람보다 동물이 더 진실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다. 동물원 조련사인 저자가 낙타를 키우면서 느낀 이야기는 참 사람보다 낫구나...하는 감동을 준다. 다른 페이지에 있던 길냥이에 대한 이야기또한 우리가 동물들과 어떻게 공생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야기꾼 성석제의 이번 이야기는 국산인 듯 국산아닌 깨에 대한 이야기지만 절에 모여든 과객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골 깨밭에 가서 깨를 사도 중국산을 섞어 판다는 순수하지 못한 할마시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순진한 촌부의 얼굴을 한 '할매장사'를 조심해야겠다 싶다.

"가짜는 아니지 먹을만은 할 거야. 두고두고 배는 아프겠지. 좀 비싸게 줬으니."했던 작가는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하다.


노숙자에서 서울역 파수꾼이 된 이도림씨의 이야기며, 나도 좋아하는 갈치를 찜으로 요리한 할머니의 부엌수업.

아들에게 음성편지를 보낸 아버지의 사연이 담긴 '이등병의 편지'도 좋다.

오늘도 광화문네거리에서 시위현장을 지키는 아들녀석에게 음성편지를 아니더라도 손편지 한 장 보내야겠다.  창밖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보고 있으니 춘삼월 샘터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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