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에오스 클래식 EOS Classic 24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선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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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될 때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의 모든 것!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로맨스 소설의 고전!

 

 

  높은 언덕 위 아름다운 대저택에서 열리는 화려한 무도회. 그 속에서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연주곡과 능숙한 사교 솜씨를 뽐내는 남녀들이 은근히 주고받는 눈길들. 스무 살 이전, 한창 로맨스 소설을 읽는 데 빠져 있었던 나에게 있어 <오만과 편견>은 단순히 영국 특유의 고전미를 앞세운 외국 로맨스 소설에 불과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제인 오스틴 특유의 문체가 낯설어서 그저 부잣집 남자와 상대적으로 가난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에 집중한, 할리퀸 로맨스 같은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이후 나를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에 빠져들게 한 것은 뜻밖에도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였다. 작품 자체에 대한 호불호는 있었으나 다아시 역할의 매튜 맥퍼딘으로 하여금 영화를 몇 번이나 보게 만들었고, 남녀가 사랑하기 시작할 때 빠지기 쉬운 오해와 편견들을 딛고 끝내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꿈결 같은 이야기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 다시 읽는 <오만과 편견>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당한 재산을 가진 독신 남성에게 틀림없이 아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된 진리다.

이런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워낙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터라, 그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 아무리 알려진 것이 없다 해도 동네 사람들은 그를 자기네 딸들 중 누군가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간주한다. / 9p

 

 

   <오만과 편견>은 딸들을 둔 부모라면 당연히 마음에 두는 만고의 진리를 시작부터 펼쳐놓는다. 특히 다섯 딸들을 둔 베넷 가의 부모라면 네더필드 파크에 입주한 빙리라는 부유한 남자의 등장에 자연스레 흑심을 품게 마련이다. 좋은 신랑감에게 딸을 시집보내려 안달이 난 베넷 부인의 바람대로 아름답고 선량한 맏딸 제인은 빙리와 사랑에 빠진다. 한편, 지성미와 재치가 넘치는 발랄한 성격의 엘리자베스는 빙리의 친구인 다아시와 묘한 감정을 주고받지만 높은 신분과 고압적인 분위기의 그를 보고 오만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두 딸을 항상 부끄럽게 만드는 베넷 부인과 동생들의 경솔한 행동, 어울릴 수 없는 신분과 부의 장벽이 낳은 오해와 편견들로 인해 그들의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소설은 이들이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고 서로의 진정성을 들여다보게 되는 우여곡절의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마침내 두 커플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한 인물과 감정 묘사를 통해 담아낸다.

 

 

   소설의 줄거리만 보면 역시 흔한 로맨스 소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나는 다시 읽기 전만 하더라도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 왜 고전으로 읽히는 것인지 내내 이해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잘 쓴 로맨스 소설은 아닐까. 여성 작가로서는 성공하기 힘들었던 문학적 현실을 딛고 후대에 어찌되었던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들이 마치 인생의 종착지가 결혼인 듯 그것이 환상처럼 아름다운 세계인 듯 그리며 오직 그것을 향한 결말로 맹렬하게 나아가는데, 여기에 제인 오스틴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탓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읽어보니 <오만과 편견>은 전형적인 로맨스의 구조적 황홀경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읽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호감을 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콜린스 씨의 애정은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남편이 될 것이다. 샬럿은 남자나 결혼 생활 자체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결혼은 항상 그녀의 목표였다. 결혼은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별로 없는 여성에게 남은 유일한 생활 대비책이었고,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가난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방책이었다. / 189p

"저는 한정 상속에 대해서는 어느 것에도 절대 감사할 수가 없어요. 여보. 양심도 없지, 대체 왜 우리 딸들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가도록 정해 놓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거기다 그걸 전부 콜린스 씨에게 주다니! 왜 그 사람이 우리 재산을 다른 어느 누구보다 많이 가져야 하는데요?" / 201p

 

 

   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냉정한 현실과 날카로운 유머 속에 담긴 시대 풍자가 이 소설에 담긴 진정한 메시지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이다. 왜 여성들이 자신과 가족 전체의 신분 상승의 욕망을 결혼을 통해서 실현하려 했던 것인가, 답은 사회의 모순된 구조 속에 있었다. 딸들에게는 재산을 모두 물려받을 수 있는 권리가 없는 비정상적인 현실이 그들을 남편의 수입에 목매달게 만들었고, 제인 오스틴은 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며 돈과 계층 간의 상관관계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유머를 곁들어 위트 있게 담아낸 것이다. 상류 사회를 지향하는 속물 근성의 여성들로 가득한 당대의 세계관을, 은근히 풍자의 형식을 빌려 사회 전체를 비판한 그녀의 글쓰기를 단순히 로맨스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런 평가를 차치하고서라도 나에게 있어 <오만과 편견>은 정말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음에 또 다시 읽을 때면 새로운 것이 눈에 보일까. 역시 고전은 몇 번이고 읽어도 새롭고 다시 읽히게끔 하는 힘이 있기에, ‘고전’이라 불리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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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쟁! 철학 배틀
하타케야마 소우 지음, 이와모토 다쓰로 그림, 김경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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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인의 사상가들이 펼치는 토론 한판!

사상가들의 뜨거운 논쟁을 관전하다보면 어느새 철학이 보이기 시작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적나라한 민낯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누적되어 온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단번에 뒤집어엎어질만한 실마리를 찾을 수 없고, 청년 실업에 후진국형 재난과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사회는 미래에 대한 준비와 훈련이 미흡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두를 어느 한 개인이나 국가가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시민이 많아져야 한다. 오늘날 인문학적 사고, 즉 철학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철학적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고를 통해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헤쳐 나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시중에는 많은 교양철학서적들이 쏟아져 나와 있지만 여전히 현실감이 없거나 학문으로의 접근에 치중된 나머지 대중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대논쟁! 철학 배틀』은 누구나 쉽게 철학적 사고를 시작할 수 있도록 안내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스스로 사유하도록 해줄 좋은 철학 입문서가 되어 줄 것이다.

 

 

   일단 『대논쟁! 철학 배틀』은 여타의 철학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표지로 시선을 끈다. 주요 사상가들이 만화 캐릭터로 등장하여 제목처럼 뜨거운 격론의 한 판 싸움을 펼칠 기세이다. 책에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동양의 공자와 니체, 석가모니 등에 이르기까지 총 37인의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오늘날의 시사 문제부터 철학의 주요 논제에 이르는 15가지의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한다. 동서양과 시대를 막론하고 주제에 부합하는 대표 사상가들이 나와 찬반의 토론을 펼치는 것인데, 이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 제기했던 사상들을 매우 설득력 있게 근거로 제시한다. 소크라테스는 사회자가 되어 토론의 주제를 제기하고 각 사상가들의 주장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격렬하게 토론이 진행될 때면 중제를 하고, 또 분위기를 달아오르게도 함으로써 사상가들이 냉철하고 치열하게 대화하여 철학이 지닌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돕는다. 이는 철학이 생각하고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음미하는 데 있음을 역설한 소크라테스의 뜻이자 저자의 집필 의도와도 같다.

 

 

소크라테스: 과연 인간은 애초부터 자유로웠을까? 입장의 차이에 따라 루소와 장자의 입장도 될 수 있고, 홉스의 입장도 될 수 있겠지. 또한 긴급사태 때에는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카를 슈미트 군의 위임독재론은 대단히 날카로웠네. 마지막에 등장한 사르트르 군은 자유와 구속의 관계를 훌륭하게 해명했다고 생각해. 무한정 자유롭기 때문에 어떤 것과 책임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 자체를 창조해간다는 관점은 자유와 구속이 실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관점을 제시해주었지. 그러고 보면 어떤 책임을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창조하는 가장 자유로운 상태일지도 모르겠군. / 181p

 

 

   개인적으로 이런 유형의 철학서가 반가웠던 이유는 철학가들의 사상을 복잡하게 풀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철학 배틀에 참가하는 이들의 명단과 함께 계보를 한 눈에 훑어볼 수 있는 사상 지도를 함께 보여주니,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던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기 쉽다. 우리가 역대 왕의 계보를 쭉 외우면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듯, 이들의 사상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을 때 이 지도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여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소크라테스와 석가모니, 공자가 기원전 5세기의 동시대 인물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어떠한 저작도 남기지 않았으나 사후에 제자들이 그들이 나눈 대화들을 정리하여 책으로 남겼다는 공통점까지 지니고 있다. 이렇게 보면 철학이라는 학문은 사실 사상을 정리해 전파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얻는 진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책에서 다루는 15가지의 주제들은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들과 직면해있다. 빈부의 격차는 어디까지 허용될까, 소년범죄를 엄벌로 다스려야 하나, 신은 존재할까,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까 등등의 주제들은 현재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첫 장의 ‘빈부격차는 어디까지 허용될까?’를 보면 격차를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공동체는 각각 자신의 능력에 맞게 부를 분배받는 배분적 정의가 필요하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와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한 애덤 스미스가 대표자로 등장한다. 이와 반대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의 아버지’인 카를 마르크스와 ‘사회적 약자를 소회시키지 않는 복지 사회를 위한 격차시정의 원리’를 주장한 존 롤스가 자신의 뜻을 피력한다. 여기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살펴보며, 복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부분들을 짚어볼 수 있다.

 

 

   여러 논쟁 중 스승과 제자가 논쟁을 벌이는 부분은 특히 흥미진진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한 제레미 벤담은 양적 공리주의를 주창하였고, 그의 제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질이라는 독자적인 관점을 부여함으로써 질적 공리주의로 발전시킨 바가 있는데 이들은 ‘소년 범죄, 엄벌로 다스려야 할까?’를 주제로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한 것이다. 세계를 둘러싼 일원론과 이원론의 싸움에서도 세계는 하나라고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그의 스승인 플라톤은 현상계와 이데아라는 이원론을 주장한다. 이처럼 스승의 사상에 마땅히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사유를 통해 끊임없이 반론을 제기하고 참된 진리를 깨우치려는 철학자들의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칸트: 잘못된 현실을 시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이 진리가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는 인간의 행동 규범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원칙인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통해 세계를 똑똑히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철학자의 역할입니다. / 238p

 

 

   이렇듯 『대논쟁! 철학 배틀』은 대화와 토론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철학적 대립과 주장을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는 듯하다. 주장에 맞는 근거들을 제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오늘날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든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장에서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이 변증법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전화를 예로 든다. 집 전화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끼리 대화할 수 있지만 바깥에서는 사용할 수 없음으로 이런 점에서 집 전화를 테제(정)라고 하면, 바깥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안티테제(반)로, 두 가지 다른 입장을 발전시키면 진테제(합)인 공중전화가 된다는 논리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유를 향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부정함으로써 더욱 더 자유로운 모습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설명한다. 변증법이라는 철학 사상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듦으로써 독자들에게 철학을 더욱 가깝게 다가가게 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덕분에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주제만 보아도 논의를 펼칠 철학가가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 철학은 꽤 어려운 난제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 책이 가볍게 철학 훈련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도 책을 쓴 저자가 전문 철학자가 아니라 일본의 입시학원에서 윤리와 정치경제 과목을 가르치는 유명 강사라는 점에서 한 몫을 한 듯하다. 이해하지 못할 어려운 사상들을 풀어쓰려 애쓰지 않고 강사로써의 경험을 통해 친숙하고 어렵지 않은 단어로 설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각 페이지의 하단마다 해당 용어를 쉽게 풀이한 주석을 달아놓았고, 꼭 알아두어야 할 점들은 별도로 표시까지 해두어서 요점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에 tvn에서 방영하는 대학토론배틀을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는데, 대학에서조차 많은 청년들에게 생각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리 있게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는 중심을 잃지 않고, 세상의 논리에 그저 따라가지 않으며 자신만의 원칙과 진리를 이 책을 통해서나마 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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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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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뻗어나가는 지식의 향연!

일본 대표 지성의 서재를 통해 ‘책’이 있는 삶의 의미를 읽다!

 

 

 

   오래된 책 냄새, 가로 나열된 장서의 낡은 책등, 그 고유의 존재감을 교교하게 빛내던 동네 도서관이 문득 떠오른다. 나는 해가 질 무렵이면 서가 속으로 숨어들어가 꼭 그곳에서 책 읽기를 좋아했다. 마치 이야기의 질감을 느끼듯 한 장과 한 장, 그 낱낱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좋았고 한손에 받치고 있던 책의 묵직한 무게감에 행복했다. 무엇보다 빼곡하게 책으로 채워진 서가 그 자체가 좋아서 책을 더욱 가까이 했는지도 모르겠다. 단발의 소녀였던 나는 도서관 속에서 자연스레 서재라는 공간에 대한 꿈을 갖기 시작했다. 아직은 서재라고 할 만한 공간도 없고 상당한 양도 아니지만, 거실 한 면을 채우고 있는 책장을 쭉 둘러보니 여기에 추억의 한 단면까지 함께 꽂아놓았음에 새삼 놀라움을 느꼈다. 이 책이 좋아서 구매를 하고 또 읽고, 책장에 꽂히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고, 그것이 나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하나의 증명이 된 셈이었다. 그래서 ‘서가를 보면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보인다’ 던 다치바나 다카시의 문장이 낯설지 않다. 이 작은 책장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하물며 무려 20만 권에 이르는 장서를 보유한 그의 서재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있을까. 이것이 내가 압도적인 지적미를 발하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게 된 이유이다.

 

 

 

서가는 소유자의 지적 편력의 단편이다

 

 

   엄청난 독서광이자 애서가로 잘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는 건물 전체가 서가로 이뤄져 잇는 ‘고양이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실제로 검색창에 그의 건물을 검색하면 삼각형 구조의 빌딩 외벽에 그려진 고양이 한 마리를 볼 수 있다. 지하 1층과 2층을 포함하여 지상 3층에 이르는 높이의 건물 내부는 온통 서가로 이루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계단과 옥상에도 책이 가득하며, 별도의 산초메 서고와 릿쿄 대학 연구실도 상당한 양을 이룬다. 책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에는 서가의 한 단면과 단면을 빠짐없이 촬영한 사진들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가히 압도적이다. 20만권이라 추정하나 실제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양이 어마어마하니, 단순히 독서광이라 하기에는 그의 이력이 자못 궁금해진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불문과 출신으로 다나카 수상의 비자금과 정경유착의 고리를 폭로하면서 일약 스타 저널리스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하면서 “철저한 취재와 탁월한 분석력에 의해 폭넓고 새로운 저널리즘을 확립했다”는 평을 들었으며 또한 높은 수상 경력을 통해 그 공이 인정되는 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서재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바로 특정 영역을 넘어서는 다양한 학문으로의 접근과 끝없는 탐구에의 의지이다. 종교학, 수학, 과학, 심리학, 철학, 역사학, 정치학, 미술사, 음악 등을 불문하고 그는 마치 의식을 흐름을 쫓듯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한 무한한 확장으로의 책읽기를 서슴지 않는다. 지식의 외연을 끊임없이 확장해가면서도 그 깊이가 또한 깊으니, 오늘날 단편적인 정보 습득에만 그치는 현대인들에게는 본보기가 될 만하다. 이것이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어느 한 개인의 지적 세계관을 넘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무한한 지적 호기심의 향연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다.

 

 

서가라는 것은 재미있는 물건이다. 하나하나의 블록이 특정한 생각 하에 형성되어 있다는 게 잘 드러난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블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때그때 생각에 이끌려서 일군의 서적을 모은 결과가 각각의 블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 8p

 

 

 

 

지(知)의 확장과 확장을 거듭하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서가를 둘러보면서 책에 대해 해설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마치 박물관의 큐레이터처럼 고양이 빌딩을 이루는 서가들을 구역별로 이동하며 설명한다. 일부를 제외하고 층별마다 분류는 꽤 체계적이다. 일단 1층에는 약학, 병리학 등의 의학과 인지과학, 우주, 뇌 과학 등의 과학 서적들이 주를 이룬다. 불문과 출신의 그가 과학 서적에 조예가 깊은 것은 상당히 의외이다. 이는 내시경 검사를 받은 계기로 그것이 어떤 것인가 조사를 하기 위해 사사로이 접근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그가 몸담았던 잡지사 혹은 방송사에 기고 및 영상 매체 제작자로 참여하게 됨으로써 미리 사전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가 꽤 전문적인 지식에 이른 것이 더욱 많다. 그는 초심자용 책만 넘쳐나는 과학 분야의 경우 고집 있고, 전문적이며, 수준 높은 도서들이 계속 출간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나아가 원숭이학처럼 인간 연구와도 관련이 깊은 분야는 각 기관에서의 지원 역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원숭이학 코스를 밟은 사람들, 특히 원숭이에서 인간에 이르는 유인원의 진화 같은 주제로 연구를 한 사람들은 대부분 역시나 인간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름은 원숭이학이라고 붙어 있지만, 필연적으로 인간학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만일 돈을 대는 쪽이 그런 걸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 어떤 놈이 원숭이한테 돈을 뿌린단 말인가!’ 하는 이유로 연구비를 쳐내난다든가 했다면, 그건 아주 큰 착각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 74p

 

 

   1층에는 과학 분야 외에도 심리학과 정신의학, 각종 사전들, 핵 발전 관련 서적도 보관되어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의 이론을 픽션으로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로써 우려를 넘어서서 핵 발전 기술의 미래를 안전하게 바라보는 견해 역시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전 세계가 핵 기술의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만큼 일본 내에서도 이제 부정적인 여론을 딛고 연구의 자율성을 강조해야만 한다는 입장 역시 재고해 볼 여지가 있는 듯하다. 1층과 달리 2층에는 라틴아메리카와 종교 관련 서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특히 파라과이의 성립에는 그리스도교의 수도회, 그중에서도 예수회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신학이나 그리스도교 관련 서적이 모여 있다. 유럽의 전설을 담은「황금전설」이라는 책에서 시작해 그리스도교의 토착색이 라틴아메리카에 끼친 영향을 알아 나가다보면 어느새 종교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종교라는 것은 흥미롭게도 어떤 곳에서 태어나 그것이 주변 문화권으로 확산되며 전파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그 땅에 옛적부터 있던 다른 종교와 격렬하게 충돌하고, 그 충돌 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상대를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자신도 변화해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것이 접촉과 변용이라 불리는 현상입니다. / 149p

 

 

   계속해서 3층에서도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는 물론, 서양 문명 이해를 돕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저자는 서양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서, 아서왕의 전설 등을 든다. 무엇보다 성서에 대한 이해가 필수며 스스로도 성서를 이해하기 위해 철저히 들이팠다고 말한다. 구약성서를 원어로 읽기 위해 히브리어를 익히는 열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고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그의 노력은 그 외 다양한 곳에서 엿보인다. 코란을 읽고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더욱이 주석서를 옆에 끼고 원문을 읽는 집요함과 한 글자 한 구절의 의미를 곱씹는 독서 습관이 있었기에 이토록 많은 서적들을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외에도 3층에서는 이슬람, 신비주의 관련 서적,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과학의 본질을 훌륭하게 전하는 「파인먼의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소개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그의 다양한 견해와 아울러 관심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지(知)의 건축물을 이루다

 

 

   이어 지하 1층과 2층에는 메이지유신, 잡지, 생태학, 임사체험 등과 관련된 책이 진열되어 있다. 중동 관련 서적을 설명하며 그가 한 때 내부 깊숙이 들어갔다가 스파이로 오해 받아 죽을 수도 있었던 일화가 나오는데, 현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원인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으로 매우 흥미롭다. 이 외에도 비행기 관련 서적, 경찰 간행물 및 공안경찰이나 공안조사청 관련 서적도 살펴볼 수 있는데, 스파이 이야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기관에 연정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속해 있었다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다음으로 계단을 살펴보면, 넓은 의미에서 서양사를 이해할 수 있는 각종 책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부르고뉴 공국의 대공들」을 언급하면서, 이 책 읽느냐 읽지 않느냐에 따라 유럽을 파악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하니 꼭 찾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언어학, 암호관련, 수학 전문가이자 철학가인 화이트헤드와 괴델의 서적, 미국의 흑인, 인종, 종교, 여성문제를 다룬 책들도 소개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얼마 전부터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를 견실하게 쓴 교과서적인 책이 있으나 행방불명되었다며 애석해한다. 제 아무리 구역별로 엄격하게 정리했다한들 20만권에 이르는 책들 중 원하는 단 한 권의 책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다가도 책을 찾다 생각지 못한 책을 발견하는 놀라운 재미가 있으니, 이 또한 애서가의 즐거움이라며 웃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렇게 많은 책을 지니고 있는 데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책 욕심이란 정말 어쩔 수 없는 건가 보다.

 

 

   그 와중에 책마다 옥석이 마구 뒤섞여 있으니 작가의 마음에 차는 옥은 지극히 드물다는 평가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같은 고전조차 반드시 고전이 모두 옥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하는 지성의 냉철함에 내심 놀라게 된다. ‘현실에 대해 평소 생활과는 다른 시간축과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 저는 그런 행위가 늘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촉구하는 책이야 말로 하나의 작업이 끝난 후에도 반드시 남겨두어야 할, 오래도록 도움이 되는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고전을 읽는 경우 이미 그에 대한 정형화된 평가에 치우친 채 작품을 바라보지 않았는지 반성해보게 된다.

 

 

어려운 것은 모은 책들 중에 장래에도 도움이 되는 책과, 그 일 외에는 쓸모가 없는 책이 있다는 점입니다. 책은 그 책이 쓰인 시대배경에 따라, 의미나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 빌딩에 있는 책들도 정말이지 옥석이 마구 뒤섞여 있습니다. 게다가 경험에 입각해서 말해보자면, 정치나 경제에 관한 책들은 ‘석’에 해당하는 책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옥’은 지극히 적지요. / 424p

 

 

   옥상은 지하 1층의 연속이라고 보면 될 만큼 중국, 한국, 북조선 관련 서적들이 있으며 프리메이슨, UFO, 공산당, 심지어 화염병 제조법의 책도 진열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매우 관심을 끄는 인물을 소개하는데 바로「아웃사이더」의 저자 콜린 윌슨이다. 콜린 윌슨은 문예평론, 성, 살인, 그리고 오컬트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저작을 남긴 멀티 평론가이다. 여러모로 저자와 닮은 구석이 많은 듯한 느낌이 든다. 저자는 개인적으로 「아웃사이더」직후에 쓰인 「종교와 반항아」쪽이 더 흥미롭다며 이를 추천한다. 여기에는 여러 아웃사이더 종교인들이 등장한다. 그 중 20세기 후반의 철학 세계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비트겐슈타인을 설명하면서 저자 역시 그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고 또 인생까지 크게 바뀌었다하니, 나 역시 조만간 그와 관련된 서적을 탐독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콜린 윌슨은 대단히 다면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느 면을 보더라도 재미있습니다. 그의 집에 가보니 그야말로 이 고양이 빌딩의 옥상 같은 작은 방들이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방 하나하나에 특정한 장르의 책들이 가득차 있었어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도 대단히 독특한 포지션에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었고,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그 역시 방대한 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흥미를 끄는 것을 조서해 자료를 모아가면, 결국 저서 한 권 당 작은 방 하나를 건축하게 된다…… 뭐,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 455p

 

 

   이제 고양이 빌딩에서 벗어나 마지막으로 산초메 서고와 릿쿄 대학 연구실로 이동한다. 특히 릿쿄 대학 연구실은 책으로 둘러싸인 은둔처 같은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 한때 나의 전공 교수님의 연구실을 떠올리게 한다. 책이 너무나 많아서 두텁게 담장을 쌓은 나머지, 연구실 문을 두드리면 교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형국이었으니 그야말로 책에 파묻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지금은 소방법 때문에 책을 거의 둘 수 없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저자의 연구실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주었다. 여기에는 미술, 음악, 영화, 음향학 관련 등의 예술 서적들이 다수 보관되어 있다. 인간의 애욕을 담은 외설적인 책에서 비롯하여 각종 현대사 관련 서적도 눈에 띈다. 그 중 관심을 끄는 쪽은 옴진리교 관련 부분이었는데,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언더그라운드」, 「약속된 장소에서」가 생각이 나 그 내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는 실제 옴진리교의 아난다 대사가 주동하여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을 담은 책이다. 이 때 나는 화학병기에 의한 테러와, 이단 종교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 책으로나마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어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의 일본 청년들은 이를 알지도 못할 만큼 지난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세(勢)를 이루며 이와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집단에 대한 경계를 잊지 말아야 필요가 있겠다.

 

 

   이렇듯 서재를 쭉 둘러보다보니 과연 저자가 일본의 대표 지성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만한 듯하다. 그저 책등만 보아도 책의 내용과 그 속에 담긴 진리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니, 책에 대한 애정과 앎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간 책을 접근하는 데 있어서의 자세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한편, 이 책에 소개된 상당한 양의 책들이 고서인 점은 다만 아쉽다.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구매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보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서적이나 일본 사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점도 애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우리에게 주는 존재감과 나의 서재가 얼마나 많은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서 충분히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며칠 전, 누렇게 변색이 된 책들은 헌책방에 팔고 몇 년을 꽂아두었어도 읽지 않았던 책들은 모아서 도서관에 기증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그대로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조차 나에게는 어느 한 때를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의 한 장소이며, 또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종이책에는 뭐니뭐니 해도 존재감이 있습니다. 손에 닿는 감촉, 질감, 중량감. 게다가 디자인, 책의 만듦새, 종이, 인쇄 등등 종이책이기에 느껴지는 감각질적인 요소들은 정말이지 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시시한 책은 전자책이어도 좋고 종이책이어도 상관없지만, 내용이 좋은 책! 그런 것만은 종이책으로 읽고 싶습니다. 책이라는 것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좋은 책일수록 텍스트나 콘텐츠 이상의 요소가 의미를 갖게 되고, 그 요소들이 모두 독자적인 자기표현을 하는 종합 미디어가 됩니다. /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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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
장자자 지음, 정세경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너와 나의 세계를 지나쳤던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나의 것이 아니나 나의 것이기도 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나는 어떤 사람들의 세계를 지나쳐 왔고, 어떤 사람들은 내 세계를 지나쳐 왔다.’

   세상은 수많은 ‘나’와 수많은 ‘너’로 이루어진 교집합이다. 첫사랑, 고백, 추억, 다툼 등의 수많은 사연들은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가 스치고, 머물렀던 자리들이 남긴 흔적들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겪을 이야기, 누군가는 겪지 않아도 나는 겪을지 모르는 이야기. 나의 것이 아니나 결국 나의 것이기도 했던 이야기,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

 

 

 

나의 것이 아니나 결국은 나의 것이기도 했던 그 많은 이야기들

 

 

   중국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 장자자의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는 작가 자신이 블로그에 올린 ‘잠자리에 들기 전 읽는 이야기’ 시리즈를 하나로 묶은 단편집이다. ‘첫사랑, 고백, 집착, 따뜻함, 다툼, 포기, 추억, 탄생’ 이라는 여덟 개 주제 속에 47편의 연애담을 담아냈다. 마치 긴긴밤 저마다의 사연들로 채워지는 라디오를 듣는 것 같다. 술자리에서 해소했던 이별의 아픈 상흔들, 치기 어린 고백과 거짓말 같은 인생의 실수들, 그저 스쳐지나간 줄로만 알았는데 내 안에서 질기게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기억들을 대화체의 글로 가만가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것이 매우 감각적이고 이채롭다. 때로는 명랑하다 못해 발랄해서 키득키득 웃게 되다가도, 잊었거나 혹은 잊은 척 했던 지난 기억의 한 페이지를 끄집어내 울컥거리게 하여 내 안의 많은 감성과 마주치게 한다. 무엇보다 의미 없다고 여겼던 사소한 우리네 이야기가 그의 따뜻한 시선으로 재해석되어 탄생한 구절들을 읽고 있노라면 깊은 위로와 진한 여운을 느끼게 된다.

 

 

 

너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책은 일종의 연애 소설을 표방하는 만큼, 남녀 사이의 연애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년시절의 풋사랑과 나의 모든 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첫사랑, 떨리는 고백 등을 비롯하여 푸른 바다 속을 부유하는 두 남녀를 그린 표지의 일러스트처럼 닿을 듯 닿지 않는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절절하고 애절하게 다가온다. 표제작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는 한 때 두 사람만의 추억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공간이 어느새 모래 도시처럼 황량하게 변해버린 기억과 이별 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낙타의 여자」에는 음식을 태워먹는 재주가 뛰어난 여인을 사랑했던 별명이 낙타인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남들이 그녀의 음식을 처참하게 여겨도 꿋꿋이 다 먹으며 눈물겨운 노력을 보인 끝에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세상을 떠나고, 그녀의 손맛을 기억하기 위해 남자는 끊임없이 그녀의 쓴맛 레시피를 연구하며 그녀가 남겨 놓은 추억과 그리움을 붙잡고 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의 애틋한 사연은 그 자체로도 이미 슬프지만, 여기에 더해지는 작가의 감성적인 글은 상대와 이를 공감하는 독자로 하여금 잔잔한 위로가 되어준다.

 

 

 

이 세상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맑은 날에는 꽃과 나무가 만발하고, 비 오는 날에는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생기고, 햇빛이 비치면 온 도시를 뒤덮고, 가벼운 바람이 불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밤이 깊으면 모든 라디오에서 사랑 노래가 흘러나오고, 각각의 산길을 따라 그림자가 펼쳐진다. 이 모두가 신이 무심코 쓴 한 글자 한 글자, 내게 남겨 해마다 낭독하게 하는구나. 이 세상은 당신이 남긴 유언장이요, 나는 당신의 하나뿐인 유품이다. / 374p

 

 

 

  「뱃사공」은 사랑하는 사람의 주위를 맴돌며 그림자만 끌어 앉은 채 살던 샤오위가 자신은 그저 배를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고, 스스로를 뱃사공에 비유하며 담담하게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위안신이라는 남학생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그에게 맞춘 삶을 살기만 했던 후이쯔의 이야기 「열등생」역시 그의 아이를 가지고서 맞이한 이별을 담담하게 극복하고, 아이와 그녀를 묵묵하게 지지해주었던 다른 동창 친구와의 행복한 미래를 그려나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늘 스스로를 열등생이라 여겼던 그녀는 우등생이라고, 자신만의 색깔대로 쭉 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응원하는 작가의 메시지는 사랑에 아파하고 절망하는 청년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인생이 비록 오자투성이라 할지라도 ‘너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돌아 돌아도 결국 ‘마지막은 나’였으면 하는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며 앞길을 밝힐 이정표가 되어줄 테니 아파하지 말라고.

 

 

 

세상에 대해 절망하기는 쉽지만 세상을 사랑하기란 어렵지. 이렇게 험난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 주위를 막아서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만의 색깔대로 쭉 한 방향으로 가야만 해. / 354p

 

너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이 산속 아침처럼 밝고 상쾌한 사람, 달리는 옛길 위에 쏟아지는 햇살 같은 사람, 따뜻하지만 뜨겁지 않게 나를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 어디서나 모든 문제의 답은 간단했어. 너 같은 사람이 있어서 내 인생의 앞길을 밝혀주는 이정표가 되어주면 좋겠어. / 82p

 

 

평범하지만 특별한

 

   47편의 연애담을 담고 있지만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 외에도 「내 딸 메시, 생일 축하해」, 「오래된 연애편지」, 「누나」, 「건포도 한 봉지만 가져다줘요」등과 같이 반려견과 가족 간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살아 있는 새우의 사랑」이나 「먹거리 전쟁」,「누가 여자는 논리를 모른다고 한 거야?」, 「여행에 필요한 멍청이」의 경우는 젊은 작가 특유의 참신한 재치와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작가는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내는 재주를 지녔다. 장자자라는 작가의 주변인들은 어쩌면 행복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어라, 내 이야기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할 정도로 작품 하나하나에서 주인공들을 향한 작가의 애정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간 중국 소설이라고 하면 중국적 색채와 사상이 많이 담겨져 있는 책들만 봐왔기에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참신하고 젊은 작가 덕분에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책 속 이야기를 각색해 영화화한 <파도인>,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 외에도 촬영 예정 작품이 10여 편에 이른다 하니 앞으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그의 작품이 많아질 것 같아 기대된다. 무엇보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사랑이 위대하지는 않아도 좋은 사랑이길 응원하는 그의 마음을 많은 독자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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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워드 - 내 인생을 바꾸는 한 단어의 힘
존 고든.댄 브리튼.지미 페이지 지음, 이경희 옮김 / 다산4.0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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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한 단어의 기적!

단순하지만 강력한 변화를 이끄는 원 워드 실천법!

 

 

새해가 되면 매번 결심만 하는 당신에게

 

  인생은 늘 자기결심과 계획의 연속이다. 이는 더 나은 삶을 꿈꾸고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동력원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직장, 가정, 자기 계발 등에 있어 커다란 계획과 때로는 사소한 결심들을 세우곤 한다. 그 중 다이어트, 자격증 따기, 돈 모으기, 해외여행 가기 등등은 돌이켜보면 사실 매년 반복하고 있는 계획들이 아닌지 의심해볼 일이다.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가장 불편한 사실은 작년에 이루지 못한 계획들을 새로운 해에 다시 세우는 데도 불구하고 매번 실패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매년 비슷한 목표를 설정하면서도 굳은 결심과 함께 요란하게 계획을 세운 뒤, 결국은 실천 의지가 부족한 자신을 탓하기만 하진 않았는가. 세상의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훌륭한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책을 읽는 순간에만 실천의지를 불태울 뿐이라면, 올해에도 그저 연례행사처럼 다이어리에 이루지 못할 목표만 적고 있었다면 이제 <원 워드>에 주목해보자.

 

 

한 단어의 기적, 원워드의 힘

 

  <원 워드>는 ‘에너지’를 키워드로 하여 긍정적인 삶의 희망을 전해준 <에너지 버스>의 저자 존 고든의 최신작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새해가 되면 이루지 못할 수많은 목표와 결심을 하는 대신 자신만의 단어, 바로 ‘원 워드’를 찾으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한 단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마치 레이저 광선처럼 자신만의 한 단어에 집중하여 사는 것이다. 누군가는 ‘친밀함’을 원 워드로 설정하여 한 해를 주변 사람들과의 원만한 유대관계에 집중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활기’를 선택하여 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던 삶에 변화를 주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활기를 불어넣는 적극성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집중’을 선택한 한 아이는 학교와 테니스 경기에만 최대한 집중을 함으로써 더 좋은 기록을 얻는 추진력을 얻었다고 한다. 거창하고 요란한 목표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오로지 단어 하나를 가슴에 새겨 두고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간 이루어낼 수 없었던 많은 성과를 얻었다. 저자는 이러한 원 워드가 지닌 단순하지만 강력한 힘을 여러 사람들을 통해 실감했다. 이처럼 삶을 변화시키는 비결은 사람들의 강점과 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함에서 비롯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고 말했듯, 저자는 최상의 단순함에서 삶의 명확성과 열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보았다.

 

 

새 차를 구입하고 나서 가는 곳마다 똑같은 차종이 갑자기 눈에 띄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선택한 원 워드는 가는 곳마다 눈에 띄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스트레스가 가득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맞서기 위한 명확한 삶의 태도이다. 빛이 모여 강철을 자를 수 있는 레이저 광선이 되는 것처럼 원 워드에 초점을 맞추는 삶은 현재의 힘든 상황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며, 단순하면서도 강력하다. / 44p

 

 

원 워드 실천법

 

  원 워드가 지닌 긍정적인 힘을 느꼈다면 이를 실천하기 위한 세 단계가 필요하다. 첫 단계는 바로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 즉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나무를 베는 데 8시간이 주어진다면 6시간은 도끼날을 가는 데 사용하겠다.” 고 말한 것처럼 원 워드를 찾기 위해서는 삶의 분주함에서 탈출하고 내면을 살필 준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일종의 마음 정화로, 텔레비전이나 음악과 같은 주변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의도적으로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무엇이 필요한가?’, ‘내 길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버려야 할까?’. 이렇듯 원하는 하나에 집중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한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간절한 단어 말이다.

 

 

  세 번째 단계인 자신만의 원 워드를 실천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원 워드를 일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둘 것,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나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나만의 응원팀에게 단어를 공유할 것 등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원 워드라는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즐기는 자세이며 원 워드를 실천하는 모든 과정이 곧 자신의 성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한 해 동안 사용한 단어는 다음 해에 반복해서 활용하지 마라. 원하는 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배울 것이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하면 원 워드를 반복해서 활용해도 좋다. 그 외에는 같은 단어를 다시 활용하고 싶어도 반복해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떨쳐 버려야 한다. (중략)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더라도 그 단어로 한 해 동안 얻은 교훈에 그대로 만족해야 한다. 원 워드를 실천하기가 정말 어렵다면 그 또한 자신의 성장 과정의 일부이다. / 1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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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워드의 진정한 힘_ 공유하라

 

오늘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내일 어떤 존재가 되느냐를 결정짓고 이런 모든 행동이 모여 삶의 유산을 남기게 된다. 원 워드를 실천하면서 내린 작은 결정은 사소한 선택으로 보이더라도, 삶의 방향과 목적지를 비롯해 인생의 기로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 준다. / 167p

 

 

  저자는 원 워드의 진정한 힘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고, 자신이 속해 있는 여러 조직이나 가족에 전달하여 확산시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강력하고 긍정적인 힘이 되어 세상에 더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실제로 원 워드를 실천하고 공유한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이들이 낳은 효과를 소개한다. 단순히 개인만이 아니라 기업, 스포츠 팀, 학교, 가족 등과 같은 단체에 미친 영향력을 보다보면 원 워드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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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올해 내가 마음에 품고 실천할 단 하나의 원 워드를 ‘자존감’으로 설정했다. 나의 떨어진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동안은 육아에 전념했기에 개인적인 시간이 많이 부족했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시간 동안 잠시나마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고 국비로 회계 공부를 하면서 벼르고 별렀던 공부도 해볼 생각이다. 마음이 헤이해지고, 언젠가는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미뤄왔던 것들이 ‘자존감’이라는 단어 하나를 바로 세우고 나니 실천의지가 더욱 또렷해졌다.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마음에 확 도장을 새긴 한 마디, ‘원 워드’! 가슴에 저마다 중요한 단어 한 가지를 품고 산다면 보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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