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역사가 되다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의 정의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의미로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없다.

사랑이 역사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운명적이었다거나 비극적인 경우일 것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비극적인 사랑을 더 많이 기억한다.

다만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사랑이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에 충실하게 살다가 갔을 뿐이라고.

 


 

아름다운 시를 썼던 엘리자베스 베넷 브라우닝의 삶은 사랑을 만나기 전까지 너무

불행했었다. 여성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시대였고 그녀는 병약했으며 시한부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그녀의 시를 보고 열렬팬이 된 로버트의 사랑은 헌신 그 자체였다.

수없이 오간 두 사람의 편지는 사랑을 더 열정적으로 키웠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에게 행복한 가정을 꾸며줄 수 없었기에.

하지만 결국 부부가 되었고 기적같이 아들도 태어났다. 사랑이라는 묘약은 그녀의

삶을 연장시켰고 하늘로 돌아가는 날까지 '행복'을 선사했다.

 


 

영국을 한 때 '빅토리아시대'라고 불리게 만든 빅토리아 여왕의 사랑도 그러했다.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번영했던 나라의 여왕이었고 평생 자신의 소신을 굽히는

법을 알지 못했던 여왕의 뒤에는 앨버트가 있었다.

여왕의 남자가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치 근위병처럼, 비서처럼, 집사와 같이 여왕을 보필하면서 빅토리아와의 사이에 낳은

9명의 아이까지 키워야 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빛나는 시간뒤에는 앨버트란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앨버트와 빅토리아는 사촌간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진심이었던 것같다.

앞에도 말했지만 완벽한 사랑이란 어쩌면 '헌신'이나 '배려'같은 것들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기의 사랑이라 불리는 에드워드8세와 심프슨부인과의 스토리도 그렇다.

심지어 남자라면 절대 포기하지 못할 '왕위'까지 내려놓으며 선택한 사랑의 크기를

어떤 저울로 잴 수 있을까.

바람둥이 였지만 미혼인 왕세자. 한 번 이혼했고 유부녀였던 윌리스 심프슨.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 사랑에는 혹시 왕이 될지도 모를 남자를 유혹하여

왕비가 되고 싶었던 여자의 욕망이 섞여있지는 않을까.

누가 알겠는가. 에드워드8세는 잘생기고 패셔너블한 남자였고 심프슨은 그런 남자가

왕위를 포기하고 싶을만큼의 미모도 가지지 못했는데 말이다.

 


 

아나키스트였던 박열을 사랑했던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

영화로도 만들어져 알고 있던 얘기지만 그녀가 스무 살에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는 몰랐다. 사형을 언도받았던 박열이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그 뒤 석방되어

다른 여자와 결혼도 했단다.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부모는 어린 그녀를 외롭게 했고

그렇게 자라서 만난 첫 남자 박열은 그녀의 모든 세상이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감옥에 떨어져 있었지만 어쩌면 좋은 세상이 찾아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을텐데. 마치 평생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버지니아 울프처럼

어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끝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삶은 역사로 남았다.

병약한 몸을 가지기도 했고 평생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치열했고 아름다웠다. 그래서 역사로 남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랑이라고 여겼던 지난 시간의 감정들은 너무 소소해보인다.

소설같은 이들의 사랑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쿤룬 삼부곡 1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

스녠은 아름다운 청년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보육원에서 감금된 채 원장의 노리개가 되어 자라다가

도망쳐 나온 소년. 그가 스녠이다. 스녠이란 이름은 '10년'이란 뜻이다.

 


 

스녠의 어린시절 처음 그를 보고 그를 돌보고 스스로 도망치도록 도운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도망쳐 스녠은 살인마를 청소하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에는 이상한 또라이들이 넘친다. 잔혹한 살인마 '잭 더 리퍼'를 추종하는 '잭'의

일원들은 가슴에 'J'를 새긴채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납치해서 죽인다.

 


 

스녠에게는 어린시절 원장에게 학대당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희미하게 남은 또 다른 기억.

처음 도망쳐 나왔다가 자신을 도와준 '누나'가 죽어가는 장면.

스녠에게 살인자들의 정보를 물어다주는 다비도프, 그가 소개해준 닥터 야오는

권력과 미모를 지닌 심리상담사다. 스녠은 그녀의 도움으로 최면을 통해 잃었던 기억을

떠올리는데...그 기억속에 죽어가는 '누나'가 등장하고 자신이 '누나'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비도프가 건넨 정보속 살인마를 청소하면서 스녠은 자신의 가슴에 새겨진 'J'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된다. 자신도 '잭'의 일원이었을까.

하지만 스녠의 기억을 조작하고 살인마 청소부로 만든 인물이 밝혀진다.

 


 

가끔 만약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연쇄살인마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면 나는 어떤

복수를 할까 생각해본다.

법에 의해 내려지는 최고형은 '사형'이지만 실제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법보다는 내가 칼을 쥐고 처단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살인자를 가두고 밥을 주면서 세월을 허비하도록 하는 것은 적당한 처단이 아니다.

그래서 스녠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살인장면과 또 그 살인마를 처단하는 장면은 너무 끔찍하다.

인육을 먹는 장면도 등장한다.

눈이 저절로 찌뿌려질 정도의 장면들은 읽어나가기 힘들었다.

결벽증이 있는 스녠의 청소장면은 인상깊다.

그가 세류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정의리고 생각하는 살인마 청소작업은 정말

정의일까.

 

스녠에게 돌을 던질 수있는 사람이 있을까. 살인을 살인으로 되갚는 방식은?

뭔가 시원하면서도 가슴 한켠이 묵직해지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편의 이야기, 일곱 번의 안부
한사람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이름부터가 꽤 인상적이다. 본명일까. 누가 지었는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 지금 세태를 리얼하게 그리는 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첫 번째 작품 '안락사회'는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 가슴아픈 현실들이 담겨있었다. 버려진 개들이 모이는 보호시설에서 안타깝게

주인을 기다리거나 10일 지나도 누군가 찾아주지 않으면 안락사 당해야 하는 개들의

모습에서 절박함이 느껴진다. 무대는 보호시설안에 있는 개들의 공간이지만 인간사회의

우등과 열들의 구별,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인간세상을 대입해놓았다.

그리고 죽어가는 개처럼 죽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말로. 정말 비참한 모습이다.

 


 

과거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걸 써야했다.

한 장씩 나누어진 종이를 집으로 가져와 써가기도 하고 선생님이 '집에 TV 있는 사람?'

하는 식으로 조사를 할 때도 있었다.

얼마 전 읽었던 함민복의 책에서도 이 장면이 등장한다. 도무지 손 들일이 없어 민망하던

순간 "부모님 모두 함께 사는 사람" 해서 반갑게 손을 들려다가 "아니 너무 많겠다. 그럼

부모님중 한 분 하고만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마저 손 들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에

도대체 그 시절 왜 그 조사가 필요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당시 경제를 이끌겠다고 외쳤던 '경제개발5개년계획'수립에 그 조사가 필요했던 것일까.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없던 '집구석'에 유일하게 신용불량자가 아닌 여교사의 일상은

대한민국 평범한, 아니 평범하지 못한 역사가 그려져있다.

 


 

인천 변두리 동네에서 태어나 자란 청년이 이른 바 강남입성을 위해 위태로운 삶을 사는

모습을 그린 '아름다운도시'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헌팅을 위해 스포츠카가 필요하고 원나잇스탠드를 즐기고 '강남'에 주소를 두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삶. 이들의 삶에 돌을 던져야할까.

그런 허세스런 삶을 살기위해 사채까지 쓰고 결국 한방으로 만회하기 위해 카지노를 전전하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보면서 그 위태로움이 지금 젊은이들이 서있는 현실이어서 뜨끔해진다.

 


 

일곱 편의 이야기에 일곱 번의 안부라고 붙인 이유는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에

보내는 작가의 토닥거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소명이라는게 그런게 아닐까. 누군가의 삶을 진득하게 바라보고 토닥거려주는.

그런 면에서 지금을 사는 현대인들의 삶이 잘 드러나는 소설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픔에서 더 배우고 성장한다 - 스트레스를 스트렝스로 바꾸는 방법 아우름 47
이서원 지음 / 샘터사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사는 곳은 해풍쑥이 유명하다.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쑥이 다 비슷할 것 같지만

해풍을 맞고 자란 쑥은 향기가 더 짙고 약효도 좋단다.

쑥뿐이겠는가. 야생에서 거칠게 자란 풀들이 더 건강하고 푸른 초원에 놓아 먹인

가축들이 병에도 강하다.

사람도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도 그랬던 것 같다.

 


 

내 또래들의 부모들은 대체로 가난했고-나라가 가난했으므로-결핍이 많았다.

한 해 두번 돌아오는 명절이나 되어야 새옷 한 벌 얻어입고 줄줄이 있는 형제들 덕에

학교에 내야 하는 등록금이며 육성회비 같은 것은 늘 밀리곤 했다.

누군가는 가난이 불편하긴 해도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당시에는 몹시 힘들었다.

덕분에 굳은 살은 좀 박혀서 웬만한 어려운 일들은 잘 헤쳐나가는 면역력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부작용도 있다. 내가 이렇게 어렵게 살았으니 자식들만큼은 그렇게 키우지

않겠다는 각오로 좋은 것만 먹이고 입히고 희생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지금은 여린 아이들을

만든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내 손톱밑에 박힌 조그만 가시가 남들은 별거 아니라고 해도 나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될 수도 있다. 그깟일에 뭐 그러냐고 힐책하기 전에 상대가 되어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왕 겪을 일들 마음을 고쳐먹으면 덜 아프지 않을까.

 


 

요즘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면 꼰대라고 무시한다.

그 때는 그 때고 사고의 방법도 트렌드를 따라야 한다. 공감해주고 토닥거려주고 그러면서

세상 사는 일을 조근조근 가르쳐주면 되지 않을까. 물론 힘들다. 이 책에 그 해답이 있다.

도대체 이렇게 살 수는 있는 것인지 다혈질인 나도 좀 어려운 숙제이긴 하다.

그래도 무한정 긍정의 힘을 끌어내다 보면 어느새 그 때 그랬나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안다.

 


 

어려서는 왜 가난한 부모밑에 태어났는지, 심지어 시대를 잘못 만난것은 아닌지도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이렇게 어려운 사태중에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반도 끄트머리에 있는 대한민국이란나라-조선시대가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에서 태어난 것이 감사하고 창궐하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그나마 이렇게 잘 대응하고 있는 것도 감사하고 가난한 조국을 물려주지 않도록 번영시킨 이 나라 이 시대가 감사할 뿐이다.

 

대체로 딱딱한 껍질을 가진 갑각류들은 참 맛이 좋다.

저자는 서문에 바닷가재의 탈피를 예로 들면서 아픔에서 더 성장하는 것을 비유했다.

인간이야 고작 성장통 정도이지만 바닷가재의 탈피는 그야말로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그리고 낡은 껍질을 벗겨내야 한 뼘 성장하는 그런 삶을 사는 가재에게도 배울 것이 이렇게

많음을 알게된다.

 

'스트레스를 스트렝스로 바꾸는 방법'이 이 책에 가득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밥벌이의 이로움 - 일어나자, 출근하자, 웃으면서
조훈희 지음 / 프롬북스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님밑에서 공부하고 밥도 먹었으면 스스로 밥을 벌어야 하는 때가 온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을 냈는데 사실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벌어 먹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은 참 고단하다. 하지만 먹어야 살테니 싫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최근 몇 년 사이 경기가 좋지 않아 고용시장은 냉담하기만 하고 기껏 대학을 나와도 백수가

넘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어디라도 적을 두고 출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지만 의외로 퇴직율이 높다고 한다. 왜일까. 일단 적성이 맞지 않아서일 것이다.

우리 세대는 적성이고 뭐가 따질 겨를도 없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하기 싫은 일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모토가 있는 모양이다. 이직율도 높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밥벌이를 할 것인가.

 


 

과거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사표하나 품속에 지니고 다녔다. 실제 종이 사표도 있겠지만 마음의 사표.

언제든 던져버리리라 마치 마지막 수류탄을 던지겠다는 각오로 살았던 적이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가족들 생계가 아른거려 울며 겨자먹기로 불합리한 상사에게 굽실거리며 살아온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도대체 요즘 젊은이들에게 닥친 어려운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목차를 들여다본다.

'누군가 나를 욕할 때의 대처법', ''하찮은 업무만 자꾸 시켜서 자존감이 무너진다면'

어째 세월이 흘러도 사표 쓰고 싶은 이유가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실제 저자는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S그룹에 입사했다가 워라벨이 좋고 연봉을 올려준다는

해드헌터의 달콤함에 속아 이직을 했다고 한다. 이런. 그런 회사가 존재하기는 하는가.

드물게 있기는 할 것이다. 이직은 신중해야 하는데.

결국 몇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안착했다고 하는데 이 회사에서 퇴직할 거란

예감은 들지 않는다.

 

엊그제 딸내미가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에 소주한잔 한다는 톡이 왔다.

가슴이 덜컥 혹시 무슨일이 있나 싶어 물었더니 노처녀 상사가 히스테리를 부렸던 모양이다.

그렇다. 세계적 대기업이긴 하나 수전노 창업자의 경영방식으로 월급은 적고 일은 많다.

얼핏 우리나라기업처럼 앞에 직급을 붙여 존경의 마음을 담지 않고 영어명같은 걸로

통일해서 부른다는데 그렇다고 계급이 없는 건 또 아니다.

듣기론 구글이나 애플같은 회사는 회사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유스럽고 연봉도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아마 그곳에서도 또라이같은 상사나 동료가 왜 없겠는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자영업 하지 않고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회사라도 다녀주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자꾸 치이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안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나와 또 다른 직장을 구한다고 해도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더 행복해질 것 같지는 않다.

저자의 말처럼 어차피 다닐 회사라면 웃으면서 다녀볼까? 하는 마음이 최고다.

책을 읽으면서 얼른 딸아이에게 건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혹시 이 책을 읽고 마음을 다독거려 가슴속에 품었던 사표를 찢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