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를 봤다 - 개정판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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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 마흔 한개의 퍼즐조각이 널려있다. 과연 어떤 그림이 나타날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복잡한 머리를 잠시 붙들어두고 몰입하는데 최고라는 퍼즐조각들이 1000피스이상이라는데

마흔 한개 쯤이야 한 두시간이면 뚝딱 맞춰지지 않겠는가.

문제는 분명 조각은 마흔 한 개인데 한 개의 퍼즐조각을 들어 올리면 한 뿌리에서 줄줄이 매달려 나오는

고구마처럼 숨겨진 것들이 연달아 끌려나오는 데 있었다.

 

돈을 먼저 받으면 돈 쓰느라 바빠 원고에 손을 댈 수가 없다면서도 미리 원고료를 받지 않으면 사람이

시시해지는 것 같고 책임감마저 없어지는 것 같아 미리 받아 써버린 계약금 원고 독촉에 어디로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는 소설가가 우선 이 소설을 완성시킨 화자로 등장한다.

얼핏 소설가 자신이 아닌가 싶게 술 좋아하고 사람좋아하고 바람처럼 떠돌기를 좋아하든 화자는

'대한민국 대표 명사 인명록 대사전 편찬위원회'는 곳에서 보낸 편지글을 보면서 쌍팔년도 적에 이미

자신의 아버지에게 써먹은 수법으로 수작을 걸어온 편지를 보면서 한동안 잠잠하던 이용원임을 알게된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은 장군 집안 후손의 막내아들 이용원은 장성하여 고향을 탈출하여 회사를 다니다가

개인 사업을 벌이지만 도무지 세상물정 모르는 중증환자인 그의 사업은 창업과 폐업을 번갈아 하며

그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퍼즐 조각처럼 엮어져 있다.

 

가난한 시골집안에 오로지 잘 한 일이라고는 아이들 아홉을 생산해낸 아버지와 그의 딸과 막내 아들,

그 막내아들이 키워낸 염소를 거래하는 업자와 만병통치약을 개발하여 팔아먹는 영업사원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이 찾아간 하우스맥주집 사장까지...

처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맞춰나갔던 퍼즐조각들이 어느순간 이곳에도 맞는 것 같고 저곳인 듯도 싶게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노화억제물질인 '콘드로이틴 전문가'와 몽골식 천막으로 전원에 집을 마련한

사나이가 같은 인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분명 이 작품을 쓴 소설가든 화자로 등장한 강현수든 분명 호랑이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경험하긴 한 모양이다. 워낙 방량벽이 있는 사람들이니 깊은 산속 어디엔가에서 뭔가 휙 스치는

검은 물체를 본적도 있을 것이다. 기가 허해 헛것을 보았든 이미 우리땅에서는 전멸한 것으로

알려진 호랑이였든...기어이 그들이 호랑이였다고 우긴들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호랑이를 봤다'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하긴 그 호랑이라는 것이 어찌 깊은 산중에만 있을 것인가 도무지 야생의 것들은

살아내지 못할 도시에서도 우리는 무수한 '호랑이'를 만난다. 단지 워낙 영물이라 모습을 수시로

바꾸어 나타날 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라는 속담이 여전히 존해하는 것을 보면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 호랑이는 있다.

 

대체로 실패담이 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하니 분명 비극쪽에 가까워야 할 이야기들이 이상하게 희극처럼

느껴진다. 가장 많은 실패를 경험한 이용원은 타고난 긍정으로 자신은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믿으면서

여전히 어디에선가 새로운 사업을 구상중일 것이고 그의 주변사람들은 그가 어느 날 불쑥 어떤 물건을

들고 나타날지 궁금해 하면서 지내고 있을 것이다. 단지 똥물이 자신을 비켜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옷만 바꿔입었다 뿐이지 여전히 예전에도 지금도 미래의 어느 날에도 존재할 이용원과 그의 무리들은

본 적이 있는 것고 같고 봤지만 기억은 안나는 호랑이와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난 호랑이를 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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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외롭구나 (Plus Edition)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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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화사하고 천지에 꽃 봉우리가 화려한 자태를 펼치자고 눈치를 보는 요즘

북풍한설같은 겨울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부지기수이다.

이태백이니 백조니 하는 서러운 꼬리표를 달고 휘적휘적 길을 걷다가 문득 이런

글귀를 본다면 어떤 마음일 들까.

 

'너, 외롭구나!'

 

갑자기 눈물이 핑그르 돌고 차디찬 가슴속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은 푸근함이 몰려들지

않을까.

 



 

'청춘'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충만이 넘쳐야 할 그들이 지금 처절한 소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마치 루저가 된 듯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하고 밀려난 듯한, 아니 밀려날 자리조차 가져보지 못한 변방인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한 남자가 '앓음다운 청춘에게'라며 말을 걸어왔다.

얼핏 다정하게 어깨라도 두르거나 허그를 하거나 손을 잡아주거나 술이라도 한잔 사줄 것 같이 '너 외롭구나'

하며 다가서는 그에게 절대 뒤를 보여서는 안된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너 왜 그러고 사니..뭐 될래.'하면서

뒤통수를 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롭거나 괴롭거나 소외감을 느낄 때 누군가 말을 걸어주고

관심을 보이면 와락 안기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남자는 흔히 말하는 '까도남'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선 그의 이력이 남다르다.

 



 

홍대 미대를 졸업한 아티스트이긴한데 황신혜밴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지 않나 한동안 연극에 미쳐 백상예술대상

남자배우 인기상을 수상하지를 않나..글도 쓰고 책도 만들고..도대체 어디도 튈지 알 수 없는 종합엔터테이너이다.

나이도 만만치 않다. 마흔언저리쯤 되었으니까 이미 중년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그에게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

아마 새벽시장에 나가 생선을 팔으라고 한다면 그것도 못해낼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에게 열정을 느껴서일까. 많은 젊은이들이 하소연을 해오는 모양이다.

 

"저는 토익점수도 높고 학벌도 빵빵하고 포트폴리오도 그럴싸한데 왜 취직이 안되는 걸까요?

 왜 세상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죠? 정말 불공평하고 억울합니다."

 

"아 저런 너무 안되었군요. 원래 세상이 불공평합니다.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드문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했다면 얼른 꿈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란다.

 

"당신의 포트폴리오가 정말 최선입니까? 혹시 이력서에 적힐 화려한 수식어에만 매달려서 허세만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니구요? 꿈 깨세요. 그런 프트폴리오는 수두룩한 세상입니다. 차별화된 당신만의

뭔가가 있습니까? 목숨하고 바꿀만한 열정이 있느냐구요."

이것도 좀 순화시켜 표현된 대답이다.

대학에 오니 실망스러워서 자퇴를 해야하나, 유학을 가야하나..전공을 바꿔야 하나...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볼까요?....정말 대답을 구하는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다니...하긴 나도 늘 누군가에게 질문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걸 아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빙 둘러가지 않고 시간도 절약되고 머리에 콕 박힐만큼 강력한 대답을 들려준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요? 하지만 그와 나는 너무 달라요. 나이가 있으니 결혼을 해야 할까요?"

 

"자기와 같은 취향을 갖길 바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사귀지 마세요. 그런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이고

자기의 분신을 찾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기

같은 사람이 또 한 명 있었으면 하는거죠."

 

다정다감한 형이나 아버지같은 멘토를 기대했다면 얼른 책을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 대답은 이미 우리가 알고있다. 인정하기 싫어도 고개숙이기 싫어도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젊은이라면 자꾸 딴지를 걸어와도 끝까지 놓지 말고 읽어보자.

라이트 훅 레프트 훅 스트레이트까지 흠씬 두들겨 맞고 나면 포장지가 걷히고 속살 뽀얗게

들어난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혹은 어떤 처방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냥 찌질이로 살면서 세상만 원망하려면 도망치면 그 뿐이다.

쓰고 맵고 아픈 충고가 가장 뜨거운 애정의 선물임을 알게 되는 순간 드디어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준비가 된 것이다. 자 뜨거운 청춘이여! 준비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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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탄력성 -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유쾌한 비밀
김주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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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들이 한 번쯤은 오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이든 타의에 의해서든 절망은 예고없이 찾아들어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고 기어이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절망을 기회의 시간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누구나 절망을 쉽게 이기는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심리학에서는 역경을 이겨내는 힘을 회복탄력성(resilience)라고

부르고 그 요인을 7가지로 나누어 회복탄력성지수(RQ)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7가지는 감정조절력, 충동통제력, 긍정성, 원인분석력, 공감능력,

자아확장력, 소통능력입니다.

이 회복탄력성지수가 높은 사람 일수록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 뿐만 아니라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과연 여러분의 회복탄력성지수는 몇 일까요?

RQ가 높은 사람일수록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합니다.

혹시 감사한 일이 없거나 무엇을 보거나 느끼거나 해도 행복하지 않다면

분명 당신의 회복탄력성지수는 낮을 것입니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의 50%는 유전적 요인이고 10%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나머지 40%를 차지하는 학습에 의한 낙관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훈련에 의해서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기를 수 있고, 그것이 나머지 60%의 요인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학습에 의해 절망을 딛고 일어날 수 있게 하는 힘인 희망, 즉 ‘목표성 있는 낙관성’을 되찾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의 이상묵 교수는 국비 장학생으로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전도 유망한

해양지질학자였습니다. 전세계 바다 곳곳을 누비며 세계적인 학자들과 여러 공동 연구를 진행하던

그가 한창 일할 나이인 45세 되던 2006년 여름. 머나먼 미국 땅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고

전신마비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받아들입니다.

결국 6개월만에 일상생활에 복귀하는 놀라운 회복탄력성을 보여주게 됩니다.

 



 

"일밖에 모르던 내가 사고 후에 오히려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행운아입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강의와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보조재활공학센터를 만들어 장애인을 위한

기술개발을 시작했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사고를 불운의 시작이라고 보지 않고, 몰랐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인생

방향의 전환이라고 역설하며 장애인 학생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희망메이커가 된 그의

놀라운 인생반전기는 바로 그가 가진 회복탄력성지수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절망과 불행을 희망과 행복으로 반전시키는 ’회복탄력성’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신의 ’회복탄력성지수’를 높힐수 있는지 이 책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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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비추는 경영학
시어도어 레빗 지음, 정준희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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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뒤숭숭할 수록 미래에 대한 비전이 불투명할 수록 우리는 조바심이 난다.

과거에 비해 인류는 확실히 더 많은 것들을 얻었고 부(富)를 향한 욕구는 더욱 극심해지고

정보는 넘치고 있다. 확실히 예전의 시간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보다 향후의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나쁜 일은 즉시 일어나는 반면 좋은 일은 필요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래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먼 미래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지금 세계가 처한 상황을 보면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선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온 역사를 보면

미래학자들의 이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유명한 미래학자나 경제학자들의 예언서 중에는 석유나 우주에 대해, 혹은 전범인 나치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리라는 것을 예견한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과거 100년동안 일어났던 일들은 앞으로 20~30년후면 이루어질 만큼 초스피드의 시대에서

미래를 예견 한다는 것은 모험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역동적이거나 불규칙바운드된 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상 불가능한 상황들이 수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선 일본의 대지진같은 사건도 예견이 되긴 했지만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클지는

제대로 예측이 되지 못했다. 단순히 경제적인 손실뿐만이아니라 방사능이 우리 인류에게

어떤 영향이 올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예측불허의 미래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어찌보면 우리 모두는 경영자이다. 반드시 거대한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만이 경영인은 아닌 것이다.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든 가정을 운영하든 자신을 포함한 뭔가를 조정하고 조율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하버드 경영학 대가의 '아주 특별한 경영수업'은 미래를 대비하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넘어서서 앞서가는 경영인이 되려면

우리가 보고 듣고 누리는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고 활용하고 스스로 변화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제 지구는 같은 생활권에 있는 이웃이다. 자신만의 색깔로 살아가기 보다는 각 민족이 가진

고유의 특성까지도 이해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리자들은 좀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지만 덜 알아야 하는 것들도 있다' -156p

저자의 이런 조언은 또 다른 숙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어떤 것은 많이 알아야 하고 어떤 것은 덜 알아야

하는가. 그 해답은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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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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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만큼 포근한 곳은 없다. 하지만 도시가 고향인 나는 '바다'가 고향처럼 포근하게 느껴진다.

바다가 고향인 작가는 '여기가 좋다'고 했지만 그가 그린 바닷가 사람들은 무시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처럼 외롭고 저물어가는 노을처럼 쓸쓸했다.

 



섬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무작정 바다가 좋았고 배가 좋아서 결국은 선장이 되었다.

왼쪽 발가락 하나를 쥐 뱃속에 남겨두고 저세상으로 떠난 아버지의 '꼭 훌륭한 선장이 되어라'라는

마지막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고기를 많이 잡고 바다를 사랑했던 그였지만 끝내

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어서 훌륭한 선장은 되지 못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소주를 한 바가지씩 먹어가며 멀미를 이겨가면서 바다를 익혔고 자식을 낳고 먹이고 살아왔던 그였지만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바다는 풍요로운 어장이 아니었다. 빚은 늘어나고 결국 그에게 선장이란 이름을

갖게 해준 배를 계약하고 그는 아내와 마지막 고기잡이를 나선다.

아내는 이제 그를 떠나겠다고 했다.  섬에서 태어난 일은 천형이었다고 했다. 사람이 살 곳은 육지이기

때문에 당신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섬을 떠나는 것이라고도 했다.

 

떠나려는 아내를 잡지 못하는 그에게 아내는 말한다.

"당신은 육지를 무서워하고 있소."

바다 한가운데 몇 뼘 땅일 뿐인 섬과 몇 발자국 나무판자인 배에 떠서 표주박처럼 살아왔던 그에게

바다는 무엇일까. 한 때는 사랑이었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내어주지 못하는 비루한 바다는 이제 무엇인 걸까.

 

아내가 떠나버린 섬에 한 여자가 죽기 위해 찾아왔다. 언젠가 친구들과 여행삼아 온 곳이었다는데

왜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을 이 섬에서 마무리 하려고 했을까.

"여기가 공동묘지라도 된다는 거요? 나는 죽자사자 살아가는 곳이 당신들한테는 고작 죽을 곳이요?"

사랑하는 가족도 떠나고 이웃도 떠나고 죽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만 남아 살기는 하지만

버리지 못하고 놓지 못할 만큼 소중한 이 곳이 당신들에겐 무덤이란 말이지.

사내의 외침에는 핏발이 서렸다. 심장병을 앓던 엄마가 어느 날 세상을 떠났다. 바쁘고 솜씨없는

딸을 위해 김치냉장고에 그득히 담가놓았던 김치를 보면서 화장터에서 보다 더 많이 울었다던

친구가 떠올랐다. 먹을수도 버릴수도 없던 그 김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을 바다로 밀어 넣어 줄테니 당신은 아내가 마지막으로 채워놓고 간 냉장고의 반찬들을 치워달라.

떠나간 사람의 흔적을 확인한다는 일은 결국 자신이 버려졌다는 증거가 될테니까. 외로워졌다는 의미일테니까.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바다가 때로는 생명을 버리는 곳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된다.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안식이 느껴지는 것일까. 바다위 몇 뼘 땅일지라도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땅으로 기억되는 것은 나도 싫겠다.

 



 

깊은 산골에서 가난하게 자랐던 소녀는 일찍 남편을 만나 아들 하나를 두었고 조석으로 지지고 볶고 하다가

갈라선다. 혼자몸으로 막걸리집을 하던 그녀는 그 도시에 전근와 있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는 남자였다. 눈이 따시고 가슴이 따신 그 남자와는 전근기간이 남은 이년 반만

사랑하고 그 뒤로는 절대 만나지 말고 마음속에만 담아두자고 약속하고 시작한 사랑이었단다.

가슴속에 간직했던 그 얘기는 7년만에 그 남자가 걸어온 전화때문에 시작되었다.

누군가를 화장터에 보내고 내려오는 길이라는데 그녀는 그게 누구인지 끝내 묻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끝까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완성된 사랑을 지키는 것으로 알았다.

마치 지나간 첫사랑을 평생 다시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처럼..

나도 그녀의 그 사랑이 완성된 사랑이라고 믿는다.

 

여덟꼭지의 단편들은 연작처럼 이어진 듯하다. 선장은 배를 팔고 그의 아내는 성을 떠나고 어떤 여자는

죽기위해 다시 그 섬을 찾고 이천만원의 빚을 떠안고 이 섬까지 밀려온 또 다른 여자는 바다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열고 주저앉기로 결심한다. 섬에 남았던 노인들은 큰맘먹고 여행을 떠나고 그 섬에서 자랐을 것만

같은 한 남자는 항구가 가까운 도시에서 막걸리집 늙은 여자의 넋두리들 들어준다.

내가 만약 그 섬에 닿는다면 마주치는 섬사람들이 전혀 낯설지 않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나도 그 섬이 좋아질 것

같다. 섬에 남은 사람들과 같은 이유로 어쩌면 육지보다 그 섬이 내게 더 어울리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무심히 튀어나올 것만 같이 지금도 귓가에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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