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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없는 미술관 - 대중시대 미술관의 모색과 전망
심상용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독특하고 표지가 마음에 들어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했는데 나온지 오래되서 서고에 있는 책이라고 대출이 안 됐던 책이다.
이번에 파견나와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한 후 기쁜 마음으로 읽게 됐다.
사실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제목만 가지고 나는 단순히 미술관 시스템이나 구조에 대해 설명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현대 미술 전시회에 관한 일종의 감상문 연작이었다.
책도 출간된지 꽤 오래되서 세상에 러시아를 소련이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1990년 전시회부터 있는 것이다.
도판도 요즘 나오는 책과는 달리 거의가 흑백이었다.
표지는 저렇게 멋들어지게 해 놓고서 안의 사진들도 좀 보강을 할 일이지...
그러나 저자의 성실한 집필 태도와 그의 말마따나 수준있는 관객, 훈련된 관객이 보는 전시회는 역시 다름을 느꼈다.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해 이렇게 관심을 가진 적이 있던가?
나는 현대 미술이 관객의 보편적인 미의식을 외면한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했다.
특히 다다이즘 같은 반예술을 혐오했다.
내가 처음으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진 것은 칸딘스키의 그림을 직접 본 다음이었다.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에 출품된 작품인데 그 색감과 사물의 발랄한 배치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들리는 그림, 음악적인 그림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실감했다.
그 다음부터 가능하면 미술관에 가서 직접 그림을 보려고 노력한다.
책에 실린 어설픈 도판 가지고는 위대한 명화가 갖는 매력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현대 미술은 더더욱 직접 대면했을 때의 첫 느낌이 중요한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이 조각가이기 때문에 현대 미술에 대해 기본적인 소양과 지식을 갖고 있어 전시회를 감상하는 것도 나 같은 무지한 대중과는 한 차원 다른 수준을 보여 준다.
또 마음에 들었던 것이, 꽤나 성실한 저자의 집필 태도다.
얼마나 꼼꼼하게 리뷰를 하는지 그 자세에 반했다.
이런 점들이 책의 부실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책의 가치를 높혀 주는 것 같다.
요즘은 구상화를 하면, 즉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면 시대에 뒤떨어졌을 뿐더러 심지어 진보라는 시대 정신을 역행하는 보수라는 의심까지 받는 것 같다.
미술의 대세는 설치미술, 행위미술, 개념미술, 오브제 등이라고 한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각광받는 것도 양식적으로 앞서 나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여기 소개된 현대 미술 작품에 대해 전부 공감하지는 못했다.
특히 뒷쪽에 주목받는 현대 미술가로 나오는 레베카 혼의 퍼포먼스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또 지금도 다다이즘은 관객에게 아무런 미의식도 불러 일으키지 않는 무책임한 장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작품들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있었다.
꼭 아름답다는 감탄이 아니라 할지라도 뭔가 울컥한다거나 명상적이 된다거나 충격을 받는 등의 감정 동요가 종종 있었다.
아마도 내가 이해하는 현대 미술은 관객에게 다양한 감정과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인 것 같다.
관습적인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독특하고 혁신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것, 어쩌면 현대 화가들이야 말로 가장 창의적인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워낙 파격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이런 생각도 해 봤다.
사회적 제도와 관습으로부터 합법적인 일탈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현대 미술이 아닐까?
현대 미술이 극한까지 가는 인간의 창의적 발상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진보는 아닐까?
그러나 여전히 냉정한 비판의식은 남아 있다.
저자도 지적한 바지만, 충격과 센세이션만 노리고 심지어 팝아트의 개념을 확장시켜 대중 매체와 접목해 자본주의의 댓가까지 취하려는 상업주의적 접근은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낸시 랭이다.
대중의 지지를 얻고 파격적인 것을 선보여 눈길을 끌려는 것이 목적이라면 대체 미술가들을 예술가로 대접해 줄 근거가 뭐란 말인가?
모든 게 상대적이라면 평가는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인간의 창의성과 진보성을 탁월한 기술로 재현해 내는 것, 작가의 치열한 예술 의지가 없다면 대중 매체 연예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대중에게 너무 파고들다 보니 이제는 초미술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이른바 예술이 광고성화 되고 있음을 저자는 염려한다.
언제나 균형의 유지와 작품에 대한 치열한 탐구 의식이 중요하다.
현대 미술에 대해 한 발 다가가게 만든 좋은 책이었고 저자의 집필 자세가 꽤나 마음에 들어, 다른 책도 읽어 보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 조각을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