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1 하루키가 내 부엌으로 걸어 들어왔다 1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 지음, 김난주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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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노벨 문학상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가수 밥 딜런에게로 돌아갔다.

가장 유력한 수상후보였던 하루키는 자신도 밥 딜런의 팬이라고 말함으로써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인 듯 하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굳이 수상을 의식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매해 수상후보로 오르다보면 은근히 기대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이미 여러분야의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인이라는 것이 살짝 거부감이 없진 않으나 오로지 작가로서의 역량만 본다면 결과가 아쉽다.

나는 그의 작품이 아주 독특하다고 생각해왔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과 더불어 유럽에 대한 모더니즘스런

분위기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요리만해도 하루키의 그런 선망이 녹아있다고 생각된다.


 


전통적인 일본음식보다는 서구화된 요리를 등장시킨 하루키는 미식가적인 일면이 있는 듯하다.

실제 여행애호가로 전세계를 여행하면서 만난 서양요리에 대한 지식이 많은 측면도 작용한 듯 싶다.


 


혼자 먹기 위해서 혼자 만드는 음식이라는 스파게티는 말 그대로 레시피가 간단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국수를 삶듯 스파게티면을 삶아 소스에 버무린 간단한 요리. 하지만 하루키가 그린 스파게티 요리는 면 삶기부터 아주 섬세하다.  면의 가운데 심의 거친 질감이 남아있는 상태인 알텐테가 되기를 기다리는 심오한 면삶기 과정을 보면 결코 간단한 요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하루키가 자신의 소설에 등장시킨 요리는 소설속 인물들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요리인지라 유심히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없이 혼자 만드는 스파게티라든지 퇴근하는 아내를 위해 독신 때 즐겨먹던 중국식 야채볶음을 만드는 남자가 등장하는 '태엽감는 새 연대기'는 아내가 소고기와 피망을 같이 볶는 걸 제일 싫어한다는 말로 남편과의 거리를 나타낸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는 애인과 헤어지고 자신의 집에서 와타나베에게 튀김과 완두콩밥을 지어준다.

한껏 먹고 정액을 많이 만들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부드럽게 풀어줄테니까.

미도리의 요리는 요염한 여인의 정념이 스며있다.

이렇게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는 조연이지만 주연 못지 않은 페이소스가 깃들어 있다.

오죽하면 '부엌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는 모임'이 생겨났을까.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요리를 시연하면서 문학을 해석하는 이색모임이 생길정도라면 조만간 노벨 수상소식도 들려올 것 같다. 소설을 눈으로 코로 입으로 느끼는 독자가 이렇게 많은데 너무 늦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멋진 쉐프가 되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다음 소설에 등장할 그의 요리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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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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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3주 앞둔 라파엘은 사랑하는 연인 안나와 함께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인기있는 스릴러 작가인 라파엘은 3년 전,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런던을 찾았다가 나탈리를 만났었다.

나탈리는 생물학자인데다 첨단 의료장비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하루 열 여덟 시간씩 일하는 사업가였다.

어쩌다가 나탈리에게 꽂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은 급격하게 가까워졌고 테오라는 아들을 얻게 된다.

하지만 테오가 세상에 나온지 열흘만에 일에 복귀한 나탈리는 캘리포니아로 떠나기로 했다고 선언한다.

좋은 엄마와 아내가 될 자신이 없다면서 냉정하게 그를 떠났었다.

그후 아들 테오를 양육하느라 글을 쓸수도 없었고 결국 테오가 열이 불덩어리처럼 오르던 날 소아과 병원에서 인턴인 안나를 만나게 된다. 그후 6개월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이제 결혼을 앞둔 라파엘은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가 안나에게 이제 서로 부부가 되었으니 비밀을 갖지 말고 서로 고백하자고 제안하기 전까지는.


 


사실 안나는 자신의 과거를 거의 말하지 않았다. 너무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안나에 대해 라파엘은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라파엘의 제안에 급격하게 어두워진 안나는 자신의 테플릿PC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이 저지른 짓이라고 고백한다.

사진을 본 라파엘은 구토를 일으킬만큼 큰 충격에 빠져 안나를 뒤에 두고 펜션을 뛰쳐나온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펜션에 돌아갔을 때에는 이미 안나는 사라진 후였다.

어떤 과거가 되었든 지켜주겠노라고 큰소리쳤던 라파엘은 깊은 후회에 빠지고 안나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가 살았던 아파트에도 친구에게도 그녀의 흔적은 없다. 휴대폰마저 꺼버린 안나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라파엘에게 보여주었던 사진에 얽힌 그녀의 과거와 비밀은 무엇일까.


 


사진에 찍힌 불에 탄 시체는 누구이고 과연 그녀가 그런 짓을 하기는 했을까? 온통 의문투성이에 빠진 라파엘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강력계형사출신 마르크의 도움을 받아 안나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밝혀지는 안나의 행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어느 날 갑자기 파리에 나타난 열 여섯 소녀의 진짜 이름은 클레어 칼라일!  거짓 이름으로 비밀스럽게 살아온 안나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오래전 소녀들을 납치한 범인에 의해 사라졌던 소녀들과 유일하게 지옥에서 탈출했던 소녀.

하지만 그녀는 이미 죽은 인물로 판명이 났고 그 뒤 파리에 나타난 소녀는 안나라는 이름으로 8년을 살게 된다.  왜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못했던걸까. 얼핏 연쇄납치범에 의해 희생된 소녀의 사건을 수사하는 것 같은 이 소설은 진실에 다가갈 수록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음을 알게된다.

평범했던 교수와 그의 제자가 세상의 거대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과거를 세탁하게 되고 그 나비의 날개짓은 멀리 파리에 언어연수를 왔던 소녀에게 비극적인 바람으로 몰아치게 된다.

"당신은 권력을 쟁취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군요?"

라파엘은 권력의 뒤에 숨어있던 비선 실세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법의 공정성은 믿어요? 세상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법이 있다면 바로 강자의 법이죠."

허탈하다. 대통령 탄핵으로 권력의 시녀들에게 농락당한 우리들에게 비수를 꽂는 말이다.

다수에게 도움을 되는 권력을 얻고자 했다는 그들의 말도 안되는 논리에 분노가 치밀 뿐이다.


우연이었을까. 이 비극적인 소설의 범인은 욕망과 추함을 가진 권력의 실세들이었다.

작가인 라파엘은 추적끝에 맞닥뜨린 이들에게 어떤 판결문을 던질 것인가.

사라졌던 클레어는 다시 라파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리고 책장을 덮기 몇 분 전 드러나는 작가의 기막힌 반전은 또 어떠하고.

선한 표정으로 권력을 쟁취하는 비선실세들의 추악함과 자식을 잃은 아비의 또 다른 복수가 얽혀 도무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마력 때문에 결국 새벽이 되어서야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동서고금이 없고 끔찍한 사건또한 언제든지 이어질 것이다. 소설이지만 현실보다 더 리얼한 스토리에 권력을 위해 상처를 준 많은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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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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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동안 동네를 벗어난 적 없이 남편 켄트의 그늘 아래에서만 살아온 예순 셋의 브릿마리!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진 남편을 두고 어느 날 가출을 감행한다. 오직 자신의 남자라고만

생각했던 남편이 내연의 여자가 있음을 안 직후였다.

커트러리 서랍안에 나이프와 포크를 순서대로 정리하고 온집안을 과탄산소다로 청소를 해야만

맘이 놓이는 결벽증이 있는 브릿마리로서는 부정한 남편과 함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작정 고용 센터로 향한 브릿마리는 불황때문에 일자리가 없다는 상담 아가씨의 말을 무시하고 당장 일자리를 달라고 떼쓴다. 이것조차 세상물정 모르는 브릿마리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전 식당 웨이트레스일을 해본것이 전부인 늙은 여인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있기는 할 것인가.

마지못해 알아보겠다는 상담 아가씨의 말에 자신의 리스트에 약속날짜까지 잡아가며 매일 고용 센터로 향한다.

브릿마리의 집념에 손을 든 상담아가씨는 보르그라는 곳에 있는 레크레이션 센터에 관리자로 그녀를 보낸다.

보르그라는 곳은 오래전 트럭들이 오가며 들리는 번잡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주변 도시에 밀려 주민 모두가 떠나버린 공허한 마을이다. 사실 레크레이션 센터도 곧 문을 닫을 예정이다.

엉망진창인 레크레이션 센터를 과탄산소다로 빡빡 문질러 닦으면서 브릿마리는 켄트와 함께 한

결혼생활을 되돌아본다.


 


레크레이션 센터 바로 앞에는 구멍가게 겸 자동차 정비소 겸 우체국 겸 피자가게가 있고 가게주인인 미지의 인물인 '그녀'가 있다. 휠체어를 탄 그녀가 브릿마리가 타고온 차를 고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보르그에 유일한 자동차 정비소엔 그녀밖에 없지 않은가.

레크레이션 센터 바로 앞 공터에는 아이들이 축구를 한다. 왁자하게 공을 몰고 다니긴 하지만 제대로 공을 차는 아이가 있기는 한건지 브릿마리는 알 수가 없다.

브릿마리는 전혀 즉흥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이성적이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그림자같은 남편을 떠나 보르그로 온 것은 운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더러운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은 모두 가난한 부모를 두었거나 그나마 한쪽 부모만 있거나 베가나 오마르처럼 양쪽 다 없거나 하는 아이들이다.  부티나는 BMW를 타고 다니는 프레드릭과 그의 아들 맥스만이 예외라고 할까.  맥스는 하키선수이지만 축구도 잘한다. 문제는 그의 아버지 프레드릭이 맥스가 축구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

브릿마리는 천성대로 아이들의 더러운 유니폼을 깨끗하게 빨아주다가 뜻하지 않게 축구팀 코치로 나서게 된다.

얼마 후 열린 축구대회를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코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화에 얼떨결에 맡게 된 것이다.


 


브릿마리는 특이하게 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던 세상이던 뭔가에 대해 파악하려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브릿마리는 자신의 본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로 마음 먹는다.

냉랭한 마을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익히고 경찰인 스벤에게 호감도 느끼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미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었지만 복지센터에 맡겨지는게 싫어 거짓말을 하고 보험금을 타내 두 동생을 돌보는 새미.

얼핏 불량아처럼 보이지만 질이 좋지 않은 친구 싸이코와 단짝이 된 것은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매을 맞던 날 자신과 동생을 도와준 의리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도 몰랐지만 사실 새미역시 브릿마리처럼 커트러리 서랍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정의로운 아이이다. 하지만 부모를 대신하여 두 동생을 돌보는 일은 가슴아프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과거의 축구스타 뱅크와 미지의 인물인 '그녀' 그리고 몰락해가는 마을에서 축구로 희망을 꽃피우는 아이들의 틈바구니에 어느새 존재감을 드러내는 브릿마리.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남편 켄트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 온다.

어렵게 출전한 축구시합이 있는 날, 시합이 끝나는 그 날 브릿마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브릿마리와 이별하기 싫어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 마지막 날에 일어난 사건과 이어지는 불행한 사건들로 인해 브릿마리는 주춤거린다. 과연 브릿마리는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그녀를 원하는 보르그에 남을까.


브릿마리가 평생 소원한 것은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여성을 억압하는 세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처럼 그녀도 파리로 향한다.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제목이 '브릿마리 여기있다'라고 붙인 이유를 알것 같다.  존재감 없던 여인 브릿마리가 '나 여기있다'라고 말한다.

까탈스럽고 사회성이 떨어지지만 정의롭고 따뜻한 그녀의 심성이 가난한 아이들의 가슴에 가 닿는다.

어딘가 찌그러지고 가난해보이는 마을 사람들이지만 사실은 마을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외로움때문에 더 이방인들을 밀어내려 한 것 같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까칠 할머니 브릿마리의 홀로서기는 감동스럽다. 이 소설에게 가장 까칠한 남자로 등장한 맥스의 아버지 이름이 이 책의 저자와 같은 것은 작가의 유머가 아닌가 싶다. 오베와 엘사에 이어 역시 사람냄새 물씬나는 멋진 할머니 브릿마리의 홀로서기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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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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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모두 누구를 대리하여 살아간다는 저자의 정의에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막연하게라도 스스로 주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그의 이런 정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책을 덮고보니 그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먹을 것을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고 내가 내어놓은 쓰레기들을 스스로 치우지 못한다.

누군가는 나를 대신하여 새벽부터 밭으로 향할 것이고 누군가는 늦은 저녁까지 내가 내어놓은 쓰레기를 치울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누군가들을 위해 뭔가를 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대리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 이런 사실을 망각한 '갑'들의 횡포에 '을'들을 상처받고 사회는 공평성을 잃게 된다.


 


저자는 몇 년 전 '지방시'라는 글을 써서 화제를 일으킨적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읽은 적이 없지만 열악한 지방강사의 어려움을 고발한 책이었던 것 같다.  그의 이력을 찾아보니 '내부고발자'라는 딱지가 떡허니 붙어있다.

1년에 고작 8달을 한 달에 100만원도 못되는 급여를 받으면서 정신노동을 했던 강사가 뛰쳐나와 글을 쓰면 내부고발자가 되는 것일까.

그가 다녔던 학교는 누구나 선망하는 사랑이 주체라는 기독교계열의 학교였다.

과감히 뛰쳐나와 대리운전을 하던 그가 정말 지나치고 싶지 않았던 모교의 학교앞에 서서 느꼈을 자괴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다만 이제 다시는 괴물에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란 다짐에 마구 응원을 보내고 싶어진다.

'밀려나고서야 물러서는 법을 배운....'이라는 저자의 탄식에 거대한 괴물의 실체를 보는 것같아 끔직하다.


 


그가 정의한 '대리사회'는 정상적으로만 돌아간다면 거대한 조직의 톱니바퀴처럼 질서정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한군데가 이가 빠지거나 지체가 되면 부당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거나 주체는 영원히 되찾지 못한 채 '대리인생'으로만 살아가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게 된다.

대학에서 10년 가까이 연구자로 있는 동안 그가 원했던 '교수'자리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지도 모른다. 주체인 '갑'은 수많은 지방강사들을 울타리로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닌 그들이 지닌 지식만을 알뜰하게 빼먹고 내몰기 위해 수많은 장치들을 해두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받은 주체들은 시간강사들의 지식을 아낌없이 갉아내어 제공시키고 4대보험도 재직증명서도 내어주지 않은 채 스스로 물러나기를 바라는 '악덕포주'와 같은 세습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뜨겁고 차가운 길거리로 나선 저자의 대리운전 생활은 고달프기만 하다.

먹물에 익숙했던 그가 핸드폰을 손에 놓치 못한 채 길거리에서 콜을 기다리고 막차마저 끊긴 길거리를 터덜터널 걸어가는 뒷모습이 가슴아프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 쓰러져가는 마음을 곧추세우면서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경멸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고백에 눈시울이 뜨거워온다.

그래도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아이를 재우고 남편을 돕기 위해 늦은 밤까지 차를 몰아주는 아내가 있고 그 밤 한푼이라도 벌기 위해 집을 나선 엄마 아빠를 위해 깨지 않고 단잠을 자주는 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늘 편하게 부르던 대리기사들의 세상에 감탄스런 시선을 보내며 누군가에게 존경받는 남편이고 아빠이고 아들일 그들에게도 인권이 있고 나름의 질서가 있고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톱니바퀴임을 자각한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 운전대를 잡았듯이 우리도 그들을 위해 뭔가를 분명 하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응원만이라도 보내야 진정한 '콜'이 되지 않을까.

자칫 내려놓은 지방시보다 덜 떳떳할지도 모를 '대리기사'의 일상을 통해 이런 멋진 르포를 탄생시킨 저자의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그가 과감하게 뛰쳐나왔던 학교는 정말 대단한 인재 하나를 놓치고 대신 욕만 바가지로 먹은것 같다.

당당한 그에게 희망을 보았고 다음 행보가 기다려진다. 혹시 내가 부른 기사가 그라면 정말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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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절벽 - 성공과 행복에 대한 거짓말
미야 토쿠미츠 지음, 김잔디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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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열정과 노력을 다해 성공의 길을 달려왔다.

최고의 학부를 졸업하고 최고의 직장을 구해 야근을 밥먹듯이 일하면 바로 그것이 성공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보다 구직자가 더 많아진 요즘에는 열정만으로

성공을 보장받던 시절은 사라졌다.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전세계적인 불황이 계속되고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기계들이 발전하면서 이런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강건너 불구경이 아닌 비상시국이 되었다.

최고의 학부를 졸업하고 자격증이 즐비해도 알바생활을 전전하는 인력들이 부지기수가 되어버린

허무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저자는 미드에서 인기를 끌었던 '굿와이프'란 드라마를 인용하여 이런 문제를 대입하였다.

'굿와이프'에서 앨리샤는 15년 동안 주부로 생활하다가 주검사장이었던 남편의 부정으로 나락에

떨어지자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 현실감이 다소 떨어지는 상황이었지만 앨리샤는 극적으로 부활한다.

남편의 명성을 자신의 성공에 이용하고 심지어 애인까지 만든다. 과연 15년이란 단절후 이런 성공이 가능할까.

오히려 이런 비현실적인 주제와 결말이 꿈을 이루지 못한 숱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에서의 성공이란 주로 임금노동으로 정해지는 사회 활동에 따라 개인의 자아실현이 좌우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준다.-본문중에서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으로 각인된 페러다임을 거부하면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고립되는 현실에서 이런 결말을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Do What You Love. DWYL'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단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만족으로 무급이나 저임금 노동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배를 곯으면서 돈이 되지않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선택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DWYL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성공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선택받은 사람이 틀림없다.


 

 


과거에는 입사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승급이 되고 임금이 상승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요즘처럼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늘어나면서 회사와 근로자간에 임금을 협상하고 기간을 정하는 것이 일반화되는 시점에서 과거의 구조에만 익숙한 세대라면 당황스런 결과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오래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다국적 기업의 인턴으로 입사했던 나는 바로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다. 사회경험도 전무한 상황에서 내 임금을 스스로 결정해보라는 주문에 어찌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결국 우물쭈물하다가 회사가 제시한 금액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저자가 조언한 여러가지 사례중에 임금 상승 곡선이 가장 높을 때 '젊을 때 서둘러야 한다.

당신이 엄청난 예외가 아닌 한 임금이 대폭 인상되는 것은 40세 이전이기 때문이다.'에 절대 공감하게 된다.

최초의 시작이 어긋나면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그 결과가 따라다닐 것이고 다음 직장, 혹은 임금수준에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열정만 가득해서 무슨일이든 시키시면 다 한다는 정신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하는데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더 많이 일하는데 돈과 행복은 멀리있는가.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 제시한다. 우리에게 부여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불필요한 일을 줄이면 우리는 좀더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어딘가는 배고픔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어딘가는 음식물쓰레기가 넘치는 이런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개선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자유를 획득자는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낮추고 얻은 재화가 꼭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진정한 성공과 행복에 대한 답을 곰곰히 씹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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