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바쁜 일상에 치여 놓치고 있었던,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것들 46
정희재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참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유년기의 몇년을 제외하고 줄곧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저자는 불우한 기억들속에서도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잘 성장한 사람이다.

그녀의 삶을 붙들어 주었던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은 사실 그녀의 인간됨과 품성이

만들어준 산물인 셈이다.

지금껏 택배로 바리바리 사랑을 나르고 계신 시골의 엄마도 사실 선배의 엄마임에도

막내딸로 여기시고 챙기시는 모습에 자꾸 눈물이 나왔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우리가 보지못하는 저 너머의 깊음까지 짚어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인지..그녀는 내밀한 인간의 심연까지..그리고 도시의 깊음까지도 읽어내고 있다.

그녀가 바라본 사람들은 모두 따뜻하고 아름답고 심오하다.

그건 바로 그녀의 시선이 그러하기 때문이리라.

 

얼핏보면 도시는 삭막하고 잠시 머물다가는 정류장 같기도 한 공허함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역시 그 도시안에서 먹고 잠자고 삶을 영위하지만..그러고 보니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 따로있는 사람처럼 고독했을까.

그녀역시 그런 고독감으로 배낭을 꾸리고 세상의 도시들을 여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도시를 고향처럼 느끼고 싶어...타국에서 비웠던 마음들을 돌아와 느끼는 안락함으로 다시 보상받고

싶어 그렇게 자주 비행기에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콘크리트블럭이 무개성한 아파트보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고 두부장사의 종소리가 들리는

수유리의 골목을 더 사랑하는 도시안의 그녀는 반지하의 냉랭함과 옥탑방의 강렬한 햇살을 피해

그나마 고향이라고 불릴만한 따뜻한 공간을 그리워하고 하고 있는듯하다.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이며, 가장 나다운 나와 만나는 먼 여정임을

이해해야 했다.' -37p

 

"그동안 어떤 글을 써왔죠?"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어요?" 라는 질문은

비슷한 단어들의 조합인데도 너무나 다른 에너지를 지녔다고 말했듯이 때로는 말한마디가 그 어떤 위로와

격려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더 나아가 한사람의 미래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발견이었다.

이책을 추천하신 이해인 수녀님의 시(詩)에서 하신말씀처럼..혹시 내말이 비수가 되어 상대에게 꽂힌것은 아닌지..

말빚이 너무 많아 거두고 싶다던 법정스님의 말씀처럼...쉽게 뱉은 말들이 비수가 되었는지..덕이 되었는지

곱씹어보게 된다.

 

사람이 살지 않은 모하비사막에 설치되어 있다는 공중전화에 나도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들을 나도 그곳에 펼쳐놓고 싶기 때문이다.

사막의 모양을 바꿀만큼 거대한 바람이 그 이야기들을 싫어 귀를 귀울여줄 누군가에게 실어다 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담아...적막한 어느 밤....그곳의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게 될 것이다.

 

마음 따뜻한 그녀가 건네는 말한마디에 구멍뚫려 허허로웠던 가슴이 메워지는듯했다.

'그래 잘살아왔어. 애썼다. 애썼어...걱정마...잘될거야'

처음 만난 그녀는 분명 전생에 연인이었거나 친구였을것이다. 내생에 외로운 어떤날 차가와진 내손을

붙들어준 인연이라면 분명 전생의 몇겁의 만남이 있었을 것이므로..

이글을 끝내고 나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아마 그녀를 닮아 포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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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예니 에르펜베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숨결이 닿기전 빙하기에 독일의 북쪽에 떠내려온 얼음이 녹아 형성된 호수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여 년전만 해도 어느 농부가족의 소유였던 호숫가 땅은 부유한 베를린
사람들에게 나뉘어 팔리고 한건축가에 의해 오두막이 지어졌다.
그땅을 산 주인들 중에는 나치 치하의 독일에 살던 유대인 섬유업자가족도 포함되었는데
독일의 반유대정책에 밀려 망명의 길을 떠나거나 아우슈비츠로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분명 예전에 누군가가 살았던 곳이었을 것이고 더 올라가보면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그리고 삼국시대를 넘어 '집'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짓고 살았던 조상들의
집터였을것이다.. 아마 동굴처럼 천연의 것이 아니었다면 움집정도였겠지만.

일단 특이한 소재를 역사의 아픔과 버무려낸 작가의 안목이 놀랍다.
점점 사라져가는 북촌의 한옥집을 바라보면 조선시대 당쟁의 회오리에 휩쓸려 피고 졌던
양반들이 떠오르고 6.25의 전화속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과거의 숨결을 전해주는 것이 문득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사람은 떠나도 집은 남았다.
중국의 고도의 한도시는 지하 몇층아래에 과거의 성들이 묻혀있다고 했던가.
극심한 수해로 묻히고 그위에 다시 성을 쌓고 다시 묻히는 시간들이 지난후 과거의 번성과 멸망을
숨긴채 저자가 제3의 피부라고 말했던 '집'이 발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는것이다.

독일과 우리는 분단국이었던것으로 닮은 나라이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로서 아리아인들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싶었던 오만함은 우리와 다르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분단의 아픔과 상처투성이의 역사는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과 오두막을 짓고 알콩달콩 살기를 원했건만 삶이란 내가 생각한대로
살아지지 않는법. 사랑의 보금자리였던 '집'은 침략자들의 숙소가 되고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는 놓아둔채 떠나버렸다. 자신의 손으로 지은 그집은 가져갈 수
없었으므로...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고향이 될 것임을 믿으면서.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번성하여 더 넓히고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집'을
생각하며 벽을 쌓고 지붕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곳에서 평생을 마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동베를린 출신의 작가가 호숫가 근처의 오두막이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시간동안 시간이 할퀴고간
아픔과 태어나고 사라졌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독일이 겪었던 아픔을 그려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조상들이 걸어왔던 아픔역사와 학살의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그려낸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부모가 죽고 마지막 처형의 순간에 끌려가는 유대인소녀의 모습에서
가슴이 저려온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요즘 전쟁의 비참함이 다시는 이나라를 할퀴고 가지 않기를..
저 문밖에 있는 수많은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해지고 오늘 하루 고단했던
몸을 뉘여 달콤한 단잠에 빠지는 그런 오두막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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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에나 비슷한 모양이다.

다만 피부색이 다르고 도시가 다를 뿐, 살아가는 일상들의 색감은 많이 닮아있다.

도쿄, 오사카, 상하이, 서울에서 빚어지는 삶의 파편들..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고...탐욕하는 일상들이

잔잔히 펼쳐져있다.

작가가 10년의 세월에 걸쳐 발표한 10편의 단편을 묶어낸 이작품은 작가 자신의 길찾기,

즉 문학의 길 찾기와 소설가로서의 길 찾기를 의미한다.

10의 단편의 특징은 결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도시 어디선가 등장인물들은

여전히 사랑하고 이별하고 고독해하며 살아가고 있을것만 같다.

'나날의 봄'에서의 다테노와 이마이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척하면서도 서로를 들여다 보고 있다.

아마 지금쯤은 둘이 열렬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두엇쯤 낳았을지도 모르겠다.

삶은 현재진행형이므로 결말은 없다. 다만 상상할뿐.

 

'새벽두시의 남자'에서 중학생이 된 딸과 자신이 살았던 아파트를 가보는 장면에서는 어느새

자라 엄마의 흔적이 스쳐간 곳을 찾아볼 생각을 한 딸의 생각에 대견함이 느껴진다.

요즘 아이들 그런 공부에도 지치고 저들끼리 놀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터에 어찌 그런생각을 했을까.

마치 도통한 사람처럼 "소감" 흐음, 글쎄...평범해'할때는 웃음이 픽하고 터져나온다.

왜 우리도 그러하지 않았던가. 그 나이에는 별거 아닌거에도 심각한척 해보는 겉멋말이다.

한밤중에 몰래 숨어든 다카무라군처럼 불쑥 찾아들어왔던 사랑의 흔적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치한을 만나는 일은 어디에도 비슷한 모양인지..

'녀석들'에서 그녀석은 하필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란 말이지..더구나 변태성욕자?

흔히 여자들의 엉덩이를 집쩍거리는 남자만 생각하다가 엉뚱한 게이의 발칙함이 놀랍다.

그러니 당하는 무네히사는 소리를 지를수도 없고..잘못하면 정신병자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한

상황이니...억울한 마음에 쯧쯧소리가 절로나온다. 그냥 손을 확 낚아채서 무조건 전철밖으로

끌고나오라구. 하지만 되려 치한으로 몰려 난폭하게 입을 틀어막히고, 등을 무릎으로 찍히고,

두 손 두 발을 꺽이는 장면에서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허무맹랑한 일들을

너무나 많이 겪고 살고 있는것이 떠올라서..어디 억울한 일이 한두가지 인가.

 

'캔슬된 거리의 안내'의 나쓰세는 유부남을 사랑하여 떠나간 연인의 어머니와 묘한 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렇게라도 떠나간 여인의 기억을 붙들고 싶었던걸까. 딸의 연인이었던 남자에게 묘한 감정을 얹고 있던

연인의 어머니는 결국 극적인 방법으로 그의 의식을 깨운다. 그래도 그렇지 도벽이라니..

하긴 그런 극적인 사건이 있어야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나쓰세가 쓸말이 많아지긴 할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밥먹고 회사갔다가 일찍 퇴근하여 잤다'라고 밖에 쓸말이 없다면 어디 소설이 되겠는가.

재능있는 작가가 되려면 이웃도 아주 드라마틱하게 만나야 할것 같다.

 

언듯보면 전혀 다른곳에서 일어난 일인것 같은 조각들이 하나씩 맞물려 '도시'가 되고 삶이 되고

인생이 된다. 우리는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언제가는 떠나야할 여행자이다.

그리고 이 도시는 잠시 머물다갈 정거장일뿐. 영원할것 같은 삶도 사실은 소풍나온 여행자일뿐..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사물들을 바라다보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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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 불어넣기 아시아 문학선 8
메도루마 슌 지음, 유은경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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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오키나와는 한때 독립된 류큐왕국이었다. 메이지 시대에 본토의 침략으로 인해 복속되기 전까지는..

마치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동화정책을 펴듯 오키나와역시 식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섬이다.

뿐만아니라 2차세계대전후에 전범국으로서 속죄양이 되었던곳도 바로 오키나와이다.

주민12만명이 사망하고 전후에는 미군기지로서 속살을 내어주어야 했던 오키나와는 우리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섬이 되었다.

누가 전쟁을 일으켰든 같은 일본이라는 점에서 동정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무고한 주민들이

죽어간 안타까운 점에서 본다면 아쿠타가와상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상을 수상했던 저자 메도루마 슌의

고향이며 이글에 소개된 오키나와의 상처들이 저자에게 어떤의미일지를 짐작케한다.

 

#혼 불어넣기

마흔이 넘어 귀한 아들을 얻은 어려서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이웃에 있는 부모님의 친구 우타를 친어머니처럼

여기고 지낸다. 가끔 혼이 나가곤 해서 우타는 제사를 지내고 초혼의식을 통해 다시 혼을 불러들이곤 했다.

그러나 어느날 다시 혼이 빠져나가고...우타의 정성에도 다시는 혼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아버지가 죽어갔던 그바닷가에서 영원한 안식의 길로 떠나버렸다.

갑작스럽게 닥친 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에 끌려가 죽고 굶어죽어간 선량한 주민들의 안타까운 역사가 있다.

물론 우리는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죽어간 피해자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일본 그안에서도 나름대로의

또다른 전쟁이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 그런점에서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선한 사람들의 죽음을 알게된것은

뜻밖의 일이 되었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

근대에 접어든 일본의 시골은 아직 너무 가난하여 굶기를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었다.

입하나 덜어주려고 이민자들의 대열에 올라선 한 남자는 떠나는날 아침 아버지와 동굴에 숨어들어

아주 특별한 술을 마신다. 기름종이로 봉해놓은 아와모리 술!

"잊어버리지 마라' 눈물을 감추며 아버지는 말한다. 앞으로 몇십년이 될지 모르지만 네가 돌아올 때까지

이 술을 묵혀두마.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겠다.

남자는 브라질에서 역경을 겪을때마다 그술을 기억했다. 언젠가 아버지와 그술을 마실 것이다라는 기대로.

하지만 남자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오키나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는 철조망 너머 미군기지가 되어버린 고향땅에 가족은 없었다. 전쟁통에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철조망너머 동굴이었던곳을 기어들어가 그술을 찾아낸다.

브라질에서 살다왔다고 브라질 할아버지로 불려진 할아버지는 가끔 그술을 꺼내어 아픔을 달랜다.

그에게 그술은 가족이고 추억이고 상처를 달래주는 약과 같은 존재였다.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책은 오키나와가 근대에 들어서 겪었던 전쟁과 그후 미군기지로 더렵해지던

시절의 상처와 그럼에도 자본주의의 소용돌이에서 어떤이는 적응하고 어떤이는 낙오하는 과정을

아프게 써내려간 작품이다. 한때는 평화롭고 아름다왔던 오키나와가 서서히 죽어가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언뜻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일듯한 작품도 보인다. 우리가 아팠던것 처럼 작가도 상처의 그늘이 떠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순간 전쟁을 일으킨 나라와 전쟁을 일으킨 인간은 엄연히 구별되어져야 할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인간들은 나라와 상관없이 비참하게 남겨진다는 것을

아프게 돌아보게 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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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의 행복
장혜민 지음 / 산호와진주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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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헌옷을 벗어야만 새옷을 입을 수 있다고 하셨지요.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살아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205p

헌옷 벗고 다 비우고 가신 그곳에서는 연꽃도 피우지 못하는 진흙같은 이세상 걱정은 다내려

놓으셨는지요. 해인사로 송광사로 불일암에서 오두막으로 향하신 이유가 번잡한 속세와 사람으로

부터 놓여나고 싶은 마음때문이시지요. 한때 왜 절은 산속에 있어야만 하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나 성당처럼 한동네에도 여러곳이 있어 닿기 편한 곳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스님의 말씀처럼 사찰마다 다니면서 계를 받는다고 정토에 이르겠습니까.

절이 산에 있어 부처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닐것이요.

옆집에 있다해서 성불을 한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 욕심많은 인간의 한계가 되겠지요.

 

때로는 산으로 숨어들다가도 울분하여 다시 속세로 내려오시기를 반복하신 이유가 오히려 조용할날

없었던 그시절에 스님의 번민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

스님이 나시고 자란 시간은 우리의 영토가 살육과 상처로 얼룩진 시절이었지요.

아직은 산다는 일에 그리 허무를 느낄 나이에 출가를 결심하신 일은 이미 전생으로부터 정해진

일들이 아니겠는지요. 스님의 선택이라기 보다 부름에 가까운 삶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덕이 높고 법문이 밝고 혜안이 트이면 큰스님이라고 하지요. 얼마전 읽었던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봐도

중이 산에서 수행할 일이지..창들고 칼들고 인명을 살하는 일이 과연 가당키나 한일이었겠습니까.

하지만 의연히 산을 내려와 창을 들었던 사명대사처럼 그렇게 또다른 전쟁을 치루신듯 합니다.

피비린내 진동하고 억울한 주검이 한둘이 아니었던 시절에 어찌 산속에 수행자로만 살 수가 있었겠습니까.

총부리 앞에서도 할말하고 상처받은 대중을 용기있게 껴안을줄 알았던 스님은 종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신 분이시지요. 어느 종교와도 불화하지 않고 어깨를 나란히 해주셨던 모습은

저들의 종교를 지키겠다고 서로를 죽이고 싸우는 지구상의 모든 종교인들에게 귀감을 보여주셨습니다.

 

'종교인들은 다른 종교를 자기 종교의 잣대로 재려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종교 없이도 사랑을 실천하며 바르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종교가 바라는

바입니다.' -165p

 

종교의 본질을 이렇게 속시원히 풀어주시니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느낌입니다.

 

말빚이 많아 다 거두고 싶다던 말씀도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시던 스님의 소망이시라 거들어 드리고

싶어도 그말로 하여 평화를 얻은 수많은 이들과 남겨진 글로 앞으로 밝은 깨달음을 얻게 될 사람들에게

희망을 뺏는 격이라 차마 스님편을 들어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과거를 따라가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간 것은 이미 버려진것.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다만 현재의 일을 자세히 살펴, 잘 알고 익혀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169p

 

thumbnails.jpg

 

스님 현세에서 만나 이렇게 미욱한 저희에게 밝음을 주시었으니..

내세에서는 어느곳에서 만나 그리움을 달래려는지요.

스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어린왕자'와 그 별에서 누워 푸른별인 지구를

굽어보고 계시는건 아니신지요. 어쩌면 이미 이세상의 어느 연꽃으로..

돌아와 계신건 아닌지...스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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