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사랑한다 세트 - 전3권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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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지막 장, 이제 늙어 버린 원의 마지막 말은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

 

'네가 있어 다행이었다. 널 두고 두고 괴롭히면서 한편으론 두고 두고 의지했었다...

너무 늦었지만 더 늦기전에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이제 네마음이 원하든 대로 가렴.'

 

뿌여진 눈에 흐트러져 버린 글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 네 사랑은 그렇게 져 버렸구나. 빛나던 네 얼굴의 미소는 주름속에 사라졌고

이루지 못한 사랑과 갈망도 그렇게 져 버렸구나. 왜 내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일까.

 

고려에서 몽고, 고비의 사막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왕원, 왕산, 왕린과 함께한 그 시간동안 내내 원을 미워했었다. 아니 사랑했었다.

 

이런 사랑이라면 내게 오지 않기를 바랬다. 아름다운 소년 둘과 한 소녀와의 사랑이라니.

애증과 갈망이 절절한 사랑은 너무 버겁다.

한때는 이 세상 절반을 점령했던 대 제국 원(元)의 종속국이었던 고려.

징기스칸의 발아래 꺽여버린 나라들 가운데 그나마 피를 섞음으로서 살아남았던 나라이다.

그렇게 섞이지 않았다면 후에 조선이나 지금의 우리나라가 온전히 존재했을까.

왕이라면 모든 권세를 누리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줄 알았지만 정작 사랑만큼은

얻을 수 없었다. 원의 볼모이다 시피한 처지도 과히 부러워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왕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는 얻지 못하고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는 품질 못했다.

 





 

고려의 여자는 물론 몽골의 여자들은 나름대로 권리를 누렸던 것 같다. 왕의 뒤에는 왕을 조종하는

모후가 있었고 마음마저 좌지우지하는 여자들의 암투가 볼만하다.

사랑과 우정의 경계는 어디인가. 왕과 왕이 사랑하는 여자 모두를 사랑한 린의 절제심이 서둘러

결말을 보고자했던 마음을 주저앉히곤 했다. 정말 이런 사람, 이런 사랑이 있을 수 있나.

멋진 두 사내에게 사랑받았던 '산'의 기다림 또한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왜 나는 '산'의 모습에 내 맘을 얹고 싶었을까. 실제했던 충선왕이 이런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한 사랑이 없었다고 단언치 못할 과거의 시간들이기에 차라리 이런

기가막힌 사랑극 하나쯤 저 먼 시간속에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든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었다해도 사랑은 기적을 이루고 결국 승리함이 또 한번 증명이 된 셈이다.

실제했던 인물들과 사건들의 자료를 끌어 모아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내어놓은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 글 좀 쓴다는 작가들 조차 겁내는 역사소설을 이렇게 살아있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는 작가라면 앞으로 그녀의 작품을 두고 볼만 하겠다.

산, 린, 그리고 불행하면서도 행복한 왕이었던 원...너희들의 아름다운 사랑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너희들을 닮은 후손들이 이 세상 어디선가 너희의 사랑이 실제했음을 완성했음을 보여주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그리고完이라고 쓰고 싶다. 너희들의 사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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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컬링 (양장) - 2011 제5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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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엉망진창인 10대를 보냈기 때문에 소설가가 되었다는 작가가 있단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10대 소년들은 결코 소설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엉망진창인 세상을 향해돌멩이를 날리는 이 소년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십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 저나 컬링이라니...하긴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언젠가 TV에서 스톤인가 뭔가를 빗자루 비슷한 걸로

쓸어내리는 해괴한 스포츠를 본적이 있기는 하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저걸 하나 싶었는데..

이제 난 컬링 게임을 시시하게 보지 못할 것 같다.

며루치와 산적과 으랏차 소년의 가슴을 뻥 뚫어준다는 '컬링'을 어찌 외면하겠는가.

 





 

'세상을 바꾸려면 힘이 들거든. 세상은 바뀌보다는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훨씬 많아. 그걸 다수라고 하지.

그리고 말이다. 결국 다수가 원하는 대로 세상은 돌아가는 거다.' -244p

 

가슴이 먹먹해진다. 힘있는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법이란게 힘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알면서도

나역시 세상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다수에 속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느 시대 언제 어디서나 힘없는 사람들은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런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그들이 닥친 불행을 당연하다고 무심히 대해왔을지도 모른다.

이런 어른들에게 '그냥 컬링'팀을 조직한 소년들은 강펀치를 날리고 있다.

 





 

부모님들의 강권에 못이겨 꿈조차 제맘대로 가질 수 없는 우리 아이들!

개성없고 획일화된 교육에 시름 시름 시들어가는 젊음과 비겁하기만 한 현실에 스피릿, 울분과 저항,

그런 것 때문에 컬링을 한다는 아이들!

부(富]와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못난 어른들에게 브러쉬를 흔들며 정의로움에 다가가려는 아이들의

눈물어린 투쟁이 우리 못난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세상이 아무리 불합리하고 멋대로의 잣대로 아이들을 두들겨도 오뚜기처럼 일어나서

맛서 싸울줄 아는 소년들이 있어, 친구를 위해 대자보를 흩뿌리는 용기가 있어서 세상은 아직 살아볼만

하다고 나를 위안한다. 그리고 소년들이여 쩔어도 좋아 '그냥 컬링'팀 못난 어른들이 응원할게!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엉망진창인 십대에 가깝다고 엄살을 떠는 작가여,

엉망진창이 아닌 십대의 빛나는 이야기를 멋지게 풀어놓을 줄 아는 딴짓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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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 - 당신이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
김원 글.사진.그림 / 링거스그룹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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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지만 그동안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을 보이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더니 우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혹은 보이지만 느끼지 못했던

고마운 이웃들과 사물들에 대해 얼마나 무심했는지 부끄러웠다.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어서 그런것일까. 저자는 사물을 보는 눈이 깊고 감성이 섬세하다.

어느 날 새벽 문득 눈을 떴을 때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생각했더니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거나 핑계만 대지 않는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더라는 말에

나역시 그래왔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건이 좋아질 때까지 혹은 시간이 좀 여유로워질 때까지 기다리다보면

어쩌면 그 일을 영원히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저지르는 삶이 아름답다는 그의 말에

나역시 '아 글쎄 좀 기다려 보시라니까요. 나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구요.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나가 생기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말도, 손펀지를 써서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고 싶다는 말에도

갑자기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욕구와 이렇게 살아야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그의 질문에 쉽게 대답을 내어 놓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탄식이 나왔다.

 

'사랑이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것이다.'

-본문 218p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 인용문

 

아! 나는 비가 오면 우산부터 챙겨 상대에게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살아왔음을.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지고 가는 자'라는 인디언의 격언처럼 이 책은 내가 등에 짊어 지고 있던 짐 하나를

끌어내려 턱하니 짊어지고 앞서나가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조금은 가벼워진 영혼의 무게가 가뿐하다. 그리고 이 사람 과연 어떤 감성을 가진 사람일지..

바람 스산히 부는 이 가을에 마주앉아 뜨거운 국물 안주 앞에 놓고 술 한잔하며 밤새워 얘기하고 싶어진다.

사랑을 믿는다는 당신! 혹시 내게도 나누어줄 시간이 있으십니까?

저자의 작품을 보면 마음에 선명히 맺히는 게 있다는 가수겸 배우 김창완의 추천사처럼 나도 내마음에

파란 가을 하늘처럼 문득 맺히는게 느껴졌다. 그래서 읽는 내내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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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동양고전으로 미래를 읽는다 9
일연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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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 김훈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삼국유사'를 꼽았다.

그렇다면 교과서에서나 만났던 삼국유사의 진면목은 어떠한가.

분명 역사책인데 마치 동화책을 읽는 느낌이다.

 





 

삼국유사속의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마늘과 쑥을 먹고 여인이 되었다는 웅녀의 이야기부터 선덕여왕이나 만파식적,

맹아의 눈을 뜨게한 분황사의 천수대비의 이야기등 마치 동화를 읽는 것처럼

전설과 현실을 넘다드는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혹시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순식간에 씻어내고야 만다.

지금처럼 자료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찾고 정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시대이던가.

과연 고려후기에 승려의 신분이었던 일연은 어떤 의지로 이 책을 썼는지 궁금하다.

혹은 잘못된 자료는 바로잡아가며 여러가지 설이 있다면 다른 설까지 곁들어가며

정성없이는 도저히 쓸 수 없었을 책이다.

 





 

책을 덮는 순간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한것같이 개운함이 느껴졌다.

아 이렇게 멋진 책을 너무 늦게서야 읽게 되었구나 하는 회한도 들었다.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읽힐 훌륭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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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역열차 - 144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니시무라 겐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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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해다'라는 말은 이 책에 등장하는 '간타'라는 사나이의 삶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물론 성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 아버지를 보고 충격을 받아 삐딱선을 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저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한심한 인생을 살게된 것은 순전히 게으르고 나약한 자신의 책임이다.

먹을것이 떨어지고야 하루벌이라도 나서는 열아홉 소년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 않는것은 그 때문이다.

방세가 밀려 쫓겨나기 일쑤인데다 밀린 돈을 떼어먹고 야반도주도 부지기수이다.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남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였으니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귈 기회도

놓쳐버리고 말았다. 한 며칠 돈이라도 모을라치면 여자를 사기위해 유흥가로 달려가는 정말 이렇게

한심스런 인생을 살아도 야단칠 가족이나 친구조차도 없다.

'책은 길잡이다'라고 내가 늘 외쳤던 것 처럼 이 막되먹은 청년에게 한 권의 책이 다른 인생을 살게

해주었다. 스물 세 살에 그와 흡사한 삶을 살았던 1920년대 소설가 후지사와 세이조의 소설을 읽고

마음이 움직였고 그가 추구했던 일본 사소설의 세계에 매료된다. 그후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하였다니 책이 그의 인생을 구원한 셈이다. 역시 글의 힘이란 대단하다.

결국  이 책으로 그토록 소망하던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였으니 인생역전 제대로 한 셈이다.

 





 

'나락에 떨어져 소매에 눈을 적실 때'는 작가로서 간절하게 아쿠타가와 상의 수상을 기대하는 진솔한

모습이 그려졌다. 아마도 이 글이 심사위원들의 맘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작가지만 도도하지 않고 인간다운 욕망을 드러낸 모습이 덥수룩한 수염에 무뚝뚝할 것만 같은 인상이

다소나마 부드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어디선가 대충 살고 있는 누군가가 그의 이 작품을 읽고 그가

그랬던 것 처럼 인생역전의 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그 누군가가 내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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