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를 걷다 -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최성현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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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시코쿠는 일본 열도 4개 섬중 가장 작은 섬으로 그곳에 있는 88개의 천년고찰을

차례로 참배해가며 하나의 원으로 완성하는 순례길이 있다.

1200년전 일본 불교 진언종의 창시자인 구카이 스님이 시코쿠의 해안을 따라 걸으며 수행한 것이

시초가 된 이길은 연간 15만 명의 순례자들이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찾는 동야의 산티아고 같은

순례지다.

 



 

이 곳을 걷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끝없는 추락의 끝에 다다른 후에 벼락처럼 정신이 들어

도대체 어느 길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알고 싶어...혹은 고단하고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탈것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제발로 걸어 진정한 자신을 만나고 싶어..그리고 지금껏

받아온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제는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에..제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이 길에 들어섰다고 했다.

 

저자인 최송현은 자연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읽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아 그 길로 깊은 산속에 들어 스스로가 자연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산속에 들어갔던 것 처럼 그렇게 시코쿠의 순례길이 접어든

이 작가는 이제 자신이 쓴 이 책이 누군가에게 벼락이 되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순례는 저의 종합병원이에요. 아마도 저는 죽을 때까지 일 년에 적어도 한번은 순례를 다닐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삶은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상처받고 가끔은 놓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딘가에 있을 샹그릴라를 찾아..혹은 부와 명예를 찾아 정신없이 살아가는 동안 정작 참다운 자신을

잃어버리고 이정표도 없는 길위에 내팽겨진 것 같은 막막함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약으로도 사람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병에 걸려 끙끙거리게 될 때...비로소 시코쿠의 순례길이

보일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 놓았을 때...혹은 내려놓을 준비가 되었을 때에만 보일것 같은 이 길이

나에게도 치유의 길이 되어줄 것인가.

 



 

' 순례 길은 그 자체로 훌륭한 도장이었고 그 안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순례자에게는 안내자이자 사범이자

스승이었다. 날씨, 사람, 하늘, 바다, 풀, 벌레, 이야기, 자동차, 강, 바람이란 이름을 가진.' -254p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했던가.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 부처였고 스승이었음을 이제

내가 알겠다.

그가 만난 부처를 나도 만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일본말을 잘해야 할텐데...나는 자신이 없다.

사람의 눈빛을 마음을 읽어내는 재주가 없는 내가 하물며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들의 뜻을 어찌 읽어낼 것인가.

아니 솔직히 '모기여 자네 집이라는 건가 왜 자꾸 무는거야'하며 툭툭 떨쳐버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난 아직 문명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비우고 비바람 몰아치는 시코쿠의 순례길에  흰색의 수의를 닮은

하쿠이를 입고 외로움과 싸우며 걸을 자신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한 집착과 욕심과 인연들이 너무 많아 나는 속물의 걸음으로 그곳을 걷기가 두렵다.

 

'내 영혼은 홀로 있기를. 침묵하기를. 대자연에 마음을 열기를 바랐다. 그것이 내 영혼의 밥이었다.

그것을 통해 내 영혼은 자랐다.' -248p

 

그의 등을 허락도 없이 타고 앉아 시코쿠를 돌아본 것 만으로도 바다거북의 긴 호흡이 느껴졌다.

거북이는 인간을 용서했지만 나는 여전히 복장이 터지고 분노가 끓어 올라 맹수처럼 으르렁 거리기만

하고 시코쿠의 순례길은 오늘에서야 내 시야에 들어왔건만 비겁한 나는 짐을 꾸릴 엄두가 나질 않는다.

멀지 않은 시코쿠의 거리감때문에 핑계거리마저 빈약해진 변명을...오다이시상은 용서해 주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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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 유년의 상처를 끌어안는 치유의 심리학
우르술라 누버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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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이 평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몇 십년에 걸친 추적을 곁들여 풀이해 놓은 책이다.

부모도 자식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자식 역시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부모로 부터 받은 사랑과 관심, 혹은 무관심과 폭력 같은 일들이 아이가 자라 평생 살아갈

그 시간속에 얼만큼 큰 자산으로 혹은 상처로 각인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흔히 잘난 부모, 성공한 부모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족함이 없이 성장하고 사회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드시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모가 훌륭한

부모가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거릿 대처라면 대영제국의 '철의 여왕'이라 불렸던 대단한 여인이었지만 자신의 성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온통 정치에만 관심을 두고 딸에게는 아주 소홀했던 엄마였음을 알게 되었다.

어찌보면 영국국민들은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생명을 주고 핏줄을 나눈 자식에게는 냉혹한 엄마였을 뿐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마이클 잭슨의 아버지나 마리린 몬로의 부모 역시 좋은 부모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예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로 부터 버려지고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역경을 극복한 스타들이

우울증이나 망각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이나 마약으로 인한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성공의 시간들 틈틈이 마치 숨어있던 도둑이 갑자기 나타나듯이 정상적인 생활속에 숨어

들어와 행복을 훔치는 과거의 상처들은 보이지 않는 칼날과도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깊은 구덩이에 빠졌어도 잘 헤치고 나와 칼날에 휘둘리지 않고 성공한 삶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처럼 절망의 끝에서 만난 생부에 의해

혹은 이모나 고모같은 친척이나 다양한 멘토들에 의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한 경우에는 끝까지 자신을 놓아 버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하와이 카우와이 섬에서 태어난 약 7백명의 아이들을 40년 넘게 추적한 결과를 보면

환경이 어려운 여건에서 자란 210명의 아이들중 3분의 2는 부정적인 결과가 나왔지만

3분의 1일은 위험도가 높은 가정에서 자란아이는 실패할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켰다. 인간의 본성에는 고난을 이기고 자신이 자랐던 환경을 자신의 2세만큼은

물려주지 않겠다는 극복의 의지가 있다고 한다.

 

이렇듯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인간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장술이 많고 이기적인지 잘못된 사실을

실제처럼 믿고 기억함으로써 평생의 상처를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기억들을 드러내고 치유함으로써 잘못된 기억을 바로잡고 상처가 있었다면

치유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심한 폭력에 시달렸던 미국의 유명배우 스티브 마틴의 경우를 보면

 

어린 시절의 불행을 많은 사람들에게 당당히 밝히고 불행한 과거가 자신이 예술가가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지금은 흰머리를 휘날리며 코미디영화의 대가가 된 그의 삶자체가 바로 멘토인 것이다.

 

판단이 어렵고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던 어린시절의 무력함은 어쩔수 없다고 치자.

다행히 곁에 손을 잡아주고 능력을 알아주는 멘토가 있었다면 그건 엄청난 행운이다.

하지만 그럴 사람조차 없다고 해도 스스로 소중하게 자신을 관리하자.

 

인생에 고비마다 만나는 구덩이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채 어두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건 순전히 자신의 선택과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길지 않은 인생에서 과거의 상처에만 매달려 도태된다면 엄청난 확률로

이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어린 자식에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부모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가장 큰 복수는 ‘용서’라고 하지 않던가.

유년의 상처를 스스로 따뜻하게 끌어안는 방법만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상처없는 영혼이 어디있으랴’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다면 나 역시 내 아이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탄생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행복한 인생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는 결론이 스스로를 희생자로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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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오금학도 이외수 장편소설 컬렉션 4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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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아름다움을 더하면 소망이 되고 소망에 아름다움을 빼면 욕망이 된다' -237p

 

내게 가진 소망이 혹 욕망이 아니던가.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거리에 쓰레기가 적어질수록 오물은 엉뚱한 곳에 쌓이고 멋지게 차려 입은 옷속에 웅크리고 있는

속물은 가리고 싶어도 자꾸 삐져 나오려고 한다.

 

배고프던 시절에는 밥 한그릇이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쓸데없는 살이 덕지덕지한 요즘, 채워지지

않는 허기는 웬일인지 더욱 극심하기만 하다.

믿든 안 믿든 이 세상에 인류가 등장하기전 부터 존재 했을리라 짐작되는 선계(仙界)에 존재들이

지금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속물들 때문이 아닐까.

 

환상인가, 실제인가 모호한 신비의 세계로 이끄는 흰머리의 소년은 누구인가.

인간의 세상과 선계의 세상을 넘나드는 존재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걸까.

어느날 용이 되지 못하고 이땅에 떨어진 이무기가 산다는 도로무기소 근처에서 사라져버린 소년!

석달만에 나타난 그 소년은 자신이 신선들이 산다는 오학동에 다녀왔노라고 했다.

백학이 천년을 지나면 현학이 되고 현학이 천년을 지나면 금학이 되어 온통 벽오동나무들이 우거진

숲에서 살고 있고 선계의 그림 한장을 그려주며 언젠가 이 그림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다시 올거라고 소년을 되돌려 보냈다던 그곳...과연 그곳이 있을 것인가.

 



 

정신병자로 오해를 받으면서도 소년은 그림을 들고 다니며 자신을 오학동으로 돌려보내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그 사이 세상은 극심하게 썩어가고 신뢰는 병들어 가고 있었지만

선계의 그곳만을 그리며 30년이 지난 어느 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파가 그 단서가 된다.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조종하고 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이 우주의 공간속에 우리의 존재는 티끌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나역시

알수가 없다. 하지만 '오학동'이 어딘가에는 실제하여 희망처럼 군림하기를 바란다.

 

흰머리소년처럼 누군가가 그곳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란다면 꿈으로 끝날 일이었다.

스스로 집착을 버리고 가벼워 짐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그곳!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선계의 오학동과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의 마을이 자꾸 겹쳐졌다.

그곳에도 흰머리 소년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인간쪽이기 보다는 신선쪽에 가까워 보이는 그가 소년이 찾던 바로 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림속 선계의 마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존재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나누어 주는 신선의

모습이 작가와 묘하게 닮아 있지 않은가.

이 작품 이후 그가 수염을 나부끼며 긴 지팡이를 땅에 부딪히며 일갈하는 것 같은 작품들이

나온 것을 보면 과히 틀린 짐작은 아닐 것이다.

꿀맛을 보지 않고도 달다고 말하고 진리를 겉껍질을 잠시 매만져보고는 먹고 사는 일에

바빠 맹꽁이처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그는 오학동의 무덕선인으로 세상을 굽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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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으로 나온 바람난 세계사 - 신화가 된 역사, 전설이 된 역사, 구라가 된 역사
박철규 지음 / 팬덤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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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나 전설이 아닌 역사 속에서 황당하고 텁텁한 이야기만을 골라 담았다는 저자의 소개글처럼

그야말로 텁텁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살찐 종년 양귀비'에서는 동양의 미인이라고 소문난 양귀비나 그리스 로마시대의 미인들은

풍만하였다니 유행은 돌고 돈다는데 왜 풍만의 시대의 오지 않는 것인지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인류가 땅에 발을 딛기 전 나무위의 원숭이였던 시절에는 나무에 시신을 걸쳐놓았다가 비로소 땅에

발을 딛고 나서부터 '화장'이란 장례풍습이 생겨났다는 것도 참 흥미있는 사실이다.

아직 세계어디에선가 식인문화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도

첨 들어보는 말이다.

 

목수가 취미였던 군주들은 어김없이 나라를 말아먹었다니..우연치고는 댓가가 너무 크다.

자자의 일침이 더 재미있다. '목수가 취미라면 망할 것이고 직업이라면 흥할 것이다.'

혹시라도 목수일이 취미인 사람이 대통령후보가 된다면 얼른 사퇴를 시켜야겠다.

 

자신이 '악처'라고 생각한다면 한번 귀기울여 들을 일이다.

강태공은 은나라 사람으로 소금과 밀가루를 팔던 사람이었는데 마누라한테 몽둥이를 맞고

쫓겨나 할수 없이 낚시터에서 소일할 수 밖에 없었단다.

그 낚시터에서 주나라 문왕을 만나 위대한 정치가가 되었으니..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역시 악처의 표본이 아닌가. 위대한 철학자가 당대 고급 창부

아스파시아집에 드나들다가 들켰다니 어느 여자가 악처가 안되겠는가.

그 역시 악처의 등쌀에 못이겨 집에서 나와 광장에서 소일하다보니 토론하게 되고..

그러다가 위대한 철학가로 역사에 남았다.

혹시 남편을 출세시키고 싶다면 '악처'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수많은 역사서에서 이렇게 맛깔스런 이야기를 골라낼만큼 저자의 독서량은 어마어마 할 것이다.

이야기 말미에 따끔한 일침들도 너무 재미있다. 조선시대에 양반의 체면을 세우느라 싫은 척 했던 돈을

유통시키기 위해 주막을 세웠다는데 요즘 이 주막이 없어져서 서운했다는 말에 주당의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엄청난 사건들의 이면에는 아주 사소한 원인이 있었다는 것도 이미 예정된 운명이었다면

어찌 그 길을 비켜갈 수 있겠는가.

 

'마음 비우기를 말 한마디로 될 성이나 싶은가?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제 속만 내보일 뿐

아니라 구업(口業), 입으로 죄를 짓게 된다.' -205p

 

역사를 돌아보게 되면 말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깨달은 저자의 따끔한 가르침이 맘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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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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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지 4년 늦게 생긴 아이를 위해 한적한 교외의 주택단지로 이사온
남자는 어느 날 부터인가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의 낯선 향기를 느끼기 시작한다.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일까.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던 어느 날 칫솔을
물고 있는 남자와 마주쳤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제 할일을
마친 다음 욕실바닥의 문을 열고 사라진다.

불경기에 실적을 바닥을 치고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남자는 시말서를 쓰기 직전
업무계획서를 제출하라는 과장의 압력에 밤을 세우며 계획서를 쓰는데...
얼마전 지방의 지사에서 전근온 늙다리 사원의 실수로 밤새 작성한 자료가
날아가는데...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 사원은 염려말라며 남자를 안심시킨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보니 어느새 출근시간..계획서를 끝내지 못한 그남자는
과연 해고를 당할 것인가.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하여 어린 동생을 키우며 살림을 도맡아 했던 한 여자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입에 취직을 했다. 가뜩이나 여성일자리가 부족한
요즘에 남자 못지 않은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젊음을 바쳐 일했건만...어느 날, 불황속에
허덕이던 회사에서는 해고를 통보하고..이제 그녀는 남성위주의 사회에 선전포고를 한다.

직장이 정년을 보장해 주던 시절은 끝났다. 맘에 안들면 옮기면 그뿐인 직장일 뿐.
골치아프게 묶여 일할 필요가 있을까. 그때 그때 필요한 곳에 가서 내 능력을 팔면 더
효율적일텐데...끈끈한 동료의식보다, 강요된 애사심보다...자유를 선택한 그들의 미래는?

구두통을 메고 '구두닦으세요'라고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길을 걷다가
누군가 천조각을 구두에 들이대며 구두를 닦아준다면....조심할 일이다.
현대판 구두닦이냐고? 아니 총만 안들었지 신종 '슈샤인 갱'임이 분명하다.
억지로 구두닦은 값을 치를 자신이 없다면 무조건 도망가고 볼 일이다.

표제작 '마루밑 남자'를 비롯하여 다섯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한때 이코노미 애니멀로
불렸던 일본의 패망이후 경제를 이끌었던 일중독자들이 그 모티브이다.
오로지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고 가난한 가정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배고픈 시절을 이겨낸 후에도 습관처럼 일속에 묻혀 지내고 있을 때,
바로 자신의 힘으로 밥을 먹이고 부를 얻었던 사람들이 단지 자신에게 무관심하다는 이유로
등을 돌린 이야기이다. 문제는 이 소설속의 이야기가 지금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 비해 일하는 시간도 줄어 들었고 가정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가장이나 오피스맨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이 다섯가지 이야기중에 혹시 내이야기가 있는지 잘 살펴볼 일이다.
상사의 눈치를 이겨내면서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젊음을 바치고 건강을 바치고 그렇게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그러다가...소외되었다고 느낀 가족들과는 커다란 벽이 쌓이고...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게 먹히고 쓸만큼 써먹었다고 느낀 회사에서는 퇴물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어디에도 하소연 할곳이 없어 술과 벗하다 보면 어느새 외톨이가 되어버린 쓸쓸한 '나'
만 남아있는 건은 아닌지...말이다.

이 책을 '재미없다'고 하신다면 더 이상 추천해드릴 책이 없습니다. 라고 원서 띠지에 있다는
카피는 단지 '재미'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블랙코미디같은 씁쓸함으로 이해하고 싶다.
자칫 소외되고 도태된 삶으로 막을 내릴뻔 했던 사람들이 기가막힌 반전을 펼쳐 승리를
쟁취하거나 찾아가는 과정이 통쾌하달까.
어차피 인생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기득권자들의 헛점을 찾아내어
교묘하게 역공을 펼수만 있다면 나도 그들과 함께 연맹을 조직하여 반군이 되고 싶어진다.
내가 발 붙일 공간이 좁아질수록 사람 대접 받을 일이 적어 질수록..
'마루밑 남자'처럼 어둠속에 기생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다면 나름의 총을 들고
선전포고를 하고 싶다.
'모두 손들어! 내 젊음과 열정을 먹고 비대해진 권력들이여...아직 살아있는 나의 매운맛을
보여주마!' 동참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나에게 연락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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