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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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책 욕심을 부채질한다. 부제를 보면 넘쳐도 되는 욕심이라고 한다. 점점 좁아지는 공간과 비어가는 지갑을 생각하면 순간 고개를 갸웃하지만 곧바로 자기위안의 말로 삼아버린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을 탐하는 욕망을 자제하라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 읽기를 위해 차를 없앤 것에 비해 최근 나는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기회가 늘었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 권 정도 덜 읽게 되었다. 이런 작은 공감으로 기분 좋게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기획은 베스트셀러 대신 책꽂이에 꽂혀 있는 보석 같은 책을 찾아서 알리는 것이다. 너무 많은 책으로 질리게 하는 대신 하나의 이야기에 두 권의 책을 비교하면서 비슷하지만 다른 즐거움을 누리게 만들었다. 가능한 최근작을 골랐는데 이 부분을 안타까워했지만 절판된 책들이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서 내가 읽었거나 가지고 있거나 읽고 싶게 만들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희망, 정의, 정체성, 창의적 생각이 저자가 잡은 네 주제다. 희망의 장에서 만난 책들은 상당히 가지고 있고, 몇 권은 읽은 것들이다. 특히 <나무를 심는 사람>에 대한 글에서 나의 감동과 같은 부분이 많아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었다. 우연히 보게 된 애니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서 시간도 공간도 잊게 만들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쉬운 삶을 산 사람보다 도전하고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잠수복과 나비>는 지금까지 그냥 묵혀두고만 있었는데 작가에 대한 사연이 새삼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정의를 탐하는 책은 역사와 관련된 책들이 많다. 제목 때문에 읽지 않은 책이 다시 나를 유혹하고, 오래전에 아주 즐겁게 읽은 <닥터 노먼 베쑨>은 퇴색하는 기억을 되살려준다. 착한 경제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실은 다시 나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들고, 서양사 중심의 세계사에 대한 나의 불만을 살짝 눌러줄 책을 찾게 되어 기뻤다. 좋아하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과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하진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과 또 다른 방향으로 소설 읽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체성을 다룬 장에선 이전에 읽었지만 그 재미를 누리지 못한 책을 다시 끄집어내어 읽고 싶게 만든다. 나의 취향과 독서법에 맞지 않아 지루하게 느껴졌거나 아직 어려서 그 재미를 몰랐던 책들이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두 번이나 읽었지만 그 매력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호밀밭의 파수꾼>을 과연 다시 읽어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고, 동양철학 공부를 좀더 심도 있게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삶의 여유가 생기면 여기에 소개된 책들이 새롭고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나에게 말을 걸 것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 장은 개인적으로 가장 낯선 분야다. 가끔 과학이나 예술과 관련된 책을 읽지만 지루하고 힘들고 어렵다. 한때 가장 좋아했던 한국작가 고 이청준에 대한 글에선 그리움과 추억이 생각나고, 연속으로 읽으면서 그 어둠에 매몰되어 중단했던 고 김소진도 새롭게 다가왔다. 이런 기억보다 더 강렬하게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김승옥, 이문열, 조세희, 김성동 등에 대한 짧은 평이다. 안타깝고 아쉬운 현실이다. 그리고 <감응의 건축>을 읽으면서 저자가 받은 감동이 무주로 나의 마음이 향하게 만든다. 언제 시간 내어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저자의 책에 대한 깊은 내공은 부럽다. 다양한 분야와 깊이 있는 분석과 이해는 앞으로 배워야 할 점이다. 그가 책꽂이 꽂힌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쁨은 나 자신도 많이 누렸기에 동감한다. 그리고 나 자신이 건성으로 읽은 듯한 책을 마주할 때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놓고 몇 년을 묵히고 있는 책을 만날 때는 올해는 꼭 읽어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난 지금도 분명한 것 하나 있다. 그것은 사고 싶고 읽고 싶은 책들이 아주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집이 더 좁아지고 지갑은 더 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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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톰스 캐빈 아셰트클래식 2
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크리스티앙 하인리히 그림, 마도경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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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청소년용으로 편집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마지막에 톰 아저씨와 조지가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약간은 과장된 평가와 함께 뇌리 속에 지금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실체는 없었다. 오히려 노예와 관련된 것이라면 쿤타 킨테로 대변되는 <뿌리>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읽지 않은 소설보다 어릴 때 본 미국 드라마의 이미지가 더 강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 기억하는 쿤타 킨테는 톰 아저씨와 다른 유형의 노예다. 톰 아저씨가 좋은 주인 밑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면 쿤타 킨테는 자유를 찾아 늘 탈출을 꿈꾼다. 물론 톰도 자유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자유는 자신의 능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은혜를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선량한 주인 세인트클레어가 딸과의 약속 때문에 그를 해방노예로 만들려고 한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이 약속이 불의의 사고로 지켜지지 않았을 때 여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이것은 소극적인 대응일 뿐이다. 그를 노예로 생각하고 하나의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녀가 이것을 용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에 비해 쿤타 킨테는 흐릿한 기억 속에서 자유를 위해 수많은 탈출을 시도한다. 어쩌면 이 소설 속 조지에 조금 더 가까울 것이다. 조지는 탁월한 능력으로 공장에서 기계를 만들고 고용주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그러자 이를 질투한 주인이 그를 학대한다. 이 때문에 탈출을 시도한다. 이 부분은 이 둘이 다른 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지워진 굴레를 적극적으로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조지와 그의 아내 엘리자가 초반에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데 이것은 톰의 행동과 상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엘리자도 역시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아이가 팔린다는 소식에 목숨을 걸고 탈출한 것과 톰이 현세보다 내세를 더 믿었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았다는 것은 그 시대 기독교 내부의 상반된 견해를 보여준다. 이 둘은 모두 같은 주인 밑에서 살았다. 하지만 자신이 팔려간다는 소식에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 명은 아이를 위해 달아나고, 한 명은 주인을 위해 팔려간다.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을 벗어나려고 한 그녀와 그것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움직인 그를 보면 역사를 움직인 것은 바로 엘리자나 조지 같은 행동가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진다.

현재의 시각에서 톰의 위치가 조금 못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악덕 주인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종교의 힘만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면 평안한 생활이 보장되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그가 주인이 준 통행증으로 충분히 달아날 수 있었는데도 그 피해가 주인과 가족들에게 미칠 것을 염려하여 도망가지 않은 것과 맞물려 있다. 그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했는지 보여준 장면에서 약간 의외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그 시대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만약 도망자인 톰을 그려내었다면 현재의 쿤타 킨테처럼 그 시대에 많은 동조와 호응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대출 알고 있던 것이지만 세부적인 이야기나 전체적으로 풀어나가는 방식은 새롭다. 단순히 모든 노예가 학대받았다거나 주인공이 노예를 학대했다거나 하는 인식을 산산조각 낸다. 그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살았는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장면에선 가슴이 아린다. 약 150년 전 한 지주의 입을 통해 노예제도의 문제와 한계를 말할 때는 그 시대도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음에 놀란다. 하지만 노예해방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얼마나 많은 인종차별이 존재했는지 알고 나면 이것이 단지 큰 발전을 위한 한 걸음이었음을 알려준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쉽고 빠르게 읽힌다. 특히 관심이 가는 장면들은 두 번째 주인인 세인트클레어 집에 머물 당시에 있다. 그가 풀어내는 노예제도의 모순과 그 시대의 한계와 문제점이 현재에도 유효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바가 보여준 놀라운 믿음과 영향력은 한 편의 종교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국이 법으로 노예를 해방했지만 최근까지 그들을 결코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역사를 생각하고, 전통적 의미의 노예대신 급여의 노예가 되어 고용주의 말에 휘둘리는 현대인을 보면 흑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해방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사족처럼 몇 가지 덧붙인다면 삽화와 더불어 진행되는 노예매매와 탈출의 현장은 그 시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노예가 만들어지고 팔리고 학대받고 탈출하고 죽는지 알게 된다. 삽화만 보아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불만은 번역에서 시대를 넘어선 표현이 드러난 곳이 보이는 것이다. 특히 영화와 관련된 문장이 나올 때는 번역상의 실수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가끔 매끄럽지 않은 곳이 나타나 흐름을 흩트리는데 멋진 작품 속 옥의 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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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
김용규.김성규 지음 / 지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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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표지를 보았을 때 읽는 내내 알지 못했던 한 가지를 발견했다. 표지에 침팬지가 울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전에도 보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그림은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다. 눈물의 의미가 무언가 하는 것과 왜 침팬지인가 하는 것이다. 가슴 속에 찡한 울림을 주고, 폭력에 의한 피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지식소설이라고 작가들이 규정한 이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면 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 다니에 대한 묘사와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제니퍼의 현재와 과거사에 대한 것이다. 과거는 중국계 입양아인 그녀의 부모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해당한 것이고, 현재는 환경파괴에 의한 침팬지 사이의 학살을 다루고 있다. 제노사이드. 우리가 흔히 코소보 사태니 아우슈비츠니 하는 것들을 말할 때 인종청소를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선 생존의 터전을 잃어버린 침팬지 집단이 다른 지역을 침범하여 살해하는 것을 말한다. 작가는 몇 번 이 장면을 보여주는데 잔혹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 외에 동족을 살해하는 것은 없다는 상식을 여지없이 파괴한다.

책 후기에 작가들이 말한다. 이야기 구성을 위해 침팬지 수화는 허구로 만들어 내었다고. 하지만 읽는 내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수없이 나오는 이론이나 연구 결과들이나 이제는 익숙한 제인 구달이 그런 묘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다. 덕분에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지만 숙제도 한 아름 안게 되었다. 세계화와 사회진화론에 대한 허상을 씻어내게 되었고 칸트의 철학명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뭐 이 책과 관련된 책들을 꼭 읽지는 않겠지만 관심이 커져가고 새로운 사유의 장을 만들어줘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작가들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코소보 사태 때문이란다. 이로 인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오고갔고, 폭력성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집단학살, 즉 제노사이드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코소보나 아우슈비츠에 대한 글이 아닌 왜 침팬지에 대한 것이냐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은 내놓지 않지만 역시 인간들의 직접적인 살인을 다루기 쉽지 않기 때문이거나 소집단을 통한 연구가 더 섬세하고 직접적인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생각이다. 연구 대상이 많지 않지만 충분히 폭력성을 표현하는데 무리가 없는 존재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종을 찾기는 비교적 쉽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지식소설이라 말하여 어려울 것 같지만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이런저런 이론이나 연구 결과들이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오고 지식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거창한 이론이나 엄청난 활극은 없지만 잔잔히 흘러내리는 감정의 깊이나 인식은 가슴 깊은 곳까지 전달된다. 연구 대상에 감정이입이 되어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발생한 아픔과 비극을 보면서 제인 구달의 냉철한 탐구 방법은 경이적으로까지 느껴진다. 단순히 애정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이자 상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가진 존재로써 다른 종족에 개입하지 않는 그 인내력은 놀랍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 사람마다 평이 갈라질 것이다. 하지만 인정해야할 것은 외부의 개입으로 인한 좋은 변화보다 나쁜 변화가 더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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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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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10번 교향곡>에 이어 다시 클래식 미스터리로 돌아왔다. 전작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전작이 베토벤을 다루었다면 이번엔 파가니니와 그의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다. 파가니니의 연주가 얼마나 뛰어났으면 동시대 사람들이 그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했을까? 바이올린 연주에 문외한이고, 들어본 적이 없으니 기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연주한 곡을 현대의 연주자들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렵고 난해했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가까운 미래에 천재 바이올린 솔리스트 아네 라라사발이 오케스트라 협연 중 쉬는 시간에 살해당한다. 가슴엔 아랍어로 이블리스란 단어가 피로 쓰여 있다. 악마를 뜻한다. 살해방법은 교살이다. 끈이나 손을 이용해 아마추어가 죽인 것이 아니라 무술을 익힌 전문가가 경동맥 등을 압박해서 죽인 것이다. 사건 현장에 증거는 없다. 거기에 그녀가 가진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사라졌다. 그녀가 살해당한 원인은 무엇일까? 악마의 바이올린 탓일까? 아니면 다른 원한이 있기 때문일까? 사실 작가는 이야기 중간에 이 답에 대해 풀어놓았다. 다만 끝까지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뿐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은 페르도모 경위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경찰이지만 자신의 관할 구역이 아니다. 그 날 아들 그레고리오와 연주회에 온 것이다. 이 일은 특별수사대에게 넘겨진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위가 테러로 죽는다. 그가 대신 맡는다. 우연일까? 수사기록을 조사하니 전임자가 영매를 만난 기록이 있다. 궁금해 하다 만나본다. 일반적인 영매와 다르다. 그의 조사는 사실 특별하지 않다. 형사들의 일반적인 수사원칙에 입각해서 진행한다. 용의자와 주변사람들을 만나 그 날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단서를 쫓고, 과거를 파헤치고, 의문을 가지고, 벽에 부딪힌다. 

작가는 미스터리 기반 위에 악마와 저주를 풀어놓았다. 과거 속에서 이 바이올린과 관련된 사람들의 일화들을 말하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아네가 가진 바이올린이 예전에 사라졌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이란 설정부터가 그렇다. 여기에 프랑스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의 바이올린까지 덧붙인다. 그들의 탁월한 연주를 악마와 계약한 것으로 살짝 암시한다. 사실 이 역할을 맡은 이는 이 소설 속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이것은 마지막에 벌어지는 죽음과 연결되면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 과연 그것은 진짜 악마의 바이올린일까? 하고 말이다.

전작처럼 많은 음악들이 나온다. 역시 무식함 때문에 대부분 알지 못한다. 작가가 중간에 말했듯이 실제 음악을 듣게 되면 아!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지식의 향연은 즐겁다. 겨우 알고 있는 음악이 나오면 반갑고, 모르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한 번 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한다. 이런 소재들이 긴장을 풀어준다면 악마와 관련된 현상들은 순간 섬뜩함은 느끼게 한다. 페르도모가 몇 번이나 본 유령이나 갑자기 공격적인 개가 등장하는 것 등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이것들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잘 짜인 미스터리는 아니다. 단서와 추적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서 진행되지 않는다. 단서를 찾는 것부터 영매의 힘을 얻는다. 이 힘으로 얻은 정보를 다시 재가공해서 단서를 찾는 것은 형사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단서가 우연히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변하고, 그 실마리가 다른 사건을 불러오는 모습에 우연의 힘이 너무 작용한다. 뒤로 가면서 하나의 사건이 과거의 사건과 겹쳐지는데 어떻게 보면 단순한 반복처럼 다가온다. 군더더기 없고, 정밀하게 구성된 스릴러는 아니지만 여기저기 깔아놓은 수많은 이야기와 음산하게 힘을 발휘하는 저주는 읽는 재미를 만끽하게 한다. 그리고 사라 장의 이름이 잠시 나왔을 때는 괜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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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의 역사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역사 읽기
장수한 지음 / 동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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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는 늘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지 않아 조금 중구난방이다. 많지 않은 책들과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하곤 했다. 각자가 자란 환경과 기타 여건에 따라 역사를 보고 해석하는 방법이 모두 달랐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을 축적한 것이라면 외우면 그만이다. 한때 역사의 기록은 정확하고 공정하다고 믿었던 순진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눈을 뜨고 얼마나 쉽게 왜곡이 벌어지는가 알게 되면서 역사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부제로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역사 읽기로 되어 있다. 단순히 역사를 읽는다고 나와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고, 그에 따라 나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게 된다. 한 개인의 변화가 세상 전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변화의 시작이 하나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은 나에서 시작하여 민족, 국가, 자연 등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저자는 바로 인간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바로 보기 위한 두 가지로 관계와 변화에 주목하고, 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두 여덟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에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로 시작한다. 역사에 왠 음악인가 하는 순간 이 음악이 왜 역사인지 설명한다. 이 음악 속에 그 시대의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관계를 말하고, 역사의 창조자로서 인간을 설명한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역사의 두 시선인 관계와 장기 지속을 동서양의 두 제국이었던 로마와 당 나라를 통해 설명한다. 이후 자국의 역사를 남기지 못한 인도 이야기로 나를 놀라게 하고, 늘 역사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우연과 필연을 통해 역사의 변화 법칙을 알아본다. 흔히 말하는 역사는 진보하는가를 둘러본 후 역사의 주체가 누군지 생각해본다. 이후 자본주의 제도들인 개인, 국민국가, 시장을 살핀 후 마지막 장에서 미국 자본주의는 세계의 모델인가를 역사 속에서 검토해본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 중 많은 것들이 알고 있던 내용이다. 인도가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기는 했지만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알았던지 몰랐던지 상관없이 이런 사례들은 저자가 역사를 보는 시각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례들 속에 담긴 의미와 해석이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 하나로 그 시대의 삶을 파헤치고, 로마와 당의 몰락을 다양한 해석을 통해 살피고, 과연 1차 대전이 한 청년의 알살에서 시작된 것인지 돌아본다. 이런 사례들은 사실 이미 많은 역사가들의 글로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간략하면서 요약된 경우는 처음이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가 분명하다.

어린 시절 역사를 만드는 주체가 민중인데 너무 영웅들만 부각되는 기록에 불만을 가졌다. 나폴레옹과 링컨의 사례를 통해 그 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동시에 왜 그들이 중요한지도 말한다. 단순히 그들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시대와 인물이 정확하게 맞은 것이다. 흔히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한때 절대적인 믿음의 대상이었던 민중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는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시민, 다중, 대중의 단어가 지닌 의미를 다시 생각한 것도 새롭게 다가왔다. 

역사의 진보와 희망을 노래한 때문인지 저자는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시각에서 글을 썼다. 이 시각은 조용히 드러난다. 하나의 사례를 다양한 시각을 통해 분석하고 해석한 후 자신의 의견을 넣는다. 특히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장은 저자의 정치 견해와 역사관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개혁과 발전과 의지와 소통 등의 단어를 사용하여 희망을 펼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몇몇 사례나 해석을 제외하면 대체로 그의 시각에 동의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다양한 해석을 통해 자신의 시각을 세우려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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