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고아 아시아 문학선 4
우줘류 지음, 송승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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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소설이다. 대만 소설을 몇 년에 한 권 정도 읽는다. 예전에 번역된 소설들은 대부분 로맨스 소설이나 현대 소설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시아 문학선이란 기획 아래에 출간되었다. 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책과 저자에 대한 이력을 보니 이색적인 것이 보인다. 원래 제목이 이것이 아니라 주인공 이름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주인공 이름도 바뀌었다. 책을 쓴 시기도 일제 치하 1943년부터다. 작가도 말했듯이 이 책의 3부와 4부 내용은 그 당시에 출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 출간된 것은 해방 후다. 현재 제목으로 바뀐 것은 1956년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일제시대 한국 소설을 떠올려본다. 과연 이 작품보다 낫거나 그 시대를 더 깊게 다룬 소설이 있는지.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일제 말기에 이런 종류의 작품을 출간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고, 유명 작가들이 친일 행적을 펼치던 시기였다. 그러니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좀더 찾으면 없지 않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3부와 4부는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노골적이고 충격적이다. 아마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시기를 살아간 한 지식인의 사실적인 삶은 억제된 분노와 함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친다.

 

주인공의 이름은 후타이밍(胡太明)이다. 초판은 후즈밍이었다고 한다. 소설은 타이밍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후 씨 집안의 차남인 그가 일제 치하 대만인으로서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갔고, 대만이 그가 방문한 두 나라 일본과 중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 시대와 어떻게 불화하고 고뇌하고 견뎌내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은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대만이 일제 치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와 어떤 비슷한 점과 차이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소설을 통해 이것을 조금을 알게 되었다.

 

일제 치하를 경험한 두 나라의 비슷한 것은 역시 친일과 차별이다. 이 소설 속에서 대만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차별을 당한다. 가장 기초적인 것은 급여다. 하는 일에 상관없이 그들이 받는 급여는 대만사람들의 몇 배다. 일본인이 요직을 차지하고 권력과 금력을 누릴 때 황민화를 외치던 대만인은 그들에게 아부하면서 기생한다. 이들이 보여준 작태는 일제시대 친일조선인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생존을 말하며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권력에 기생하지만 그 알량한 권력은 일본인 앞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진다. 단지 그들은 대만사람들 위에서만 힘을 발휘할 뿐이다.

 

이 소설의 가치는 일제시대의 친일과 차별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수많은 의문을 가지고 상식과 사실 앞에 고뇌하는 타이밍에 있다. 일제 치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인에게 비하의 대상이 된 대만인의 아픔이 가슴 한 곳에 파고들 때, 무력한 한 지식인으로 시대의 거대한 파도 앞에 너무나도 무력할 때, 다른 친구들처럼 대만의 독립을 외치지 않고 중용을 외치며 자신의 길을 갈 때 나도 모르게 감정의 선이 겹치는 몇몇을 경험한다. 시대의 거대한 변화 앞에 눈을 가리고 현실에 순응한 듯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은 또 다른 먹먹함을 준다.

 

이 아시아문학선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재간된 것은 예전에 읽었고 새롭게 번역된 것은 최근에 읽었다. 사실 이 시리즈가 나올 때 읽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이야 이전에도 워낙 재미있게 읽은 터라 걱정이 없었지만 대만 소설은 어떨지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다. 타이밍의 삶을 따라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고 자신을 그 위치에 대입하면서 읽게 된다. 특별한 영웅 행위도 없고 반일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지만 현실적인 그의 행동과 심리 묘사가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현재 대만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본에 대한 호의를 생각할 때 이 소설은 또 다른 감정의 폭을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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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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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겐야 시리즈 첫 권이다. 먼저 나온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산마처럼 비웃는 것> 보다 더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민속학적 지식은 이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범인은 처음 예측한 그대로였다. 이미 단서를 노출한 것도 있지만 반전을 펼치기 위한 작가의 트릭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범인이 트릭일수도 있지만 트릭에 집중하다보면 계속해서 다른 쪽에 시선이 가게 된다. 처음에는 이 가능성을 지웠다. 당연한 일이지만 기본 설정에 어긋나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렌자부로의 수기에서 제대로 맞춰진다.

 

책 앞에 가가구시촌 지도와 가가치가와 가미구시가 가족관계도가 나온다. 뭔가 이유가 있어 이렇게 신경을 써 별지처럼 만들었겠지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봤다. 하지만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이 지도와 관계도가 머릿속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래도 재미난 것은 가가치가의 윗집 사기리란 이름이다. 음독은 모두 사기리인데 한자가 다르다. 작가가 그렇게 한 것인지 편집에 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름 옆에 방점(·)을 찍어서 구분한다. 예를 들면 가장 연장자인 할머니는 하나, 엄마 쪽은 세 개, 네 개. 그리고 그 밑은 다섯과 여섯으로 구분한다. 이 구분 덕분에 누구인지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

 

한적한 산골마을. 이곳에는 흑과 백의 기운을 상징하는 두 가문이 팽팽하게 대립한다. 그 가문들이 바로 가가치가와 가미구시가다. 특히 가가치가는 마귀가계다. 이 집안은 모계 집안인데 3대가 모두 여자 쌍둥이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방점으로 이들을 구분한다. 소설의 시작도 무신당에서 지요에게 빙의된 것을 퇴치하는 장면부터다. 혼령받이인 사기리(6)를 통해 이를 퇴치하려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그냥 평범한(?) 시골마을의 주술 장면이다. 그리고 이 두 집을 둘러싼 이야기와 음모가 하나씩 나오면서 그렇지 않아도 무겁고 어둡고 주술적인 이 마을에 괴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 소설의 설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기리란 이름으로 불리는 쌍둥이의 존재다. 이 쌍둥이 중 한 명(6)은 혼령받이가 되고 나머지(5)는 허수아비님이 된다. 둘이 나뉘는 것은 괴상한 약을 먹고 난후 산 자와 죽은 자로 구분될 때다. 죽은 자는 허수아비님이 되어 이 마을과 산을 둘러싼 괴이한 존재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혼령받이는 치료나 퇴치를 위한 무녀로 변한다. 작가는 이 가문을 둘러싼 현상과 해설을 보여주는데 긴 세월을 거쳐 쌓여온 주술적 영향이 어떻게 변하고 위력을 발휘하는지 차분하게 알려준다. 공포가 어떻게 사람들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지도.

 

기본적으로 이야기는 도조 겐야의 취재노트와 사기리의 일기와 렌자부로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사이를 작가가 개입해 채워주지만 기본적으로 이 세 사람의 시점을 따라간다. 이 과정에 겹치는 것도 있지만 자신만의 것으로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경험 등이 있는데 이것이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것은 독자에게만 전달되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독자에는 하나의 트릭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작가가 다른 시선으로 옮길 경우 독자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곳에 살고 있고, 그 미지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 스며든 공포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가린다.

 

이후의 다른 작품처럼 이번에도 괴이한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그 시작은 근행 중인 사기리(6)를 겁탈하려고 한 수행자 오사노 젠토구다. 사기리(6)의 거친 반항으로 떨어진 낫 때문에 겁탈이 실패하는데 그 이후 그가 목을 맨채로 발견된다. 그런데 괴이한 것은 그가 허수아비님의 삿갓과 도롱이를 걸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겁탈이 실패하고 사기리(6)가 달아난 후 다른 존재를 등장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그 살해 장면에 대한 묘사는 없다. 시점이 사기리(6)에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조가 이 살인사건에 대해 꼼꼼하게 재구성한다. 시간과 어떻게 하면 여자도 남자를 목 매달 수 있는지 말이다.

 

첫 살인이 거의 분량의 2/5정도가 되었을 때 벌어진다. 분량만 따지면 연쇄살인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이후 그 시간이 단축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무녀를 겁탈하려한 것에 대한 징벌 정도로 보였던 것이 하나의 목적을 위한 것으로 점점 밝혀진다. 그 대상들이 가가치가의 어른들이자 하나의 음모를 꾸몄던 인물들이란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모두 허수아비님의 복장을 하고 입에는 이상한 것들을 하나씩 물고 있다. 현장과 시각과 증인들을 감안하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혐의를 벗는다. 공포가 점점 스며들고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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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 쌍둥이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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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미스터리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던 시절에 엘러리 퀸의 소설들이 나왔었다. 그 유명한 시그마북스다. 그 당시 이 시리즈에 눈길이 갔지만 모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고려원에서 나온 <X의 비극>과 <Y의 비극>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책도 소장하다보니 그 소중함을 몰랐다. 이것은 그 당시 나온 SF장르의 그리핀북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겨우 몇 권만 샀었고 나중에 절판되면서 구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을 생각하면 그 시절의 무지함은 부끄럽고 아쉽기만 하다.

 

이번에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가 전권 출간되었다. 시그마북스에서 나온 책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이 제목은 낯설다. 국내 첫 번역이다. 언제나처럼 읽지 않은 소설에 대한 호평은 그 작품의 호불호에 상관없이 유혹적이다. 개인적으로 몇 권 읽은 퀸의 소설들이 취향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도 말이다. 이 책을 펼쳐 읽으면서 예전에 읽은 작품의 좋았던 점보다 맞지 않았던 부분이 더 먼저 떠오른 것은 이런 경험 때문이다. 거기에 시대가 흐르면서 바뀐 환경을 나 자신도 모르게 무시하면서 현대의 작품들과 상대평가를 하면서 더 심해진 것도 있다. 이것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산불로 인한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 산불을 처음 만났을 때 퀸 부자는 죽을 고비를 넘긴다. 산 아래로 내려갈 수 없어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수상한 사람들을 만난다. 알고 보면 사연이 있다. 유명한 사교계의 카로 부인이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저택을 방문한 것이다. 이 부인은 유럽으로 여행갔다는 소문이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제목대로 이 아이들이 샴 쌍둥이란 것이다. 카로 부인은 이 사실을 숨겼고, 유명한 사비에르 박사가 이것을 고쳐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실들이 드러나는 과정은 조심스럽고 조용히 진행된다.

 

산불에 의해 만들어진 거대한 밀실을 배경으로 살인이 펼쳐진다. 사비에르 박사가 살해당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스페이드6 카드는 다잉메세지 같다. 퀸 경감이 간단하게 범인을 잡는다. 범인이 자백까지 한다. 그런데 너무 쉽다.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퀸이 숨겨진 사연을 추리하고 다른 범인이 있다고 말한다. 이제부터 다른 범인 찾기가 시작된다. 가장 먼저 범인으로 지적된 용의자가 사라진 후 거대한 밀실 속의 인물들이 한 명씩 용의자가 된다. 홈즈의 말처럼 한 명씩 범인에서 지워나가야 할 차례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간단한 사건인데 뒤틀리면서 꼬인다. 산불의 존재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도 있다. 경찰들을 불러서 한 명씩 조사를 하고 신선한 공기 속에서 추리를 했다면 쉽게 풀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단한 것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의지가 문제다. 수상한 사람이 등장하고 이 인물이 카로 부인과 연결되고, 새로운 용의자가 살해당하면서 다시 꼬이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을 작가는 꼼꼼하게 보여준다. 퀸의 장점이 바로 독자와의 정면대결인데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내가 이 정면대결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진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전에 읽은 작품들을 바탕으로 직관에 의해 범인을 추리한다. 당연히 맞추지 못한다.

 

이 작품이 설정한 장치들은 이후에 많은 미스터리 만화나 소설 등에서 변주된다. 아마 이런 기억들이 이 작품의 가치를 낮게 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 이런 사실을 알고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고 읽어야 하지만 쉽지 않다. 다 읽은 지금 감탄보다 어디서 봤는데 하는 느낌이 먼저 생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아쉽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책 앞에서 말한 것처럼 퀸 부자만이 이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아마 유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런 설정도 이미 다른 후배 작가들이 사용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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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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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대한 호평은 대단했다. 가히 거장들의 그것과 비교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니 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자주 명성과 상관없이 읽지 않는 작품들이 있지만 기회가 닿으면 늘 읽는다. 화려한 수상 경력이 있으면 더 눈길이 간다. 하지만 이 책이 받은 상들은 개인적으로 낯설다. 이렇게 뒤섞인 감정들은 책을 들고 읽으면서도 변함없었다. 목차가 의미하는 바도 몰랐고 한 여자가 저지르는 살인과 도피가 가슴으로 파고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화자가 바뀌는 순간 기대했던 반전이 펼쳐졌다.

 

모두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분량은 첫 장이 가장 많다. 앞부분은 소피가 어떤 상황인지 보여주면서 사라진 기억과 그 옆에 놓인 죽음 때문에 한 편의 사이코스릴러였다. 범인은 뻔하고 그녀의 도주가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했다. 기억 상실과 그 곁에 놓인 사체는 그녀를 공황 상태로 몰아간다. 이 순간에도 나의 마음 한 곳에서는 숨겨진 어떤 이야기가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 예감은 사실이 되었지만 이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때부터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 그리고 그 끔찍하고 꼼꼼하고 잔혹한 행동에 놀라고 긴장한다.

 

모든 사실이 하나의 드러난 사건을 가리킬 때 반전이 시작한다. 이 반전의 시작은 일기다. 지금부터 몇 년 전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지, 그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이 일의 결과는 언제 나오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전보다 빠르게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 남자 프란츠의 기록은 한 사람이, 한 가정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흔히 하는 말로 열 경찰이 도둑 한 사람 잡지 못한다는 말처럼 소피와 주변 사람들은 그 어떤 낌새도 알아채지 못하고 몰락한다. 죽는다. 무섭다.

 

하나의 장이 바뀌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새로운 긴장감이 고조된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사라졌지만 어색함이 남아 있다. 이 어색함을 속도감과 긴장감으로 마구 빨아 당기는 힘이 마지막 장에서 펼쳐진다. 손에 땀을 쥔다. 앞에 풀어놓은 사건과 상황들이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은 모든 의문을 해결한다. 이제 둘의 대결이 펼쳐진다. 속고 속이고 속는 척 하는 이 대결은 이 소설의 백미다. 이 부분을 늦은 밤 읽으면서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더 반전이 펼쳐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진다.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영상으로 옮겨질지 궁금하다. 원작을 그대로 옮겨도 좋겠지만 시간과 공간과 등장인물들의 재배열이 필요할 것이다.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의문을 품었던 것이 뒷이야기에서 풀렸듯이 영화 속에서도 그럴지 모르겠다. 사실 이 부분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에 의아함을 심어줬다. 그리고 제목에 대한 의문이 읽는 내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마지막에 가면서 풀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려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한 명 더 기억해야 할 작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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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자풍 1 - 쾌자 입은 포졸이 대륙에 불러일으킨 거대한 바람 쾌자풍 1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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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 앞에는 늘 <퇴마록>이 붙는다. 이후 나온 몇 권의 책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변함없다. 내가 읽은 것도 <퇴마록 시리즈>를 제외하면 <왜란종결자>가 유일하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꽤 된다. 언제부터인가 이우혁도 너무 낯익어 모든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자세히 손꼽아 보면 읽은 책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의 신작이 나오면 늘 눈길이 간다. 아마도 이것은 역시 대표작인 <퇴마록 시리즈> 때문일 것이다. 그 속에 담긴 풍부한 이야기와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이 자연스레 다른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제목만 보아서는 내용을 잘 알 수 없다. 쾌자라는 단어도 잘 모른다. 그런데 제목에 대한 설명을 보니 ‘쾌자를 입은 포졸이 중원에 거대한 바람을 일으킨다’는 의미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생각은 낮은 지위의 포졸이지만 숨겨진 실력이 만만치 않은 고수의 새로운 강호행 정도였다. 이 추측의 일부는 현재까지 맞는데 과연 어느 선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포졸 지종희의 약삭 빠르고 거침 없는 행동이 예상하지 못한 활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고, 어느 장면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모두 5부작으로 기획되었다. 그중 겨우 1권을 읽은 상태에서 전체 내용을 추측하는 것은 금물이다. 물론 무협소설의 틀을 가진 작품이다 보니 나의 촉은 그쪽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작가는 이 소설이 무협이 아니라 역사소설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각 장의 시작을 역사로 풀어내는 것과 이어져 있다. 동시에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런 지식을 가지고 읽다 보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일부가 떠오른다. 이 일부가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어질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소설이라고 하지만 무협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이것은 퇴마록의 주인공 현암의 무공을 풀어낸 것에서 이미 그 능력을 충분히 보여줬다.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면서 무림의 존재를 인정하고 남궁세가 같은 무협소설 속 가문을 그대로 적용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작가의 말처럼 이것을 하나의 배경으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낸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서 우리의 전통 ‘해학’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리고 이 해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포졸 지종희다. 현재까지는 그의 등장이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점점 비중이 놓아지면서 아주 거대한 바람을 일으킬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대가 중원임을 알게 된다. 명나라 조정 대신의 죽음에서 시작된 동창의 두 밀사가 지종희를 만나기까지 다룬 것이 1권이다. 이 모든 음모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후반부에 설명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작가가 공을 들인 지종희의 성격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한계를 어느 선까지 정했지만 눈치 빠르고 이익에 밝고 행동도 재빠른 그를 볼 때 아마도 거침없는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이미 난전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가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보여줬지만 더 넓은 중원에서는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5부작 중 겨우 1권만 읽은 상태고 이제 겨우 이야기 도입부임을 생각할 때 전체를 평가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캐릭터를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을 이미 경험한 독자에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다. 좋아하는 장르인 무협소설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더. 개인적으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무협소설의 틀을 따라가는 것은 좋지만 기연이나 우연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양한다. 뭐 작가의 필력을 감안할 때 그럴 필요 없지만. 빨리 2권을 읽고 싶지만 단숨에 끝까지 달리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하다. 빨리 완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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