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번 진짜 안 와
박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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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버스에 놓고 내린 순간 폭우가 와서 쫄딱 젖고 한적한 도로에 차를 세우고 담배 한갑을 사갖고

나왔는데 주차위반 스티커가 붙어 있고 급하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꼭 지하철이 고장나거나 하는

재수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고남일의 꿈은 진정한 롹정신을 가진 기타리스트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결국 그는 보물인 기타를 팔아 롹의 고향인

영국으로 향한다. 무조건 그냥..가보기로 한 것이다.

사랑하는 애인이었던 미영이 영국에 가 있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내셔널갤러리에서 어슬렁 거리던 남일은 운명이었는지 기적같이 미영을 만나게 된다.

미영의 도움으로 물가가 엄청나게 비싼 런던에서 숙소를 정하고 약간의 불법이 더해지기 했지만

남일이 제일 좋아하는 스시집에 배달원으로 취직을 한다.

 

그 시간 아르고좌의 우주에서 가장 뜨거운 별 나오스에 기거하는 '롹 스피릿'님은 습관적인 생명체

포맷과 오류투성이 인격으로 악명 높은 '오에스'라는 양아치와 지구의 운명을 놓고 담판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진정한 롹커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지구를 그냥 확 엎어버리고 다시 깔고 싶어하는

오에스에게 괜찮은 놈을 찾아주기로 하고 오랜만에 지상의 롹커들을 향해 안테나를 펼치고 있었다.

 



 

런던에서 미영을 만난 남일은 기쁨에 들떴지만 미영은 이미 일본인 남자친구 켄세이와 교제중이었다.

여전히 미영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던 남일은 스시집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그리스 여자 로잔나와

연애를 한다. 잘 다니다가도 남일이 타야 할 순간이 오면 영 오지 않는 15번 버스를 기다리며 언젠가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줄 날이 있을 거라고 희망을 품지만 한국에서 같이 따라온 '평생 재수 없음'은

영국에서도 제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여 스시집이 망하고 일자리를 떨려나고 비자연장은 되지 않았다.

데모CD를 뿌린 곳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남일은 미영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결국 추방당하는 신세가 된다.

 



 

마치 오지않는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정망의 부랑자처럼 늘 오지 않는 15번 버스를 기다리는

남일에게 이제 더 이상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든 그의 롹은 지구를 싹 엎어버리고 싶어했던 '오에스'에게 감동을

주는 바람에 포맷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먼 우주에서 일어난 '롹 스피릿'님과 양아치 '오에스'만의 은밀한 사건을 지구의 인간들이 어찌

알겠는가.

 

'인생은 비루할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인생을 바쳐 예술을 했고 누군가는 또 그것을

감상하며 도취될 수 있다. 그것은 지구에서 인류로 살아간다는 것의 쏠쏠한 재미인 것 같았다.' -188p

 

오토바이 사고로 죽음과 직면했을 때 마지막으로 외쳤던 '미영'의 존재가 늘 추방만 당하고

살고 있는 남일에게 마지막 구원이 되어 준다. '미영,미영' 외치면 가슴속에는 뭔가가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 같고 강한 자신감이 마구 생기는 것 같다. 완전한 롹정신.

그것만으로도 한국에서 다시 시작할 자신이 생긴 남일은 죽음 직전처럼 인생이 가진 모든

영감이 압축되어 만들어진 곡에 제목을 붙인다.

<Rock Spirit never Die>

 



 

'인생은 결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행복하진 않다. 그랬다간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행복은 짧다. 짧기 때문에 강렬한 존재인 것이다.' -335p

 

그리고 15번 무지 빨리 오는 홍대앞을 떠올리며 나는 이렇게 남일에게 외치고 싶다.

그래 남일, 지나간 시간들은 재수하고 안 친해서 불행했지만 이제부터는 행복 시작이다.

<남일, never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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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 캠핑여행지를 찾아라 - 캠핑 전문가들이 직접 뽑은 베스트 캠프장 완벽 가이드
한형석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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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살랑 불고 꽃이 피는 계절이 오면 슬슬 여행이 고파진다.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펴고 어디론가 떠나 골치아픈 일상을 잠시 잊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여행바람이 들었다고 무작정 길을 나설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곳으로 가서 잠은 어디에서 잘 것이며 무얼 먹을 것이며 어디를 구경할 것인가.

컴퓨터를 이리 저리 검색하다 보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한눈에 딱 들어오기가 어렵다.

그리고 혹시 깃발아래 주욱 늘어서서 가이드를 쫓아 다녔던 여행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정작 제대로 된 여행이 아니었다는 것을.

 

외국영화를 보다보면 멋진 캠핑카를 몰고 잘 정리된 야영장에서 쉬어가며 제대로 된 진짜 여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 우리는 언제 저런 여행을 해보나~~

바로 지금 우리도 이런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캠핑카가 없어도 좋다.

자연과 호흡하면서 야생의 여행을 즐길 자신이 있다면 이 책 한권 들고 떠나보자!

 



 

우선 짐을 꾸리는 것 부터 시작한다.  꼭 필요한 것 같아 이것 저것 싸다 보면 한짐이 된다.

하지만 여행 좀 다녀 본 사람들은 또 안다. 말 그대로 짐만 되고 결국 쓰지도 않고 되가지고

오는 것들이 꼭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과감하게 줄여보자. 그리고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법도 있다. 굳이 다 싸가지고 갈 것 없다.

캠핑가서 짜장면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일부러라도 장이 서는 날을 골라 시골버스를 타보자.

두런 두런 동네 할머니와 친해져 김치에 된장, 고추장까지 챙겨주는 일도 많다지 않은가.

 



 

장날 현지의 특산물을 사서 요리를 하면 짐도 줄이고 현지의 음식문화도 즐기는 일석이조가 된다.

물론 취사장은 있는지 화덕은 사용이 가능한지 샤워시설은 있는지 예약이 필요한지 미리 확인한 후의

일이 되겠지만.

 

요리를 못한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도 없다. 친절하게 캠핑요리 레시피도 들어있다.

아마 소개된 요리를 다 해먹으려면 백 수십번은 집을 나서야 할 것이다. 든든하다.

팁 안줘도 툴툴거리지 않고 친절한 가이드가 바로 이 책이다!

꽃구경만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면 바로 다가올 여름휴가를 이 가이드와 의논해보면 어떠실지.

캠핑의 달인 10인의 인터뷰를 보고 추천하는 캠핑장부터 시작하면 괜찮은 출발이 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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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 「문학의문학」 대표 작가 작품집
김연수.박완서 외 지음 / 문학의문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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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가 다음엔 외교관이 꿈이었다가 결국 시인이 되는 것으로 꿈을 정리한 여자는

결국 시인이 되지 못하고 내성적인 쌍둥이와 말 못하는 자폐아의 엄마가 되었다.

'어떤 여중생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성적인 쌍둥이와 말 못하는 자폐아의 엄마가 되려는 꿈을 꾸겠는가.' -24p

김연수의 '깊은밤, 기린의 말'은 의도치 않은 삶으로 휘청거리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자폐아를 가진 가정의 아픔은 짐작만으로도 벅차다.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자폐아 아들이 자신과 처지가

같은 강아지 '기린'과 나누는 동병상련의 교감이 눈물겹기만 하다. 결국 또 사랑만이 구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아! 박완서라는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온다. 사진속의 모습은 여전히 소녀같건만 이제 생전에 남기신

작품으로나마 위안을 삼을 뿐이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지치고 고단한 일상속에서 갱년기를 맞은 여인의

'샌드위치팔자'에 대한 넋두리다. 아마 선생이 살았던 시대가 딱 그러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경성대를 나온

지성의 시어머니와 결혼도 이혼도 쿨한 며느리 세대에 끼인 허탈함 같은 것.

결국 시어머니로도 며느리도로 성공하지 못한 한 여인의 비애가 당신의 겪어낸 역사의 비극과 겹쳐지고 비참하게

사그러져간 수많은 '시대의 갱년기'의 여인들과 겹쳐져 나역시 자꾸 속에서 열불이 나려고 한다.

이제 저 윗 세대와 쿨한 세대를 이어주던 막중의 임무를 누가 대신할 것인가. 눈물겹게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역시 3년전 작고하신 이청준작가의 '이상한 선물'은 비만 오면 날궂이를 하는 미친년이나 불운한 노름꾼,

작고 깡마른 몸집에도 힘이 너무 센 바람에 아무도 대적하는 자가 없어 실력한번 제대로 발휘해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천재 씨름꾼에 대한 괴기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는 선바위골의 '동네전설' 기태씨의 이야기이다.

기근이 심하면 부자집 창고를 털어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는 '그림자 의적'이나 밤새 도깨비와 힘을 겨루어

이겼다는 '도깨비 할배'의 이야기는 사실 어느 동네든 조금씩 색깔만 다를 뿐 동네 입구의 서낭당이나 장승처럼

흔한 수호신이 아니던가. 진실여부과 상관없이 막연한 '우상'하나쯤 세워놓고 기대고 싶은 것이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들의 바람일터...기태씨, 선바위골의 자존심을 지키는데 벼루면 어떻고 숫돌이면 어떻소.

먹을 갈았든 낫이나 칼을 갈았든 다 미래의 희망을 갈았던 물건은 사실인데..그냥 받아 두시게.

 

어린시절 다친 상처로 청각을 잃은 여자의 절망을 그린 이나미의 '마디'는 잔가지를 쳐내면 더욱 튼실해지는

나무처럼 자신의 머리를 삭발하는 것으로 인생의 전지작업을 마친 여자가 늙은 소년의 모습으로

'그러나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고 흔들림이 없는 나이 마흔 아닌가. 봐주기로 한다.'라는 마지막말에

비로소 안심하게 된다. 마흔 조차도 여전히 빛바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게된 반세기를 살아낸 여인은.

 

뭔가를 잊고 몰두하기에 퍼즐만큼 훌륭한 것도 없다. 100피스 1000피스 퍼즐을 맞추는 일은 때로는 숭고해 보이기도 한다.

5대독자인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딸로 잉태된 태아를 세번이나 죽여야 했던 여자는 전처소생의 되바라진 딸과 딴여자의

향을 묻히고 돌아오는 남편과 무심해지기 위해 퍼즐을 한다. 간혹 없어지는 퍼즐 몇조각은 병적으로 퍼즐에 집착하는

아내를 포기시키기 위한 남편의 술책같았다. 죽어간 아이들에 뼈조각을 발견하는 악몽에 시달리는 여자는 스스로 빠진 퍼즐의

한조각이 되고 만다. 권지예의 '퍼즐'은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여전히 이빠진 퍼즐조각처럼 버려지는 여자가 있음을 고발한다.

 



 

이명랑의 '제삿날'과 최일남의 '국화 밑에서'는 자신의 죽음이든 타인의 죽음이든 '죽음'이란

명제를 만나면 이기적인 인간들은 뒷처리와 번거로움으로 도망가려 하거나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사람들은 지나온 시간들과 스쳐갔던 인간들을 기억하는 상념에 빠져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군상들의 표정을 담았다.

 

가장 젊은 작가인 조경란의 '파종'은 갑작스런 골절사고를 당한 여자의 살림을 돌봐주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간 부녀간의 은밀한 연대감과 쓸쓸함과 미래에 대한 자그마한 소망이 잘 그려져 있다.

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잃고 일자리도 잃고 술로 위안을 삼는 여자와 사기를 당하고 귀의 청력마저 사그러지는

늙은 아버지가 휘적휘적 희망도 없는 도쿄의 거리를 거닐다가 무슨 꽃인지도 모르는 꽃씨를 사다가 베란다에

심는다. 나중에 시금치였다는 것을 알게되지만 그게 무엇이든 상관이 있었을까.

그들이 피워내고 싶었던 것은 꺼져가는 불꽃이었을테니..뽑아서 던져 놓으면 마디에서부터 뿌리를 내려 자라는

명아주과의 그 풀도 사실은 꽃을 피워낸다는 것을 이미 그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대표 작가'10인의 베스트 작품집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독자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던 작가들의

모음집을 보니 그간 내 인생을 받쳐주었던 책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이미 고인이 되신 이청준작가와

박완서작가가 내 청춘의 지지대였다면 이나미작가는 같은 시대에 태어나 문학의 꿈을 이루어낸 동지애가

느껴진다. 요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연수작가나 조경란작가를 보면 문득 뒷방으로 밀려난

늙은이의 가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쓸쓸한 눈빛에 부러움을 더하여 바라보던 이들이다.

소개된 10인의 나이차가 42년에 이르니 한국전쟁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단의 주요인물을 잘 골라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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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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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이미지와 조용한 카리스마가 빛나는 리암 니슨이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테이큰'에 이어

액션 스릴러 영화에 출현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언노운'의 충격적인 스토리는 프랑스의 소설가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소설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상상의 자유를 사랑한다. 하지만 동시에, 작고 구체적인 디테일들까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도록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은 단순한 큰소리가 아니었음을 알게된다.

 

영화소개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언노운'의 도입부는 프랑스 연구원의 초청으로 파리에 온 식물학자 마틴 해리스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고 강물에 빠져 정신을 잃고 72시간의 코마상태후 깨어나게 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 집에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살고 있고 자신이 마틴 해리스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도 자신을 몰라보고 진짜 마틴 해리스임을 증명할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졸지에 코마상태후에 나타난 정신병 환자 취급을 당하는 마틴 해리스는 자신의 기억속에 촘촘히 들어차 있는

그 모든 기억을 부정하는 세상에 분노의 항거를 해보지만 결국 자신마저 진짜 마틴 해리스가 아닌 것 같은

착각속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평행이론이나 도플갱어의 출현이 아니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현실에서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작가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말처럼 식물학자인 주인공의 지적인 세계에 대해

놀라울 만큼의 정확성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자료수집차원이 아닌 체험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폭넓은 지식의

영역을 보면 그가 작가로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때로는 진실이 거짓이 되기도 하고 정확히 기억한다고 했던 일들도 사실은 허구일 때가 있다.

그리고 세상이 한 사람쯤 거짓말장이로 만드는 일들은 식은 죽 먹기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놀라운 반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나는 과연 마틴 해리스가 누구일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의 기억이 맞는 걸까. 아니면 정말 환생의 기억 저편의 일을 현세의 일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때로 고뇌하는 리암 니슨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가 진정 마틴 해리스이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왠지 의문의 교통사고와 불행한 처지에 빠진 것 같은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도록 몰아가는 작가의 교묘함에

빠졌다는 것은 책을 덮을 때 쯤에야 알게 된다.

 



 

단순히 소재의 특이성과 반전의 재미만을 즐기고 책을 덮기에는 아쉬운 무엇인가가 남는다.

과연 이런 일들이 소설이나 영화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이미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면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예감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의 나는 누구이고 내 기억은 과연 진실일까.

날카로운 눈빛의 작가를 보니 그의 상상의 자유가 어디까지 일지 다음 작품이 기대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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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 문인 29人의 춘천연가, 문학동네 산문집
박찬일 외 엮음, 박진호 사진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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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은 대학MT의 도시였고 연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았을 도시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여서 그랬을까. 아님 안개와 호수가 강이 있는 몽환의 도시여서 그랬을까.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경춘선의 기차는 이제 더 이상 철로를 달리지 않는다. 춘천까지 전철 복선이 놓여지고

그 곳은 이제 서울에서 훨씬 가까운 도시가 되었다. 문인 29인의 춘천연가를 들여다 보니 어쩌면 그 도시

어디에선가 나와 한 번쯤 스쳐갔거나 그니들이 그 곳에 머물러 있을 적에 나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첫사랑의 남자와 청평사를 오르거나 남이섬을 거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춘천역에서 내려 소양강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다시 배를 갈아타고 들어갔던 청평사의 기억은

예전 세 명의 남자와 춘천을 가보았다는 여성작가의 추억담과 겹쳐졌다. 나는 이도령을 기다리는

춘향이의 절개처럼 오로지 한 남자와의 기억만을 가지고 있으므로 순수하다고 해야할까. 아님

나중에 만난 남자들과는 그 도시를 가지 않는 것으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싶었던지 둘중에 하나일 것이다.

 




지금은 내 친한 친구였던 여자의 남편이 되어버린 그 때의 내 남자친구와 바로 저 굽어진 길을 내려가 배를 타고

청평사로 올랐었다. 앞서 말한 여작가는 같이 동행한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배시간을 챙겨 다시 되돌아 나가자고 하자

은근히 배가 끊겨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보다 되려 화가나더라고 했던가.  그 곳으로 향하는 배가 하루 몇 편 다녔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해가 떨어지기 직전에 막배가 끊겼던것 같다.

 

나도 은근히 배가 끊기기를 바랬던가. 아마 그랬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날 나는 남자친구와 크게 싸우고 들어갈 때는

같이 들어간 기억이 있는데 나올 때는 따로 따로 왔던 것 같다. 무슨 일로 싸웠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그 즈음 유난히 다툼이

잦았었고 아마 그 살벌한 분위기를 회복해 보겠다고 나선 여행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학생들이 주머니돈을 털어 떠난 여행은

그 유명하다는 닭갈비니 막국수를 먹을 형편이 아니었다. 소양강근처 어디쯤에서 도토리묵에 동동주를 한잔 했던가.

 

과묵하고 내성적이었던 남자친구는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왜 우리는 그 때 그렇게 싸웠을까.

이렇게 떠나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남을 남자였다면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랬다. 비록 몇 십년 후에 그가 살고 있는 도시에

갔다가 망설이던 끝에 전화한 나를 결국 만나러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복수를 했지만 말이다.

 



 

그 사이 춘천을 몇 번 다녀오면서 나역시 춘천은 늘 그 남자친구를 떠올리는 도시로 남게 되었다.

오년 전쯤 지인들을 쫓아 춘천시내에서 카페를 하고 있다는 어느 분의 안내로 LP판의 살짝 지직거리는

음악도 즐기고 춘천사람들만 간다는 닭갈비집에 가서 후라이팬에 볶은 닭갈비가 아닌 석쇠에 구워먹는

제대로 된 닭갈비에 식당 앞마당에서 뜯은 오가피잎과 곰취잎으로 풍미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기분좋게

취한 여흥때문이었는지 몇 글자 남겨놓은 글이 있었다.

 

춘천 가는길

 

                                      

 

 

 

안개로 휘감은 경춘가도는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가슴설레는길

 

곱게 보냈던 그니는 어느 하늘 아래서

 

나를 기억이나 할지..

 

 

사랑방을 꾸민 옛친구는 찌그러진

 

프라이드를 몰고 마중왔는데

 

기가 막힌 닭갈비에

 

아직 때이른 곰취나물은 서울 촌놈을

 

살짝 아우리고..

 

 

막배 끊어져라 기원했던 청평사의

 

그배는 아직도 여전해서

 

이제는 딸가진 에미마음

 

예전같지 않은데..

 

 

사랑하는 님의 어설픈 농담도

 

어쩌면 그리 달콤한지

 

챙겨주신 추억 한다발

 

소중히 안고..

 

 

아쉬운 발걸음

 

내내 뒤돌아 다시 옵니다.

 

 

 

 

춘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도시에 관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열렬히 사랑했던 한 남자의 흔적과 질풍노도의 시기에 문학의 길로 나를 안내했던 작가 한수산이

작가의 꿈을 꾸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는 그 도시 춘천! 사랑의 이별과 추억이 있는 그 도시에

가려면 제발 혼자가지 마시라. 인생을 살면서 치열한 사랑의 추억 한편쯤 남기고 싶다면 제발 혼자가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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