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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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모가 깜짝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아이를 기다린다. 기다리던 아이 대신 경찰이 찾아온다. 불길한 느낌이다. 주인공 팀의 동료 베어는 지니가 토막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그가 살고 있는 동네는 범죄 없기로 유명한 곳이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 시체 공시소에서 그 아이를 확인한다. 발길을 돌려 집으로 오는 중에 아내 드레이의 동료 경찰이 전화를 한다. 범인을 찾았다고. 그들은 범인의 집으로 간다. 경찰들이 기대한 것은 사적인 복수다. 팀의 직업은 연방집행관이다. 그리고 발생하는 갈등. 그는 복수의 손길을 거두고, 살인자 킬델에게서 공범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그를 잡은 경찰들에게 이를 환기시킨 후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법 앞에 킨델은 놓이게 되었다.  

 

 이 초반부를 단숨에 읽으면서 부모의 상실과 복수를 느끼게 된다. 당연히 법에 의해 그가 사형대에 올려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는 법의 허점으로 풀려난다. 왜 그를 잡은 그 장소에서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그리고 딸을 잃은 슬픔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마약범 체포 작전에 참가한 그가 범인 과잉 살인죄로 추궁 받는다. 딸아이의 상실로 힘들어하는 그에게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사표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실감으로 자신을 점점 잃고, 감정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아내뿐이다. 이 부부 사이에 위기가 다가온다.  

 

 이런 초반의 준비 작업을 한 후 한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그는 듀몬이다. 예전에 보스톤 경찰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자경조직에 들어올 것을 권한다. 그 이름이 바로 소설의 제목인 살인 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모두 일곱 명이고, 만장일치가 될 경우에만 그 범죄자를 죽인다. 팀이 이 위원회에 선택된 것은 그의 화려한 전력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직접 사형을 처하길 바란다. 팀이 보기에 이 사람들이 미심쩍다. 하지만 딸을 잃은 상실감과 법의 허점으로 킨델이 풀려난 것을 보고 마음이 변한다. 이제 그는 살인 위원회의 한 사람이 된다.  

 

 

 법치국가에서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법이 과연 만인에게 평등할까? 우리는 현실에서 법이 가진 자의 편인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리고 명확한 범죄자인 킨델이 풀려난 것은 절차상 문제 때문이다. 미란다 원칙을 말하지 않고, 영장을 발급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킨델은 청각 장애까지 있다. 어쩌면 그가 풀려난 것은 당연하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법의 정의가 그런 것이다. 처음 이 상황을 보았을 때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명확한 범죄자를 그런 절차 상의 문제로 풀어줄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만약 당신의 집에 경찰이 영장도 없이 침입하여 당신도 모르는 증거물을 들고 간다고 생각해보라. 일반 시민에게 악의를 품은 경찰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여 범인을 양산할 수 있는 것이다. 킨델의 경우는 그가 범인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절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법에 허점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허점을 이용한 범죄가 늘어나고, 그 허점을 매우는 작업이 반복된다. 피해자 당사자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큰일이지만 긴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순간 일뿐이다. 피해자 가족이 가슴에 그 아픔과 슬픔을 묻고 살아가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분명한 범죄자를 절차상의 문제로 풀어주는 것이 맞을까? 살인 위원회가 구성된 것도 바로 이런 부조리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분명한 범죄자를 사적으로 처벌하여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순수한 의도가 법을 넘어선 순간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의가 먼저라고 외치지만 그들 가슴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것은 복수심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분명히 재미있다. 팀의 입을 빌려 <더티 해리>를 말하지만 사실 닮은 점이 많다. 그들이 법보다 정의를 외치다거나 결국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일을 그르친다. 빠른 전개와 냉철하고 이성적이면서 뜨거운 가슴을 가진 팀의 존재는 그의 활약과 능력 때문에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법의 맹점을 표면에 내세우고, 정의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결국 다시 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은 수 천 년 동안 이어져온 사회 시스템이자 가장 안정적인 기반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대립과 갈등을 기반으로, 법과 정의를 배경으로, 감정과 이성의 충돌로 이어지는 액션 스릴러다. 순간의 감정이 시간의 흐름 속에 더욱 커지느냐 아니면 조용히 정제되느냐 하는 것의 중요성이 잘 부각되어있다. 빠른 전개와 자연스런 감정의 변화와 깨달음은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동시에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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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사무라이 1
마츠모토 타이요 글.그림, 에이후쿠 잇세이 원작,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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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본 만화를 읽은 지가 한참 되었다. 한동안 일본 만화에 빠져 살았고, 그 당시에 만난 몇몇 작가는 반드시 읽어야만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길게 이어지는 만화에 지쳐갔고, 완간된 작품은 너무 많은 권수에 주저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기억하는 만화 대부분이 요즘 나온 것이 아닌 몇 년은 지난 것들이다. 한국 만화도 역시 그런 경향이 있다. 조금은 독서의 폭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마츠모토 타이요란 작가를 사실 잘 모른다. 도서 검색을 하면서 자주 이 이름을 만나기는 하였지만 나에겐 다른 일본 만화가에 비해 아직 지명도가 떨어졌다. 그를 알린 작품들을 평론이나 서평을 통해 만났지만 당장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도 아직 보지 못하고 있는데 새로운 작가에 도전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였다. 하지만 그의 대한 호평과 첫 시대극이란 것과 그의 그림과 잘 어울린다는 평은 주저 없이 손이 나가게 만들었다.  

 

 처음 이 만화를 펼치고 대충 넘기면서 낯선 느낌을 받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일본 만화의 그림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끄러운 그림이 아닌 투박하면서 날카로운 그림체가 취향과 사뭇 달랐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만화를 볼 때면 예전에 본 그림체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펼쳐 읽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매끄럽지 않은 선과 예쁘지 않은 등장인물들보다 작품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그 그림들이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체와 관련하여서는 이전에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하였는데도 아직까지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나의 성장이 더딘 모양이다. 

 

죽도 사무라이란 제목처럼 주인공 세노 소이치로는 진검 대신 죽도를 가지고 다닌다. 그가 지녔던 쿠니후사란 검이 실제 어떤 명검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가 지닌 살기와 승부욕은 진검을 가지고 다녔다면 많은 살인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을 염려해서인지 아니면 이야기 중에 나온 금전적인 이유 때문인지 그는 검을 팔았다. 이 선택 때문에 그는 몇 번의 살인 충동을 넘겼다. 만약 진검을 차고 있었다면 그 검에 몇 사람의 목이 날아갔을지 모른다. 그가 풍기는 살기와 기세에 전도유망한 검술 사범 하나가 도장을 떠날 정도고, 실력 있는 무사 한 명은 목이 날아가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의 이런 숨겨진 실력이 하나의 축이라면 그를 처음 만난 꼬마 칸키치는 관찰자이자 세노로 하여금 동심의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우연히 마주친 세노의 모습은 낯설지만 신기하고 호기심의 대상이다. 영리한 소년 칸키치가 세노에게 매혹 당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지 모른다. 첫 부분부터 보여주는 그의 기이한 행동과 말들은 그런 분위기를 더욱 조성한다. 소년의 군더더기가 많은 동작을 지적하거나 다른 동물들의 간결한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조용히 표현하는 말들은 높은 검의 비결을 말하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아직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아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또 그가 에도로 나온 것이 어떤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가 만들어낸 환상 같은 몇몇 장면은 그가 얼마나 순수한지 알 수 있고, 승부에 대한 열망은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될지 예상하게 만든다. 처음에 낯설고 어설프게 느껴졌던 그림도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볼수록 빠져들고 있다. 독창적이고 천재적이란 평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 가능성의 씨앗을 보았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다른 작품들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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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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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책은 처음이다. 그의 이름을 우연히 듣고 언제 책을 읽어야지 생각은 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요즘 필요한 영어와 관심 있던 미국 역사를 같이 다룬 책이 나왔다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일석삼조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책을 보고, 가볍게 넘겨보면서 생각보다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나 그랬다. 많은 영어 단어와 숙어가 나오고, 600쪽이 훌쩍 넘다보니 더디게 진도가 나갔고 예상한 시간을 훨씬 지나 모두 읽게 되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책 한 권이 주는 유익함과 재미가 가득하다는 사실이다.  

 

 발칙한 영어산책이란 제목과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란 부제는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 역사를 영어를 통해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순으로 나오는가 생각하는 순간 주제별로 내용은 변경된다. 그 주제별도 알고 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한 것들이다. 물론 예전에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시대가 변하면서 그 가치나 의미가 바뀌거나 새롭게 등장한 산업이나 문화나 스포츠를 다룰 뿐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영어다. 단어를 통해 그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면서 미국이란 나라의 실체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모두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메이플라워호의 도착과 그 이전 역사에서 시작하여 오늘날 미국 영어를 다루면서 마무리한다. 미국이 거의 모든 역사란 말에 딱 맞는 구성이다. 너무 방대한 분량에 내용이다 보니 이것을 제대로 정리하거나 요약하는 것은 무리고 작가에 대한 실례다. 사실은 나의 무식이 가장 큰 이유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지식을 이 속에 담고 있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실들 몇 가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고, 몇몇은 너무 간략해서 아쉬웠고, 대부분은 놀랍고 재미있었다.  

 

 분명히 재미있는 책이다. 하지만 읽기는 상당히 괴롭다. 번역자와 편집자도 상당히 고생하였을 것 같다. 수많은 영어 단어와 숙어는 영어 울름증이 있는 나에게 고통을 주었고, 어떻게 발음을 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단어들을 속으로 읽어보고, 어딘가에서 본 단어인데 뜻은 생각나지 않고, 그보다 더 많은 단어는 발음도 뜻도 몰라 괜히 불친절(?)한 책에 화도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된 것은 이 책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미국의 모습은 현대 역사 교육이나 정보 속에서 우상화되고 미화된 인물의 실체를 하나씩 알게 한다. 미국 건국 3대 인물 이야기에서 그들도 시대의 한계나 한 명의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고, 에디슨 이야기에서 목적에 의해 부각된 그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실체를 다시 만나면서 현대 교육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콜럼부스에 대한 작가의 혹평은 조금 놀랍기도 했다.   

 

 눈길이 간 두 형제가 있다. 바로 라이트 형제와 맥도널드 형제다. 최초의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가 처음에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 것과 이 둘이 함께 살았고 평생 독신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데 맥도널드 형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두 형제도 역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사실에 두 선구자 형제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묘한 공통점이다. 다른 수많은 함께 사는 독신 형제가 있을 텐데 눈길이 간 것은 이들이 후대에 끼친 영향 때문일 것이다. 아! 맥도널드 형제가 현재 맥도널드 햄버거 창립자가 아니다. 비록 이 형제의 시스템으로 크록이란 인물이 체인점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이런 예는 이 책 속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언어는 흔히 시대와 함께 숨을 쉰다고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고, 새롭게 생기고 사라진다. 당시 신생 국가였던 미국이 아메리카에 도착하여 토착 언어와 결합하고, 자신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유통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초기 미국사를 보면서 현재 중국이 통일된 언어를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이 책이 나온 해를 보니 1994년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또 그의 이력에 영어사전을 만든 적도 있다. 재미나고 뛰어난 여행 작가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만든 책이다. 시간되시면 한 번 읽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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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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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소설은 이전까지 읽은 책이 두 권이고, 영화로 본 것이 두 편이다. 이번에 여기에 읽은 책 한 권을 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까지 읽은 것과 본 것과는 다른 모습에 약간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단 세 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이 소설집이 나에게 작가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전까지 느끼지 못한 그러나 이전 같은 재미를 준 책이다.  

 

 표제작 ‘연애소설’은 상당히 특이하다. 소설이 특이하다기보다 등장하는 인물이 특이하다. 별명이 사신인 인물에 대한 글인데 그와 친한 사람들은 모두 죽기에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우연한 사고로 만나 사귀지만 불치병으로 죽는 여자친구 이야기가 지독히도 불행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낸 그 남자의 모습에 동정이 아닌 시선으로 멀리서 바라보게 한다. 평생 외톨이로 지내야할 그를 생각하면 삶의 불공평과 남은 시간의 기나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의 환’은 암으로 죽어가는 한 남자가 아는 사람에게 살인을 청부하는 내용이다. 누구를 선택할까 고민하지만 적당한 인물이 없다. 그런 어느 날 한 남자 K가 찾아오고 그에게 부탁을 하는데 K의 정체는 놀랍게도 킬러다. 왜 그를 죽이고자하며 자신의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와 긴장감이 상당한 작품이다. 역시 약간은 비현실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묘하게 읽는 동안 젖어들게 한다.  

 

 ‘꽃’은 동맥류로 수술을 해야 하는 한 남자가 아르바이트로 한 유명 변호사를 태우고 여행을 떠나면서 마주하는 과거의 기억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동맥류가 언제 파열할지 모르지만 그 수술의 성공여부가 확실하지 않고,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하지만 그는 주저하고 있다. 그런 시기에 만난 변호사와의 자동차 여행에서 변호사의 이혼한 옛 부인과의 과거를 마주하면서 깨닫게 되는, 잊고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현실에서 주는 감동은 잔잔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세 작품 모두가 담고 있는 주제는 사랑이다. 사신의 사랑이나 암에 걸린 환자의 사랑이나 이혼한 변호사의 사랑은 격정적이고 열정적이라기보다 지독히 현실적이고 낭만적이다. 누구나 사랑을 처음 시작하면 그 뜨거운 열정에 심장이 터질 듯하고, 타는 목마름을 겪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열정과 갈증은 차갑게 식어가고 냉정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그 현실의 벽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기억 속에, 추억 속에 남겨진 아름다운 사랑은 조그마한 불씨만 남아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뜨거움이나 그리움으로 우리를 들뜨게 한다. 사랑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만 바라보는 것으로 그 사랑에 즐거워하게 되는데 이 소설이 그런 작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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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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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표지를 보고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 것은 만화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이다. 예전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 만화다. 오래 전이라 정확한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그 만화가 생각난 것은 왜일까? 일러스트가 주는 분위기와 책에 대한 짧은 설명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귀신들과 그 속에 만나게 되는 사연들이 굉장히 따스하고 인상적이었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런 것을 기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따스함보다 섬뜩하고 괴이하고 충격적이다.  

 

 여덟 편의 괴담이 실려 있다. 일상의 평범함에서 갑작스럽게 만나게 되는 환상적이고 기괴한 풍경은 낯선 느낌과 동시에 섬뜩함을 전해준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장면이 이어지다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돌출적인 반전은 마지막 문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기괴한 이야기를 만나고, 만들어가는 두 콤비의 활약은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이 두 콤비가 그 기괴한 현상을 물리치거나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은 그 현장에서 그 사건을 마주할 뿐이다.  

 

 두 콤비는 별명이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불리는 남자와 화자인 사루와타리다. 백작의 직업은 괴기소설을 쓰는 작가다. 반 백수인 사루와타리와 만난 것도 우연한 사고가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둘이 가까워진 것은 두부를 좋아하는 식성 때문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맛있는 두부를 찾아 돌아다니는 마니아다. 이 둘의 이동에는 거의 대부분 사루와타리가 운전을 하고 가는데 그들이 처음으로 만난 기담도 바로 맛있는 두부집을 찾아가면서다.  

 

 단편들의 구성은 간단하다. 처음엔 사루와타리의 사연이 나온다.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이 나타나서 기괴한 일상을 이야기하거나 상황을 연출한다. 이성의 세계에서 보면 전혀 말이 안되는 일들인데 이 소설 속에선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면서 사람을 끌어당긴다. 일상에서 반전처럼 변하는 풍경은 처음 몇 편에선 제대로 적응이 되지 않았다.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고 섬뜩함과 강한 여운을 느끼기 때문이다. 덕분에 마지막 문장은 여러 번 음미하게 된다.  

 

 터널을 통과하면서 만나게 되는 피투성이 얼굴의 여인이나 일본 전래의 전설을 배경으로 괴담으로 풀어내거나 무시무시한 스토커 여성을 등장시키거나 백작의 추리를 가볍게 뒤집는 괴물이 나와 현실의 벽을 뛰어넘는다. 그러다 도시괴담 같은 쥐 이야기가 이어지고 결계가 사라진 마을에서 만나게 되는 지옥과 제물에 통곡하고 벌레 이야기로 기이하고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 후 사루와타리가 이 기담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 일련의 과정이 시간 순으로 나오지는 않고 뒤섞여 있다. 하지만 처음과 마지막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면서 두 사람의 인연과 기담이 현실로 나오게 원인을 알려준다.  

 

 재미나다. 문장은 간결하지 않다. 상황에 따라 길게 늘어진다. 한 호흡에 빨리 읽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문장이 작가가 만들어낸 상황과 묘하게 어울린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짧을 경우엔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루와타리가 과연 몇 대의 차를 산 것인지 한 번 세어보고 싶다. 중고차들이 잠시 등장하고 사라지는데 그때마다 그 차들이 묘한 역할을 한다. 단순히 운송용인 경우도 있지만 그 자체로 기담을 만들기도 한다. 다른 이야기에는 어떤 차가 나올지 살짝 기대가 되기도 한다.  

 

 

 책 표지에서 말한 두 작가, 에드거 앨런 포와 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포의 단편 소설과 비슷한 제목의 두 이야기는 희미한 기억을 되살리거나 빨리 그 단편들을 읽고 싶게 만들고, 나쓰히코의 <백귀야행>을 연상하게 만드는 분위기는 잠시 현실을 잊게 만든다. 매력적인 여덟 편의 기이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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