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 대한민국 스토리DNA 13
채만식 지음 / 새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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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린 시국 속에서 제 것만 지키고 있으면 태평천하라,

시대를 읽어 강렬한 풍자적 리얼리즘을 완성한 한국 문학의 대표작!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조선시대 이조 판서를 지낸 김상헌이 청나라로 끌려가며 지은 시 ‘가노라 삼각산아’에 나오는 구절이다. 때는 병자호란이 일어난 시점으로 당시의 시대가 꽤나 혼란스러웠음을 표현한 것이다. 역사 이래 태평성대한 때가 어디 자주 있었겠나만, 작금의 ‘하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이 거대한 혼란 속에서 태평천하를 찾을 길이 깜깜하게만 느껴진다. 이러고 보니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날카로운 펜과 목소리를 냈던 이들의 뜻이 유독 사무친다. 일제강점기 시절 나라를 잃고도 민족의식이나 시대의식 따위 없이 그저 내 것만 지니고 있으면 이 땅이 태평천하라고 부르짖던 한 노인의 어긋난 시대상을 비판한 작품, <태평천하>가 바로 그러하다. 새삼 오늘에 와서, 아니 오늘에 견주어 하등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시절이지만은 이 고전이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와 닿는 이유는 시대에 대응하여 문학이 할 수 있는 사명과 존재론적 가치를 냉철하게 담아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만 빼놓고 다 망하라던, 윤직원 영감이 사는 법!

 

때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시대로, 느닷없이 졸부가 된 아버지 윤용규로부터 가산을 물려받아 이제껏 잘 키워온 노인 윤직원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72살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100kg이 넘는 홍안백발의 좋은 풍신에 오래 살고, 부유하고, 귀해 보이는 인상을 지녔으며 의관 또한 번지르르한 것이 누가 봐도 있는 집 대감으로 보임직 하다. 부패한 지주이자 은행에 넣어둔 돈과 고리대금업으로 이자를 받아가며 남부럽지 않을 부를 누리니 열다섯 살인 어린 기생을 애인으로 삼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가락 소리를 듣는 낙으로 사는 것 또한 영락없이 팔자 좋은 노인이라. 그러나 인색하기 짝이 없는 구두쇠, 자린고비 영감이라 인력거꾼의 삯을 깎아들려고 하질 않나 나라에 내는 세 마저도 흥정을 하고, 명창대회 구경을 가서 하등석 표를 끊어놓고 상등석에 기어코 앉는 등 옹색한 구석이 다분한 자이다. 심지어 진시황이 영생불사를 하고 싶어 불사약을 구하려고 다녔듯, 오줌도 먹고 보건체조도 하고, 좋은 보약도 먹고 해서 만석의 부를 길이길이 지키고 가문에 양반을 만들어 대대로 영광을 누리고자 혈안이 되었음이다. 큰 집안의 웃어른이자 넉넉한 자산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 뻔뻔한 면면들을 보고 있자면 우습기 짝이 없고 못나기도 이렇게 못날 수가 없다. 양반이나 지배층을 놀림거리로 삼았던 가면극이 그러하듯 우스꽝스러운 윤직원 영감의 행태들은 이 소설을 지배하는 풍자의 근거가 된다.

 

 

 

 

 

나라와 민족이 어찌되었든 일신의 안녕과 가족의 이익만을 오로지 중요시 여기는 윤직원 영감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다. 아버지 윤용규가 살아있었을 적에 화적떼가 들이닥쳐 집안의 남자란 남자는 반죽음이 되게 매질을 하고 가산을 훔쳐가는 것은 물론, 탐욕스러운 수령이 공연히 잡아다가 보석금을 받아 챙기기 일쑤이니 하루라도 마음 편안할 날이 없었다. 느닷없이 또 화적떼가 등장하여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윤직원이 꽁무니에 불이 나도록 도망치던 시각, 숱하게 당하고 당한 것이 억울하고 분하였던 윤용규는 악에 받쳐 칼을 휘두르다 기어코 죽음을 맞게 되었다. 뒤늦게 돌아온 윤직원은 참혹하게 죽어 넘어진 부친의 시체를 안고 땅을 치며 울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나니 개인의 안전과 가솔들의 안녕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 따위야 어찌 되든 망해버리라고 분노할 만하다. 고난과 풍파를 겪고 마침내 피까지 적신 재물인 만큼 한 푼에 벌벌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놈의 세상이 어느 날에 망하려느냐!”

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울음을 진정하고도 불끈 일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또한 웅장한 절규이었습니다. 아울러, 위대한 선언이었고요. / 60p

 

 

이러한 연유로 돈도 돈이지만 집안에 문벌을 세워야겠다는 그의 생각은 더욱 절실해졌을 것이다. 듬직한 뒷배나 연줄이 있어야 안위를 보장 받고 자신의 가문을 함부로 대하는 자가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 그는 가문을 빛나게 할 네 가지 방책을 세운다. 이천 원의 돈을 들여 족보를 새롭게 꾸미기, 자신의 이름 앞에 직함이 붙어야겠으니 아쉬운 대로 학교의 우두머리 자리인 직원(直員)이라는 벼슬자리 구하기, 찢어지게 가난해도 양반집에서 며느리 구하기, 손자 둘이 있으니 하나는 군수요 하나는 경찰서장으로 양성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에도 버젓이 부정청탁과 부정입학으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자들을 짓밟고 올라가는 세상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세상이 오로지 자신의 재산과 안위를 지켜줄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라 믿는 그의 시대착오적인 발상은 옹호하기 어렵다. 이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부조리한 사회의 일그러진 정의와 윤리의식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 소란한 시절은 갔다고, 이 얼마나 태평한 세상이냐고, 가진 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세상을 이치로 삼는 그의 이기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비판하려는 작가의 의식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송도 말년(松都末年)에는 쇠가 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던게 지금은 다 세태가 바뀌고, 을축갑자(乙丑甲子)로 되는 세상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쇠가 쇠를 낳기로 마련이니 그건 무슨 징조일는지요.

아무튼 그놈 돈이란 물건이 저희끼리 목족(睦族)은 무섭게 잘하는 놈인 모양입니다. 그렇길래 자꾸만 있는 데로만 모이지요? / 121p

 

 

 

새어나가는 바가지, 마음의 빈민굴!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이러한데, 가족들이라고 해서 어디 올바른 사람이 있겠는가. 흥미롭게도 <태평천하>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모순되거나 누구하나 바른 윤리관이나 사회의식을 지닌 이 하나 없다. 윤직원에서 아들 윤창식으로, 손자인 종수와 종학에게로 새끼를 치듯 이어지는 속물근성과 무너진 윤리기강은 전염병 같다. 모두들 하나같이 윤직원의 재산에 의지해 탕진만 해댈 뿐이고 건실하게 살뜰히 살피는 사람이 없으니 결말을 보지 않아도 이 집안이 어찌될지 불 보듯 뻔하다. 이러고 보면 몇 푼 쓰는 것이 아까워 혼자서 벌벌 떠는 윤직원의 모양새가 참 딱할 지경이지만, 집안이 콩가루가 되어 가는지도 모르고 어린 기생과 오입질 할 생각에 침을 흘리고 앉아 있는 꼬락서니를 보면 말을 다한 셈이다. 오늘날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밖으로 도는 남편들 때문에 집안의 여자들 역시 한없이 무기력해있으며 소외된 채 그저 방치된 모양새도 참으로 불편하다. 이렇듯 윤용규로부터 5대째 자식과 또 그 자식들이 부를 누리고 살고 있지만 윤직원네 일가는 실상 언제 다 샐지 모르는 구멍 난 바가지이고, 헛헛하기 짝이 없는 마음의 빈민굴과 다름이 없다.

 

이렇게 생과부, 통과부, 떼과부로 과부 모를 부어 놓았으니 꽃모종이나 같았으면 춘삼월 제철을 기다려 이웃집에 갈라 주기나 하지요. 이건 모는 부어 놓고도 모종으로 갈라 줄 수도 없는 인간 모종이니 딱한 노릇입니다. / 73p

 

 

 

무너지는 태평천하

 

세상 다 무너지는 한이 있어도 마지막 희망은 있다고, 윤직원 영감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랑이자 희망은 손자 종학이다. 동경에서 대학교를 다니며 착실하게 경찰서장이 될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그야 말로 집안의 보배이자 든든한 재산이다. 하지만 그 희망이 동경에서 날아온 전보 한 통에 만리장성이 무너져 내리듯 허물어진다. 사회주의에 동조하여 경시청에 붙들렸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사회주의라니, 가진 자가 편하게 살 수 있는 자유주의 세상을 두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생각해 재산을 나눠야 하는 사회주의에 다름 아닌 손자가 동참했다는 사실은 그를 절망에 빠뜨리게 한다. 일찌감치 윤직원은 일제 순사들 덕분에 흉악한 화적들이 사라지고, 중국과의 전쟁으로 사회주의를 막아내 주니 이토록 고마울 것이 없다며 적극적으로 일본을 옹호하거나 사회주의를 비방하였기에 종학의 소식은 더욱 비통하게 느껴진다.

 

 

“청국을……? 청국두 그놈의 사회주의라냐. 그 부랑당 속을 맨들어……? 그게 무어니무어니 하여두 이 사람아, 알구 보냉개루 바루 부랑당 속이지 별것이 아니데그려……? 자네는 모르리마넌 옛날 죄선두 활빈당(活貧黨)이라넝 게 있었너니. 그런디 그게 시체 그놈의 것 무엇이냐 사회주의허구 한속이더니…….” / 143p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들이 있더냐……? 재신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 310p

 

 

지식인으로써 사회주의에 몸을 담은 종학을 그나마 긍정적인 인물로 보아야 하는가 하면 이 또한 의아하지만 어쨌든 태평천하라고 믿었던 윤직원의 세상은 사실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태평천하>는 이미 그 말 속에 수많은 반어와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었기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결말이지만, 무엇보다 모두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던 작가의 투철한 사회의식에 감탄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풍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일제강점기든, 2016년의 대한민국이든 우리들은 욕망의 그늘에서 멀찌감치 물러설 수 없는 까닭이다. 우리가 이러한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시대가 급변하고 더욱 자유로워진다 하여도 시대의식은 오히려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불편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내내 지켜봐야하는 시대일수록 말이다.

 

 

시점이니, 문체니 하는 관념적 구조 속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고전의 매력에 빠져서 읽었다. 분명 학창시절에도 <태평천하>를 읽었을 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 보면, 학습에 얽매여 일부만 읽느라 이렇게 개성 있는 인물과 언어유희가 가득한 소설인줄도 모르고 읽었나보다. 고전은 영원하다더니,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올해에도 다양한 책들이 나왔지만 다시금 고전이 새로이 기획되고 계속해서 출간되는 것이 새삼 반갑다. 지금 읽어도 좋은 고전들은 자주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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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런 심리법칙 알아? -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심리학 키워드 100
이동귀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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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꼽은 최신 키워드로 읽는 심리학 상식서!

삽화와 함께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는 심리백과!

 

 

  개인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정신과정을 탐구하는 ‘심리학’을 접근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목적은 ‘너와 나의 다름’을 이해하는 데 있다. 나의 심리상태를 먼저 파악하는 것은 물론, 타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심리적 정황들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는 데 도움을 얻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융의 분석심리학을 필두로 심리학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양이 부족한 나로서는 의욕과 달리 학문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증후군’, ‘~효과’, ‘~이론’과 같은 다양한 심리학용어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그 어원을 파악하여 하나하나 이해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이동귀 저자와 네이버가 의기투합하여 자주 검색하는 심리학 용어, 즉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만한 심리 법칙들을 정리한 이 책이 마냥 반갑다.

 

 

  다시 말해 <너 이런 심리법칙 알아?>는 일종의 심리상식백과이다. 유명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심리학 키워드를 100가지 뽑아 심리학자가 그것의 의미를 풀어낸 책이다. 기존에 몰랐던 용어들은 물론,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심리학 용어들도 상당수 있으나 이제껏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 책이 꽤 도움이 될 듯하다. 경제, 경영, 사회학, 일반 상식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와 같이 심리학에 부담 없이 접근하고 싶은 이들에게 더없이 즐겁고 재미있는 독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단 어려운 설명을 배제하여 부담 없이 읽히고, 위트 있는 삽화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보다 쉽게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저자가 설명하듯 학술적인 내용이나 본격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 책이 적절하지 않을 것이나 여러 연령대의 독자들이 심리학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고 가까이 하기에는 좋은 책인 듯하다.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 Porcupine's dilemma)

- 대인관계에서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욕구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심리상태다.

 

  책에 수록된 심리법칙들 중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부모로써 새겨두면 좋을 법한 것이 바로 ‘고슴도치 딜레마’다. 이는 인간의 가시투성이 본성을 고슴도치에 비유하여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싫어서 혼자 고립되어 타인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두려움을 대변하는 말이다. 독일의 철하자 쇼펜하우어의 한 논문집에서 고슴도치와 관련된 우화를 소개했는데, 고슴도치들은 서로를 찌르고, 다시 모여들기를 반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서로 최소한의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들이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관계 유지의 방법을 찾아내었듯 인간 역시 관계에 있어 친밀함을 원하지만 또한 적당한 거리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정신분석학자는 평범한 어머니들이 자식을 매우 사랑하지만 동시에 싫어하는 양면적인 감정을 가진다고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내 자식이지만 콱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 감정이 때로는 불거져서 불쑥불쑥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그것을 아이에게 은연중에 내비칠까 마음을 단속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참다 참다 폭발하거나 내가 공격적인 성격으로 바뀌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될 정도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이 책에 의하면 양면성을 인식하는 어머니들이 그렇지 않은 어머니들보다 자녀에게 덜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니 말이다. 즉, 고슴도치 딜레마의 법칙을 인식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아이와의 관계가 보다 원만하게 유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는 부모는 자녀가 사춘기에 이르면 심각한 갈등을 겪을 수 있다. 점차 독립성을 추구하는 아이에게 부모의 지나친 관심은 집착과 구속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서로를 존중하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 26p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 /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 약을 제대로 처방했는데도 환자가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면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이다. /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이나 꾸며 낸 치료법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으로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이다.

 

  역시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맞는가보다. ‘부정적인 암시가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의미하는 노시보 효과와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의 긍정적인 효과’를 의미하는 플라시보 효과를 보면 그러하다. 노시보 효과로 인해 해롭지 않은 물질로도 질병이나 죽음에 이르기도 하며, 의사들은 실제로 부정적인 진단을 받은 환자가 부정적인 자기 암시로 단기간 내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는 말이다. 플라시보 효과는 많이 들어봤지만 노시보 효과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처럼 상이한 두 법칙을 함께 수록하여 이해가 보다 쉬웠다는 점을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을 듯하다.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

-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생각하려는 심리이다.

 

사람은 보통 현실이 힘에 겨울 때 좋았던 과거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시간을 거슬러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면서 복잡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향수에 젖는 것은 일종의 퇴행 심리다. 즉 현실을 부정하고, 감정적으로 안정적이었던 과거로 돌아가고픈 것이다. / 74p

 

 

  ‘므두셀라 증후군’은 내가 늘 마음에 두고 있는,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해왔던 기억 왜곡을 동반한 일종의 도피 심리이다. 이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969살의 므두셀라(노아의 할아버지)가 나이가 들수록 과거에 대한 좋은 기억만 떠올리고,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모습에 빗대어 탄생한 용어라고 한다. 최근 대중매체에서 이 므두셀라 증후군을 이용하여 홍보와 마케팅에 적극 반영하고 있는데 무한도전의 ‘토토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개인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마주치거나, 불편한 기억을 최대한 밀어두고 직접적으로 마주하지 않으려는 나의 태도를 나쁘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에 이 증후군이 보다 가깝게 와 닿고 한편으로는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은 보통 현실에 힘이 겨울 때 좋았던 과거로 회귀하거나 좋았던 기억만 떠올리고 그리워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마냥 도망치려고만 하는 내 모습이 싫고 불편했는데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벽에 붙은 파리 효과(Fly-on-the-wall effect)

- 어떤 일에 실패하거나 좌절했을 때 제 3자의 입장으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래 ‘벽에 붙은 파리’의 뜻은 ‘그대로’이다. 과거의 나는 ‘내면 자아’이고 울거나 화를 내며 고통스러워하는 나는 ‘현실 자아’이다. 그리고 이 두 자아가 만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는 ‘객관적 자아’이다. 제3자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그대로’ 바라보면 오히려 과거의 감정이나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객관화 기법은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환자에 대한 심리치료에서 사용된다. / 104p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거나 자신의 입장에만 몰입하여 자칫 관계를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필요한 심리 법칙이 바로 ‘벽에 붙은 파리 효과’이다. 용어가 참 단순하고 재미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이는 힘들고, 서럽고, 분노가 치밀 때 제3자의 입장이 되어 객관적이고 초연한 입장에서 바라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글로 써 보거나 관계자와 ‘역할 바꾸기’를 시행해 본다면 아픔을 외면화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슬프다고 느낄 때, 큰 실수를 해서 괴로울 때 ‘벽에 붙은 파리’가 되어 본다면 별것 아닌 일에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했는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단순히 다양한 심리 법칙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 보다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을 열어보듯 가볍게, 한 번씩 들추어보며 읽기에 더없이 좋을 재미있는 심리학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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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니다, 우주일지
신동욱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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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하기 위해 소행성을 납치하라!

우주 덕후를 자처하는 배우 신동욱의 유쾌한 우주과학소설!

 

 

  우주과학이라는 분야를 하나의 완성도 높은 창작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유수의 자문위원과 오랜 탐구, 작가 스스로 이야기로 구현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와 철학 및 지식들이 모두 갖추어져야만 가능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인터스텔라>, <그래비티>와 같은 작품이란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는 것만큼이나 위대한 도전 끝에 탄생한, 우주의 그 광활한 크기만큼이나 가늠할 수 없는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배우에게서 우주과학소설이 탄생했다. 천문학자도 아니고, 공학자도 아닌, 희귀난치병 판정을 받고 오랜 기간 투병의 시간을 보냈던 배우 신동욱에게서 말이다. 그는 “나는 조금 아프지만, 자랑스러운 30대 ‘우주 덕후’다” 라며 스스로를 그저 마니아 이상의 열정을 가진 덕후라 자처했을 뿐이다. 그간 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에서 활약했던 배우의 활동내력을 생각하면 의아할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그저 우주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작품의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천재 이론물리학자인 아내를 위해 소행성을 납치하러간 대담한 남자, 맥 매커천!

  주인공인 맥 매커천은 41살에 T그룹의 CEO, 세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사업가, 전기 자동차의 아버지, 태양광 발전의 아이언맨, 화성이주를 꿈꾸는 개척자, 바람둥이, 현실계의 토니 스타크라 불리는 초긍정주의자이다. 이 화려한 수식어를 뒷받침해주듯 그는 지구 최초로 그야말로 별도 따다 주는 남편이다. 한국인에 천재 이론물리학자인 아내 김안나는 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할 때 필요한 균형추로 소행성 AC5680을 지목했고, 이를 사로잡기 위한 범국가적 프로젝트에 남편인 그가 직접 나선 것이다. 말 잘 듣는 애처가이자 우주를 사랑하는 그는 안전하게 지구로 소행성을 ‘배송’하기 위해 일명 페덱스 1,2,3호를 탄 대원들과 함께 약 2억 3천만km 떨어진 곳까지 날아간다. 이렇듯 소설 <씁니다, 우주일지>는 주인공 맥 매커천의 우주 생활 적응기로, 기발한 상상력과 대담하고 능구렁이 같은 기질의 유쾌함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칼 세이건…… 난 우주를 사랑했던 그들의 글을 읽으며 자랐어. 그들이 원했던 대로 우주에 대한 사랑의 씨앗이 내게도 전해졌던 거지. 나는 단지 씨앗만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씨앗을 재배해서 내 손으로 열매를 따고 싶었어. 그 뿐이야. 우주에 대한 꿈을 좇다 보니까 우주만큼 일이 커져 버렸긴 했지만.” / 107p

 

 

왜 하필 소행성 AC5680을? 저자 신동욱이 지향하는 우주소설이란?

  화성에 집을 짓고 살고 싶었던 남자, 맥은 이주 계획에 필요한 우주 엘리베이터를 건설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를 실현시켜줄 자신의 아름다운 아내 김안나는 6만km에 달하는 탄소나노튜브 케이블을 만들고 우주에서 무게 중심축을 잡아줄 균형추가 필요했다. 제작하는 방안도 있고 우주 발사체들을 여러 대 결합해서 균형추를 만드는 방안도 있지만 그녀는 소행성 포획이 가장 저렴하고, 그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과학적 이득이 더 많다고 설명한다. 많은 소행성들 중에서 궤도상으로나 크기와 질량을 봤을 때 균형추로 적합한 것이 바로 소행성 AC5680였다.

 

 

“모습이 고구마 같지요? 이 고구마가 유리한 점은 지구의 입장에서 볼 때 보이는 면적이 넓다는 겁니다. 세워져 있는 모양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우리가 꼬셔오기에도 수월합니다. 질량, 크기 같은 것들은 덤이라고 할 수 있지요.” / 139p

 

 

  소행성을 포획하기 위해 우주로 나아가는 이 소설의 접근법은 상당히 가볍고, 때로는 유머에 가깝기까지 하다. 이거 정말 가능한 일 맞아? 하는 의구심이 몇 번이나 고개를 든다. 게다가 아무리 아내와 우주를 사랑한다지만 엄청난 자본이 드는 우주 사업에 뛰어들고 심지어 우주로 직접 날아가는 무모함이라니. 문득 특유의 사업가 기질을 앞세운 이 호탕한 남자의 매력과 기발한 상상력에 사로잡힌 나머지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이것이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점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확실히 군인들처럼 충돌시키고 때려부수지 않아서 좋습니다. 뭐든지 꼬여 올 때는 서서히, 그리고 부드럽게 꽤야 완전히 내 것이 되는 법이니까요.” 라는 대사가 그러하듯이 이 소설에는 우주과학소설에 지녀야 할 당연한 과학적 근거나 치밀한 잣대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 그럴 필요도 있겠나 싶다. 근거를 너무 집요하게 파고든다면 창작이라는 고유의 가치가 훼손될 수도 있다. 그저 재미있게 즐기기, 우주 과학을 소재로 하여도 따분하지 않고 상상력을 즐기기만 하여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저자는 말하는 듯하다.

 

 

우주적응기에서 우주표류기로!

  맥은 아내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꼬리 부분의 궤도 수정용 엔진이 순간적으로 엄청난 추력을 제공하면서 왕복선의 선체가 기울어졌다가 구멍이 나는 충격을 받고, 동시에 동료를 잃고 그도 함께 표류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는 극적으로 생존하게 되지만 지구에서는 그를 죽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만큼 통신은 두절되고 식량도 떨어져간다. 이는 마치 영화 <마션>과 흡사하다. 맷 데이먼이 그러했듯 우주 미아가 된 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 돌아가리라 결심하며 일지 쓰기를 멈추지 않고 생존을 향한 분투를 계속 해나간다. 그 와중에 흥미로운 것은 주인공이 느끼는 극도의 불안감과 공허함에 대해서 저자는 꽤 실감나게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써 진지하게 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몰랐다. 벙어리가 되는 것이 이렇게 어둡다는 사실 말이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내 자신이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뱃사공, 스틱스 강을 노 젓는 카론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1달만 버티고 나면 지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는 나의 어여쁜 안나와 실컷 대화를 나눌 생각이다. 외롭다보니 그렇게 됐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길. 그리고 지금 든 생각인데 지구에 돌아가면 동물 애호가가 될 생각이다. 강아지가 오죽하면 짖어 대겠는가. 나는 강아지들도 외로워서 짖는 것이라고 믿는다. 외로우면 짖는 거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 337p

 

 

  맥이 느끼는 공포의 크기는 반드시 유머에 비례한다. 아마도 저자는 고립된 한 인간의 철저한 외로움을 어둡게 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처럼 맥은 끔찍한 외로움을 기저귀 패드에 아내를 그리는 것으로 달래는 장면이나, 식량을 대체해 먹는 응가응가 육포를 설명하는 것이나 미리 다운로드해 받아간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심란한 마음을 눙치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시종일관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광활한 우주를 유영하듯 흥미로운 상상력과 우주과학에 대한 지적 즐거움으로 나아가다보면 한낱 작은 존재일 뿐인 인류의 오만함을 마주하게 되고 어느새 숙연해지기도 한다. 끝도 없는 심연, 우주와 같은 막막함에 사로잡힌다 하여도 맥처럼 절대 긍정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 또한 충분히 와 닿는다. 이는 투병생활을 겪은 산 증인으로써 모두에게 전하는 저자의 울림 있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저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 이렇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어서 돌아온 신동욱을 앞으로 주목하고 응원해야겠다.

 

 

자, 그럼 소행성 포획 미션에 모두들 동참할 준비가 되었는가! 3,2,1,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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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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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무라도 알아주기를 바래!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나는 브릿마리의 놀라운 여행! 

 

 

까칠한 브릿마리 여사의 외출은 그렇게 시작된다!

 

  남을 평가하지 않는다지만 알고 보면 편견으로 가득하고, 인생은 늘 변함없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에 리스트에 적힌 일정대로 행동해야 하며 어디든 과탄산소다를 반드시 챙기고 다녀야 할 정도의 결벽증세를 지닌 여사, 브릿마리. 그녀는 40년 동안 살던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었고, 이케아 가구도 조립할 줄 모르는, 그저 바람 부는 발코니와 자신의 수고를 알아주는 남편이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간 사업에 몰두하느라 바빴던 남편이 알고 보니 바람을 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한 집에서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 <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바로 남편의 그늘에만 머물렀던 그녀가 집을 나서기로 결심하여 고용센터를 찾는 데에서 시작한다. 문제는 일을 구하기 위해 고용 센터 직원을 구워삶아도 모자랄 판에 직원의 교양 없어 보이는 헤어스타일과 행동들이 탐탁지 않아 지적하는 그녀의 말투가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다. 연락을 할 것 같지 않지만 조만간 연락을 주겠다는 의례적인 말을 하는 직원에게 우리의 까칠한 브릿마리 여사는 무턱대고 약속 시간을 잡고 찾아가 괴롭히기까지 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브릿마리에게 쩔쩔매던 직원은 40년 동안 일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목숨을 거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브릿마리는 어떤 여자가 아파트에서 죽은 지 몇 주 만에 발견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이야기하며 말한다.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고, 직업도 없었던 그녀의 존재를 아는 이가 없었다고. 일을 하면 출근하지 않았을 때 적어도 사람들이 알아차리기는 할 것이 아니겠냐고. 오늘날 ‘관종’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던 것은 인정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은 당연한 인간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브릿마리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그늘에서만 지냈던 그녀도 이제 여기 내가 있음을, 누군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차츰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일을 하려는 이유는 악취로 이웃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 본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무라도 알아주었으면 하거든요.” / 39p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르그 마을   

 

  브릿마리는 폐쇄된 것이나 다름없는 보르그라는 지역의 레크리에이션 센터 관리직을 얻게 된다. 이 일자리는 보수도 형편없을 뿐 아니라 임시직인 데다 3주 뒤면 폐쇄 여부가 결정이 난다. 마을은 대부분이 매물로 내어놓은 집들이 대부분이라 삭막하기 그지없다. 고작 피자 가게인데 우체국과 자동차 수리까지 겸하고 있는 피즈레이라는 식당이 눈에 띌 뿐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주인인 미지의 인물(이름이 끝끝내 밝혀지지 않는다)과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축구공에 차 문 한 짝과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것으로 첫 대면식을 치른다. 보르그는 브릿마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동네임에는 분명하다. 그녀가 일할 센터나 머무를 집, 자주 드나들어야 할 피자 가게는 위생과 전혀 거리가 멀고, 마찬가지로 그녀가 싫어하는 축구를 하는 아이들과 수시로 맞닥뜨려야함은 물론, 몇 안 되는 사람들도 도저히 어울릴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녀는 연고도 없는 이 낯선 곳에서 타인을 만나고 스스로를 돌이켜볼 시간들을 갖게 되면서 서서히 자신의 처지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수많은 생각들과 마주하게 된다.

 

 

화분에는 흙만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밑에서 꽃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것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물을 주어야 한다. 브릿마리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런 믿음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그러길 바라는 마음뿐인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둘 다 없는지도 모른다. / 68p

 

 

  어느 모로 보나 자기보다 나았던 언니를 앞세운 부모를 만족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브릿마리는 노력했다. 하지만 점점 더 퇴근을 늦게 하다 결국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브릿마리는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 법, 자신의 앞날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을 참고 견디는 법을 터득했다. / 280p

 

 

  지난 날, 언니의 사고로 인해 그 어떠한 기대들을 모두 묻어둬야 했던 그녀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드러남으로써 결벽증과 남들에게 까칠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태도들이 점차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그렇듯 이 낯설기만 했던 마을에도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 그녀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 줄 사연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녀의 까칠함 뒤에 숨겨진 따뜻한 마음을 사람들도 점차 이해하기 시작한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축구가 존재한다.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던 축구가 말이다.

 

 

인생을 끌고 갈 수 있는 힘, 그것은 축구

 

  굳이 브릿마리를 예로 들지 않아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축구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심지어 싫어하기도 한다. 연인이나 남편이 축구 경기에 빠져서 함께 할 시간이나 드라마 채널을 빼앗기곤 한다는 등의 이유로 말이다. 브릿마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르그 사람들은 대부분 축구를 좋아했다. 적어도 그녀 주변에는 아이든 어른이든 축구와 연결되어 있었다. 특히, 보르그의 아이들은 감독이나 코치가 없이 자기네들끼리 팀을 이루어 축구 연습을 하곤 했다. 표적을 맞힐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만한 아이들도 없었지만, 그들의 축구를 향한 열정만큼은 커다랬다. 그런 아이들이 곧 있으면 열릴 대회를 위해 뜻밖에도 브릿마리에게 코치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축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는 그녀에게 말이다. 하지만 점차 아이들과 교감하고 축구가 지닌 매력에 동화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앞으로 굴러 온 축구공을 있는 힘껏 차보기까지 한다. 공을 차지 않을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 안에서 변화의 힘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축구는 인생을 끌고 가는 힘이 있죠. 늘 새로운 경기가 있으니까요.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니까요. 모든 게 더 좋아질 거라는 꿈도 있고요. 경이로운 스포츠예요." / 431p

 

나이를 먹으면 인간의 정신세계 속에 변화의 여지가 얼마나 남을지 궁금해한다. 앞으로 그녀는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할까? 그들은 그녀에게서 어떤 면모를 볼 것이며, 그들을 통해 그녀는 자기 자신의 어떤 면모를 느낄 수 있을까? / 412p

 

 

  한 장소가 인간에게 이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니, 브릿마리는 자신에게서 열정이라는 들뜬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저 아무도 모르게 죽음을 맞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소박한 기대가 이제는 저 깊은 곳에 숨어 있었던 미래를 향한 꿈으로 나아간다. 이렇듯 <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한 편의 시처럼 마음을 달뜨게 하고 일렁이게 하는 참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오랫동안 집안일만 하며 살아왔던 나의 엄마가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 뭐 하러 힘들게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타박을 했던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 어쩌면 엄마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들을 찾아보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것을 말렸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불편해진다. 자식들이 모두 장성했으니 엄마도 ‘엄마’가 아니라 ‘나’로 살고 싶었을 텐데.

 

 

  곳곳에 깔깔거리며 웃게 만드는 유머러스한 대사와 삶을 관조하는 다양한 메시지들이 함께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기에 꼭 읽어보시라 단연 추천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주부들이라면 이 소설을 읽은 뒤 자신의 집에 과탄산소다가 있다면 찾아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찌든 때와 얼룩을 모두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이 천연세제의 매력에 빠지게 될 테니 말이다. 나 역시 사놓고 방치해두었던 과탄산소다는 물론 베이킹소다와 구연산까지 함께 제대로 된 사용법을 익혀 실천해보았더니 이렇게나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고마워요, 브릿마리. 당신 덕분에 나의 엄마를 생각했고, 나의 미래를 생각했으며, 깨끗한 집안을 만들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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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66일 공부법 - 어떤 시험도 단박에 성적을 올리는 고효율 공부 습관
강성태 지음 / 다산4.0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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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은 습관에서 나온다!

공신들이 실천하는 32가지의 공부 습관!

 

 

  단번에 성적을 올리는 법, 수능 만점자가 전하는 공부 노하우 등 매년 공부 방법에 관한 다양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단은 책에서 소개하는 공부법대로 시도를 해보고, 이런저런 노하우를 때에 따라 적용시켜보면서 학습에 도움을 얻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체득하기가 쉽지 않다. 그간에 습관처럼 다져진 학습 패턴을 책을 읽고 단숨에 바꾸기가 어디 쉽겠는가. 또한 단시간에 공부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들의 방법을 쫓는 데만 급급하다보니 좀처럼 변화를 얻지 못하면 그만큼 단념도 빨라지게 된다. 이는 곧, 아무리 공부법 책을 탐독하고 공부법을 배워도 내 것으로 만드는 습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습관이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도 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래 지속해야 습관으로 남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저자 강성태는 ‘66일’을 지적한다.

 

 

  영국 런던의 한 대학에서 실험하기를, 사람에게 한 가지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고자 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연구한 결과 평균 66일에 이른다고 하였다. 저자 역시 많은 학생들이 실천해 본 결과 습관을 만들고 변화를 일으켜 자신감을 찾는 데 66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약 두 달, 9주의 시간이다. 서울시 우수 사회적 기업 공신닷컴의 대표이자 각종 언론과 매체에서 최고의 공부 멘토라 불리는 강성태 저자의 신작 <강성태 66일 공부법>은 바로 이 66일에 주목하여 성적을 올리고 싶다면 66일만 실천해보라고 과감하게 말한다. 그가 알려주는 방법들을 실천하다보면 습관처럼 몸에 베일 것이고 그것이 곧 성적 향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습관은 작게 시작해 크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일러주는 방법들은 조금, 그리고 가볍게 시작하기 때문에 습관화하기에 매우 유용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 습관을 만들 수 있을까? 첫 번째 장에서는 바로 습관을 만드는 5가지의 법칙을 소개한다. 그 법칙들이란, 기존의 일상에 붙일 것, 작게 시작해 크게 만들 것, 중요한 일은 아침에 할 것, 이상적인 하루를 미리 정해 놓을 것, 실천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하는 것이기에 66일 습관 달력을 이용해 달성 여부를 체크해나갈 것 등이다. 과도한 욕심은 습관으로 만들기 어렵다. ‘죽을 힘을 다하면 하루 18시간 공부할 수 있어’라고 최대치를 실천하려고 하면 안 된다. ‘스톱워치로 재며 순수하게 집중해 2시간 공부하는 것은 내가 최소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법칙들을 실천할 때 꼭 해야 할 일은 내 방 가장 잘 보이는 곳이나 되도록이면 가족들이 볼 수 있는 공개적인 곳에 실천 의지와 달성여부를 체크해야한다. 이렇게 하면 모든 식구들이 일종의 응원자이자 감시자가 되기 때문에 지킬 확률이 월등히 올라가기 때문이다.

 

 

여기 유일한 방법이 있다. 아침에 공부하는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온 뒤 무리하며 늦게까지 공부하겠다 폼 잡지 말고 일찍 자라. 대신 아침 기상 시각을 한두 시간 앞당겨 보라. 회식에, 업무에 치이지 않고 가장 정신이 맑고 또렷한 시간이다. / 52p

 

단조로운 일상과 창의적인 생각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극과 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같은 일상이 습관처럼 반복되면 그만큼 생각할 여력이 많아진다. 어떤 여학생은 도서관에서 공부할지 집에서 공부할지를 놓고 30분을 고민한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선택과 의사 결정은 피로를 몰고 온다. 정해진 습관대로 고민 없이 움직여야 한다. / 67p

 

 

  앞서 공부 습관을 다지는 마인드에 집중했다면 두 번째 장은 실전편으로, 공부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 공부법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소개한다. 여기에서는 공부법, 복습법, 암기법, 시험 잘 보는 법, 계획 잘 짜는 법, 공부 태도로 나눠 공신들이 실천하는 공부 습관 32가지를 열거한다. 최근에 <민성원의 공부원리 패턴학습법>이나 다른 공부법에 관련된 책을 읽어서인지 몇 가지 유사한 학습법이 여기에도 공통적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5분 복습법으로, 어차피 해야 할 복습이라면 새로운 내용을 배운 뒤 몇 달이 지나고 시험 직전에 책을 펼쳐서 보려고 하지 말고 수업 직후에 하라는 것이었다. 방금 전에 들은 내용이니 순식간에 이해되고 정리되기 때문에 이를 최적의 학습 주기를 통해 간격을 두고 5회 정도 반복한다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공신들은 수업이 끝난 뒤 보통은 바로 일어나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복습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한 공신은, 자신의 공부 비결은 “매 수업이 끝난 뒤 바로 일어나지 않고 쉬는 시간 5분은 복습하고 5분은 휴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 126p

 

 

  이 외에 읽고 말하고 쓰는 3단계 ‘트리플 암기법’도 인상적이다. 중요한 부분에는 밑줄을 쳐가며 교재를 집중해 읽은 후 교재를 보지 않고 남에게 설명하듯 말해 본다. 이어 연습장에 교재를 안 보고 그 내용을 전부 써 본다. 이는 눈, 입, 귀, 손 그리고 그에 해당되는 두뇌를 전부 쓰기 때문에 암기 효율도 3배 이상이 된다고 한다. 만약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1~3단계 과정을 계속 반복해봄으로써 몸에 습관화하다보면 저절로 이 방식이 익숙해질 것이다. 이 외에도 흔히들 ‘아는데 틀렸다’고 말하며 실수를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저자는 이것이 매우 잘못된 습관이며 고치기가 어렵기 때문에 꼭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공부 습관을 만들기에 늦은 때란 없다. 저자는 변화를 시작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결심을 했을 때, 그 자리에서 뭐 하나라도 해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은 무언가라도 지금 하다보면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고 성공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저자가 왜 최고의 공부 멘토라 불리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알 것 같다. 거창한 계획은 안한 것만 못하다고, 작지만 그가 알려주는 방법들을 속는 셈치고 66일 동안 차근차근 실천하다보면 공부에 대한 답을 찾아갈 수 있을 듯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우리 아이에게도 작은 습관들이기부터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 훗날 공부가 스트레스가 되어 아이가 힘겨워하지 않도록 이 책을 통해 부모로써 해줄 수 있는 것들에 도움을 얻은 듯 하여 매우 유용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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