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개정판
셔윈 B. 뉴랜드 지음, 명희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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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마지막 날 아침! 이 책을 덮으면서 불과 10여시간 후면 다가올 2011년의 시간들은
그동안의 시간들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2,3년전쯤부터 유난히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안타까운 죽음들이 줄을 이어서 였는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죽음'에 대한 책들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왔던 것 같다.
'죽기전에 해야 할`' 같은 책을 보면서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하고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는 의미있는 주제를 만난 기회였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인간이라면..아니 살아 있는 것들이라면 언젠가 맞닥뜨릴 죽음을
이런 시각으로 씌여진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저자 자신이 50여년간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아 온 의사이기 때문에 이런 주제의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명예로운 '의사'라는 직업을 사실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건강한 사람보다는 아픈 환자들을 만나고 탄생의 기쁨보다는 슬픈 죽음의
현장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싫었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80%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7가지정도의
병으로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은 그가 죽음의 현장과 얼마나 가깝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전통 유대교를 믿는 종교인으로,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 때로는 존엄한 죽음이 과연 고통스런
생명의 연장보다 더 의미가 있는 일인지 고민하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고뇌가 깊게 느껴졌다.
사랑했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이모와 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면서
삶을 마무리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환자에게는 냉철한 의사의 모습이었으면서도
정작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에게는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을 후회하면서 이렇듯
죽음은, 아니 고통스런 결말은 죽어간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전도서-

현대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긴 했지만 의학적인 시각으로 인간의 수명은 최대 110살까지로
본다고 한다. 우리는 결코 그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 길이 고통스럽지 않고 평안하고 아름답길 바란다.
하지만 그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실제로 평화롭지 않았다고 했다.
사후세계를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육체적인 고통이나 상실감이 없이 고요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죽음에 이르는 가장 마지막의 순간 인체는
고통을 극복하려는 메카니즘의 발현으로 스스로 고통을 차단하거나 심지어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엔돌핀을 분비한다는 것이 입증되기도 했단다.

하지만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중요한 질병의 원인 7가지를 보면 어느 것 하나도 육체적인
고통이 없는 질병은 없었다. 죽음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산소의 결핍'에 이르는 길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극심한 통증과 의식불명, 때로는 과연 살아생전 이 사람이 품위를
지키며 살아왔던 신체인가를 의심할 만큼 변해져가는 육체의 극심한 손상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떠났던 온유하고 사랑스러웠던 신사 '필'의
사례였다. 너무나 성실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을 지나왔건만 어느 순간부터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추한 기억만을 남기고 떠나야했던 기록들은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차라리 한순간에 심장마비로 죽거나 암에게 먹히는 편이 훨씬 나을 듯 했다.
자신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것도 모자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떠나야 하는
그런 질병에 걸릴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어남이 선택이 아니었듯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제외하고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역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이다.

아흔두 살의 웰치의 치료기는 현대의학과 인간의 존엄성, 어디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안긴다. 웰치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수술과 치료로 얼마간의 생명연장이 가능했다.
저자는 당연히 의사의 본분으로서 살아온 동안 건강하게 잘 살아왔고 더 이상의 욕심이 필요없다는
웰치를 설득하여 수술을 했다. 하지만 수술후 회복하기까지의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던 웰치에게는
생명의 연장을 얻는 대신 고통스런 시간을 얻었을 뿐이었다.
의사로서 최선의 선택으로 그녀에게 돌려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웰치에게 최고 이익을 주고 싶었지만 '간섭주의'에 말려 들어 잘못된 결정이 아니었다 하는 의문.
바로 그것이 그가 승리자였는지 패배자였는지 판단하기 힘든 딜레마이다.

자연은 자신이 갈 길을 묵묵히 갈뿐이다. 그 자연적인 순환에 의해 우리는 숨을 멈춰야만 한다.
그의 환자였던 로버트처럼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죽기전까지 최선을 다해 재미있게 살았던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앞에 이렇게 초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죽음을 보면서 지금의 내 삶을 바라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수확이었다.
다만 존엄성 있는 죽음이 내게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목숨연장을 위해 그 어떤 기계장치나 CPR을 하지 말라는 유서를 썼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가슴에 깊히 와 닿는 것은 오늘이 2010년 마지막 날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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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영은 잘있다!
박인성 지음 / 삼우반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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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인성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은밀한 교과서'로 손꼽혀온 작품들을 썼다는 그에 대해서는
책을 많이 읽는다는 독자에게도 많이 알려진 작가가 아니었다.
약관의 21세에 등단한 이후 단 4권의 작품집만을 남긴 과작(寡作)의 작가였다.
'이채영은 잘있다'라고 제목을 붙인 이 작품은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불야성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상수동과 한옥마을이 있는 가회동,
한양으로 들어오던 가파른 재위에 이제는 아파트 숲이 얹혀 있는 홍은동,
룸살롱이 많아서 역시 신사들이 많이 드나든다는 신사동, 검은 돌이 많이 나와
이름붙여진 흑석동은 이제 재개발의 현수막이 펄럭거리는 짭짤한 땅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듯 서울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동(洞)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은 무엇일까.

일찌감치 물려받은 아파트를 근거로 팔리지 않는 나무만을 그리면서 늙어가고 있는
상수동파..아니 하수동파로 자조적으로 칭하며 어느새 터줏대감이 된 55세의 덕동선생과
'텐'의 멤버들의 몰락기이다.
진정한 예술을 꿈꾸고 자신의 예술성만으로도 충만한 인생을 꿈꾸었던 예술가들의 다양한
삶을 볼 수 있다. 33평아파트가 전세가 되고 다시 월세가 되어가는 현실에서도 붓을 꺾지 못하는
덕동화백과 1년에 단편 한편도 못 쓰고 있는 소설가, 히트작 비슷한 것 하나도 없는 작곡가등등..
새롭게 부상한 잘나가는 예술가 그룹 '상수동 텐'그룹과의 맞장뜨기 장면은 작금의 예술인들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한다. 상서로운 물로 병든 모친을 살려내어 상수동이 되었다는 그 곳에서
이제는 퇴락한 화가 덕동은 팔순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그가 그리고자 했던 나무가 있는 숲에
보금자리를 꾸릴 모양이다.

문학의 꿈을 끝끝내 접지 못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박'이 연로한 교수가 살고 있는 흑석동 자택에
수학하러 다녔던 시절의 이야기 '이채영은 잘 있다'는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제법 잘 나가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이면서도 노벨문학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스웨덴어과를
전공했던 초심만은 어쩌지못해 조금은 불성실한 대학원생이 되어버린 그가 만났던 여자 '이채영'
'골형성부전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면서도 민들레 꽃시같은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대학전임강사가 되고 시인이 되었지만 끝내 골수암으로 세상을 뜨고 만다.
그녀의 부고를 알면서도 '이채영은 잘 있다'라고 홀로 중얼거렸던 작가의 마음은 그녀를
사랑했던 자신의 맘속에 그녀를 영원히 살려놓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그렇게 그녀를 살려 놓고 싶었던 그였지만 이 책이 출간 될 즈음 결국 그녀가 갔던 그 길로 가고
말았단다. 또 다른 동(洞)의 연작과 장편을 쓰고 싶었다던 그의 소망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얼마전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스폰서검사의 뇌물사건을 메아리 전파사 아저씨의 호기심으로
풀어낸 방식은 진실을 알고 싶어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갈증을 어느정도 달래주었다.
아마 작가가 그린 그 모습대로 사건은 벌어졌을 것이다. 다만 검사가 속한 7인회의 유일한
아웃사이더 작가의 반전이 통쾌할 뿐이다.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신설동'은 작가의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담담히 펼쳐져 있다.
자신의 실수로 화상의 흔적을 갖게된 여동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히 전해져 온다.

이 서평을 쓰기위해 작가를 검색하고 그의 유고를 알게 되면서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채영'이라는 여자를 앞에 세우고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쓴 셈이다.
8편의 연작에서는 늘 그의 모습이 보였다. 고작 전세 아파트 한 채가 고작인 중년의 남자가
사회의 뒷편에서 사라질 시간들이 가까워질 즈음 일탈처럼 떠난 여행에서 만난 여자와
꿈같은 사랑을 꿈꿔보는 '지천명이 장난이야-아키타'편에서는 자꾸 그의 모습이 겹쳐졌다.
결국 꿈이 꿈으로만 막을 내리고 헤어질 때 그 남자가 했던 말이 작가 자신의 말처럼 귓가에 울렸다.

" 그냥 각자 가요. 뒷모습 보지 말고요."

이 책을 바치고 싶었던 두 사람은 아들 딸이 아니었을까.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동(洞)의 연작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순수 문학가로 남은 그가 하늘에서 편히 쉬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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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남은 영웅 롬멜 - 그의 드라마틱한 삶과 카리스마 넘치는 창조적 리더십 KODEF 안보총서 37
찰스 메신저 지음, 한상석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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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요한네스 오이겐 롬멜(1891. 11.15~1944. 10.14)은 ‘사막의 여우’는 별명이

붙은 영웅이다. 그가 사막에서 전차전과 전격기술에도 뛰어났지만 결정적으로 기만전술에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트럭으로 모래바람을 일으켜 전차가 달리는 것 처럼 꾸미거나

전차 모형을 설치하여 적을 속이는 등 적을 기만하는 방법이 마치 여우처럼 능수능란하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전쟁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히틀러’이지만 히틀러가 세계를

정복하고자 하는 헛된 망상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인물이 바로 ‘롬멜’이기도 하다.

그의 승리가 없었다면 히틀러는 독일의 총통으로 명예로운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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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은 그 시절 독일군부의 주류였던 프로이센의 귀족출신 장교도 아니었고 원하던 포병조차

인맥이 없어 보병으로 입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아웃사이더 였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군인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태어난 사나이였다.

명령문서를 짧게 작성하고 명령은 분명하게 정의하여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부하들에게 최대한 재량권을 주는 등 그가 속한 부대의 군인들은 그가 나타나기만 해도

존경의 눈길을 보낼 만큼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춘 장교였다.

그를 발탁한 히틀러였지만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불운한 군인이기도 하다.

그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롬멜 역시 히틀러에게 개인적으로 충성을 맹세했는데 ‘옳든 그르든 나의 조국’

독일이기 때문에 그가 신화를 창조하려는 나치정권에게 이용당하는 걸 알면서도 오로지 승리만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아내와 루시에와 떨어져 전쟁에 뛰어든 고독한 군인이었다.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을 보면

고단한 전장터에서 건강을 잃을 정도로 강행군을 하면서도 친구처럼 아내와 소통하고 짧게라도 소식을

전하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아내입장에서 보면 그는 훌륭한 남편은 결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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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전쟁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그의 인생의 주무대였던 전장의 현장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

고단했을 그의 인생이 느껴져왔다.

부상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도 다시 그 현장으로 뛰어들어가는 그의 용기는

오히려 무모함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 찰스 메신저는 롬멜의 전술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어 탁원한 전술과

용기를 본받아 리더로서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아쉽게도 패전국의 장수이긴 했지만 전쟁의 현장에서 돋보인 전략가로서의 그의 삶은

확실히 우리 인생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상관이 명령하면 토를 달지 않고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게 맞지 않거나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명령도...‘-266p

 


공군보조요원으로 동원될 15살이 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명령할 때마다 그 이유를 설명할

여유가 없다던 대목에서는 상관으로서의 고뇌가 엿보인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이미 전쟁에 뛰어 들었다면 적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계획을

결정하여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롬멜은 ‘예리한 직관력’을 발휘했다.

특히 적의 결정적인 약점을 감지해내는 그의 능력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운 좋게도 몸에 밴 본능 같은 것이었다.

전장에서의 승리는 먼저 공격하는 편의 것이며 납작 엎드려서 상황을 지켜보는 자는 기껏해야 2등에

그치게 된다는 그의 소신은 수많은 승리를 불러왔고 최연소 육군 원수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의 이런 성공을 시샘하는 내부의 적들이 등장한다.

그가 많은 권한을 갖고 많은 부대를 지휘하는 것을 시기했던 세력은 외부의 적들보다 더 비겁했다.

 


‘한 군대의 종말치고는 얼마나 수치스러운 종말인가!’

 

이탈리아 군이 무장 해제되고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보내졌을 때 했던 롬멜의 말은

결국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말이 되고 말았다.

독일 국민들에게 전쟁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었던 롬멜은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재판을 선택하면 아내와 아들이 고통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전쟁의 영웅이 전장의 현장에서 영예로운 죽음을 맞지 못하고 패배자들에 의해 수치스런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면에서 전장에서의 총탄보다 인간들의 이기심이 더 큰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하기는 롬멜이 지향했던 군인으로서의 승리가 없다면 패배자일 뿐이다.

후에 일어난 세계대전의 마무리를 보면 전범재판장에 서서 몰락하는 영웅을 보기 보다는

고통없이 택한 죽음이 나을지도 모를일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죽지 않고 남아 이렇게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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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전략가로서 자신들의 군인을 소중하게 여기고 부하들과 똑같은 식사를 하고 진흙에 빠진

차량을 손수 끌어내기 위해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참된 군인으로서의 삶을 존경한다.

비록 전쟁을 일으킨 적국의 장수였지만 비록 비극적인 죽음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그의 전장터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과 다르지 않음으로..그의 여우처럼 능수능란한 전략을 배워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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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의 희망 메시지 365
O, 오프라 매거진 편집부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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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쇼에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네들은 모두 한 가지의 꿈을 가지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오프라는 그네들 한 사람에게 3200만원쯤 하는 차를 선물하기로 되어 있었다.

오프라는 단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 곳에 모인 276명 모두에게 새 차를 선물한 것이다.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꿈의 이야기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그녀의 일상을 보면 동네 어디에서나 마주칠법한

평범하고도 푸근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딴세상의 이야기같기만 하다.

 

사실 그녀의 과거는 오히려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실패한 삶이 약속된 천형이 되었어야 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늦게나마 그녀의 손을 잡아주긴 했지만 결국 그녀의 미래는 그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그녀의 성공한 미래로 가는 길에는 책도 있다고 했었다.

그 말이 묘하게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미래, 그리고 이끌어주지 못한 미래를

책에서 끌어낼 수 있었던 그녀의 재능과 보이지 않는 힘같은 것이 내게도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그녀의 삶을 성공으로 이끈 책과 주변사람들에게서 골라낸 빛나는 메시지 365편이 내게로 왔다.

단지 1년이 365일이어서 이 정도였을 것이다. 500일이었다면 그녀는 또 그만큼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다.

그녀가 지나온 길에 있었던 수많은 메시지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우리도 매일 수많은 메시지를 만나고 있다. 단지 그 메시지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할 뿐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을 앞서간 수많은 성공한 인물들이 흘리고 간 메시지가 어디 한 둘 이겠는가.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의 메시지가 이토록 우리에게 와 닿는 이유는 그녀 자신의 삶이 드라마이기 때문이고

꿈이 꿈으로만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마법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목표를 정하고 실천에 옮긴 후에야 비로소 담대한 꿈이 그 뒤를 따릅니다.' 오프라 윈프리

 

그녀와 평범한 우리가 다른 것은 바로 실천일 것이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실천력이 그녀의 성공이 되었다.

 

빛나는 재능은 있었지만 여자작가로는 절대 등단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남자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했던

프랑스의 여류작가 조르주 상주의 메시지가 특히 내게 더 다가왔다.

 

'나이 먹는 것이 내리막길을 내려가 점점 사라지는 과정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큰 오산이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나이 먹어감에 따라 사람은 놀랄 만큼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갑니다.' -316p

 

오프라 그녀도 말했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내게 일어났던 사건 중 최고에요. 다시 시작하고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를 안고 여전히 이곳 지상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큰 기쁨을 느껴요.'

 

그녀의 눈으로 나이 들어가는 삶을 바라보면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기쁨이며 감사인 모양이다.

그녀의 이 말이 내 맘을 붙드는 건 나는 이렇게 나이들어 가는 내 삶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런 다름이 그녀가 나와는 다른 산의 정상에 서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은 절대 나이들지 않고 싱싱하게 100년 200년 대물림이 되는 책이 될 것이다.

그 어느시대 어느 사람을 만나건 이 메시지의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만큼 그녀가 우리에게

전하는 365개의 메시지는 영원히 살아서 사람들의 미래를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알겠다.

다만 이 메시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숙제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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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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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열한 살짜리 소년 디아만테와 아홉 살 소녀 비타는 고향인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의 엘리스 섬에 도착한다.

자식을 다섯이나 굶겨 죽일 정도로 가난한 석공의 아들인 디아만테는 오로지 동생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생각과

의지 하나만으로 미국에서의 힘겹고 험난한 생활을 버텨나간다.

똑똑하고 강인하고 고지식한 디아만테가 꿈꾸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이다.

비타는 감성적이고 즉흥적이고 다혈질이다. 비타에게 유일한 남자였던 디아만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디아만테는 10년이란 시간을 댓가로 지불하고서야 진정한 미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패배자가 되어 이탈리아로 되돌아 오지만 그 후의 삶도 밝지 않았다.

단지 그의 후손들에게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물려주었을 뿐이었다.

비타는 이탈리아로 떠난 디아만테가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대서양을 건너 그에게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는 했다. 38년후이긴 했지만.

 



 

비타와 디아만테의 이야기는 20세기 초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해 간 가난한 이탈리아인들의

이민사이다. 그 시절 가난과 극심한 차별에 시달렸던 이탈리아 남부출신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인 멜라니아 마추코의 할아버지이기도 했던 디아만테의 실패한 삶이 사실 후손들이 누렸던 자유로운 삶의

씨앗이었음을 증명했다. 그녀가 되짚어 나간 디아만테의 삶은 자신의 핏줄의 기록이었고 할아버지가 댓가로

지불한 10년간의 삶이 결코 의미가 없는 일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판결서의 기초가 되었다.

 

비타의 아름다움은 강인하고 자유로운 영혼때문에 더욱 빛났을 것이다. 그녀를 사랑했던 세사람의 남자는

그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이탈리아인들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 부와 권력을 누린 로코, 어둔 광산에서 성실하게 일한 댓가로 팔 하나와 7천달러를

얻은 제레미아는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가 풍족한 삶을 살고자 했던 꿈을 접고 미국에 정착한다.

그리고 비타가 유일하게 붙잡고 싶었던 사랑의 남자 디아만테는 그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아마  대부분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삶이 이 세남자의 삶과 닮았을 것이다.

4년을 노예처럼 일하고도 고작 30달러만을 손에 쥔 디아만테의 삶이 또한  그 시절 그들의 삶고 비슷했을 것이다.

 

사랑은 인생을 충만하게 하지만 때로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평생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디아만테와 비타의 삶은 불행했을까.

아니면 사랑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을까.

비록 늦었지만 대서양을 건너 그에게 온 비타의 손을 왜 잡아주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을 찾았던 다이 대위에게 자신이 아버지임을 말해주지 못하고 끝내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는지...묻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을 붙들지 못했던 디아만테의 초라해 보이는 삶은 자신의 손녀의 책속에서

강인함과 섬세함을 지닌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00년간의 궤적을 따라 할아버지와 자신의 핏줄,

아니 그 시대 이탈리아인들이 선택한 삶에 타당성을 증거한 작가의 정신이 너무도 감동스럽게 다가온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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