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치유 식당 -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심야 치유 식당 1
하지현 지음 / 푸른숲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 문제는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이다.'

부제로 붙어있는 글을 보니 의아스럽다.

한번뿐인 삶인데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세상은 풍요로워지고 암도 정복하는 시대가 온 지금 오히려 정신은 지독한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당신의 마음속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과연 저자의 질문에 나는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

내 자신은 나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정신과 의사하면 요즘 아주 각광받고 있고 앞날이 창창해보이는 과목의 의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육체의 병보다 정신의 병이 극심해 지고 있는 현대시대에서 한 두가지 이상의 정신적 질환이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정신과 의사들이 쓴 책들을 많이 접했보았지만 이렇게 감각적이고 가슴에 팍팍

와닿는 에세이는 처음이다. 아니 에세이라기 보다는 드라마라고 표현하는게 더 적당할 듯하다.

한 때는 잘나가는 대학교수이면서 대학병원의 정신과 의사이던 철주는 어느 날 의사가운을

집어던지고 조그만 바 '노사이드'를 경영하는 술집주인이 된다.

 

철두철미하고 한치의 틈도 없이 자신을 단련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문득 버거웠기 때문이다.

번화가도 아닌 잘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길가에 소문없이 차려진 바에는 각자의 문제를

지닌 손님들이 찾아든다.

 

철주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잘나가는 회사의 간부, 짱짱한 타율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2군으로

밀려난 야구선수, 아이돌가수로 사랑받았지만 정신적고통으로 사라져버린 락커등등...

 

세상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정말 문제는 자신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개선시키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니 과연 자신을 잘 안다고 말 할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무리 '노사이드'에서 몇가지 안되는 칵테일솜씨로 버티는 주인이지만 정신과의사의 감각은

그대로인지라...'노사이드'는 또다른 정신병 치료소인 셈이다.

 



 

성실하게 치밀하게 살았다고 해서 잘 살아온 삶이라고 자신있게 말 할수 있는가.

완벽주의자 곁에 있는 가족들은 또다른 희생자라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지 않은가.

힘에 겨워 모두 떠나버리고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사람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잊은 채 완벽한 인생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

정말 간절하게 '노사이드'와 같은 심야치유식당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울증을 고치기 위해 약을 처방받은 그런 방식이 아닌 마음을 열고 스스로를 들여다 보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치료해 주는 그런 곳이 나 역시 필요하다.

 

'그렇지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직구 같은 삶. 정상이지만 재미없잖아. 홈런 맞기 쉽고.

(중략)요즘 내 생각은 인생에서 몇 점 정도 내줘도 끝에 이길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게

아닌가 한다는 거야." -200p

 

너무 열심히만 살지 말라는 말에 위안을 느낀다. 때로는 몇 점쯤 내어주고 자신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느슨하게 삶을 풀어 놓는 것.

그래야 정신도 가끔을 휴식을 하고 재충전을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10명의 손님들의 증상을 현신감있게 묘사하며 빨려들어갈 수 있도록 에세이를 쓴 정신과 의사

하지현은 글쟁이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혹시 정신과 의사말고 '노사이드'같은 바를

운영해볼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요즘 투잡족이 대세인데 말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내가 기꺼이 1호 손님으로 '노사이드'로 달려갈텐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벽광나치오 - 한 가지 일에 미쳐 최고가 된 사람들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분야든 미치지 않고는 최고가 될 수 없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몰입'이라는 책처럼 그 속에 푹 빠지지 않으면 일인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소개된 인물들은 좋게 말하면 자신이 좋아했던 일에 몰입했고 일인자가 되긴

하였으나 어찌보면 미치광이 같았던 사람들이다.

 

더구나 자유와 언론이 보장된 시대가 아닌 조선시대가 아니던가.

저자는 학계에서도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인물들을 새로 발굴하거나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던

인물들도 새 자료를 발굴해 소개함으로써 옛 사회가 이름난 인물들에 의해서만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기획하는데 힘을 쓸만한 사람들을 우리의 옛사람에게서 찾아 보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열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밥을 굶는다'는 속담처럼 오히려 재주가 너무 많아 회한을 많이 남기고

서둘러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선비,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로서 그의 재능은 탁월했지만

그가 살다간 시간동안 그 재주를 다 풀어놓고 가기에는 시간도 시대도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다.

그가 깎았다는 벼루는 그의 인생만큼이나 독특하고 미려하여 많이 전해지지 못한 것이 아까울뿐이다.

 

흔히 정선이나 김홍도, 신윤복을 조선시대의 명화가로 기억하는 우리로서는 또 하나의 명화가 '최북'이란

이름이 낯설기만 하다. 성격도 괴팍한데다가 술주정뱅이에 심지어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러 애꾸눈을

만들었다니 그의 광기가 섬뜩하기만 하다. 특히 그가 잘 그렸다는 메추라기를 보니 섬세한 표현이

기가 막히다. 하나 그 역시 열흘을 굶다가 그림을 팔아 술을 먹고 만취하여 얼어죽었다니 끝까지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광인이 틀림없다.

 

책장수 '조신선'은 그의 이름처럼 신선처럼 살다간 모양이다.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니 이 또한

미스터리가 아닌가. 조선시대에는 책이 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시대에 지식 생산과 유통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라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하지만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는 기록들을 보면 산에서

내려온 신선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선비라면 글 공부를 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는 것이 최고이던 시절 원예가로서 이름을 날린

유박이나 천민으로 태어나 애꾸에 곰보, 어버버한 말씨를 가진 볼품없는 천재 문인 이단전의 삶도 아마

영화화된다면 딱일만한 이야기이다. 천한 신분임에도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천재성을 발휘했던

그의 재능도 역시 그의 삶을 고단하게 했던게 분명했을 것이다.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면 안될 재능을 맘껏 발휘해 보지 못했거나 혹은 많은 댓가를 치뤄야 만 분의 일이나마

드러내었을 천재들의 삶을 보면 무척이나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것 같다.

사는 동안이 그러했고 거의 모두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끼친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고 지금도 우리가 몰라주고 억압하는 또 다른 천재들을

위해 이 책은 역사의 어둠속에 갇힌 인물을 끄집어 낸것 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소개된 11명의 인물들도 지하에서 기뻐하겠지만 여전히 역사의 어둠속에 갇혀있을 수많은 벽광나치오들의

삶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한번이라도 뜨거웠을까?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9
베벌리 나이두 지음, 고은옥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인류의 기원이 시작되었다는 그 땅은 지금 상처투성이의 아픈 땅이 되어버렸다.

자연과 가장 근접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아와 질병과 내전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곳에 피부색이 다른 두 소년이 닥친 현실을 보면 아프리카의 고질병이 무엇인지를

알게된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영국에서 건너와 정착한 백인들이

농장을 가꾸며 살고 있다. 스와힐리어말로 와준구는 백인들을 말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영국 편에 서서 함께 싸웠고 자유의 이름으로 죽어갔다.

전쟁이 끝난 뒤,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조국에서 자유스럽게 살기를 원했지만 백인 정착민들은

계속 영국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프리카인들이 아직 어린애들 같아서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자유를 갈망하는 아프리카인들과 계속 지배하고자 하는 백인들간의 갈등은 결국 '마우마우'라는

아프리카인들의 조직이 만들어진다. 자신들의 땅을 찾기 위해 목숨 바쳐 싸우겠다고 맹세한

단원들로 구성된 비밀조직이었다.

 



 

백인농장의 주인 아들인 매슈와 말을 돌보는 하인의 아들인 무고는 계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하지만 의식있는 아프리카인들의 자유에의 갈망은 '마우마우'와

같은 비밀조직을 만들게 되고 폭력을 싫어하는 순진한 원주민들은 '마우마우'의 폭력과 협박에

할 수 없이 가입을 하게 된다. 이 와중에 무고의 형 역시 '마오마오'의 열혈 조직원이 되고 무고와

그의 아버지는 비밀조직과 백인 주인 어디에서도 의심을 받는 신세가 된다.

 

무조건 힘으로 누르려는 백인들의 지배욕도 문제이지만 선량한 주민을 폭력으로 끌어들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급진주의자들도 문제이다.

어디가 잘하고 어디가 잘못인지는 모르겠다.

순수한 우정을 나누던 두 소년이 이런 소용돌이에서 상처를 받고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더

가슴 아팠다.

 

과연 이 땅의 주인은 누군지 생각하게 된다. 식민정책으로 고향에서 건너와 땅을 일군 백인들은

순순히 그 땅을 떠나야 하는가. 서로 공존하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인가.

순수한 마음을 가진 두 소년의 삶이 어른들의 폭력과 억압으로 어떻게 허물어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아프리카의 아픔을 짚어낸 이 책은 실제 자신이 남아프라카공화국에서 나고 자랐던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기에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지금도 케냐 뿐만아니라 아프리카의 많은 땅들이 선진국들이 개입으로 내전을 겪고 있다.

단순한 민족성을 가진 그들이 선진국의 횡포에 희생당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가슴아프다.

이제 두 소년이 자라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날이 오는 건 아닐지..가슴이 답답해온다.

언제나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평화와 안식이 올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이른 바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불리는 비극적 사건은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미국의 뉴욕 퀸즈 지역의

주택가에서 일어났다. 신드롬이라고 불릴만큼 세상을 놀라게 한 이유는 스물 일곱살의 제노비스가 35분에 걸쳐

살인자에게 공격당하는 동안 무려 38명의 이웃들이 그 사실을 알거나 목격하고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목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도움을 주지않고 방관하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지켜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은 줄어들어 자신이 꼭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의 딸이었던 그녀는 식당을 열기위해 바에서 열심히 일하던 여성이었고 살인자와 그녀는 단지

그 시간에 그곳에서 마주쳤다는 불운 이외에 그녀가 죽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범죄의 조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중산층 거주지역인 퀸즈지역의 주민들은 사실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반드시 그들이 냉혹했다거나 비인간적이었다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점이다.

직접 살인의 현장을 목격한 남자는 바로 경찰에게 신고를 하기 보다는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전하자

새벽의 달콤한 잠에서 깨어난 애인은 절대 그 일에 휘말리지 말고 곧바로 침대로 가서 자라고 권한다.

이 부분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지 경찰에 전화를 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던가.

 



 

처음 공격을 당하는 순간에 그녀의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창밖을 바라보았던 사내가 만약 바로 신고를

했더라면 어쩌면 제노비스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피를 많이 흘리긴 했지만 아직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안 범인이 도주하다가 다시 되돌아와 그녀가

흘린 핏자국을 따라 뒤쫓아가 다시 칼을 휘두를 수 있었다는 것은 평범했던 이웃이 결국 방관자 내지는

방조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처럼 범인 모즐리는 시체애호자이거나 연쇄살인을 즐기는 정신이상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힘없는 젊은 여성이 공격받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아무 도움도 주지 않았다는 것에

더 희열을 느끼고 결국 그녀를 뒤쫓아 자신의 먹잇감을 쟁취했다는 것에 우리모두 인간의 이기심을 생각해야 한다.

과연 범인만 정신이상자였을까. 아무리 방관자효과라는 심리현상때문에 등을 돌렸다고 해도 소중한 목숨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곰곰히 되돌아보니 나역시도 살인의 현장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사람들에게 아무 조건없이 도움을 주었던 기억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나 아니더라도..'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불운하게 죽어간 제노비스는 범인에게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로부터...그리고 지금도 사건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로 부터

또다른 '제노비스'는 죽어가고 있다.

혹시 비명이 들리는 현장을 외면하고 커튼을 닫고 불을 끄고 숨고 싶지는 않은지 모두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위새 날다
구경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다보면 때로 살인의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을 때, 법망을 벗어나서

교묘하게 사람을 괴롭히는 놈이 있을 때 그저 법은 멀고 사람하나 사서 손을 봐주고 싶거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처럼 리볼보하나 구해 상대의 시커먼 심장을 향해 멋지게 한 방

날려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8년전에 위암으로 죽은 아내의 사인이 그녀가 양말장사를 하던 터를 제공했던 국제상사의

사장 황명순여사가 준 스트레스라니.

다소 황당한 결론에 도달한 아버지는 서른이 된 딸아이와 아직 이십대인 아들녀석에게

엉뚱한 명령을 내린다. 이른바, 아내를 죽인 복수를 위해 아들은 염탐꾼으로 국제상사에

취직을 시키고 딸과 자신은 행동대장으로 나서기로 한다.

 

세계각국에서 온 냉장고 자석을 수집한다거나 동네 여인들과 고스톱판을 벌이거나 사마귀를

실로 묶어 도로 횡단 내기 같은 것을 하는 황여사가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 살인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딸인 은수는 굳이 죽일 것까지야 있겠나 싶어 확인작업에 들어가기로 한다.

총을 쏘기위해 총탄을 장전하는 것처럼.

황여사의 말투가 거슬리기는 했다. 그래서 독설과 조롱으로 탄알 하나 장전!

쓰잘데기 없이 모여서 도박과 남 흉을 즐기는 것으로 탄알 하나 또 장전!

살아있는 사마귀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생명경시로 또 하나 장전!

 

은수는 황명순을 죽이는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쫓아내겠다는 아버지의 엄포에 못이겨 할 수

없이 이 일에 동참하면서도 명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황명순을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의외의 아픔이 있음을 알게된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버린 그녀의 아들!

황명순은 은수를 통해 가슴에 묻었던 아픔을 끄집어내고 위안을 받게된다.

국제상사에 취직한 경수는 같은 직원 미스리와 사랑에 빠지고.

 

뭔가 수상한 약을 먹어가며 복수에 열중하는 아버지와 얼떨결에 동참한 아들과 딸의 좌충우돌

이야기는 결코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멀리서 보면 인정머리 없고 생각없이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여도 나름대로 사연도 아픔도

다 깃들어 있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첫눈이 푸짐하게 오는 어느 날! 결행에 나선 아버지는 과연 황명순을 죽일 수 있었을까.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의 죽음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고 싶었던 아버지의 고통과

자식을 잃고 상처투성이로 살아가면서 사소한 관심에도 위로를 받는 황명순!

우리속에는 아버지와 황명순과 은수의 모습이 같이 살고 있다.

날지 못하는 키위새지만 언제가는 훨훨 날아오르리라는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상처투성이인

현실을 견디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