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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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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따뜻한 온기와 가장 닮은 책이 있다면 분명 김려령작가가

쓴 책일 것이다. 분명 나보다 세상을 살아온 시간도 적었을테고 그 고운 얼굴에 어떤 슬픔도

느껴지지 않건만 왜 그녀는 빛의 반대편에 서있는 어둠속의 슬픔을 그토록 잘 헤아리는 것일까.

뜨거운 연애이야기도 아니고 파란만장의 대하소설도 아니건만 그녀의 글에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과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어느 날, 아리랑 아파트 후문 앞 건널목도 없는 길에 한 남자가 노란 안전모 앞뒤에 빨간 동그라미와

초록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괴상한 모자를 쓰고 교통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검은색 천에 흰색 페인트로 칠을 한 카펫을 길에 깔아 재밌는 건널목을 만들어 학교에 오가는

아이들이 무사히 길을 건널 수 있게 해주는 남자에게  아리랑아파트 사람들은 쓰지않는 경비실

하나를 내어준다. 

 

'참 이상하지? 근사하게 생긴 사람도 아닌데, 가진 게 많아서 듬뿍듬뿍 퍼 주는 사람도 아닌데,

사람들은 건널목 씨를 좋아했어.(중략)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야. 가만히 있어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중략)그런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참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 -78p

 

건널목 씨라고 불리는 남자와 엄마 아빠의 싸움때문에 번번히 도망을 다녀야하는 도희와 도망간

엄마와 병으로 죽은 아빠때문에 지하셋방에 버려진 태석,태희 남매의 아름다운 만남이 시작된다.

 

고물을 주워 두 남매의 방세를 내주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건널목 씨와 도망다니다가 건널목 씨의

경비실에 찾아들어온 도희는 자연스럽게 가족이 된다. 건널목 씨의 에너지는 상처뿐인 아이들을

치유하고 희망을 키워가는 싹을 키워주었다.

 

정말 자신들이 받은 상처만큼 남에게 베풀면서 그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있었구나.

난 이 소설이 허구가 아니길 간절히 빌었다. '문밖동네'라는 엄청 큰 출판사에서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라는

동화로 백만 명 중에 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 명이 모르는 상을 받은 '오명랑'이란 애송이 작가가

분명 있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절대 허구로 남아서는 안된다. '오명랑'이 실제 하므로. 아리랑아파트가

있는 어느 동네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널목 씨를 찾을 수 있을테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혹시 검은색 카펫에 흰색 페인트로 건널목을 그려 돌돌 말아 가지고

다니는 아저씨를 보면 꼭 알려주시길..부탁한다. 꼭.

 

결코 무겁지 않고 탱글탱글 발랄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큭큭 거리는 웃음이 나온다.

박장대소보다는 개구장이같은 킬킬거림. 그리고 살아온 세월 동안 물기는 날아가고 진액만 남아 버린,

한 때 남매를 버리고 떠났다가 돌아와 이제는 늙어버린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처럼 농이 짙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울어 버렸어야 할 때를 놓쳐 아직 눈물이 몸안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눈물을 아낌없이 덜어내도록

작가는 단단히 맘을 먹은 모양이다.  그리고 비어 버린 곳에는 따뜻한 감동이 차오른다. 진작 이랬어야 했다.

 

나도 어딘가에 있을 건널목 아저씨에게 꼭 하고 싶은 말.

고맙습니다. 당신이 그립습니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셔서.

 

작가에게 하고 싶은 말.

여전히 몸안에 남아있던 눈물을 아낌없이 덜어내게 해주어 정화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어서.

아직 세상에는 건널목 씨같은 희망이 있어 살만 하다는 걸 잊을만 하면 한번 씩 깨닫게 해주어서.

그래서 고맙습니다. 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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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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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시 이재익이란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나오는 책마다 완전히 다른 소재이면서도 그의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전해져 온다.

이 책을 읽기전 그를 만나 물었었다.

"대한민국 독자가 사랑하는 대작가들은 가난과 비극의 역사를 체험하고 농익은 작품들을

많이 써왔습니다. 이재익씨는 압구정키드로서 이런 경험이 부족할텐데 혹시 화려한 말의 나열같은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데요. 이런 선인견을 불식시키고 밀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독자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더구나 전업작가도 아니고 라디오PD라는 직업이 있는 사람이

언제 소설을 쓰고 준비하는지..하는것도 궁금하신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직접 몸으로 보고 느끼고

한 체험이 많으면 좋겠지만 저는 열살까지 울진에서 자라면서 감성은 그때 다 완성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주변을 많이 들여다 보는 편입니다. 틈나면 책도 읽고 특히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많이봅니다.

퇴근후에는 일반적인 직장인이 하는 놀이는 거의 하지 않구요. 글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사실 이 질문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작품에 이미 대답이 다 나와 있기 때문이다.

카시오페아공주에서는 누구나 한번쯤은 꿈꿀법한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압구정소년에서는

소년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었다면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은 그가 다녔던 모교의

야구부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울대에 야구부가 있다는 사실도 의외이지만 누구든 지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경우는 없는데 1승

1무 265패라는 기가 막히는 전적을 자랑(?)하면서도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야구팀이라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기네스북에 대학야구 최고 패배팀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니들은 서울대학생이다. 싫든 좋든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다. 니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이끄는 리더가 될 거다. 그런 니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바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니들보다 덜 똑똑하고 덜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여유. 머리로만 알면 안되고 가슴속에 그 마음을

품어야 하는 기다. 니들은 정말 죽도록 이기고 싶었겠지만 나는 반대였다. 나는 니들에게 지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224p

 

세상의 리더들에게 이기는 법보다 지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이 감독, 정말 멋지지 않은가.

유도선수는 기술을 배우기 전에 낙법을 먼저 배운다고 하더니 아무리 머리 좋고 운좋은 사람이라도

실패없는 삶은 거의 없다. 이럴 때 오히려 더 많은 절망감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왜 세상은 실패하는 법, 내지는 실패했지만 잘 일어서는 법같은 것 보다 이기자,

리더가 되자와 같은 가르침만 있는 것인지 늘 불만이었다.

 

’야구는 교체선수가 있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혼자다. 안타를 맞든 홈런을 맞든 야유를 받든,

끝까지 혼자 견뎌내야 한다. 심지어 주저 앉더라도 경기는 계속된다. 인생이라는 경기에는

불펜이 없다.’ -67p

 

과연 이 사람이 압구정키드로 자라기만 한 깍쟁이 서울남자만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야구에는 인생이 모두 들어있다고. 하지만  야구에서는 있는 교체선수도,

주저앉아 울 불펜조차 우리 인생에는 없다는 걸...서른 중반의 남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머리좋은 서울대 야구부원들은 이 소설에서처럼 어디에선가 리더가 되기도 하였을 것이고

의도치 않게 실패를 맛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감독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마운드에 걸어나와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스코어에서는 졌지만 늘 승리하고 있는 모교의 야구부원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압구정키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고독과 번민이 있는

우리들의 인생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변호한 것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 서울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265패를 자랑(?)하는 야구부원과 같은 루저도 있음을..

 

하지만 그들은 따뜻한 인간미와 사랑과 실패를 모두 경험하는 우리와 다름없기에 여전히 꼿꼿이

절망하지 않고 일어서는 그들이 진정한 승리자임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여 수많은 실패와 절망으로 상처받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소망이던 롯데의 선수가 되어 비록

2군이지만 ’거인’으로 화려한 은퇴식을 갖는 ’장태성’이 바로 진정한 승리자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늘 선수보다 관객이 더 적었던 2군들의 경기에 그날만큼은 관중으로 가득 들어찬 사직구장에서

열린 그 은퇴식에 ’나’역시 눈물흘리며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장태성 멋지다. 너는 승리자다!’

그리고 이재익작가, 당신도 승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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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 진짜 안 와
박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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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버스에 놓고 내린 순간 폭우가 와서 쫄딱 젖고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담배 한갑을 사갖고

나왔는데 주차위반 스티커가 붙어 있고 급하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꼭 지하철이 고장나거나 하는

재수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고남일의 꿈은 진정한 롹정신을 가진 기타리스트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결국 그는 보물인 기타를 팔아 롹의 고향인

영국으로 향한다. 무조건 그냥..가보기로 한 것이다.

사랑하는 애인이었던 미영이 영국에 가 있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내셔널갤러리에서 어슬렁 거리던 남일은 운명이었는지 기적같이 미영을 만나게 된다.

미영의 도움으로 물가가 엄청나게 비싼 런던에서 숙소를 정하고 약간의 불법이 더해지기 했지만

남일이 제일 좋아하는 스시집에 배달원으로 취직을 한다.

 

그 시간 아르고좌의 우주에서 가장 뜨거운 별 나오스에 기거하는 '롹 스피릿'님은 습관적인 생명체

포맷과 오류투성이 인격으로 악명 높은 '오에스'라는 양아치와 지구의 운명을 놓고 담판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진정한 롹커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지구를 그냥 확 엎어버리고 다시 깔고 싶어하는

오에스에게 괜찮은 놈을 찾아주기로 하고 오랜만에 지상의 롹커들을 향해 안테나를 펼치고 있었다.

 



 

런던에서 미영을 만난 남일은 기쁨에 들떴지만 미영은 이미 일본인 남자친구 켄세이와 교제중이었다.

여전히 미영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던 남일은 스시집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그리스 여자 로잔나와

연애를 한다. 잘 다니다가도 남일이 타야 할 순간이 오면 영 오지 않는 15번 버스를 기다리며 언젠가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줄 날이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지만 한국에서 같이 따라온 '평생 재수 없음'은

영국에서도 제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여 스시집이 망하고 일자리를 떨려나고 비자연장은 되지 않았다.

데모CD를 뿌린 곳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남일은 미영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결국 추방당하는 신세가 된다.

 



 

마치 오지않는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정망의 부랑자처럼 늘 오지 않는 15번 버스를 기다리는

남일에게 이제 더 이상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든 그의 롹은 지구를 싹 엎어버리고 싶어했던 '오에스'에게 감동을

주는 바람에 포맷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먼 우주에서 일어난 '롹 스피릿'님과 양아치 '오에스'만의 은밀한 사건을 지구의 인간들이 어찌

알겠는가.

 

'인생은 비루할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인생을 바쳐 예술을 했고 누군가는 또 그것을

감상하며 도취될 수 있다. 그것은 지구에서 인류로 살아간다는 것의 쏠쏠한 재미인 것 같았다.' -188p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과 직면했을 때 마지막으로 외쳤던 '미영'의 존재가 늘 추방만 당하고

살고 있는 남일에게 마지막 구원이 되어 준다. '미영,미영' 외치면 가슴속에는 뭔가가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 같고 강한 자신감이 마구 생기는 것 같다. 완전한 롹정신.

그것만으로도 한국에서 다시 시작할 자신이 생긴 남일은 죽음 직전처럼 인생이 가진 모든

영감이 압축되어 만들어진 곡에 제목을 붙인다.

<Rock Spirit never Die>

 



 

'인생은 결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행복하진 않다. 그랬다간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행복은 짧다. 짧기 때문에 강렬한 존재인 것이다.' -335p

 

그리고 15번 무지 빨리 오는 홍대앞을 떠올리며 나는 이렇게 남일에게 외치고 싶다.

그래 남일, 지나간 시간들은 재수하고 안 친해서 불행했지만 이제부터는 행복 시작이다.

<남일, never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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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 캠핑여행지를 찾아라 - 캠핑 전문가들이 직접 뽑은 베스트 캠프장 완벽 가이드
한형석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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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살랑 불고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슬슬 여행이 고파진다.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펴고 어디론가 떠나 골치아픈 일상을 잠시 잊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여행바람이 들었다고 무작정 길을 나설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곳으로 가서 잠은 어디에서 잘 것이며 무얼 먹을 것이며 어디를 구경할 것인가.

컴퓨터를 이리 저리 검색하다 보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한눈에 딱 들어오기가 어렵다.

그리고 혹시 깃발아래 주욱 늘어서서 가이드를 쫓아 다녔던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정작 제대로 된 여행이 아니었다는 것을.

 

외국영화를 보다보면 멋진 캠핑카를 몰고 잘 정리된 야영장에서 쉬어가며 제대로 된 진짜 여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 우리는 언제 저런 여행을 해보나~~

바로 지금 우리도 이런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캠핑카가 없어도 좋다.

자연과 호흡하면서 야생의 여행을 즐길 자신이 있다면 이 책 한권 들고 떠나보자!

 



 

우선 짐을 꾸리는 것 부터 시작한다.  꼭 필요한 것 같아 이것 저것 싸다 보면 한짐이 된다.

하지만 여행 좀 다녀 본 사람들은 또 안다. 말 그대로 짐만 되고 결국 쓰지도 않고 되가지고

오는 것들이 꼭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과감하게 줄여보자. 그리고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법도 있다. 굳이 다 싸가지고 갈 것 없다.

캠핑가서 짜장면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일부러라도 장이 서는 날을 골라 시골버스를 타보자.

두런 두런 동네 할머니와 친해져 김치에 된장, 고추장까지 챙겨주는 일도 많다지 않은가.

 



 

장날 현지의 특산물을 사서 요리를 하면 짐도 줄이고 현지의 음식문화도 즐기는 일석이조가 된다.

물론 취사장은 있는지 화덕은 사용이 가능한지 샤워시설은 있는지 예약이 필요한지 미리 확인한 후의

일이 되겠지만.

 

요리를 못한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도 없다. 친절하게 캠핑요리 레시피도 들어있다.

아마 소개된 요리를 다 해먹으려면 백 수십번은 집을 나서야 할 것이다. 든든하다.

팁 안줘도 툴툴거리지 않고 친절한 가이드가 바로 이 책이다!

꽃구경만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면 바로 다가올 여름휴가를 이 가이드와 의논해보면 어떠실지.

캠핑의 달인 10인의 인터뷰를 보고 추천하는 캠핑장부터 시작하면 괜찮은 출발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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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 「문학의문학」 대표 작가 작품집
김연수.박완서 외 지음 / 문학의문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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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가 다음엔 외교관이 꿈이었다가 결국 시인이 되는 것으로 꿈을 정리한 여자는

결국 시인이 되지 못하고 내성적인 쌍둥이와 말 못하는 자폐아의 엄마가 되었다.

'어떤 여중생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성적인 쌍둥이와 말 못하는 자폐아의 엄마가 되려는 꿈을 꾸겠는가.' -24p

김연수의 '깊은밤, 기린의 말'은 의도치 않은 삶으로 휘청거리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자폐아를 가진 가정의 아픔은 짐작만으로도 벅차다.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자폐아 아들이 자신과 처지가

같은 강아지 '기린'과 나누는 동병상련의 교감이 눈물겹기만 하다. 결국 또 사랑만이 구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아! 박완서라는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온다. 사진속의 모습은 여전히 소녀같건만 이제 생전에 남기신

작품으로나마 위안을 삼을 뿐이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지치고 고단한 일상속에서 갱년기를 맞은 여인의

'샌드위치팔자'에 대한 넋두리다. 아마 선생이 살았던 시대가 딱 그러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경성대를 나온

지성의 시어머니와 결혼도 이혼도 쿨한 며느리 세대에 끼인 허탈함 같은 것.

결국 시어머니로도 며느리도로 성공하지 못한 한 여인의 비애가 당신의 겪어낸 역사의 비극과 겹쳐지고 비참하게

사그러져간 수많은 '시대의 갱년기'의 여인들과 겹쳐져 나역시 자꾸 속에서 열불이 나려고 한다.

이제 저 윗 세대와 쿨한 세대를 이어주던 막중의 임무를 누가 대신할 것인가. 눈물겹게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역시 3년전 작고하신 이청준작가의 '이상한 선물'은 비만 오면 날궂이를 하는 미친년이나 불운한 노름꾼,

작고 깡마른 몸집에도 힘이 너무 센 바람에 아무도 대적하는 자가 없어 실력한번 제대로 발휘해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천재 씨름꾼에 대한 괴기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는 선바위골의 '동네전설' 기태씨의 이야기이다.

기근이 심하면 부자집 창고를 털어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는 '그림자 의적'이나 밤새 도깨비와 힘을 겨루어

이겼다는 '도깨비 할배'의 이야기는 사실 어느 동네든 조금씩 색깔만 다를 뿐 동네 입구의 서낭당이나 장승처럼

흔한 수호신이 아니던가. 진실여부과 상관없이 막연한 '우상'하나쯤 세워놓고 기대고 싶은 것이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들의 바람일터...기태씨, 선바위골의 자존심을 지키는데 벼루면 어떻고 숫돌이면 어떻소.

먹을 갈았든 낫이나 칼을 갈았든 다 미래의 희망을 갈았던 물건은 사실인데..그냥 받아 두시게.

 

어린시절 다친 상처로 청각을 잃은 여자의 절망을 그린 이나미의 '마디'는 잔가지를 쳐내면 더욱 튼실해지는

나무처럼 자신의 머리를 삭발하는 것으로 인생의 전지작업을 마친 여자가 늙은 소년의 모습으로

'그러나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고 흔들림이 없는 나이 마흔 아닌가. 봐주기로 한다.'라는 마지막말에

비로소 안심하게 된다. 마흔 조차도 여전히 빛바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게된 반세기를 살아낸 여인은.

 

뭔가를 잊고 몰두하기에 퍼즐만큼 훌륭한 것도 없다. 100피스 1000피스 퍼즐을 맞추는 일은 때로는 숭고해 보이기도 한다.

5대독자인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딸로 잉태된 태아를 세번이나 죽여야 했던 여자는 전처소생의 되바라진 딸과 딴여자의

향을 묻히고 돌아오는 남편과 무심해지기 위해 퍼즐을 한다. 간혹 없어지는 퍼즐 몇조각은 병적으로 퍼즐에 집착하는

아내를 포기시키기 위한 남편의 술책같았다. 죽어간 아이들에 뼈조각을 발견하는 악몽에 시달리는 여자는 스스로 빠진 퍼즐의

한조각이 되고 만다. 권지예의 '퍼즐'은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여전히 이빠진 퍼즐조각처럼 버려지는 여자가 있음을 고발한다.

 



 

이명랑의 '제삿날'과 최일남의 '국화 밑에서'는 자신의 죽음이든 타인의 죽음이든 '죽음'이란

명제를 만나면 이기적인 인간들은 뒷처리와 번거로움으로 도망가려 하거나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사람들은 지나온 시간들과 스쳐갔던 인간들을 기억하는 상념에 빠져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군상들의 표정을 담았다.

 

가장 젊은 작가인 조경란의 '파종'은 갑작스런 골절사고를 당한 여자의 살림을 돌봐주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간 부녀간의 은밀한 연대감과 쓸쓸함과 미래에 대한 자그마한 소망이 잘 그려져 있다.

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고 일자리도 잃고 술로 위안을 삼는 여자와 사기를 당하고 귀의 청력마저 사그러지는

늙은 아버지가 휘적휘적 희망도 없는 도쿄의 거리를 거닐다가 무슨 꽃인지도 모르는 꽃씨를 사다가 베란다에

심는다. 나중에 시금치였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그게 무엇이든 상관이 있었을까.

그들이 피워내고 싶었던 것은 꺼져가는 불꽃이었을테니..뽑아서 던져 놓으면 마디에서부터 뿌리를 내려 자라는

명아주과의 그 풀도 사실은 꽃을 피워낸다는 것을 이미 그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대표 작가'10인의 베스트 작품집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작가들의

모음집을 보니 그간 내 인생을 받쳐주었던 책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미 고인이 되신 이청준작가와

박완서작가가 내 청춘의 지지대였다면 이나미작가는 같은 시대에 태어나 문학의 꿈을 이루어낸 동지애가

느껴진다. 요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연수작가나 조경란작가를 보면 문득 뒷방으로 밀려난

늙은이의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쓸쓸한 눈빛에 부러움을 더하여 바라보던 이들이다.

소개된 10인의 나이차가 42년에 이르니 한국전쟁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단의 주요인물을 잘 골라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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