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소희에게 비추는 빛

 

  승훈은 또 소희를 찾아왔다. 소희를 구해 낸 후 승훈은 소희가 걱정이 되어 거의 매일같이 소희를 찾아왔다. 처음에 자신을 구해낸 승훈을 원망하던 소희는 승훈의 정성에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있었다.

“다음 주에 퇴원이지?”

“예.”

“퇴원하면 어떡할 거니?”

“모르겠어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진 않을 거에요.”

“갈 데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살래?”

승훈은 자신이 한 말에 자신도 놀랐다. 왜 그런 말을 하게 된 건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진심이었다. 앞에 있는 연약한 소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예?”

소희는 너무나 놀랐다. 지옥 같았던 자신의 삶에도 드디어 한 줄기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

“정말 그래도 되요?”

소희가 믿어지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나 혼자서 살아서 적적하던 참이었으니까.”

“고마워요.”

소희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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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승훈의 가족

 

 

  서울시 지방 경찰청 형사과에서 일하는 민승훈은 업무를 마친 후 경찰청을 나왔다. 아버지의 생신이라 승훈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안양에 있는 집으로 가려고 안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동민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오래 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초등학교 피아노 콩쿨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한희연의 기사가 실려 있는 신문이었다. 그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조동민은 초등학교 5학년생인 한희연의 연주를 듣고는 전율이 일 정도로 감동을 느꼈다. 그건 어린 아이가 하는 연주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은 희연이한테 대상을 주는 데에 조금의 이견(異見)도 없었으며 그렇게 해서 희연은 대상을 받게 되었다. 그 후로 동민은 희연을 주목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자신이 음대 교수로 있는 ㅇ대학에 들어왔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나 그 때 아들인 승훈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병에 걸렸다. 아들의 치료에 온 정신을 쏟을 수 밖에 없었던 동민은 결국 희연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제대로 살필 수 없게 되었다. 병이 점점 더 심해져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해야 했던 승훈은 다행히 재혼한 부인인 신유선이 포기하지 않고 성심성의껏 보살펴 준 덕택에 입원한지 2년 후 완치가 되어 정신병원에서 퇴원했다. 동민은 가정이 정상을 되찾자 그 동안 살펴보지 못했던 희연이 다시 생각났다. 그는 희연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희연은 착실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 중학교 콩쿨대회에서도 고등학교 콩쿨대회에서도 대상을 수상했다. 동민은 희연이 다녔던 고등학교를 찾아가 희연이 어느 대학에 진학했는지 물어 보았으나 희연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은 교직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 버려서 희연이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동민은 희연이 틀림없이 음대에 진학했을 거라는 판단 하에 전국에 있는 음대를 돌아다니며 희연이를 찾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음대를 돌아다녔는데도 한희연이란 학생은 찾을 수가 없었다.

유선이 사과와 배를 이쁘게 깎아 담은 접시를 소파에 앉아 있는 동민한테로 가지고 왔다.

“이것 좀 드세요.”

유선이 접시를 탁자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응.”

동민은 접시 위에 놓인 포크를 들어 사과를 찍었다.

“근데 또 그 신문 보는 거에요?”

“응, 그렇게나 찾아 다녔는데 도대체 어디 음대를 간 걸까? 외국으로 나간 걸까?”

“음대를 안 간 거 아니에요?”

“응?”

동민이 놀란 목소리로 말하며 유선을 보았다. 그렇게나 전국 대학의 음대를 다 돌며 찾았는데 없다면 유선의 말이 맞는 거 같았다. 그러나 동민은 다음 순간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피아노 콩쿨대회 대상을 받았고 수상 소감에서도 피아니스트 되는 게 꿈이라고 했던 학생인데...... 음대를 포기하다니...... 근데 승훈인 언제 온 대?”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우리 아들도 양반은 못 되나 봐요.”

유선은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승훈은 오른 손에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생신 축하 드려요. 아버지.”

승훈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케이크는 뭐 하러 사 오니? 나 케이크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래도 생신이신데 케이크가 있어야죠.”

승훈이 상자에서 케이크를 꺼내 탁자위에 내려 놓은 후 초를 꽂아 불을 붙였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승훈과 유선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노래가 끝나자 동민이 입으로 바람을 불어 초를 껐다.

“아버지, 무슨 소원 비셨어요?”

“한희연이란 그 아이를 찾게 해 달라고 빌었어. 그 애를 키워보고 싶거든.”

“니 아버진 아까도 그 애 기사만 보고 있었단다.”

유선이 핀잔을 줬다.

“그렇게나 찾아 다녔는데 못 찾는 거 보면 음대에 안 간 거 아니에요?”

“니 어머니랑 똑같은 소리 하는구나.”

“당연하죠. 내 아들인데요.”

유선의 말에 가족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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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깨어난 소희

 

 

  소희를 구해낸 승훈은 아직 깨어나지 않는 소희의 곁에 있었다. 소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무슨 일 때문에 자살을 하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소희는 깨어났다. 그리고 곧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는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깨어났구나. 의사 선생님 데리고 올 게.”

“왜 구했죠?”

소희는 자신이 살아났다는 것이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이제 그 지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응?”

의사 선생님을 데려 오려고 일어나던 승훈이 멈칫했다.

“왜 구했냐고요?”

소희는 고개를 돌린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울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 데리고 올게.”

승훈은 병실을 나왔다. 분명 큰 상처를 받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승훈이 의사를 데리고 소희가 누워 있는 병실로 왔다. 의사는 진찰을 다 마치고 나더니 물었다.

“집이 어디니?”

“......”

“가족은?”

“......”

의사는 더는 묻지 않고 승훈한테 잠깐 할 얘기가 있다고 하면서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몸에 성폭행을 받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요. 아무래도 지금은 그냥 안정을 취하도록 하는 게 낫겠어요. 정신적인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테니까.”

승훈은 저 어린 여자 아이한테 어떻게 그런 짐승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시 병실로 들어온 승훈은 소희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소희는 고개를 돌린 채 승훈을 보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거니? 누가 너한테 그런 짓을 한 거야?”

“난 이제 겨우 죽을 수 있었던 거였어. 그런데 당신이.....”

소희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후 소희는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요. 당신 보고 싶지 않으니까.”

승훈은 병실을 나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승훈은 소희가 너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를 지켜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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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아름다운 밤 그리고 죽음의 유혹

 

 

 

  어제도 술 취한 채 들어온 김 판사는 짐승처럼 소희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소희는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집을 나왔다. 그리고는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걸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깊은 밤, 소희는 잠실대교를 걷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흐르는 한강, 그리고 그 곳에 비치는 불빛들은 한없이 아늑하고 따뜻해 보였다. 이렇게 평화스러운 세상은 난생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희는 이제 이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야 될 때가 온 것을 직감적으로 느껴 그대로 몸을 던졌다. 강물은 뼛속까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웠다. 하지만 소희는 오히려 그 강물이 그동안 자신이 받은 몸의 상처와 마음의 상처를 깨끗이 씻어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소희의 몸은 점점 더 차가워졌으며 그와 함께 눈도 저절로 감기었다. 이제 다 끝난 것이었다. 소희의 입가에 처음으로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때, 한강변을 걸어가고 있던 남자가 소희를 보았다. 남자는 강물에 빠진 소희를 구해 낸 후 119를 부른 후 응급처치를 했다. 119가 도착하자 남자는 구급대원과 함께 소희를 구급차에 실은 후 같이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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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소희의 절망 2

 

 

  살고 싶지 않다. 정말 나는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죽지도 못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오늘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다가 우연히 나의 친 어머니를 보았다. 그녀는 물론 나를 못 보았다. 아니 나를 보았다고 해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보같이 그녀가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찾아갔던 그 때처럼.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나은 딸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는 채로.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나는 정말 세상이 싫다.

 

 

  소희는 일기장을 덮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제 김 판사한테 또 당한 일이 생각났다.

‘죽고 싶다. 이젠 정말 이 지긋지긋한 악몽을 끝내고 싶다.’ 소희의 절망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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