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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기 하트 ㅣ 햇살어린이 19
김보름 지음, 김중석 그림 / 현북스 / 2014년 6월
평점 :
세상을 다스리려면 먼저 자신을 다스려라. 자신을 다스리려면 먼저 감정을 다스려라. (본문 16p) 태어나면서부터 경쟁 속에 살아가야하는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보다는 어른들이 이끄는대로 살아가고 있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만이 인생이 목표가 되면서부터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학교, 학원을 오가며 오로지 공부만 강요받는 현 교육현실로 인해 결국 이 동화책 속의 가상현실처럼 쿵쿵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억누르며 사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까?
2029년 초등학생들은 제2의 심장과도 같은 감정조절기 하트를 가슴에 달고 다녀야한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스스로 감정 통제하는 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기분이 들쭉날쭉 제멋대로 날뛰면 성적도 떨어지고 태도도 불량해져 경쟁에서 뒤지고 만다. 학교에서는 한 달 동안 하트에 기록된 색깔로 점수를 내서 성적이 가장 좋은 사람한테 상을 주는데, 좋은 점수를 내려면 초록색이 오래 유지돼야 한다. 빨강은 가장 흥분된 감정, 보라색은 가장 침체된 감정, 초록은 기준이 되는 색으로 편안하고 쾌적한 기분을 나타내며, 화가 나거나 마음이 들뜨면 그 정도에 따라 노랑, 주황, 빨강 순으로 색깔이 올라간다. 반대로 기분이 가라앉으면 파랑, 남색, 보라색 순으로 내려가는데, 가장 위험한 상태는 빨강 단계이다.
세린은 작년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이달의 감정조절 어린이'로 뽑힌다. 엄마는 과외도 없이 늘 상을 받는 세린이 얘기를 하며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은찬은 보았다. 반면 휘성은 늘 노랑이나 주황색이다. 빨간불이 켜질 때도 적지 않다. 우리 반 감정 평균을 깍아 먹는다고 선생님한테 늘 꾸지람을 듣지만 휘성은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은찬은 굳어진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세린이에게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뾰족한 방법을 듣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은찬한 한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아이들이 모여있는 무리 속에서 하하하, 웃음소리가 터지는 것을 보았다. 할아버지는 사라진 놀이 기구인 퐁퐁(트램펄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트램펄린은 위험하고 해로운 놀이기구로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흥분시키기 때문에 사라졌는데, 할아버지의 말을 듣게 된 은찬은 왠지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은찬은 그날 그 할아버지가 소주를 마시고 하트를 부수라고 고함을 질러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은찬은 하트가 불안하게 깜빡이다가 순하게 가라앉은 자신의 마음처럼 다시 멀쩡해진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 문득, 초록색으로 물든 하트가 냉혈동물의 심장처럼 창백해 보였다. 엄마의 노력으로 은찬은 '이달의 감정조절어린이'로 뽑히게 되고, 환호할 엄마 얼굴을 생각하니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지만, 흥분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이제 은찬은 저절로 감정 조절이 되어 하트에 별로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들을 생각해서 평상시 컨트롤에 도움이 되도록 잘 때도 하트를 달고 자라고 한다. 은찬은 결국 하트 괴물이 나오는 악몽을 꾸게 되지마, 엄마는 보랏빛으로 물든 하트를 보며 그깟 꿈 때문에 감정 점수를 깍아 먹는 은찬을 나무란다.
은찬의 하트는 여전히 초록색이고 변함없이 차분하며 항상 안정되어 있지만, 자신의 기분이 어떤지 잘 느껴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속에 있던 감정들이 모두 날아가버린 듯 했다. 그러던 중 1등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진정제를 먹던 세린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은찬은 혼란에 빠진다.
"난 이제부터 가슴을 생각하기로 했어."
"가슴이라니? 하트 말이야?"
"아니, 하트 말고 진짜 가슴, 속마음 말이야. 나는 내 가슴이 원하는 일을 하니씩 해 볼 거야." (본문 85p)
은찬은 하트에 눌린 가슴이 답답하고 거북했고, 하트 없는 가슴으로 마음껏 뛰어놀고 싶었다. 은찬의 가슴은 플라스틱 하트처럼 단단하게 굳어 가는 것 같았지만, 퐁퐁 할아버지를 만난 은찬은 할아버지를 졸라 퐁퐁을 타보게 되고, 신이 나서 맘껏 소리칠 수 있었다. 빨갛게 흥분한 하트에서 경보음이 울리자 은찬은 하트를 움켜쥐고 잡아떼고는 가슴 깊은 곳에서 기쁨의 함성을 터트렸다.
<<감정조절기 하트>>는 이렇게 감정에 억눌린 은찬이 자신의 진짜 가슴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현 교육현실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부모가 시키는대로 앞만보고 달린다. 감정조절기 하트를 매달고 있지 않을 뿐, 우리 아이들도 어느 새 감정이 억제된 생활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감정을 억누른 채 1등을 한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 1등을 한 은찬이가 하트 괴물의 악몽을 꾸듯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쿵쿵대는 내 심장소리가 아닌 것을 위해 달리는 것은 그리 행복한 일이 아닐게다. 이 책은 은찬을 통해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귀 기울이고 내가 원하는 일에 자신감을 갖고 행동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은찬 엄마를 통해 부모에게 말한다.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부모인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이의 행복이었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이 우리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잘못된 판단이 우리 아이들에게 감정조절기 하트를 매달아주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생각만해도 끔찍하기만 한 이 미래의 모습은 어쩌면 현 사회의 단면일지 모른다. 은찬 엄마와 다를 바 없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제 내 아이의 가슴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쿵쿵대는 아이들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봐야겠다.
(이미지출처: '감정조절기 하트'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